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정거장에서 기다리네
박원식 지음, 신준식 사진 / 리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6



간이역은 시골처럼 사라지네

― 낯선 정거장에서 기다리네

 박원식 글

 신준식 사진

 리좀 펴냄, 2005.9.13.



  지난해까지는 항공방제를 할 적에 이레쯤 앞서부터 면사무소에서 방송을 했습니다. 곧 항공방제를 할 테니, 항공방제를 하는 날에 장독 뚜껑을 닫고 창문을 닫으며 바깥에 돌아다니지 말라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아무런 방송이 없이 항공방제를 합니다. 다만, 새벽 여섯 시에 마을 이장님이 방송을 합니다. 면사무소 방송이 아닌 마을방송입니다.


  지난해까지는 군청에서 ‘친환경농약’을 헬리콥터로 뿌렸습니다. 올해에는 우리 마을과 이웃한 여러 마을 모두 ‘친환경농업단지’에서 풀렸습니다. ‘기준치를 넘는 농약’이 나왔기 때문에 ‘친환경농업단지’에서 취소가 되었어요. 그러니, 올해에 농협중앙회에서 헬리콥터를 띄워서 뿌리는 농약은 ‘친환경농약’조차 아닌 ‘무시무시한 농약’입니다.


  무시무시한 농약을 뿌리는데 아무런 방송이 없습니다. 아마 그렇겠지요. 어느 시골에 가든 고추밭에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능금밭과 포도밭에도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감밭에도 농약을 뿌리고, 마늘밭과 배추밭과 파밭에도 농약을 끝없이 뿌립니다. 여느 시골사람이 ‘친환경조차 아닌 무시무시한 농약’을 뿌릴 적에 이웃집에 알리는 일이 없습니다. 이웃도 똑같이 그 무시무시한 농약을 아무 때나 뿌리니까요.



.. 하루 여덟 차례 열차가 멈추는 기차 정거장이다. 하염없이 작아서 하염없이 귀여운 간이역이다 … 상웅 유람을 한결 값지게 하는 건 마을 복판의 은행나무다. 6백여 년 풍진 세월을 쌩쌩히 견뎌 온 거목으로 하늘 가린 우듬지가 산덩어리만 하다 ..  (18, 63쪽)



  기차역이 줄어듭니다. 기차역이 서던 곳에서 살던 사람이 많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늙은 사람도 줄고 젊은 사람도 줄며 어린 사람도 줄었기에 기차역이 줄어듭니다.


  이제 웬만한 군 하나는 웬만한 도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 하나만도 못할 만큼 사람이 적습니다. 시골 군에서 면이나 읍에서 사는 사람 숫자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 사람보다 훨씬 적습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면에 만 사람은커녕 천 사람조차 안 되기 일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시골에는 흙을 일굴 사람이 아주 모자랍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논밭을 일굴 사람도 모자라지만,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다녀올 사람도 아주 크게 줄어듭니다. 게다가 기차역은 시골 면소재지를 지나가는 일도 드물고, 읍내에서 그리 가깝지도 않은 데에 있기 마련입니다. 늙어서 허리가 구부정한 할매와 할배가 기차역까지 걸어서 가기에도 벅찹니다.



.. 이런 승부역의 오지다운 고독을 노래한 어느 늙은 역원의 시 한 수가 전해진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 읊은 … 시장통 선술집에도 점심 겸 낮술을 펼치는 남자들 몇몇이 둘러앉아 뭔가 열변을 토한다. 차 꾸러미를 들고 나온 다방 여종업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급하게 내달린다 ..  (96, 152쪽)



  고흥에서는 기차를 타려면 이웃 순천시로 갑니다. 순천시 기차역은 꽤 크다 할 만합니다. 고속철도 지나가니까요. 그렇지만, 순천시 기차역을 드나드는 사람은 순천시 버스역을 드나드는 사람과 대면 아주 적은 듯합니다. 순천 기차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도 얼마 안 돼요.


  우리 집 아이들이 버스 멀미를 고단하게 하느라 가끔 기차를 탈 적에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직 전라도에서 곡성이니 구례이니 남원이니 하는 데에서 기차가 서지만, 머잖아 이런 곳에 기차가 설 일도 없지 않을까 하고. 도시사람이 곡성이니 구례이니 남원이니 놀러가니까 기차가 서지, 그곳 사람들 숫자만으로 기차가 설 일은 참 드물지 싶습니다.


  이제 몇 군데 굵직한 기차역이 아니라면 모두 작은 역으로 바뀌는구나 싶습니다. 예전 간이역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작은 역은 간이역이 되며, 꽤 커다랗던 역은 작은 역으로 되지 싶어요.


  도시에서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간이역으로 찾아간다고 하는데, 간이역으로 나들이를 하면서 어떤 ‘정취’나 ‘추억’을 받아먹을는지 모릅니다만, 정작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 눈길로 보자면, 온통 도시만 키우는 개발정책과 문화정책과 교육정책인 흐름에서, 무엇을 바라나 아리송하곤 합니다.


  도시에서도 그렇거든요. 도시에 있는 예쁘장한 골목을 밀어붙여서 아파트로 바꾸려는 개발정책입니다. 작은 사람이 돌보는 작은 집이 있는 작은 마을 하나쯤 아무렇지 않게 없애려 하는 문화정책이고 사회정책이며 복지정책입니다. 이 나라 교육정책은 아이들이 도시로 가도록 내몰고, 더 큰 도시로 가도록 밀어붙입니다.



.. 이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소나무가 강원도 정동진역의 ‘고현정 소나무’라는 물건일 것이다. 그런데 이 ‘고현정 소나무’는 관광 재료로써 기절할 만한 진가를 발휘해 정동진의 팔자를 일거에 뒤집어버렸다. 반면 ‘김영애 소나무’는 이렇다 할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이렇다 할 이름값을 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이 지역의 평온을 유지케 하는 데 이바지했다. 둘레의 자연상을 온존시키는 데 기여했다 ..  (222쪽)



  박원식 님이 글을 쓰고, 신준식 님이 사진을 찍은 《낯선 정거장에서 기다리네》(리좀,2005)를 읽습니다. 그야말로 자그마한 간이역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눈길로 글과 사진을 빚어서 엮은 책입니다. 간이역처럼 참 이쁘장한 책이라고 느낍니다. 이렇게 작은 이야기를 읽히면서 우리 사회가 새롭게 태어난다면 아주 아름답겠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어디를 바라보느냐 하는 대목을 살피면, 고개를 젓고야 맙니다. 누가 누구를 바라보느냐 하는 대목을 읽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고야 맙니다.


  간이역이나 작은 기차역이 있는 ‘시골’은 어떤 곳일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굳이 간이역이나 작은 기차역을 사진으로 안 찍습니다. 굳이 간이역이나 작은 기차역을 문화유산으로 삼지 않습니다. 간이역보다 훨씬 오래된 집이 마을마다 많이 있습니다. 간이역보다 아주 오래된 우물과 샘터가 마을마다 있습니다. 간이역보다 엄청나게 오래된 나무와 숲과 들이 마을마다 있습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요. 우리들은 어디에서 살고 어디에서 사랑하며 어디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려 하는가요. 4347.7.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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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87) 모성적 1 : 어머니 같은 모성적


잡초가 어떻게 피망이나 여타의 작물들을 돕는지에 대해 그는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잡초는 스스로 채소에게 어머니 같은 모성적 보호자 구실을 하고 있었다

《조지프 코캐너/구자옥 옮김-잡초의 재발견》(우물이 있는 집,2013) 97쪽


 어머니 같은 모성적 보호자 구실을 하고

→ 어머니 같은 보호자 구실을 하고

→ 어머니 같은 구실을 하고

→ 어머니 구실을 하고

→ 어머니처럼 지켜 주고

→ 어머니처럼 보살펴 주고

 …



  ‘모성(母性)’이라는 한자말은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 한자말에 ‘-적’을 붙인 ‘모성적(母性的)’은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성질을 갖춘”을 뜻한다고 해요. 이러한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쓸 수 있습니다만, 어머니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머니 모습’이요 ‘어머니 같은 모습’입니다. ‘낯빛’이라는 낱말이 얼굴에 드러나는 기운을 가리키는 만큼 ‘어머니빛’ 같은 낱말을 새로 지어서 “어머니다운 모습이 드러나는 일”을 가리킬 수 있어요.


  어머니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모친(母親)’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부친(父親)’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버이는 ‘어버이’일 뿐, ‘양친(兩親)’이 아니에요.


  ‘모성적’ 같은 낱말은 한국사람이 스스로 한국말을 옳게 못 쓰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어머니를 언제나 ‘어머니’라 말한다면 이런 한자말을 쓸 일이 없고, 보기글에서처럼 “어머니 같은 모성적 보호자” 같은 겹말을 쓸 일도 없습니다. 보호자라면 “어머니 같은 보호자”입니다. “어머니처럼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되어 돌보는 사람”이요 “어머니 마음으로 보듬는 사람”입니다. 4347.7.23.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풀이 어떻게 피망이나 다른 남새를 돕는지 그는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풀은 스스로 남새를 어머니처럼 보살펴 주었다


‘잡초(雜草)’는 ‘풀’로 다듬고, “여타(餘他)의 작물(作物)들을 돕는지에 대(對)해”는 “다른 남새를 돕는지를”로 다듬으며, ‘정확(精確)히’는 ‘제대로’나 ‘또렷이’나 ‘올바로’로 다듬습니다. ‘채소(菜蔬)’는 ‘남새’로 손보고, “보호자(保護者) 구실을 하고 있었다”는 “보호자 구실을 했다”나 “지켜 주었다”나 “보살펴 주었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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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82. 숲에서 (2014.6.30.)



  더운 여름날 숲에서 놀자.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나무그늘로 찾아가자.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나무 곁에서 나무빛을 온몸으로 맞아들이자. 숲아, 우리들 왔어, 같이 놀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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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 나들이 차림새


  사름벼리는 요즈음 나들이를 다닐 적마다 차림새가 다르다. 이것을 꾸미고 저것을 걸친다. 누구한테 보여주려는 차림새일까 하고 생각할 만하지만, 누구한테 보여준다기보다 스스로 즐거운 차림새라고 느낀다. 몸을 꾸미거나 가꿀 적에는 바로 나를 바라보면서 꾸미거나 가꿀 테니까. 4347.7.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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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나무 무럭무럭 자란다



  골짜기에 어린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 큰나무가 떨군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서 하나둘 싹을 틔운다. 모든 씨앗이 싹을 틔우지는 못한다. 다람쥐 먹이가 되는 씨앗이 있고, 개미 먹이가 되는 씨앗이 있다. 미처 흙에 닿지 못하거나 물살에 떠내려 가느라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씨앗이 있다.


  도시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두멧자락 작은 골짜기까지 ‘4대강사업’ 손길을 뻗는다. 이 바람에 골짜기를 이룬 돌과 흙과 숲이 망가진다. 참으로 끔찍한 노릇인데, 숲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꺾인 나무도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큰나무는 조용히 씨앗을 떨군다. 한 해가 흐르면 이 씨앗 가운데 몇이 싹을 틔워 씩씩하게 자란다.


  앞으로 열 해가 흐르고 스무 해가 흐르면 새로운 숲이 되리라. 앞으로 쉰 해가 흐르고 백 해가 흐르면 놀라운 숲으로 거듭나리라. 오늘 이곳에 농약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쉰 해 뒤에는 농약을 뿌릴 사람이 없으리라 본다. 오늘 이곳에 삽차를 들이대어 마구 파헤치는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백 해 뒤에는 골짜기에 삽차를 끌고 올 사람이 없으리라 느낀다.


  어린나무를 밟지 않도록 발걸음을 옮긴다. 4347.7.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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