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 나는 누구와 어떤 따뜻한 그림백과 43
재미난책보 지음 / 어린이아현(Kizdom)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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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1



너와 나 사이에는 하나

― 따뜻한 그림백과 043 : 사이

 김경진 그림

 재미난책보 글

 어린이아현 펴냄, 2013.12.30.



  나는 어릴 적부터 ‘사이’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 둘레 어른들은 나한테 ‘사이’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내가 떠올리는 어릴 적 삶은 국민학교(초등학교)부터인데, 이 언저리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 둘레 어른들은 내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숨결인지 아닌지 알려주지 않았아요. 내 둘레 어른들은 내가 수많은 목숨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빛인지 아닌지 가르치지 않았어요.



.. 세상에는 나와 남이 있어요 ..  (2쪽)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갔고 1993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1994에 대학교에 들어간 뒤, 1995년에 그만두려 했으나 이해에 군대에 간 뒤 1997년 12월 31일에 사회로 돌아와서 1998년 가을에 대학교를 그만두었어요. 이동안 나는 학교라는 곳에서 사랑을 배우거나 꿈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꿈이나 사랑이라는 낱말은커녕 꿈이나 사랑을 가꾸는 ‘삶’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내가 꿈을 처음 생각한 때는, 아니 처음 생각한 때가 아니라 처음 느낀 때는 2006년입니다. 이때에 나는 이오덕이라고 하는 분 유고를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1월 1일부터 한 가지를 다짐했어요. 나한테는 운전면허증이 없어 늘 시외버스를 타지만, 이해 2006년에는 시외버스조차 안 타고, 또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가더라도 전철을 안 타고, 자전거만 타기로.


  그렇지만, 2006년 한 해에 전철을 아예 안 타지 않았습니다. 아마 다섯 차례 탔지 싶어요. 시외버스는 참말 한 차례도 안 탔지 싶은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오나 늘 자전거를 탔어요. 그리고, 한 해 내내 자전거로 움직이면서 깨달았어요. 아, 자전거로도 얼마든지 다닐 만하네 하고요. 자전거로 하루에 50킬로미터를 출퇴근하더라도 다닐 만하다고 느꼈어요. 2006년 이해에 나는 날마다 120킬로미터쯤 자전거로 달리면서 지냈어요. 2006년에 나는 충청북도 음성에서 살았고, 볼일을 보러 서울에 주마다 한 차례씩 자전거로 오갔습니다.



.. 남들끼리는 서로 싸워요. 우리가 조금 더 가지면 남은 그만큼 덜 가지게 되기 때문이에요 ..  (16∼17쪽)



  날마다 자전거로 백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리면 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이동안 아름다운 이웃도 만나고 끔찍한 이웃도 만납니다. 아름다운 이웃은 나한테 말없이 내가 자전거로 잘 달리도록 돕습니다. 끔찍한 이웃은 갑자기 내 자전거 옆이나 앞으로 끼어들면서 내가 죽을는지 모르도록 괴롭힙니다.


  이즈음 나는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일부러 나를 치고 뺑소니를 친 자동차가 여럿 있어서 나는 ‘자동차에 치여 하늘을 붕 날다가 길바닥에 꽝 하고 떨어질’ 적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어요. 어깨뼈가 으스러지거나 무릎이나 손목이 나가서 꼼짝을 못할 뿐이었습니다. 2011년까지 여러모로 뒤앓이를 치렀어요. 어깨를 못 쓰고 팔을 못 쓰고 손목을 못 쓰고 무릎을 못 쓰는 채 지냈어요.


  그러면, 이제 내 몸이 나았을까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2014년 요즈음에도 자전거를 탑니다. 요즈음은 내 자전거 뒤에 샛자전거와 수레를 붙여서, 일곱 살 큰아이와 네 살 작은아이를 태우고 다닙니다. 샛자전거에는 큰아이가 앉고 수레에는 작은아이가 앉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마실을 다니면 무척 좋아해요. 두 아이는 모두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까르르 웃고 노래합니다.



.. 나는 사람들하고만 이어져 있는 건 아니에요. 내가 서 있는 땅, 내가 마시는 공기와 물,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도 이어져 있어요 ..  (25쪽)



  김경진 님 그림하고 재미난책보에서 빚은 글이 어우러진 《따뜻한 그림백과 043 : 사이》(어린이아현,2013)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이란 무엇일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무엇일까요. 한자로 적는 ‘人間’이 아니라, 한국말로 적는 ‘사람’에서 사이는 무엇일까요.


  한국말에서 ‘사이’는 ‘틈’이요 ‘겨를’이며 ‘말미’입니다. 한국말에서 ‘사이’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빈 자리’입니다. 아니, 한국말에서 ‘사이’는 ‘쉼터’예요.



.. 모를 땐 남이지만, 알고 나면 모두가 우리예요. 세상에 남은 없어요 ..  (30쪽)



  너와 내가 쉽니다. 너와 내가 즐겁게 쉽니다. 너와 내가 즐겁게 웃으면서 쉽니다. 그렇지요. 쉬는 두 사람은 빙그레 웃을 뿐 아니라 밥을 나눕니다. 함께 쉬는 두 사람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함께 쉬는 두 사람한테는 울타리, 이른바 국경이나 경계가 없습니다.


  그래요. 우리한테는 ‘사이’가 있어야지요. 우리는 사이를 아껴야지요. 우리는 서로서로 사이를 보듬으면서 아름답게 살아야지요. 너와 나는 남이 아닙니다. 너와 나는 하나입니다. 내가 보기에 너는 남일는지 모르나, 이렇게 말하려 하면, 네가 보기에 내가 남이 될 테지요.


  너와 나를 가르려 하면 서로 ‘적’이 되어요. 너와 내가 하나인 줄 알면 서로 ‘삶’이 되어요. 삶이기에 사이입니다. 삶이기에 사이이면서 사랑입니다. 삶이기에 사랑이면서 사이요 꿈입니다. 어버이와 아이 사이에 아름다운 빛을 노래하는 그림책이 있으면 참으로 따사로우리라 생각합니다. 4347.6.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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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77. 언제나 날아 (2014.6.10.)



  아이들은 틈만 나면 난다. 하늘을 붕붕 난다. 어느 아이든 난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아이들은 신나게 난다. 그러니까,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늘 언제 어디에서나 훨훨 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할 때에 즐겁다. 아니, 어른으로서 우리가 할 일이라면 아이들이 즐겁게 날 수 있게끔 하는 멍석깔기이지 싶다. 사름벼리야 고마워. 네가 접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면서 그렇게 펄쩍 날 수 있다니, 너는 참 멋진 아이야.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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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비행기 놀이 5 - 가볍고 빠르게



  일곱 살 사름벼리가 종이비행기를 접을 적에 처음에는 아버지 손을 빌어야 했다. 아버지는 처음에 잘 접어 주다가 아이한테 맡긴다. 아이가 잘 안 된다고 징징거려도 못 본 척했다.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기를 바랐다. 아이는 참 오래도록 끙끙거렸다. 아이가 끙끙거리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무척 아팠다. 그러나, 우리는 시골집에서 살고, 이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도 않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하다. 한 시간만에 끝내야 한다든지 오늘 끝내야 하지 않다. 여러 날 걸려도 좋다. 한 달이 걸려도 된다. 아이가 스스로 종이비행기를 접을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사름벼리는 끝내 종이비행기를 스스로 접는다. 꽤 오래 걸렸지만 스스로 알아냈다. 보고 또 보고 또 보면서, 접고 또 접으며 또 접은 끝에 드디어 혼자서 접은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마당에서 날리면 더 잘 날겠다고 생각하면서 날린다. 아버지더러 한쪽 끝에 서서 종이비행기를 받은 뒤 되날려 달라고 한다. 그래, 같이 날려 주지. 4347.6.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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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짜릿 저리는 글쓰기



  지난해부터 쓰던 글을 마무리짓는다. 글쓰기는 지난해부터 했지만, 이 책을 쓰려고 스무 해 앞서부터 생각했으니, 꽤 오래된 글이라 할 만하다. 글쓰기를 마친 뒤 차근차근 처음부터 되새겨야 하는데, 아버지가 글쓰기 일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때 밥을 챙겨 주지 않았다고 떠올리면서 저녁을 끓인다.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냄새와 소리를 들으면서 살짝 틈을 낸다. 이러다가 다시 밥을 끓이고, 다시 글을 조금 건드린 뒤, 마저 밥을 차린 뒤 아이들을 부른다. “자, 이제 아버지는 얼른 마무리를 지어서 보내야 할 글이 있어. 이 일을 마치고 우체국에 다녀와야 하니, 너희끼리 먼저 저녁을 먹으렴. 너희가 밥을 다 먹고 나서 아버지도 일을 끝내고 부지런히 다녀오자.”


  오랜 품을 들여서 마무리짓는 글을 짜릿짜릿 저리다. 가슴이 저린다. 손목도 저리고 온몸이 저리다. 이 글은 앞으로 어떤 옷을 입고 이웃들한테 나누어 줄 책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한 시간 뒤에 우체국이 닫으니 더 기운을 내자. 4347.6.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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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 -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의 한국 언론 이야기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3
최승호.지승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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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4



‘권력’이 아닌 ‘사랑’을 말하라

―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

 최승호·지승호 이야기

 철수와영희 펴냄, 2014.6.23.



  이름이 같은 두 ‘승호’가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승호 님은 최승호 님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조곤조곤 묻고, 최승호 님은 지승호 님이 묻는 말에 따라 생각을 북돋우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는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의 한국 언론 이야기’라고 합니다.


  최승호 님은 문화방송에서 일하다가 ‘잘렸’다고 합니다. 문화방송 사장한테 밉보여서, 또는 이 나라 대통령한테 밉보여서, 또는 이 나라 정치권력한테 밉보여서 문화방송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방송사 사장한테는 칼자루가 있어서 피디 한 사람을 자를 수 있는 듯합니다. 대통령이나 정치권력자한테는 ‘힘(권력)’이 있어서 피디 한 사람쯤 파리 한 마리로 여길 수 있는 듯합니다.


  틀림없이,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이 적거나 여리거나 없는 사람을 짓밟을 수 있습니다. 어김없이, 힘이 없는 사람은, 힘이 세거나 많거나 큰 사람한테 짓눌릴 수 있습니다. 주리를 틀 수 있겠지요. 목아지를 비틀 수 있겠지요. 그런데, 주리를 틀거나 목아지를 비틀더라도, 옛사람 이야기마따나 해는 다시 떠올라요.



.. 안광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보수·극우 세력들에게 보내는 선물이죠. 자기네들의 생존을 위해서 바치는 전리품이라고 할가요 … MBC라는 공영방송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기는 오로지 충성만 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안 사장이 보수·극우 세력에게 자기 진정성을 내보인 거로 봅니다 … 법원이 방송인은 공정한 방송을 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한 거거든요. 이를 방해하고 막는 시도가 있다면 파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항거하고 투쟁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거예요 ..  (8, 9, 12쪽)



  피디 한 사람을 쫓아낸대서 ‘거짓말’이 ‘참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 ㅈㅈㄷ신문이 온갖 ‘말’을 쏟아부을 뿐 아니라, 돈을 들여 방송사를 만들어 온갖 ‘말’을 퍼붓는다 하더라도 ‘거짓말’이 ‘참말’이 되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쥐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 이런저런 말을 읊거나 언론조작을 한다고 하더라도, 참말로 그렇지요. 참말로 ‘거짓말’이 ‘참말’이 되는 일이 없고, ‘참말’이 ‘거짓말’이 될 수 없습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요. 콩을 심은 데에서는 콩이 납니다. 팥을 심은 데에서는 팥이 납니다. 사랑을 심은 곳에서는 사랑이 납니다. 미움을 심은 곳에서는 미움이 납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사람들을 짓밟거나 짓누르는 ‘씨앗’을 마구잡이로 심습니다. ㅈㅈㄷ신문을 비롯해서 온갖 철부지들이 거짓말이라는 ‘씨앗’을 아무렇게나 심습니다.


  통제와 강압과 차별과 전쟁이라는 씨앗을 심으니, 그네들은 ‘그 씨앗에 따른 열매’를 거둡니다. 거짓말을 심는 기자와 피디와 작가와 학자와 교수와 지식인은 ‘그 씨앗에 따른 열매’를 거두지요.



.. 왜곡된 언론 현실 속에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진실이 전달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 퇴보의 주체들이 모두 MBC 내부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김재철 사장, 그 측근들, 하수인들이, 후배들을 잘라내는 인간 백정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데서 날아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같이 ,BC에서 일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이분은 자기가 저질러 놓고도 딴 얘기를 해요. 마치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대합니다. 연기를 너무 잘해요 … 언론을 통제의 대상으로 볼 뿐, 언론의 자유를 믿는 집단은 아닌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보수는 ..  (16, 19, 20쪽)



  최승호 님은 “언론 탓이 크다”고 되풀이해서 말합니다.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최승호 님은 언론을 밝히려는 일을 하니까, 아무래도 “언론 탓이 크다”고 말할 만합니다. 최승호 님이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다면, 아마 “교사 탓이 크다”라든지 “학교 탓이 크다”라든지 “교육 탓이 크다”고 말했을 테지요. 최승호 님이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일을 했다면 “정치 탓이 크다”고 말했을 테지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탓할 것은 한 가지도 없으면서, 어느 것이나 탓할 만합니다. 탓해야 한다면 무엇을 탓해야 하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탓해야 할까요. 나쁜 놈을 탓해야 할까요. 나쁜 제도와 법과 권력을 탓해야 할까요. 전쟁이나 군대나 재벌을 탓해야 할까요. 주한미군을 탓하거나 수구보수 무리를 탓해야 할까요.


  탓해야 할 것은 언제나 한 가지라고 느껴요. 우리 삶이 삶답게 흐르지 못하도록 가로막거나 짓누르는 울타리를 탓해야지 싶어요. 우리 스스로 삶을 삶답게 바라보지 못하도록 목을 죄거나 숨통을 막는 덫을 탓해야지 싶어요.


  그런데, 울타리는 남이 놓지 않습니다. 덫은 남이 놓지 않습니다. 전쟁은 누가 일으킬까요. 군대에는 누가 있을까요. 전쟁무기는 누가 어느 공장에서 만들고 어느 과학자가 어떤 실험실에서 새롭게 뽑아낼까요.


  길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정치권력이 밀양에 송전탑을 박고 싶다면 박으라고 하셔요. 정치권력이 핵발전소를 자꾸 늘리고 싶다 하면 늘리라고 하셔요. 정치권력이 골프장을 또 짓겠다고 하면 또 지으라고 하셔요. 정치권력이 아파트를 새로 짓겠다면 또 지으라고 하셔요. 그리고 떠나요. 정치권력이 있는 곳을 떠나요. 서울을 떠나고 부산을 떠나요. 시골에서도 떠나요. 우리 모두 손을 놓아요. 우리 모두 회사에 나가지 말고 공장에 가지 말아요. 우리 모두 학교에 나가지 말고 유치원에 아이들을 넣지 말아요.


  사람은 며칠 굶는다고 해서 안 죽습니다. 사람은 이레쯤 굶는다고 해서 안 죽습니다. 자, 정치권력 거머쥔 이를 남겨 놓고, 우리들 모두 손을 놓아 보셔요. 지하철과 버스도 멈추게 하고, 수돗물도 전기도 모두 멈추게 해요. 하수시설도 멈추게 하고, 고속도로도 멈추게 해요. 공항도 병원도 모두 멈추게 해요. 그리고 모두 집에서 가만히 쉬어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깊이 생각에 잠겨요. 사흘쯤, 아니 사흘이 아닌 꼭 하루만 이렇게 해도 돼요. 신문도 끊고 방송도 끊으며 인터넷도 끊어요. 모두 다 끊어요.


  그러면 됩니다. 대통령은 대통령 혼자서 밥 해 먹고 똥 누고 하라고 놔두셔요. 대통령은 밥을 스스로 논에 씨앗을 뿌려 풀 뽑고 낫으로 나락을 베어 햇볕에 말리고는 절구로 빻아서 나무를 한 다음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끓여 먹으라고 하셔요. 솥도 손수 쇠를 담금질해서 만들라고 하셔요. 절구도 손수 돌을 깎아서 만들라고 하셔요. 숟가락과 젓가락도 대통령이 손수 만들라고 하셔요. 낫도 손수 만들라고 하고, 옷도 대통령이 손수 모시풀에서 손수 실을 뽑아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아서 바느질로 지어서 입으라고 하셔요. 참말 이렇게 하면 모든 실마리를 풀 수 있습니다.



.. 문제는 종편이 아니라 지상파 공영방송들입니다. 이들이 제대로 보도하면 종편이 힘을 갖기가 어렵죠. 문제는 공영방송이 아무것도 안 한다는 데 있습니다 … 방송이 세상을 보는 데 특별히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 요즘 권력자들이 좀 더 뻔뻔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자정 능력을 이미 상실한 건 아닐까 해요 … 정부가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를 하면서 국민들에게 그 의미와 효과를 정직하게 밝히지 않고, 거짓말 홍보를 하고, 꼼수를 쓰면서 강압적으로 추진했다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그렇게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 놓은 상태에서 세금을 무려 22조나 쓰는 엄청난 사업을 벌였다는 겁니다. 환경은 환경대로 망쳐 버리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켰다고 생각하는데요 ..  (25, 30, 49쪽)



  최승호 님은 “언론 탓이 크다”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언론은 잘 하지도 잘못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해야 할 말을 할 뿐입니다. ㅈㅈㄷ신문은 ㅈㅈㄷ신문대로 이녁 밥그릇을 채울 만한 일을 합니다. 사람들은 ㅈㅈㄷ신문이 이녁 밥그릇을 채울 수 있도록 도울 뿐입니다. 문화방송에서 새로운 사장이 되는 이들이 이녁 밥그릇을 지키는 일만 한다잖아요? 그러면 그러라지요. 그렇게 살다가 죽으라지요. 그렇게 살면서 ‘사랑’도 ‘꿈’도 모르는 채, 스스로 쳇바퀴를 도는 철부지 짓이나 하라지요.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를 읽으면, 최승호 님은 문화방송에서 쫓겨난 일을 슬퍼하지 않습니다. 슬퍼할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최승호 님은 문화방송에 있건 뉴스타파에 있건 ‘할 말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파헤칠 것을 파헤쳐서, 알릴 것을 알리는 사람이 바로 최승호 님이지 싶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기자회견을 안 했잖아요. 그걸 기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는 아무도 대통령에게 질문을 안 하는 거예요 … 신뢰라는 것은 한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거든요. 저널리스트에게 신뢰도는 생명과도 같기에 길게 보면서 쌓아가야 합니다. 특종을 하겠답시고, 순간적으로 사람을 현혹해서 자료를 얻고 그걸 근거로 보도하는 기자들은 오래 못 가요 … 진실은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대통령 지지율은 60퍼센트를 넘는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느끼는 희망은 급속하게 줄어드는 것 같고요. 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언론의 탓이 큽니다 ..  (59, 78, 86, 99쪽)



  ㅈㅈㄷ신문에 기대는 사람은 스스로 빛을 안 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ㅈㅈㄷ신문에 얽매인 사람은 스스로 사랑을 안 키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도 우리 이웃이니 모른 척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모른 척하지 않아야 한대서 이들만 생각할 까닭은 없어요. 우리는 우리가 나아갈 길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아야 할 빛을 보고, 우리가 말해야 할 꿈을 말해야지 싶어요.


  우리는 ‘권력’을 말할 까닭이 없습니다. 권력을 비판하건 안 비판하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말해야 할 뿐입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건 나 스스로를 사랑하건 아주 대수롭습니다.


  최승호 님이 뉴스타파에서 할 일은 늘 한 가지예요. 문화방송에서도 늘 한 가지를 할 수 있으면 되었으니, 바로 ‘사랑 말하기’입니다. 삶을 밝히는 사랑을 말하고, 꿈으로 나아가는 사랑을 말하면 됩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ㅈㅈㄷ신문을 만드는 기자도 밥을 먹어야 합니다. 대통령 ㅂㄱㅎ이건 ㅇㅁㅂ이건 바람을 마셔야 삽니다. ㅂㄱㅎ이건 ㅇㅁㅂ이건 똥오줌을 안 누고는 못 살지요.


  정치권력이나 도시나 물질문명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삶이 대수롭습니다. 사랑이 대수롭고, 서로를 밝히는 꿈을 가꾸는 나날이 대수롭습니다. 오늘까지 씩씩하게 한길을 걸어오셨듯이, 앞으로도 씩씩하게 한길을 걸어가는 최승호 님과 뉴스타파가 되기를 바랍니다. 4347.6.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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