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39) 존재 139 : 분명히 존재하는 모양

어디서부터 끓어오르는지조차 잘 모르는 자신감과 치명적일 정도의 성선설에 의해서 세상을 헤쳐 나가고자 했다. 그리고 남들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상냥했다. ‘턱없이’라는 말은 분명히 존재하는 모양이다
《사기사와 메구무/최원호 옮김-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자유포럼,1998) 132쪽

 분명히 존재하는 모양이다
→ 틀림없이 있는 모양이다
→ 참말 있는 모양이다
 …


  없다고 여기며 살았는데 어느 때에 ‘없지 않’고 ‘있네’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렴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있으니 있다고 말합니다. 없으니 없다고 말합니다. 없을 듯해서 없을 듯하다고 말합니다. 있을 듯해서 있을 듯하다고 말합니다. 꾸밈없이 말을 하고 있는 그대로 글을 씁니다. 4347.4.2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어디서부터 끓어오르는지조차 잘 모르는 자신감과 끔찍하다 싶은 성선설로 세상을 헤쳐 나가고자 했다. 그리고 남들한테는 아리송하리만치 상냥했다. ‘턱없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있는 모양이다

‘자신감(自信感)’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배짱’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치명적(致命的)일 정도(程度)의 성선설에 의(依)해”는 “끔찍하다 싶은 성선설로”로 손질합니다. ‘이상(異常)하리만치’는 ‘알 수 없으리만치’나 ‘아리송하리만치’로 다듬고, ‘분명(分明)히’는 ‘틀림없이’나 ‘참말’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77) 존재 177 : 인간은 약한 존재


인간은 약한 존재니까. 미움의 감정을 가지고 있어도,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다고 생각해

《타니카와 후미코/박선영 옮김-마법을 믿으십니까 2》(학산문화사,2002) 92쪽


 인간은 약한 존재니까

→ 사람은 약하니까

→ 사람은 여리니까

 …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 학교 음악 수업에서 ‘센박·여린박’을 배웠습니다. 요즈음에는 어떤 낱말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센박·여린박’에 ‘세다·여리다’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세다’라는 낱말은 힘이 세다든지 바람이 세다든지 하는 자리에 곧잘 씁니다. 이와 달리 힘이 여리다든지 바람이 여리다든지 하는 말은 좀처럼 못 듣습니다. 다들 ‘弱하다’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언제부터 한국말 ‘여리다’가 쑥 들어갔을까요. 언제부터 한국말은 제 빛을 잃어야 했을까요. ‘세다’는 ‘여리다’보다 조금 더 쓰는 듯하지만, 이 낱말조차 ‘强하다’라는 한자말에 자꾸 밀립니다. 이 흐름이 그대로 퍼지면서, ‘사람’이라는 낱말도 ‘人間’한테 밀리고, ‘존재’라는 한자말도 널리 퍼지지 싶어요. 4347.4.2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람은 여리니까. 미운 마음이 있어도, 그 마음은 그대로 좋다고 생각해



‘상관(相關)없다’는 “= 관계없다”라고 합니다. ‘관계(關係)없다’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합니다. ‘관련(關聯/關連)’은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계를 맺어 매여 있음”이라고 합니다. 낱말뜻이 돌림풀이입니다. 보기글에서는 ‘상관없다’를 ‘괜찮다’나 ‘좋다’나 ‘나쁘지 않다’로 손보아야지 싶습니다. “미움의 감정(感情)”은 “미운 마음”이나 “미워하는 마음”으로 다듬고, “-을 가지고 있어도”는 “-이 있어도”로 다듬습니다.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손질하고, ‘약(弱)하다’는 ‘여리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만화책을 읽는 어른으로 살기



  많은 어른들이 어릴 적부터 만화를 ‘재미있고 즐거운 노래가 흐르는 이야기빛’인 줄 느끼지 못한 채 자랐다고 느껴요. 입시지옥과 대학천국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채, 만화는 마치 불온도서인 양 여긴 교사와 학부모 등쌀에 시달리면서, 만화에 깃든 넋을 제대로 못 받아먹으며 살아왔다고 느껴요.


  우리가 즐겁게 보는 웬만한 일본 만화영화는 한국사람이 밑그림과 채색까지 다 해요.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아름다운 창작만화가 꽃피우지 못합니다. 값싼 노예나 기계처럼 ‘일본 만화영화 그리기’만 하는 한국이에요. 이런 모습을 읽는다면, 이번 세월호 사고도 괜히 터진 일이 아닌 줄 알아채리라 생각해요.


  한국 만화에서는 요즘 들어 더더욱 물빛 이야기가 흐르는 작품이 매우 드물어요. 일본에서는 이런 만화가 참 많아서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쓸쓸합니다. ‘일본 만화영화 그리기’를 벗어나서 ‘우리 이야기 그리기’로 나아가지 못하니까요. 그릴 이야기가 많고, 나눌 사랑이 많으며, 어깨동무할 꿈이 많을 텐데, 이 길을 걷지 못하니까요.


  지구별 이웃이라는 생각으로 일본 만화책을 읽습니다. 예쁜 이웃이 바다 건너에 있거니 여기면서 일본 만화책을 읽습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예쁜 이웃 이야기를 만화책으로도 그림책으로도 사진책으로도 만나고 싶습니다. 학습만화나 지식그림책이 아닌, 예술이나 문화가 아닌, 삶을 사랑하는 꿈을 꽃피우는 만화와 그림과 사진과 글을 만나고 싶습니다. 4347.4.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 - 두 발과 가슴으로 써내려간 섬진강 에세이
조문환 글.사진 / 북성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9



삶을 이루는 빛을 사진으로

― 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

 조문환 글·사진

 북성재 펴냄, 2013.12.15.



  시골집은 어디에나 마당이 있습니다. 아무리 좁거나 작은 시골집이라 하더라도 마당이 있습니다. 마당이 없으면 밭이 있어요. 밭은 들 한쪽 귀퉁이에 있을 수 있고, 숲에 있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볕을 듬뿍 쬘 만하며, 볕을 듬뿍 쬘 만한 데에 이불을 널거나 옷가지를 펼쳐 말리기에 좋은 시골입니다.


  시골에서는 층집을 안 짓기 마련입니다. 시골에서는 볕을 듬뿍 누릴 만한 집을 짓습니다. 시골살이란, 볕을 논밭에 골고루 드리우는 삶입니다. 시골살림이란, 볕이 풀과 나무와 꽃에 따사롭게 드리우는 사랑입니다. 시골에서는 무엇보다 볕을 크게 살핍니다. 볕과 함께 빛을 살피고, 빛과 함께 살을 살핍니다. 도시에서는 ‘해’만 생각할는지 모르나, 시골에서는 ‘햇볕·햇빛·햇살’ 세 가지를 골고루 헤아립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빛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빛이 없으면 전기를 빌어 불빛을 펑 하고 터뜨립니다. 불빛을 터뜨리지 않으려면 세발이를 세워 오랫동안 ‘작은 빛(어두운 곳에서도 드리우는 작은 빛)’을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아무래도 빛이 없으면 사진을 못 찍는다 할 만합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은 으레 빛을 눈여겨보거나 살피기 마련입니다. 빛이 얼마나 되고, 아침과 낮과 저녁과 새벽과 밤에 빛느낌이 어떠한가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 섬진강에서 눈보라를 맞아 보았습니다. 얼어붙은 강 위에 찍힌 고라니 발자국 곁에 나도 같이 누워 보았습니다. 여름철 뙤약볕을 섬진강과 같이 걸었으며, 폭풍우도 같이 맞아 보았습니다 …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닌 강이 아니라 그 누구도 쉽게 찾아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섬진강처럼 그의 시원도 시원이라 할 수 없을 만큼 평범했다 … 어쩌면 나는 감정이 메말라 섬진강을 통해 그것을 회복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  (9, 21, 29쪽)



  빛을 살피기에 빛을 잘 맞추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빛과 그늘을 살피면 빛과 그늘이 곱게 어우러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생각해 봅시다. 빛만 살피기에 빛만 잘 맞추는 사진을 찍지 않는가요? 빛이 없으면 못 찍는 사진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빛에만 눈길을 두지 않는가요?


  해는 우리한테 빛만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햇빛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햇빛은 빛깔을 가누도록 하는 기운입니다. 햇빛이 있어 무지개빛을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사진은 무지개빛이나 까망하양 두 가지 빛줄기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그러면, 사진을 찍을 적에 빛뿐 아니라 볕을 살핀다면? 사진에 햇빛뿐 아니라 햇볕을 담으려 한다면? 이와 함께 사진에 햇빛과 햇볕에다가 햇살을 담으려 한다면? 해가 지구별에 드리우는 세 가지 기운인 ‘빛·볕·살’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면?





.. 섬진강 사람들은 그들이 강인지, 강이 그들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섬진강과 너무 닮아 있었다 … 나는 숨길 수 없는 분노를 하나 갖고 있다. 이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농촌에 대한 차별과 멸시, 모든 것이 서울로만 통하는 비이성적 사고, 이 땅의 최고·최대·최초는 모조리 서울에만 있는 특이한 서울공화국, 서울에 살아야 사람 취급 받고 대한민국 모든 드라마의 무대는 서울이고, 9시 뉴스의 99%는 서울발이며 ..  (68, 81쪽)



  어떤 사진은 무척 포근합니다. 어느 사진은 대단히 따스합니다. 어느 사진은 매우 살갑습니다. 사진을 읽으면서 포근함이나 따스함이나 살가움은 왜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어떤 사진은 빛이 참 좋다고 느낄 만합니다. 어느 사진은 빛이 멋스럽습니다. 어느 사진은 빛이 고즈넉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빛을 생각하기에 빛이 살아나는 사진을 찍고, 빛을 따지기에 빛이 아름다운 사진을 얻습니다.


  빛 하나를 잘 다스려서 ‘빛나는’ 사진을 빚는 일도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어딘가 아쉽습니다. 사진에 빛만 잘 들어오면 될까 궁금합니다. 사진은 빛으로만 찍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풀도 나무도 꽃도 빛으로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사람도 들짐승도 새도 물고기도 빛으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빛과 볕과 살을 골고루 누릴 적에 목숨이 싱그럽습니다. 빛과 볕과 살을 함께 먹고 마실 적에 숨결이 푸릅니다. 사진도 빛뿐 아니라 볕을 찬찬히 담아서 포근하거나 따스하거나 살가운 숨결을 건사할 때에 한결 아름답지 않을까요. 사진도 빛과 볕에다가 살을 알뜰살뜰 실어서 즐겁게 노래하고 기쁘게 사랑하는 넋을 나눌 때에 더욱 눈부시지 않을까요.





.. 내가 보기에는 분명 붉은 꽃잎 하나에 우주가 담겨져 있었다 … 학원이 나를 키우지 않았다. 방과후학교가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피아노와 영어학원이 저녁 될 때까지 나를 잡아두지 않았다. 시냇물이 음악을 가르쳐 줬고 숨바꼭질과 총놀이·칼싸움놀이가 나를 키웠으며, 나를 저녁 때까지 잡아둔 장본인은 검은 그림자 드리운 들판과 산자락이었다 ..  (122, 149쪽)



  하동 공무원 조문환 님은 《하동 편지》(북성재,2012)에 이어 《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북성재,2013)라는 책을 선보입니다. 하동은 구례·산청·함양·남원·광양·사천·진주와 맞닿은 시골입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서로 나누어 껴안는 예쁜 시골입니다. 조문환 님은 공무원으로서 이럭저럭 살림을 꾸리거나 일을 할 수 있지만, 공무원이라는 자리를 노상 조용히 내려놓고는 ‘하동사람’과 ‘시골사람’이 됩니다. 때로는 ‘지리산사람’이 되고, 어느 날은 ‘섬진강사람’이 됩니다.


  사진과 글로 이야기를 엮은 두 가지 책은 조문환 님 스스로 들이켠 숲내음과 풀빛과 나무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섬진강이 하는 말, 내 내면의 귀로만 들을수 있는 섬진강의 음성을 듣고자 함이다 … 그는 학교와 책에서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을 가르쳐 주는 스승 중의 스승이다. 이것을 배우라, 저것을 암기하라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스승이요, 그가 있는 곳이 교실이다 … 지금까지 천 번 만 번을 지났었지만 피상적으로 지나다닐 때에는 깨달을 수 없었던 구례의 정신을 섬진강을 걷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니 섬진강이 내게 스승인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  (152, 221, 290쪽)




  삶을 이루는 빛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삶을 이루는 빛이란 무엇일까요. 아파트일까요, 자가용일까요, 월급봉투나 은행계좌일까요, 예쁜 곁님일까요, 인터넷이나 신문·방송·인터넷일까요, 졸업장일까요, 무엇일까요.


  삶을 이루는 빛은 누가 빚을까요. 삶을 이루는 빛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삶을 이루는 빛은 어떻게 알아볼까요. 삶을 이루는 빛은 누구한테 아름답게 스며들까요.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아이들 눈빛과 몸짓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아이들 놀이를 지켜보면서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놀다가, 아이들 손을 잡고 들길과 숲길을 걷다가, 아이들과 마을 어귀 샘터를 치우다가,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이웃마을로 나들이를 가다가 생각합니다. 사진은 삶을 얼마나 잘 담을 수 있는가요. 사진은 사랑을 어떻게 담을 수 있는가요. 사진은 꿈을 어떻게 담을 수 있는가요. 사진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어느 만큼 알차게 담아서 이웃한테 보여줄 수 있는가요.




.. 옛날 이곳에 화력발전소와 제철소가 생기기 전에는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아련한 전설이 있는 곳이다. 그만큼 풍요의 고장이었다. 하동김은 최고의 명품이었다. 그러나 이제 김은 물론 인근 바다는 어업을 포기한 지 오래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류 문명의 향기를 맡고 산업단지로 밀려들어 왔다 ..  (318∼319쪽)



  하동 공무원 조문환 님이 찍은 사진이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대단할 까닭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사람이 찍는 사진은 시골스럽기 마련입니다. 시골은 대단한 삶터가 아닙니다. 시골은 푸른 숨결이 감도는 풀과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냇물이 흐르고 골짜기가 싱그러우며 새와 벌레와 짐승이 함께 모여서 살아가는 터입니다. 시골은 수수합니다. 시골사람이 찍는 시골마을은 수수한 사진이 됩니다. 시골은 투박합니다. 시골사람이 부르는 시골노래는 투박합니다. 《하동 편지》를 읽을 적에는 아직 덜 시골스럽구나 싶었고, 《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를 읽으면서 제법 시골스럽구나 싶습니다. 앞으로 하동에서 길어올릴 시골빛은 꾸준히 시골스러움을 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멧자락과 하나 되는 삶이고 냇물과 어깨동무하는 삶일 테니 시골스러워야겠지요. 나락과 남새와 열매를 가꾸는 시골사람이 도시사람하고 넉넉히 밥을 나누듯, 시골 공무원 사진과 글도 너른 이웃들과 곱다라니 빛·볕·살을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7.4.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잎에 내려앉은 빗물



  장미잎에 빗물이 내려앉는다. 돌나물에도 모시잎에도 빗물이 내려앉는다. 빗물은 잎을 타고 땅으로 똑 떨어진다. 잎에 내려앉은 빗물이 무겁지 않으면 빗물이 마를 때까지 이 모습 그대로 남는다. 빗물이 풀잎에 앉아 햇볕과 바람에 마르면, 잎에는 빗물 자국이 남는다.


  빗물이 빚는 모습을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꾸밀 수 있을까 헤아려 본다. 꾸미려 한다면 꾸밀 수 있을 테지만, 숲빛을 일부러 꾸며야 할 까닭은 없다고 느낀다. 숲빛은 숲에서 느끼고, 사람은 숲을 사랑하고 아끼면 되리라 생각한다. 꾸미려 애쓸 겨를이 있으면 숲을 더 느낄 일이요, 우리는 마음을 곱게 가꾸면서 하루를 누릴 때에 아름다우리라 본다.


  툭툭 떨어지는 동백꽃은 천천히 삭아 흙으로 돌아간다. 동백꽃이 거름이 되고 흙이 되어 동백나무를 살리고, 동백나무 곁에서 자라는 장미나무한테도 거름이 되고 흙이 된다. 장미꽃이 피고 지면 장미꽃도 흙으로 돌아가 장미나무와 동백나무를 살리는 거름이 될 테지. 빗물은 꽃을 살찌우고 나무를 보듬으며 사람을 먹여살린다. 4347.4.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