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노래 13. 나는 마실순이



나는 마실순이

예쁜 동생이랑

마실 나선다.

큰아버지 뵈러 간다.

버스 타고 숲을 지나지.

이웃마을 냇물 들판 지나고

언제쯤 닿을까 손꼽다가

깜빡 잠들기도 한다.

김밥 두 줄 먹으며

까르르 노래하면서

재미난 마실길.



2014.3.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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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7. 즐겁게 찍는다



  곁에 있는 사진을 찍는 길은 하나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게 찍자’입니다. 시골에서 살든, 도시 한복판에서 살든, 지옥철을 아침저녁으로 타야 하든, 우람한 송전탑 그늘 둘레에서 일을 하든, 자전거로 나들이를 다니든,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느라 부산하든, 아파서 끙끙 앓으며 드러눕든, 비행기를 타고 퍽 먼 나라까지 찾아가든, 언제나 즐겁게 찍으면 됩니다.


  물 한 잔을 마실 적에도 즐겁게 마실 일입니다. 밥 한 술을 뜨더라도 즐겁게 먹을 일입니다. 말 한 마디를 나눌 적에도 즐겁게 나눌 일입니다. 글 한 줄을 적어 편지를 띄울 적에도 즐겁게 쓸 일입니다. 삶을 이루는 바탕은 늘 ‘즐거움’입니다. 사진을 이루는 밑틀은 늘 즐거움입니다.


  사명이나 목표나 책임이나 의무나 취미나 사상이나 기록이나 패션이나 직업이나 다른 여러 가지를 들이대면서 사진을 찍지는 못합니다. 직업이 요리사이기에 요리를 한다고 하면, 마스터셰프라는 이름이 붙은 분이 지은 밥조차 그리 맛있지 않습니다. 세계에 손꼽히는 사진가라는 이름이 있더라도 직업이 사진가이기에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이녁이 찍은 사진조차 그리 대수롭지 않으며 재미있거나 아름답거나 반갑지 않습니다.


  교사라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르칠 적에 즐겁기에 가르치고, 가르치다 보니 어느새 교사라고 둘레에서 말할 뿐입니다. 사진가라서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 즐거우니 찍고,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사진가라고 둘레에서 말할 뿐입니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사진감을 하나 골랐다면, 내 사진감을 즐겁게 마주하면서 즐겁게 누립니다. 골목길을 사진감으로 골랐으면, 골목마실을 즐깁니다. 골목이웃과 즐겁게 인사하고, 골목놀이를 즐겁게 바라보다가 함께하기도 하며, 골목집에서 가꾸는 골목꽃과 골목나무를 즐겁게 마주하면 됩니다. 사람을 사진감으로 골랐으면, 나부터 꾸밈없이 바라보고 곁에 있는 식구를 스스럼없이 마주하면서 우리 둘레 모든 이웃을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면 됩니다.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모두 이웃이자 벗입니다.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누구나 내 사진감으로 오순도순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즐거운 마음이 아니라면 사진을 자꾸 억지스레 만들고야 맙니다. 즐거운 눈빛이 아니라면 사진을 끝끝내 어거지로 뒤틀거나 비틉니다. 이른바, 속임수 사진은 즐거운 마음이 아닐 때에 나타납니다. 보도사진 가운데 참을 숨기고 거짓을 내세우는 사진 또한 즐거운 눈빛이 아닐 때에 나타나요. 스스로 즐거운 사람이 거짓말을 할 까닭이 없고, 거짓사진을 만들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즐거운 사람이 사진에 사랑과 꿈을 싣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즐겁지 않기에 자꾸 ‘만들려’ 할 뿐입니다. 4347.5.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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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97) 기승


뉴욕에 대한 이 글은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48년 어느 여름날 썼다

《엘윈 브룩스 화이트/권상미 옮김-여기, 뉴욕》(숲속여우비,2014) 19쪽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 무더위가 한창 누그러들지 않던

→ 무더위가 한창 들끓던

→ 무더위가 한창 들볶던

→ 무더위가 한창이던

 …



  한자말 ‘기승’은 한국말사전에 네 가지 나옵니다. 먼저 ‘奇勝’이고, “(1) 기묘하고 뛰어난 경치 (2) 뜻밖에 얻은 승리 (3) [북한어] 기묘한 꾀를 써서 얻은 승리”라 합니다. 다음은 ‘氣勝’이며, “(1) 성미가 억척스럽고 굳세어 좀처럼 굽히지 않음 (2) 기운이나 힘 따위가 성해서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음”이라 합니다. 그리고 “起承”은 “[문학] 한시에서, 기구(起句)와 승구(承句)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 하며, ‘騎乘’은 “(1) = 기마(騎馬) (2) 말을 타는 일과 수레에 오르는 일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 합니다.


  이 한자말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으니 한국말사전에 실릴 만하지만, 어느 모로 보면 한자를 쓰는 사람한테만 쓸모가 있습니다. 한자를 안 쓰는 사람한테는 쓸모가 없으며, 알아들을 만하지 않아요. 이런 한자말을 쓸 일이 없기도 합니다.


  ‘기묘(奇妙)하다’는 “생김새 따위가 이상하고 묘하다”라 해요. 기승(奇勝)은 기묘로 가고, 기묘는 이상하다와 묘하다로 가요. 그러면, ‘이상’과 ‘묘’는 또 어디로 갈까요? 왜 한자말은 이렇게 돌림풀이가 되어 다른 한자말로 이어질까요? 처음부터 또렷하고 쉽게 한국말로 쓰면 넉넉하지 않을까요?


  말을 타는 일을 ‘기승’이라 할 까닭이 없이 ‘말타기’라 하면 됩니다. 한시 이야기는 한문학사전에서 다룰 노릇이고, 한국말사전에서는 빼야 올바릅니다. 굽히지 않거나 누그러들지 않는 모습을 가리키는 한자말 ‘氣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4347.5.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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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다룬 이 글은 무더위가 한창 들끓던 1948년 어느 여름날 썼다


“뉴욕에 대(對)한”은 “뉴욕을 다룬”이나 “뉴욕을 이야기하는”으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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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2부
김은성 글.그림 / 새만화책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40



우리 어머니는 어디에서 살았을까

― 내 어머니 이야기 2부

 김은성 글·그림

 새만화책 펴냄, 2014.3.20.



  며칠 앞서 읍내마실을 갔다가 찜통더위에 몹시 애먹었습니다. 고작 오월 십육일인데 이렇게 덥나 싶더군요. 군내버스를 타고 창문을 열며 바깥바람을 쐬다가 생각합니다. 시골마을로 돌아와 집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합니다. 마을에 있는 시골집에서는 덥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마 들에 있으면 덥다고 느낄 만할 테지만, 나무가 우거지고 풀이 수북한 곳에 있으면 더위를 못 느낍니다. 나무가 없거나 풀을 찾아보기 힘든 데에 있으면 끔찍하게 덥습니다.


  읍내나 면소재지에 가면, 이곳에서 나무를 보기란 어렵습니다. 읍내도 면소재지도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꼼꼼하게 길바닥을 메꿉니다. 논이나 밭 옆을 지나가지 않고서야 읍내에서도 흙을 구경하지 못합니다. 늘어나는 자동차 때문에 빈터와 숲을 밀어 주차장으로 삼습니다. 도시에서는 몇 억이나 수십 억이나 수백 억까지 들여 시내 한복판에 공원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정작 시골에서는 푸른 숲이나 우람한 나무를 함부로 베면서 자동차를 세우려고 용씁니다.



- “어디미 큰 집 한 채 부순 나무를 가지와서 집을 지었어. 그런 나무라야 나중이 뒤틀리지 않는다고. 물론 새 나무도 섞어서 쓸 데는 쓰고.” (12쪽)

- “학교 끝나기만 하면 집으로 달아오고. 어떤 때는 동네 사램들이 부러 귀경을 와. 나중이 집 옆이 심은 꽃낭구랑 자라이까 집이 더 멋있어. 봉이나무에 봉이가 열면 따 먹고.” (20쪽)




  선풍기나 에어컨을 튼대서 더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집 한쪽이나 방 한켠에 차가운 바람이 불도록 한대서 더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집 안팎이 두루 시원해야 안 덥습니다.


  집 안팎이 두루 시원하려면 어떠해야 할까요. 풀과 나무가 있어야 할 테지요. 나무만 있어서는 시원하지 않을 뿐더러, 나무만 있으면 나무도 몹시 힘듭니다. 나무는 뿌리를 마음껏 뻗을 만큼 너른 흙땅을 누려야 하고, 나무뿌리가 바깥에 툭 불거지지 않도록 온갖 풀이 알맞게 자라서 흙을 덮어야 합니다. 풀이 없는 흙은 빗물에 쉽게 쓸릴 뿐 아니라, 사람이 밟고 지나가면서 흙이 깎입니다. 풀이 있는 흙은 빗물에 좀처럼 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이 밟고 지나가도 풀만 누웠다가 일어납니다. 풀이 밟혀 못 일어나도 풀은 흙을 단단히 움켜쥐기에 나무뿌리가 흙땅에 튼튼히 뿌리내리도록 돕습니다.


  풀과 나무가 있어 흙을 알뜰히 돌보고, 풀과 나무가 햇볕을 듬뿍 받아들이면서 물기 머금은 바람을 내뿜을 때에 비로소 시원합니다. 그러니까, 시골 읍내라 하더라도, 또 시골 면소재지라 하더라도, 오늘날은 도시와 똑같이 죄다 아스팔트에다가 시멘트이고, 나무까지 없으니 무척 후덥지근합니다.



- “잔치가 무시기 좋은 일로 하는 기 아이라. 군인 끌려 나가면 살아 돌아올지 모르이까 하는 거야. 군인 끌려 나가는 집이서 잔치를 하는 거야 … 잔치는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해.” (36∼37쪽)

- “이 사램 말하는 거를 봅세. 우리가 자식 혼인시기는 거, 자식이 맘이 있는 디 보내야지 떡을 보고 혼인을 시기겠슴메. 싹 가지고 가기오.” (66쪽)





  나무가 없으면 더위에 지치고, 풀이 없으면 더위에 치입니다. 나무와 풀이 있으면 그늘이 지고 빈 자리가 없어 남새를 얻기 어렵다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남새도 곁에 풀이 잘 자라면 한결 싱그럽고 맛있습니다. 들에서 돋는 풀이란 모두 나물이기도 합니다. 굳이 풀을 죽이거나 뽑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더구나, 먹는 풀이 아니면, 옷을 짓거나 새끼를 꼴 적에 쓰는 풀이기 마련입니다. 한겨레뿐 아니라 다른 겨레도, 풀에서 실을 얻어 옷을 지었어요. 어느 겨레이든 풀옷을 입고 풀집을 지었습니다. 흙밥을 먹고 흙집에서 살았습니다.


  풀옷을 입고 풀집을 지으며 풀밥(또는 흙밥)을 먹으면 더위를 모릅니다. 풀을 만지고 흙을 만지며 나무를 쓰다듬으면 더위도 추위도 모릅니다. 풀과 나무가 아름답게 자라지 못하는 곳이 덥거나 춥습니다. 풀과 나무가 사랑스레 뿌리내리지 못하는 자리가 고단하면서 메마릅니다.


  살며시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어요. 사막이나 북극이나 남극은 어떠한가요.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해요. 왜 더울까요. 왜 추울까요. 풀과 나무가 없으니 덥거나 추워요. 왜 고단할까요. 풀이 없거든요. 왜 힘들까요. 나무가 없거든요. 시골이든 도시이든 숲을 가꾸고 들을 보살펴야 즐겁게 살 만한데, 새마을운동이 아니었어도 우리 사회가 숲이랑 들을 함부로 망가뜨리기에 어느 곳에 가더라도 덥거나 춥구나 하고 느낍니다.



- “그 병신 같은 사람들이 게으름 피우고 놀고먹던 사람들이야?” “우리 고향이서는 놀고먹는 사램이 없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뼈 빠지게 일하지.” “엄마! 뼈가 빠지게 일해도 자기 땅이 없으니까 못 살고 못 배우고 그런 거지. 그런 사람에게 땅을 줘야 맞는 거 아냐.” “그거야 그렇겠지. 땅이 자기 땅이면 먹고는 살 수 있지. 그래도 그렇지. 땅을 뺏더라도 절반이나 뺏던가 해야지 몽땅 뺏는 건 말도 안 되지.” (112∼113쪽)

- “이북이 있는 식구들도 다른 나라에서 다 만난다는데 우리 숙자는 왜, 왜, 이남이 있는 언니가 자기를 찾지도 않나 그럴 같애. 지금 형편은 이런 줄도 모르고 ‘언니가 잘사는데 나를 찾지도 않는구나’ 그럴지 몰라. 만나면 좀 도와줘야 하는데, 우리 살기도 힘들고, 그래도 만나 보깁어.” (119쪽)





  김은성 님이 그린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새만화책,2014) 둘째 권을 읽습니다. 김은성 님을 낳은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입니다. 김은성 님네 어머니는 북녘사람입니다. 북녘에서 살다가 남녘으로 와서 살아갑니다. 이 만화책에는 어머니가 북녘에서 즐겁게 누리던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이 나옵니다.


  첫째 권에 이어 둘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헤아리는데, 늙은 어머니는 이녁이 어릴 적을 돌아보면서 ‘괴롭거나 아프거나 슬픈’ 일 못지않게 ‘즐겁거나 웃거나 사랑스러운’ 일을 조곤조곤 떠올립니다. 웃고 울며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노래하다가 가슴을 찢으며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 “바다가 밤인데도 어둡지 않아. 달빛이 비추더라고. 맘이 탁 트이는 것도 같고 아인 것도 같고. 이 생각 저 생각 드더라고.” (154쪽)

- “그렇기 오래 안 가다가 친정집이 가는데, 우리 아버지가 안막 앞이 우리 논이서 추새(일)를 하다가 우리를 보더이 손을 논물이 씻고 나오더라구.” (159쪽)



  늙은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읽는데, 예전 사람들이 더위나 추위를 그닥 많이 타지는 않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꼭 김은성 님네 어머니를 바라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네 식구가 살아가는 시골집을 떠올려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시골이나 창호종이 한 장만 바른 문으로 살았어요. 샤시문이고 무슨 문이고 이중창이고 없었습니다. 창호종이 한 장을 바른 문 안쪽이 바로 방이요 살림터입니다. 지난날에는 전라남도 바닷가에 있는 마을조차 얼음이 꽝꽝 얼었다고 해요. 영도 밑으로 열이나 스무 금까지 내려가기도 했다는데, 다들 잘 살았어요. 오리털이니 무슨 털이니 하는 두꺼운 옷이 없었어도 다들 잘 살았습니다.


  어떻게 살았을까요? 어떻게 추위를 견디었을까요?


  아무래도 흙이 있고 풀과 나무가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느껴요. 나무가 우거진 곳에 바람이 모질게 불지 않습니다. 나무와 풀이 푸르게 덮인 곳은 갑자기 뜨거워지지 않을 뿐 아니라 따순 기운이 쉬 식지 않습니다. 둘레 삶터가 알맞을 뿐 아니라, 집을 나무와 흙으로 지어요. 집 안팎이 무척 좋습니다. 온도계로 따져서 ‘대단한 추위’라고 말할 일이 없습니다. 온도계는 생각할 일이 없어요. 겨울은 겨울답게 옷을 한 꺼풀 껴입습니다. 여름은 여름답게 물을 만지고 바람을 쐬면서 지냅니다.





- “시숙이 밥을 차려 주니 자시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웃고. 식구 떼 놓고 왔는데도 집이 와서 그런가 좋아하더라구.” (183쪽)

- “젊었을 때 그 혈기 있던 시절 마늘대가리가 불기불기하고 툭툭 터지고 석 접이나 되는 꿈을 꿨는데 깨나니까 기분이 왜 또 이러니야. 내 고향집이 한 번 가 보깁다. 그 집에 우리 형부가 살고 있었다는데.”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어?” “60년이 지나니까 더 나. 만약 고향이 간다면 모를 파헤쳐 뼈를 만지 보면 좋겠어. 우리 나고(낳고) 키운 어머이.” (197쪽)



  만화를 그린 분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내 어머니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곁님 어머니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이 나라 모든 어머니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우리들 어머니라면, 웬만한 분들은 시골에서 태어나 흙을 만지며 자라셨을 테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더라도 시골 비슷한 터전에서 지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라면 거의 모두 흙과 풀과 나무하고 벗삼으면서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을 누리셨겠지요.


  우리 어머니는 모두 시골빛을 먹으며 활짝 웃던 숨결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저마다 시골내음을 마시며 맑게 노래하던 넋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다 함께 시골꿈을 꾸면서 즐겁게 어깨동무하던 사이입니다.


  할머니가 된 어머니들이 왜 샹냥하거나 고울는지 생각해 봅니다. 할머니가 된 어머니들이 이녁 어릴 적에 어떤 삶터를 누리면서 마음속에 고운 빛을 품을 수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모든 사람은 즐겁게 살아가면서 씩씩하게 자라 할머니(또는 할아버지)가 됩니다. 이 땅 아이들은 앞으로 즐겁고 씩씩하게 크면서 할머니(또는 할아버지)로 삶길을 걷습니다. 다들 고운 이야기 한 자락을 가꾸면 좋겠어요. 모두들 고운 노래 한 가락을 부르면 좋겠어요. 4347.5.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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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입히는 어버이



  우리 집 작은아이는 언제나 누나 옷을 물려입는다. 큰아이는 가시내이고 작은아이는 머스마이지만, 두 아이 옷을 나누어 입혀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가만히 보면, 어른이 입는 옷도 이와 같다. 굳이 가시내 옷과 머스마 옷을 갈라야 하지 않는다. 그냥 입으면 된다.


  나도 그동안 헌옷으로 가시내 옷을 꽤 많이 주워서 입었다. 신문배달을 하며 혼자 살 적에, 아파트에 신문을 돌리다 보면, 아파트에 으레 있던 헌옷 모으는 통을 뒤져서 입을 만한 옷을 가져왔다. 나도 입고 지국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형도 입는다. 아파트에 신문을 넣는 다른 신문사 일꾼도 저마다 헌옷통을 뒤져서 옷가지를 챙긴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입던 고운 옷을 저도 입고 싶다. 그런데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 고운 옷, 바로 치마를 저한테 입혀 주려 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네 살 작은아이는 울며 불며 떼를 쓰면서 누나 치마를 빼앗으려 한다. 누나가 안 입는 작은 치마를 작은아이한테 건넨다. 작은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빙그레 웃는다. 누나 치마를 입고는 좋아서 방방 뛴다.


  고운 빛이 알록달록 사랑스러운 치마이니, 작은아이가 입고 싶어 할 만하다고 느낀다. 색동저고리를 가시내만 입는가, 사내도 함께 입는다. 치마이고 아니고를 떠나, 아이들로서는 무지개와 같이 고운 옷을 입으며 고운 마음이 되고프리라 느낀다. 4347.5.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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