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490) 고사 1 : 고사한 거목


살쾡이는 살기에 딱 좋은 고사한 거목의 구멍을 발견했다

《이마이즈미 요시하루(글),다니구치 지로(그림)/김완 옮김-시튼 (2)》(애니북스,2007) 12쪽


 고사한 거목의 구멍을

→ 말라죽은 큰나무 구멍을

→ 말라죽은 큰나무에 생긴 구멍을

 …



  한국말사전에 모두 스물일곱 가지에 이르는 한자말 ‘고사’가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우리가 쓸 만한 ‘고사’는 몇 가지인지 알쏭달쏭입니다. 우리 삶터에서 쓰임직한 ‘고사’를 몇 가지나 추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쓰이지 않을 뿐더러 쓰일 일이 없는데다가 구태여 한국말사전에 실을 까닭이 없는데 쑤셔넣은 ‘고사’가 한가득이지 않은가요. 예전에도 그리 쓰일 듯하지 않을 뿐더러, 오늘날에는 조금도 쓰이지 않고, 앞으로도 쓰일 낌새가 보이지 않는 낱말을 꾸역꾸역 한국말사전에 몰아넣지 않았나요.


  오래된 절이면 ‘오래된 절’입니다. 한 마디로 ‘옛절(古寺)’입니다. 오래된 일은 한 마디로 ‘옛일(古事)’입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 역사를 ‘古史’라는 한자말로만 짓기보다, ‘옛역사’라는 낱말로 새로 지어서 쓰면 한결 잘 어울리며 손쉽게 알아들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자세히 생각하고 조사함”을 ‘考査’라느니 ‘考校’라느니 쓴다는데, ‘살펴보다’나 ‘알아보다’라 말하면 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치는 시험을 ‘고사(考査)’라고 이름을 붙이며 ‘월말고사·기말고사·중간고사’처럼 쓰기도 하는데, 시험은 그저 ‘시험’이라고 할 때가 가장 알맞다고 느낍니다. ‘월말시험·학기끝시험·중간시험’으로 쓰면 됩니다. 머리를 조아리면 ‘조아린다’고 하면 되지, ‘고사(叩謝)한다’고 하면 누가 알아듣겠습니까. 괴로움을 늘어놓는 일은 ‘늘어놓다’고 하거나 ‘털어놓다’고 하면 됩니다. ‘고사(苦詞)’를 아예 한자로만 적어 놓는다고 해서 누가 무슨 뜻인지 알아챌까요.


 고사를 살펴보면 → 옛역사를 살펴보면

 퇴락해 가는 고사 → 무너져 가는 옛절

 고사가 되어 버린 그 일 → 옛일이 되어 버린 그 일

 오래돼 보이는 고사로 → 오래돼 보이는 사당으로


  말을 가꾸는 사람은 학자가 아닙니다. 정부도 아닙니다. 날마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가꾸는 말이며, 우리 스스로 키우는 글입니다. 스스로 일으키는 말인 한편, 스스로 갉아먹는 말입니다. 스스로 보듬는 글이면서, 스스로 무너뜨리는 글입니다. 우리 삶과 생각과 매무새에 따라서, 말이며 글이며 크게 달라집니다.


 수차례의 고사 끝에 → 여러 차례 손사래친 끝에

 새옹지마라는 고사 → 새옹지마라는 옛말

 고사를 따르다 → 오랜 규칙을 따르다

 고사 각조를 조정하다 → 높이 쏠 각도를 재다


  쓰이지 않을 뿐더러 군더더기만 가득가득 넘치는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면서 ‘한국말사전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으니 한국말이란 아무 뜻이 없지’ 하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한국말이 어떠한 줄 제대로 모르는 한편, 스스로 손을 놓는 셈입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옛집’이라는 한국말이 하나 실리기는 하지만, 이와 맞물려, ‘옛집’을 가리키는 한자말을 ‘고거·고택·구가·구거·구서·구옥·구택’, 이렇게 일곱 가지나 실었습니다. 끔찍하지 않습니까? 저는 끔찍하다고 느낍니다. ‘옛집’ 한 마디면 되는데, 무슨 ‘한자놀이’ 하는 셈도 아니고, 한국말사전에 이런저런 군말을 잔뜩 올려야 할까 모르겠어요.


  옛일은 그예 ‘옛일’일 뿐입니다. ‘고사(古事)’와 ‘고사(故事)’는 무엇이 다릅니까? 어떻게 가릅니까. 두 가지 한자말로 나누어 써야 할 까닭이 따로 있을까요? 두 가지 한자말을 아예 한자로만 적어 놓는들, 두 낱말 쓰임새가 환히 나뉘겠습니까.


 환경 오염에 따른 나무의 고사

→ 환경 오염 때문에 나무가 말라죽음

→ 삶터가 더러워지며 나무가 말라죽음

 당산나무의 고사를

→ 당산나무가 말라죽은 일을

→ 당산나무가 말라죽어서

→ 말라죽은 당산나무를


  말라서 죽으니 ‘말라죽다’입니다. 그러나 한국말사전에는 ‘말라죽다’ 같은 낱말이 실리지 않습니다. “꽃이 말라죽었어요”라든지 “나무가 말라죽었어요” 하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 나라 한국말사전에는 이 낱말 ‘말라죽다’는 안 싣습니다. 곰곰이 살펴보면, 얼어서 죽는 ‘얼어죽다’도 한국말사전에 안 실립니다. 오로지 ‘동사(凍死)’만 실립니다. ‘깔려죽다’나 ‘눌려죽다’ 또한 안 실리고, 오직 ‘압사(壓死)’만 실립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하자면 한국말사전을 버려야 할 판입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알뜰살뜰 익히자면 한국말사전은 불태워야 할 노릇입니다. 한국사람답게 한국말을 넉넉히 헤아리자면 한국말사전이라는 책은 잊어야 하는 셈입니다. 4342.1.5.불/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살쾡이는 살기에 딱 좋은 말라죽은 큰나무 구멍을 찾았다


“거목(巨木)의 구멍”은 “큰나무 구멍”이나 “큰나무에 난 구멍”으로 다듬습니다. ‘발견(發見)했다’는 ‘찾았다’나 ‘보았다’로 손봅니다.



 고사(古史) : 옛날 역사

   - 고사를 살펴보면 오늘날에도 배울 점이 많다

 고사(古寺) : 오래된 절

   - 퇴락해 가는 고사

 고사(古事) = 옛일

   - 이미 고사가 되어 버린 그 일을

 고사(古祠) : 오래된 낡은 사당(祠堂)

   - 오래돼 보이는 고사로 몸을 숨기다

 고사(古祠) ; 오래된 낡은 사당(祠堂)

 고사(叩謝)

  (1) 머리를 조아려서 고마운 마음을 나타냄

  (2) 머리를 조아려서 죄를 빎

 고사(考思) = 고려(考慮)

 고사(考査)

  (1) 자세히 생각하고 조사함

  (2) 학생들의 학업 성적을 평가하는 시험

   - 월말 고사 / 학기마다 두 번씩 고사를 치른다

  (3) [역사] = 고과(考課)

 고사(告祀) : [민속] 액운(厄運)은 없어지고 풍요와 행운이 오도록 집안에서 섬기는 신(神)에게 음식을 차려 놓고 비는 제사

 고사(告詞/告辭) : 의식(儀式) 때에 상급자가 글로 써서 읽어 축하하거나 훈시하는 말

 고사(固辭) : 제의나 권유 따위를 굳이 사양함. ‘거절함’, ‘굳이 사양함’으로 순화

   - 수차례의 고사 끝에 결국에는 그 제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고사(孤寺) :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 절

 고사(故事)

  (1) 유래가 있는 옛날의 일. 또는 그런 일을 표현한 어구

   - 새옹지마라는 고사를 아나? / 강 태공의 고사를 여기서 눈으로 본 듯하다

  (2) 옛날부터 전해 오는 규칙이나 정례(定例)

   - 고사를 따르다 / 고사에 어긋나다

  (3) = 옛일

 고사(枯死) : 나무나 풀 따위가 말라 죽음. ‘말라 죽음’으로 순화

   - 환경 오염에 따른 나무의 고사 / 당산나무의 고사를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고사(苦使) : 매우 혹독하게 일을 시키거나 부림

 고사(苦思)

  (1) 괴롭거나 고통스러운 생각

  (2) 마음을 썩이며 깊이 생각함

 고사(苦詞) : 괴로움을 말로 늘어놓음

 고사(苦辭) : 간절히 사양함

 고사(庫司) : [불교] = 도감사

 고사(庫舍) = 곳집

 고사(庫紗) : 여름 옷감으로 쓰는 비단의 하나

 고사(高士) : 인격이 높고 성품이 깨끗한 선비

 고사(高砂) : ‘대만’의 다른 이름

 고사(高射) : 공중에 높이 쏨

   - 고사 각도를 조정하다

 고사(高師) : [역사] 일제 강점기에, ‘고등 사범 학교’를 줄여 이르던 말

 고사(鼓詞) : [음악] 산문(散文)의 이야기와 운문(韻文)의 창(唱)으로 구성된 중국의 창극

 고사(?師) : 배를 부리는 일에 숙련된 나이든 뱃사공


..



 알량한 말 바로잡기

 (396) 고사 1 : 고사하고

 

니가 참아라. 재작년에 윗집 삼식이 보증서 준 것이 말썽인 모양이다.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도 못 갚아 보증 선 사람들이 갚아야 한다지 않냐

《윤기현-보리타작 하는 날》(사계절,1999) 70쪽


 원금은 고사하고

→ 꾸어 준 돈은커녕

→ 맡긴 돈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

 …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일로 읽을 때도 있지만 어린이도 읽고 느끼며 헤아리도록 쉽게 쓴 글을 즐겁게 읽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니 찾아 읽고, 마음밭을 살찌우니 기꺼이 읽습니다.


  요즈음 나오는 어린이책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나날이 한자말을 적게 쓰는 듯합니다. 그나마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읽는 책에는 이만큼 되는구나 싶은는데, 중학교 갈 적부터 읽는 책에는 ‘초등학교 다니던 때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한자말’이 수두룩하게 나오면서, 모든 지식을 새로 익히도록 짜는구나 싶습니다. 그나마 깨끗하다는 말로 된 어린이책도 도시에서 중산층쯤 되는 사람들 삶에 맞추어 쓴 글이 수두룩합니다. 이 나라에 중산층이라 할 만한 사람이 많이 늘어났고, 책을 사서 읽는 사람도 으레 중산층쯤 되는 살림을 꾸린다고 할 터이니 아주 스스럼없는 흐름이기는 할 텐데, 어째 내키지 않습니다. 어딘가 얄궂습니다. 아무리 요새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가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고 아파트에 살고 자가용을 굴리고 한다지만, 아이들이 읽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거의 모두 이런 삶에 맞춘다면, 글쎄요, 바람직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어린이책을 엮을는지 궁금합니다.

 

 1등은 고사하고

→ 1등은커녕

→ 1등은 꿈도 못 꾸고

→ 1등은 안 될 뿐더러

 배불리 먹기는 고사하고

→ 배불리 먹기는커녕

→ 배불리 먹지 못할 뿐더러

→ 배불리 먹지 못할 뿐 아니라

→ 배불리 먹지 못하는데다가

 

  어린이책에 쓰는 말도 말이지만, 어린이책에 담는 삶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말은 제법 나아지거나 거듭났다고 하지만, 말에 담는 삶이 옹글게 영글지 않는다면 그리 반갑지 않아요. 글은 퍽 훌륭하거나 짜임새 있게 꾸몄다고 하지만, 글에 싣는 넋과 얼이 알차지 않았다면 조금도 즐겁지 않아요.


  말장난과 글놀이에 빠져들자고 읽는 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재주와 글솜씨를 키우자고 가까이하는 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4334.10.11.나무/4342.1.6.불/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니가 참아라. 그러께에 윗집 삼식이 보증서 준 것이 말썽인 모양이다. 맡긴 돈은커녕 이자도 못 갚아 보증 선 사람들이 갚아야 한다지 않냐

 

‘재작년(再昨年)’은 ‘지지난해’나 ‘그러께’로 다듬습니다. ‘원금(元金)’은 ‘꾸어 준 돈’이나 ‘맡긴 돈’으로 고쳐 줍니다. 요사이는 쓰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길미’라는 한국말이 있습니다. ‘길미’를 한자말로 옮기면 ‘이자(利子)’입니다.


 

 고사하고(姑捨-) : 더 말할 나위도 없이

   - 1등은 고사하고 중간도 못 가는 성적 / 배불리 먹기는 고사하고 굶어 죽을 판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83) 축재


청렴결백, 민주주의, 솔선수범 따위의 구호를 외치면서 뒤에서는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고 더러운 축재를 일삼았던 자들의 실체이다

《리영희-스핑크스의 코》(까치,1998) 293쪽


 더러운 축재를 일삼았던

→ 더러운 돈을 모았던

→ 더럽게 돈을 모았던

→ 더럽게 떼돈을 벌었던

→ 더럽게 검은돈을 쌓았던

 …



  흔히 “부정 축재” 꼴로 쓰는 한자말 ‘蓄財’입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니 소리값이 같은 다른 한자말은 없습니다. 오로지 “재산을 모음”을 뜻하는 ‘蓄財’만 실립니다. 그러나, “재산을 모음”으로 고쳐쓰라고 나옵니다. 한국사람이 쓸 만하지 않은 낱말인 셈입니다.


 ‘축재’인데 “부정 축재”를 “부정한 재산을 모음”으로 고쳐쓴다고 해서 뜻이나 느낌이 또렷해지지 않습니다. ‘부정(不淨)한’까지 ‘깨끗하지 못한’이나 ‘더러운’이나 ‘지저분한’으로 고쳐 주어야 뜻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축재’를 알맞춤하게 다듬어서 쓰는 분은 퍽 드뭅니다. 그냥 ‘축재’라고 말해 버립니다. ‘부정’ 또한 알뜰히 걸러내어 쓰는 분도 드뭅니다. 그예 ‘부정’이라고 말하고 맙니다.


 부정 축재 → 검은돈 모음

 축재도 상당했으므로 → 돈도 많이 모았으므로


  생각이 없다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마음이 없다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넋이 없다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느낌이 없다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삶이 없다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있으면 ‘부정’이든 ‘축재’이든 털어내거나 씻어내어야지 싶습니다만, 내 이웃과 동무가 있으면 “부정 축재”든 “축재도 상당했으므로”든 몰아내거나 쫓아내야지 싶습니다만. 4341.11.26.물/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청렴결백, 민주주의, 솔선수범 따위를 외치면서 뒤에서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더러운 돈을 모았던 놈들이 발가벗은 모습이다


“따위의 구호(口號)”는 “따위 목소리”로 다듬고, ‘공포(恐怖)’는 ‘두려움’으로 다듬습니다. “자(者)들의 실체(實體)이다”는 “사람들 참모습이다”나 “사람들을 발가벗긴 모습이다”로 손봅니다.



 축재(蓄財) : 재물을 모아 쌓음. ‘재산을 모음’으로 순화

   - 부정 축재 /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축재도 상당했으므로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79) 기분


자전거가 달리기 시작하자 허리가 쑥 펴지면서 키도 갑자기 더 커지고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 기분이었다

《박남정-초딩, 자전거길을 만들다》(소나무,2008) 8쪽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 기분이었다

→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 듯했다

→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구나 싶었다

 …



  꼭 털어내야 하는 한자말 ‘氣分’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국말사전에 실린 다른 한자말 ‘기분’ 네 가지는 우리가 쓸 일이 조금도 없다고 느낍니다. ‘氣奔’이란 무엇일까요? ‘가려움증’이나 ‘가려움병’이 아닐는지요. “얼마”를 뜻한다는 한자말 ‘幾分’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키와 삼태기”는 그저 이런 살림살이 그대로 가리키면 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됨됨이”를 ‘機分’이라는 한자말로 가리킨다고도 합니다만, 사람 됨됨이는 ‘됨됨이’라 말하면 될 뿐입니다.


 친구의 냉담한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 친구가 차갑게 굴어 마음이 나빴다

→ 친구가 쌀쌀맞아서 토라졌다

→ 친구가 매몰차서 마음이 안 좋다

 술 한잔 받으시고 기분 푸세요

→ 술 한잔 받으시고 마음 푸셔요

 오랜만에 기분을 내기 위해

→ 오랜만에 즐겁게 놀려고

→ 오랜만에 즐겁게 지내려고

 거리는 온통 연말 기분에 휩싸여 북적거렸다

→ 거리는 온통 새해맞이에 휩싸여 북적거렸다

→ 거리는 온통 새해맞이를 앞두고 북적거렸다


  마음이 어떻게 흐르는지 헤아립니다. 내 마음이 어떤 빛으로 흐르는지 살핍니다. 내 마음이 어떤 무늬가 되어 어떻게 빛나는지 돌아봅니다.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서로서로 마음을 읽고 사랑을 나눌 적에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 한 마디에는 언제나 따사로운 빛이 서립니다. 어떤 빛을 담아서 마음을 밝히려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살리는 길이란, 우리 삶과 넋을 함께 살리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4341.11.6.나무/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자전거가 달리자 허리가 쑥 펴지면서 키도 갑자기 더 커지고 어깨까지 쩍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자전거가 달리기 시작(始作)하자”는 “자전거가 달리자”로 다듬습니다. 그런데, 달리는 임자는 자전거가 아닌 사람일 터이니, “자전거를 달리자”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아니면, “자전거를 굴리자”로 적어 줍니다.



 기분(氣分)

  (1) 대상·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 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

   - 기분이 좋다 / 기분이 나쁘다 / 친구의 냉담한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

     술 한잔 받으시고 기분 푸세요 / 오랜만에 기분을 내기 위해

  (2)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

   - 거리는 온통 연말 기분에 휩싸여 북적거렸다 / 잔치 기분에 들떴다

 기분(氣奔) : [한의] 온몸의 살갗이 몹시 가렵고 긁으면 피가 나는 피부병

 기분(幾分) = 얼마

 기분(箕?) : 키와 삼태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

 기분(機分)

  (1) 사람의 됨됨이

  (2) 어떤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분위기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84) 인가


전차 종점에 도착하자 인가가 드문드문 보였고, 나는 물어 물어 재일본조선인연맹을 찾아갔다

《이진희/이규수 옮김-해협,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 14쪽


 인가가 드문드문 보였고

→ 집이 드문드문 보였고

→ 살림집이 드문드문 보였고

→ 사람 사는 집이 드문드문 보였고

 …



  어릴 적부터 몹시 궁금하게 여긴, 또는 얄궂게 여긴 낱말 가운데 하나가 ‘인가’입니다. 어린이책을 읽거나 교과서를 읽을 때면 으레 ‘인가’라는 낱말이 튀어나오곤 했는데, “사람 사는 집”이건 “짐승 사는 집”이건, 모두 ‘집’일 뿐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새가 사는 곳을 일컬어 ‘둥지’와 ‘보금자리’라고도 하지만, ‘둥지’와 ‘보금자리’는 “사람이 아늑하게 깃들이는 곳”을 일컬을 때에도 자주 씁니다. 오히려 ‘집과 견주어 아늑한 자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집 . 살림집 . 사람집


  우리한테는 ‘집’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이 한 마디로 넉넉하며, 이 한 마디로 즐겁습니다. 다만, 이 한 마디로 모자라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면 ‘살림집’ 같은 낱말을 써 볼 수 있습니다. ‘집’하고 ‘살림집’, 이 두 가지 낱말을 때와 곳에 맞게 나누어 쓰면 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낱말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모자라다 싶으면 ‘사람집’이라는 낱말까지 써 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낱말로도 모자라다고 느끼면?


  글쎄, 그때에는 스스로 알맞춤하게 새 낱말을 지어내야겠지요. 아니면, ‘둥지’와 ‘보금자리’를 사람 사는 집을 가리킬 때에도 쓰듯, 알맞춤하다고 느껴질 낱말을 따오든지요.


  불교에서 쓰는 ‘印可’라든지 역사사전에 옮겨야 할 ‘印家’는 한국말사전에서 덜어야겠습니다. ‘姻家’와 ‘隣家’이란 참말 무엇일까요? 친척집은 ‘친척집’이고 이웃집은 ‘이웃집’입니다. 인척집을 따로 가리키려 한다면 ‘인척집’이라 하면 됩니다. 4341.12.11.나무/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전차 끝역에 이르자 집이 드문드문 보였고, 나는 물어 물어 재일본조선인연맹을 찾아갔다


“종점(終點)에 도착(到着)하자”는 “마지막역에 닿자”나 “끝역에 이르자”로 다듬어 줍니다.



 인가(人家) : 사람이 사는 집

   - 인가가 드물다 / 인가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인가(印可)

  (1) [불교] 사승(師僧)이 제자의 득법(得法) 또는 설법을 증명하고 인가함

  (2) [불교] 대상이 옳음을 소상하게 밝혀 인정함

 인가(印家) : [역사] 관인(官印)을 넣는 집

 인가(姻家) : 인척(姻戚)의 집

 인가(認可)

  (1) = 인허

  (2) [법률] 제삼자의 법률 행위를 보충하여 그 효력을 완성하는 일

 인가(隣家) = 이웃집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량한 말 바로잡기

 (910) 비상


리기다소나무는 씨앗을 아주 많이 맺으며 자기 영역을 넓히는 데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소로우/이한중 옮김-씨앗의 희망》(갈라파고스,2004) 25쪽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 남달리 눈길을 둔다

→ 남달리 마음을 쓴다

→ 무척 마음을 쓴다

→ 매우 애쓴다

 …



  한국말사전에 아홉 가지 ‘비상’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飛上’이나 ‘飛翔’은 ‘날다’와 얽힌 한자말입니다. ‘飛上’은 “높이 날아오름”을 뜻한다 하는데, ‘飛翔’은 ‘날기’로 고쳐쓰라고 합니다. 두 낱말 모두 ‘날다·날아오르다’로 고쳐쓸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비행기가 하늘로 비상하고 있다”는 “비행기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로 바로잡고, “바다 위로 갈매기가 비상을 즐기듯 선회했다”는 “바다 위로 갈매기가 날갯짓을 즐기듯 빙 돌았다”로 바로잡습니다.


  ‘非想’이나 ‘飛霜’이나 ‘備嘗’이나 ‘悲傷’이나 ‘鼻上’ 같은 한자말은 그예 군더더기입니다. 하루 빨리 이런 덧없는 한자말은 한국말사전에서 털어야겠습니다.


 그는 재주가 비상하다

→ 그는 재주가 남다르다

→ 그는 재주가 뛰어나다

 비상한 체력과 건강을 지니고 있었다

→ 놀라운 기운과 몸이다

→ 대단한 기운과 몸이다

 이 아이의 그림 솜씨는 비상하구나

→ 이 아이는 그림 솜씨가 훌륭하구나

→ 이 아이 그림 솜씨는 뛰어나구나

→ 이 아이는 그림 솜씨가 놀랍구나


  생각하고 다시 생각할 때에 말빛이 살아납니다. 살피고 다시 살필 때에 말넋을 살찌웁니다. 어떻게 날아오를까요? 어떻게 하늘을 날면 시원하면서 짜릿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얼마나 뛰어난 슬기와 마음을 빛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얼마나 대단한 사랑과 웃음으로 삶을 노래하는가요? 즐겁게 노래하는 넋으로 말과 글을 즐겁게 가꿀 수 있기를 빕니다. 4338.3.18.쇠/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리기다소나무는 씨앗을 아주 많이 맺으며 제 터를 넓히는 데 남달리 마음을 쓴다


“자기(自己) 영역(領域)”은 “제 터”나 “제 자리”로 손질하고, “관심(關心)을 가지고 있다”는 “마음을 쓴다”나 “눈길을 둔다”로 손질합니다.



 비상(非常)

  (1) 뜻밖의 긴급한 사태. 또는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신속히 내려지는 명령

   - 비상 대책 / 비상이 걸리다

  (2) 예사롭지 아니함

  (3) 평범하지 아니하고 뛰어남

 비상(非想) : 상념을 끊고 삼매에 들어가는 일

 비상(砒霜) : 비석(砒石)에 열을 가하여 승화시켜 얻은 결정체

 비상(飛上) : 높이 날아오름

   - 비행기가 하늘로 비상하고 있다

 비상(飛翔) : 공중을 날아다님. ‘날기’로 순화

   - 바다 위로 갈매기가 비상을 즐기듯 선회했다

 비상(飛霜) : 하늘에서 내리는 서리

 비상(備嘗) : 여러 가지 어려움을 두루 맛보아 겪음

 비상(悲傷) : 마음이 슬프고 쓰라림

 비상(鼻上) : 콧등 위라는 뜻으로, 일이 절정이나 극단에 이른 것을 이르는 말


..



 알량한 말 바로잡기

 (906) 사색


그러자 어쩔 줄 몰라 하던 큰 늑대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시튼/장석봉 옮김-위대한 늑대들》(지호,2004) 197쪽


 큰 늑대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 큰 늑대 얼굴이 파리해졌다

→ 큰 늑대는 얼굴이 하얘졌다

→ 큰 늑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사람도 늑대도 크게 놀랄 일이 있으면 얼굴이 하얗게 질립니다. 얼굴이 파리해지거나 해쓱해집니다. 얼굴이 하얘지지요. 보기글에서는 ‘死色’이라는 한자말을 쓰는데, ‘죽음빛’은 하얘지는 빛이기도 하면서 새까매지는 빛이기도 합니다. 하얘지는 빛은 ‘하얘지다’나 ‘파리해지다’라 가리키면 되고, 새까매지는 빛이라면 ‘흙빛’이 된다고 하면 됩니다.


  네 가지 빛깔을 가리킨다 할 적에는 ‘네빛’이라 하면 됩니다. 애써 ‘四色’이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런데, ‘四塞’ 같은 한자말을 쓸 일이 있을까요. 깊이 생각할 적에는 ‘깊이 생각하다’나 ‘깊은생각’처럼 말하면 됩니다. ‘思索’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색의 계절

→ 생각이 무르익는 철

→ 깊이 생각하는 철

 사색에 잠기다

→ 생각에 깊이 잠기다

 사색적인 사람

→ 생각이 깊은 사람

→ 생각 깊은 사람

 인생과 자연을 해석하고 사색한다

→ 삶과 자연을 헤아리고 돌아본다

→ 삶과 숲을 깊이 살피고 밝힌다


  ‘辭色’ 같은 한자말은 누가 쓸는지 궁금합니다. 이 한자말은 “말과 얼굴빛”을 함께 가리킨다는데, 이런 한자말을 쓴다 한들 알아들을 사람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그는 감정을 사색에 나타내지 않는다”처럼 쓴다 한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요. “그는 마음을 말에도 얼굴에도 나타내지 않는다”처럼 써야 비로소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4338.3.7.달/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러자 어쩔 줄 몰라 하던 큰 늑대는 얼굴이 하얘졌다


“큰 늑대의 얼굴이”는 “큰 늑대 얼굴이”나 “큰 늑대는 얼굴이”로 손보고, “되어갔다”는 “되었다”로 손봅니다.



 사색(四色)

  (1) 네 가지 빛깔

  (2) 조선 선조 때부터 후기까지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분화하여 나라의 정치적인 판국을 좌우한 네 당파.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을 이른다

 사색(四塞)

  (1) 사방이 산이나 내로 둘러싸여서 외적이 침입하기 어려운 곳

  (2) 사방이 막힘. 또는 사방을 막음

 사색(死色) :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빛

   - 사색이 되다 / 이미 그의 얼굴에 사색이 깃들고 있었다

 사색(思索) :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

   - 사색의 계절 / 사색에 잠기다 / 사색적인 사람 /

     인생과 자연을 해석하고 사색한다

 사색(辭色) : 말과 얼굴빛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사색을 드러내다 / 그는 감정을 사색에 나타내지 않는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877) 수중


어느 여름에 문득 깨달은 것은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는 겨우 450프랑이고, 나머지는 영어를 가르쳐서 벌게 되는 돈 36프랑밖에 없었다

《조지 오웰/권자인 옮김-하얀구름 외길》(행림각,1990) 21쪽


 수중에 있는 돈

→ 손에 있는 돈

→ 주머니에 있는 돈

→ 지갑에 있는 돈

→ 나한테 있는 돈

 …



  한자로 써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면 한자로 적어야 옳습니다. 언뜻 보기에는요. 그렇지만 우리는 한국사람이고 한국말과 한국글이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써야 아름다울까요.


  물속은 ‘물속’입니다. “水中 탐사”가 아닌 “물속 탐사”요 “물속 살피기”입니다. 잠든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잠든 동안’이지 ‘睡中’이 아닙니다. 나무숲에 있으면 ‘나무숲 속’일 뿐, ‘樹中’이 아닙니다.


 남의 전대에 든 거금이 내 수중의 서푼보다

→ 남의 돈자루에 든 큰돈이 내 주머니 서푼보다

→ 네 돈주머니에 든 큰돈이 내 주머니 서푼보다

 수중에 넣다

→ 손에 넣다

→ 품에 넣다

 다른 사람의 수중에 넘어가다

→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다

→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가다


  ‘水中’도 ‘睡中’도 ‘樹中’도 한국말사전에서 사라져야 할 한자말입니다.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을 빛내거나 밝히는 일을 해야 아름답습니다. 4337.12.25.흙/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어느 여름에 문득 깨달았으니 주머니에 있는 돈이라고는 겨우 450프랑이고, 나머지는 영어를 가르쳐서 벌 돈 36프랑밖에 없었다


“문득 깨달은 것은”은 “문득 깨달았으니”로 다듬고, “벌게 되는 돈”은 “벌 돈”으로 다듬습니다.



 수중(手中)

  (1) 손의 안

   -  남의 전대에 든 거금이 내 수중의 서푼보다

  (2) 자기가 소유할 수 있거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

   - 수중에 넣다 / 다른 사람의 수중에 넘어가다

 수중(水中) = 물속

   - 수중 탐사

 수중(睡中) : 잠든 동안

 수중(樹中) : 나무숲 속

   - 구중심처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 공주이던가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량한 말 바로잡기

 (876) 가령 1 : 가령 무엇무엇은


가령 근대계몽기의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기사들은 그 기사를 읽었던 당대인들에게는 ‘시사적’인 것으로 다가왔겠지만

《이명원-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새움,2004) 245쪽


 가령 어떤 신문기사들은

→ 보기를 들어 어떤 신문기사들은

→ 말하자면 어떤 신문기사들은

→ 이를테면 어떤 신문기사들은

→ 그러니까 어떤 신문기사들은

 …



  돌아가신 이오덕 은 ‘가령’이라는 한자말을 퍽 즐겨서 쓰셨습니다. 오랫동안 입에 굳은 말이기에 떨어뜨리기에 어려웠으리라 봅니다. 그러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떠한가요?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도 한자말 ‘가령’은 어릴 때부터 익숙한 낱말일까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러한 말투를 다듬거나 손질하거나 가다듬을 수는 없을까요? 나이든 분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마저 이런 말투 하나 살가이 추스르거나 따스이 덜어내는 몸짓을 보여주기란 힘든 노릇일까요?


 가령 너에게 그런 행운이 온다면

→ 너한테 그런 행운이 온다면

→ 모르지만, 너한테 그런 행운이 온다면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을 놓고

→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글을 놓고

→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글을 놓고

 …


  한자말이라 해서 낡은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자말이라고 하여 꼭 덜어내거나 고쳐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말사전 말풀이에서 ‘가령’은 “보기를 들어”를 뜻하는 낱말이요 ‘이를테면’으로 고쳐쓰라고 나옵니다. 이는, 이 한자말이 우리 한자말이 아니라 일본 한자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쓸 말이 아니라 일본사람이 쓰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우리한테는 먼 옛날부터 알맞게 쓰던 말이 있는데, 우리가 뜻하지 않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안타깝게 우리 말투에 스며들어 생각과 삶을 좀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苛令’이란 무엇일까요. ‘家領’은 또 무엇인가요. ‘加齡’은 그야말로 무엇일는지요. 이런 낱말을 한자로 밝혀 적든 한글로 적든 알아들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런 낱말은 왜 한국말사전에 실려야 할까요. 이런 한자말은 한국말을 자꾸 갉아먹지 않나 궁금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한자말 ‘가령’을 우리가 굳이 써야 하는지, 아니면 털어내야 하는지, 또는 우리 깜냥껏 새로운 말투를 더 찾아내고 밝혀내고 캐내면서 우리 말글을 빛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옛날부터 익히 쓰던 우리 말투를 스스로 알뜰살뜰 사랑하면서, 이제부터 새로운 말을 아름다이 갈고닦으면서 일굴 수 있으면 더없이 좋다고 하겠습니다.


  마음을 품으면 달라집니다. 힘을 모으면 새로워집니다. 뜻을 모두면 싱그럽게 거듭납니다. 그러나, 스스로 아무 일을 안 하고 아무런 눈길을 안 두며 아무런 몸짓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예 엉터리 엉망진창 말글이 두루 퍼집니다. 4337.12.23.나무/4342.11.16.달/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를테면 근대계몽기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글들은 그 글을 읽던 그무렵 사람들한테는 ‘새로운’ 글이었겠지만


‘게재(揭載)된’은 ‘실린’으로 다듬습니다. ‘당대인(當代人)들에게는’은 ‘그때 사람들한테는’으로 손보고, “시사적(時事的)인 것으로”는 “새롭게”나 “새로운 글로”로 손봅니다.



 가령(苛令) : 가혹한 명령이나 법령

 가령(家領) : 한 집안의 소유로 되어 있는 땅

 가령(假令)

  (1) 가정(假定)하여 말하여

   - 가령 너에게 그런 행운이 온다면

  (2) 예를 들어. ‘이를테면’으로 순화

   -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을 놓고

 가령(加齡) : 새해가 되어 나이를 한 살 더 먹음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27) 가령 2 : 가령 이렇다고 치자


상대가 수화를 못한다면 어차피 텔레비전 전화는 사용할 수 없다. 가령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아키야마 나미,가메이 노부다카/서혜영 옮김-수화로 말해요》(삼인,2009) 112쪽


 가령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 그러니까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 그러면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 이를테면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 그렇다면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 한번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



  이 보기글을 곰곰이 살펴봅니다. 글월 앞에 따로 ‘그러니까’나 ‘그러면’을 넣어도 되지만, 아무런 말을 안 넣어도 됩니다. 어쩌면, 아무 말을 안 넣어도 앞뒤 글월이 잘 이어진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글월과 글월 사이에 이음말을 하나 넣으면서 한결 부드럽게 잇는다 할 수 있습니다. 이음말 하나는 조금 더 생각을 기울이도록 이끈다 하겠고, 한동안 숨을 돌리면서 한결 깊이 돌아보도록 돕는다고 하겠습니다.


  이음말을 넣을 때는 느낌말이라 할 만한 ‘자’나 ‘음’이나 ‘그래’나 ‘어디’ 들도 잘 어울립니다. 입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이런저런 말마디가 톡톡 튀어나오는데, 이런 말마디는 이음말 노릇을 잘 합니다.


 자,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음,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래,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어디, 농인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말을 하듯 글을 쓰면 됩니다. 말하는 투로 글을 적으면 됩니다. 말결을 살려 글결을 북돋우면 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말투와 글투가 뒤죽박죽입니다. 글투가 말투가 되고, 글결이 말결로 옮아가곤 합니다. 말다운 말을 잊거나 글다운 글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말 같은 말을 모르며 글 같은 글을 잃기 일쑤입니다.


  내 삶을 차근차근 돌아보며 내 생각을 차근차근 되짚고 내 말글을 차근차근 보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내 삶을 하나하나 짚으며 내 생각 또한 하나하나 짚고 내 말글을 하나하나 가꾸어 알차게 꽃필 수 있게끔 이끌면 좋겠습니다. 4342.11.16.달/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저쪽이 손말을 못한다면 어차피 텔레비전 전화는 쓸 수 없다. 그러니까 벙어리가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농인(聾人)’이란 벙어리, 곧 말을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우리는 ‘청각장애인’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벙어리’라는 낱말이 듣기에 좋지 않다고 여기며 ‘소리를 듣는 사람’을 가리키는 ‘청인(聽人)’과 마주할 낱말을 지어야 한다면, 이런 한자 말짜임이 한겨레 말짜임을 헤아리면 좋겠어요. 더욱이, ‘청인(聽人)’은 한국말사전에 안 나오는 낱말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낱말보다는 ‘수화(手話)’를 ‘손말’로 새롭게 고쳐서 쓰듯이, 우리 슬기를 빛내어 한결 알맞고 서로한테 반가운 이름 하나 짓는다면 아주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사용(使用)할’은 ‘쓸’로 다듬고, ‘상대(相對)’는 ‘그쪽’이나 ‘저쪽’이나 ‘맞은쪽’으로 다듬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예뻐 하는 풀꽃



  풀꽃은 스스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풀꽃은 스스로 씨앗을 퍼뜨린다. 풀꽃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고는, 풀내음을 나누어 준다. 사람들은 따로 ‘예쁜 꽃’을 만들어서 꽃집에서 사고팔기도 하는데, 집 둘레를 푸르게 우거지는 풀밭이나 숲으로 가꾼다면, 한 해 내내 꽃밭을 누릴 수 있다.


  꽃집은 왜 있어야 할까? 도시에서는 흙을 밟을 만한 땅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는 풀밭도 숲도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마당을 누리지 못하는 탓에, 손수 꽃밭을 가꾸지 못한다. 마당이 없으니 흙을 만질 데도 없고, 흙을 만질 데도 없으니 아파트에 꽃그릇을 두어야 하며, 때때로 꽃다발을 마련해서 선물해야 한다.


  사람은 밥만 먹으면서 살지 못한다. 사람은 서로 사랑을 나누어야 살아갈 수 있다. 나한테서 샘솟는 사랑을 이웃과 동무한테 나누어 준다. 이웃과 동무는 저마다 스스로 새로운 사랑을 길어올려 나한테 나누어 준다. 우리는 서로 사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깔깔 호호 하하 어깨동무를 한다. 삶은 사랑이 있기에 꽃처럼 곱거나 환하다.


  한편, 사람은 꽃내음을 먹어야 산다. 곱다라니 피어난 꽃을 꾸준히 마주할 때에 마음을 곱다라니 가꾼다. 꽃송이가 곱다라니 피어나기까지 풀내음을 먹는다. 꽃송이가 저문 뒤에는 씨앗을 받거나 씨앗을 바라보면서 이듬해에 새롭게 태어날 꽃빛을 기다린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스스로 시골살이를 누린다면 꽃집이 따로 있을 까닭이 없으나, 사람들이 스스로 시골을 떠나거나 등지기 때문에 꽃집이 따로 있어야 한다. 온통 자동차 물결인 도시에서 흙내음과 풀내음과 꽃내음을 먹고 싶으니 꽃집에서 꽃 몇 송이를 사다가 내 짝꿍이나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을 할밖에 없다.


  폭식폭신한 흙땅을 밟으면서 풀밭에 쪼그려앉는다. 아주 조그마한 풀꽃을 바라본다. 나는 아주 어릴 적에도 이렇게 풀밭에 쪼그려앉아 풀꽃을 바라보았다. 나는 마흔 살 오늘날에도 이렇게 풀밭에 쪼그려앉아 풀꽃을 바라본다. 앞으로 마흔 해 뒤에라도 이처럼 풀밭에 쪼그려앉아 새로운 풀꽃을 바라보리라 느낀다. 내가 예뻐 하는 풀꽃은 늘 내 곁에 있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