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값 책읽기


  그제였지 싶다. 서울에 네 식구가 마실을 와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참 힘들었다. 아주 힘겹게 잡았다. 우리 식구 앞에서 택시를 멈추어 준 분은 내가 앞자리에 앉으니, 대뜸 묻는다. “외국사람 아니었어요?” 나는 방그레 웃으며 말한다. “외국사람 아니니 한국말을 하지요.” 나를 보며 외국사람이라고 묻는 말을 스무 살 적부터 들었다. 올해 내 나이가 마흔 살이니, 지난 스무 해 동안 나는 길거리에서 으레 ‘외국사람’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나를 외국사람 아닌 한국사람으로 보았다면 택시를 안 멈추어 주었을까. 설마 그랬을까 싶지만, 참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우리 시골집에는 거울이 없어 거울을 안 보고 사는데, 게다가 나는 스무 살 적부터 거울을 안 보고 살았는데, 남이 보는 내 얼굴은 이럭저럭 ‘볼 만한’ 얼굴이겠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볼 만한’ 얼굴이란 뜻이다. 한국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얼굴? 외국사람 같은 한국사람 얼굴? 그냥 외국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얼굴? 재미난 얼굴? 하하하. 참말 모처럼 크게 웃는다. 4347.6.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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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달리기


  인천에 있는 형네 집으로 가는 길에 맥주를 두 병 사고, 아이들 과자를 두 봉지 샀다. 아이들은 몸을 씻고 나서 이렇게 놀고 저렇게 놀다가 곯아떨어졌다. 나는 형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술이 떨어져서 내가 술을 사러 나왔다. 형은 이 둘레에 편의점이 거의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동안 골목마실을 하며 본 가게를 되새기며 터벅터벅 골목을 달린다. 내가 마음으로 찍어 둔 가게마다 문을 닫았다. 아직 밤 열두 시가 아니지만, 골목동네 작은 가게는 저녁 열 시나 열한 시 즈음이면 닫는다. 그나마 시골이라면 열 시까지도 안 열지.

  아파트와 가까운 데로 가야겠다 생각하며 커다란 아파트가 늘어선 데로 달려가니 가게 한 곳이 문을 막 닫으려다가 나를 보고 기다린다. 보리술 깡통을 네 개 고르고 값을 치른다. 다시 형네 집으로 달린다.

  형은 고단하다면서 몇 모금 홀짝이다가 쓰러진다. 우리 아이들은 일찍 곯아떨어졌다. 나도 일찍 자야겠지. 그래야 아이들과 아침부터 함께 놀 테지. 그런데, 좀처럼 잠이 오지는 않는다. 한밤에 골목을 오랜만에 달리고 보니, 예전에 아이들도 없고 곁님도 없이 이 동네에서 혼자 살던 때 일이 떠올랐다.

  나는 어떤 내가 참된 나일까 하고 돌아본다. 나는 어떤 삶을 지을 때에 스스로 가장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하고 되새긴다. 모로 누워 곯아떨어진 두 아이 이불깃을 여민다. 창가에 쓰러진 형 배와 등을 살살 쓰다듬어 본다. 아름답게 빛나기에 삶일 테지. 사랑스레 다시 찾아오기에 삶일 테지. 4347.6.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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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한테 묻다



  두 아이를 데리고 인천에 나들이를 온다. 두 아이는 일산부터 인천까지 가는 긴 전철길을 잘 견디어 준다. 그러나, 견딘다기보다는 잘 왔다. 나 스스로 아이들이 ‘견딘다’고 여기지 않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러 님들 가운데 하나인 큰아버지한테 가는 줄 알고 씩씩하게 기운을 내 주었다.


  큰아버지는 이녁 집에 있는 텔레비전을 켜 줄 뿐 아니라, 감귤주스도 그득 따라서 준다. 우리 집에서는 도무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재미있는 숨결인지, 감귤주스를 한 잔만 마시고 그 뒤부터는 물만 찾는다. 달콤하며 시큰한 주스보다는 목마름을 풀어 주는 물을 좋아한달까.


  너무 마땅하게도, 아이들한테는 아무것도 억지로 집어넣을 수 없다. 아이들은 언제라도 제 마음을 환히 드러내기 마련이다. 내가 아이들을 다그친들, 둘레에서 아이들을 다그친들, 아이들이 정작 하고픈 무언가 있다면 언제라도 터뜨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깥마실을 나올 적에, 아이들한테 물만 먹이지 않는다. 집에서도 물만 먹이지는 않는다. 언제나 아이들한테 찬찬히 말로 알려준다. 물은 무엇이고 다른 마실거리는 무엇인지 알려준다. 사이다나 콜라를 얻어서 마실 적에는 반드시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알리라고 말한다. 마시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제대로 마시면서, 어떤 마실거리이든 너희 몸에 사랑스러운 빛이 되도록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 큰아버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와 똑같다’고,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어느 모로 보더라도 나와 똑같다고 말한다. 나도 잘 알던 대목이지만, 옆에서 우리 형이 이렇게 말하니, 참말 더는 어찌할 길이 없는 노릇이다. 그래, 너희도 아버지도 언제나 예쁜 사람으로 살아야지. 너희도 아버지도 살가우며 사랑스러운 넋으로 언제나 새 하루를 맞이해야지. 4347.6.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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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가는 길


  두 아이를 데리고 움직인다. 아이들이 스스로 서도록 함께 살고, 나와 곁님도 저마다 서로 우뚝 서는 길을 생각한다. 누가 누구한테 기대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어울리고 같이 얼싸안는다. 즐거이 빛날 삶을 노래한다. 살가이 꿈꿀 길을 헤아린다. 어디에 있든 홀가분하고, 언제나 따사롭다. 아이들과 가는 길에서는 어느 곳에 있든 나 스스로 아이로 살며 고운 숨결이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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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칼을 든 사람은 이웃을 괴롭히거나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총칼을 든 사람은 언제나 이녁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죽이는 셈이다. 총칼은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 총칼은 사랑을 부르지 못한다. 총칼은 평화를 지키지 못한다. 총칼은 오로지 전쟁과 죽음과 미움과 노예를 부른다. 이와 달리, 나무를 쓰다듬는 사람은 이웃을 아끼거나 사랑한다. 나무를 쓰다듬다가 심는 사람은, 나무를 돌보면서 씨앗을 받고 어린나무를 가꾸면서 숲을 일구는 사람은, 언제나 이녁 스스로를 돌보면서 사랑한다. 나무는 모든 것을 낳는다. 나무는 사랑을 부른다. 나무는 평화를 지킨다. 나무는 한결같이 사랑과 평화와 꿈과 이야기를 길어올린다. 《조선의 소반·조선도자명고》를 쓴 일본사람 아사카와 다쿠미 님은 나무를 보듬은 넋이다. 나무를 보듬으면서 ‘식민지 조선’을 ‘식민지’가 아닌 ‘아름다운 숲’으로 느끼면서 얼싸안은 숨결이다. 이 나라 시골에서 수수한 여느 사람들 누구나 ‘밥상’을 아끼면서 건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밥상 하나’에 얽힌 아름다움을 느꼈고, 밥상마다 스민 아름다움을 가만히 읽으면서 한겨레가 오랜 나날 이룬 빛과 노래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아사카와 다쿠미 님에 앞서, 이 나라 어느 권력자나 학자나 지식인이 ‘밥상에 서린 빛’을 보거나 느끼거나 읽었을까. 그리고, 오늘날까지 어떤 한국 권력자나 학자나 지식인이 ‘밥상에 맺힌 노래’를 듣거나 느끼거나 읽는가. 문화는 궁궐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문화는 시골마을 조그마한 살림집에서 태어난다. 역사는 궁궐에서 나오지 않는다. 역사는 시골마을 조그마한 살림집이 깃든 숲에서 자란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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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반 조선도자명고- 학고재신서 8
아사카와 다쿠미 지음, 심우성 옮김 / 학고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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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1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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