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궁둥이 예뻐



  우리 집 아이들을 바라보면 여섯 살이 지나니 궁둥이가 탱탱하다. 토실토실 예쁘장한 궁둥이는 너덧 살까지인 듯하다. 올록볼록한 살점이 있고 배가 쏘옥 나오는 때는 너덧 살까지로구나 싶다. 예닐곱 살이 되면 어린이 티가 나면서 아기 티가 사라진다. 작은 아이들은 작은 손발로 작은 몸을 움직이면서 논다. 작은 눈알을 굴리면서 작은 가슴에 수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터는 대단히 크다. 4347.4.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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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 골짜기 마실 좋아



  골짜기 마실을 다니고 싶다. 아이들은 골짜기에서 하염없이 논다. 그런데 군청에서 자꾸 골짜기를 건드린다. 시멘트를 퍼붓는다. 찻길을 넓힌다면서 나무를 모조리 베어 넘긴다. 여러 달 동안 큰 장비가 들락거리며 시끄럽다. 아이들은 골짜기 노래를 부르다가도 시끄러운 장비와 짐차가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는 골짜기에 가지 말자고 말한다. 지난해에 다녀오며 남긴 사진을 들여다보며 입맛만 다신다. 사름벼리야, 골짜기 마실 다시 가고 싶지? 4347.4.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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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학의 자리 - 경계의 문학, 소통의 문학, 청소년문학을 말하다!
박상률 지음 / 나라말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푸른책과 함께 살기 113



열여섯 살에 읽을 책

― 청소년문학의 자리

 박상률 글

 나라말 펴냄, 2011.8.20.



  스물여섯 살이라면 어른이라고 합니다. 서른여섯 살도 마흔여섯 살도 어른이라고 합니다. 쉰여섯 살이나 예순여섯 살도 똑같이 어른이라고 할 테지요. 일흔여섯 살이나 여든여섯 살을 두고도 어른이라고 해요. 여섯 살은 어린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열여섯 살은?


  옛날을 생각하면 열여섯 살은 어른입니다. 다 큰 나이인 만큼 어른입니다. 스스로 제 몫을 할 만큼 일할 수 있는 나이인 터라 열여섯 살은 어른입니다.


  오늘날을 생각하면 열여섯 살은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 나이에 있는 사람을 두고 ‘청소년’이라는 한자말을 따로 지어서 가리킵니다. 한국말로는 ‘푸름이’로 가리키기도 합니다.


  열여섯 살쯤 되면 낫질을 제법 잘 할 수 있습니다. 지게질도 썩 잘 할 수 있습니다.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다. 밥을 지을 수 있고, 아픈 이를 돌본다든지 아기를 어를 수 있습니다. 열여섯 살쯤 된다면 혼자 먼 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습니다. 혼자 집을 볼 수 있으며, 모내기며 가을걷이며 소꼴베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 1990년대에는 동화가 돈이 되었다. 그랬기에 아동문학과 그다지 관련 없는 출판사들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화책을 냈다 … 대부분의 작가들이 청소년에 댜한 이해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서둘러 작품을 쏟아내기 때문에 요즘 청소년소설은 청소년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것이 문제다 … 청소년은 왜 오늘이 아닌 미래에만 주역이고 내일에만 주인이 될까? 오늘에도 주역이고 주인이면 안 될까 ..  (13, 14, 31쪽)



  밤이 되면 시골은 어둡고 조용합니다. 어두운 시골은 별빛을 환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조용한 시골에서는 멧골에서 울려퍼지는 새소리를 가만히 들을 수 있습니다.


  시골은 여름밤이 그리 무덥지 않습니다. 흙이 있고 풀이 있으며 나무가 있는 시골은 여름밤이 시원합니다. 흙과 풀과 나무가 없다면, 시골도 도시와 똑같이 무덥거나 후덥지근합니다. 마당을 시멘트로 바른 시골은 도시와 비슷하게 덥습니다.


  요즈음은 봄이 봄 같지 않다 말합니다. 왜냐하면 겨울이 끝나서 봄인가 싶더니 여름이라고들 해요. 도시에는 흙도 풀도 나무도 모두 밀려나야 하니까, 저녁이 되어도 봄볕이 식을 수 없고, 싱그러운 바람이 불 수 없어요.


  이런 도시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하더라도 시골을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루 빨리 도시로 갈 생각인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초등학교를 마친 뒤 시골 중·고등학교에서도 입시공부만 하거나 입시학원을 다닌다면, 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 요즘 나오는 청소년소설들은 한결같이 감동보다는 재미를 추구한다. 그럼 소설을 읽는 이유는 재미를 맛보자는 것일까? 그건 그렇지 않다. 재미는 그저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맛이 나는 것이고, 감동은 어떤 느낌이 있어 마침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 게임을 하거나 오락물을 보면서 감동까지 받고자 하는 이는 없다. 그런데 청소년소설이 자꾸만 그런 것들의 꽁무니를 따라가지 못해 안달이다 … 제대로 된 문학은 어린이용이든 청소년용이든 어른용이든 재미가 우선이 아니고 감동이 우선이다. 그러면 감동은 어디서 오는가 ..  (21∼23쪽)



  한국에서 2000년대 열여섯 살은 어떤 나이일까 헤아려 봅니다. 한국에서 열여섯 살은 어른이 아니지만 어린이도 아닐 뿐더러, ‘학생’으로 여깁니다. 열여섯 살이기에 모두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으나, 이 나이에는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여깁니다. 열일곱 살이나 열여덟 살도 학생으로 여겨요. 이뿐 아니라 스무 살이나 스물다섯 살조차 학생으로 여깁니다. 아니, 요새는 서른 살까지 학생이기 일쑤요, 마흔 살짜리 학생까지 있습니다.


  열여섯 살이지만 밥을 못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스물여섯 살이지만 국을 못 끓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서른여섯 살이지만 아이와 어떻게 놀며 아기를 어떻게 재우는가를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학교를 마치고 책을 꽤 읽었다지만 삶을 모르는 마흔여섯 살이 많습니다. 회사에서 직책이 높고 돈을 제법 모았으며 아파트 한두 채를 거느린다지만 삶을 깨우치지 못하는 쉰여섯 살이 많습니다.


  예순여섯 살 어른은 얼마나 어른다운 한국 사회인지 궁금합니다. 일흔여섯 살 어른은 얼마나 슬기로운 어른다운 한국 문화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모두 나이값을 잊거나 잃으면서 사람다운 빛을 함께 잊거나 잃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 작금의 청소년소설 가운데 많은 작품이 아주 극단적인 청소년상을 보여주고 있는 건 바로 어른의 시선만으로 청소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 많은 청소년소설들이 인위적인 성장을, 나아가 강요된 성장을 그리고 있다 … 이론적인 정의를 평생 공부해 봐야 시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시에 대한 그럴싸한 생각만 가지를 쳐 가며 나올 것이다. 시는 문학 이론서  몇 권 속에 들어 있지 않다. 시는 시인의 가슴속에서 나온다. 세상을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끙끙 앓으며 살아가는 시인의 가슴속에서 시는 나오는 것이다 ..  (33, 35, 86쪽)



  박상률 님이 쓴 《청소년문학의 자리》(나라말,2011)를 읽습니다. 청소년문학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밝히려는 글을 모은 책입니다. 오늘날 청소년문학이 참말 청소년문학다운가를 묻고 따지는 글을 모은 책입니다.


  청소년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어린이문학 다음은 청소년문학이고, 청소년문학 다음은 어른문학인가요? 누가 청소년문학을 쓰고 누가 청소년문학을 읽어야 할까요?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만 읽는 문학이 아닙니다. 청소년문학도 청소년만 읽을 문학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요즈음 태어나는 청소년문학을 ‘청소년부터 모든 어른이 읽도록’ 쓰거나 엮거나 빚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태어나는 청소년문학이 ‘청소년부터 모든 어른한테 삶을 밝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책도 많이 읽는가? 그렇다. 무지막지하게 많이 읽는다. 그런데 그들이 읽는 책은 인간의 삶과 존재를 이해하는 책이 아니다. 오로지 시험문제로 나옴직한 것들이 버무려진 책이다 … 아이들이 시험에 필요한 책만 책으로 알게 된 게 그들 탓인가? 아니다. 그들 뒤에는 그들보다도 훨씬 더 책을 읽지 않는 어른들이 버티고 있다 ..  (154, 155쪽)



   열여섯 살에 읽는 책은 교과서여야 하지 않습니다. 열여섯 살에 시집이나 연애소설이나 무협지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 땅 열여섯 살은 어떤 책을 읽을 때에 아름다울까요. 이 나라 열여섯 살은 어떤 책을 읽을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스스로 밥 한 그릇 짓지 못하는 열여섯 살이 시험성적만 잘 나오면 될까요? 스스로 바느질이나 빨래를 할 줄 모르는 열여섯 살이 책을 많이 읽고 독후감을 많이 쓰기만 하면 될까요?


  청소년을 맡아서 가르치는 교사는 중·고등학교에서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는지 궁금합니다. 청소년을 돌보며 아낄 어버이는 푸름이와 함께 어떤 삶을 빛내면서 하루하루 아름답게 살림을 가꾸는지 궁금합니다. 굳이 청소년문학이라는 갈래를 나눌 까닭이 없이 아름다운 문학을 빚고, 아름다운 책을 엮으며, 아름다운 삶을 일굴 우리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따로 청소년책을 선보여서 읽히기보다는 사랑스러운 글을 쓰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리며, 사랑스러운 노래를 함께 부를 우리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열여섯 살에도 여섯 살에도 스물여섯 살에도, 또 서른여섯 살과 예순여섯 살에도 우리가 읽을 책은 늘 하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4347.4.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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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람이 밥을 먹으면 어떤 밥이라고 해야 할까. 한자로 ‘한식’이라는 낱말을 쓰기도 하는데, 오늘날 한국사람이 여느 살림집에서 지어서 먹는 밥을 가리켜 ‘한식’이라고 할 만한지 궁금하다. 조선 시대에 궁중에서 임금이 먹던 밥일 때에만 비로소 ‘한식’이라고 할 만한지 궁금하다. ‘가정식 백반’이 있는데, ‘가정식 백반’은 ‘한식’이라고 할 만할까 아닐까. ‘가정식 백반’은 얼마나 ‘여느 사람 살림집에서 먹는 여느 밥’이라고 할 만할까. 오늘날 지구별에서는 나라나 겨레마다 고유한 밥삶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우리라 느낀다. 지구별 어디에나 호텔이 있고 편의점이 있다. 맥도널드가 있고 레스토랑이 있다. 온갖 식당에서는 어떤 밥을 차릴까. 모두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밥을 먹는데, 우리가 먹는 밥은 누가 흙에서 거두고 바다나 냇물에서 낚으며 들이나 숲에서 캘까. ‘밥(요리)’을 빌어 문화와 역사와 사회와 정치를 읽으려 한다면, 얼마나 찬찬히 꼼꼼히 널리 두루 살필 수 있을까. 신문사 경제부 기자 권은중 님이 쓴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밥과 사람은 서로 어떻게 얽히면서 지구별에서 살아가는가. 4347.4.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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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요리 인류사- 혀로 배우는 인간과 생명의 역사
권은중 지음, 심상윤 그림 / 철수와영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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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에서 펴내는 <책이 열리는 마을>에 싣는 글입니다.

올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차례

우리 말 이야기를 싣기로 했습니다.


..


말넋 27. 이웃과 나누는 글내음

― 봄꽃이 봄바람을 부르듯이



  한국은 예부터 ⅔에 이르는 땅이 멧골이나 멧자락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⅓은 들이었겠지요. 멧골에 집을 마련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을 테고, 들에 집을 장만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을 터입니다. 멧골에 마련하면 멧골집인데, 멧골집 둘레는 숲이기 마련입니다. 숲에 깃든 집, 그러니까 숲집에서 살아야 땔감을 얻습니다. 숲집에서는 멧나물을 캐거나 뜯어서 먹고, 멧자락에 밭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마련합니다. 들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나무가 우거진 곳에 집을 짓습니다. 들에 짓는 집이면 들집이 될 텐데, 나무가 가까이 있어야 땔감으로 삼습니다. 여러 가지 연장도 나무를 깎아서 만드니, 나무는 늘 곁에 있어야 합니다. 냇물이 흐르고 숲으로 둘러싼 들이 사람이 살기에 알맞다 할 만한 터인 셈입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들’과 얽힌 낱말을 퍽 많이 썼어요. 이를테면, ‘붉은닥세리’라든지 ‘노해’라든지 ‘펀더기’라든지 ‘푸서리’ 같은 낱말을 썼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낱말을 쓰는 분이 없고, 이런 낱말을 소설이나 수필이나 시에 넣으면, 거의 모든 사람이 못 알아들으리라 느껴요. 모두 ‘들’을 가리키는 낱말이지만, 옛날처럼 들집을 지어 들밥을 먹고 들일을 하는 ‘들사람’이 아니라, 도시를 이루어 도시사람으로 살기에, ‘들말’은 잊히거나 사라집니다.


  낱말뜻을 살피자면, 붉은닥세리는 “풀이나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거친 땅”이고, ‘펀더기’는 “펀펀하면서 너른 들”이며, ‘노해’는 “바닷가에서 들을 이룬 곳”입니다. ‘푸서리’는 “거칠면서 풀이 우거진 땅”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자말로 ‘불모지(→ 붉은닥세리)’와 ‘광야(→ 펀더기)’와 ‘황야(→ 푸서리)’를 쓰곤 해요. 들살이와 멀어지면서 들빛을 잃지만, 들말을 써야 할 자리가 곧잘 있습니다.


  이러한 들말과 함께 ‘들녘·들판·벌·벌판’ 같은 낱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말도 어느새 쓰임새를 잃으면서 차츰 우리 마음에서 잊힙니다. 우리들은 오늘날 시골에서 들을 가꾸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새로운 도시를 ‘신도시’나 ‘뉴타운’으로 넓히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삶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면서 삶도 나란히 달라집니다.


  봄을 맞이해 어디에서나 봄꽃이 피어납니다. 시골숲에서는 할미꽃과 진달래와 복수초 같은 꽃이 고개를 내밉니다. 시골마을에서는 냉이꽃과 봄까지꽃과 별꽃과 코딱지나물꽃 들이 방긋 웃습니다. 삼월에는 산수유나무나 동백나무나 매화나무나 닥나무에서 마알간 꽃송이를 터뜨립니다. 사월에는 앵두꽃이랑 딸기꽃이 하얗고, 오월에는 찔레꽃과 탱자꽃이 하얗습니다. 삼월부터 오월까지 유채꽃이 노랗게 물결을 칩니다. 사이사이 냉이꽃이랑 꽃다지꽃이랑 민들레꽃이랑 콩꽃이 빙그레 웃어요.


  온갖 봄꽃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월 첫무렵에 피는 현호색을 바라볼 적에 ‘현호색빛’이라는 말 아니고는 현호색 꽃빛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딸기꽃은 ‘딸기꽃빛’입니다. 탱자꽃은 ‘탱자꽃빛’이요, 동백꽃은 ‘동백꽃빛’입니다. 사월에 느티나무도 새 잎사귀를 내면서 조물조물 조그마한 꽃을 줄줄이 매달며 옅푸른 빛이 감돌아요. 느티나무 느티꽃은 풀빛이면서도 풀빛이라는 말로는 모자라 ‘느티꽃빛’이라고 가리켜야 비로소 제대로 나타낸다 할 만합니다.


  풀빛과 얽혀 일본 한자말 ‘녹색’이라든지 중국 한자말 ‘초록’이 있어요. 영어로는 ‘그린’입니다. 나라와 겨레마다 가리키는 말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사람은 좀처럼 한국말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 나라 여러 겨레가 저희 삶터에 맞게 지어서 쓰는 낱말을 몽땅 받아들여 뒤죽박죽으로 써요. 한국말 ‘빨강’과 ‘붉음’이 있으나 구태여 ‘적색’과 ‘레드’를 끌어들입니다. 서로 헤어지는 자리에서 ‘잘 가’나 ‘살펴 가셔요’라 말하기보다는 한자말로 ‘안녕’이나 ‘조심히 가셔요’라 말한다든지, 영어로 ‘바이바이’를 쓰곤 합니다.


  봄꽃은 봄바람을 부릅니다. 봄꽃이 퍼뜨리는 꽃내음은 봄바람에 살포시 실려 온 집안과 마을을 감돕니다. 멧새 날갯짓에도 봄꽃내음이 묻어 골골샅샅 퍼집니다. 일찌감치 깨어난 벌과 나비한테도 봄꽃가루와 봄꽃내음이 깃들어 이곳저곳으로 번집니다.


  도시에서는 어떤 빛이 될까요. 도시에서는 어떤 내음이 퍼질까요. 자동차가 그득그득 넘치기에 자동차 배기가스가 골골샅샅 퍼지겠지요. 공장 곁에서 공장 매연이 두루 번지겠지요. 좋고 나쁘고를 떠나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바람은 무엇이고, 우리가 먹는 밥은 무엇인지 돌아봅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맑은 바람을 마셔야 몸이 튼튼해요. 도시사람이나 시골사람이나 정갈한 밥을 먹어야 몸에 새 기운이 솟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 한 마디가 거칠거나 메마르다면 우리 마음은 어떤 빛이 될까 궁금합니다. 우리가 나누는 글 한 줄에 사랑스러움이나 살가움이 깃들지 못하면 우리 넋은 어떤 모습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기에 한국말을 배우고 씁니다. 한국에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니 이웃과 오순도순 주고받을 아름다운 한국말을 살핍니다. 우리는 어떤 보금자리와 마을을 가꾸면서 어떤 말빛을 밝힐 때에 즐거울는지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글내음을 퍼뜨리며 이야기꽃을 피울 때에 사랑스러울는지 생각합니다.


  말 한 마디는 천 냥 빚을 갚을 뿐 아니라, 말 한 마디가 씨앗이 되어 고운 빛으로 거듭납니다. 콩을 심은 곳에서 콩이 나듯이, 따뜻한 말 한 마디 심은 자리에서 따뜻한 말이 사랑스럽게 태어납니다. 새봄에 새롭게 눈부신 봄빛을 마음속으로 그려요. 내 마음을 살찌울 ‘봄말’ 한 마디 그려요. 스스로 마음밭에 씨앗 한 톨 심듯이 말빛을 북돋우면, 이 말빛이 이웃한테 살그마니 퍼지면서 좋은 기운으로 깃들어요. 스스로 마음자리에 나무 한 그루 돌보듯이 글내음을 보듬으면, 이 글내음이 이웃한테 시나브로 스미면서 기쁜 웃음으로 샘솟아요.


  온누리를 촉촉히 적시는 빗물을 머금으며 흐르는 구름과 같은 넋으로 말빛을 가다듬습니다. 온누리를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햇볕과 같은 마음씨로 글내음을 다스립니다.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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