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60) 대大- 1 : 대제국


압도적으로 강력한 군사력과 강력한 경제력으로 고대 세계를 지배하고 군림했던 대제국이었다

《오다 마코토/양현혜·이규태 옮김-전쟁인가 평화인가》(녹색평론사,2004) 34쪽


 대제국이었다

→ 큰 제국이었다

→ 커다란 제국이었다

→ 큰나라였다

 …



  ‘대(大)-’는 외마디 한자말입니다. 한국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말사전에 이 한자말이 나옵니다. “‘큰, 위대한, 훌륭한, 범위가 넓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라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보면, ‘대가족’, ‘대기자’, ‘대보름’, ‘대선배’, ‘대성공’ 같은 낱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낱말은 모두 다듬어서 새롭게 써야지 싶어요. ‘큰식구’, ‘큰기자’, ‘큰보름’, ‘큰선배’, ‘큰성공’으로 쓰면 넉넉합니다.


  한국말사전에 ‘큰-’도 올림말로 나옵니다. 그렇지만, ‘큰-’은 “맏이”를 뜻하는 낱말로만 다룹니다. ‘큰고모’나 ‘큰이모’나 ‘큰동생’ 같은 보기글을 실어요. 얄궂은 노릇입니다. 왜 한국 학자는 한국말을 제대로 다루지 않을까요. ‘큰길·큰일·큰절·큰치마·큰코·큰스님·큰살림·큰마음·큰말’처럼, ‘큰-’도 여러모로 씁니다. 이러한 낱말을 바탕으로 삼아서, ‘큰뜻’이나 ‘큰사랑’ 같은 낱말을 쓸 만합니다. ‘큰나라’라든지 ‘큰마을’을 쓸 수 있습니다. 4338.5.25.물/4347.7.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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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센 군대와 경제로 옛 세계를 다스리고 거느렸던 큰나라였다


“압도적(壓倒的)으로 강력(强力)한 군사력(-力)”은 “엄청나게 센 군사력”이나 “견줄 수 없이 센 군사힘”으로 다듬습니다. “강력(强力)한 경제력(-力)”은 “대단한 경제력”으로 다듬을 만한데, 보기글을 살피면 ‘강력한’이 잇달아 나옵니다. 앞뒤 글월을 묶어서 “엄청나게 센 군사힘과 경제힘”이라든지 “아주 큰 군대와 경제”로 다듬어 봅니다. “고대(古代) 세계”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예전 세계”나 “옛 세계”로 손볼 수 있습니다. “지배(支配)하고 군림(君臨)했던”은 “다스리고 거느렸던”으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985) 대大- 8 : 대혈전


매년 부상자가 속출하는 대혈전이야

《모리모토 코즈에코/장혜영 옮김-조폭 선생님 8》(대원씨아이,2004) 171쪽


 부상자가 속출하는 대혈전이야

→ 다치는 사람이 쏟아지는 엄청난 싸움이야

→ 사람들이 엄청 다치는 큰 싸움이야

→ 피튀기는 싸움이 벌어지는 판이야

→ 사람이 많이 다치는 엄청난 싸움판이야

 …



  한자말 ‘혈전(血戰)’은 “생사를 가리지 아니하고 맹렬하게 싸움”을 뜻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한자말 ‘혈전’이니까, 이 낱말 앞에 ‘큰-’보다는 ‘大-’가 붙기 좋습니다. 한국말로 ‘싸움’이나 ‘싸움판’을 쓴다면, 이 낱말 앞에는 ‘大-’가 붙기 어렵고 ‘큰’이나 ‘엄청난’이 붙기 좋을 테지요.


  어떤 잔치를 가리킨다면, ‘큰잔치’이거나 ‘작은잔치’입니다. ‘대잔치’나 ‘소잔치’가 아닙니다. 싸움을 가리킬 적에도 ‘큰싸움’과 ‘작은싸움’이라 하면 됩니다. ‘큰일’과 ‘작은일’처럼 쓰면 넉넉합니다. 4340.10.18.나무/4347.7.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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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다치는 사람이 쏟아지는 엄청난 싸움이야


‘매년(每年)’은 ‘해마다’로 손질합니다. ‘속출(續出)하는’은 ‘쏟아지는’으로 다듬고, ‘부상자(負傷者)’는 ‘다친 사람’으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092) 대大 9 : 대발견


어느 날 아침, 항상 물놀이를 하는 작은 은하수에서 아이들이 대발견을 했습니다

《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은미경 옮김-숲에서 크는 아이들》(파란자전거,2007) 114쪽


 대발견을 했습니다

→ 대단한 것을 찾았습니다

→ 엄청난 것을 보았습니다

→ 놀라운 것을 찾아냈습니다

 …



  한자말 ‘발견(發見)’은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냄”을 뜻한다고 해요. 쉽게 한국말로 하자면 ‘찾음’이나 ‘찾아냄’인 셈입니다.


  “새 항로의 발견”이란 “새 바닷길을 찾음”이고, “신대륙의 발견”이란 “새 대륙을 찾음”이며, “새로운 유적과 유물의 발견”은 “새로운 유적과 유물을 찾음”이에요.


  한자말 ‘발견’을 쓰기 때문에 ‘大 + 발견’ 꼴이 됩니다. 한국말로 ‘찾다’를 쓴다면 ‘대단한’이나 ‘엄청난’이나 ‘놀라운’ 같은 말을 넣으리라 느껴요. 아이들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한국말로 쉽고 바르게 글을 써야 느낌과 뜻과 생각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4341.4.18.쇠/4347.7.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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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늘 물놀이를 하는 작은 미리내에서 아이들은 대단한 것을 찾았습니다


‘항상(恒常)’은 ‘늘’로 손질합니다. ‘은하수(銀河水)’는 그대로 써도 되고, ‘미리내’로 손볼 수 있습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26) 대大- 10 : 거대한 대저택


작은 오두막집이 아니라 거대한 대저택이었다

《리 캐롤/오진영 옮김-집으로 가는 길》(샨티,2014) 310쪽


 거대한 대저택이었다

→ 커다란 집이었다

→ 큰집이었다

→ 아주 큰 집이었다

 …



  한자말을 안 써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한자말을 써야 한다면, 제대로 써야 하고, 알맞게 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한국말이 있는데 굳이 한자말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한국말이 있는데 영어를 쓸 까닭이 없듯이, 한국말로 알맞고 즐겁게 쓰면 되는데, 구태여 한자말을 불러들일 까닭이 없어요.


  보기글을 살피면 두 가지 한자말이 나옵니다. 먼저 ‘거대(巨大)’인데 “엄청나게 큰”을 뜻합니다. 다음으로 ‘大-’를 붙인 ‘대저택(大邸宅)’으로, 이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다만, ‘저택(邸宅)’이라는 한자말만 한국말사전에 나와요. ‘저택’은 “규모가 아주 큰 집”을 가리킵니다.


  말뜻을 살폈으니, 글을 어떻게 썼는지 헤아려 봅니다. “아주 큰 집”을 가리키는 ‘저택’이니, 이 한자말 앞에 ‘大-’를 붙이는 일은 겹말입니다. 더욱이, ‘대저택’ 앞에 ‘거대’라는 한자말을 붙이는 일은 다시금 겹말입니다.


  한국말로는 한 마디면 됩니다. ‘큰집’이에요. 또는 “아주 큰 집”입니다. 얼마나 큰가를 나타내려고 자꾸 이 한자말과 저 한자말을 붙이는 보기글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한자말을 더 붙인다 하더라도 ‘크다’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저 겹말만 됩니다. 4347.7.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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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오두막집이 아니라 커다란 집이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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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44 : 미소와 웃음



미소는 웃음으로 바뀌었다. 입이 많이 아프긴 했지만 그는 웃느라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리 캐롤/오진영 옮김-집으로 가는 길》(샨티,2014) 45쪽


 미소는 웃음으로 바뀌었다

→ 가볍던 웃음이 커졌다

→ 작은 웃음이 커졌다

→ 빙그레 웃다가 하하 웃는다

→ 살며시 웃다가 껄껄 하고 웃음이 터진다

 …



  일본사람은 ‘웃음’을 한자말 ‘미소(微笑)’로 자주 나타냅니다. 한국사람은 웃을 적에 언제나 ‘웃다’라는 낱말을 썼는데, 일제강점기를 지나고부터 갑작스레 한자말 ‘미소’가 퍼졌습니다.


  ‘微笑’는 “소리 없이 빙긋이 웃음”을 뜻한다지요. 그러니, 이 보기글처럼 “미소는 웃음으로 바뀌었다”처럼 글을 쓰면 엉터리가 됩니다. 웃음이 웃음으로 바뀌었다는 소리이니,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말을 제대로 가르치거나 배우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마치 ‘미소’와 ‘웃음’이 다른 말이라도 되는 듯이 잘못 쓰기 일쑤입니다. 책과 교과서와 신문과 방송에서 이런 말투가 하나씩 나타나면서, 이런 말마디를 듣거나 읽는 사람들이 잘못 길들거나 물듭니다. 예전에는 이런 말마디를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만, 이제는 잘못 쓰는 말마디를 바로잡거나 가다듬으려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집니다. 4347.7.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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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던 웃음이 커졌다. 입이 많이 아프긴 했지만 그는 웃느라 몸을 흔들기까지 했다


“몸이 흔들릴 정도(程度)였다”는 “몸이 흔들리기도 했다”나 “몸이 흔들리기까지 했다”나 “몸이 흔들렸다”나 “몸을 흔들기까지 했다”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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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84) 와우(wow)


“와우.” 마이클은 천사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예전보다 훨씬 더 마리를 존경하게 되었다

《리 캐롤/오진영 옮김-집으로 가는 길》(샨티,2014) 327쪽


 와우

→ 우아

→ 와

→ 이야

 …



  영어사전을 살피면, ‘wow’를 “우아, 와(큰 놀라움·감탄을 나타내는 소리)”로 풀이합니다. 아주 마땅합니다. ‘와우(wow)’는 영어입니다. 한국말이 아니기에 한국말사전에서는 이 낱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영어를 한국말로 옮긴 책에서 어떤 말을 써야 할까요? 한국말을 써야겠지요. 한국말은 ‘우아’입니다. ‘우아’를 줄여 ‘와’로도 적고, 비슷한 낱말로 ‘이야’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영어가 널리 퍼졌다고 하더라도, 한국말로 옮기는 책에서는 한국말로 똑바로 적어야지 싶습니다. 4347.7.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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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마이클은 천사한테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예전보다 훨씬 더 마리를 우러러보았다


‘천사로부터’는 ‘천사한테서’로 바로잡습니다. 이야기는 많거나 적지 않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가 아닌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이와 비슷한 꼴인데, “많은 사람을 만나다”가 아닌 “사람을 많이 만나다”로 적어야 한국말로 올발라요. “존경(尊敬)하게 되었다”는 “우러러보았다”나 “높이 보았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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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가는 소리


  두 아이 이를 고치면서 ‘이 가는 소리’를 다스리려고 애쓴다. 치과에 가기 앞서까지 큰아이 ‘이를 가는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아이가 고단할 적에 이를 가는구나 하고만 여겼다. 이제는 아이가 이를 갈 적마다 곧바로 잠에서 깨어 아이 볼을 토닥이면서 “이는 예쁘게 그대로.” 하고 말한다. 밤마다 열 차례 즈음 잠에서 깨어 이렇게 이 말을 읊는다. 간밤에는 얼추 십 분이나 이십 분마다 깨어 이 말을 읊었지 싶다. 도무지 잘 수 없어 부시시 일어나니 새벽 세 시. 그래도 다섯 시간은 누웠네. 재미있다면, 도무지 자다 깨다 하기 힘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 뒤 두 시간 동안 큰아이가 이를 갈지 않는다.

  큰아이가 아직 갓난쟁이였을 적에는 삼십 분마다 기저귀를 갈았다. 작은아이는 큰아이와 달리 밤오줌을 자주 누지 않았다. 작은아이는 한두 시간에 한 차례 기저귀를 갈면 되었다. 큰아이가 이를 언제쯤 갈지 않을까 헤아려 본다. 큰아이가 스스로 이를 예쁘게 그대로 두면서 새근새근 잠을 폭 들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4347.7.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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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 삶에 지친 한 남자와 일곱 천사의 이야기
리 캐롤 지음, 오진영 옮김 / 샨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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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65



우리 집은 바로 이곳

― 집으로 가는 길

 리 캐롤 글

 오진영 옮김

 샨티 펴냄, 2014.6.30.



  우리 집은 늘 이곳입니다. 저곳도 그곳도 아닌 이곳입니다. 이곳은 바로 여기입니다. 저쪽도 그쪽도 아닌 이쪽입니다. 저 먼 나라가 아닌 바로 이곳에 우리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찾는다고 할 적에도 먼 곳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예배당이나 성경에서도 하느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바로 이곳, 그러니까 내 가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내 하느님을 내 가슴에서 찾고, 너는 네 하느님을 네 가슴에서 찾습니다.



.. “나는 오직 당신이 보고 싶은 대로만 보일 거예요, 마이클 토마스. 나는 원래 인간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이 편하게 느낄 수 있는 모습으로 나를 소개하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모든 천사가 남성은 아니에요. 사실 우리에겐 성별이 없어요. 날개도 없고요.” … “당신은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어요. 마이클 토마스.” 천사가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아름답게 보이나요? 당신의 참된 모습을 한번 봐야 해요! 언젠가는 보게 될 거예요.” ..  (25, 30쪽)



  언제부터일는지 모르겠으나, 꽤 먼 옛날부터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 하나하나는 모두 하느님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라 하는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 뒤에는, 이 어른을 두고 하느님이라 일컫는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이런 말이 참 아리송했어요.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면, 어른들도 똑같이 하늘처럼 섬겨야 맞아요. 하늘과 같은 아이들이 자라 하늘과 같은 어른으로 살아야 맞아요.


  나한테는 우리 집 아이가 하느님과 같습니다. 아니, 나로서는 우리 집 아이한테 깃든 ‘네 하느님’을 마주합니다. 내 이웃 아이라면 이웃 어버이가 돌보는 아이한테서 ‘그 아이 하느님’을 마주합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가슴속에 깃든 님을 읽을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언제나 사랑이요 평화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가슴속에 깃든 님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언제나 싸움이나 겨루기나 미움입니다.


  오늘날 흐름을 보셔요. 한국 사회나 경제나 교육이나 정치나 문화가 어떤 모습인가요? 사랑인가요? 평화인가요? 아닐 테지요. 한국에서 으레 보는 모습은 싸움이나 겨루기나 미움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이를 아이 그대로 바라보지 않을 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어른인 숨결 그대로 마주하지 않는 셈입니다.



.. “대답은 당긴 가슴속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와야 해요. 그리고 당신을 비롯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해야 해요.” … “당신의 의도가 현실을 바꾸고 있는 거예요.” … “인간이 깨달음을 얻는 데는 기본 원칙이 있지요. 우선 자신을 먼저 신경 쓰고, 그렇게 자신의 영적 여정을 존중하다 보면 주위 사람에게도 그런 일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거예요. 한 사람의 의도는 항상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  (31, 34, 66쪽)



  아이들 가슴속에 깃든 빛이 하느님인 줄 알아차린다면,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몰 수 없습니다. 거꾸로, 아이들 가슴속에 깃든 빛이 하느님인 줄 알아차리기에, 이 아이들이 앞으로 이룰 사랑과 평화를 거스르고자, 아이들 가슴속에 깃든 하느님을 지우려는 제도권교육을 밀어붙일 수 있어요. 사회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과 정치가 모두 쳇바퀴 같은 틀에 갇혀야, 비로소 권력이 생기고 자본주의가 불거지며 종교를 세울 만해요. 사람들이 우루루 예배당에 몰려들어야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 커집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그저 학교와 학원에 집어넣어야 사회권력과 문화권력이 활개를 칩니다.


  곰곰이 따질 줄 아는 머리와 가슴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 언제나 빛이요 님이며 하늘이기에,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제대로 읽는 하루를 누리면서, 삶을 날마다 새롭게 지을 수 있습니다. 내가 빛이니 늘 스스로 밝습니다. 내가 님이니 언제나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내가 하늘이니 노상 스스로 즐겁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좀처럼 빛을 바라보려 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나 아닌 다른 데에서 찾기만 합니다. 예배당에 끝없이 갇히려 하고, 성경에 끝까지 얽매이려 합니다. 학교에 안 가면 바보가 되는 줄 알지만, 정작 학교에 가기 때문에 바보가 됩니다. 사회에 내 몸을 맞추지 않으면 따돌림받는 줄 알지만, 정작 사회에 내 몸을 맞추려 하니까 따돌림받습니다. 책을 읽거나 대학교까지 마쳐야 지식을 쌓아 똑똑해지는 줄 알지만, 정작 책을 읽거나 대학교까지 마치기에 지식이 무엇인지 더 모를 뿐 아니라 더 ‘안 똑똑해’집니다. 돈을 벌어야 살림을 꾸릴 수 있는 줄 알지만, 정작 돈을 벌고 또 벌어도 자꾸 돈만 더 벌려고 할 뿐, 살림을 꾸리거나 이웃사랑이나 두레는 하지 못합니다.



.. “우리에겐 과거나 미래가 없어요.” … “지식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존재할 수 없어요. 빛이 있는 곳에 비밀은 있을 수 없고, 빛은 지식의 탐구를 통해 진리가 드러날 때 생겨나죠.” … “당신은 기회가 왔을 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마이클 토마스. 그래서 스스로 교훈을 배워야 했죠.” …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건 그들과 함께한 순간의 에너지 때문이지 옛날의 물건 때문이 아니에요.” … “신은 거짓말을 하지 못해요. 신은 무언가를 싫어할 수 없어요. 신은 사랑밖에는 할 수 없으므로 사랑이라는 범위 바깥에서 공평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요.” ..  (80, 90, 111, 112, 218∼219쪽)



  리 캐롤 님이 쓴 《집으로 가는 길》(샨티,2014)을 읽습니다. 이 책은 스스로 안 깨달으며 바보처럼 톱니바퀴가 되어 제도권 사회에 노예처럼 길들여진 사람이 스스로 굴레에서 헤어나오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보처럼 길든 사람은 언제 굴레에서 헤어나오려 할까요? 언제일까요? 바로, 죽음을 앞둔 때입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두 손에 쥐었다’고 여긴 것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손에 쥐지 않았고 쥘 수조차 없은 줄 깨닫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앞두었으니 아무것도 못해요. 그냥 죽을 뿐이에요.


  그냥 죽으면 어찌 될까요? 흙으로 갈까요? 몸뚱이는 흙으로 갈는지 모르나, 요새는 우리 몸뚱이가 흙으로 가지도 못해요. 이곳저곳 온통 막개발 막공사가 퍼지는 사회에서, 사람 몸뚱이는 흙으로 못 가고 한 줌 재가 될 뿐입니다. 그러면, 몸에 깃들던 넋은 어디로 갈까요? 갈 곳을 잃어요. 예배당에 얽매였던 사람이라면 예배당에서 시킨 대로 얌전히 저승 한쪽에 드러누운 채 ‘언젠가 찾아올 하느님’을 기다립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바로 우리 가슴에 있고, 우리 모두 스스로 하느님이니, 우리한테 찾아올 하느님은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깨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늘 잠든 몸이면서 마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노예이면서 톱니바퀴 노릇만 합니다.


  죽음을 앞둔 자리에서조차 깨닫지 못하면, 똑같은 삶을 다시 되풀이해요. 똑같은 삶을 다시 되풀이하면서 괴롭게 지내다가, 다시 죽음 문턱에서 ‘내가 왜 살지?’ 하고 묻지만, 다시 죽고 다시 태어나면서 두고두고 고단한 흐름이 이어지기만 합니다.



.. “인체의 모든 세포에 신을 자각하는 의식이 있어요. 그래서 세포 하나하나가 깨달음과 사랑을 경험할 수 있고, 진동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거죠.” … “마이클, 내가 치유하도록 허락하지 말고, 치유 자체가 이루어지도록 허용해 봐요.” … 그는 신을 사랑했고 교회가 신성한 곳이라고 느꼈지만, 그는 늘 자신이 목자를 따르는 양이라는 소리만 들었다. 그 어떤 교회의 교사도 그에게 인생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 ..  (123, 125, 188쪽)



  이야기책 《집으로 가는 길》은 모든 실마리를 밝히지는 않습니다. 아주 작은 한 가지만 건드립니다. 내 가슴속에 깃든 빛과 님과 하늘을 스스로 바라보지 않고, 느끼지 않으며, 깨닫지 않을 적에는 내 삶이 무너질밖에 없다는 대목 한 가지를 건드립니다. 더없이 작은 조각 같은 지식입니다만, 바로 이 작은 조각을 참된 지식으로 품을 수 있을 때에 눈을 뜹니다. 이 작은 조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눈을 뜨지 못합니다.


  눈을 뜰 때에 집으로 갈 수 있고, 눈을 뜨기에 보금자리를 사랑할 수 있으며, 눈을 뜨는 날부터 삶을 새롭게 엽니다. 눈을 뜨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가시방석이면서 고단합니다. 눈을 뜨지 않기에 ‘사랑할 만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합니다. 눈을 뜨도록 스스로 마음읽기를 하지 않으니, 새로 찾아오는 아침에 새로운 웃음으로 노래하지 못하고 자꾸 ‘지겹다’고 여깁니다. 4347.7.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이 책을 읽고 무언가 느낄 수 있다면, 무언가 느끼기 어렵다면, 《아나스타시아》(블라지미르 메그레) 일곱 권과 《람타 현실창조를 위한 입문서》(제이지 나이트)와 《람타 화이트북》(제이지 나이트)을 꼭 읽어 보기를 바랍니다. '아나스타시아'와 '람타'를 슬기롭게 마주할 수 있다면, 삶을 가꾸는 빛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다스리는가를 제대로 익혀서 하루를 밝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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