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36) 선정의 1 : 책 선정의 방법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워하는 그림책 육아의 지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책 선정의 방법’을 들겠습니다

《박은영-시작하는 그림책》(청출판,2013) 19쪽


 책 선정의 방법

→ 책 고르는 방법

→ 책을 고르는 법

→ 책 고르기

 …



  보기글을 가만히 살피면, “하나를 꼽으라면”이라는 대목이 있고 “선정의 방법”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국말 ‘꼽다’와 한자말 ‘선정’은 서로 같은 뜻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런 글흐름을 옳게 깨닫는 분이 뜻밖에 퍽 적습니다. 한국말 ‘고르다·가리다·뽑다·추리다·꼽다’를 알맞게 쓸 수 있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이와 같은 한국말을 즐겁게 쓰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이냥저냥 한자말 ‘선정’에 매달리다가 토씨 ‘-의’까지 얄궂게 붙이지는 않는가요. 4347.4.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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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모두 어려워하는 ‘그림책으로 아이키우기’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첫째로, ‘책 고르기’를 들겠습니다


‘공통적(共通的)으로’는 ‘똑같이’나 ‘모두’나 ‘다 같이’로 다듬고, “그림책 육아(育兒)의 지점(地點) 중(中)”은 “그림책 육아 가운데 하나”나 “그림책으로 아이키우기 가운데 하나”로 다듬습니다. ‘단연(斷然)’은 ‘무엇보다’나 ‘바로’나 ‘첫째로’로 손봅니다. 한자말 ‘선정(選定)’은 “여럿 가운데서 어떤 것을 뽑아 정함”을 뜻한다고 해요. 한국말로는 ‘뽑다’나 ‘고르다’인 셈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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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95) 목도


이 순간을 목도하기 위해 나는 그 멀리 북반구에서 남반구까지 내려왔고, 길에서 몇 년을 보냈었구나

《박 로드리고 세희-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라이팅하우스,2013) 127쪽


 이 순간을 목도하기 위해

→ 이 한때를 두 눈으로 보려고

→ 이 한때를 내 눈으로 보려고

→ 이 한때를 지켜보려고

 …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목도 = 목격’으로 풀이합니다. 한자말을 다른 한자말로 풀이해요. 그런데, 한국사람은 먼 옛날부터 이런 한자말을 안 썼습니다. 한국사람은 먼먼 옛날부터 ‘보다’라는 낱말을 썼어요. ‘바라보다·지켜보다·살펴보다·들여다보다·쳐다보다’처럼 온갖 낱말을 썼습니다.


  보는 모습과 매무새는 모두 다릅니다. 때와 곳에 따라 다르게 봅니다. 어떻게 보는가를 잘 헤아리면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4.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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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때를 두 눈으로 보려고 나는 그 멀리 북반구에서 남반구까지 내려왔고, 길에서 몇 해를 보냈구나


“이 순간(瞬間)”은 그대로 두어도 될 만하지만 ‘이때’나 “이 한때”로 손볼 수 있습니다. “-하기 위(爲)해”는 “-하려고”로 손보고, “몇 년(年)”은 “몇 해”로 손봅니다. 한자말 ‘목도(目睹)’ 뜻풀이를 살피면 “= 목격(目擊)”으로 나옵니다. 한자말 ‘목격’은 “눈으로 직접 봄”을 뜻합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지켜보려고”나 “두 눈으로 보려고”나 “내 눈으로 보려고”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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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95) 시작 41 : 시작해 볼까


“자, 그럼, 시작해 볼까?” 할아버지가 괭이로 푹, 푹 땅을 팠어요

《마쓰타니 미요코/햇살과나무꾼 옮김-안녕 모모, 안녕 아카네》(양철북,2005) 163쪽


 시작해 볼까

→ 해 볼까

→ 땅을 파 볼까

→ 땅을 팔까

→ 무덤을 팔까

 …



  이 글월에서는 땅을 파는 일을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시작해 볼까”가 아닌 “땅을 파 볼까”라 말해야 올바릅니다. 또는 “자, 그럼, 해 볼까” 하고만 말하면 됩니다.


  요즈음 나오는 웬만한 그림책은 이 글월처럼 “시작해 볼까”와 같은 말을 아주 자주 씁니다. 이제 이 나라 아이들은 예닐곱 살이나 서너 살부터 “시작해 볼까”와 같은 말씨를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한국말이 아닌 ‘시작’이지만, 아주 뿌리 깊이 박히듯 파고드는 ‘시작’입니다. 4347.4.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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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해 볼까?” 할아버지가 괭이로 푹, 푹 땅을 팠어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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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 나의 서울
한정식 지음 / 눈빛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68



내 보금자리를 사진으로 담으면

― 북촌

 한정식 사진·글

 눈빛 펴냄, 2010.4.5.



  내 보금자리를 사진으로 담으면 즐겁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내 보금자리란 무엇인가요. 즐겁게 살아가는 곳이 보금자리입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곳이 보금자리입니다. 꿈을 키우는 곳이 보금자리입니다. 이야기를 속삭이는 곳이 보금자리입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쉬고 지내는 곳은 ‘집’입니다. 집에서 사랑과 꿈이 숨쉬도록 한다면 ‘보금자리’입니다. 이와 달리 ‘주거지’나 ‘주소지’는 잠을 자려고 하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곳을 가리키지만 때로는 ‘부동산’이 될 수 있고 ‘아파트 동호 수’가 되기도 해요.


  집을 사진으로 찍을 때와 보금자리를 사진으로 찍을 때조차 느낌과 마음과 생각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주거지와 주소지를 사진으로 찍으면 어떤 느낌과 마음과 생각이 될까요. 부동산을 사진으로 찍으면? 아파트 동호 수를 사진으로 찍으면?


  1937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한정식 님이 선보인 사진책 《북촌》(눈빛,2010)이 있습니다. 1937년에 태어났으나 열 살 나이라면 1947년이요, 여덟 살 나이에 해방을 맞이했고, 열세 살에 한국전쟁을 만났습니다. 열여섯 살에 전쟁이 끝났고, 스무 살은 1957년입니다.




  한정식 님은 사진책 《북촌》에서 “모두들 공해와 닳은 인심을 들먹이며 시골과 자연을 예찬하지만 내게 있어서 서울은 내 시골이요, 내 자연이다 … 내 어린 날의 서울은 납작했다 … 내 어린 날의 서울 골목은 좁고 길었다. 놀아도 놀아도 해가 지지 않아, 엄마나 조르려고 담장을 손으로 훑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 골목은 얼마나 길었던지. 밤엔 외등도 없어, 어두워서 집에 들어가려면 그 기나긴 골목 어느 모퉁이에 도깨비라도 앉아 기다릴 것만 같아(11∼1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옳습니다. 1990년대 서울이 아닌, 또 1980년대 서울이 아닌, 게다가 2000년대나 2010년대 서울이 아닌 1930∼40년대 서울은 서울이라기보다 시골이랄 수 있어요. 게다가 1940∼50년대 서울은 우물물을 긷고 물장수가 다니며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던 서울입니다. 그무렵에도 행정수도 서울은 여느 시골보다 컸겠지요. 그러나, 그무렵 행정수도 서울은 들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나부끼며 들꽃이 피던 서울입니다.


  한정식 님은 “나는 기록성에 매달리기보다는 예술성에 기울었다. 내 기질 탓이었다. 귀국 후의 첫 개인전도 기록성과는 인연이 먼 〈나무〉였다. 그 전시에 이명동 선생과 함께 오셨던 임 선생이 역시 이명동 선생과 함께 낙담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눈길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5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곰곰이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하는 한정식 님은 왜 ‘나무’를 사진으로 찍었을까요. 그리고, ‘나무’를 찍는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예술’일까요.


  여느 보금자리를 찍는 사진은 무엇일까요. ‘기록’일까요, ‘예술’일까요. 여느 골목동네를 찍는 사진은 또 무엇이라 해야 할까요. ‘기록’일까요, ‘예술’일까요. 한정식 님이 선보인 《북촌》은 ‘기록을 한 책’일까요, ‘예술을 보여주는 책’일까요.




  한정식 님은 어린 날 “언젠가는 학교에 늦어 또 지각했다고 담임선생님께 꾸중 들을 게 뻔해서, 아예 학교를 집어치우고 감투바위에 올라앉아 놀다가 어머니가 정성껏 싸 준 도시락 까먹고 학교 끝날 때쯤 집으로 간 적도 있었다(2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요새는 학교에서 급식을 하니 도시락이 없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도시락을 몰래 까먹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도시락을 들고 학교를 땡땡이친 뒤 나들이를 다닐 수 없습니다.


  한정식 님이 찍은 사진으로 그러모은 《북촌》에는 한정식 님이 누린 어린 나날 이야기가 고스란히 흐릅니다. 어릴 적에 본 바위 빛깔이 흐르고, 어릴 적에 바라본 하늘과 땅과 이웃집과 동무 얼굴이 고스란히 흐릅니다.


  사진책 《북촌》은 사진책입니다. 사진을 찍어서 엮은 책이니 사진책입니다. 이 사진책은 기록물이 아니고 예술품이 아닙니다. 사진책입니다. 왜냐하면, 가회동이든 사직동이든 ‘사라진 모습’을 찍은 사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10년대로 넘어선 오늘날 돌아보면 ‘사라진 모습’이겠으나, 한정식 님이 골목을 거닐던 그때에는 ‘그곳에 고스란히 있는 모습’이었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동네였고, 사람이 사랑을 속삭이는 골목이었습니다.


  어쩌면, 기록을 하려고 사진을 찍었을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기록이 되도록 하려는 뜻에서 사진을 찍었을는지 모릅니다. “며칠 전 내자동 근처를 지나며 잠시 사직공원 쪽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내수동, 그 납작하고 아담하던 내수동 일대가 완전히 사라지고 거기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100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 《북촌》은 여러모로 기록물로 여길 만합니다. 그러면, 참말 《북촌》은 기록물로 바라보면 될 책일까 궁금합니다. 이 책을 기록물로만 바라보면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한정식 님은 “그들이 서울에 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복잡한 교통에 오염된 공기 탓도 있겠지만, 실은 여기 서울에 그들의 살냄새가 배어 있지 않은 탓이리라. 서울 말씨나 말투도 그들의 입에 밴 사투리가 아니고, 들어서는 골목길이 발길에 익숙지 않으니 수십 년을 살아도 서울은 제 고향이 아니요(57쪽).” 하고 이야기해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은 사진입니다. 글은 글입니다. 사랑은 사랑입니다. 평화는 평화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을 사진이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써서 예술을 한다면 예술이지 사진이 아닙니다. 연필로 글을 쓸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만화를 그릴 수 있어요. 연필을 쥐었기에 모두 글이 아니고 그림이 아니며 만화가 아닙니다. 전쟁무기는 평화가 아닙니다. 전쟁무기는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하려고 만들어요.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릅니다. 평화는 평화가 부릅니다. 평화는 평화로 지킵니다. 서로를 사랑하려면 사랑을 해야지 돈을 건넬 일이 아닙니다. 돈으로는 사랑을 못합니다. 돈으로는 돈을 나눌 뿐입니다. 금반지를 끼워야 사랑이 아니고, 구리반지를 끼우니 사랑이 아니라 하지 않습니다. 아무 반지가 없으니 사랑이란 말을 못 쓸까요?


  기록은 언제나 기록일 뿐이고, 예술은 언제나 예술일 뿐입니다. 더 낫지도 않고 더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뿐입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입니다. 골목은 언제나 골목이요, 서울은 언제나 서울입니다. 사람들이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보금자리는 언제나 보금자리다운 빛과 숨결이 흘러요.


  “낙산사처럼 완전히 소실된 뒤에도 옛 모습을 찾아 주는 것만이 전통의 올바른 계승일까. 숭례문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아랫도리가 남았고 숭례문 현판이 용케 살았다고 해서 그것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만이 전통 계승의 유일한 길, 최선의 길이었을까, 의문이 든다(115쪽).”와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읽으며 사진책 《북촌》을 덮습니다. 낙산사는 낙산사이고, 숭례문은 숭례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이대로 느끼거나 깨닫지 않기에 ‘문화재 되살리기’를 합니다. 낙산사와 숭례문은 ‘문화재’일까요?


  국립공원은 무엇일까요. 지리산이나 다도해는 국립공원일까요, 지리산이나 다도해일까요. 국립공원이기 앞서 지리산이나 다도해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국립공원이 된 뒤 지리산이나 다도해는 어떤 곳인가요. 지리산은 늘 지리산이고, 다도해는 늘 다도해예요.


  우리는 무너진 지리산을 되돌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망가진 다도해를 되찾지 못합니다. 새로운 지리산을 가꾸고, 새롭게 다도해를 보살핍니다.




  아마 ‘북촌’이라는 곳은 한정식 님이 처음 태어나 자라던 때 모습을 거의 다 잃었으리라 느낍니다. 게다가 북촌에서 1990년대에 태어난 아이가 있으면, 이 아이가 오늘날 돌아보아도 북촌은 예전 모습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2010년대에 북촌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앞으로 스무 해나 서른 해 뒤에는 무엇을 느낄 만할까요.


  아스라한 옛 이야기를 되찾으려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이 더 뜻있거나 값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러한 사진일 뿐입니다. 추억을 바라면 추억을 찍고, 오늘을 바라면 오늘을 찍어요. 이야기를 바라면 이야기를 찍고, 사랑을 바라면 사랑을 찍습니다.


  내 보금자리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내 보금자리를 누리는 즐거움과 사랑스러움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내 보금자리처럼 내 이웃 보금자리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우리가 함께 누리는 즐거움과 사랑스러움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사진이 사진인 까닭은, 사진은 우리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이야기가 솔솔 피어나는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사진기로는 기록물을 만들 수 있어요. 사진기로는 예술품을 빚을 수 있어요. 그리고, 사진기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4347.4.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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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쥐가 싸운다. 쥐가 사람을 잡아먹고, 사람은 고양이를 시켜 쥐를 잡아먹도록 하고, 쥐를 불태우거나 파묻어 죽인다. 언제 적 이야기인가 하면, 만화책 《고양이mix 환기담 토라지》에 나오는 먼먼 옛날, 또는 먼먼 뒷날 이야기이다. 언제 적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다만, 쥐는 쥐대로 제 삶을 꾸릴 수 없다. 사람은 사람대로 서로 아끼거나 도우며 살지 않는다. 쥐는 지구별에서 살아남으려고 사람을 죽이거나 잡아먹는다. 사람은 지구별에서 혼자 살려고 쥐를 잡아서 족친다. 삶이란 무엇일까. 목숨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웃이란 무엇일까. 만화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만화책을 덮으면 끝이라 할 수 있다.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만화책을 안 보면 나하고는 동떨어진 꿈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러면, 참말 그러할까? 사람은 아름다운 숨결이 되어 지구별을 가꾸는가? 사람은 이 지구별에서 누구를 이웃으로 삼으면서 살아가는가? 사람은 사람끼리조차 서로를 적으로 여기면서 죽이거나 짓밟거나 손가락질하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지 않는가? 4347.4.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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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무라 유미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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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2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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