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36. ‘치마’와 ‘스커트’

― 삶을 바라보는 넋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기에 한국사람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내 어버이가 한국사람이면 한국사람입니다. 어버이가 한국사람도 아니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나, 내 삶터를 한국으로 삼으면 한국사람입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이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삶으로는 서로 사뭇 다릅니다. 그래서, 겉보기로는 ‘똑같이 한국말’이라 하지만, 삶으로 보면 말이 사뭇 다르기 마련입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말은 여럿입니다. 맨 먼저 한국말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중국 한자말과 일본 한자말과 한국 한자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일본말이 있고 영어가 있으며 몇 가지 서양말과 중국말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사람이 가장 널리 쓰는 말이라면 아무래도 ‘한국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일하는 곳이 다르고 마음을 기울이는 데가 다른 터라, 어떤 한국사람은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을 가장 자주 씁니다. 어떤 한국사람은 ‘영어’를 매우 자주 씁니다.


  ‘항상(恒常)’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은 겉보기로는 한자말이지만, 그냥 한자말이 아닙니다. 첫째, ‘항상’은 ‘한국말이 아닌 말’입니다. 이 다음으로 놓고 보면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일 테지요. 그러면, 한국말은 무엇일까요? ‘늘’과 ‘언제나’와 ‘노상’과 ‘한결같이’입니다. 이밖에 때와 곳에 따라 수많은 말이 더 있습니다.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알아듣기는 알아듣습니다. 영어를 섞든 일본 한자말을 넣든 번역 말투를 쓰든, 이럭저럭 서로 알아듣습니다.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알아듣기만 하면 어떤 말이든 깊이 살피지 않고 써도 될까요? 이를테면, ‘치마’와 ‘스커트(skirt)’라는 낱말이 있는데, 두 낱말을 한국사람이 한국에서 섞어서 써도 될까요?


  한국말사전은 ‘스커트’를 올림말로 다룹니다. 영어사전이 아닌 한국말사전에 ‘스커트’가 올림말로 나옵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스커트’ 뜻풀이를 보면 “주로 여성이 입는 서양식 치마. 모양에 따라 타이트·개더·플레어·플리츠·랩 따위로 나누고, 길이에 따라 미니·미디·맥시 따위로 나눈다. ‘치마’로 순화”라 나옵니다. 그러면 ‘치마’는 어떻게 풀이할까요? 한국말 ‘치마’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여자의 아랫도리 겉옷”이라 풀이합니다.


  두 낱말을 잘 살피면 두 낱말은 아주 다른 낱말인 줄 알 수 있습니다. ‘치마’는 한국말을 쓰는 나라에서 쓰는 낱말이고, ‘스커트’는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쓰는 낱말입니다. 그리고, 한국말사전에서 다루는 낱말풀이는 엉터리입니다. 왜냐하면, ‘스커트’를 가리켜 “서양식 치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서양식 치마라 한다면 ‘서양치마’라고 아예 새로운 낱말을 지어서 써야 올바릅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한국으로 나들이를 와서 ‘한복’이라는 옷을 본다면, 이 가운데 ‘한복 치마’를 본다면, 미국사람이나 영국사람은 무어라 말할까요? 아주 마땅히 ‘스커트’라 하겠지요. 요새는 ‘미니스커트’가 아예 한국말 고유명사처럼 못이 박혔지 싶은데, ‘미니스커트’도 영어일 뿐 한국말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말은 ‘깡동치마’나 ‘짧은치마’입니다. 사진을 서양에서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으레 ‘포토그래퍼’라는 이름을 쓰고, 이런 분들한테서 사진을 배운 젊은이도 이녁 스스로 ‘포토그래퍼’라는 낱말을 쓰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한국에서 ‘사진가’입니다. 자전거를 서양에서 먼저 만들었건 말건,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탈 뿐입니다. ‘바이서클(bicycle)’을 타지 않아요.


  한국사람은 한국에서 ‘노래’를 합니다.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은 ‘音樂’을 할 테고, 서양사람은 ‘music’을 할 테지요. 그러나 요새는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음악’조차 아닌 ‘뮤직’을 합니다.


  무엇이 한국말일까요? 무엇이 한국말이 아닌 말일까요? 무엇이 한국말인 말일까요?


  삶을 바라보는 넋에 따라 말이 다릅니다. 삶을 바라보는 넋에 따라 말뿐 아니라 삶부터 다릅니다. 삶을 바라보는 넋에 따라 말과 삶과 빛이 다르고, 꿈과 사랑과 노래가 다릅니다.


  우리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답게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겉보기로 한글이 아닌 알맹이로 한국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밝히는 말을 알차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슬기롭게 삶을 가꾸듯이 슬기롭게 말을 가꾸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나 언론이나 학문이나 역사나 문화나 교육을 돌아보면, 어디에서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억누르는 얼거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억누를까요? 때로는 짓밟고 때로는 따돌리기까지 하는데, 왜 이런 짓을 일삼을까요? 까닭을 살피면 아주 쉽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을 짓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쉽게 쓰는 말은 가장 쉽게 슬기로 닿습니다. 가장 쉽게 쓰는 말은 언제나 가장 아름답습니다. 가장 쉽게 쓰는 말은 늘 가장 쉽게 생각을 열고 틔워서 가장 사랑스러운 빛으로 거듭납니다.


  참된 말, 참말, 그러니까 한자말로 하자면 ‘진리’란 무엇이겠습니까. ‘참다운 빛이 감도는 말’은 한결같이 가장 쉽습니다. 어린이도 알아차릴 수 있기에 슬기요 진리입니다. 학교를 다닌 적 없는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기에 슬기이면서 진리입니다. 한국사람이면서 우리 스스로 한국말 아닌 ‘엉뚱한 말’을 자꾸 쓰지요? 보기를 들자면 ‘존재(存在)’ 같은 한자말이 있는데, 사회와 교육과 문학과 문화 모두 이런 엉뚱한 말을 자꾸 쓰도록 몰아붙이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넋과 뜻을 오롯이 펼치지 못합니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도 좀처럼 마음과 생각을 열지 못합니다. 이야기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 자꾸 말을 더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보셔요. 아이들은 ‘존재’나 ‘스커트’ 같은 낱말이 없어도 생각이 가로막히지 않습니다. 모든 마음을 술술 풀어놓습니다.


  한국사람은 이웃과 동무인 다른 한국사람하고 어떤 말로 생각과 마음을 나눌 때에 가장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울까요? 말을 새로 찾는 일하고 말을 제대로 보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스스로 쓰고 싶으면 ‘스커트’이든 ‘뮤직’이든 ‘존재’이든 그냥 쓰면 됩니다. 다만, 한국사람 스스로 이런 낱말을 자꾸 쓰면 쓸수록, 생각을 틔우고 마음을 열어 슬기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빛은 차츰 스러지거나 사라질밖에 없습니다.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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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75. 2014.7.21.ㄴ 책에는



  책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이와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랑을 담뿍 담은 그림책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랑스러운 빛이 흐르는 그림책을 읽는 아이와, 사랑스러운 빛이 흐르는 그림책을 본 적이 없는 아이는, 오늘날 이 엄청난 문명사회에서 어떤 넋이 되어 살아갈까. 참말 오늘날에는 시골에서 살더라도 크게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멧새 노랫소리를 듣지 못한다. 오늘날에는 도시에서 지내면 마음을 기울이고 기울여도 참새 노랫소리조차 듣기 어렵다. 작은 새 한 마리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문책이 있을까? 작은 새 한 마리 이야기를 노래하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만화책은 얼마나 될까? 우리 집 어여쁜 아이들아, 책에는 무엇이 있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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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알아보는 책



  아이한테 어떤 책을 던져 준다고 해서 아이가 책을 읽지 않는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함께 읽고 즐기려고 하는 책인지, ‘좋은 이야기 담았으니 이런 책을 보라’는 뜻으로 건네는 책인지 아이도 알아채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름다운 책을 알아볼까? 아이는 제 눈을 갑작스레 사로잡는 대중문화나 가벼운 상업만화에 더 이끌릴까, 아니면 시나브로 아름다운 책에 손을 뻗으면서 마음 가득히 아름다운 이야기를 짓는 길로 접어들까?


  나는 믿는다. 믿을 뿐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 서재이자 도서관에 아름다운 책을 차곡차곡 갖추면, 아이가 자라는 흐름에 따라 차근차근 아름다운 책에 손을 뻗으리라 믿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책을 놓고 보면 서재와 도서관을 아름답게 가꿀 노릇이다. 집을 놓고 보면 방과 마루와 부엌과 마당을 아름답게 가꿀 노릇이요, 우리 보금자리가 숲이 되도록 돌볼 노릇이다.


  달리 할 일은 없다. 밑틀을 갖추면 된다. 달리 해야 할 일은 없다. 푸르게 우거진 숲을 가꾸고, 푸른 사랑으로 빛나는 책을 어버이 스스로 즐겁게 읽어서 건사하면 된다. 아이가 알아보는 책이란, 삶을 사랑하는 빛이 흐르는 이야기이다.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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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도서관 놀이



  책이 넘어지지 않도록 받치는 쇠판이 있다. 도서관을 꾸리면서 이런 쇠판을 아주 많이 써야 하기에 곳곳에 둔다. 책꽂이 자리를 바꾸고 책을 옮겨 다시 꽂는 동안 쇠판을 책상에 올려놓는다. 산들보라는 이 쇠판을 보더니 제 깜냥껏 한참 재미나게 논다. 무슨 놀이를 하나 물끄러미 지켜본다. 옳거니, 너는 이 아이들을 기차로 삼아서 줄줄이 이어서 노는구나. 칙칙폭폭 서로 가지런히 달리는구나.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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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Puzzle - 강경옥 Special 단편집 이미지 퍼즐
강경옥 지음 / 반디출판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56



별빛과 함께

― 이미지 퍼즐

 강경옥 글·그림

 반디 펴냄, 2005.7.15.



  요 며칠, 밤마다 별을 봅니다. 나는 눈이 썩 좋지 않아 안경을 끼어야 별을 제대로 보는데, 밤에 마당에 나올 때에 ‘아차, 안경을 또 깜빡했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안경을 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안경을 끼고 별빛 가득한 밤을 누려도 즐겁고, 안경이 없는 채로도 뭇별을 올려다보면서 별내음을 맡아도 즐겁습니다.


  2014년 올여름에는 칠월 이십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별을 보았습니다. 유월 끝무렵부터 전남 고흥에 비가 내리더니 칠월 십구일까지 비가 멎지 않았어요. 이른 장마라고 해야 할는지, 날씨가 뒤틀렸다고 해야 할는지, 스무 날 남짓 언제나 구름이 가득 끼고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리는 스무 날 남짓, 그저 ‘비야 비야 알맞게 내리고 멈추어 주렴. 여러 날 해가 난 뒤 비가 한 차례 오고, 다시 해가 여러 날 나고, 또 비가 한 차례 오고, 이렇게 예쁜 날씨로 돌아가 주렴.’ 하고 빌었습니다. 고속도로는 끝없이 늘어나고, 공장과 아파트도 줄어들 줄 모르며, 도시는 자꾸 커지기만 하지만, 게다가 밀양에는 송전탑을 우악스럽게 밀어붙이고, 제주에도 해군기지를 억척스레 지으려고 하지요. 숲과 들과 시골을 와장창 짓밟는 짓만 이어집니다. 4대강사업이라 하면서 온 나라 냇바닥을 시멘트로 뒤덮은 짓은 또 얼마나 끔찍한가요.



- ‘E.T.를 보았다. 개봉관에서 볼 당시엔 그와 함께 갔었는데, 그는 자고 나는 울었었다. 둔감한 인간 같으니. 두 번째로 〈코러스라인〉을 보려는데 3TV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방영하고 있었다. 앞이 많이 지나갔지만 잊을 수 없는 향수로 보게 되었다. 첫째 딸의 애인이 독일군에게 그들을 알렸을 때의 배반감이 크게 느껴졌다. 옛날에도 이랬었나? (10∼11쪽)





  밤에 별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나와 곁님과 아이들은 밤별을 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가 깃든 이 마을에 있는 할매와 할배는 별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가로등을 더 많이 놓아서 밤에 ‘어둡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 봤자, 할매와 할배는 저녁 여덟 시면 불을 다 끄고 주무시면서, 왜 이렇게 ‘밝은 밤’을 바라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도시에서는 별을 잃어버린 지 참말 한참 되었는데, 시골에서는 별을 잊어버린 지 똑같이 한참 되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와 건물과 자동차와 가게와 술집과 공장 따위로 별을 잃고, 시골에서는 새마을운동과 농약과 도시화와 텔레비전 때문에 별을 잊습니다.


  참말 그래요. 시골에서조차 밤에 별빛을 누리기 힘들 뿐 아니라, 농약 냄새와 비닐쓰레기 태우는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웃집에서 빨래를 널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농약을 뿌립니다.



- ‘차 한 대, 사람 하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이곳은 마치 사람 없는 놀이동산. 이상한 세계의 앨리스. 현실 세트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기분. 낮 1시에 지나다닌 이 길과 부산한 저녁 8시의 이 길과 새벽 3시의 이 길은 아주 다른 세계.’ (20쪽)

- ‘한 손엔 아버지께 선물할 담배 한 갑. 동생 줄 과자 하나. 나와 동생을 위한 잡지 한 권. 오늘 밤의 여행의 선물. 기분 좋은 산책. 기분 좋은 밤이었어. 오늘은.’ (24쪽)




  강경옥 님 만화책 《이미지퍼즐》(반디,2005)을 읽습니다. 짤막하게 그린 만화를 모은 책입니다. 짧게 그린 만화를 엮은 책에 붙인 이름은 ‘이미지퍼즐’인데, 하나하나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별빛과 함께 내가 있다’는 이야기로구나 싶습니다.



- ‘살아야 할 이유가 있으면 행복하겠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자신이 알 수 있으면, 죽어야 할 이유가 있어도 행복한 거라고 생각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자신이 알 수 있으면.’ (74쪽)

- ‘이렇게 조용한 달밤과 조용한 이상한 나라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이 꿈속이라도 상관없어.’ (79∼80쪽)



  옛날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별을 보며 살았습니다. 옛날부터 흙을 만지고 풀과 나무를 아끼던 사람들은 모두 별을 읽으며 살았습니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고 하는 말이든, 개미가 집을 옮기면 큰비가 온다고 하는 말이든, 빛을 읽으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들빛을 읽고 숲빛을 읽으며 별빛과 햇빛과 달빛을 읽는 우리 삶이었습니다. 물빛을 읽고 하늘빛을 읽었어요. 구름빛과 무지개빛과 흙빛을 읽었지요.


  이리하여, 지난날 시골사람은 서로서로 낯빛을 읽습니다. 얼굴빛만 보아도 이녁 몸이 어떠한가를 알고, 이녁 마음이 어떠한가를 짚습니다. 종이로 만든 책은 읽지 않았으나 얼마든지 아름다운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이 없더라도 서로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 아니라, 숨길 것이 없습니다. 얼굴에 모든 이야기가 훤히 드러나니까요.


  삶에 흐르는 빛을 서로 읽습니다. 쌀이 떨어져서 그저 아궁이에 불만 때며 연기를 피우는지, 제대로 끼니를 이으려고 쌀로 밥을 짓는지 모두 읽습니다. 예부터 시골에서는 이웃이 모두 살붙이(사촌)입니다. 한 마을에서 모두 이웃이면서 동무로 지냈습니다.





- “굉장해요. 이 가게 참 멋있어요. 밤에 열어야 할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그래요? 와, 고마워요. 별이 정말로 예쁘지요?” “예, 그대로 똑똑 떨어질 것 같아요. 왓. 탁자에도 별이 비치고 있어요. 별들이 모두 이 탁자에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저 건물 뒤로 떨어져 버리면 찾을 수가 없잖아요.” (118쪽)

- “어떤 것을 원하니? 자, 뭐든지 말해 보렴!” “2천 년 전의 세상도 볼 수 있을까요?” “글쎄. 2천 년 전의 세상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데. 음, 하지만 세상의 반은 보여줄 수 있다.” “세상의 반이요?” “그래. 하늘과 땅. 그 중에 반인 하늘을 보여주마. 2천 년 전의 하늘을.” (124∼125쪽)



  별을 읽지 않으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빛을 잃습니다. 해와 달하고 등을 지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넋을 잊습니다. 풀과 나무를 짓밟으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삶을 잃습니다. 흙과 하늘과 물을 어지럽히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꿈을 잊습니다.


  오늘날 우리 도시와 문명은 무엇을 읽을까요? 무엇을 말할까요? 무엇을 보여줄까요? 무엇을 나눌까요?


  밤에 별이 없는 이 나라에는 무엇이 있나요? 낮에 해를 누리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 되나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낮에는 해를 모르고 밤에는 별을 모릅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어른들도 낮에는 해를 모르고 밤에는 별을 모릅니다. 아이도 어른도 똑같은 쳇바퀴에 갇힙니다.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수렁에 갇히고 굴레를 뒤집어씁니다.





- ‘아마도 우리가 나갈 사회란 이런 거겠지. 능력 없으면 빠져라 하는 양육강식이 움직인다는 사회.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 학교 학생이지만, 선생님들에게 이 학교가 우리가 아는 벌어먹고 사는 사회임을 실감하는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안 됐다, 너무하다, 라는 느낌은 들어도 우리는 단지 그뿐인 것이다. 하긴, 우리가 뭘 할 건가.’ (165쪽)



  서른 해쯤 앞서 강경옥 님 만화를 처음 보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무렵에 ‘별’을 자주 이야기하는 강경옥 님 만화를 보면서 ‘서울에서는 별을 보기 힘든가 보네’ 하고만 느꼈습니다. 생각해 보면, 강경옥 님 만화를 처음 만난 그무렵에, 열 살 언저리인 나이였는데, 내 고향인 인천에서 별똥을 처음으로 보았어요. 5초쯤이었나, 무척 길고 큰 별똥을 보았어요. 별똥을 처음으로 본 그때, 심부름 가던 길에 우뚝 멈추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무엇인가 활활 타오른다고 느꼈어요. 별이란 무엇이고, 별을 보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오래도록 헤아렸어요. 도시나 문명을 이루어 별을 잊거나 잃을 적에 우리들은 누구나 무엇인가 아주 크고 아름다운 빛을 잃거나 잊는다고 느꼈어요.


  별빛과 함께 삶이 빛날 수 있습니다. 별빛이 스러지면서 삶이 함께 스러질 수 있습니다. 별빛이랑 어깨동무하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별빛과 등지면서 이웃하고도 등질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가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는 농약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도시에서는 나무가 우거지는 공원이 늘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는 풀밭과 숲이 늘기를 바랍니다. 별이 빛나는 밤을 아름답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햇볕과 함께 다 같이 까무잡잡한 흙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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