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고

꽃을 사람들이 보고

꽃은 마음마다 스미고

꽃과 노래가 흐르고

꽃으로 사랑을 그리고

꽃이랑 어깨동무하고

꽃같이 웃고

꽃하고 이 길 걷는

바람 한 줄기



4347.6.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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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블랙홀 - [할인행사]
해롤드 래미스 감독, 빌 머레이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꽤 오래된 작품이라고 한다. 언제 극장에 걸쳤는지 살펴보니 1993년이다. 그렇구나. 1993년이면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때이네. 그때에 나는 영화는 아예 쳐다보지 못한 채 살았는데, 그무렵에 나온 영화이니 볼 수 없고 알 수 없었네.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2014년에 비로소 본다. 2014년에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몹시 아팠다. 나야말로 ‘늘 똑같은 하루’를 굴레로 만들어서 쳇바퀴를 도는 모습 아니었는가. 나는 아직 스스로 ‘새로운 하루로 나아가는 사랑’을 안 바라보았구나. 나는 언제부터 ‘늘 되풀이하는 똑같은 굴레’를 조용히 내려놓고는, 내가 만든 내 덫에서 나 스스로 풀리면서 ‘새롭게 열며 웃는 삶’을 가꿀 수 있는가.


  사랑을 하기에 하루가 흐른다. 흐르는 하루는 ‘늙음’이나 ‘나이’가 아니다. 흐르는 하루란 언제나 사랑이다. 하루가 흘러서 이틀이 된다. 이틀이 흘러서 사흘이 된다. 하루와 이틀과 사흘은 늘 같다. 늘 같으면서 새롭다. 영어로는 〈Groundhog Day〉인 영화를 왜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잘못 붙였을까? 아무래도 이 영화를 수입해서 배급한 이들 모두 이 영화를 제대로 못 읽고 ‘늘 똑같은 틀을 되풀이하는 굴레와 덫’에 사로잡혔는가 보다. 깨어나지 못하는 하루를 빗대는 말 ‘그라운드도그(마멋)’을 ‘블랙홀’로 빗댈 수는 없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빗대어도 맞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려면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도 말할 만한다. 그래, 우리 스스로 읽기 나름이다. 제대로 보면 늘 다 본다. 제대로 보지 않으니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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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읽는 책


  책은 늘 새롭게 읽는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책읽기란 새롭게 읽기이기에, 새롭게 읽는다고 느낄 때에 책읽기요,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누구라도 새롭게 읽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책을 손에 쥐고 펼쳤으나 ‘새롭다’고 느끼지 못하면, 책읽기가 아니다. 책을 손에 들어 한 장 두 장 넘기는 동안 ‘새롭다’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책읽기하고 자꾸 멀어진다.

  하루에 아홉 시간이나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아홉 차례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분은 아홉 시간에 걸쳐 아홉 차례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가르치면서 웃는다고 한다.

  나는 글을 어떻게 쓰는가. 늘 새롭게 쓴다. 나는 책을 어떻게 읽는가. 늘 새롭게 읽는다. 아이들은 만화영화 〈이웃집 토토로〉를 어떻게 보는가. 늘 새롭게 본다. 아이들은 영화 〈말괄량이 삐삐〉를 어떻게 보는가. 늘 새롭게 본다.

  새롭게 보는 동안 하루를 새로 연다. 새롭게 보지 못할 적에는 날마다 늘 똑같이 되풀이한다. 새롭게 보는 동안 사랑을 새로 가꾼다. 새롭게 보지 못할 적에는 날마다 늘 똑같이 되풀이하기에 툭탁질이 그치지 않는다.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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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손으로 글쓰기



  아름다운 손으로 글을 쓰기에 아름다운 숨결을 이웃과 나눈다. 사랑스러운 손으로 글을 쓰기에 사랑스러운 빛을 동무와 주고받는다. 넉넉한 손으로 글을 쓰기에 넉넉한 선물을 나 스스로한테 베푼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동안, 글이 무엇인가 하고 돌아본다. 내 마음이 어떤 결이나 무늬나 빛인가에 따라, 내 몸이 달라지고 내 삶이 달라진다. 스스로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건사하느냐에 따라 내 글은 더없이 달라지면서 거듭난다.


  나는 글을 어떻게 쓰고 싶은가?


  첫째, 아름답게 쓰고 싶다. 곧, 나는 아름답게 살고 싶다. 둘째, 사랑스럽게 쓰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사랑스럽게 살고 싶다. 셋째, 넉넉하게 쓰고 싶다. 그래서, 나는 넉넉하게 살고 싶다.


  아름다운 손빛을 모아 글빛을 가꾸어 본다. 사랑스러운 손결을 가다듬어 글결을 일구어 본다. 넉넉한 손품을 들여 빙그레 웃음짓는 글품이 되기를 꿈꾼다. 고운 빛으로 되살아나는 글이란, 고운 빛으로 되살아나는 오늘 하루 이야기이다.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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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굽는 팔



  팔이 안으로 굽지 않으면 팔을 펴지 못하고 쓰지 못해요. 참말 그렇지요. 예부터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하고 말한 까닭이 있어요.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들은 어릴 적에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했어요. ‘칫. 팔만 안으로 굽나? 발도 안으로 굽는걸. 손가락과 발가락도 안으로 굽는걸. 모두모두 안으로 굽는걸.’


  어릴 적에 이렇게 ‘팔’을 ‘발’과 ‘손가락’으로 바꾸어 생각하고 보니, 모든 것이 그러했어요. 귀도 안으로 굽어요. 그래야 소리가 나한테 스며요. 입도 안으로 굽어요. 그래야 말이 터져서 나와요.


  안으로 굽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낄 적에, 내 동무들이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나를 따돌리거나 괴롭힐 적에 하나도 안 힘들었고 하나도 안 슬펐어요. 힘듦이나 슬픔을 느낄 일이 없이 ‘안으로 굽는 마땅한 흐름’을 알고 보며 느꼈어요.


  나도 ‘안으로 굽는 팔’처럼 내 곁님과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곁님과 아이들이 배고플 적에 밥을 차리고, 즐거울 적에 함께 노래하며, 고단할 적에 다독이면서 안거나 업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려면 안으로 굽어요. 밥을 우리 안에 담지요. 우리 몸 안쪽으로 밥을 담으면서 새로운 숨결이 태어나고, 새로운 기운이 솟으며,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즐겁게 내 팔을 바라봅니다. 안으로 굽는 내 팔을 기쁘게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즐거움과 기쁨을 잊습니다. 안으로 굽는 팔은 그저 안으로 굽으니, 나는 이 빛을 그대로 느끼며 바라볼 뿐입니다.


  팔한테 다른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안으로 안 굽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아니, 내 팔한테 안으로 굽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내 팔을 사랑하는 길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내 팔을 아끼면서 언제나 내 삶으로 곁에 있는 길을 조용히 헤아립니다. 내 팔에 고운 빛을 뿌리렵니다. 안으로 굽는 내 팔에 맑은 빛을 드리우렵니다. 안으로 굽으면서 살며시 펴고, 또 굽으면서 살펴시 펴는 내 팔에 착한 빛을 하나둘 심으렵니다. 굽기에 펴고, 펴기에 굽습니다.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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