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38] 이웃과 함께



  네가 웃으면서 내가 웃고

  내가 노래하면서 네가 노래하는

  이웃과 함께.



  내 일과 남 일은 따로 없다고 느껴요. 이웃이 아픈데 나 또한 안 아플 수 없지 싶어요. 이웃이 즐거우면 나 또한 안 즐거울 수 없구나 싶어요. 아름다운 책이 곁에 있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먹고 나누면서 마음을 달래는구나 싶어요. 아름다운 이웃이 둘레에 있기에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고 속삭이면서 마음을 가꾸는구나 싶어요. 느긋하고 따사로운 하루가 지나갑니다.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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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언제나 곧게 잇는 삶



  오늘날 시골에서 삼월이 되면 무엇을 할까요? 사월이 되거나 오월이 되면, 또 유월이 되거나 칠월이 되면 무엇을 할까요?


  오늘날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분이라면, 또 오늘날 시골에서 늙은 어매와 아배가 흙일을 하는 분이라면, 달마다 무엇을 하는지 알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다달이 그 달에 맞게 ‘농약을 골라서 뿌립’니다. 일본 영화 〈기적의 사과〉를 보면, 일본에서는 능금밭마다 헛간에 ‘달마다 뿌릴 농약 일람표’를 붙이고는 이대로 척척 농약을 뿌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굳이 일본 영화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다 알 만합니다. 한국에서도 능금밭이건 배밭이건 포도밭이건 달마다 뿌리는 농약이 골고루 있어요. 어느 열매는 스물 몇 가지 농약을 친다 하고, 줄이고 줄여도 열 몇 가지 농약을 쳐야 한다고도 합니다.


  곰곰이 따지면, 우리가 먹는 열매는 능금이나 배나 포도는 아니지 싶어요. 우리가 먹는 알맹이는 딸기나 수박이나 참외가 아니지 싶어요. 우리는 온갖 농약을 먹고, 갖가지 항생제를 먹으며, 수많은 비료를 먹는구나 싶어요.


  유월로 접어든 시골에서는 모내기로 바쁩니다. 그러나 ‘모내기가 바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시골에서는 손모를 내지 않고 기계모를 내기 때문입니다. 모를 심는 기계를 타는 일꾼하고 ‘모심개(이앙기)’라는 기계만 바쁩니다. 기계로 논을 갈고, 기계로 논을 삶으며, 기계로 모를 심는 오늘날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시골에서는 오월이든 유월이든 논노래를 듣지 못합니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오월과 유월에 귀가 찢어지도록 시끄러운 기계 소리만 듣습니다. 게다가 시골 할배는 으레 경운기를 몹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걸어서 들일을 가는 시골 할배는 아주 드물어요. 소를 몰며 들일을 하려는 시골 할배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도날드 홀 님이 쓴 글에 바바라 쿠니 님이 그림을 그린 《달구지를 끌고》(비룡소,1997)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997년에 나왔고, 미국에서는 1979년에 나왔습니다. 이 그림책은 지난날 미국 시골에서 ‘시골사람’이 달마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가를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4월에 농부가 깎아 두었던 양털 한 자루. 농부의 아내가 베틀로 짠 숄. 4월에 농부가 깎은 양털을 물레에 자아 털실을 만들고, 그것을 베틀에 짠 숄이지(4쪽).” 하고 이야기해요.


  그림책 《달구지를 끌고》는 책이름 그대로, 깊디깊은 숲속에서 살아가는 네 식구 가운데 ‘아버지’가 달구지에 짐을 잔뜩 싣고 도시로 물건을 팔러 다녀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네 식구는 한겨울에는 단풍나무 단물을 얻어서 졸이고, 삼월부터 시월까지 바지런히 온갖 일을 합니다. 달에 맞는 일을 합니다. 철에 맞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네 식구는 일을 하며 힘들다거나 고되다거나 지겹다고 여기지 않아요. 그저 이녁 스스로 삶을 누립니다.


  먹을 만큼 거둡니다. 먹고 남는 것을 달구지에 싣고 도시에 내다 팝니다. 가만히 따지면, 숲집에서 살아가는 네 식구는 굳이 도시에 가지 않아도 돼요. 열흘에 걸쳐 천천히 걸어서 도시로 가고, 다시 열흘에 걸쳐 천천히 걸어서 시골 숲집으로 돌아오는데, 도시에서 사오는 물건이란 기껏 ‘사탕 한 꾸러미’입니다. 무쇠솥 한 벌, 주머니칼 하나, 바늘 몇을 더 장만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은 굳이 도시까지 나가서 사지 않더라도 시골 숲집에서 스스로 만들 수 있습니다.


  “농부의 가족 모두가 만든 양초. 아마 섬유로 짠 리넨 천. 농부가 직접 쪼갠 널빤지. 농부의 아들이 부엌칼로 깎아 만든 자작나무 빗자루(6쪽).”를 달구지에 싣고 나가서 판다고 해요. 농사꾼 아저씨는 도시로 나가서 달구지에다가 소까지 모두 팔고 맨몸으로 돌아온다고 해요.


  아하, 그렇군요. 어린 소가 자라니 늙은 소는 도시에 파는 셈이로군요. 시골살이에 알맞게 살림을 줄인 셈이로군요. 숲살이에 걸맞게 살림을 도시 이웃한테 나누어 준 셈이로군요.


  도시에서 지내는 사람은 ‘단풍나무 단물’을 손수 졸여서 먹을 수 없습니다. 도시에는 나무도 없고 나무를 벨 수도 없으니, 시골사람이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은 널빤지를 사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양배추나 감자를 심을 땅이 없으니, 시골사람이 심어서 거둔 양배추나 감자를 사다가 먹어야 합니다.


  참말 도시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참말 도시사람은 시골사람 없이 어떻게 먹고살는지 궁금합니다. 시골에서 시골사람이 흙을 일구어 곡식과 열매를 거두지 않으면, 도시사람은 모조리 굶겠지요. 대통령도 굶고 시장도 굶어요. 공무원도 굶고 회사원도 굶어요. 의사도 판사도 교수도 학자도 기자도 모두 굶어야 합니다. 도시에서 아무리 내로라하고 으쓱거린다 하더라도, 시골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밥을 안 먹고 살 수 있는 도시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면, 오늘날 한국은 어떤 모습인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 시골지기는 어떤 대접을 받고, 한국에서 도시지기는 어떤 곳에 우뚝 서서 시골지기를 내려다보거나 깔보는지 헤아려 봅니다.


  한국에서 정치를 하는 이들은 시골지기한테 한 마디도 묻지 않고 자유무역협정을 맺습니다. 한국에서 행정을 하는 이들은 시골지기한테 한 마디도 듣지 않고 쌀값을 세우고 농협을 거쳐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거두어들입니다. 한국에서 경제개발을 하는 이들은 시골지기한테 한 마디도 여쭙지 않고 4대강사업을 밀어붙입니다.


  돈은 얼마나 있어야 할는지요. 경제성장은 얼마나 해야 할는지요. 공장은 얼마나 지어야 할는지요. 고속도로와 발전소는 언제까지 늘려야 할는지요. 왜 자꾸 아파트만 때려지어야 할는지요.


  언제나 곧게 잇는 삶이 아니라면, 삶빛이 피어나지 못합니다. 날마다 새로우면서 언제나 곧게 잇는 삶이 아니라면, 삶꽃이 돋아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바람을 마십니다. 우리는 모두 물을 들이켭니다. 우리는 저마다 밥을 먹습니다. 우리는 늘 햇볕을 쬡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흙을 밟습니다. 그렇지만, 학교와 사회와 방송과 인터넷과 책에서는 ‘바람·물·밥·해·흙’을 옳게 보여주거나 바르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스스로 어떤 삶을 일구면서 아이들한테 어떤 꿈을 물려주는지 아리송합니다.


  “3월이 되자, 농부의 가족은 단풍나무에서 수액을 받아 끓이 끓여 졸여서 단풍나무 설탕을 만들었어(32쪽).” 하고 이야기하는 그림책을 살며시 덮습니다. 우리는 삼월에 하는 일과 유월에 하는 일을 얼마나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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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7] 딸기알 함께 먹는 이웃
― 딱정벌레와 애벌레와 개미와


  해마다 오월을 맞이하면 우리 식구는 들딸기 먹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날마다 들딸기를 실컷 먹던 어느 날, 며칠쯤 바깥마실을 하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누군가 우리 들딸기밭에 몰래 들어와서 ‘덜 여문 딸기’까지 모조리 훑어 가져갑니다.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그리고 올해에도 이런 일이 되풀이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다녀오느라 여러 날 집을 비우니, 우리 들딸기밭에 며칠 나가지 못하는데, 꼭 이 즈음 누군가 모조리 훑습니다.

  날마다 바구니를 그득 채울 만큼 들딸기를 많이 거두던 들딸기밭이 텅 빕니다. 우리 마을에서 어떤 분이 이렇게 우리 들딸기를 모조리 가로챘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함께 누리거나 같이 즐기는 마음이 없는 모습을 읽습니다.

  씨가 말랐을 뿐 아니라, 들딸기넝쿨이 많이 짓밟혀 더 나기 어려운 자국을 살펴봅니다. 덜 여문 들딸기까지 따더라도, 이제 막 영글려 하는 넝쿨은 그대로 두어야 할 텐데, 이런 넝쿨까지 그예 짓밟은 자국을 보면 부아가 치밀기보다 안쓰럽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쩌다가 이런 몸가짐이 되었을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런 매무새가 되었을까요.

  군데군데 들딸기알이 몇 남습니다. 벌써 들딸기를 마지막으로 맛보는 셈인가 서운하지만, 아이들한테 몇 알이라도 맛보게 하려고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런데, 몇 안 남은 들딸기알마다 딱정벌레와 애벌레가 잔뜩 달라붙습니다. 개미도 달라붙습니다. 그래, 그렇지. 이 들딸기알은 사람만 먹지 않아. 너희들 딱정벌레도 먹고 애벌레도 먹으며 개미와 진딧물도 먹지. 풀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웃이 함께 먹지.

  벌레가 앉아서 단물을 빨아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이 아이들이 들딸기알 먹는 모습을 보니, 이 아이들을 휘휘 털어서 훑을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이 먹을 작은 들딸기알조차 모조리 훑었으니, 풀벌레는 얼마나 서운하며 슬플까요. 예부터 콩을 석 알씩 심을 적에 사람은 한 알만 먹도록 한다고 했지만, 풀벌레가 먹을 들딸기알을 조금도 남기지 않는 오늘날 시골사람 손길은 어떤 빛이 될는지 다시금 곱씹습니다.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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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6-08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딸기인가요

파란놀 2014-06-08 09:35   좋아요 0 | URL
네, 산딸기라고 할 수 있어요.
뭐, 그래도 좋은 들밥
잘 먹으셨기를 바라는데,
덜 여문 것까지 다 훑은 까닭은
효소로 담그거나 술을 담그려는 목적 때문이지 싶어요.
그러니 한 알이라도 더 훑어서 몽땅 가져가려고 했겠지요 ^^;;

하늘바람 2014-06-08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못됐네요
 

자리공꽃 책읽기


  자리공꽃이 핀다. 우리 도서관 풀숲에 한 포기, 또는 한 그루 올라온다. 이 자리공은 어떻게 이곳까지 퍼졌을까. 바람 따라 씨앗이 날렸을까. 농기계나 짐차에 씨앗이 달라붙어 이웃 논으로 퍼졌다가, 다시 이곳까지 왔을까. 어느 모로 보면 생뚱맞다 싶은 데까지 퍼진 자리공이다. 이 아이는 앞으로 어찌 될까. 더 퍼질까. 더 번질까. 더 뻗을까. 아니면, 다른 풀이 자리공은 더는 기운을 내지 못하도록 휘감거나 덮을까.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어마어마하게 들과 숲에 퍼부은 지 쉰 해가 넘는다. 새마을운동이 휘몰아친 뒤부터 이 나라 시골이 무너진다. 새마을운동은 아직 수그러들지 않는다. 독재정권 깃발을 나부끼던 이가 권력을 휘어잡다가 총알에 맞아 죽었으나, 이녁 딸이 커서 새롭게 대통령이 되면서 새마을운동 깃발은 더 기운차게 펄럭인다. 이 나라 시골에서 농약과 비료가 사라질 낌새는 보이지 않고, 석유 쓰는 기계에만 기대는 농업은 잦아들지 않는다.

  자리공을 베거나 자리공이 자라던 자리에 끔찍한 농약을 퍼붓는대서 자리공이 사라지지 않는다. 시골사람 스스로 흙일을 바꾸어야 자리공이 사라질 수 있다. 땀방울과 사랑을 흙에 담을 때에 이 땅에 걸맞을 풀이 자란다. 꿈과 노래를 들과 숲에 들려줄 적에 이 땅에 알맞을 풀이 돋는다. 무당벌레 한 마리가 자리공꽃에 앉아 볼볼볼 기면서 꽃가루를 먹는다. 무당벌레한테는 새삼스럽다 싶은 꽃가루맛일 테지.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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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나비가 앉기를 기다리기


  우리 집 풀밭에 흰나비가 잔뜩 깨어났다. 그런데 흰나비를 사진으로 담기에 만만하지 않다. 살그마니 다가가서 찍을라니 어느새 알아차려 저쪽으로 날아간다. 우리 집 뒤꼍은 우거진 풀밭을 이루었기에 천천히 다가가도 풀잎을 건드리기 마련이라, 흰나비는 어느새 알아차리고 훨훨 날아가고 만다.

  며칠, 아니 이레 넘게 입맛을 다시기만 하다가 어제 드디어 흰나비를 사진으로 석 장 담는다. 석 장 찍는 동안 얌전히 앉아서 고운 날개를 한껏 보여준 흰나비가 고맙다. 우리 집 풀꽃에 마음껏 앉아서 꽃가루이며 꿀이며 실컷 먹고 놀아라.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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