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본 은행알



  시외버스를 타고 일산 시내에서 서울 시내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은행나무를 본다. 은행나무가 참 잘 자랐구나. 밤에도 등불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기 힘들 텐데 씩씩하게 잘 크는구나. 가지를 뻗고 잎을 돋우며 열매를 맺네. 간판을 가릴 만큼 푸르게 우거지네.


  그래, 간판쯤 얼마든지 가리렴. 그래, 건물도 높다란 아파트도 모조리 가리렴. 네 푸른 그늘을 나누어 주렴. 사람들이 에어컨에 기대지 말고 네 곁에서 잎바람을 마시고 풀바람을 머금도록 해 주렴. 삶을 밝히는 싱그러운 빛을 네 곁에서 누리도록 해 주렴.


  사람들이 알아보건 안 알아보건 은행나무는 자란다. 사람들이 쳐다보건 안 쳐다보건 은행알은 굵게 맺는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가득한 도시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나무들이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니, 이 도시에서 온 목숨을 살리는 바람이 분다. 4347.7.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로 읽는 책 150] 꽃이 되는 이야기



  듣는 사람이 있어

  함께 피어나는

  이야기.



  꽃은 외곬로 피어나지 않습니다. 햇볕과 바람과 비와 흙이 골고루 어우러지기에 꽃이 피어납니다. 꽃이 피어나서 씨앗을 맺는 동안 꽃은 잎으로 바람을 한결 싱그럽게 보듬고 햇볕과 비를 머금은 줄기이며 잎이며 씨앗이며 흙한테 내주면서 흙이 새롭게 깨어나도록 돕습니다. 이야기는 외곬로 흐르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함께 흐릅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아끼는 마음일 때에 이야기가 됩니다. 말하는 사람은 이녁 말로 이웃한테 사랑을 베풀고, 듣는 사람은 이녁 매무새로 이웃한테서 사랑을 받습니다. 4347.7.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손빛



한 땀으로 노래를 부르고

두 땀으로 춤을 추고

석 땀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넉 땀으로 사랑을 퍼뜨리고

닷 땀으로 꿈을 이루는

구슬땀 손뜨개.


여섯 땀으로 씨앗을 심고

일곱 땀으로 무지개를 엮고

여덟 땀으로 풀밥을 먹고

아홉 땀으로 삶을 짓고

열 땀으로 아이와 노는

밝은 손빛.



4347.7.10.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꽃섬공원 책읽기



  쓰레기 구덩이에서 꽃섬으로 거듭난 공원을 지나간다. 일산 대화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에 지나간다. 나무가 커다랗거나 우람하지는 않다. 그러나, 나무가 알맞게 자라니, 앞으로 열 해가 흐르고 스무 해가 더 흐르면 나무까지 아름다운 공원이 되리라 느낀다. 서른 해나 마흔 해를 이대로 더 흐를 수 있으면, 꽃섬공원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겠지. 백 해나 이백 해를 이대로 더 흐를 수 있으면 어떤 빛이 될까. 오백 해나 천 해를 이대로 더 우거질 수 있으면 어떤 숲이 될까.


  꽃섬공원을 두고 그림책이 곧잘 태어난다. 풀과 꽃과 나무와 흙이 어우러진 터전이 아름답기에 사람들 가슴을 포근히 적신다. 사람들은 이 기운을 즐겁게 받아먹으면서 그림책을 빚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을과 보금자리를 푸르게 가꿀 때에 즐겁다. 마을과 보금자리에 나무를 심어 숲이 우거지도록 돌볼 때에 사랑스럽다.


  체육관이나 아트센트를 지어야 하지는 않는다. 극장이나 도서관을 늘려야 하지는 않는다. 숲을 가꾸어야 한다. 숲을 늘려야 한다. 찻길을 줄여야 한다. 자동차를 줄여야 한다.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고 맑은 물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삶을 지을 때에 책을 지을 수 있다. 4347.7.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이랑 놀자 49] 긴다리



  일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달리다가 커다란 냇물 옆을 지나갑니다. 커다란 냇물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있습니다. 나는 네 살 작은아이한테, 저기 ‘한가람’ 있네, 저기 ‘긴다리’ 있네,  하고 말합니다. 이 아이한테 무슨 ‘대교’라는 말을 한들 알아들을 수 없고, 처음 보는 커다란 냇물은 ‘가람’이라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렇지요. 아이한테는 ‘숲’이지 ‘삼림’이 아닙니다. ‘나무’이지 ‘수목’이 아니에요. 어른들이 아이와 보드랍고 쉽게 나눌 말을 헤아려 처음부터 아름답게 빛나는 삶을 가꿀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7.7.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