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교사들은 아이들한테 일기를 쓰라고 시킨다. 그러면, 교사는 스스로 일기를 쓸까? 아이들이 일기를 쓴다면,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도 일기를 쓸까? 일기는 왜 쓰는가. 일기는 누가 쓰는가. 아이들이 일기를 쓰면서 무엇인가 배우거나 느끼면서 삶을 가꾸는 밑힘을 기른다면, 어른들도 다 함께 일기를 쓸 노릇이라고 느낀다. 《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는 교사 장주식 님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겪거나 느낀 일을 적바림한 ‘교사 일기’이다. 자그마한 학교에서 조그마한 숨결들을 마주하면서 헤아린 생각과 사랑을 적은 글이다. 도톰한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한다. 교사들이 공문서나 보고서를 쓰지 말고 일기를 쓰면 참 좋겠구나. 교사한테 공문서나 보고서를 쓰라고 시키는 행정이 사라져야 학교에서 아이들이 기지개를 켤 수 있겠구나. 교사부터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야 아이와 함께 삶을 즐겁게 배우면서 가르치고 나누는 이야기를 누리겠구나. 4347.5.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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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 장주식 선생님과 하호분교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장주식 지음 / 철수와영희 / 2008년 1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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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 조그맣게 돌나물꽃 (돗나물꽃·돈나물꽃)



  돌나물은 사월로 들어설 무렵부터 외가닥 줄기가 곧게 뻗으며 통통해지다가, 오월로 접어들면서 꽃대를 여러 가닥 내놓는다. 여러 가닥으로 뻗은 꽃대에서 저마다 꽃망울을 맺는데, 꽃받침으로 다섯 가닥이 나오고 꽃잎이 노랗게 다섯 나오며 노란 꽃잎 한복판에 또 다섯 갈래로 자그마한 꽃속이 생긴다. 꽃술도 다섯 가닥으로 뻗는다.


  먼 데에서 바라보면 노란 점이 알록달록 눈부시다. 가까이로 다가서면 앙증맞은 꽃잎이 땅으로 내려온 별처럼 반짝인다. 돌나물을 뜯다가 노란 별님 같은 꽃송이를 한참 바라본다. 우리 식구는 이제껏 노란 별을 먹었구나. 앞으로도 노란 별을 몸으로 받아들여 노랗게 짓는 웃음으로 노래를 부르겠구나. 4347.5.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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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5-20 12:47   좋아요 0 | URL
돌나물꽃이 이렇게 생겼군요.^^
너무 이쁩니다!!

파란놀 2014-05-21 05:59   좋아요 0 | URL
돌나물은 꽃이 피어도 꽃까지 다 먹어요.
작은 꽃도 무척 싱그러우면서 맛나답니다~
 
새로운 독재와 싸울 때다 -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이야기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2
김인국.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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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2



민주선거로 독재자를 뽑는 나라

― 새로운 독재와 싸울 때다

 김인국·손석춘 이야기

 철수와영희 펴냄, 2014.5.18.



  한국말사전에서 ‘독재(獨裁)’를 찾아보면 “특정한 개인, 단체, 계급, 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함”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다시 ‘독단(獨斷)’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남과 상의하지도 않고 혼자서 판단하거나 결정함”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이승만이나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이들은 틀림없이 독재입니다. 이들 뒤를 이은 김영삼이나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이는 어떠할까요. 그리고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이는 어떠하나요. 한국 현대사에서 대통령 자리에 선 이들 가운데 너른 목소리를 귀여겨들으며 정치를 펼친 이는 몇이나 될는지요.


  더 헤아려 보면, 조선 왕조도 독재라고 일컬을 만합니다. 양반이라는 신분으로 계급을 나누던 사회도 독재라고 할 만합니다. 신분과 계급에 따라 질서를 세우는 정치나 사회란 틀림없이 독재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으면서 억누르거나 짓누르는 모든 틀은 독재입니다.



.. 교회가 바라는 바는 오직 한 가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투거나 미워하는 일 없이 다정하게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제발 아프게 때리고 찌르고, 뜨겁게 지져대지 말고 서로 도우며 착하게 살자는 것뿐입니다 … 원래 개도 안 물어 가는 물건이 돈인데, 돈 많은 사람들은 돈 때문에 “박근혜! 새누리!” 그러고, 돈 없는 사람들도 돈 때문에 “박근혜! 새누리!” 그런단 말입니다 … 1970년대에는 신부들만 해도 참 씩씩하고 자유로웠어요. 그런데 가난하던 교회 살림에 여유가 생기면서 신부들도 잘 안 움직이거든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겠어요? 돈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  (5, 80, 81쪽)



  지난날에는 씨받이로 독재정권을 물려주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사람들한테 ‘임금님 바라보기’만 시켰습니다. 오늘날에는 민주선거로 독재자를 뽑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한테 ‘대통령 바라보기’를 시킵니다.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선거를 할 수 있기에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선거하는 곳에 몽둥이나 총칼을 쥔 군인·경찰이 없으면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있는 이 나라가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이웃나라에서 핵발전소가 터지며 끔찍한 일이 벌어져도 핵발전소를 멈추지 않을 뿐 아니라, 새 핵발전소를 더 지으려 하는 이 나라 정치와 경제와 사회 얼거리가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주권이 사람들한테 있으니 ‘민주’라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주권이 여느 사람들한테 있지 않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주권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나 이런 권력자한테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주권이 재벌한테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권이 건물임자나 집임자나 땅임자한테 있습니다. 여느 사람이 누리는 주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더더구나 한국에서는 주권을 기자와 지식인과 작가와 교수가 거머쥐기도 합니다.



.. 그 사람들은 고엽제 피해가 우리 때문에 생긴 줄 아는 걸까요? 우리가 자기들 월남에 보내고, 자기들 머리 위에 살인적인 고엽제를 마구 뿌려서 그런 몹쓸 불행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물어 보고 싶어요 … “정의구현사제단은 사제복을 벗어라!” 이게 단골 구호예요. 그러면서 자기들은 여태껏 군복을 안 벗어요. 팔십 노인들이 말입니다. 제대한 지가 벌써 오십 년이 넘는데 … 사람들이 지금 선거부정을 몰라서 안 움직이는 게 아닐 겁니다. 저마다 크고 작은 욕망 때문에 안정을 희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선거에서도 나타난 결과입니다. 자기 작은 이익만 지키면 내어줄 수 있는 것 다 내어주겠다는 게 지금 민심인데 저희가 그런 마음에 일일이 보조를 맞출 순 없어요 ..  (14∼15, 15, 23쪽)



  한국에서 농사짓는 시골사람한테 주권이 없습니다. 농사꾼이 농협에 쌀과 곡식과 열매를 안 팔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농사꾼이 시골에서 농약이나 비료나 항생제를 안 쓸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농사꾼이 시골에서 비닐과 기계를 안 쓸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공장 일꾼이나 사회 일꾼한테 주권이 없습니다. 공장 일꾼인 노동자가 파업을 할 권리가 없습니다. 노동자가 버스를 멈추거나 철도를 멈출 권리가 없습니다. 노동자가 가게를 닫거나 발전소를 멈추거나 전화국을 닫거나 수돗물을 끊거나 회사를 쉴 권리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아이들한테 주권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안 갈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갈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대입시험 지옥에서 벗어날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교과서를 외우지 않아도 될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과 인터넷게임에서 홀가분할 권리가 없습니다.



.. 함부로 살아도 제 이익만 지킬 수 있다면 된다는 마음이 너무나 커졌어요 … 사제들은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보다, 대중이 들어야 할 말을 해야 하는 운명이라서 너무 앞질러간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 우리의 일차 임무는 대선 무효, 대통령 해고를 선언하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든 권좌를 고집하든 그것은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각자 심판받을 일입니다 … 대통령이든 시민이든 나중에 역사의 법정 앞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 백성들이라고 힘없이 당하는 일방적인 피해자이기만 하지 않다는 거죠. 권력자들의 악행을 보았으면 대들어야 합니다 … 그런데 사람들이 진실을 들어도 그것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아요. 이를테면 박정희가 친일을 한 사실, 애꿎은 사람들을 죽인 사실, 수많은 성적인 탈선을 한 사실, 뭐 이런 사실을 얘기해 줘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요 ..  (39, 40, 82쪽)



  민주선거로 독재자를 뽑는 나라입니다. 민주선거로 독재자가 태어나는 나라입니다. 대통령은 청와대에 갇힌 채 바깥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 달셋방에서 지내며 이웃을 사귀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시장이나 군수가 다세대주택에서 층간소음을 겪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법관이나 변호사가 저잣거리에서 저잣마실을 하고는 집에서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줄까요? 집에서 빨래는 누가 할까요? 집에서 청소는 누가 할까요? 어린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척척 집어넣기만 하면 될까요?


  마을살림은 어떻게 돌보아야 할까요? 두레나 품앗이란 무엇일까요? 경제성장이나 경제발전이란 무엇일까요? 4대강 사업은 무엇을 하려는 짓이었나요? 시화호와 새만금은 어떤 지식인과 교수가 앞장서서 밀어붙인 짓이었나요?


  쌀개방이나 자유무역협정을 할 적에, 농사꾼 목소리를 한 마디라도 담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새마을운동을 벌일 적에, 시골사람 목소리를 한 마디라도 들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시골 젊은이를 죄 도시로 빼앗아 공장 일꾼으로 값싸게 부려먹은 사회와 정치와 교육 얼거리는 누구 머리로 지었는지 궁금합니다.



.. 지금 염수정 추기경은 복음이 갖고 있는 현실적이고도 사회적인 측면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 만일 추기경이 바라는 대로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교황이 개탄해 마지않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무관심의 세계화에 풍덩 빠지고 말 겁니다 … 송구스럽습니다만 추기경은 현실을 제대로 보시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속은 썩었는데 껍데기만 보고 좋다고 하시는 거지요 … 새 교황이 나왔지만 구태에 찌든 사람들은 여전히 곳곳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 교회 지도자들의 언어가 이상한 별나라에서 들려오는 말처럼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 글 쓰고 말하는 언론인들도 사람인데 왜 무섭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언론인의 펜은 두 마리의 개를 감시하라는 펜이지 아부하라는 펜이 아닙니다 ..  (47, 49, 54, 64, 94쪽)



  《새로운 독재와 싸울 때다》(철수와영희,2014)라는 책을 읽습니다. 옥천성당지기인 김인국 님하고 대학교수 일을 하는 손석춘 님이 주고받은 이야기로 엮은 책입니다. 성당지기는 성당에서 사회를 읽고, 성당 바깥으로 나와서 사람을 읽습니다. 성당지기는 ‘새로운 독재’가 이 나라에 굳세게 버틴다고 느끼는 한편, 천주교회에서도 ‘새로운 독재’가 무시무시하게 버틴다고 느낍니다.


  독재란 무엇일까요. 독재를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독재를 하면 독재자는 얼마나 즐거울까요. 독재를 하는 보람은 얼마나 누릴 만할까요. 독재자는 목숨이 다해서 죽는 날에 어떤 마음이 될까요.


  독재를 부추기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독재를 이끄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독재를 부르는 사람은 누구일는지요. 독재가 멈추지 않도록 불러들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교황이 아직도 교황궁에 들어가지 않고 여러 신부들과 함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구중궁궐에 갇혀 세상과 영영 멀어질까 봐 안간힘을 쓰시는구나 싶던데요 … 123년 전에 이미 교회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고약한 천민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고 있는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아무런 성찰을 안 했어요 … 찾아가는 곳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의 자본이 일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용산에서 삼성물산을 봤는데, 4대강 사업 공사현장에 가도 삼성, 제주 강정에 가 봐도 삼성이 있어요 … 경상도에 가서 새누리당 찍지 말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생활 안에서 되도록 삼성과 거리를 두도록 하자는 게 무척 어렵겠지요. 신자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우리 일상 전반을 워낙 공고하게 지배하는 삼성이니까요. 삼성카드 쓰지 말자, 삼성 갤럭시 쓰지 말자고 하면 깜짝 놀라요 ..  (69, 71, 78, 79쪽)



  오월비가 내립니다. 오월에 내리는 비는 갓 모내기를 마친 논에 포근히 감겨듭니다. 오월에 내리는 비는 모내기를 앞둔 논에 살뜰히 스며듭니다. 오월에 내리는 비는 보리베기를 앞둔 들에 싱그러이 젖어듭니다.


  빗물은 어디에나 골고루 떨어집니다. 빗물은 들과 숲에도, 고속도로와 발전소 지붕에도 골고루 떨어집니다. 빗물이 흙으로 스며들면서 맑은 숨결이 되고, 빗물을 머금은 흙은 더욱 기운을 내어 풀과 나무가 푸르게 자라는 밑힘이 됩니다. 비가 그친 뒤 해가 나면서 들과 숲은 한껏 빛나고, 하늘과 구름은 한결 맑아요.


  삶이란 밝은 빛이고 맑은 숨결입니다. 사랑이란 밝은 노래이고 맑은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두레와 품앗이로 어깨동무하면서 살림을 가꿉니다.


  민주라 한다면, 참다운 민주라 한다면, 빗물과 같은 틀을 빚습니다. 착한 민주요, 아름다운 민주라 한다면, 햇볕처럼 따스하고 흙처럼 고소한 얼거리를 이룹니다. 즐거운 민주요 기쁜 민주라 한다면, 들과 숲처럼 사람살이를 살찌우는 밑바탕이 될 테지요.



.. 어머니는 지금까지 제가 세상 속으로 뛰어들 때마다 하느님이 시키신 일 하느라 고생한다고 격려하세요 … 강물처럼 유장한 역사 안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신앙이 켜켜이 쌓이고 쌓인 끝에 맺어진 열매가 예수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의 씨가 물려지고 물려진 끝에 가장 아름답게 싹튼 자리가 예수의 몸입니다 ..  (89, 91쪽)



  민주선거로 민주를 이루려면 우리 보금자리가 언제나 민주여야 합니다. 민주선거로 민주를 빛내려면 우리 살림살이가 늘 민주여야 합니다. 참다운 민주가 이루어지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될 때에 민주를 한껏 북돋웁니다. 착한 민주로 즐거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될 적에 민주를 더욱 살찌웁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하늘에서 똑 떨어지지 않습니다.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한 삶터를 수수하게 가꾸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어른이 자라요.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한 슬기롤 빛내어 일구는 마을에서 사랑스러운 어른이 살아요.


  민주를 이룬 마을이라면 우두머리가 없어도 됩니다. 모든 마을사람이 저마다 마을지기입니다. 민주를 이룬 나라라면 우두머리, 이를테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한 사람조차 없어도 됩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지기이고 님이며 하느님입니다.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없다지만, 대통령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주교나 신부는 아무나 될 수 없다지만,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주교나 신부는 누구나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산에서 돌을 던져 맞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도 아름다운 나라살림이 될 때에 나라가 아름답습니다. 지리산에서 돌을 던져 맞은 사람이 시장이 되고 군수가 되며 뭣뭣이 될 때에 나라가 사랑스럽습니다.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보아야 한다면 늘 하나를 보아야 합니다.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읽어야 하면 오직 하나를 보아야 합니다. 삶을 보아야 합니다. 알아야 하면 누구라도 하나를 알아야 해요.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꽃을 보아요. 풀을 읽어요. 나무를 배워요. 하늘을 보아요. 흙을 읽어요. 냇물을 배워요. 숲을 보아요. 들을 읽어요. 바람을 배워요.



.. 슬픈 일은 대통령만 〈조선일보〉의 논설과 칼럼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 교회의 고위급 성직자들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들에게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 되는 신문은 조중동 딱 세 개로 국한됩니다 … 사람들이 성경의 눈으로 신문을 보게 될까요? 아니면 신문의 눈으로 성경을 보게 될까요 … 텔레비전 드라마나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쌍용자동차나 기륭전자,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관심 없게끔 만드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어 보여 안타깝습니다 .. (95, 97쪽)



  어리석은 독재 정치에 사로잡힌 나머지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길하고 동떨어진 슬픈 이웃을 바라봅니다. 바보스러운 독재 정치에 길든 탓에 참답거나 착하거나 넉넉한 삶하고 등진 아픈 이웃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언제 웃을까요? 즐거울 때에 웃겠지요. 이웃이 아프거나 힘들 때에 웃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노래할까요? 기쁠 때에 노래하겠지요. 이웃이 슬프거나 고단할 때에 노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웃습니다. 아픈 이웃을 달래면서 웃음을 되찾도록 웃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노래합니다. 슬픈 이웃을 다독이면서 노래를 되찾도록 노래합니다. 웃음은 웃음을 낳고 노래는 노래를 낳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꿈은 꿈을 낳아요.


  왜 자꾸 독재자가 ‘민주선거’로 뽑힐까요. 우리는 왜 ‘민주선거’를 치르면서도 독재자를 뽑고 말까요. 바로, 우리 삶이 아직 민주가 아니고 평화가 아니며 자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삶을 민주와 평화와 자유로 가다듬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참민주로 선거를 하고, 참다운 이슬떨이를 뽑아서 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심부름꾼이 되려는 정치 지도자가 나오려면 온누리에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흐를 수 있어야 합니다. 4347.5.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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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4-05-2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읽어도 마음이 아픕니다. -,.-!!

파란놀 2014-05-21 16:24   좋아요 0 | URL
이제껏 이런 '민주선거'를 되풀이했는데,
이번에는 그칠 수 있을는지 궁금해요...
 




이분 사진책을 외국배송으로라도 구경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이분 사진책을 만날 길이 없다.

아마존에서는 구경할 수 있으리라.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71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사람

― Stone in the road, photographs of Peru

 누바 알렉사니안(Nubar Alexanian) 사진

 Cornerhouse pub 펴냄,1991



  사진을 찍으려고 페루를 찾아가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페루를 마음에 품고 찾아가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페루는 어떤 나라이기에 사람들 눈길을 끌까요. 페루는 어떤 삶터이기에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을까요.


  사진을 찍으려고 페루를 찾아간 사람은 페루를 찍습니다. 내 눈에 비친 페루를 찍고, 스스로 마음에 담은 모습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찍습니다. 페루는 사진쟁이 앞에 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사진쟁이는 자그마한 모습 하나라도 놓칠세라 바지런히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누군가는 이레쯤 머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달포쯤 머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반 해쯤 머물고, 누군가는 한두 해쯤 머뭅니다. 누군가는 대여섯 해를 머물고, 누군가는 열 해나 스무 해를 눌러앉습니다. 아예 페루사람이 되어 서른 해나 쉰 해, 때로는 일흔 해를 페루에서 지냅니다.






  이레쯤 머물면서 찍은 페루란, ‘어떤 페루’가 될까요. 쉰 해쯤 살면서 찍은 페루는, ‘어떤 페루’가 되나요. 사진을 찍고 싶어서 찾아간 페루라면 ‘어떤 페루’가 되고, 홀로 마을과 숲길을 거닐면서 느낀 페루일 때에는 ‘어떤 페루’가 될는지요.


  누바 알렉사니안(Nubar Alexanian)이라는 분이 페루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은 《Stone in the road, photographs of Peru》(Cornerhouse pub,1991)라는 책을 들여다봅니다. 1950년에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이녁은 1978년부터 1989년까지 페루를 아홉 차례 밟습니다. 그러고는 1991년에 사진책 하나를 조촐히 선보입니다. 사진책 앞자락에서 “What will their loss mean for the rest of us?” 하고 묻습니다.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 삶에 페루는 무엇을 뜻할까요. 지구별에서 페루는 어떤 나라일까요. 서양 문명은 페루에서 어떤 일, 또는 어떤 짓을 했을까요. 오늘날 페루는 어떤 눈빛으로 삶을 가꾸는가요.


  페루로 찾아가서 페루라는 나라를 밟기에 페루를 찍습니다. 페루로 찾아가지 않으나 한국이나 미국에서 살아가며 페루를 찍습니다. 그곳에 있을 때에는 으레 그곳에서 눈으로 보는 대로 찍고, 그곳에 없을 때에는 마음으로 그곳을 생각하면서 찍습니다.





  사진은 눈으로 본 대로만 찍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려면 먼저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마음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사진을 못 찍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찍으려 하면, 먼저 이 나무를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나무를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면 마당에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하니 볼 수 없어요. 마당을 찍으면서 사진에 나무를 담지 못해요.


  페루로 찾아갔다 하더라도 페루를 못 찍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리마에 있는 공항에 내려서 페루라는 나라를 두 발로 밟았어도, 페루라는 곳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으면, ‘페루에서 본 미국’이나 ‘페루에서 본 한국’을 찍을 뿐입니다. ‘페루를 느낄 수 있는 페루’를 사진으로 찍으려면, 먼저 페루를 페루대로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지구별 이웃을 사진으로 찍겠다고 한다면, 지구별 이웃이 누구인가를 느껴야 합니다. 지구별 이웃이 어디에서 살아가는지를 느껴야 하고, 지구별 이웃이 저마다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느껴야 합니다. 지구별 이웃한테 즐거움과 기쁨과 슬픔과 아픔이 무엇인지 느껴야 하고, 지구별 이웃한테 사랑과 꿈과 노래와 춤이 무엇인지 느껴야 하지요. 웃음과 눈물을 고루고루 느끼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느낄 적에 비로소 글도 한 줄 쓰고, 그림도 한 장 그립니다.






  돈이 있으면 누구나 페루로 찾아가겠지요. 돈이 있으면 누구나 값진 사진기를 장만하겠지요. 그런데, 돈만 있대서 페루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을까요? 못 찍지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페루를 찍고, 한국을 찍으며, 미국을 찍습니다. 퍽 자주 미국을 드나든다 하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미국을 사진으로 못 찍어요.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간다지만, 마음이 없으면, 정작 내가 한국사람이면서도 한국을 못 찍어요. 서울이 고향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서울이 어떤 모습인지를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아름다운 시골이 고향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아름다움과 시골을 사진으로 못 찍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없기에 못 느끼고 못 보며 못 알아보거든요.


  사진을 찍으려면 마음속에 맑은 넋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넋을 맑게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이웃을 나란히 사랑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꿈을 키울 때에, 비로소 사진기를 손에 쥘 만합니다. 너와 나를 한몸으로 아끼면서 즐거이 어깨동무하려는 몸짓이 아닐 적에는 사진기를 손에 쥘 만하지 않습니다.


  따사로이 바라볼 수 있고, 따뜻하게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매무새일 때에, 마음으로 느낍니다. 마음으로 느끼면, 이때부터 페루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음으로 못 느끼면? 마음으로 못 느끼면 ‘작품’이나 ‘예술’이나 ‘기사’나 ‘기록’으로 사진을 만들는지 몰라도, 사진을 들여다볼 이웃한테 푸른 숨결을 불어넣지 못합니다.


  바람이 붑니다.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 한국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페루로 흐릅니다. 바람이 붑니다. 한들한들 바람이 불어 페루에서 대서양을 가로질러 유럽과 터키와 네팔과 중국을 지나 한국으로 흐릅니다. 4347.5.20.달.ㅎㄲㅅㄱ




Nubar Alexanian is a documentary photographer whose worked has been featured in major magazines in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including The New York Times Magazine, Life, Fortune, GEO, Time and Newsweek. For the past 35 years he has travelled to more than 30 countries focusing on long term personal projects which describe the human condition. In 2008 he completed his fifth book, "NONFICTION" PHOTOGRAPHS BY NUBAR ALEXANIAN FROM THE FILM SETS OF ERROL MORRIS, (Walker Creek Press) a 15 year collaboration with filmmaker Errol Morris. Solo exhibitions of this work have been shown at The Walker Art Center, The Corcoran Gallery of Art, Caren Golden Fine Art Gallery (NYC) The Atlanta Contemporary Art Center, The LOOK3 Festival, and Clark University.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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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7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읽으며

― yesterday

 박신흥 사진

 공간 루 펴냄,2012./비매품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읽습니다. 오늘 찍은 사진을 오늘 읽을 수도 있으나, 오늘 찍고 나서 곧바로 사진을 읽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곳에서 찍은 사진조차, 디지털사진기 화면에 뜰 적에는 적어도 1초는 지나야 하고, 1초가 지나면 언제나 ‘어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사진찍기를 으레 ‘기록’으로 여기는데, 사진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보셔요. 오늘 이야기를 글로 쓴다 하더라도 언제나 ‘지나간 때 이야기’입니다. 오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도 언제나 ‘지나간 때 모습’입니다. 바로바로 돌아보지 못해요. 그때그때 지나가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박신흥 님이 찍은 사진으로 엮은 《yesterday》(공간 루,2012)는 책이름부터 아예 ‘어제’라고 밝힙니다. 참말 이 사진책에 깃든 모습은 우리가 ‘어제’ 살았던 모습입니다.





  다만, 어제라고 할 때에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어제가 되지 않아요. 쉰 살인 사람한테 어제하고 열 살인 사람한테 어제는 다릅니다. 일흔 살인 사람한테 어제하고 마흔 살인 사람한테 어제는 달라요.


  누군가한테는 스무 해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합니다. 누군가한테는 하루나 이틀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합니다. 누군가한테는 마흔 해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하지요. 누군가한테는 달포쯤 지나간 어제가 애틋해요.


  나는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놀도록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나들이를 다니고, 아이들과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저잣마실을 다니기도 합니다. 오월을 맞이해서 들딸기 따러 소쿠리를 들고 아이들하고 숲을 헤칩니다. 비 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집에서 놉니다. 밤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달콤하게 꿈나라로 날아갑니다. 언제나 오늘은 ‘오늘’ 누리는데, 오늘 이곳에서 ‘오늘’을 누리고 보면, 모든 이야기는 새삼스레 어제로 바뀝니다. 앞날은 언제나 오늘이 되고, 오늘은 다시 어제가 되어요.


  흐르는 삶입니다. 지나가는 삶입니다. 차근차근 거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기록을 하기 때문에 뜻있지 않습니다. 어느 한때를 잘 담은 사진이기 때문에 값있지 않습니다. 1975년 어느 날 찍은 사진을 2012년에 선보일 수 있어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2012년에 찍은 사진을 앞으로 2049년에 선보여야 대단하지 않아요. 이야기가 있으면 ‘하루 앞서’ 찍은 사진을 꾸려서 오늘 사진책을 선보일 수 있어요. 이야기가 아름다우면 ‘달포 앞서’ 찍은 사진을 엮어서 오늘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읽을 만한 까닭이란 오직 하나입니다. 이야기가 있으면 사진을 읽을 만합니다. 글(문학)을 왜 읽을까요? 이름난 작가가 썼으니 읽는 글일까요? 이야기를 살피지 않고 작가 이름에 따라 책을 장만해서 읽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림을 왜 들여다볼까요? 비싼값에 사고팔리는 작품이라서 그림을 들여다보나요?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림을 말할 일이 없어요. 예술이거나 문화이기 때문에 그림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사진을 읽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기록이 되기에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지나간 어느 한때 모습을 남겼기에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마음에 아로새긴 애틋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조곤조곤 들려주기에 사진을 읽습니다. 마음에 깊이 새긴 살가운 이야기를 노래하듯이 글로 썼기에 문학을 읽습니다. 마음에 넓게 드리운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꿈꾸듯이 그림으로 그렸기에 빙그레 웃으며 반깁니다.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읽으며 생각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까닭은 오늘 어떤 모습 하나를 앞으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는 까닭은 앞으로 아이들이 어른이 된 뒤 저희 어릴 적 모습을 남겨 주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뛰놀며 활짝 웃고 좋았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즐거우며 좋은 기운이 시나브로 사랑으로 피어나기에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립니다. 노래하듯이 사진을 찍고 춤추듯이 글을 쓰며 밥을 짓듯이 그림을 그려요.


  박신흥 님은 꽤 지나간 예전에 찍은 사진을 ‘오늘’ 선보이면서 어떤 ‘어제’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박신흥 님이 마음에 담은 ‘어제’는 이녁 삶에 어떤 이야기로 드리운 노래일까요.


  엄청나다 싶은 모습이기에 오늘 돌아보는 어제가 아닙니다. 동생을 업고 노는 아이 모습은 수수합니다. 나무를 타거나 소꿉을 하거나 책을 들여다보는 아이 모습은 수수합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며 빨래를 하는 모습은 수수합니다. 그저 수수하지요. 다만, 수수한 삶자락 하나에 사뿐사뿐 이야기를 실으면 따사롭습니다. 수수한 삶빛에 살몃살몃 이야기를 담으면 살갑습니다. 이야기가 빛으로 번지면서 곱게 퍼집니다. 이야기가 빛이 되어 촉촉히 드리웁니다. 4347.5.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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