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일찍 피어난 붓꽃



  지난해에는 오월 십구일에 우리 집 붓꽃이 피었다. 그러께에는 오월 이십육일에 우리 집 붓꽃이 피었다. 올해에는 오월 십이일에 우리 집 붓꽃이 핀다. 마을에 볕이 훨씬 잘 드는 곳에서는 오월 첫 주부터 붓꽃이 활짝 피었다. 아마 사월 끝자락에 피어난 붓꽃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 세 해를 돌아보니 붓꽃이 피어난 때가 이레씩 빠르다. 이런 빠르기라면 이듬해에는 오월 오일에 붓꽃이 피어나려나.


  해가 갈수록 더위가 길다. 해가 갈수록 시골이 줄고 도시가 늘어난다. 해가 갈수록 고속도로는 늘고, 발전소도 늘며, 골프장과 공장과 관광단지가 늘어난다. 숲이 늘어나는 일이 없다. 송전탑이 줄어드는 일이 없다. 고속도로를 줄이는 일도 없고, 자동차를 줄이려는 움직임조차 없다. 기름집을 줄이지 않는다. 가게를 줄이지 않는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큰 건물을 치운 뒤 숲으로 꾸미려는 움직임도 없다. 오월꽃이 오월이 아니라 사월에 핀다면, 그야말로 날씨가 뒤틀린다는 뜻인데, 꽃을 마냥 즐겁게 바라볼 수만 없다.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빗물에 떨어진 후박꽃



  엊그제 비가 드세게 몰아치면서 후박꽃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졌다. 마당은 온통 후박꽃투성이가 된다. 수천 송이가 떨어졌을까. 아마 수천 송이가 됨직하다. 어쩌면 만 송이가 넘을는지 모른다. 그윽한 냄새를 나누어 주던 후박꽃이 이렇게 많이 떨어지니 서운하지만, 후박나무로서도 꽃을 어느 만큼 떨구어야 열매를 알맞게 맺으리라 본다. 감나무도 감꽃을 엄청나게 떨구지 않는가. 바야흐로 이레쯤 지나면 감꽃이 여물 듯한데, 감꽃 피는 밑에서 감꽃을 하나하나 주워서 먹을 생각을 하니 침이 고인다.


  마을 샘터를 치울 적에 쓴 플라스틱 그릇을 평상에 두었다. 비가 지나고 난 뒤 빗물이 고였고 후박꽃이 이 그릇에 퐁퐁 떨어졌다. 그릇에 고인 물을 비우려다가 한동안 들여다본다. 후박나무에서 떨어져 빗물에 잠긴 꽃송이가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따라 가볍게 물결이 일면서 하늘하늘 움직인다.


  옛날에는 어느 집에서나 이런 모습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보며 살았겠지. 흙마당 한쪽에 빗물이 고이면서 꽃송이가 그런 둠벙이나 웅덩이에 떨어졌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내 어릴 적에도 사월이나 오월에 비가 드세게 몰아친 이튿날이 되면, 곳곳에 생긴 웅덩이에 꽃잎이 수북하게 떨어져서 새삼스럽게 고운 빛을 보여주던 일이 떠오른다.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빨랫줄과 제비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제비가 빨랫줄에 내려앉아서 노래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돌아본다. 우리 식구가 안 보거나 못 보았을 적에 빨랫줄에 앉았을는지 모른다. 아마 그렇겠지. 부엌으로 가다가 마루에서 바깥을 내다본다. 가까이에서 제비 노래가 들려 내다보니 빨랫줄에 앉았다. 한참 그대로 서서 제비 몸짓을 들여다본다. 제비는 시골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살아가지만, 막상 사람이 가까이 다가서면 휙 날아간다. 새끼 제비는 막 날갯짓을 익힐 무렵에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휙 날아가지는 않는다. 날갯짓이 아직 서투니 그렇기도 할 텐데, 어미 제비와는 달리 사람을 물끄러미 구경하곤 한다.


  제비가 하늘을 가르며 날 적에는 날개를 활짝 펼친다. 빨랫줄에 앉아서 깃을 여미는 모습을 바라보니 몸집이 참 작다. 작은 몸짓이지만 날개를 펼치면 제법 커 보이고, 빠르면서도 홀가분하게 하늘을 가로지르는구나. 제비는 읍내나 면소재지에도 집을 짓고, 예전에는 도시에서도 살았지만, 이제는 느긋하게 지낼 만한 시골마을이 무척 드물다. 우리 집처럼 풀도 돋고 나무도 자라서 벌레가 꼬이고 나비가 깨어나는 데가 아니라면 살기가 만만하지 않을 테지.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그림 읽기

2014.5.12. 큰아이―긴머리 되고 싶어



  큰아이는 긴머리가 되기를 바란다. 왜 긴머리를 바랄까. 만화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여자는 으레 긴머리를 나풀나풀 날리기 때문일까. 긴머리가 되고 싶은 큰아이는 언제나 제 모습을 길디긴 머리카락으로 그린다. 머리카락이 땅바닥에 닿도록 길게 그린다. 생각해 보면, 우리 겨레뿐 아니라 지구별 거의 모든 겨레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다. 사내와 가시내를 머리카락으로 가르지 않았다. 누구나 긴머리였고, 긴머리를 땋거나 엮으며 살았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버지 그림놀이] 아이 그림에 마무리 (2014.5.12.)



  큰아이가 그림을 그린다. 작은아이와 나는 별바라기 놀이를 마당에서 한다. 한참 놀다가 들어오니, 큰아이가 그림 하나를 그린 뒤, 바탕에 무언가 더 그리려다가 그만두고 새로 그림을 더 그린다. 큰아이가 그리다가 그친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대로 둘 수도 있지만 살짝 허전하다. 그래서, 하늘에 구름만 있기보다, 아이가 선 땅에 풀이 푸릇푸릇 돋아 싱그러운 바람이 불기를 바라면서 여러 가지 풀을 그려 넣는다. 풀을 그린 뒤 나무를 그릴까 하다가 꽃을 그리기로 한다. 큰아이가 묻는다. “왜 꽃을 그려? 왜 꽃을 많이 그려?” “벼리 마음에 언제나 꽃내음이 맑게 흐르라고.” 꽃을 다 그리고서 구름에 무늬를 입힌다. 구름에 무늬를 다 입히고는 하늘을 알록달록하게 바른다. 온갖 빛이 골고루 어우러진 아름다운 삶이 되기를 바라면서.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