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38. 쉬운 말
― 삶을 누구나 즐겁게 짓도록 하는 말


  《조지 아저씨네 정원》(시공사,1995)이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나는 이 그림책이 무척 멋있다고 느낍니다. 글과 그림이 아주 아름답게 어우러졌거든요. 그림책에 나오는 ‘조지 아저씨’는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만지며 사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아저씨네 땅은 넓지 않아요. 아주 작답니다. 아저씨는 조그마한 땅을 일구며 살지만 언제나 흐뭇하고 넉넉해요. 모든 풀·꽃·나무하고 속삭일 줄 알고, 새·벌레·짐승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웃들과 마음으로 사귀어요.

  그런데 이 멋진 그림책에 붙은 이름은 ‘정원(庭園)’입니다. 정원이란 어떤 곳일까요. 그림책에 ‘정원’이란 한자말로 이름을 붙인 어른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한국말사전을 뒤져 ‘정원’ 말뜻을 살피면, “집 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이라 나옵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은 ‘뜰’이나 ‘꽃밭’이라는 소리예요.

  다시금 한국말사전을 살핍니다. ‘뜰’을 “집 안의 앞뒤나 좌우로 가까이 딸려 있는 빈터. 화초나 나무를 가꾸기도 하고, 푸성귀 따위를 심기도 한다”로 풀이합니다. ‘꽃밭’은 “꽃을 심어 가꾼 밭”으로 풀이해요. 더 살피면, ‘화초(花草)’는 “꽃이 피는 풀과 나무”를 가리켜요.

  멋진 그림책에 “조지 아저씨네 꽃밭”이나 “조지 아저씨네 앞뜰”이나 “조지 아저씨네 뜨락” 같은 이름이 붙으면 어떠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 나라 아이들이 ‘뜰·앞뜰·뒷뜰·옆뜰·뜨락·꽃밭’ 같은 낱말을 눈으로 읽고 귀로 들으면서 자랄 수 있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이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집숲’이나 ‘숲집’ 같은 낱말도 듣고, ‘풀꽃집’이나 ‘나무꽃집’이나 ‘꽃숲집’ 같은 낱말을 들으면서 자란다면 어떠할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저는 어릴 적에 이웃 할아버지한테서 ‘철’이라는 낱말을 처음으로 제대로 들었습니다. 아마 열 살 즈음이었지 싶은데, 일흔 살이 넘은 이웃 할아버지는 열 살짜리 아이한테 “얘야, 철이 들지 않으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아니란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한테 여쭈었지요. “할아버지, 그러면 내가 할아버지 나이가 되어도 철이 안 들면 어른이 아닌가요?” “그렇지.” “할아버지, 그러면 할아버지가 아직 철이 안 들었으면 할아버지도 어른이 아닌가요?” “그렇지.” “우와, 그러면 철이 들어야 어른이 되네요.”

  이때부터 저는 ‘철’이라는 낱말을 들을 적마다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어요. 봄철·여름철·가을철·겨울철 같은 낱말을 들으면서 괜히 웃음이 나면서 즐거웠어요. 1980년대 국민학교 교과서에는 ‘철’이라는 낱말과 함께 ‘계절’이라는 낱말이 나오고, 어른(교사와 어버이와 이웃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철’이라는 낱말보다 ‘계절’이라는 한자말을 더 즐겨 씁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날씨를 알리든 여느 방송이든, 어른들은 으레 ‘계절’이라는 한자말만 읊어요. 라디오에서 흐르는 대중노래에서도 언제나 ‘계절’이에요.

  스무 살이 넘은 어느 때, 동무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철’이라는 낱말이 제 입에서 흘러나왔어요. 동무들은 이 낱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저더러 ‘철’이 무엇이느냐고 묻습니다. 어리둥절해서 ‘철’도 모르느냐고, ‘봄철’ 할 때에 철이라고 말하는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한자말 ‘계절’이 한국말로 ‘철’이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알아듣지만 다시 묻지요. ‘철’이라는 낱말이 참말 있느냐고.

  여느 어른들은 ‘철’이라고 하면 ‘쇠’를 가리키는 한자 ‘鐵’을 떠올립니다. 한국말 철을 그리는 어른이 몹시 드뭅니다. 쇠를 ‘쇠’라 가리키지 못하니, 쇠를 가시처럼 엮은 그물을 놓고 ‘쇠가시그물’이라 가리키지 못하고 ‘철조망(鐵條網)’이라고만 가리킵니다. 부엌에서 쓰는 수세미도 ‘쇠수세미’라 하는 사람보다 ‘철수세미’라 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느껴요.

  철이란 무엇일까요. 철은 날씨를 가리키면서 때를 나타냅니다. 제대로 찾아오는 흐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철이 든다”고 할 때에는 “옳고 그름과 참거짓을 살피거나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뜻해요. 다시 말하자면, 옳고 그름을 살피거나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마음바탕일 때에 ‘어른’이라는 소리입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지 않아요. 성년식을 치렀기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가게에서 주민등록증 없이 술이나 담배를 살 수 있기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철이 들 때에 어른입니다. 생각이 바르게 설 때에 어른입니다. 생각을 아름답게 키워서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짓고 삶을 가꿀 때에 어른입니다.

  생각을 이어 보면, 우리 사회는 ‘철’이라는 낱말을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책이나 교과서에서도 올바르게 안 다룹니다. 아니, 억누르거나 짓밟거나 내팽개친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막는다고 할 만해요.

  ‘하늘’이나 ‘바람’이나 ‘숲’이나 ‘집’이나 ‘사랑’이나 ‘사람’이나 ‘삶’ 같은 낱말을 찬찬히 읽고 들으면서 생각하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이 나라 아이들은 이 같은 낱말을 언제 어디에서 어느 만큼 들으면서 생각을 키울 수 있는가요. 껍데기말만 자꾸 퍼뜨리는 어른이지 싶습니다. 껍데기말에 사로잡힌 나머지 아이들한테 알맹이말하고 멀어지도록 부추기는 어른이지 싶습니다.

  ‘하늘’이라는 낱말을 써야 하늘을 생각합니다. ‘바람’이라는 낱말을 써야 바람을 생각합니다. 깊이 들여다보고 넓게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똑바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집’이 아닌 ‘가옥·주택·주거지·부동산’이라는 이름만 자꾸 쓰면, 우리는 스스로 집을 잊어요. 집이 어떤 곳인지 잃습니다. ‘사랑’이 아닌 ‘연애·애정·자비·자애·러브’ 같은 이름을 자꾸 쓰면, 우리는 스스로 사랑을 잊거나 잃어요.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사랑을 지으며 삶을 가꾸는 사람은 어떤 빛일까요.

  쉬운 말 한 마디는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쉽게 주고받는 말 한 마디는 저마다 생각을 꽃피우도록 북돋우기 때문입니다. 쉬운 말 한 마디란 ‘삶을 누구나 즐겁게 짓도록 이끌거나 돕는 말’이라고 느낍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스스로 내 모습을 돌아보고 삶을 바라보면서 길을 찾도록 드리우는 빛이 ‘쉬운 말’이지 싶습니다. 4347.6.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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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59] 제비들과 노래해
― 어미 제비는 한결 가까이


  새끼 제비가 스스로 날갯짓하기까지 얼마 안 남습니다. 이제 어미 제비는 새끼한테 거의 마지막이라 할 먹이를 물어 나릅니다.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가 스스로 날면서 스스로 먹이를 찾도록 이끌면서 어떤 마음이 될까요.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한테 마지막 먹이를 물어다 주면서 어떤 마음이 샘솟을까요.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먹이를 물어 나른 어미 제비는 이제 빨랫줄에도 살그마니 내려앉습니다. 새끼 제비가 이제나 저제나 둥지를 스스로 박차고 날아오를까 하고 생각하며 기다립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빨랫줄에 앉은 제비를 보고는 폴짝폴짝 뛰면서 인사합니다. 아이들이 폴짝거리면서 손을 흔드니 어미 제비는 포르르 날아서 헛간 위쪽 전깃줄로 옮겨 앉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노래하는 제비들 목소리는 사뭇 다릅니다. 새끼 티를 벗고 어른 티가 나려는 듯합니다. 며칠 앞서까지 가느다랗거나 가녀린 목소리였다면, 오늘 아침에는 제법 굵고 씩씩한 목소리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도 나날이 새로운 목소리로 거듭납니다. 큰아이는 큰아이답게 더 말을 잘 할 뿐 아니라 노래도 잘 부릅니다.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답게 말씨마다 또렷한 기운이 드리우고, 누나가 하는 말이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든 곧잘 따라합니다. 손놀림도 늘어 혼자서 장난감 조각을 잘 떼고 붙이면서 놀아요. 두 아이는 모두 호미를 쥐어 땅을 쫄 수 있으며, 자전거 마실을 하다가 비파 열매를 둘 따서 건네니, 비파 열매를 둘이서 마당 한쪽에 호미로 땅을 콕콕 쪼더니 심습니다.

  유월에서 칠월로 넘어가는 길목에 새끼 제비는 이곳저곳에서 날갯짓을 익힙니다. 우리 집 어린 제비는 이웃집 어린 제비를 만나서 신나게 어울릴 테고, 우리 마을 제비는 이웃 여러 마을 제비를 만나서 즐겁게 어우러지리라 봅니다.

  훨훨 날며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훨훨 날며 하늘빛으로 깃털을 물들입니다. 훨훨 날며 하늘숨을 마시고, 하늘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제비 곁에서 제비춤을 추면서 제비와 노래를 부릅니다. 가벼운 몸짓으로 뛰고, 가붓한 얼굴로 까르르 웃습니다. 4347.6.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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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50. 제비집과 우리 집 2014.6.21.



  나흘 동안 시골집을 비우고 바깥마실을 다녀온 사이, 제비집이 제법 달라진다. 이제 새끼 제비는 무럭무럭 자라, 새끼 네 마리가 들어앉은 둥지가 좁다고 느낄 만하다. 어미 제비는 다 자란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 주느라 아직 바쁘다. 새끼 제비는 곧 좁은 둥지에서 벗어나 스스로 날갯짓을 할 수 있겠지. 혼자서 날갯짓을 할 때부터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겠지. 날개를 펼쳐 펄럭일 날까지 조금 더 자랄 테고, 우리 집 아이들은 새끼 제비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올해에도 즐겁게 보겠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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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하고 너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무엇인가 있기에 서로 다를 테지. 아이와 어버이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둘은 무엇을 사이에 놓고 사랑과 꿈을 속삭일까. 풀과 나무 사이에는, 숲과 바다 사이에는, 시골과 도시 사이에는, 마음과 몸 사이에는, 하늘과 땅 사이에는, 온누리와 지구별 사이에는, 저마다 무엇이 있을까. 삶은 늘 우리 보금자리에서 스스로 이룬다. 삶은 늘 우리 보금자리에서 스스로 가르치면서 배운다. 아이들은 학교나 유치원이나 학원이 아닌 보금자리(집)에서 삶을 배우고 사랑을 느끼며 꿈을 키운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학교나 유치원이나 학원이 아닌 보금자리(집)에서 삶을 가르치고 사랑을 물려주며 꿈을 이룬다. ‘따뜻한그림백과’ 가운데 하나로 나온 《사이》는 이러한 삶을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까. ‘나와 남 사이’를 말하고 ‘우리와 나 사이’를 보여주는 《사이》는 아이들 마음에 어떤 빛으로 스며들 만할까. 이 그림책을 아이한테 읽히는 어버이는 어떤 넋을 가꿀 만할까. 4347.6.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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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나는 누구와 어떤
재미난책보 지음 / 어린이아현(Kizdom)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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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2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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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푸른길을 걷다가



  아파트로 그득한 일산인데, 곳곳에 나무가 우거진 푸른길이 있다. 이 푸른길이 풀밭이나 흙길이 아닌 시멘트돌바닥이라서 아쉽지만, 둘레로 나무가 우거지니 무척 싱그럽다. 나무가 이만큼 우거지기까지 몇 해쯤 걸렸을까. 푸른길은 이 나라 시골이나 도시에 얼마나 있을까. 시골이든 도시이든 나무가 우거진 길을 건사하거나 돌보거나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 보금자리가 있는 마을에 푸른길이 있으면 애써 여행을 다니지 않아도 되고, 굳이 수목원이나 공원으로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4347.6.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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