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는



  잠자리는 잡으려고 폴짝폴짝 뛰거나 우악스럽게 다가가면 휙휙 날아간다. 재빨리 몸이나 손을 놀려도 잠자리는 아주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와 달리, 잠자리가 있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으면 잠자리는 사뿐사뿐 날아와, 내 머리나 어깨에도 앉는다. 곧게 팔을 뻗어 손가락을 내밀면 잠자리는 내 손가락에도 가볍게 내려앉는다.


  잡으려고 하면 못 잡지만, 잡을 마음이 없으면 외려 잡을 수 있다. 다만, 마흔 살 아저씨는 이제 잠자리를 잡지 않는다. 잠자리랑 함께 놀면 될 뿐, 굳이 잠자리 날개를 손가락으로 꼭 잡을 일이 없다. 잠자리 눈망울을 들여다보고, 잠자리 날개를 가만히 바라본다.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가 있으면 거미한테 미안하지만 줄을 걷어 준다. 거미는 제 줄을 다시 삼켜서 새로운 줄을 만들 테지. 잠자리는 날개에 붙은 거미줄을 바람에 하나둘 털면서 새롭게 날아오를 테지. 잠자리가 있어 풀밭이 싱그럽다. 잠자리가 날면서 풀밭에 고즈넉한 노래가 흐른다. 4347.7.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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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27. 가고 싶어서 간다



  여름에 바다로 가는 사람은 참말 바다로 가고 싶으니 갑니다. 겨울에 바다로 가는 사람은 참으로 바다로 가고 싶으니 갑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있기에 여름이든 겨울이든 바다로 갑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없으면 누가 자가용에 태워 데려다 주더라도 못마땅하기 마련이요, 즐거움이나 재미를 못 누리기 일쑤입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없을 적에는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닐 적에는 글 한 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니라면 따스한 볕이나 시원한 바람을 살갗으로 못 느낍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담고 싶다는 마음이 우러나와야 하고, 사진 한 장으로 담아서 보여주고픈 마음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나입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늘 나입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맨 먼저 읽습니다. 내가 찍으려는 사진을 내가 가장 먼저 읽습니다. 나부터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으면서 삭히고 다시 삭히며 거듭 삭힌 사진을 이웃한테 보여줍니다. 내가 스스로 한 번 찍고 두 번 찍으며 세 번 찍으면서 가다듬고 추스르며 어루만진 사진을 동무한테 보여줍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갑니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몸이 흐릅니다. 마음이 우러나오는 대로 사진이 우러나옵니다. 무엇을 골라서 사진으로 찍느냐 하는 대목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이 되어 사진을 찍으려 하느냐 하는 대목을 살피면 됩니다. 어떤 장비를 갖추어 사진을 찍느냐 하는 대목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눈빛으로 거듭난 뒤 사진을 찍느냐 하는 대목을 돌아보면 됩니다.


  꽃 한 송이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밭을 찍을 수 있습니다. 꽃대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잎에 앉은 나비나 파리나 벌이나 잠자리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이 질 무렵 찍을 수 있습니다. 시멘트 틈바구니에서 돋은 꽃을 찍을 수 있습니다. 떨어진 꽃씨를 찍을 수 있고, 꽃씨를 물어 나르는 개미를 찍을 수 있으며, 꽃내음 맡는 아이를 찍을 수 있습니다. 꽃내음 흐르는 마을을 찍을 수 있고, 꽃내음이 퍼지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찍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는 마음인지 읽고 삭혀서 찍으면 언제나 사진이 됩니다. 4347.7.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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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Man From Earth (맨 프럼 어스) (한글무자막)(Blu-ray) (2007)
Starz / Anchor Bay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지구별 사람

The Man From Earth, 2007



  사람은 나이로 따질 수 없다. 나와 너 사이에 나이로 금을 그을 수 없다. 사람은 언제나 마음으로 만난다. 나이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늘 마음을 나누면서 사랑을 꽃피운다. 마음이 있기에 사람이 된다. 마음이 있지 않다면, 겉모습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


  나는 몇 살인가. 너는 몇 살인가. 나이를 따지려 한다면 어떤 나이를 따지고 싶은가. 나이를 따지려 한다면 나이를 따져서 무엇을 보거나 알고 싶은가.


  나이를 많이 먹었으나 마음이 깊지 않으면 철부지이다. 나이를 적게 먹었으나 마음이 깊으면 비로소 사람이다. 철부지를 두고 ‘사람’이라 말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건 안 먹건 철이 들어야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철들기’가 ‘사람 되기’란 뜻이고, ‘철’이란 ‘열린 마음’과 ‘트인 생각’이다. ‘참다운 슬기’가 바로 ‘철’이다.


  이 땅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에 철이 들었다고 말한다. 나와 너를 따사롭고 넉넉하게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철이 든다고 말한다.


  영화 〈지구별 사람(The Man From Earth)〉을 본다. 제 나이를 모르는 서른다섯 살 사내가 주인공이다. 언제나 서른다섯 살 몸으로 살아간다는 주인공은 얼추 만사천 해쯤 살았다고 한다. 앞으로 만사천 해를 더 살는지 모르고,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할는지 모른다. 앞길은 알 수 없다. 다만, 앞길은 모르더라도 지나온 길은 안다. 앞길을 모르니까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고, 지나온 길을 아니까 앞으로 살아갈 길을 생각할 수 있다.


  역사나 과학이나 문화나 종교나 철학이란 무엇일까. 이런 것들은 왜 있어야 할까. 우리한테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학교가 있어야 하나? 도시나 문명이나 돈이 있어야 하나? 아니다. 어느 것도 부질없다. 우리한테는 언제나 꼭 한 가지만 쓸모가 있다. 바로 ‘삶’이다. 삶 앞에서 어느 것도 뜻이나 값이 있을 수 없다. 삶이 없이 1조나 100조와 같은 돈이 주머니에 있다 한들 무슨 뜻이 있을까. 삶(살 날)이 고작 한 해밖에 안 남은 재벌한테 1000조 같은 돈이 얼마나 대수로울까. 삶이 열 해쯤 남은 학자나 지식인한테 책이란 얼마나 대수로울까.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삶을 삶답게 바라보면서 가꿀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길을 걸으면서 환하게 빛나려면, 삶을 삶답게 마주하면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으면 하루도 살지 못한다. 마음을 열어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기에, 지구별 사람은 오늘도 새롭게 아침을 맞이해서 씩씩하고 즐겁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4347.7.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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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까닭이라면



  책을 읽는 까닭이 따로 있을까. 살아가는 까닭을 떠올린다면, 책을 읽는 까닭도 헤아릴 만하리라 느낀다. 그러면,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날마다 즐겁게 노래하고 싶으니 산다. 언제나 새롭게 사랑하고 싶기에 산다. 새로 맞이할 아침에 웃고 싶어서 산다. 하루하루 빛으로 그득하게 채우고 싶기에 산다.

  책을 읽는 까닭은 무엇인가. 마음을 건드리는 책이나 영화를 만나면, 내 마음에 새로운 생각과 사랑이 싹틀 수 있으리라 느낀다. 다시 말하자면, 내 마음에 새로운 생각과 사랑이 싹트도록 북돋우고 싶으니 책이나 영화를 만나려고 한다. 삶을 새롭게 밝히고, 생각을 새롭게 열며, 사랑을 새롭게 가꾸는 빛을 누리려고 책이나 영화를 가까이한다. 빛이 될 책을 만나고 싶다. 삶을 빛으로 일구고 싶다.

  책을 읽는다. 책빛을 읽는다. 책을 삭힌다. 삶빛이 되도록 책 하나를 껴안는다. 4347.7.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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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 걸터앉기



  손님을 마중하러 마을 어귀에 나와 기다린다. 일곱 살 사름벼리는 혼자서 걸터앉을 수 있다면서 야무지게 올라가 앉는다. 높은 곳에 올라가도 사름벼리는 무섭지 않다. 스스로 무서움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면소재지에 있는 놀이터에 갈 적에도 사름벼리는 언니나 오빠가 못 올라가거나 안 올라가는 꽤 높은 곳에 아무렇지 않게 척척 올라가서 바람을 쐰다. 높은 데에서 부는 바람이 몸을 어떻게 간질이면서 어루만지는지를 안다. 4347.7.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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