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휘파람새가 노래한다. 휘파람새는 언제부터 휘파람과 같은 소리로 노래를 했을까. 사람들이 휘파람을 분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로 알아보도록 휘파람을 불고, 혼자 숲에 깃들어 나물을 뜯거나 나무를 하면서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은 사람이 숲이랑 새랑 벌레랑 짐승하고 주고받는 노래이다. 휘파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퍼지는 고운 가락이다. 휘파람은 어떻게 하면 불 수 있을까. 휘파람을 불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는 늘 휘파람을 불며 살았다는 느낌으로, 휘파람은 내 입을 타고 멀리멀리 흩어져서 이야기가 된다는 넋으로, 휙 불면 된다. 그림책 《휘파람을 불어요》에는 휘파람 한 줄기로 웃음과 노래와 빛을 누리는 아이가 이쁘게 나온다. 4347.6.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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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을 불어요
에즈라 잭 키츠 지음, 김희순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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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00) 시작 44 : 하소연을 시작했다

첫째 딸 갈망이 걱정스럽게 묻자 마라는 딸들에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강호진-10대와 통하는 사찰 벽화 이야기》(철수와영희,2014) 37쪽

 하소연을 시작했다
→ 하소연을 했다
→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 하소연했다
 …


  한자말 ‘시작’ 말뜻을 헤아린다면 이 글월에서는 “하소연을 처음 했다”는 소리가 됩니다. 참말 하소연을 처음으로 했다면 “하소연을 처음 했다”라든지 “하소연을 처음 늘어놓았다”로 손보면 됩니다. 그러나, 그냥 하소연을 했다고 하면 “하소연을 했다”나 “하소연했다”로 손보면 돼요. 4347.6.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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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딸 갈망이 걱정스럽게 묻자 마라는 딸들한테 하소연을 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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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84) -화化 184 : 화하다


동자는 문수보살의 모습으로 화하여 유유히 멀어지고 있었다

《강호진-10대와 통하는 사찰 벽화 이야기》(철수와영희,2014) 125쪽


 문수보살의 모습으로 화하여

→ 문수보살 모습으로 바뀌어

→ 문수보살 모습이 되어

 …



  ‘化하다’는 “(1) 어떤 현상이나 상태로 바뀌다 (2) 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게 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바뀌다’요 ‘되다’인 셈입니다. 보기글에서도 “모습으로 바뀌어”나 “모습이 되어”로 손질하면 돼요.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뱀이 용으로 화하다”나 “큰비로 온 세상이 바다로 화했다”나 “그 외국인 신부는 우리 문화에 흠뻑 취하고 화하였기 때문” 같은 보기글이 나오는데, 이 글월은 “뱀이 용으로 바뀌다”나 “큰비로 온누리가 바다로 바뀌었다”나 “그 외국인 신부는 우리 문화에 흠뻑 빠져들고 익숙했기 때문”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4347.6.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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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는 문수보살 모습이 되어 천천히 멀어졌다


“문수보살의 모습”은 “문수보살 모습”으로 다듬고, ‘유유(悠悠)히’는 ‘천천히’로 다듬습니다. “멀어지고 있었다”는 “멀어졌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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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케익 먹기, 눈 먹기



  나는 1995년 11월 6일에 군대에 갔습니다. 나는 오른눈이 나쁘고 코가 나빠서 현역군대면제 대상이었지만, 내 앞뒤로 ‘미리 면제를 받을’ 누군가 있은 탓에, 오른눈으로는 4급 현역을 받고 코로는 3급 현역을 받았습니다.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기 앞서 내 눈은 ‘1.5(왼눈) + 0.1(오른눈)’이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마땅히 면제가 나오리라 여겼는데, 신체검사를 한 군의관은 30분 동안 ‘눈 검사 기계’에 내 눈을 들이대고 나서 ‘1.0 + 0.1’로 바꾸었습니다(다른 사람은 눈 검사를 1분만에 끝냈으나 저한테만 30분 동안 했습니다). 면제를 안 주려는 숫자였어요. 내 코는 수술을 해도 만성축농증을 고치지 못한다 했고, 그무렵 늘 병원에 다녔으나 이 또한 군의관은 5급이 아닌 3급을 주었습니다. 이때 군의관은 나한테 ‘7급(재검 자격)을 받아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가지고 오면 5급(면제)을 주겠다’고 몰래 얘기했습니다만, 나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려면 그때에 10만 원씩 든다고 했는데, 도무지 이만 한 돈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진단서를 떼어 오면 면제를 주겠다는 말이란, 진단서가 없어도 면제를 주어야 마땅하다는 뜻이니까요. 덧붙여, 그 자리에서 이녁한테 10만 원을 주면 병원에 다녀오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진단서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1995년 11월에 군대에 들어가서도 줄을 잘못 섰는지, 논산에서 18시간을 기차를 타고 이리저리 돌다가 성북역에서 한 차례 쉬면서 오줌을 누었고, 다시 기차를 달려 춘천역에 내렸습니다. 그러고는 춘천에서 군대 짐차를 타고 두 시간 달렸고, 배를 타고 소양강을 가로질렀으며, 다시 군대 짐차를 타고 저녁 내내 달렸습니다. 눈이 워낙 많이 내려서 더디게 가야 했고, 춘천에서 내린 지 이레만에 드디어 내 ‘자대(복무할 부대)’에 닿았습니다. 이동안 밤에 잠을 자던 곳에서 언제나 눈쓸기를 했는데, 태어나서 이토록 많은 눈은 처음 보았습니다. 자대에 닿으니, 곧 지오피(비무장지대)에 들어간다면서 마지막 훈련이 한창이었습니다. 자대에 온 지 하루나 이틀밖에 안 된 이등병은 훈련에서 면제라 했지만, 이때에도 어떤 까닭에서인지 더블백을 풀지도 않았으나 소총부터 받고 겨울훈련(혹한기훈련)을 뛰었습니다.


  제가 배치를 받은 중대를 거느리는 중대장은 ‘똘아이’라고 했습니다. 제풀에 미쳐서 날뛰면 대대장이나 연대장 앞에서도 삿대질을 하는 놈이었습니다. 연대장이 ‘너무 추우니 훈련을 멈추고 어서 천막을 치고 병사를 재우라’고 명령했지만, 중대장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일 때문에 혼자 창피하고 짜증이 난다면서 밤샘걷기를 했어요. 18시간 동안 강원도 양구 멧골짜기를 쉬지 않고 오줌도 누지 못하는 채 완전군장을 메고 걷기만 했습니다. 먹지도 쉬지도 오줌을 누지도 못하는 채 또 ‘18’(왜 18이라는 숫자가 되풀이되었을까요? 나중에 알아차릴 날이 오겠지요?)시간을 걷다가 문득 눈을 주워서 먹자고 생각했습니다. 옛날에 물이 없으면 하얀 눈을 녹여서 마셨다고 했으니, 물을 마시는 셈치고 눈을 먹자고 했어요.


  병장을 단 고참이 ‘눈을 먹으려면 조금만 먹어야 한다’고, 많이 먹으면 배앓이를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듣지 않기로 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팠거든요. 둘레에 가득 쌓인 이 하얀 눈을 눈이 아닌 ‘먹을 것’으로, 먹을 것 가운데 ‘케익’으로 그리기로 하면서 먹었어요(나는 배앓이를 안 했습니다).


  나는 군대에 가기 앞서까지 케익을 못 먹었습니다. 생크림조차 못 먹었습니다. 빵을 먹어도 크림빵은 안 먹고 단팥빵만 먹었어요. 생크림이나 케익을 먹으면 늘 배앓이를 하거나 물똥을 여러 날 누었습니다. 생일잔치를 할 적에 어릴 적에 크림케익을 꼭 한 번 먹고 크게 배앓이를 해서, 그 뒤로 늘 롤케익만 먹었어요. 그런데 왜 크림케익이 떠올라, 크림케익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눈을 집어먹었을까요?


  비무장지대에 들어가기 앞서 짧게 휴가를 받았습니다. 닷새 말미로 나온 휴가에서 동무들이 “뭐 먹고 싶니? 고기 먹고 싶지? 고깃집 가자?” 하고 말했지만, 나는 “아니, 케익.”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동무들은 깔깔 웃으면서 나를 고깃집으로 데려갑니다. 동무 하나가 밖에 나가서 생크림케익을 사 주었습니다. 1초쯤? 망설이다가 세겹살 고깃점과 케익을 나란히 먹었습니다. 케익을 먼저 혼자 다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동무들은 케익을 하나 더 사 주었고, 또 혼자서 고깃집에서 케익을 다 먹었습니다.


  군대에서 사회로 돌아온 지 어느덧 스무 해 가까이 됩니다. 이제 나는 생크림케익을 먹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먹은 눈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고깃집에서 먹은 케익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느 때에 그냥 물 한 잔을 마실 적하고, 물 한 잔에 이마를 대고 조곤조곤 사랑스러운 말을 속삭인 뒤 마실 적하고, 내 몸은 어떻게 맞아들일까요.


  군대를 마친 뒤 내 눈은 더 나빠졌으나, 내 코는 나아졌습니다. 깊디깊은 멧골짝에서 스물여섯 달을 살았기 때문일까요? 아마 그러하리라 느낍니다.


  좋은 것은 무엇이고 나쁜 것은 무엇일까요. 좋은 길은 무엇이고 나쁜 길은 무엇일까요. 1995년 3월에 신체검사를 받고 11월에 군대에 가기로 했기에, 깊은 멧골에서 스물여섯 달을 오롯이 보낼 수 있었고, 이때 기운이 바탕이 되어 나는 오늘 깊은 시골에서 네 식구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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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사찰 벽화 이야기 -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는 16가지 불교 철학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4
강호진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철수와영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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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3



그림을 읽는 눈

― 10대와 통하는 사찰벽화 이야기

 강호진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4.5.6.



  마음을 다스리는 까닭은 우리 마음이 아름다운 곳으로 흐르면서 삶을 빛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까닭은 우리 마음에 티끌이나 부스러기가 깃들지 않도록 하면서 따사로운 사랑이 깃들도록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느냐를 놓고 먼먼 옛날부터 무척 꼼꼼히 살피거나 헤아렸습니다. 아이 마음에 그려 넣는 빛에 따라 아이들이 하루를 받아먹고 삶을 가꾸기 때문입니다. 어린이한테 한국말을 옳고 슬기롭게 가르치면, 어린이는 이른 나이부터 한국말을 옳고 슬기롭게 써요. 어린이를 일찍부터 학원에 넣어 무언가 가르치려 하면, 어린이는 이른 나이부터 학원에서 무언가를 일찌감치 배우겠지요.


  예부터 어느 시골에서나 아이들은 낫질과 칼질을 일찍부터 합니다. 절구질과 방아질도 일찍부터 하고, 지게질이나 소먹이기를 일찍부터 해요. 늘 바라보던 일이요, 으레 곁에서 지켜보던 일이며, 어느새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 불교에서 대승보살의 수행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는 인욕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든 무작정 참는 미련한 견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에 처해서도 스스로를 설득시킬 수 있는 지혜와 부분이 아닌 전체를 꿰뚫어보는 통찰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세계에서 제가 어떤 모습과 어떤 이름으로 나고 죽길 반복해서 이 자리에 있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렇다면 수없이 나고 죽길 반복하는 과정에서 너의 부모가 과연 한두 분이었겠느냐?” ..  (22, 27쪽)



  오늘날 어린이는 시험문제를 잘 풉니다. 오늘날 어린이는 스마트폰을 잘 다룹니다. 오늘날 어린이는 버스나 지하철을 잘 탑니다. 오늘날 어린이는 연예인 이름이나 대중노래를 잘 외웁니다. 오늘날 어린이는 운동경기 소식이나 인터넷게임 이야기를 잘 주고받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어린이는 무엇을 못 할까요. 오늘날 어린이는 무엇을 모를까요.


  아마 오늘날 어린이는 밥을 지을 줄 모르겠지요. 오늘날 어린이는 빨래를 손수 하거나 걸레를 쥐어 방바닥을 훔칠 줄 모르겠지요. 오늘날 어린이는 씨앗을 심거나 풀을 뜯거나 나무를 할 줄 모르겠지요. 오늘날 어린이는 지게를 지거나 칡넝쿨로 나뭇단을 묶을 줄 모를 테고, 오늘날 어린이는 노젓기나 그물엮기를 못 하리라 느낍니다.


  오늘날 어린이는 어린 동생이나 아기를 얼마나 돌볼 줄 알까요. 오늘날 어린이는 국을 끓이거나 김치를 담글 줄 알까요. 오늘날 어린이는 물레를 잣거나 베틀을 밟거나 바느질로 옷을 지을 줄 알까요.


  오늘날 어린이는 나이를 먹으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든지 크고작은 심부름을 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스스로 삶을 짓는 일은 못 하리라 느낍니다. 남이 시켜서 일을 한 뒤 돈을 벌 수는 있어도, 스스로 흙과 풀과 나무와 물을 만지면서 삶을 가꾸지는 못 하리라 느껴요.



.. 불교는 전생의 업이나 윤회를 영원불변한 절대적인 체계로 바라보고 그것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러한 윤회와 업력의 틀을 어떻게 타파하고 벗어날 것인가를 고민하는 종교입니다 … 불자에게 관음보살의 성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여자라고 답할지도 모릅니다. 설화나 불교 영험담에서 관음보살은 여자의 몸으로 자주 나타날 뿐만 아니라 불화나 조각상에서도 통통한 살집,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 치렁거리는 목걸이와 팔찌 등을 차고 있어 여자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대승보살 조각상의 원형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보살은 아름답고 수려한 남성을 표현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대승에서 성별은 의미가 없습니다 ..  (77, 82쪽)



  강호진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사찰벽화 이야기》(철수와영희,2014)를 읽습니다. 강호진 님은 절집에 있는 그림마다 어떤 이야기가 서렸는가를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쉽고 알맞게 풀어냅니다. 그냥 그린 그림이란 없고, 아무 뜻이 없이 그린 그림이란 없다고 밝힙니다. 그림마다 깊고 너른 속뜻이 있고, 그림마다 온갖 숨결과 노래가 있다고 보여줍니다.


  불교에서 다루는 여러 이야기를 두루 헤아렸으면, ‘절집 그림’을 누구나 읽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불교 경전이나 책을 두루 읽었다 하더라도, 절집 그림을 모두 슬기롭게 읽을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절집 그림이든 예배당 그림이든 골목집 그림이든, 그림을 읽으려면 그림을 읽는 눈이 있어야 해요. 삶을 읽고 사람을 읽으며 사랑을 읽는 눈이 있을 때에, 비로소 그림을 읽을 수 있습니다.



..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인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 이 이야기는 항시 문수보살을 곁에 두고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들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문수보살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들 삶 속에서 하찮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누군가가 바로 문수보살입니다 … “아무리 작은 악일 지라도 짓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다 행하라.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 “세 살 아이도 아는 말이지만, 팔순 노인도 실천하기엔 어려운 말이라오.” ..  (90, 129, 156쪽)



  그림은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림으로 어떤 지식을 배우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까닭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려서 나누는 까닭은 이웃(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불교도 천주교도 개신교도 천도교도 지식이나 종교라는 틀에 갇힐 때에는 삶을 밝히지 못합니다. 어느 믿음이든 ‘종교’가 아닌 ‘삶’이라는 자리에서 이웃과 손을 맞잡고 함께 웃는 노래가 될 때에 이야기로 피어납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어머니가 지어서 차리는 밥이란 ‘영양소’가 아닌 ‘사랑’입니다. 아버지가 마련해서 끓이는 국이란 ‘영양소’가 아닌 ‘사랑’이에요. 아이와 함께 노는 어버이는 아이와 ‘놀아 주지’ 않습니다.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놀’ 뿐입니다.


  빼어나거나 훌륭한 이슬떨이가 있어서 어리숙한 사람을 깨우치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면서 숨결입니다. 다 함께 흙을 가꿉니다. 다 같이 살림을 꾸립니다. 서로서로 돕고 아끼면서 보금자리를 이룹니다. 손에 손을 모아 두레와 품앗이를 해요. 마음에 마음을 보태어 마을을 이루어요.



.. “만일 그대가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불교를 비방했다면 주인의 명령에 잘 따르는 개와 다름이 없고, 그대 스스로의 의지로 비방을 하였다면 잘 알지도 못하고서 비방한 것이니 스스로를 크게 속인 것입니다.” … 불교의 수행자는 마치 연꽃처럼 꼭 세속의 환경을 벗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 즉 그 마음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상징입니다 … 《유마경》은 또 정토 또한 별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마음이 청정해지면 바로 이곳이 정토가 된다는 뜻입니다 ..  (135, 149, 170쪽)



  학교교육은 대학입시를 바랄 때에 ‘교육’이 아닙니다. 학교교육은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가꾸도록 이끌 때에 ‘교육’입니다. 대학입시를 이끄는 학교는 굴레이거나 쳇바퀴입니다. 회사원이 되도록 이끄는 학교는 감옥이거나 노예제입니다.


  불교는 무엇이고, 종교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절집 그림은 무엇일까요. 왜 종교는 사람들 눈을 어둠으로 가릴까요. 왜 슬기는 사람들 눈을 빛으로 밝힐까요.


  《유마경》 그림이 이야기하듯이 수행자는 어디에서나 수행을 합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흙을 일구면서 언제나 수행입니다. 경전을 읊을 때에 수행이 아닙니다. 절집에 머물 적에 수행이 아닙니다. 경전을 읊거나 절집에 머물 적에는 훈련을 하겠지요. 훈련을 하는 까닭은 삶을 짓는 힘을 얻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절집 그림은 이야기합니다. 우리들이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삶을 짓는 힘을 스스로 얻도록 돕는 빛을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우리들이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빙그레 웃고 어깨동무하는 기쁨을 나누도록 돕는 빛을 살며시 이야기합니다. 4347.6.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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