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읽지 않는다



  길을 내려고 멧자락에 구멍을 내거나 멧자락 따라 기슭을 깎기도 한다. 이렇게 할 수도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길을 내면서 왜 나무는 모조리 베거나 뽑거나 없앨까. 무엇을 할 생각일까. 무슨 생각일까. 한국사람이 쓰는 나무 가운데 한국에서 자란 나무는 거의 없다. 책걸상을 짜든, 책꽂이나 옷장을 짜든, 공사판에서 건물이나 아파트를 지을 때에 받침나무를 삼든, 한국에서 쓰는 나무는 한국에서 자란 나무가 아니다. 한국에서 쓰는 나무는 모두 나라밖에서 사들인다. 한국에서 쓰는 종이도 나라밖에서 자라던 나무를 잘라서 만든 종이일 뿐이다. 한국에서 자라는 나무로 종이를 만들지 못하고, 한국에서 자라는 나무를 베어 집을 짓지 못한다.


  책을 읽거나 쓰는 사람 가운데 나무를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상맡에 앉아 셈틀을 켠 이 가운데 나무를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 나무를 읽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한겨울과 이른봄에도 능금이나 배나 딸기나 포도를 먹으면서, 정작 나무를 읽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나무를 심지도 않으면서 나무를 함부로 쓰는 한국사람이다. 나무를 가꾸거나 돌보거나 사랑하거나 아끼지도 않으면서 나무를 마구 쓰는 한국사람이다. 제 나라 제 땅에서 자라는 나무를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책과 신문만 읽는 한국사람이다.


  나무를 모르는 채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나무가 자라는 흙을 모르는 채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나무가 자라는 흙에서 함께 살아가는 풀을 모르는 채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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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2] 어른읽기

―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치는가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나옵니다. 햇볕이 따사로운 날, 이웃마을과 논둑길을 천천히 달리다가 면소재지로 옵니다. 면사무소에 살짝 들르는데, 큰아이가 면내 초등학교를 보더니 “놀이터 가자!” 하고 외칩니다. 갈까? 큰아이는 혼자 외치고는 혼자 씩씩하게 초등학교 쪽으로 달립니다. 초등학교 울타리를 따라 놀이터가 있거든요. 큰아이가 앞서 달리고 작은아이가 뒤따릅니다. 미끄럼틀을 타고 시소를 탑니다. 너희는 참 잘 노는구나 하고 속으로 말합니다. 아이들 놀이터이기에 나는 아무것도 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여럿 한꺼번에 올라가도 무너지지 않으니 어른도 올라가서 놀아도 되겠지 싶으나, 그래도 아이들 놀잇감을 어른이 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놀이터와 시골 초등학교를 둘러싼 나무를 살펴봅니다.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나무가 있습니다. 정원사가 했을는지 교사가 했을는지 학교지기가 했을는지, 반듯반듯하게 가지치기를 한 나무가 있습니다. 남쪽 바다 가까이 있는 시골에서 흔히 보는 가시나무가 이곳에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가시나무가 가시나무답지 않습니다. 둥그스름하게 가지치기를 했고, 위와 아래에 동그라미를 둘 만든다면서 억지로 가지를 베고 없앤 티가 또렷합니다.


  내 어린 날 다닌 국민학교를 문득 떠올립니다. 그래요, 1980년대에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서도 이처럼 ‘동그랗게 깎은 나무’를 늘 보았습니다. 학교나 관청 같은 건물에 으레 이런 ‘동그랗게 깎은 나무’가 있습니다. 늘 이런 나무를 쳐다보면서 학교를 다니다 보니, ‘나무는 이렇게 동그스름하게 생긴’ 줄 알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동그란 나무’가 끔찍하게 가위질을 받은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가까이에서 가시나무를 들여다보니, 잎이며 꽃망울이며 가지이며 생채기투성이입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적에 ‘동그스름한 모양새가 예뻐 보이도’록 하자니, 이렇게 잎과 꽃망울과 가지 모두 다칠밖에 없습니다. 마치 다 다른 아이들을 똑같은 교실에 집어넣고 똑같은 교과서만 가르치면서 틀에 따라 자르고 늘리고 하는 꼴이랑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늘 평균을 말합니다. 더도 덜도 아닌 평균만큼 하라고 말합니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도 어른들도 잘나지 않고 못나지 않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제 결대로 살아갑니다. 잘 달리는 아이가 있고, 잘 걷는 아이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호미질을 잘 할 테고, 누군가는 낫질을 잘 할 테지요. 누군가는 글을 잘 쓸 테고, 누군가는 밥을 잘 지을 테지요. 누군가는 손놀림이 좋고, 누군가는 발놀림이 좋습니다. 누군가는 키가 작고, 누군가는 덩치가 큽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빛을 뽐내면서 활짝 웃습니다. 다 다른 아이를 다 같은 틀에 끼워맞출 수 없습니다.


  학교에 두는 나무를 죄다 똑같은 틀에 따라 깎고 자르고 다듬는 모습은, 다 다른 아이를 이렇게 깎고 자르고 다듬는 모양새를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몇몇 나무는 가까스로 쭉쭉 뻗으며 자라지만, 웬만한 나무는 우듬지가 없습니다. 머리가 뎅겅 잘립니다. 소나무는 옆으로 눕히고, 이리저리 휘어지게 합니다. 나무가 나무답게 자라지 못하면서 아픕니다. 나무가 나무다움을 잃으면서 앓습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학교를 다닐까요. 아이들 마음에 무엇이 깃들까요. 아이들이 아픈 소리는 누가 듣나요. 아이들이 앓는 모습은 누가 알아채나요.


  어른들은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사회를 바보스레 어지럽히면서 아이들을 죽음터로 내몰지 않나 궁금합니다. 여느 자리 여느 때 여느 마을 여느 학교 모양새가 바로 어른들 모습이지 싶습니다. 여느 자리 여느 때에 억지스러운 틀을 짜기에, 아이들은 제 빛을 잃으면서 ‘틀에 박힌 붕어빵’과 같은 넋이나 몸짓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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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을 바라보면 흙을 배울 수 있다.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을 사랑할 수 있다. 해를 바라보면 해를 즐길 수 있다. 냇물을 바라보면 냇물과 놀 수 있다. 풀을 바라보면 풀과 사귈 수 있다. 그러나, 흙도 하늘도 해도 냇물도 풀도 바라보지 않는다면, 이 모든 숨결과 가까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배우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며 즐기지도 못하는데다가 놀지도 사귀지도 못한다. 보려면 알아야 한다. 알려면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려면 함께 살아야 한다. 함께 살려면 마음을 열고 어깨동무를 해야 한다. 파브르라는 분은 풀을 이녁 숨결과 같이 마주하였기에 풀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파브르라는 분이 풀을 바라보며 쓴 이야기를 오늘날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새로 갈무리한 《파브르에게 배우는 식물 이야기》라는 책이 나온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파브르에게 배우는 식물 이야기
노정임 지음, 안경자 그림, 이정모 감수, 바람하늘지기 / 철수와영희 / 2014년 5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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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31) 존재 131 : 오른팔 같은 존재


그런 시게 씨를 아버지도 귀여워해 주시고, 어느 순간 아버지의 오른팔 같은 존재로 성장했습니다

《탄 카와이(그림),로쿠로 쿠베(글)/김희정 옮김-라면 요리왕 (21)》(대원씨아이,2008) 59쪽


 아버지의 오른팔 같은 존재로

→ 아버지한테 오른팔 같은 사람으로

→ 아버지한테 오른팔 같은 기둥으로

→ 아버지한테 오른팔과 같이

→ 아버지한테 오른팔처럼

→ 아버지한테 오른팔과 마찬가지로

→ 아버지한테 오른팔로

 …



  보기글에 나오는 ‘오른팔’은 빗댐말입니다. 어느 한 사람을 다른 한 사람한테 있는 팔 하나로 빗댑니다. 그러니까, ‘오른팔’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버지한테 오른팔 같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빗대는 말이기에 그대로 빗댐말만 넣으면 됩니다. “아버지한테 오른팔”이라고 적으면 넉넉합니다. 4347.4.29.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런 시게 씨를 아버지도 귀여워해 주시고, 어느새 아버지한테 오른팔로 자랐습니다


 “어느 순간(瞬間)”은 “어느 때”나 “어느새”로 다듬고, ‘성장(成長)했습니다’는 ‘자랐습니다’나 ‘컸습니다’나 ‘되었습니다’로 다듬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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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28) 존재 128 : 사진가의 존재


사진 뒤에 있는 사진가의 존재

《이자와 고타로/고성미 옮김-사진을 즐기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9) 41쪽


 사진 뒤에 있는 사진가의 존재

→ 사진 뒤에 있는 사진가 자리

→ 사진 뒤에 있는 사진가 얼굴

→ 사진 뒤에 있는 사진가 모습

 …


  이 짧은 보기글을 살피면 한자말 ‘존재’를 넣으며 “사진가의 존재”라고 적지만, 첫 대목은 “사진 뒤에 있는”으로 적습니다. “사진 이면(裏面)에 위치(位置)하는”이나 “사진 배후(背後)를 점(占)하는”처럼 적지 않았습니다.


  짧은 글월 앞뒤를 모두 얄궂게 적바림하지 않았으니 반갑다고 해야 할는지, 또는 짧은 글월 한켠을 얄궂게 적바림했으니 안타깝다고 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더 마음을 기울였으면 알차고 싱그럽고 아름답게 마무리가 되었으리라 느낍니다만, 살짝이나마 마음을 쏟아서 한쪽은 알맞고 반갑고 고맙다고 느낍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이 짧은 보기글 앞에서는 ‘있는’을 말하고 뒤에서는 ‘존재’를 말합니다. 따지고 보면 같은 말을 앞뒤에 잇달아 넣은 셈입니다. “사진 뒤에 있는 사진가의 있음”이나 “사진 뒤에 존재하는 사진가의 존재”인 꼴입니다. 이 글을 적은 이는 뒤쪽에 ‘존재’를 넣었으나, 일본말을 한국말로 옮길 때에는 ‘존재’가 아닌 ‘자리’나 ‘얼굴’이나 ‘모습’이어야 잘 어울립니다. 아니면, ‘이야기’나 ‘삶’이나 ‘발자국’이나 ‘발자취’나 ‘그림자’나 ‘그늘’을 넣어야 알맞습니다.


  어쩌면, “사진 뒤에 선 사진가”처럼 더 단출하게 끊어야 옳은 번역이라 하겠습니다. “사진 뒤에 숨은 사진가”나 “사진 뒤에서 기다리는 사진가”나 “사진 뒤에 웅크리는 사진가”나 “사진 뒤에서 빙긋 웃는 사진가”처럼 느낌을 풀어내거나 알맞춤한 꾸밈말을 넣어야 바른 번역이라 하겠습니다.


 사진 뒤에 있는 사진가 이야기

 사진 뒤에 있는 사진가 발자국

 사진 뒤에 있는 사진가 그림자

 …


  한자말 ‘존재’를 쓴 발자국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어느 낱말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동안 쓴 발자국이 짧다 하여도 사람들이 널리 쓰면 두루 받아들여 즐거이 쓰는 일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 낱말이 토박이말이든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딱히 금을 그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요 생각있는 사람이라 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두루두루 쓰는 낱말이라 할지라도 ‘나한테까지 이 낱말이 두루두루 쓸 만한가’를 살피는 눈길을 붙잡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고루고루 쓴다고 해서 나까지 쓸 까닭이 없다’고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씀씀이와 내 말매무새에 걸맞는가’를 짚어야 합니다.


  모든 말은 알맞고 바르게 써야 합니다. 어설프거나 엉터리로 써야 할 말이 아닙니다. 모든 글은 슬기롭고 아름답게 써야 합니다. 얼렁뚱땅 쓰거나 짓궂게 쓸 글이 아닙니다.


  삶이 아름답고 알맞고 알차면서 생각이 아름답고 알맞고 알찬 길로 접어듭니다. 좋은 일도 싫은 일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삶입니다. 어느 하나 삶이 아닌 적이 없으며, 어떠한 좋은 일과 궂은 일도 내 삶자리에서 안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괴로움은 괴로움대로 아름다움이요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아름다움입니다. 어떻게 보면 얄딱구리하게 적바림하고 마는 말마디조차 ‘내 깜냥껏 아름다이 쓴 말’이라 둘러댈 수 있을 텐데, 참말 이렇게 둘러대어야 하는지 조용히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든 힘과 마음과 슬기와 깜냥을 빛내며 우리 삶을 일구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온갖 넋과 기운과 솜씨와 땀을 바치며 우리 생각을 가꾸는지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깊은 얼과 뜻과 사랑과 손길을 담아 우리 말글을 이루어 가는지 톺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어느 만큼 애쓰는가요요. 우리는 얼마나 힘쓰는가요. 우리는 어찌어찌 마음쓰는지요.


 사진 뒤에 드리운 사진가 모습

 사진 뒤에 숨은 사진가 얼굴

 사진 뒤에 놓인 사진가 자리

 사진 뒤에 남긴 사진가 발자국

 사진 뒤에 묻힌 사진가 이야기

 …


  정치를 하는 사람은 옳게 정치를 해야 합니다. 골목동네 구멍가게 할배는 구멍가게 살림을 옳게 꾸려야 합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옳게 문학을 해야 합니다. 버스를 모는 일꾼은 버스를 옳게 몰아야 합니다. 지식을 다루는 교사나 교수나 기자나 지식인은 지식을 옳게 다루어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아이를 옳게 키워야 합니다.


  저마다 제자리에서 제길을 아름답게 걸어야 합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 나한테 주어진 한 번 있는 삶은 아름답게 걸어야 아름답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닙니다. 누가 밀어붙여서가 아닙니다. 나 스스로 내 모든 얼굴과 매무새와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이 모두 아름답고, 곯아떨어진 몸뚱이와 땀흘리는 몸뚱이가 모두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말은 삶입니다. 삶을 어지럽히는 얄딱구리한 걸림돌에 가로막히면 내 말 또한 얄딱구리한 걸림돌한테 늘 가로막히면서 내 뜻과 사랑을 내 말마디로 풀어내지 못할밖에 없습니다. 4342.12.12.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진가 뒤에 있는 사진가 모습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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