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43) -의 존재 5 : 그 사본의 존재


그들은 모두 너무 흥분한 상태라 그 사본의 존재를 잊어버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로렌스 R.스펜서/유리타 옮김-외계인 인터뷰》(아이커넥,2013) 258쪽


 그 사본의 존재를

→ 그 사본이 있는 줄

→ 그 사본이 있는지 없는지

→ 그 사본이 어디에 있는지

→ 그 사본을

 …



  있을 때에는 ‘있다’라 하고, 없을 때에는 ‘없다’라 합니다. 보기글에서 ‘있다’나 ‘없다’라는 낱말을 넣으면 토씨 ‘-의’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한국말을 올바르게 쓰는 자리라면 토씨 ‘-의’는 섣불리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국말을 올바로 못 쓰는 자리에는 으레 토씨 ‘-의’가 끼어들어요. 4347.6.19.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들은 모두 너무 들뜬 터라 그 사본이 있는 줄 잊어버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자말 “흥분(興奮)한 상태(狀態)라”는 “들뜬 터라”로 다듬습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흥분’을 “어떤 자극을 받아 감정이 북받쳐 일어남”으로 풀이하는데, ‘들뜨다’를 살피면 “마음이나 분위기가 가라앉지 아니하고 조금 흥분되다”로 풀이해요. 그러니까, 우리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을 쓰기보다 한자말을 쓰도록 부추기는 꼴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물의 왕국 12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46



내가 ‘나’를 가질 때

― 동물의 왕국 12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2.25.



  민들레가 돋습니다. 민들레는 이른봄에 살그마니 잎을 내놓고, 잎이 조금씩 커지면서 꽃대가 오르며, 꽃대가 쏙쏙 기운을 내면서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하얗거나 노란 꽃송이가 벌어지면 벌과 나비를 부르지요. 이른봄에 막 깨어난 벌과 나비는 소담스러운 민들레 꽃송이에 내려앉아 꽃가루를 받아먹습니다. 민들레는 벌과 나비, 또는 개미와 파리한테까지 꽃가루를 나누어 주면서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이러고 나서 꽃이 지고 꽃대가 더 높이 오르면서 하얗고 동그란 씨앗꾸러미를 이룹니다.


  어느 풀이든 씨앗이 퍼지면 시듭니다. 그리고, 곧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풀은 씨앗을 내놓으면서 힘을 잃어요. 씨앗을 맺기까지 모든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일까요.


  생각해 보면, 사람도 아기를 낳은 뒤 기운이 많이 줄어듭니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뼈도 살도 머리카락도 이도 많이 흔들립니다. 그만큼 새 목숨인 아기한테 엄청나게 커다란 기운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 “살기 위해 보여준 그 아름다운 모습!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내 눈엔 가련한 시체밖에 안 보여.” (14쪽)

- “동물이 오직 하나만 갖고 있는 것. 그것은 ‘주의력’이다. 뇌가 적은 에너지를 갖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그런 구조로 되어 있지. 뭔가 하나에 집중하면, 주위를 보는 것 같아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26쪽)




  여름에 민들레가 새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가을에도 민들레가 새로 올라옵니다. 새로 올라오는 민들레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러다가 잎을 톡톡 뜯습니다. 살살 쓰다듬은 뒤 입에 넣습니다. 여름에 먹는 민들레잎은 여름다운 싱그러움이 묻어난 맛입니다. 가을에는? 가을에는 가을빛이 서린 고운 맛입니다.


  민들레 옆에서 자라는 쇠비름을 뜯습니다. 질경이를 뜯습니다. 돌나물을 뜯고 고들빼기를 뜯습니다. 까마중도 뜯고 싶지만, 까마중은 잎이 돋기 무섭게 진딧물이 달라붙습니다. 까마중잎이 이렇게 맛있는가 보군요. 참말 까마중잎은 남아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뽕잎도 그래요. 뽕잎도 진딧물과 풀벌레가 아주 좋아해요. 이렇게 맛난 잎은 온갖 풀벌레가 다 좋아합니다.


  어떤 풀을 먹을 만한지 잘 모르겠다면, 벌레 먹은 잎을 먹으면 돼요. 무잎이나 배춧잎도 벌레가 잘 먹어요. 왜 그럴까요? 맛있기 때문입니다. 벌레한테도 맛난 잎을 나누어 줄 수 있으면 돼요. 벌레가 너무 먹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벌레 몫을 남기면서 사람 몫을 함께 누리자고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한 가지 남새만 밭에 심으려 하지 말고 온갖 남새를 골고루 심는 한편, 갖은 풀이 살뜰히 자라도록 돌보면서, 남새와 나물을 함께 누리면 아름답습니다.



- “로빈! 난 네가 좋다! ‘나’를 가져! 제발 힘내!” (32쪽)

- “이번 내 목적은 싸우는 것만이 아니다.” “뭐라고?” “다들, 좀 힘들겠지만, 버텨라. 내 울음소리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다.” (49쪽)

- “하긴. 내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그거라고! 풀이며 열매를 먹어 본 적 없는 육식동물이, 영원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지?” (60쪽)




  라이쿠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4) 열둘째 권을 읽습니다. 《동물의 왕국》 열둘째 권에서는 ‘내’가 ‘나’인 줄 잊은 목숨들이 나오고, ‘내’가 ‘나’인 줄 생각하거나 찾는 목숨들이 나옵니다. ‘내’가 ‘나’인 줄 잊기 때문에 ‘남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기계나 노예나 바보’가 됩니다. ‘내’가 ‘나’인 줄 알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살아가려는 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목숨은 힘이 세거나 이름이 높거나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내가 스스로 살아가려는 길대로 걸어가는 목숨은 힘이 여리거나 이름이 낮거나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습니다.



- “우린 타로우자가 없었다면, 사자의 새끼 죽이기에서 죽었어. 그렇지? 난 새끼 죽이기가 왜 있는 걸까 고민하다 깨달았어. 먹이 수가 제한되어 있으니, 살 수 있는 사자 수도 제한되고, 결국 사자끼리 서로 죽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거야.” (78∼79쪽)

- “너, 네가 뭔지 모르지? 나도 그래. 그냥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태어났고, 친구라 여겼던 주위 녀석들은 모두 텅 빈 껍데기였고, 마음이 담긴 대화라곤 할 수 없었어. 풀이며 나무, 탑 외의 동물들은 모두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빛나는데.” (118∼119쪽)




  오늘날 사람들은 저마다 어떻게 살아간다고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사람들한테 ‘삶’이 있다고 할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날마다 똑같이 쳇바퀴를 돌기만 할 뿐, 스스로 삶하고 자꾸 동떨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날마다 새 하루를 빚거나 가꿀 줄 모르는 한편, 스스로 이녁 삶을 아끼거나 돌보는 길을 잊거나 잃지 싶습니다.


  밥을 먹는다면 내가 스스로 먹습니다. 남이 숟가락에 떠서 먹이더라도 내가 입으로 씹고 목구멍으로 삼키며 뱃속에서 삭혀야 합니다. 밥을 먹어서 얻은 기운으로 내 삶을 스스로 돌보면서 북돋아야 합니다.


  밥뿐 아니라 물과 바람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남이 숨을 쉬게 해 주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숨을 쉬어야 합니다. 남이 나한테 물을 주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물을 마셔서 내 몸을 ‘물빛’으로 채워야 합니다.


  스스로 먹고, 스스로 살며, 스스로 잡니다.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놀며, 스스로 생각합니다. 스스로 사랑하지요. 스스로 노래해요. 스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요. 언제나 스스로 합니다. 학교에 다녀야 배우지 않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 가르치면서 배웁니다.



- “그래. 이건 내 경험이 아니야. 아마 누군가 맛본 유년 시절의 경험을, 적당히 짜 맞춰 만든 추억 프로그램이겠지. 갓 태어나, 무엇을 할지, 나 자신이 어떤 생물인지도 모르는 내겐, 안성맞춤의 억제력이었던 거지. 하지만 이제 난 혼자 일어설 수 있어. 타로우자가 가르쳐 줬거든.” (132쪽)

- “어떤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살피지 않고, 동료를 모욕한 상대에게 화를 낸 녀석이 있다. 난 그 모습에서 ‘강인함’을 느꼈고, 무척이나 흥미로웠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름다움’과 ‘고귀함’이었어. 동료에 대한 사랑으로, 생명이 고귀하게 빛나 보였단 말이다.” (134쪽)




  내가 ‘나’를 가질 때에 나는 비로소 ‘참다운 나’인 ‘참나’가 됩니다. 내가 나를 가지지 못할 때에는 아직 ‘참다운 나’가 아닙니다. 어쩌면 ‘거짓스러운 나’라 할 만합니다. 거짓스러운 나일 때에는 거짓을 마주하면서도 거짓이 거짓인 줄 알아차리지 못해요. 거짓스러운 나일 때에는 거짓이 거짓인 줄 모를 뿐 아니라 참이 참인 줄 모릅니다. 거짓도 참도 없이, 거짓도 참도 모르는 채, 그저 쳇바퀴를 굴리는 바보로 지냅니다.


  내가 나를 가지면서 내 삶이 태어납니다. 내가 나를 가지면서 내 이웃 누구나 서로서로 ‘나’가 싱그럽게 어깨동무하는 줄 알아봅니다. 나한테는 내가 있고 너한테는 너가 있습니다. 나와 너는 서로 다른 빛이면서 나와 너는 서로 같은 숨결입니다. 나와 너는 우리를 이루는 넋이면서 나와 너는 우리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 “함께 살아갈 방법을 많이 많이 가르쳐 줘.” (82쪽)

- “키메라라도 그런 가족을 갖자. 친구를 갖자. 덜 떨어진 목숨이란 말 따위나 듣고 있지 말자. 고귀하게 빛나는 훌륭한 동물이 되자.” (136쪽)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하며 아름답기에 훌륭합니다. 올림픽 같은 운동경기에서 1등을 해야 훌륭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며 삶을 지을 때에 아름답고 훌륭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 착합니다. 도덕 교과서나 철학책을 달달 외운들 착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나 시장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먹고살 만하지 않습니다. 삶을 스스로 짓듯, 밥을 스스로 짓습니다. 삶과 밥을 스스로 지으니, 사랑과 꿈도 스스로 지어요.


  직업교육을 받아야 꿈을 짓지 않습니다. 돈을 크게 벌어야 꿈을 지을 만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아야 사랑을 알지 않습니다. 살을 섞거나 입을 맞추어야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빛을 가슴에 품으면서 이 빛이 새롭게 태어나도록 이끌 때에 바야흐로 사랑입니다. 빛이 있기에 사랑이 싹틀 수 있고, 사랑이 싹트는 자리에서 아름다움이 환하게 퍼지며, 아름다움이 퍼지는 곳에서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야기가 있어 삶입니다.


  만화책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목숨 가운데 ‘내가 나인 줄 아는’ 이들은 언제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나인 줄 모르는’ 이들은 아무 이야기가 없습니다. ‘내가 나인 줄 아는’ 이들은 날마다 새 이야기를 짓습니다. ‘내가 나인 줄 모르는’ 이들은 지구별에 죽음과 잿더미를 만들 수는 있어도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이들한테는 명령과 지시와 복종과 계급과 신분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이들한테는 명령도 지시도 복종도 계급도 신분도 없습니다. 자, 오늘 한국에는 무엇이 있나요? 오늘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무엇이 있습니까?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찾아서 읽는 두 가지 길



  책을 찾아서 읽는 길은 두 갈래이다. 하나는 나한테 빛이 될 책을 스스로 살피면서 찾아내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남들이 나더러 읽으라 하는 책을 책방에 주문하는 길이다.


  나한테 빛이 될 책은 무엇일까? 알 수도 있지만 알 수도 없다. 책방에 가서 책시렁을 돌아볼 때까지 알 수 없기 마련이다. 책방에 가서 책시렁을 돌아보면서 비로소 책이 하나둘 눈에 뜨인다. 이런 책은 이렇게 나를 살찌우겠네, 저런 책은 저렇게 나를 북돋우겠네, 하고 느끼면서 책을 하나둘 고른다.


  남들이 나더러 읽으라 하는 책은 무엇일까? 누군가 짜거나 엮은 ‘추천도서 목록’이라든지 ‘필독서 목록’이라든지 ‘베스트셀러 목록’이라든지 ‘스테디셀러 목록’이다. 이러한 책은 책방으로 마실을 가서 살 수도 있으나, 이제는 굳이 책방마실을 하지 않아도 이러한 책은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척척 주문해서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책을 찾아서 읽는 길은 두 갈래이다. 내 삶을 밝힐 책을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천천히 읽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남들이 말하는 책을 바지런히 훑으면서 줄거리를 익히고 ‘주제를 알아내려’고 하는 길이다.


  내 삶을 밝히는 책을 스스로 찾아서 읽으면, 아주 마땅히 내 삶을 스스로 가꿀 수 있다. 남들이 말하는 책을 바지런히 살피면, 아주 마땅히 자격증도 따고 시험점수도 잘 받을 수 있다. 어느 쪽으로든 누구나 저마다 이녁 삶에 맞추어 가는 길이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42] 손톱꽃·손톱빛


  손톱을 곱게 물들입니다. 봉숭아를 빻아서 물들입니다. 바알갛게 물든 손톱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아하, ‘손톱물’을 들였구나. 물든 손톱은 곱게 빛납니다. 그래요, ‘손톱빛’이 새롭습니다. 요즈음은 손톱을 이쁘장하게 가꾸거나 꾸미는 사람이 많습니다. 손톱을 곱게 빛나도록 가꾸는 일을 하는 분도 많습니다. 이분들이 찬찬히 손을 놀려 이웃 손톱에 새로운 빛을 입히는 모습을 지켜보면, 마치 손톱에서 꽃이 피어나는 듯합니다. 그렇군요. 손톱을 가꾸는 이들은 손톱에서 꽃이 피어나도록 하네요. ‘손톱꽃’입니다. 손톱에서 빛이 나고, 손톱에서 꽃이 핍니다. 손톱에 고운 물이 흐르고, 손톱마다 맑은 이야기가 감돕니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풍덩 친구가 샘내는 책 1
우슐라 두보사르스키 지음, 앤드류 조이너 그림, 노경실 옮김 / 푸른날개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9



‘퐁’과 ‘풍덩’ 사이에서

― 풍덩

 우슐라 두보사르스키 글

 앤드류 조이너 그림

 푸른날개 펴냄, 2009.9.1.



  오스트레일리아라는 곳에서 사는 두 사람이 빚은 그림책 《풍덩》(푸른날개,2009)을 읽습니다. 우슐라 두보사르스키 님 글과 앤드류 조이너 님 그림이 어우러집니다. 숲속에 있는 못에 능금이 한 알 퐁 떨어지면서 생긴 일을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숲짐승한테 낯선 소리를 듣고는 어쩌면 크게 잘못되거나 저희를 괴롭힐 누군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걱정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숲속 짐승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놀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도 그렇지요. 쿵 하고 떨어지거나 쨍그랑 하고 깨질 적에도 사람들은 놀라요. 또는, 사람들 귀에 익숙하지 않은 어떤 소리가 크게 나면 두려움에 떨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소리가 나든 큰 소리가 나든 궁금하게 여기면서 살그마니 살필 수 있어요.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아닌 궁금함이라면 근심이나 걱정이 없어요. 이때에는 즐거움이나 새로움이라는 느낌으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 파란 하늘, 호숫가에는 잘 자란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가지 끝에 매달린 동그랗고 빨간 사과. 바람이 살랑살랑. 빨간 사과가 흔들흔들흔들 ..  (4쪽)



  그림책 《풍덩》을 보면 온갖 짐승이 귀엽게 나옵니다. 여우는 꽃을 꺾습니다. 토끼는 못가에서 케익을 먹습니다. 토끼가 케익을 먹는다니? 말이 되나? 네, 말이 안 됩니다. 토끼가 어떻게 케익을 먹나요. 게다가 숲에 무슨 케익이 있겠어요? 그런데, 곰은 더 웃깁니다. 곰은 해바라기를 하면서 얼음커피인지 얼음콜라인지 마셔요. 게다가 빨대까지 꽂은 유리잔인지 플라스틱잔을 손에 들지요.


  능금이 못에 떨어진 소리에 놀란 짐승을 보아도 재미있거나 웃깁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이니 캥거루가 나올 만하지만, 캥거루하고 코뿔소와 코끼리가 나란히 나와요. 무늬범과 범과 원숭이와 박쥐가 나란히 나옵니다. 여기에 말코손바닥사슴이 함께 나옵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보면서 ‘어우러지지 않는 숲짐승’ 모습을 놓고 따질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박쥐가 밤이 아닌 낮에 나오더라도 놀라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원숭이가 사람처럼 등을 꼿꼿이 펴고 두 발로 걸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리라 봅니다.



.. 여우가 달아나는 토끼들을 불렀습니다. “얘들아, 왜 그렇게 달려가니?” 토끼들은 멈추지 않고 소리쳤습니다. “여우야, 너도 빨리 달려!” “호수에서 무시무시한 풍덩 소리가 났어!” ..  (8쪽)



  못에 능금이 떨어지며 내는 소리와 얽힌 옛이야기는 아마 겨레나 나라마다 다 있지 싶어요. 그림책 《풍덩》은 오스트레일리아답게, 또 요즈음에 맞게, 새롭게 꾸민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그림결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게 엮었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나는 토끼들이 ‘당근이나 능금을 속살만 얼추 베어서 먹은 뒤 버린’ 모습이 못마땅합니다. 참말 토끼가 이렇게 먹을까요? 토끼가 왜 당근을 ‘위쪽 잎사귀가 하나도 없는’ 채 먹을까요? 수퍼마켓에서 파는 모습 같은 당근을 먹는 토끼일까요?


  토끼는 풀짐승입니다. 토끼는 풀을 먹습니다. 토끼는 풀을 남기면서 먹지 않습니다. 다 먹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토끼는 ‘케익은 빈틈없이 다 먹’지만, 당근과 능금은 속살만 베어 먹고 버립니다.



- 호숫가에서 즐겁게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23쪽)

→ 못가에서 즐겁게 점심을 먹습니다


- 나도 달아나는 게 좋겠어 (9쪽)

→ 나도 달아나야겠어


- 덩달아 달아나기 시작했지요 (11쪽)

→ 덩달아 달아납니다


- 동물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풍덩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13쪽)

→ 동물들은 한숨도 쉬지 않고 풍덩이 무서워 달아났습니다



  물에 빠지며 나는 소리는 여럿입니다. ‘퐁’과 ‘풍’이 있으며 ‘풍덩’과 ‘퐁당’이 있습니다. 능금 한 알은 어떨까요. 능금 한 알은 무거울까요, 가벼울까요. 토끼들이 능금알을 한손에 쥐고 가볍게 먹는다면, 능금알은 ‘안 무겁다’고 여길 만하겠지요. 그러면, 능금알이 물에 빠진다고 할 적에 나는 소리는 ‘크지 않’겠지요.


  다만, 그림책에서는 생각날개를 펼쳐 ‘능금이 못에 떨어지며 나는 소리가 아주 클 뿐 아니라 무시무시하다’고 여기도록 보여줄 수 있습니다. ‘풍덩’쯤 되어야 숲짐승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내뺄 만할 테니까요. 그러나, 능금알은 ‘퐁’ 소리가 나도록 물에 떨어질 뿐입니다.


  이 그림책은 어린이문학을 하는 분이 옮겼으나, 아이들 눈높이에 걸맞지 않은 낱말과 말투가 곳곳에 있습니다.



- 동물들은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13쪽)

→ 동물들은 그저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 곰은 화가 나서 (17쪽)

→ 곰은 부아가 나서


- 하지만 지금 당장 곰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는 (21쪽)

→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서 곰한테 잡아먹히기보다는


- 녀석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23쪽)

→ 녀석은 참말 어디 있느냐


-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인 것을 알게 됐거든요 (27쪽)

→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인 줄 알았거든요



  우리 어른들은 한자말로 자꾸 ‘호수(湖水)’를 말하지만, 한국말은 ‘못’입니다. 곰은 ‘화(火)’가 아닌 ‘부아’나 ‘골’이 납니다. “먹고 있었습니다”나 “달아나기 시작했지요” 같은 말투는 부디 어린이문학부터 걸러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올바로 익히도록 돕는 그림책 노릇을 하도록 마음을 기울여 주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그대로 배웁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본 아이들은 능금이나 배나 돌을 물에 떨어뜨려 볼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떨어뜨릴 적에 ‘퐁’이나 ‘풍’ 소리가 나더라도, 막상 이런 소리를 이 소리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림책에서 본 대로 ‘풍덩’이라고만 말할 수 있어요. 때로는 ‘퐁당’일 텐데, 소리를 엉뚱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풍덩’은 사람쯤 되는 커다란 짐승이 물에 뛰어들 적에 나는 소리입니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