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31] 세 시 세 분



  일곱 살 아이가 숫자를 읽습니다. ‘3분’이라 적힌 글을 ‘세 분’이라 읽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 일곱 살 아이는 “세 시 삼 분”을 “세 시 세 분”이라 읽습니다. 이 아이가 읊는 말을 “삼 분”으로 고쳐 줄 수 있지만, 고치지 않습니다. “세 분”이라는 말을 곱씹으니, 이렇게 읽어야 맞는데 어른들은 구태여 ‘三’이라는 한자를 빌어서 쓰는 셈이거든요. 더 곱씹으니 ‘時’와 ‘分’이라는 한자를 굳이 쓸 일이 없기도 하겠구나 싶습니다. 어른들은 왜 이런 한자를 끌어들여서 때를 읽거나 세려 했을까요. 때를 알려주는 기계라는 ‘시계’를 읽을 적에 “셋 셋”이라 하면 됩니다. “셋 서른”이라 하면 돼요. “열둘 서른아홉”이라 하면 되어요. 처음 말하는 숫자가 ‘시’이고 나중 말하는 숫자가 ‘분’입니다. 4347.5.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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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6
로저 뒤봐젱 지음, 서애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4



읽는 책과 살아가는 빛

―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로저 뒤봐젱 글·그림

 서애경 옮김

 시공사 펴냄, 1995.6.30.



  책은 읽으라고 있습니다. 책은 모으라고 있지 않습니다. 책이 있는 까닭은 이야기를 적어서 알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담아 이웃한테 널리 퍼뜨리고 싶기에 책을 엮습니다.


  정치권력이나 사회권력이나 문화권력을 거머쥔 이는 이러한 권력을 더 단단히 움켜쥐려는 뜻에서 책을 엮습니다. 권력을 움켜쥐지 않고 삶을 사랑하는 이는 이웃한테 사랑을 한결 따사로이 알려주거나 들려주고 싶어서 책을 엮습니다.


  끼리끼리 권력을 더 단단히 다지려고 책을 엮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자만 알 수 없다고 여겨, 다 함께 슬기를 빛내고 삶을 밝히는 길을 알도록 하고자 책을 엮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이 지구별에는 두 갈래 사람과 삶이 있어요. 전쟁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꾀해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려는 갈래가 하나 있어요. 삶을 짓고 사랑을 나누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려는 갈래가 하나 있습니다. 책도 이러한 갈래에 따라 태어납니다. 신문과 방송도 이러한 갈래에 따라 태어나요.




.. 피튜니아는 하는 짓이 어수룩해서 맹추라고 놀림을 받는 암거위야 …… 피튜니아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딱정벌레를 잡아 먹기도 하고, 클로버 이파리를 물어 뜯기도 하고 풀 이파리에 맺힌 이슬 방울을 쪼기도 했지 ..  (5쪽)



  로저 뒤봐젱 님이 빚은 그림책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시공사,1995)는 꽤 오래된 작품입니다. 미국에서 1950년에 처음 나왔어요. 한국말로는 1995년에 처음 나왔으니, 한국 어린이는 미국에서 마흔다섯 살 묵은 그림책을 누리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은 오래되었다거나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그림책은 책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가를 찬찬히 밝혀서 알려주거든요.



.. “옳아, 주인 집 아들 빌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 옆구리에 끼고 오는 것을 보았어. 이건 책이야. 그래 맞아. 책이야! …… 이제 생각난다. 바로 며칠 전에 펌킨 씨가 빌에게 책은 아주 소중한 것이랬지. 펌킨 씨가 그랬잖아. 책을 지니고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롭다고.” ..  (8쪽)



  그림책에 나오는 암거위 피튜니아는 수수한 암거위입니다. 여느 암거위처럼 풀밭을 돌아다닙니다. 벌레를 잡고 풀잎을 뜯으며 이슬을 마십니다. 더없이 평화로우면서 사랑스러운 하루를 누립니다. 아마 모든 들짐승이 이처럼 수수하면서 평화롭기에 사랑스러우면서 즐겁게 살아갈 테지요.


  들짐승이나 멧짐승한테는 ‘똑똑함’이나 ‘잘남’이 따로 없습니다. 더 높은 짐승이나 더 낮은 짐승이 없습니다. 더 높은 벌레나 더 낮은 벌레가 없습니다. 서로 얼크러집니다. 함께 어우러집니다. 같이 살아갑니다.


  이와 달리 사람들은 스스로 틀을 짓습니다. 아니, 사람들 스스로 틀을 짓는다기보다 문명사회에서 틀을 짓습니다. 문명사회가 된 뒤부터 제도권이라는 틀이 생기고, 제도권에서는 숫자로 삶을 가르지요. 숫자로 삶을 가르니, 은행계좌로 틀을 가르고, 집 넓이와 땅 넓이로 틀을 갈라요. 벌어들이는 돈과 따는 점수로 틀을 가릅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성적으로 틀을 짓고, 운동경기 또한 숫자로 틀을 짓습니다.


  우리는 삶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숫자로 틀을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도권 울타리에 깃들어 문명사회에 젖어드는 사이에 어느덧 ‘삶을 누리는 길’이 아니라 ‘숫자에 몸을 맞추고 숫자에 마음이 얽매이는’ 나날이 됩니다. 사람들 스스로 쳇바퀴질을 해요. 쳇바퀴 삶이 되고, 쳇바퀴 지식이 되며, 쳇바퀴 직업과 학교가 됩니다.


  책을 100권 읽은 사람이 책을 1권 읽은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다. 책을 999권 읽은 사람이 책을 1000권 읽은 사람보다 못나지 않습니다. 책을 한 권조차 본 적 없는 사람이 책을 한 권 읽은 사람보다 떨어지지 않습니다. 책을 들추지 않은 사람이 책을 백만 권쯤 들춘 사람보다 뛰어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삶은 숫자로 나누지 못합니다. 웃음은 숫자로 따지지 않습니다. 노래는 숫자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무슨무슨 방송이나 ‘순위 차트’에서 1등이 되어야 즐거운 노래가 아니에요. ‘순위 차트’에서 100등이나 1000등쯤 하면 안 즐거운 노래가 아니에요.


  그림 한 점이 백 억원에 팔리면 훌륭한 작품일까요? 사진 한 점이 일 억원에 팔리면 빼어난 작품일까요? 글 한 줄을 천만 원에 팔면 놀라운 작품일까요?





.. 피튜니아는 주저앉아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끝내는 한숨을 내쉬었단다. “이제 알았다. 지혜는 날개 밑에 지니고 다닐 수는 없는 거야. 지혜는 머리와 마음속에 넣어야 해. 지혜로워지려면 읽는 법을 배워야 해.” ..  (31쪽)



  졸업장은 종이 한 장입니다. 돈도 종이 한 장입니다. 책은 종이꾸러미입니다. 졸업장으로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돈으로 삶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책으로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하루를 누리면 삶이 즐겁습니다. 스스로 기쁘게 웃으면서 하루를 누리면 삶이 기뻐요. 스스로 속삭이는 사랑이요, 스스로 나누는 사랑이고, 스스로 어깨동무하는 사랑이면 삶이 사랑스럽지요.


  책은 읽으라고 있습니다. 삶은 사랑하라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빛을 이웃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나눌 때에 즐겁습니다. 스스로 하루하루 가꾸면서 살림을 알뜰살뜰 다스릴 적에 삶이 빛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암거위 피튜니아는 책을 ‘들고 다니지 않’기로 합니다. 피튜니아는 책을 ‘읽고 생각을 기울이며 마음을 쓰고 사랑을 나누’는 길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4347.5.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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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횝커(Thomas Hoepker)


  이웃집에 마실을 갔다가 ‘Thomas Hoepker’라는 분이 선보인 사진책을 구경한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느꼈지만, 사진을 들여다보니 익히 보던 사진이다. 그렇구나, 이 사진들을 찍은 분 이름은 모르며 지냈지만, 이 놀랍고 아름다운 사진을 찍은 분 이름이 ‘토마스 횝커’였구나.

  이 사진책을 장만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에서는 장만하기 어려울 테고, 외국에서는 찾을 수 있을 테지. 앞으로 몇 해쯤 지나고 나서 이 사진책을 장만할는지 모르나, 찬찬히 이분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즐거웠다. 토마스 횝커 님 사진책을 보면서, 사진책이란 참말 수없이 되읽는 책이라고 깨닫는다. 한 번 읽고 덮는 사진책은 사진책이 될 수 없다. 자꾸 보고 또 보고 싶도록 이끌어야 사진책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그렇지 않은가? 한 번 읽고 두 번 다시 안 읽는 글을 글이라 할 만한가? 한 번 보고 두 번 다시 안 보는 그림을 그림이라 할 만한가? 한 번 듣고 두 번 다시 안 듣는 노래를 노래라 할 만한가? 아름다우며 즐거운 노래이기에 수십 번이나 수백 번이 아닌 수천 번이나 수만 번을 들으면서도 언제나 새롭다.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이야기가 흐르는 사진이기에 수십 번이건 수백 번이건 고마운 마음이 되어 사진책을 다시 펼쳐서 넘길 수 있다. 4347.5.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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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노래 14. 동백마을 누나



우리 집 아이 사름벼리야,
우리 모두 사랑이란다.
밥 맛있게 먹고
동생과 예쁘게 놀며
씩씩하게 봄노래 부르는
아름다운 동백마을 누나로
오늘 하루 누리자.
어머니하고 볕바라기 즐기고
그림도 글도 책도 모두
곱게 아끼고 즐기렴.


2013.3.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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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삭줄꽃 책읽기



  마삭줄이 넝쿨을 이루어 잎이 돋을 때부터 ‘그래, 너는 마삭줄이네.’ 하고 알아본다. 마삭줄을 보면 참말 넌 마삭줄이네 하고 알아본다. 왜 그럴까. 왜 나는 마삭줄을 쉬 알아볼 수 있을까.


  바람개비와 같이 생긴 하얀 꽃이 피어나는 마삭줄이다. 마삭줄꽃이 피면 꽃내음이 확 퍼진다. 꽤 먼 데까지 맑은 꽃내음이 퍼져, 코를 큼큼거리면서 ‘어디에 이렇게 고운 내음 퍼뜨리는 꽃이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며 살피기 일쑤이다.


  찔레꽃이 흐드러진 곳을 지나갈 적에는 찔레꽃내음이 짙고, 아까시꽃이 그득한 곳을 지나갈 적에는 아까시꽃내음이 짙다. 마삭줄꽃이 잔치를 이루는 데에 있으면 마삭줄꽃내음이 짙은데, 참말 꽃마다 내음이 다르다. 찔레꽃은 보드라운 결이라면, 아까시꽃은 달근한 결이고, 마삭줄꽃은 포근한 결이다.


  탱자나무와 찔레나무가 우거진 울타리에 마삭줄이 나란히 어우러지면 얼마나 고우면서 환한 꽃잔치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참말 옛날에는 집집마다 마을마다 봄부터 가을까지 쉬잖고 꽃내음과 풀내음이 넘실거리면서 모두 아름다운 넋과 숨결을 가꾸었으리라 느낀다. 4347.5.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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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5-26 03:40   좋아요 0 | URL
마삭줄꽃은 처음 봅니다~ 참으로 바람개비같은 꽃모양도
하얀 꽃빛도 애틋하니 좋습니다...
사진도 넘 좋구요~*^^*

파란놀 2014-05-26 08:55   좋아요 0 | URL
조그마한 바람개비꽃인데
꽃내음이 무척 짙고 깊어요.
시골마을에서 이 꽃넝쿨이 울타리에 있도록 할 만하구나
하고 늘 느끼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