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투정



  아주 바쁘게 ‘한국말사전 만들기 글’을 쓰다가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흐르고 머리가 살짝 지끈거린다. 살짝 드러누워 쉬어야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빨래를 하면서 씻기로 한다. 잠을 자는 방에 있는 이불과 베개를 걷어 마당에 넌다. 잠자리 평상을 걷어 마당에 펼쳐 말린다. 방바닥을 비로 쓸고 걸레로 훔친다. 이러고 나서 빨래를 한다. 빨래를 하면서 몸을 씻는다. 비누를 묻혀 비빈 뒤 헹구는 동안 여러 차례 몸을 씻는다. 빨래를 마친 옷가지를 마당에 넌다. 걸레를 다시 빨아 방바닥을 더 닦고 마룻바닥을 닦는다. 피아노방까지 닦을까 하다가 다시 일손을 붙잡은 뒤, 졸음이 몰리면 그때 걸레를 새로 빨아서 닦기로 한다.


  아이들과 곁님은 날마다 빨래를 내놓는다. 아주 마땅한 노릇이다. 날마다 빨래할 일이 생긴다. 그런데, 날마다 빨래를 하면서, 또 여름에는 아침 낮 저녁으로 빨래를 하면서 싫지 않다. 빨래를 할 핑계로 몸을 씻고, 빨래를 하며 몸을 씻다가 걸레를 빨면 집안 곳곳을 훔치거나 닦을 수 있다. 빨래를 날마다 해야 한다고 투정을 부릴 일이란 없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나는 이렇게 살림을 이럭저럭 꾸리니까 즐겁게 맞이하는 빨래이지, 지난날 어머니들은 지나치게 많은 일거리를 짊어져야 했기에 몹시 고되었으리라 느낀다. 지난날 어머니들은 투정할 겨를이 없었겠지. 투정할 기운이나마 남았을까. 4347.8.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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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4년 9월 21일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열리는 '책방은 도시를 가꾸는 숲'이라는 좌담회에서 쓸 발표글입니다. 다음달에 쓸 발표글이지만, 나 스스로 이 글을 띄워 놓아야 그때에 안 잊고 챙길 수 있으리라 여겨, 걸쳐 놓습니다. 다음달 9월 21일에 부산 헌책방골목으로 나들이를 오실 수 있는 분들은, 즐겁게 찾아와서 좌담회에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

..

책방은 도시를 가꾸는 숲


  책방이 한 곳 있는 마을과 책방이 한 곳도 없는 마을은 사뭇 다릅니다. 도시라면 자동차를 몰거나 버스라든지 전철을 타고 제법 멀리까지 책방마실을 할 텐데, 시골에서는 가까이 드나들 책방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아름다운 숲과 들과 멧골과 바다와 냇물을 누리면 된다고 할 만하니, 책이나 책방이 없어도 괜찮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도시는 어떠할까요. 도시에는 극장과 찻집과 술집과 옷집과 백화점과 갖가지 맛집이 있으면 될까요. 책방 하나 없는 도시를 세우고, 책방 하나 없이 아파트와 큰 건물을 줄줄이 세우면 될까요.

  나라에서는 고속도로를 닦거나 발전소를 짓거나 새로운 도시를 만든다며 아파트를 올리는 데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들입니다. 그러나, 책방 한 곳 건사하려고 들이는 돈은 아예 없습니다. 다만, 공공도서관은 꾸준히 늘립니다.

  도서관에서 모든 책을 다 빌려서 읽을 수 있어도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집에 책을 두기보다는, 가까운 도서관에 모든 책이 다 있어서 언제라도 넉넉히 책을 빌려서 읽을 수 있어도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 있는 도서관은 사진책이나 그림책(어른이 보는 그림책과 어린이가 보는 그림책 모두)이나 만화책은 갖추지 않습니다. 한국에 있는 도서관은 문학책과 인문책을 살펴서 갖춥니다. 어린이책은 따로 어린이책 도서관에 가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새벽 일찍 열거나 밤 늦게 여는 도서관이 없습니다. 도서관 일꾼을 넉넉히 두어 스물네 시간 불을 밝히는 도서관이 없지요.

  책방은 책을 사고파는 구실만 하지 않습니다. 책방이 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갖추지 않는 책’을 만납니다. 책방이 있기 때문에 ‘새로 나오는 책’을 더 빠르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책방이 있기 때문에 ‘틈나는 대로 자주 빌려서 볼 만한 책’을 즐겁게 장만해서 언제나 집에 갖출 수 있습니다.

  우리가 책을 장만해서 읽는다고 할 때에는 ‘한 번 읽은 뒤 다시는 안 펼칠 책’을 장만하거나 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 읽은 책을 다시는 안 볼’는지 몰라요. 한 번 읽었으니 다 되었다고 여겨 헌책방에 내놓을 수 있어요.

  한 번 읽고 그칠 책이라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됩니다. 그러나 더 헤아려 본다면, 한 번 읽고 그칠 책을 도서관에서 꼭 갖춰야 하는가 하고 궁금해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대여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오래도록 건사하면서 지키려는 곳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우리가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장만한다고 할 때에는, 두고두고 되읽을 책을 산다는 뜻이요,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아름다운 빛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책방이 한 곳이라도 있는 마을과 책방이 한 곳조차 없는 마을은 아주 다릅니다. 책방이 조그맣다 하더라도 한 곳이라도 있다면, 이 마을은 ‘아이들한테 물려줄 선물이 될 책’을 갖춘 쉼터나 만남터나 모임터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책방이 한 곳조차 없다면? 말 그대로입니다.

  책방이 한 곳이라도 있는 마을이란, 책뿐 아니라 다른 슬기로운 빛을 아이들한테 물려주려는 어른들이 씩씩하고 힘차게 마을살림을 가꾼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러니까, 마을빛을 가꾸면서 마을살림을 북돋우려 한다면, 마을에는 아주 조그마한 책방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한 곳은 있어야 합니다.

  책이란 무엇일까요?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안 읽는 종이꾸러미도 ‘겉보기로는 책’입니다만, 참된 이름으로 ‘책’을 말해 본다면, 책이란 사람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장 아름답고 환하게 밝힌 슬기로운 빛을 담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를 베어 종이를 빚은 뒤, ‘나무에서 탈바꿈한 종이’에 이야기를 적바림할 때에 책이 됩니다.

  마을에 책방이 한 곳이라도 있다고 할 적에는, 마을살림을 가꾸고 마을빛을 밝히는 슬기를 더욱 북돋우거나 살찌울 밑거름이 되는 ‘책’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책을 장만해서 읽으면서 스스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아름다운 책을 함께 장만해서 읽으며 늘 즐겁게 새로운 빛을 배우고 나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책방은 왜 도시를 가꾸는 숲이 될까요? 책방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운 책을 알아볼 뿐 아니라, 아름다운 책을 펴낸 작가와 출판사한테 힘을 보태어 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한 권 장만하면, 이 아름다운 책을 쓴 사람과 펴낸 사람은 기쁘게 일삯을 벌어요. 아름다운 눈길로 알아본 책 하나는, 아름다운 손길로 이어지고, 아름다운 마음길로 서로 다리를 놓는 사이, 어느새 마을과 마을이 어깨동무하면서 지구별이 사랑스럽게 빛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나 새 찻길을 닦아야 하더라도, 공사비 가운데 1/1000쯤은 ‘마을에 책방 한 곳 지키도록 하는 돈’으로 쓸 수 있기를 빕니다. 공장을 짓건 발전소를 짓건 골프장을 짓건 백화점을 짓건 무엇을 하건, 중앙정부와 지역정부 모두 공사비 가운데 1/1000쯤은 ‘마을 헌책방’과 ‘마을 새책방’이 함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돈으로 쓸 수 있기를 빕니다. 마을마다 책방이 싱그럽게 살아나야 마을이 스스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4347.8.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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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318) 차이 1 : 큰 차이를 나타내다


또 다른 조사보고에 의하면 보사부 소속 중앙대책위 집계와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송건호-현실과 이상》(정우사,1979) 259쪽


 집계와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 집계와 크게 다르다

→ 집계와 크게 벌어진다

 …



  한국말사전에서 ‘다르다’ 풀이를 찾아보면 “같지 않다”고 적어 놓습니다. ‘차이’라는 한자말 뜻풀이를 찾아보면 “같지 아니하고 다름”이라고 적어 놓습니다. 그러니까 “같지 아니하고 같지 않음”으로 말풀이를 적은 셈입니다. 뜻이 같은 말을 이렇게 겹으로 적어야 할 만큼, 한자말 ‘차이’는 한국말 ‘다르다’하고는 다른 낱말일까 궁금합니다.


 성격 차이 때문에

→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 성격이 달라서

 능력에 차이가 있다

→ 재주가 다르다

→ 솜씨가 벌어지다

 세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다

→ 벌어진 나이대를 넘어서지 못하다

→ 다른 나이대를 딛고 서지 못하다

 차이가 나다

→ 다르다

→ 벌어지다

 견해 차이가 크다

→ 생각이 크게 다르다

→ 생각이 크게 벌어지다

 큰 차이가 없었다

→ 크게 다르지 않았다

→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 서로 다른 문화를 이겨내고


  ‘차이’라는 낱말이 한자말이든 아니든 써야 한다면 얼마든지 써야 합니다. 알맞다싶은 자리를 찾아서 넣어 주면 됩니다. 그러나 ‘차이’가 한자말이든 아니든 쓸 만한 까닭이 없다면 깨끗이 털어야 합니다. 남김없이 들어내야 합니다. 샅샅이 씻어야 합니다.


  단출하게 말하면 그만인 자리에 구태여 집어넣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조촐하게 적으면 넉넉한 자리에 괜히 밀어넣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삶을 밝히고 생각을 북돋우며 넋을 가다듬는 길에 밑거름이 될 만한 사랑스럽고 반가운 한국말을 살뜰히 헤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37.8.8.해/4341.11.26.물/4347.8.12.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또 다른 조사보고를 보면 보사부에 딸린 중앙대책위 집계와 크게 다르다


“조사보고에 의(依)하면”은 “조사보고를 보면”이나 “조사보고에 따르면”으로 다듬습니다. “보사부 소속(所屬)”은 “보사부에 딸린”이나 “보사부에 있는”으로 손질합니다.



 차이(差異) :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 성격 차이 / 능력 차이 / 세대의 차이 / 차이가 나다 /

     이것과 저것은 차이가 있다 / 그와 나는 견해 차이가 크다 /

     그곳을 떠날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58) 차이 3 : 차이가 있다


인간 이외의 포유류 울음소리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는 처음이다. 원숭이뿐만이 아니라 까치도 사는 지역마다 말이 다를 것이고, 뻐꾸기도 다를 것이며 고래도 다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라도 우리 탯말》(소금나무,2006) 10쪽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x)

 뻐꾸기도 다를 것이며 고래도 다를 것 (o)


  보기글을 보면 앞에서는 “차이가 있다”로 쓰지만, 바로 뒤부터는 세 차례 “다를 것”으로 씁니다.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이렇게 글쓴이 스스로 어떻게 말을 하면 훨씬 나은 줄 아니까요. 알지만 느끼지 못할 뿐이니까요. ‘다르다’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다르다’를 어떻게 써야 알맞을는지 모르는 사람은 참 많네요. 4339.10.11.물/4347.8.12.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람 아닌 젖먹이짐승 울음소리도 고장에 따라 다르다고 밝혀지기는 처음이다. 원숭이뿐만이 아니라 까치도 사는 고장마다 말이 다를 테고, 뻐꾸기도 다를 테며 고래도 다르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人間) 이외(以外)의 포유류(哺乳類)”는 “사람 아닌 젖먹이짐승”으로 다듬어 봅니다. ‘지역(地域)’은 ‘곳’이나 ‘고장’으로 다듬어 줍니다. “있다는 사실(事實)이”는 “있다고”로 손보고, “다를 것이고”는 “다를 테고”나 “다르고”로 손봅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956) 차이 3 : 하늘과 땅 차이다


배제해야 할 대상, 범죄자 예비군으로서 취급받고 있는 재일조선인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신숙옥-재일조선인의 가슴속》(십년후,2003) 36쪽


 하늘과 땅 차이다

→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 하늘과 땅처럼 벌어진다

 …



  “하늘과 땅의 차이다”처럼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차이’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은 어떠한가요? 둘은 서로 같은가요, 다른가요? 다르지요? 그러면 그렇습니다. 둘은 서로 다르니, ‘하늘과 땅은 다르다’처럼 적으면 됩니다. 하늘과 땅은 가까이 맞닿지 않습니다. 둘은 멀리 떨어집니다. 그러니, 하늘과 땅은 벌어집니다.


  다르기에 ‘다르다’고 말합니다. 같다면 ‘같다’고 말할 테지요. 서로 다른 모습을 가만히 살피면서, 서로 다른 사랑을 헤아리고, 서로 다른 꿈을 알뜰살뜰 아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38.8.7.해/4347.8.12.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따로 떼어 낼 사람, 범죄를 저지를지 모를 사람으로 다뤄지는 재일조선인과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배제(排除)해야 할 대상(對象)”은 “따로 떼어 낼 사람”이나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사람”이나 “꺼려야 할 사람”으로 다듬습니다. “범죄자 예비군(豫備群)”은 “범죄를 저지를지 모를 사람”으로 손보고, “취급(取扱)받고 있는”은 “다뤄지는”이나 “등 떠밀리는”으로 손봅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49) 차이 5 : 그런 차이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과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사이에 존재하는 그런 차이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일본이라는 나라의 차이다

《사기사와 메구무/김석희 옮김-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자유포럼,1999) 154쪽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사이에 존재하는 그런 차이는

→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사람이 서로 다른 모습은

→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사람이 다른 모습은

 미국이라는 나라와 일본이라는 나라의 차이다

→ 미국이라는 나라와 일본이라는 나라가 다른 모습이다

 …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곳에 따라 자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는 결에 따라 마음이 다르게 자랍니다. 이곳에서는 이러한 삶에 따라 자라고, 저곳에서는 저러한 사랑에 따라 자랍니다.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다 다른 삶터에 걸맞게 다 다르게 피어나는 숨결이요 빛입니다.


  이 보기글은 앞뒤로 ‘차이’라는 한자말을 쓰는데, 통째로 손질해서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사람과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사람이 서로 다른 까닭은 미국이라는 나라와 일본이라는 나라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처럼 ‘까닭·때문’을 넣으면 한결 부드럽게 읽을 만하지 싶습니다. 4347.8.12.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사람과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사람이 서로 다른 모습은 미국이라는 나라와 일본이라는 나라가 다른 모습이다


‘한국인(-人)’은 ‘한국사람’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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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33. 사진과 함께 있어



  간밤에 사진을 찍으며 노는 꿈을 꿉니다. 이제껏 여러 가지 꿈을 많이 꾸기는 했으나, 사진을 찍으며 노는 꿈은 처음입니다. 요 며칠 일이 많고 바쁜 나머지 시골집에서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놀지 못한 탓에 꿈에서는 신나게 놀고 싶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꿈에서 사진놀이를 하는 나는 그야말로 ‘내가 찍고 싶은 사진’만 찍습니다. 남한테 보여주려는 사진은 안 찍습니다. 남한테 잘 보이려는 사진은 안 찍습니다. 오직 한 가지 사진만 찍습니다. 나 스스로 내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면서, 나 스스로 내 사랑이 가장 곱게 빛난다 싶은 사진만 찍습니다.


  꿈을 깨고 새롭게 아침을 맞이합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하루입니다. 어제는 오늘과 같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두루 누린 뒤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꾼 뒤, 이튿날 아침을 다시 맞이할 적에도 이튿날 아침은 새로운 하루입니다. 언제나 새롭게 누리는 하루이고, 언제나 새롭게 맞이하는 아침입니다. 날마다 사진을 찍으나 날마다 새롭게 즐기면서 찍는 사진입니다. 날마다 찍는 사진은 날마다 똑같이 되풀이하듯이 찍는 사진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하루인 줄 느끼면서 새로운 눈빛을 밝혀서 찍는 사진입니다.


  똑같은 곳에 찾아가서 똑같은 때에 똑같은 장비를 갖추어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해 봅니다. 똑같은 사진이 나올 수 있을까요? 날마다 똑같은 마음과 생각이라면, 참말 똑같은 사진이 나올 수도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날마다 새로운 하루라고 느낀다면 날마다 새롭다 싶은 사진을 얻어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면서 맞이하는 하루라고 느낀다면 날마다 언제나 새롭구나 싶은 사진을 차근차근 빚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즐겁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나 놀이를 즐기면서 활짝 웃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가장 기쁜 때에 사진기를 꺼내어 찰칵 찍으면서 환하게 노래합니다.


  사진과 함께 있어서 내 마음이 가장 기쁘게 타오를 때에 이야기 하나를 남길 수 있도록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과 함께 있기에 내 사랑이 가장 맑고 따스할 때에 꿈 하나를 적바림할 수 있도록 사진을 찍습니다. 4347.8.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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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시인선 106
안명옥 지음 / 천년의시작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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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62



시와 먹구름

― 칼

 안명옥 글

 천년의시작 펴냄, 2008.11.30.



  일곱 살 큰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걷습니다.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멧기슭에 자리한 이웃집에 마실을 간 뒤, 천천히 길을 걸어서 우리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웃집에서 면소재지까지 한 시간 오십 분 동안 걷습니다. 시골에서는 군내버스를 타는 데가 드문드문 있을 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읍내로 가도록 버스길이 뻗으니, 이웃마을에서 우리 마을로 돌아가자면 한참 걸어야 합니다.


  아직 뜨겁게 내리쬐는 팔월 십일일 햇볕을 받으면서 걷습니다. 구름이 살살 흐르면 햇볕을 가리면서 그늘이 집니다. 바람이 쏴아 불면 햇볕을 받으면서 걷더라도 시원합니다.


  해를 바라보면서 걸을 적에는 구름을 올려다보기 어렵습니다. 아주 눈부시기 때문입니다. 해를 등지고 걸을 적에는 구름을 올려다보기 수월합니다. 이맛살을 쫙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눈이 안 아픕니다.



.. 언니, 사는 게 너무 힘드네 / 그렇게 사는 게 다 네 업이야 ..  (무거운 도화지)



  구름은 여러 겹입니다. 구름은 높이마다 다릅니다. 아주 높이 뜬 구름이 있고 나즈막하게 흐르는 구름이 있습니다. 탁 트인 들길을 걸어가면서 온갖 구름을 만납니다. 온갖 구름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갖 구름한테 노래를 들려줍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해창만 들길을 걷습니다. 큰아이를 업다가 안다가 걸립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무척 씩씩하고 튼튼하지만, 뙤약볕을 두 시간 가까이 걷기란 만만하지 않겠지요.


  아이를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습니다. 아이를 안고 걷는 동안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가 그만 내려서 걷겠다고 할 적에는 손을 잡고 노래를 부릅니다. 두 시간 가까이 걷는 동안 이 길을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도 못 봅니다. 경운기를 달리는 사람 서넛, 자가용을 달리는 사람 스무 남짓, 짐차를 달리는 사람 열 즈음 만납니다.



.. 나무껍질을 벗긴다 / 대패질을 하면서 나무의 결을 만들어가면 / 조금씩 드러나는 나무 색깔, / 애무하듯 구석구석 정성을 들이며 / 결을 따라 부드럽게 사포질한다 ..  (바로크가구)



  예전에는 누구나 이 길을 걸었겠지요. 예전에는 누구나 이만 한 길을 걸어서 학교도 다니고, 면내나 읍내를 다녔겠지요. 예전에는 누구나 이런 길을 걸어가면서 노래를 불렀겠지요. 예전에는 누구나 이런 길을 걷다가 나무그늘에서 다리를 쉬고 도랑물에 목을 축였겠지요.


  오늘날에는 십 분 넘게 길을 걷는 시골사람조차 만나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도 십 분 넘게 길을 걷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삼십 분 넘게 걷는다든지 한 시간 넘게 걸어서 학교나 회사를 오가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걸어다니면서 노래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귀에 소리통을 꽂고 노래를 듣는 사람은 있겠지만,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서 걷는 사람은 참말 얼마쯤 있을까요.


  그래요. 이제 이 나라에는 노래가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채우는 대중노래는 있습니다. 돈을 벌려고 부르는 노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삶을 지으려고 부르는 노래는 없습니다.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가슴에서 샘솟는 노래는 없습니다.



.. 오래전에 입었던 바지를 꺼내 입는다 //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살 ..  (구름바지)



  안명옥 님 시집 《칼》(천년의시작,2008)을 읽습니다. 안명옥 님 삶과 넋과 꿈이 깃든 시집을 읽습니다. 안명옥 님은 이녁 삶과 넋과 꿈을 ‘칼’이라는 낱말 하나로 갈무리합니다.


  칼이란 무엇일까요. 전쟁을 벌여 서로서로 죽고 죽이는 무기일까요. 부엌에서 통통통 고소한 도마질 소리를 내면서 살가운 숨결을 나누어 주는 밥을 짓는 살림살이일까요.


  나물을 다듬는 칼일까요. 물고기 대가리를 따는 칼일까요. 나무를 깎는 칼일까요. 능금알을 쪼개는 칼일까요.



.. 내 귓속에서 / 세상의 소리들이 하나씩 죽어가고 있다 / 소리는 쌓여서 무덤을 이룬다 / 빛을 향해 열려 있는 내 몸 / 조용히 흘러 들어와 내 몸 어딘가에 / 소리 그림자를 저장해 두는 것들 ..  (귀-2)



  오늘 나는 큰아이와 두 시간 가까이 들길을 걸어 군내버스를 타려 했는데, 그만 코앞에서 놓칩니다. 고단하고 발이 아픈 큰아이를 가슴에 안고 잰걸음으로 면소재지에 들어서려는 때에 군내버스가 우리 앞을 부웅 스치고 지나갑니다. 버스를 부를 겨를도 없이, 버스를 잡을 틈도 없이, 군내버스는 저 앞으로 멀리 사라집니다.


  버스를 탔으면 찻삯 1500원이 들었을 텐데, 택시를 불러 8000원 찻삯을 치릅니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집에 잘 들어왔고,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함께 씻긴 뒤 새 옷을 입힙니다. 땀에 옴팡 젖은 두 아이 옷과 내 옷을 조물조물 주물러 빨래합니다. 기지개를 켜고 마당에 내다 넙니다. 아침에 빨아서 내다 넌 옷은 다 말랐습니다.


  파랗게 싱그러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천천히 흐르는 구름을 바라봅니다. 한참 구름을 바라보면 구름빛은 찬찬히 바뀝니다.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구름은 없습니다. 올해까지 마흔 살을 살면서 이제껏 똑같은 구름을 본 적은 한 차례도 없습니다. 앞으로 마흔 살을 더 살아도 똑같은 구름은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 혼자, 길을 간다 // 지도 한 장 펼쳐보아도 /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 어렴풋이 빛이 보이는 쪽으로 걷는다 / 이정표의 글자들이 흔들린다 ..  (먹구름)



  네 살 작은아이는 아직 ‘먹구름’이라는 낱말을 모릅니다. 네 살 아이는 먹구름을 볼 때면 “저기 까만 구름 있어.” 하고 말합니다. 그래, 너한테는 까만 구름이로구나. 그렇지만, 까만 구름도 ‘까만 빛’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잿빛이라고 해야 맞겠지. 때로는 짙은 잿빛일 테고 여느 때에는 옅은 잿빛인 구름일 테지.


  여름에는 구름이 흘러 시원합니다. 여름에는 구름이 흐르면서 바람이 산뜻합니다. 여름에는 구름이 끼면서 그늘이 드리워 더위를 식힙니다. 구름이 있으면 에어컨도 선풍기도 부채도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해가 따순 볕을 내리쬐고 틈틈이 구름이 흐르면서 숲과 들과 마을과 집이 모두 아름답게 빛납니다. 4347.8.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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