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단골 되기



  ‘책방 단골’은 아무나 될 수 없다고 한다. 책방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은 ‘자주 오는 손님’은 될 수 있으나 ‘책방 단골’이라는 이름을 얻지는 못한다. ‘단골’은 어떤 책손한테 붙이는 이름일까? 글쎄, 나는 어느 책방을 두고도 나 스스로 ‘단골’이라고 느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니, 시골에서는 달포에 한 차례 책방마실을 하기에도 만만하지 않다. 자주 드나들지 못하는 책방이기에 한 차례 찾아가더라도 책을 잔뜩 장만하기는 하지만, 단골은 ‘책을 많이 사들이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얼추 열다섯 해쯤 앞서이지 싶은데, ‘책방 단골’을 놓고 ‘책방에 자주 오는 아저씨’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방 〈뿌리서점〉이었다. 그곳을 날마다 드나드는 아저씨들이 꽤 많은데, 그분들이 서로 옥신각신 얘기를 주고받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서로 생각을 모두었다. 그분들이 말하는 ‘책방 단골’은 이렇다.


 ㄱ. 서른 해 넘게 드나들기

 ㄴ. 오천 권 넘게 장만하기


  어느 한 군데 책방에서 ‘단골’이라는 이름을 얻자면, 그 책방을 서른 해 넘게 드나들되, 그동안 책을 오천 권 넘게 장만해야 한단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한 군데 책방을 스무 해쯤 드나들었으면 아직 ‘단골’은 아니다. 스무 해 즈음 드나들었을 때에는 제법 자주 드나들었다고 할 만하지만, 아직 그 책방 속내까지 헤아리지는 못할 만한 햇수라 하겠지. 자주 드나든다고 하더라도 책을 어느 만큼 장만해서 읽지 않는다면, 그 책방이 어떤 책을 다루고 어떤 책으로 오래도록 책방살림을 꾸리는가를 알지 못한다고 할 만하다.


  나한테는 아직 ‘단골이라 할 만한 책방’이 없다. 왜냐하면, 아직 서른 해 넘게 드나든 책방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 드나든 책방은 스물세 해 드나든 곳이다. 이 다음으로는 스물두 해 드나든 곳이 있고, 스물한 해 드나든 곳이 꽤 많다. 앞으로 일곱 해는 더 있어야 나한테도 ‘단골 책방’이 생긴다. 나는 마흔일곱 살이 되어야 비로소 ‘단골 책방’을 이야기할 수 있구나.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



알라딘이 열다섯 돌이라 하는데,

나는 아직 알라딘에서도

열 돌이 안 되었다.


알라딘이라는 곳 단골이 되기에도

아직 스무 해가 남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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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는 언제나 누나 곁에



  사름벼리가 도서관 골마루에 앉아서 책을 보는 매무새가 오늘 따라 새롭게 보여 사진으로 한 장 찍으려는데, 어느새 산들보라가 알아채고는 콩콩콩 누나 곁으로 달려가서 털푸덕 앉는다. 사진을 찍으려면 누나만 찍지 말고 저를 함께 찍으라면서 빙그레 웃는다. 요 녀석아, 언제 너를 안 찍었니. 너는 언제나 누나 곁에 찰싹 달라붙으면서 놀아야 하는 놈이로구나.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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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여자회 방황 1
츠바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53



내 동무는 누구인가

― 제7여자회 방황 1

 츠바나 글·그림

 박계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5.30.



  예전에는 동무를 마을에서 사귀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느 누구도 동무를 학교에서 사귀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데, 학교가 선 지는 이제 백 해를 겨우 넘어요. 아이들은 언제나 마을에서 동무를 만나 즐겁게 놀았습니다. 어른들은 늘 마을에서 이웃을 만나 즐겁게 일했습니다. 마을지기이면서 마을동무이고 마을이웃입니다.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학교를 가야 비로소 동무를 사귑니다. 때로는 학교에서 동무를 사귀지 못해, 학원에서 동무를 사귑니다. 때로는 학교나 학원에서 동무를 못 사귀는데, 이때에는 인터넷에서 동무를 사귑니다.


  아이들이 동무를 사귀는 곳은 아이들이 노는 곳입니다.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동무가 됩니다. 동무라고 할 적에는 함께 놀 수 있는 사이입니다.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놀 수 있기에 동무입니다.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사이가 될 때에 동무예요.



- “딴죽 걸 부분은 많지만 오히려 이제 언급하고 싶지 않네.” “우리 같은 소시민은 고작해야 핵 셀터를 사는 일 정도밖에 못하니까.” “못 사!” “하긴, 뭔지 알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는 많으니 일일이 다 상관할 수는 없어.” “정말 그래. 평생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가야지!” (22쪽)

- “조만간 성별도 이름도 개인정보라고 해서 비밀 취급 될 것 같아.” “응.” “그리고 마지막에는 개인지 인간인지도 모를 세계가 찾아오는 거야!” (27쪽)




  학교가 없던 지난날에는 마을이 배움터이고, 집이 배움터입니다. 아이들은 집과 마을에서 일을 익힙니다. 따로 학교를 가야 일을 익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배울 일이란, 삶을 짓는 일이에요. 집짓기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할 줄 알아야 일입니다.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지을 때에 비로소 삶을 짓습니다.


  학교는 어떤 곳일까요? 학교는 집짓기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는 돈벌기 하나만 가르칩니다. 돈을 벌어서 집과 밥과 옷을 돈으로 장만하는 길을 알려주는 학교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땀을 안 흘리고 돈만 벌도록 알려주는 데가 학교라고도 할 만합니다. 참말 그렇거든요. 학교를 길게 다니면 다닐수록 ‘돈벌기’와 가깝다고 합니다. 학교를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학교를 오래 다니면 돈은 잘 벌면서,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짓는 길과 더욱 멀어집니다. 돈을 많이 쌓아서 밥과 옷과 집을 장만하기에는 수월할는지 모르지만, 남이 밥과 옷과 집을 장만해야 돈을 치러 살 수 있어요. 남이 밥과 옷과 집을 장만하지 않는다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것도 못합니다.



- “매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사후 디지털 천국에서 재생하는 모양이야.” “이런 일을 해도 하느님한테 혼나지 않을까?” “글쎄? 뭐, 최종적으로는 현실 세계에서 ‘인공 신체’가 만들어지는 것을 모두 기다리고 있는데, 그무렵에는 이미 지구 인구보다 많을지도 몰라. 자, 그럼, 수속도 끝났으니 다음은 츠보이 찾기네.” “어디 있는지 알아?” “맡겨 두시라. 죽은 사람에게는 거의 사생활 같은 건 없어.” (49쪽)

- “왠지, 나는 부모님 마음대로 살려두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가짜 천국에서 급히 부활해 버려서, 뭘 어떻게 하면 좋은 건지 아직 전혀 모르겠어. 이건 정말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건가? 싶어서.” (52쪽)





  돈만 벌도록 아이들을 내모는 학교 얼거리요 사회 틀거리입니다. 아이들이 돈만 벌면 집이든 돈이든 옷이든, 게다가 동무와 이웃까지도, 돈으로 살 수 있는 듯이 외치는 학교요 사회입니다. 영화나 문학을 보면, 돈으로 사랑까지 살 수 있는 듯이 떠벌입니다.


  참말 그럴까요? 참말 돈으로 사랑이나 꿈이나 믿음까지 살 수 있을까요? 참말 돈으로 믿음을 살 수 있기에 예배당은 자꾸 커질까요? 참말 돈으로 꿈을 살 수 있으니, 정부는 경제개발만 끝없이 외치는가요?


  아이들은 서로 놀이동무가 되어야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길을 온몸으로 배울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은 다른 데에서 싹트지 않습니다. 함께 놀고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고 땀흘리는 사이에 천천히 싹트는 사랑입니다. 제대로 놀지 못한 채 나이만 먹는 아이들은 사랑을 모릅니다. 즐겁게 놀지 못한 채 입시지옥에서 허덕이다가 대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사랑을 모릅니다. 이런 아이들은 살섞기만 알아요. 사랑으로 새로운 아이를 낳는 빛을 몰라요.



- “모처럼 친구가 되었으니까 같이 집에 가자.” “미안. 잠깐만 기다려!” “친구라고 해도, 무늬만이야. 이런 건.” “응?” “왜냐하면 친구는 맞선 같은 거랑은 다르잖아?” (93쪽)

- “아무래도 시간이 된 모양이다. 아저씨도 가련다.” “가, 가다니, 어디로?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저쪽의 우주야. 뭐, 이 멋진 기회를 혼자 독점하는 것도 아까우니. 만약 너도 따분하다면.” (123쪽)




  츠바나 님 만화책 《제7여자회 방황》(대원씨아이,2013)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고등학교 아이들 모습은 오늘날 모습은 아닙니다. 얼추 쉰 해나 백 해쯤 지난 뒤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과학문명만 앞세워 달음박질을 칠 때에 드러날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만화이기에 만화처럼(?) 말한다고 할 텐데, 먼 앞날 학교에서는 ‘동무 사귀기’가 ‘성적표 점수’에 들어갑니다. 학교에서는 억지로 짝짓기하듯이 ‘동무짓기’를 합니다. 동무하고 어떻게 지내느냐를 늘 지켜보는(감시) 눈길이 있고, 동무하고 제대로 지내지 못하면, 그러니까 ‘사회에서 바라는 동무 사귀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낙제 점수’를 받습니다.


  너무 마땅한 일인지 모르나, 만화에서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뛰놀 겨를이 없습니다. 줄넘기나 공차기 따위를 빼고, 아이들이 참답게 놀이를 하는 일이 없습니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노나요? 동네에서 아이들이 노나요?


  아이들은 놀이터가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빈터가 없습니다. 마땅한 빈터는 모조리 주차장이 되거나 가게가 됩니다. 쓸 만한 빈터는 어른들이 쓰레기를 마구 갖다 버려서 지저분합니다.



- “이건 좋은 걸 샀는데!” “나는 안 좋은 예감밖에 안 들어.” “그래? 왓핫핫.” “나도 웃자. 왓핫핫.” “어? 지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없어도 웃을 수 있다니까!” (123쪽)



  아이들한테 동무는 누구인가요. 어른들한테 이웃은 누구인가요. 아이들이 동무 없이 학교만 다녀도 될까요. 아이들이 또래 동무를 사귀려면 반드시 학교에만 가야 하나요. 아이들은 왜 마을에서 또래나 동무를 사귀면서 즐겁게 뛰놀 수 없는가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이 못 뛰놀도록 가로막기만 하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집어넣기만 하면서 닦달하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집집기와 밥짓기와 옷짓기 같은 삶짓기를 물려줄 생각을 안 하나요. 아니, 어른들은 왜 스스로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지어서 누리려는 생각조차 안 하나요.


  아이들이 그저 학교에만 가야 하는 사회는, 동무도 이웃도 없는 메마른 사회입니다. 아이들이 온통 학교에만 갇혀야 하는 사회는, 동무도 이웃도 없이 차디찬 사회입니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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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옮기기 (사진책도서관 2014.7.1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고흥에 뿌리를 내리는 우리 도서관을 어떻게 할까를 놓고 지난 석 달 여러모로 생각을 하면서 지냈다. 더는 책과 책꽂이를 옮기지 않으려고, 고흥에 들어온 뒤 책꽂이를 골마루 바닥에 못을 꽝꽝 쳐서 박았다. 책짐을 꾸리거나 나르는 데에 품과 겨를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러다가 신안군에서 ‘책마을’을 만들자면서 찾아오니 이래저래 싱숭생숭했다. 생각을 연 공무원이 있구나 싶은 신안군이니 참으로 놀라웠고, 그곳에서는 무엇이든 다 잘 되겠다고 느꼈다. 앞으로는 다른 군청에서도 이렇게 생각을 여는 공무원이 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짐을 꾸리고 싶지 않았으나, 한 달 즈음 책짐을 싸 보았다. 마음속에 어떤 응어리가 있기 때문에 책짐을 꾸렸다고 느낀다. 꼭 신안이 아니어도, 곡성이나 구례 같은 곳은 터도 마을도 아름답다 할 만하니, 고흥을 떠나는 일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오늘, 책꽂이 자리를 조금 옮긴다. 바닥에 박은 못을 뺀다. 석 달 동안 미루느라 말라붙으려는 니스를 녹인다. 곰팡이가 피지 않기를 바라며 책꽂이 하나에 니스를 바른다. 한국말사전 자료를 놓은 둘째 칸 책꽂이를 바꾸어 보기로 한다. 니스가 다 마르자면 하루쯤 묵혀야 하니, 오늘은 자리만 잡는다. 이튿날 다시 와서 마무리를 지어야지.


  일곱 살 사름벼리는 도서관 골마루에 폭삭 앉아서 만화책을 본다. 여름이라 골마루 바닥은 시원하다. 틈틈이 골마루를 닦으니, 아이가 바닥에 앉아도 된다. 처음 이곳에 들어올 적에는 더께가 두꺼워, 엄청난 먼지를 닦고 털고 쓸고 치우느라 참 긴 나날 땀을 들였다.


  다른 곳으로 떠나기보다 고흥에 그대로 뿌리를 내리자는 생각을 굳힌 만큼, 사진책도서관 몫, 한국말사전 연구실 노릇, 아이들 놀이터이자 배움터, 우리 삶터이자 보금자리, 이렇게 네 가지로 흐를 수 있는 길로 나아가도록 힘을 쓰자. 하면 된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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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50) 작금의 1 : 작금의 현실


그 비전은 자동차 의존도가 점점 높아가면서 우리의 삶터 자체를 황폐화시키는 작금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매우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박용남-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시울,2006) 45쪽


 작금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 오늘날 모습을 풀어내려고 할 때에도

→ 이 같은 모습을 뚫고 나가려 할 때에도

→ 이러한 모습을 떨쳐내려 할 때에도

 …


  한자말 ‘작금(昨今)’은 “(1) 어제와 오늘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 요즈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어제오늘’이거나 ‘요즈음’인 셈입니다. 한국말로 쓰면 어려울 일이 없을 뿐 아니라, 굳이 한자말을 빌어서 나타낼 일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이러한’이나 ‘이런’이나 ‘이 같은’을 넣어도 잘 어울려요. 요새는 ‘작금’ 같은 한자말을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웁지만, 글을 쓰거나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이 이 말을 버리지 못합니다. 아니, 글을 쓰거나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은 이러한 한자말에 익숙합니다. 이 때문에 어린이나 푸름이가 이 같은 말투에 길들거나 배울까 걱정스럽습니다. 아니, 으레 이런 말투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하는 줄 생각할까 두렵습니다.


 작금에도 겨우겨우

→ 요즈음에도 겨우겨우

→ 요사이도 겨우겨우

→ 아직도 겨우겨우

 …


  말다운 말을 익히고 글다운 글을 쓸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른들부터 스스로 맑고 아름다운 넋으로 말을 하고 삶을 지어야 아이들이 아름다운 말과 넋과 삶을 물려받습니다. 4339.6.29.나무/4342.4.14.불/4347.7.17.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 생각은 자동차를 자꾸 더욱 많이 타면서 우리 삶터를 아주 무너뜨리는 이러한 모습을 뚫고 나가려 할 때에도 매우 서두를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비전(vision)은”은 “그 생각은”으로 다듬고, “자동차 의존도(依存度)가 점점(漸漸) 높아지면서”는 “자동차를 자꾸만 더욱 많이 타면서”로 다듬습니다. “우리의 삶터 자체(自體)를 황폐화(荒廢化)시키는”은 “우리 삶터를 아주 무너뜨리는”이나 “우리 삶터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으로 손봅니다. “타개(打開)하기 위(爲)해서도”는 “헤쳐 나가려 할 때에도”나 “풀어내려 할 적에도”나 “고치려 할 때에도”로 손질하고, “시급(時急)한 과제(課題)가”는 “서두를 일이”로 손질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36) 작금의 2 : 작금의 사회적 관행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작금의 사회적 관행도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전상인-아파트에 미치다》(이숲,2009) 63쪽


 작금의 사회적 관행도

→ 오늘날 사회 흐름도

→ 요즈음 사회 모습도

→ 이즈음 사회 물결도

 …



  한자말 ‘작금’은 낡은 말입니다. 낡은 말이라 하여 모두 내칠 까닭은 없습니다. 다만, 예나 이제나 낡지 않으면서 살갑고 두루 쓸 만한 말이 있습니다.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낡지 않을 말이면서 고운 말이 있습니다.


 우리 발걸음도 한동안 멈추지 않을 듯하다

 우리 흐름도 얼마 동안 멈추지 않을 듯하다

 우리 사회 물결도 퍽 오래도록 멈추지 않을 듯하다


  보기글을 살펴봅니다. 사람들은 아파트라는 곳이 우리한테 알맞을 만한 삶터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더 넓은 평수를 찾아 돈굴리기가 되거나 뽐내기가 되는 길을 고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사람들 모습은 앞으로도 이어지리라 본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자리에서 말하는 “사회적 관행”이란, 예전부터 오늘까지 죽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는 ‘작금의’를 아예 덜어도 됩니다. 뜻을 헤아리면서 ‘작금의’는 없어도 넉넉합니다. “사회적 관행”이 어떠한 모습이고 흐름인가를 힘주어 말하고자 꾸밈말처럼 넣으려 했다면, ‘오늘날’이나 ‘어제오늘’ 같은 꾸밈말을 넣습니다. 굳이 이런 꾸밈말이 아니어도 글쓴이 생각을 나눌 수 있겠구나 싶으면 단출하게 추스릅니다. 보기글 뒤쪽에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고 적었기 때문에, “사회적 관행”은 ‘어제부터 있던’ 일이고 ‘오늘도 있는’ 일이며 ‘앞으로도 있을’ 일임을 넌지시 일러 주는 셈입니다.


  이런 글흐름을 꿰뚫을 수 있다면, 글쓴이 스스로 한결 낫게 글을 다듬을 수 있습니다. 책을 엮는 이들 또한 글매무새를 한껏 북돋울 수 있습니다. 글을 읽는 우리들은 생각을 한결 슬기롭게 추스르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쏟고 눈길을 모두고 생각을 열면, 아름답고 싱그러운 빛줄기가 차근차근 스며들고 배어들며 녹아듭니다. 4342.4.14.불/4347.7.17.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더 넓은 아파트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요즈음 사회 흐름도 한동안 멈추지 않으리라 본다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는 “더 넓은 아파트”나 “평수가 더 넓은 아파트”로 고쳐 줍니다. “사회적 관행(慣行)”은 “사회 흐름”이나 “사회 물결”로 다듬고, ‘당분간(當分間)’은 ‘한동안’이나 ‘얼마 동안’으로 다듬으며, “않을 것이다”는 “않으리라”나 “않을 듯하다”나 “않으리라 본다”로 다듬어 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35) 작금의 3 : 작금의 청소년소설


작금의 청소년소설 가운데 많은 작품이 아주 극단적인 청소년상을 보여주고 있는 건 바로 어른의 시선만으로 청소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박상률-청소년문학의 자리》(나라말,2011) 33쪽


 작금의 청소년소설

→ 요즈음 청소년소설

→ 오늘날 청소년소설

→ 요즘 나오는 청소년소설

→ 요즘 떠도는 청소년소설

 …



  문학비평을 생각해 봅니다. 문학비평은 누가 읽도록 쓰는 글일까 생각해 봅니다.아이들은 문학비평을 읽을까요. 청소년문학을 비평한다면, 청소년이 이러한 비평을 읽을까요. ‘비평(批評)’이란 무엇일까요. 한국말사전에서 뜻풀이를 살피니,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이라 나옵니다. 그러니까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이 ‘비평’입니다. ‘분석(分析)’은 ‘살펴보기’를 가리킵니다. ‘가치(價値)’는 한국말로 ‘값어치’입니다. ‘논(論)하다’는 ‘말하다’를 뜻합니다. 한자말로 된 뜻풀이를 다시 헤아리자면, ‘비평’은 “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값어치를 말하기”입니다.


  청소년문학을 비평하는, 그러니까 청소년문학을 ‘말하는’ 글에서 나온 ‘작금 + 의’를 헤아려 봅니다. 청소년문학을 말할 적에 이런 낱말을 꼭 써야 하는지 헤아려 봅니다. 이 나라 청소년이라면 ‘작금’ 같은 한자말을 알아야 할까요? 이 나라 청소년이라면 ‘작금’이라는 한자말에 ‘-의’를 붙이는 말투를 읽거나 들어서 배워야 할까요? 그예 궁금합니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요즈음 청소년소설 가운데 많은 작품이 아주 막다른 청소년 모습을 보여주는 까닭은 바로 어른 눈길만으로 청소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극단적(極端的)’은 “(1) 더 나아갈 데가 없는 (2)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보기글에서는 ‘막다른’이나 ‘한쪽으로 치우쳐서’로 다듬습니다. ‘청소년상(-像)’은 ‘청소년 모습’이나 ‘청소년 얼굴’로 손보고, “보여주고 있는 건”은 “보여주는 까닭”으로 손봅니다. “어른의 시선(視線)”은 “어른 눈길”이나 “어른 눈높이”나 “어른 눈썰미”나 “어른 눈매”로 손질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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