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옥수수 냠냠 짭짭



  아이들 어머니가 긴 배움길에서 돌아왔다. 고흥집으로 돌아오면서 옥수수 몇 자루를 사왔다. 아이들은 옥수수를 맛나게 먹었고, 이튿날에도 옥수수를 찾는다. 얘들아, 우리는 아직 옥수수를 안 심었단다. 이듬해에는 옥수수를 심어 보자. 우리 집에는 옥수수가 없으니 읍내에 가서 사야겠구나. 아침 일찍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가서 옥수수를 산다. 산들보라는 아주 맛나게 냠냠 짭짭 여러 자루를 먹는다. 4347.8.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당신은 어른입니까 34] 빛읽기 (윤 일병 죽음을 생각하며)

― 삶이 빛이 되도록 꿈을 꿉니다



  미국은 틈만 나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어 미사일과 폭탄을 쏟아붓고 사람을 죽입니다. 이런 전쟁놀이를 지켜보면서 ‘폭력은 이제 그만!’ 하고 외치는 사람이 있고, ‘평화를 지키는 군대!’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을까요?


  사람들이 죽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기도 하지만, 자동차에 치여서 죽기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기도 합니다. 오늘날 지구별에서는 전쟁 때문에 죽는 사람보다 자동차에 치여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입시지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대단히 많아요. 이와 함께, 한국에서는 군대에서 죽는 젊은이가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입시지옥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죽는 아이들 이야기하고 군대에서 웃사람한테 얻어맞아서 죽는 젊은이들 이야기는 도무지 알려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바깥에 이 이야기를 퍼뜨려야 알려집니다. 끔찍하게 죽은 아이들이어야 비로소 신문이나 방송에 나옵니다.


  나는 군대에서 내 웃사람한테 얼마나 얻어맞으면서 지냈는지 돌아봅니다. 내 ‘웃사람’이라는 이들은 나를 비롯해 ‘아랫사람’을 얼마나 자주 많이 두들겨패거나 괴롭혔는지 돌아봅니다. 훈련소에서도, 훈련소를 마치고 들어가는 자대에서도, 언제나 주먹다짐과 욕지꺼리와 얼차려입니다. 하루에 적어도 한 차례씩 맞거나 욕을 듣거나 얼차려를 안 받고 지나가는 일이란 없다고 할 만합니다. 군대에서 가장 자주 들으면서 가장 듣기 싫던 낱말은 ‘집합’입니다. 모이라는 뜻으로 쓰는 이 한자말이 누군가 입에서 살그마니 터져나오면, 맞고 뺑뺑이를 돌면서 허우적거려야 합니다. 처음 군대에 발을 들여놓는 날부터 군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전역날까지, 누구라도 군대에서는 주먹다짐과 욕지꺼리와 얼차려에 시달립니다.


  어리거나 늙다고 하는 나이란 없다고 느껴요. 나이가 많다고 훌륭하거나 슬기롭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이가 적다고 안 훌륭하거나 안 슬기롭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참말 언제 어디에서나 꽃을 봅니다. 꽃밭에 있으면서도 꽃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꽃을 헤아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군부대에서도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꿈을 건사하는 사람은 주먹질이나 욕지꺼리나 얼차려를 시키지 않습니다. 여느 사회에서도 아름다운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안 건사하는 사람은 여느 사회에서도 으레 주먹질을 하거나 욕지꺼리를 일삼거나 남을 해코지하는 짓을 일삼습니다.


  나는 군대라는 곳에 늦게도 이르게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대학교라는 곳이 사람을 사람답게 가르치는 배움터가 아니로구나 하고 느껴서 일찌감치 ‘군 입대 희망서’를 내기는 했는데, 내가 ‘군 입대 희망서’를 낼 즈음에는 군대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드물었는지, 참말 아주 빨리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군대에 들어가 보니 나와 나이가 같으면서 웃자리(고참)에 있는 사람은 딱 하나였습니다. 나로서는 숨을 돌릴 만한 일일 텐데, 나보다 어리면서 웃자리에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서 아랫자리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1995년 11월에 군대에 들어가서 상병 6호봉이 될 때까지, 나는 늘 맞는 쪽과 욕지꺼리 듣는 쪽과 얼차려를 받는 쪽에 있었습니다. 상병 6호봉이 된 어느 날, 상병 4호봉이면서 나와 나이가 같은 아랫자리 아이가 ‘계급이 좀 높아졌다’면서 그 아이가 맡을 사역과 경계근무를 이등병한테 떠넘긴 일을 알아차립니다. 나는 그길로 소대에서 이럭저럭 높은 자리에 있는 그 아이한테 찾아가 말 한 마디 없이 그 아이를 군홧발로 10분쯤 밟았습니다. 병장 4호봉이던 어느 날, 병장 1호봉이면서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린 아이가 사역과 경계근무를 일병한테 떠넘긴 일을 알아채고는, 이 아이 후임병과 선임병이 있는 자리에서 얻드려뻗쳐를 시키고 배를 군홧발로 걷어찼습니다. 아파서 쓰러진 아이를 다시 일으켜서 엎드려뻗쳐를 시키고는 끝없이 배를 걷어찼습니다. 얼마 뒤 다른 병장 2호봉 아이를 또 군홧발로 내무반에서 밟았습니다. 이 아이도 똑같은 짓을 했습니다. 딱 세 차례, 군대에서 내 아랫자리 아이를 두들겨팼습니다. 그때 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주먹다짐을 했을까, 왜 다른 군인들과 똑같이 욕지꺼리를 퍼부었을까 하고 돌아보면, 보드라운 말씨와 얼차려가 없이는 말귀를 듣지 않는 군대 얼거리였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는 평화가 깃들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는 오직 주먹다짐과 신분과 위계질서와 욕지꺼리로 모든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전역을 할 즈음, 나보다 두 살 위이자 여섯 달 아래인 아랫자리 아이가 병장 계급장을 달 무렵까지 군대에서 ‘거친 욕지꺼리’도 ‘누군가를 주먹이나 군홧발로 때린 일’도 없는 줄 알아차립니다. 전역을 며칠 앞두고 그 아이를 불렀습니다. 나한테 거수경례를 하는 아이한테 “아이고, 며칠 뒤면 전역하는 사람한테 무슨 경례를 해. 밖에 나가면 내가 당신한테 형이라고 해야 할 텐데. 밖에 나가서 길에서 마주치면 형이라고 할 테니, 그때에는 나한테 말 놓아요.” 하고 말한 뒤, “그나저나 어떻게 ○ 병장은 욕 한 마디도 안 하고 때리지도 않고 얼차려도 안 시킬 수 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이이는 “내가 싫어서 그렇지요. 다 귀엽고 착한 아이들인데 말로 해야지요. 말로 안 되면 그냥 내가 하면 되고요.” 하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늘 160명이 넘는 중대원이 복닥거리는 강원도 양구 비무장지대 멧골짝 부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겪었는데, 스스로 ‘나다움’을 지키려는 사람을 꼭 하나 만난 셈입니다. 참말 이 사람은 늘 눈에 뜨였습니다. 나이가 많으면서 몸이 꽤 여려, 무엇을 하든 으레 뒤처지거나 어설펐는데, 그래도 말없이 땀만 흘리면서 끝까지 견디곤 했어요. 저보다 못 하는 후임병한테도 퍽 살갑고 부드럽게 타이를 줄 알았습니다. 참 멋지구나 싶어 이녁한테 휴가증을 하나 선물로 주었습니다. 나는 군대에서 내 몫으로 나온 휴가를 보름치 안 써서, 전역할 때까지 보름치 휴가증이 남았고, 이 가운에 이레치를 이녁한테 건넸어요.


  1997년 12월 31일 새벽에 펑펑 쏟아지는 눈밭을 헤치며 멧골짝에서 전역을 하고 군대를 떠나는 길에 내내 이녁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바보처럼 세 차례 주먹다짐을 했고 툭하면 욕지꺼리를 내뱉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내 거친 말 때문에 마음이 다쳤을까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많은 아이들은 주먹다짐과 거친 말을 대물림해요. 받은 만큼 물려주거나 받은 것보다 더 크게 물려줍니다. 모두 그뿐입니다. 쳇바퀴를 돕니다. 이런 바보짓 쳇바퀴를 거스르는 빛이 하나 있었지요. 그때 그 사람은 오늘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이름도 성도 잊었습니다. 그 사람이 보여준 눈빛과 몸빛만 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평화로운 곳에 있어도 마음을 평화롭게 건사하지 않으면 평화롭지 않습니다. 전쟁터에 있어도 마음을 평화롭게 다스리면 평화롭습니다. 남이 나를 사랑해 주기도 할 테지만, 내가 스스로 나를 사랑할 때에 사랑이 태어납니다.


  아이들을 군대에 안 보내려면, 군대를 이 나라에서 없애면 될 테지요. 전쟁훈련과 살인훈련을 시키는 군대가 이 나라에서 사라져야, 이 땅에 평화가 싹틀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군대를 없애더라도 우리 마음자리에 사랑스러운 평화가 먼저 자라야 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믿고 아끼면서, 내 이웃과 동무를 함께 믿고 아낄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꽃에서 흐르는 냄새와 빛을 누릴 때에, 꽃밭이 아닌 눈밭에 있을 때에도 꽃내음과 꽃빛을 떠올리면서 즐겁게 웃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군대 조직’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 아이들은 군대에 가지 않은 몸이어도 학교에서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힙니다. 군대에서도 폭력이 이루어지지만 학교에서도 똑같습니다. 회사라고 다르지 않아요. 마을에서도 똑같아요. 군대에 있기에 사람이 더 바보처럼 주먹다짐을 하지 않아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도 가슴 아픈 주먹다짐이 벌어집니다.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는 해롱거리면서 싸움을 벌입니다. 서로 밟고 일어서려고, 서로 더 잇속을 챙기려고 괴롭히거나 윽박지릅니다.


  입시경쟁과 시험지옥을 없애지 않고서는 학교폭력과 청소년자살을 막을 수 없습니다. 취업경쟁과 경제개발을 없애지 않고서는 사회차별과 온갖 불평등을 뿌리뽑지 못합니다.


  학교와 회사와 군대와 감옥은 너무 얄궂게 서로 닮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와 회사와 군대와 감옥은 사람들 스스로 바보스러운 쳇바퀴에 갇히도록 내몹니다.


  사랑에 눈을 뜨지 않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삶을 바로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빛을 읽으면서 품고 아끼며 보살필 때에 비로소 모든 실타래를 풀면서 잘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4347.8.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태풍이 늘 지나가는 일본



  일본은 한국과 이웃이다. 한국은 꽤 먼 옛날 일본으로 쳐들어간 일이 있고, 일본도 얼마 앞서까지 한국으로 쳐들어온 일이 있다. 가장 가까운 발자취를 돌아볼 적에 일본이 한 짓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은 일본을 미워하기 일쑤이지만, 백제나 신라 무렵을 헤아려 보면, 그무렵 일본사람은 한국사람을 얼마나 무서워하거나 미워했을까 싶다.


  한국에는 곧잘 태풍이 지나간다. 참말 ‘곧잘’ 지나간다. 이와 달리 일본은 늘 태풍이 지나간다. 참말 ‘늘’ 지나간다. 어제오늘 또 모레와 글피까지도 지나간다는 태풍을 ‘지구별 그림날씨’로 살펴본다. 오키나와부터 훗카이도까지 태풍이 길게 일본을 덮는다. 그림날씨로만 보아도 꽤 무섭다. 이렇게 남부터 북까지 온통 태풍이 뒤덮을 수도 있구나.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은 먼먼 옛날부터 태풍을 어떻게 느꼈을까?


  그런데, 일본은 태풍만 늘 지나가지 않는다. 지진도 잦다. 화산도 곧잘 터진다. 바닷물이 크게 몰아쳐서 마을을 집어삼키는 때도 있다. 가만히 헤아려 보자. 한국에서 지진이 언제 났을까? 한국에서 화산이 언제 터졌을까? 한국에서 큰물결이 언제 마을을 집어삼켰을까?


  일본 영화나 일본 만화를 보면, ‘태풍이 온다’고 할 적에 대문과 창문을 모두 널판으로 꽝꽝 박아서 안 열리도록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붕도 굵은 밧줄로 동여매고는 땅바닥에 큰못으로 단단히 박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을까? 아예 없지 않았을 테지만 거의 없었다고 느낀다.


  일본사람이 빚은 만화나 영화나 문학을 보면 무척 놀라우면서 아름답다 싶도록 숲과 바다와 바람과 하늘과 해와 들을 노래한 작품이 꽤 많다. 아이들과 함께 보는 그림책을 볼 적에도 일본사람은 아주 놀라우면서 사랑스럽다 싶도록 깊고 너른 넋을 보여주곤 한다. 이런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런 슬기가 어디에서 솟았을까? 참으로 먼먼 옛날부터 태풍뿐 아니라 지진과 큰물결과 비바람과 무더위와 가뭄과 온갖 일을 두루 겪고 치르면서, 일본 겨레는 이녁 나름대로 숲을 바라보는 매무새가 사뭇 남다를밖에 없었으리라 느낀다.


  바람결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했다가는 그만 태풍에 날려가서 죽는다. 물결빛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했다가는 그만 바닷물에 빠져서 죽는다. 여느 때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숲이지만, 무섭게 몰아칠 적에는 그야말로 무서운 숲인 줄, 일본 겨레는 오랜 나날 온몸으로 익혔지 싶다.


  한겨레는 오늘날 어떤 넋으로 살아갈까. 한겨레는 오늘날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아갈까. 한겨레는 앞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넋이 되면서, 어떤 사랑을 씨앗으로 심는 삶을 지을 수 있을까. 4347.8.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라도닷컴> 2014년 8월호에 실은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이야기입니다. <전라도닷컴>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도 모두 싱그럽게 빛날 수 있기를 빕니다.



..


시골도서관 풀내음

― 우리는 모두 밥 먹는 이웃



  네 살 작은아이가 문득 한 마디 합니다. “아버지, 밖에서 새소리가 들려요.” “그래, 새소리가 들리는구나. 새소리인 줄 알겠니?” “응.”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은 요즈음 쓸쓸합니다. 새끼 제비 네 마리가 모두 날갯짓을 하느라 새벽같이 둥지를 비운 뒤, 저녁 늦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비는 이렇게 씩씩한 어른 제비로 자라나야 여름이 저무는 팔월 끝자락에 이웃 제비들하고 무리를 지어 태평양 너른 바다를 가로지를 수 있어요.


  우리 집 마당은 멧새 놀이터가 되곤 합니다. 지난겨울에는 빈 제비집에 딱새 두 마리하고 참새 두 마리가 깃들기도 했어요. 처마 밑에 제비집이 셋 있기에, 이 가운데 두 군데를 딱새와 참새가 나누어서 썼습니다. 마당에서 크게 자라는 후박나무에 온갖 새들이 내려앉아서 놀고, 옆에 있는 초피나무에도 갖은 새들이 내려앉아서 놉니다. 새들은 후박알을 따먹고 초피알을 훑습니다. 초피나무에 알을 까는 범나비 애벌레로 잡아서 먹기도 합니다. 마을 이웃 할배와 할매 가운데에는 ‘나비가 있으면 알을 까서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는다’며 농약이나 살충제를 휘휘 뿌리는 분도 있지만, 제비와 직박구리와 딱새와 참새와 어치 같은 새들이 쉴새없이 찾아들어 바지런히 애벌레를 잡아서 먹곤 합니다.


  글을 익히는 아이는 책을 스스로 읽고 싶습니다. 글을 익히기 때문에 남이 읽어 줄 때보다 스스로 읽을 때에 한결 재미있습니다. 따사로운 목소리로 읽어 줄 때에도 즐겁지만, 새롭게 맞아들일 이야기를 스스로 알아내면서 더욱 즐겁습니다.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글을 씁니다. 어버이한테서 배운 글을 척척 쓰면서 동생을 불러 이 글은 무엇이고 저 글은 무엇이라며 알려줍니다. 큰아이는 작은아이한테 스승이요 동무입니다.


  동생한테 글을 찬찬히 보여주며 물려주는 아이들입니다. 언니 오빠한테서 무엇이든 지켜보면서 물려받는 아이들입니다. 학교에 들어가야 배우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늘 배웁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늘 둘레 모든 것을 지켜보거나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들과 숲과 멧골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파트와 고속도로와 핵발전소와 군부대를 바라보면서 배울 수 있습니다. 툭하면 총을 들고 싸우는 어른들이 둘레에 있으면, 아이들은 툭하면 싸움놀이, 이른바 전쟁놀이를 합니다. 싸움놀이, 그러니까 전쟁놀이를 하면서 자란 아이들 마음에는 싸움과 전쟁이라는 생각이 크게 자리합니다. 동무를 아끼고 동생을 돌보면서 놀던 아이들 마음에는 따순 손길과 눈길이 넓게 자리하겠지요.


  〈뉴스타파〉라는 매체를 만든 최승호 님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철수와영희 펴냄,2014)라는 책을 읽어 봅니다. 신문기자나 방송피디로 일하는 사람은 정치권력이 아닌 ‘여린 이’, 그러니까 ‘수수한 사람들’ 곁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수한 사람들이란 누구일까요. 정치권력이 아닌 여린 이는 누구일까요. 신문이나 방송은 어떤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어야 할까요.


  학교에 집어넣기만 하면 끝나는 가르침(교육)이 아닙니다. 집과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아이들 앞날이 달라집니다. 어버이는 밥을 어떻게 지을까요. 어버이는 밥을 어떻게 마련할까요. 어버이는 자전거를 탈까요, 아니면 자가용을 탈까요, 아니면 두 다리로 걸을까요. 어버이는 텔레비전만 보나요, 책을 가까이하나요, 거친 말을 일삼는가요, 보드라우면서 사랑스러운 말을 나누는가요.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으니 방송을 안 봅니다. 이웃에 나들이를 가면 가끔 텔레비전을 구경합니다. 시외버스를 탈 적에도 더러 텔레비전을 구경합니다. 켜진 텔레비전을 문득 들여다보면 온통 사건·사고요, 연예인과 운동경기요, 정치권력하고 가까운 사람들 모습입니다. 굵직굵직하다는 일이라서 방송에 나와야 할는지 모르는데, 저 방송에서 ‘팔월에 뙤약볕 받으면서 풀을 뜯는 이야기’를 다룰 수 있으면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잡초가 아닌 풀을 뜯어서 나물로 먹는 이야기’를 다룰 수 있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학교에 붙들려 꼼짝없이 걸상에 앉아서 지내는 아이들이 아닌, 팔월 한여름에 시원한 골짜기로 놀러가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모습을 한 시간이나 두 시간쯤 그대로’ 보여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씨앗을 심는 어버이 곁에서 씨앗을 심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자가용 손잡이를 붙잡는 어버이 곁에서 자동차를 빠르게 익히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손으로 옷가지를 복복 비벼 빨래하는 어버이 곁에서 손빨래 삶을 살피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는 어버이 곁에서 과자봉지를 아무 데나 버리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달포쯤 되었지 싶은데,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면소재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머스마 넷이 나란히 걷다가 빈 음료수 깡통을 하늘로 높이 던지며 버려요. 이 아이들 뒤에서 자전거를 세운 뒤 “얘들아, 여기는 너희들이 사는 동네이고 너희들 고향이야. 너희가 이곳을 함부로 다루면 어떡하니.” 하고 얘기했습니다. 깡통을 버린 아이는 어기적거리며 주웠지만, 우리가 지나간 뒤 다시 아무 데에나 깡통을 집어던집니다. 읍내에서도 초등학교 아이들이 곧잘 과자봉지를 길바닥에 휙 던집니다. 이 아이를 붙잡고 주워서 가져가라고 얘기하면 마지못해 줍고는 몸을 돌리고 몇 걸음 가다가 다시 휙 던집니다.


  엊그제부터 상추씨를 얻습니다. 노란 상추꽃이 지면서 작은 씨앗을 맺습니다. 아이들 가슴마다 작은 씨앗이 있을 텐데, 시골 아이들은 어떤 어른들 곁에서 무엇을 보면서 어떤 씨앗을 키울까요. 고등학교만 마치면 얼른 떠나야 할 시골일까요. 언제나 즐겁게 두레를 하며 지낼 시골일까요. 푸른 바람을 마시고 푸른 노래를 부르며 훨훨 날아오르듯이 뛰노는 맑은 아이들을 그립니다. 4347.7.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겹말 손질 345 : 작은 숙부



작은 숙부와 안창호는 의형제를 맺고 구국활동을 하였지요

《김삼웅-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철수와영희,2014) 64쪽


 작은 숙부와 안창호는

→ 작은아버지와 안창호는



  한자말로 가리키는 이름인 ‘숙부(叔父)’는 한국말로 하자면 ‘작은아버지’입니다. 한국사람은 작은아버지한테는 ‘작은아버지’라 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보기글처럼 “작은 숙부”라 쓰면 얄궂은 겹말입니다. 아마 이 글을 쓴 분은 ‘숙부’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듯합니다. 또는 작은아버지가 여럿인데 이 가운데 둘째나 셋째나 막내인 작은아버지를 가리키려다가 그만 ‘작은’을 잘못 붙였지 싶어요. 아이를 둘 낳아서 돌보면, 흔히 큰아이와 작은아이라고 말해요. 이때에 ‘작은’ 아이는 ‘둘째 아이’입니다. 어쩌면, 이 보기글에서 “작은 숙부”는 “둘째 작은아버지”나 “막내 작은아버지”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4347.8.9.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작은아버지와 안창호는 믿음으로 형제가 되고 나라살리기를 하였지요


“의형제(義兄弟)를 맺고”는 그대로 둘 수 있습니다. 다만, ‘의형제’는 “믿음으로 맺은 형제”를 뜻해요. 그러니, 쉽게 글을 쓰고 싶다면 “믿음으로 형제가 되고”나 “믿음으로 형 동생이 되고”처럼 쓸 수 있어요. “구국활동(救國活動)을 하였지요”는 “나라살리기를 하였지요”나 “나라를 살리려 하였지요”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