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35] 잎망울잔치



  보셔요

  잎망울이 저마다 한껏 터지며

  잔치를 해요



  누구라도 봄나무 밑이나 둘레에 서서 한참 바라보면 싱그럽고 생생한 푸른 잎잔치를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봄나무 밑이나 둘레에 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누리지 못합니다. 잎망울잔치를 누리고 싶은 사람은 봄나무 밑이나 둘레에 섭니다. 잎망울잔치를 마음에 담아 새로운 숨결을 터뜨리고 싶은 사람은 봄나무 밑이나 둘레로 걸어갑니다.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눈을 번쩍 뜨게 했던 말



  올해 마흔 살이 되기까지 살며, 나한테 다가온 말이 늘 있습니다. 내 눈을 번쩍 뜨게 이끈 말이 늘 있습니다. 내가 들은 어떤 말이든 늘 내 눈을 번쩍 뜨게 했는데, 이 가운데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바꾼 한 가지로, 스물다섯 살 적에 다가온 말이 있어요.


  “네가 하는 일이 틀리지 않으나, 맞지 않다.”


  스물다섯 살에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엄청나게 짜증이 일었으나 1분이 지나지 않아 부끄러움이 몰려들었고, 다시 1분이 지나고 나서 몸과 마음이 오롯이 차분할 수 있었어요. 그러고는 0살부터 25살까지 걸어온 길을 송두리째 바꾸기로 다짐했고, 참말 그날부터 나는 모든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다만, 스물다섯 살 적에는 내 삶을 바꾸기는 했으나 그때 들은 그 말이 어떤 뜻인 줄 깨닫지는 못했어요.


  마흔 살 오늘, 나는 예전에 나한테 온 말을 찬찬히 곱씹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 모습이 어떠한 빛인가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내가 하는 일이 틀리지 않지만, 맞지 않다면, 그러니까, 내가 바라보는 곳이 틀리지 않으나, 맞지 않다면, 내가 걷는 길이 틀리지 않으나, 맞지 않다면,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할까요.


  “틀리지 않으나, 맞지 않다”를 떠올리면, 아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꾸짖는 모습은 틀리지 않으나, 맞지 않다고 이야기할 만합니다. 이를테면, 아이가 손에서 놓쳐 접시를 깼을 적에 ‘너 이게 무슨 짓이니!’ 하고 꾸짖는 일은 틀리지 않습니다. 꾸짖을 만합니다. 그러나, 아이를 꾸짖는 일은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로서 접시를 깨뜨린 까닭이 있으니, 나는 이 까닭을 읽어야 할 뿐이거든요. 무엇보다, 아이가 접시를 깨뜨렸으면 아이가 다치지 않았나 하고 살피기도 해야 하니까, 아이를 꾸짖는 일은 어느 모로 보아도, ‘1차원이나 2차원으로 보아도’ 맞지 않습니다.


  나는 마흔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 말을 느끼고 깨달았기에 서운하거나 슬프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쁘거나 놀랍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느끼거나 깨달아야 할 말을 느끼고 깨달았을 뿐입니다. 오늘 아침은 “내가 하는 말은 틀리지 않으나, 맞지 않다” 또는 “내가 본 것은 틀리지 않으나, 맞지 않다”를 되새기면서 엽니다. 나 스스로 참답게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에 모든 마음을 쏟고, 나 스스로 착하게 보고 싶은 곳을 보는 데에 모든 기운을 바치며,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사랑하고 싶은 숨결을 마시는 데에 모든 넋을 기울이려 합니다.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로 읽는 책 134] 담는다


  포근히 마음에 담아
  언제나 되살아나면서
  밝게 빛나는 사랑.


  포근히 담기에 포근하게 살아납니다. 따스히 담기에 따스하게 살아납니다. 기쁘게 담기에 기쁘게 살아납니다. 어떤 빛을 마음에 담으려 하나요? 어떤 꿈을 마음에 심으려 하나요? 4347.6.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되풀이하며 읽는 책



  되풀이하며 읽는 책이 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되풀이하며 읽는 책은 재미있는가? 재미있을 수 있다. 뜻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되풀이하며 먹는 밥을 떠올려 본다. 밥을 되풀이하면서 먹는가? 어제 먹은 밥을 또 먹는가? 어제 마신 술을 또 마시나? 어제 들이켠 바람을 또 들이켜나? 어제 똥을 누었는데 또 똥을 누나? 그래서, 되풀이하는 모든 것이 지겹나?


  교사는 학생한테 늘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알려준다. 교과서가 꾸준히 바뀌기는 한다지만, 교사가 학생한테 들려주어야 하는 교과서 지식은 늘 그대로이다. 교과서 지식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면, 교사는 날마다 되풀이하는 이러한 일이 지겹나? 시골이라면 한 학년이나 한 학급한테 한 번만 말할 테지만, 도시라면 교사는 여러 학급과 학년을 돌면서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똑같은 말로 알려주어야 한다. 교사라고 하는 ‘직업’은 지겨운가?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놀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되풀이하듯이 읽는 책은 마음에 어떻게 스며드는가. 되풀이하듯이 하는 일은 삶에 어떻게 젖어드는가. 되풀이하듯이 하는 놀이는 사랑을 어떻게 키우는가. 4347.6.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박근혜 까는 인형



  나는 예전에, 그러니까 1994년에 ‘ㅈㅈㄷ 까는 인형’처럼 지낸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신문’을 몰랐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틈틈이 ‘신문배달 부업’을 하기만 했을 뿐, 신문이라는 종이뭉치에 깃든 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나한테 신문이란 ‘방학을 맞이해서 부업으로 하면 돈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예나 이제나 똑같다. 신문배달을 하는 이 가운데 꽤 많은 사람들은 ‘신문에 실린 이야기’를 읽지 않는다. 그저 신문이니까 돌린다. 아니, 그저 직업이니까 이 일을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어떤 신문이든 돌린다. ㅈㅈㄷ을 돌리는 신문배달부라 해서 ‘생각이 낮거나 바보스럽’지 않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돌리는 신문배달부라 해서 ‘생각이 높거나 훌륭하’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ㅈㅈㄷ을 받아보는 사람이라고 해서 ‘생각이 낮거나 바보스럽’지 않으며,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읽는 사람이라고 해서 ‘생각이 높거나 훌륭하’지 않다.


  내가 ‘ㅈㅈㄷ 까는 인형’처럼 지내던 때를 돌아본다. 그때 나는 ‘까는 일’에만 매달린 채,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바라보지 못했다. 엉터리에 쓰레기에 허접한 것을 까야 한다고만 여겼다. 이러다 보니, 나 스스로 흙탕물에 빠져든다. 왜냐하면, 흙탕물을 밝히려면 나 또한 흙탕물로 뛰어들어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 흙탕물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흙탕물에 뛰어들어서 스스로 흙탕물투성이가 되어야 흙탕물을 알거나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어느 대목에서는 알거나 말할 수 있겠지. 코끼리한테 다가가서 코끼리를 만져야 코끼리를 어느 대목에서는 알거나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코끼리 귀를 만질 때에 코끼리를 말하거나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코끼리 귀 만지기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다만 그뿐이다. 코끼리한테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아서 ‘코끼리 모습을 제대로 본다’고 할 때에도 이러한 매무새가 좋거나 나쁘다거나 하고 말할 수 없다. 그저 그뿐이다.


  ‘박근혜 까기’를 하는 일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깔 만하니까 깔 뿐이다. 그래서, ‘박근혜 까기’를 얼마든지 차분하게 하면 된다. 다만, ‘까는 인형’이 되면 스스로 굴레에 갇혀서 빛을 못 볼 뿐이다. 까는 데에 허우적거리거나 바쁜 나머지, 정작 이녁 삶은 가꾸지 못할 뿐이다.


  잘 생각해 보라. 손가락질을 해야 ‘까기’가 아니다. 4대강사업을 비판하거나 밀양송전탑을 비판해야 ‘까기’가 아니다. 스스로 물질문명을 거스를 수 있으면서, 흙을 돌보아 자급자족을 이루며 언제나 웃음꽃으로 오순도순 살림을 가꾸는 아주머니 한 분 삶은 ‘새로운 눈빛으로 박근혜 까기를 이루는 모습’이 된다.


  공장 일꾼 한 사람은, 공장에서 땀흘려 일하는 매무새로서 ‘박근혜 까기를 이루는 모습’이 된다.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일꾼은 그물을 던지고 걷어들이면서 ‘박근혜 까기를 이루는 모습’이 된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풀을 뜯고 나락을 거두는 시골살이를 조용하면서 아름답게 빛내면서 ‘박근혜 까기를 이루는 모습’이 된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고 떠들면서 뛰노는 맑은 몸짓으로 ‘박근혜 까기를 이루는 모습’이 된다. 4347.6.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람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