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버스에서 잠든 아이를



  읍내로 저자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으레 두 아이가 잠든다. 신나게 뛰놀고 나서 버스에 타고는 가만히 앉으려니 졸음이 몰리겠지. 아이들은 동백마을 어귀에서 내릴 때까지 좀처럼 잠에서 안 깬다. 안아서 버스를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잘 안 깬다. 그러나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와서 마당을 가로질러 신을 벗기고는 마루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설 무렵 으레 잠을 깬다. 자리에 눕히고 나서 한두 시간 길게 곯아떨어지는 일은 어쩌다 한두 차례쯤 있다. 그저 집에 오기만 해도 기운이 새로 솟을까. 그예 집에 왔기에 다시금 기운을 차려 씩씩하게 뛰놀 수 있을까.


  아이들 옷가지와 양말을 빨래한다. 곁님 옷가지도 빨래한다.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려고 하는데 빗물이 듣는다. 그래도 모르는 척하고 빨래를 넌다. 비가 그치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조금 뒤 빗줄기가 굵어진다. 부랴부랴 빨래를 걷는다. 집안에 빨래를 옮기고, 다 마른 옷가지를 차곡차곡 갠다. 비야 비야 조금 더 오고 이따가 멎어 주렴. 우리 네 식구 풀물을 짜서 먹을 수 있도록 풀을 뜯게 말야.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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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러, 그 삶과 음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말러’라는 사람을 생각한다. 이녁은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짓고 지휘를 했을까. 이녁은 스스로 어떤 빛이 되어 숲과 들을 노랫가락에 담으려 했을까. 이녁은 사랑을 어떤 꿈으로 물들이면서 이웃과 삶을 어깨동무하려는 넋이었을까. 바람이 불며 바람소리가 가득하다. 바람이 자면서 새소리가 그득하다. 바람이 한들거리면서 바람과 새가 어우러지는 노래가 되고, 해가 기울면서 풀벌레와 개구리가 한껏 목청을 높인다. 해가 흐르면서 빛이 흐르고, 빛이 흐르는 동안 노래가 흐른다. 노래는, 글은, 그림은, 이야기는, 얼마나 아름다운 가락이 될 수 있을까.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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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그 삶과 음악
스티븐 존슨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1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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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13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43



어떤 삶을 바라나

― 경계의 린네 13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5.25.



  누구나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아갑니다. 스스로 바라지 않았는데 찾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나한테 찾아오는 모든 일은 스스로 마음속으로 바랐기에 찾아옵니다. 내가 겪는 모든 일은 스스로 마음속으로 빚은 이야기입니다.


  기쁨과 슬픔도 스스로 그립니다. 사랑과 꿈도 스스로 그립니다. 웃음과 눈물도 스스로 그립니다. 노래와 춤도 스스로 그립니다.


  오늘 이곳에서 늘 새롭게 살아가는 내 하루이기에, 내가 하루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나한테 찾아오는 빛이 바뀝니다. 스스로 삶을 새롭게 그리지 않으면 새로운 이야기가 없습니다. 스스로 삶을 새롭게 그리면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어떨까요. 이런 흐름을 느낄 수 있을까요. 이런 흐름을 느끼지 않은 채 날마다 똑같은 몸짓을 되풀이하면서 쳇바퀴로 살아가기만 할까요.



- ‘나는 로쿠도의 아버지에게 1000엔을 빌려드렸습니다. 분명 돈은 갚지 않겠지. 그런 예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26쪽)

- “괜찮겠어요, 린네 님? 아무리 공짜라지만.” “확실히 사신에게 낫은 생명과 같지. 말하자면 생명을 맡긴 거야. 그 신뢰에 응할 각오는 되어 있겠지?” (39쪽)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에 비가 퍼붓습니다. 비가 퍼붓는 소리를 얼핏설핏 들으면서 잠을 깹니다. 마당에 있는 살림 가운데 비를 맞으면 안 되는 것이 있는지 살핍니다. 섬돌 둘레에 흩어진 신을 추스릅니다. 제비집을 올려다봅니다. 비가 퍼붓지만 바람은 그리 불지 않아 빗물이 들이치지는 않습니다.


  이윽고 날이 새고 마을방송이 퍼집니다. 이장님은 올해부터 우리 마을이 ‘친환경농업단지’에서 풀린 까닭을 밝히지 않으면서 ‘친환경농업단지에 주는 친환경농약 보조금’이 사라졌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지난해와 그러께에 수없이 농약을 논에 뿌려댔으니 ‘친환경 쌀’이라고 내세운 우리 마을 쌀이 모조리 농약검사에 걸렸는데, 이런 이야기를 밝히지 않습니다.


  아마 밝힐 까닭이 없을 수 있어요. 모두 다 알 테니까요. 친환경농약이든 일반농약이든 모두 똑같은 줄 뻔히 알 테니, 굳이 ‘농약 없는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시골 할매와 할배는 ‘겉보기로 반들거려서 도시사람이 상품으로 좋아하는 농산물’만 거두면 된다고 여기리라 느껴요.



- “정말 돈 욕심은 없었던 거군요.” “연구에 열중하며 독특한 낫을 만드는 건 좋지만, 중요한 건 이, 평범한 낫인데 말이야.” (61쪽)

- “로쿠도 린네. 미…….” “사과하지 마, 카인. 너답지 않게. 다만, 빙의 스티커 값은 네 보너스에서 받아 간다.” (115∼116쪽)




  동이 트면서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이 부산합니다. 새끼 제비는 밥을 달라 노래합니다. 어미 제비는 비가 퍼붓는 하늘을 재빨리 날면서 먹이를 물어다 나릅니다. 이 빗속에서 먹이를 어떻게 찾았을까? 어쩌면 이렇게 비가 퍼붓는 날에는 나비나 벌레가 풀숲에 얌전히 앉아서 쉴 테니 먹이를 찾기 한결 쉬울까?


  어미 제비는 비가 오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빗줄기를 가르며 납니다. 나도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서 줍니다. 밥을 차리고 마당에서 풀을 뜯을 적에 전화가 오면 전화를 안 받습니다. 밥차림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거나 놀 적에 오는 전화는 못 받습니다. 아이들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재울 적에 오는 전화는 못 듣습니다.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엊저녁에 전화가 온 줄 비로소 압니다.


  하나하나 돌아보면, 나도 스스로 내 삶을 빚습니다. 아이들과 지내는 삶을 스스로 빚습니다. 밥을 차리고 옷을 갈아입히며 손을 잡고 마실을 다니는 삶을 스스로 빚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샘터를 치우면서 물놀이를 하고, 가까운 골짜기나 바다로 나들이를 가고, 둘레 초등학교 놀이터로 찾아가는 나날도 스스로 빚은 삶입니다.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노래 또한 스스로 빚은 삶일 테지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내가 오늘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노래를 처음 익힐 적에 스스로 생각했어요. ‘나중에 나한테 아이가 오면 이런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하고. 스무 해쯤 앞서 내 마음속에 깃든 이 꿈대로 오늘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오늘 품은 꿈대로 앞으로 스무 해를 더 살 테고, 스무 해 뒤에는 또 다른 스무 해를 마음속으로 그리겠지요.



- “리, 린네 님. 드디어 사 버렸어요.” “흥분하지 마, 로쿠몬.” “이런 사치를 부리다가 천벌 받진 않을까요?” “천벌은 무슨. 1년에 한 번 오는 크리스마스이브잖아? 촛불을 켜고 호화판 케이크(편의점 케익 한 조각)를 나눠 먹는 거야.” “촛불이야 매일 밤마다 켜고 살지만요, 하하하하.” (156∼157쪽)

- ‘어, 어떡하지? 꺼낼까?’ ‘다섯이 나눠 먹는다고요? 이 작고 앙증맞은 케이크를?’ ‘끝까지 숨길까? 하지만 기다려 봐. 어쩌면.’ (167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4) 열셋째 권을 읽습니다. 《경계의 린네》 열셋째 권에서는 ‘다음 삶’ 이야기가 흐릅니다. 오늘 이곳에서 누리던 삶을 미련하게 붙잡는 넋은 아직 ‘다음 삶’을 스스로 그리지 못한 숨결입니다. 몸은 죽었으나 몸이 죽기 앞서 다음 삶을 알뜰히 그리지 못했기에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떠돌며 애꿎은 짓만 일삼습니다. 다음 삶을 스스로 그려 새롭게 살아갈 빛을 꿈꾸지 못해요. 다음 삶을 스스로 빚어 사랑스레 살아갈 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 “어떡하면 만족하고 성불하겠어요? 무슨 소원이라도.” “훗. 아무것도 없어. 이 세상에 미련 같은 건.” “어, 그럼.” “얼른 성불해서 다시 태어나는 게 어때요?” “다시 태어나? 그, 그런 무서운 짓을. 지금보다 더 보잘것없고 인기 없고, 지금보다 더더더 한심한 인간으로 태어날지도 모르잖아.” (184∼185쪽)

- “자, 너는 어떤 내세를 원하지? 생각해 봐.” (187쪽)



  오늘 이곳에서 ‘몸이 아직 살아서 움직이’는 우리들은 어떤 삶일까 궁금합니다. 우리들은 ‘오늘 내 삶’을 얼마나 그리는가요. 아침마다 ‘오늘 내 삶’을 얼마나 새로 짓는가요. 저녁에 잠들면서 ‘이튿날 맞이할 내 새로운 하루’를 얼마나 새로우면서 아름답게 가꾸는가요.


  ‘또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잠들기에 참말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쳇바퀴 삶입니다. 언제나 새롭게 길을 찾으면서 빛을 밝히려는 마음이 자라지 않으면, 언제나 쳇바퀴에서 머뭅니다. 아니, 언제나 쳇바퀴를 밟으면서 쳇바퀴를 밟는 줄조차 느끼지 못해요.


  요즈막에 대통령 자리에 있는 어느 분이 ‘국무총리 후보’로 그 나물에 그 밥인 어리보기를 자꾸 고르는 까닭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느껴요. 그분 스스로 그런 삶을 쳇바퀴처럼 굴리는데, 스스로 쳇바퀴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새 삶을 지을 줄 모르고, 스스로 새 빛이 되면서 노래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4347.6.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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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18) 통하다通 64 : 책읽기를 통해


책을 통해 내 아이가 고급의 어휘력, 반짝이는 창의력, 파고드는 집중력을 갖기를 말입니다 … 집중력을 돋워 주기 위한 책읽기를 통해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박은영-시작하는 그림책》(청출판,2013) 16, 17쪽


 책을 통해

→ 책을 읽어

→ 책읽기로

→ 책으로

→ 책을 만나서

→ 책을 손에 쥐어

 …



  사람은 ‘책을 통해’ 배우지 않습니다. ‘책을 읽어’ 배웁니다. 책읽기는 책을 읽는 일이면서, 책을 만나는 일입니다. 책을 손에 쥐기에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어 배운다고 할 적에는 ‘책으로’ 배운다고 말합니다.


  보기글을 보면 첫머리에는 ‘책을 통해’라 적은 뒤, 다음에는 ‘책읽기를 통해’라 적습니다. 글쓴이가 ‘通하다’라는 낱말에 깊이 사로잡혔구나 하고 느낄 만합니다.


  앞쪽이나 뒤쪽 모두 ‘책읽기로’로 손질할 만합니다. 앞쪽이든 뒤쪽이든 ‘책으로’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책이란 무엇이고 책읽기란 무엇인지 차근차근 생각을 기울이면서 말힘을 북돋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6.12.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책으로 내 아이가 더 나은 말힘, 반짝이는 슬기, 한곳을 파고드는 마음을 갖기를 말입니다 … 집중력을 돋워 주는 책읽기로 아이가 어버이 사랑을 오롯이 느끼기란 쉽지 않다


“고급(高級)의 어휘력(語彙力)”은 “더 나은 말힘”이나 “더 나은 말”로 다듬고, ‘창의력(創意力)’은 ‘슬기’로 다듬으며, “파고드는 집중력(集中力)”은 “한곳을 파고드는 마음”이나 “파고드는 힘”이나 “파고드는 몸가짐”이나 “파고드는 눈썰미”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돋워 주기 위(爲)한”은 “돋워 주는”으로 손질하고, “부모(父母)의 사랑”은 “어버이 사랑”으로 손질하며, ‘온전(穩全)히’는 ‘오롯이’나 ‘고스란히’나 ‘그대로’나 ‘옳게’로 손질합니다. “느낄 가능성(可能性)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느끼기란 어렵다”나 “느낄 수는 없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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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17) 통하다通 63 : 섬진강을 통해


어쩌면 나는 감정이 메말라 섬진강을 통해 그것을 회복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 섬진강을 통해 형성된 동일한 고향성이 마을을 지켜 온 것 때문이 아닐까

《조문환-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북성재,2014) 29, 168쪽


 섬진강을 통해 회복하려는

→ 섬진강을 빌어 되찾으려는

→ 섬진강에서 되살리려는

→ 섬진강에 몸을 맡겨 살려내려는

 …



  섬진강을 따라 시골길과 냇길을 거닐던 글쓴이는 섬진강에서 삶을 보고 느끼며 배운다고 이야기합니다. 섬진강에서 무엇인가 되살리거나 되찾고 싶은 마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자꾸 “섬진강을 통해”라고 말합니다. “섬진강을 통해 형성된”이라고도 말하는데, ‘통하다’란 무엇일까요. 섬진강과 함께 이룬 삶이 아닐까요. 섬진강 곁에서 이룬 빛이 아닌가요. 섬진강 둘레에서 이룬 이야기요, 섬진강을 바탕으로 이룬 노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섬진강을 거닐면서 섬진강을 읽습니다. 섬진강을 찾으면서 섬진강을 느낍니다. 섬진강‘에서’ 꿈을 키우고 사랑을 만납니다. 4347.6.12.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어쩌면 나는 마음이 메말라 섬진강을 빌어 되살리려는지도 모른다 … 섬진강과 함께 이룬 똑같은 시골빛이 마을을 지켜 왔기 때문이 아닐까


‘감정(感情)’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마음’으로 다듬습니다. “그것을 회복(回復)하려는 것인지도”는 “이를 되살리려는지도”나 “되살리려는지도”로 손보고, ‘형성(形成)된’은 ‘이룬’으로 손봅니다. “동일(同一)한 고향성(故鄕性)”은 “똑같은 고향빛”이나 “똑같은 시골빛”으로 손질하고, “지켜 온 것 때문이”는 “지켜 왔기 때문이”로 손질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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