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471) 적용


밥을 어른에게 적용할 때에는 ‘진지’라고 하고, 이에 따른 동사도 ‘잡수다, 드시다’를 사용한다

《남영신-남영신의 한국어용법 핸드북》(모멘토,2005) 147쪽


 밥을 어른에게 적용할 때에는

→ 밥을 어른한테는

→ 밥을 어른한테 줄 때에는

→ 밥을 어른한테 드릴 때에는

 …



  한자말 다듬기를 하다 보면, 둘레에서 ‘한자말에 두드러기라도 있느냐’고 묻곤 합니다. 저는 ‘아니요, 쓸 만한 말이라면 한자말이든 일본말이든 쓰지만, 쓸 만하지 않으니 안 쓸 뿐입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마땅히 쓸 만하고, 알맞게 쓸 만하다면 얼마든지 쓸 말입니다. 마땅한데 안 쓸 까닭이 없고, 알맞는데 꺼릴 일이란 없습니다.


 법의 적용에는 → 법 앞에는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다 → 이론을 현실에 맞추어 쓰다

 많은 기법이 적용되어 있다 → 많은 기법이 쓰였다


  ‘적용’이라는 한자말을 처음 들었던 어릴 적부터 오늘날까지, 이 한자말은 여러모로 쓸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이 한자말을 찾아봅니다. 말뜻은 “알맞게 이용하거나 맞추어 씀”이라고 나옵니다. ‘이용(利用)’은 “필요에 따라 이롭게 씀”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적용’ 뜻풀이는 “알맞게 쓰거나 맞추어 씀”이라는 소리이지요.


 適(알맞음) + 用(씀) = 適用

 알맞음 + 씀 = 알맞게 쓰기


  어렵게 생각할 일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입니다. ‘알맞음’과 ‘씀’을 가리키는 한자 ‘適’과 ‘用’을 더해서 ‘適用’이라는 한자말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알맞다’라는 그림씨와 ‘쓰다’라는 움직씨를 묶어서 “알맞게 쓰다”라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굳이 한 낱말로 뭉뚱그리지 않아도 괜찮은 말씀씀이입니다. 꼭 한 낱말로 적지 않아도 되는 말매무새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맞춤하게, 넉넉하게 쓰면 됩니다. 잘 쓰고 싶으면 “잘 쓰면” 되고, 알맞게 쓰고 싶으면 “알맞게 쓰면” 되며, 제대로 쓰고 싶으면 “제대로 쓰면” 됩니다. 4341.9.29.달/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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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어른한테 드릴 때에는 ‘진지’라고 하고, 움직씨도 ‘잡수다, 드시다’를 쓴다


‘동사(動詞)’는 ‘움직씨’로 다듬어도 되고,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 ‘사용(使用)한다’는 ‘쓴다’나 ‘넣는다’로 손질합니다. “이에 따른”은 덜어냅니다.



 적용(適用) : 알맞게 이용하거나 맞추어 씀

   - 적용 범위 / 적용 대상 / 법의 적용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 /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다 / 이 그림에는 많은 기법이 적용되어 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50) 의당


나는 의당 수(아버지 영향)와 문학(엄마 영향)에 밝아야 하는 딸아이에게 합당한 임무를 주었다

《수지 모르겐스턴+알리야 모르겐스턴/최윤정 옮김-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웅진지식하우스,1997) 167쪽


 의당 수와 문학에 밝아야 하는

→ 마땅히 수와 문학에 밝아야 하는

→ 반드시 수와 문학에 밝아야 하는

→ 으레 수와 문학에 밝아야 하는

→ 틀림없이 수와 문학에 밝아야 하는

 …



  한국말은 ‘마땅하다’입니다. 한자말은 ‘당연(當然)하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국말과 한자말을 제대로 살피지 못할 뿐더러, 제대로 가누지조차 않습니다. 마땅히 써야 할 한국말을 아주 마땅하다는 듯이 안 씁니다.


  한국말사전에서 ‘마땅하다’라는 한국말을 찾아보면 한 가지 나옵니다. 다시금 ‘당연’이라는 한자말을 찾아보면 다섯 가지 나옵니다. 이 가운데 사람들이 알거나 쓰는 한자말은 꼭 한 가지입니다. 다른 네 가지 한자말 ‘당연’을 아는 사람이란 거의 아무도 없으며, 이 한자말이 쓰이는 일이란 아예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말사전에는 ‘당연’이라는 한자말이 그냥 다섯 가지 실립니다. 이러면서 한국말사전에 실린 ‘한국말 푼수는 저절로 줄’고 ‘한자말 푼수는 저절로 늘’어납니다.


 법은 의당 지켜야 한다

→ 법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

→ 법은 꼭 지켜야 한다

→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 법은 어김없이 지켜야 한다

 의당한 말

→ 마땅한 말

→ 옳은 말

→ 올바른 말

 의당한 일이다

→ 마땅한 일이다

→ 옳은 일이다

→ 틀림없는 일이다


  말 그대로 마땅히 써야 할 한국말입니다. 있는 그대로 마땅히 알맞고 바르며 곱게 써야 할 한국말입니다. 무슨 덧말과 어떤 군말을 붙일 수 있을까요. 알뜰살뜰 살려서 쓸 말이요 요모조모 북돋울 말일 텐데요. 밥을 하는 사람은 밥맛이 한결 살도록 애쓰고, 말을 하는 사람은 말맛이 더욱 살도록 힘쓸 노릇입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치가 아름답도록 용쓰고, 말을 하는 사람은 말이 참으로 아름답도록 마음쓸 일입니다. 4343.9.21.불/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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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땅히 수(아버지 때문)와 문학(엄마 때문)에 밝아야 하는 딸아이한테 올바른 일감을 주었다


“아버지의 영향”이나 “엄마의 영향”이라 하지 않고, “아버지 영향”과 “엄마 영향”이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다만, 한 번 더 생각한다면 ‘영향(影響)’을 덜고 “아버지 때문”이나 “엄마가 낳았으니”처럼 적바림할 수 있습니다. ‘합당(合當)한’은 ‘알맞을’이나 ‘알맞춤한’이나 ‘꼭 들어맞을’이나 ‘바람직할’로 손보고, ‘임무(任務)’는 ‘일’이나 ‘일감’이나 ‘일거리’로 손봅니다.



 의당(宜當) : 사물의 이치에 따라 마땅히

   - 법은 의당 지켜야 한다 / 의당한 말 / 의당한 일이다 /

     강실이는 의당 옹구네한테 말을 놓아야 옳을 것이나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53) 공사


모리야 씨, 이건 작품으로서는 분명히 훌륭하지만, 미도리 씨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이상 가능한 회수하도록 하죠. 그리고, 공사는 구분하길 바랍니다

《이소야 유키/설은미 옮김-서점 숲의 아카리 1》(학산문화사,2010) 66쪽


 공사는 구분하길 바랍니다

→ 회사 일과 개인 일은 나누기 바랍니다

→ 회사 일과 개인 일을 잘 살피기 바랍니다

→ 회사 일과 개인 일을 찬찬히 헤아리기 바랍니다

→ 회사에서 개인 일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 개인 일을 회사에까지 가져오지 말기 바랍니다

 …



  한국말사전에는 열한 가지 한자말로 ‘공사’를 싣습니다. 이 가운데 ‘헛일’을 뜻하는 ‘空事’는 털어내야 할 낱말이고, 옛 역사에서 쓰던 한문(工師, 供辭, 貢士)은 역사사전에만 실어야지 싶습니다. 한국말사전은 역사사전이 아니니까요. 불교에서 쓴다는 ‘供司’는 불교사전에 실어야 마땅하며, 이러한 낱말은 불교를 믿는 이들 스스로 알기 쉽도록 새롭게 빚거나 알맞게 다듬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관사’를 뜻한다는 ‘公舍’는 굳이 써야 할까 궁금합니다.


  사회나 정치나 문화를 일컬으면서 써야 하는 낱말이라면 쓸 노릇입니다. 한자말이건 영어이건 우리한테 도움이 된다면 안 받아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루 쓰는 숱한 낱말이 참말로 얼마나 알맞거나 쓸모있는가 곰곰이 살펴야지 싶습니다. 쓰임새와 뜻과 짜임새가 한결같이 알맞거나 쓸모있기에 쓰는 낱말일까요, 이냥저냥 쓰면서 익숙해진 낱말인가요, 지난날 한문으로 정치와 사회를 꾸리던 때부터 쓰던 낱말인가요, 일제강점기부터 일본 제국주의자 손에 따라 들어온 낱말인가요.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다

→ 내 일과 나라 일을 또렷이 나누다

→ 내 일과 회사 일을 똑똑히 가누다

→ 내 일과 마을 일을 올바로 살피다


  “공공의 일과 사사로운 일”을 가리킨다는 ‘公私’를 헤아려 봅니다. ‘공공(公公)’이란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일을 일컫고, ‘사사(私私)로운’ 일이란 “공적(公的)이 아닌 개인적인 범위나 관계의 성질인” 일을 일컫는다 합니다.


  아무래도 사회에서 쓰는 말이 ‘공공기관·사설기관’이니까, 이런 자리에서도 ‘공사’라느니 ‘공과 사’라느니 하고 쓸 만하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금 돌아봅니다. ‘사사롭다·개인적·사적’이라는 일이란 어떤 일이 되려나요. 한자로는 조금씩 달리 적바림하는 이 낱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요.


  한 마디로 하자면 “내 일”을 가리킵니다. “내가 할 일”이나 “나와 얽힌 일”을 일컫습니다.


  ‘공공’이라는 한자말로 가리키지만, ‘공공’이란 바로 “나라”나 “사회”나 “정부”나 “회사”나 “마을”이나 “학교”입니다. 어쩌면 이 모두를 아울러 ‘공공’으로 나타낸다 할 수 있어요.


  찬찬히 생각한다면, 이 모두를 아우를 때에는 “우리 모두하고 얽힌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할 일”입니다.


 내 일과 우리 일

 나와 우리

 내 집과 우리 마을

 나 하나와 우리 모두


  단출하게 한 낱말로 갈음하고 싶을 때에는 ‘공사’ 같은 한자말을 쓸 수 있다고 봅니다. 때로는 ‘공과 사’처럼 쓸 수 있겠지요.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한결 손쉬운 한국말로 “나와 우리”라 말할 수 있습니다. “나 하나와 우리 모두”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나우리’라는 새 낱말을 빚어 볼 만합니다. 꼭 한 낱말로 갈무리하지 않아도 괜찮다면 ‘나와 우리’를 관용구로 삼으면 됩니다.


  말흐름을 살피고 말줄기를 톺아봅니다. 말넋을 북돋우고 말얼을 살찌웁니다.


  하던 대로 할 수 있으나, 새로운 말길을 열 수 있습니다. 쓰던 대로 써도 나쁘지 않으나, 싱그러운 새 말물꼬를 틀 수 있어요. 4343.12.30.나무/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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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 씨, 이건 작품으로서는 퍽 훌륭하지만, 미도리 씨가 거북하게 한 만큼 아무래도 거두도록 하지요. 그리고 회사에서 개인 일은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분명(分明)히 훌륭하지만”은 “틀림없이 훌륭하지만”이나 “참으로 훌륭하지만”이나 “아주 훌륭하지만”이나 “더없이 훌륭하지만”으로 다듬습니다. “미도리 씨의 기분(氣分)을 상(傷)하게 만든 이상(以上)”은 “미도리 씨 기분을 나쁘게 한 만큼”이나 “미도리 씨가 기분 나빠하게 한 만큼”이나 “미도리 씨가 거북하게 한 만큼”이나 “미도리 씨가 거북하게 느끼는 만큼”으로 손보고, ‘가능(可能)한’은 ‘되도록’이나 ‘아무래도’나 ‘모두’로 손봅니다. ‘회수(回收)하도록’은 ‘거두도록’이나 ‘거두도록’이나 ‘돌려받도록’으로 손질하고, ‘구분(區分)하길’은 ‘나누길’이나 ‘헤아리길’이나 ‘살피기를’이나 ‘생각하기를’로 손질해 줍니다.



 공사(工事)  

  (1) 토목이나 건축 따위의 일

   - 사옥 신축 공사 / 공사를 마무리하다

  (2) 형사들의 은어로, ‘고문(拷問)’을 이르는 말

 공사(工師) : 악기를 연주하거나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우두머리

 공사(公私)  

  (1) 공공의 일과 사사로운 일을 아울러 이르는 말

   -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다

  (2) 정부와 민간을 아울러 이르는 말

  (3) 사회와 개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공사(公事)

  (1) = 공무(公務)

  (2) 조선 시대에, 소송을 속되게 이르던 말

 공사(公使) : [법률] 국가를 대표하여 파견되는 외교 사절

 공사(公舍) = 관사(官舍)

 공사(供司) : [불교] = 공양주

 공사(供辭) : [역사] = 공초(供招)

 공사(空士) : [군사] ‘공군 사관 학교’를 줄여 이르는 말

 공사(空事) = 헛일

 공사(貢士) [역사]

  (1) 고려 시대에, 향시에 급제하여 국자감시에 응시할 자격이 있는 사람에 대한 칭호

  (2) 고대 중국에서, 지방의 제후가 천자(天子)에게 유능한 인물을 천거하던 일

 공사(貢使) : [역사] 공물(貢物)을 바치는 일을 맡아보던 사신(使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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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025) 입장 1 : 에코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이 글은 에코페미니즘의 입장에서 화장과 화장품을 비판하는 글이다

《꿈꾸는 지렁이들》(환경과생명,2003) 48쪽


 에코페미니즘의 입장에서

→ 환경과 여성을 생각하는 자리에서

→ 환경과 여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 환경과 여성을 생각하면서

→ 환경과 여성을 헤아리는 눈길로

→ 환경과 여성을 걱정하면서

→ 환경을 생각하는 여성주의 테두리에서

→ 환경을 생각하는 여성주의라는 눈으로

 …



  그동안 많은 분들이 ‘입장’이란 한자말은 일본말이고, 이런 낱말은 우리가 안 써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학교에서도 가르치고 방송에서도 다루며 신문이나 잡지에도 곧잘 실리는 한편, 한국말을 이야기하는 책에서도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굳이 저 같은 사람까지 이런 일본 한자말 이야기를 글로 쓰지 않아도 되겠다고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본 한자말을 나무라거나 꾸짖거나 다루는데에도, 이 일본 한자말은 좀처럼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욱이 이 보기글은 ‘환경’과 ‘여성’을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썼어요. 환경과 여성을 생각하면서도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을 털어내지 못하고 말아요. 환경을 헤아린다면, 여성을 살핀다면, ‘입장’처럼 얄궂고 덧없는 한자말은 씩씩하게 몰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입장 요금

→ 들어가는 삯

→ 들어가며 치르는 삯

→ 구경삯

 신랑 신부 입장

→ 신랑 신부 들어옴

→ 신랑 신부 들어오기

 미성년자 입장 불가

→ 미성년자 들어올 수 없음

→ 미성년자 못 들어옴

→ 청소년 안 받음


  한국말사전 말풀이를 살펴봅니다. 모두 네 가지 한자말 ‘입장’이 나오는데, “장가를 든다”는 ‘入丈’이나 “죽은 이를 묻는 일”을 가리킨다는 ‘入葬’은 쓰일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낱말을 쓰기는 쓸까요? 장가를 들면 ‘장가들다’라 하면 되고, 죽은 이를 묻으면 ‘묻는다’라 하면 됩니다.


 입장을 표명하다

→ 생각을 밝히다

→ 생각을 말하다

→ 어찌할는지 말하다

 입장이 난처하다

→ 내가 어렵다

→ 내 자리가 힘들다

 입장을 분명히 했다

→ 생각을 또렷이 밝혔다

→ 뜻을 또렷이 했다


  “들어가는” 일을 가리키는 ‘入場’은 ‘들어감’으로 고쳐쓰라고 뜻풀이를 합니다. “처지, 그러니까 ‘선 자리’”를 가리키는 ‘立場’은 ‘처지’로 고쳐쓰라고 뜻풀이를 합니다. 곧, ‘선 자리’나 ‘내 자리’나 ‘자리’나 ‘생각’이나 ‘형편’ 같은 낱말로 고쳐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한국말사전이나마 뒤적인다면, ‘아차차, 내가 얄궂은 말을 쓰려고 했구나. 이런이런, 내가 올바르지 않은 말을 자칫 잘못해서 쓸 뻔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쓰는 분이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느끼기는 하더라도 ‘한국말사전이 이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생각대로 쓰면 그만이지’ 하고 고개를 돌리는 분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우리들은 어떤 모습일는지 궁금합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매무새일는지 궁금합니다. 한 마디 말을 옳게 추스르는 우리들일까요. 한 줄 글을 알맞게 다스리는 우리들일까요. 말이고 글이고 아무렇게나 써도 괜찮다고 여기는 우리들일까요. 생각이고 넋이고 아무려면 어떠냐고, 돈벌이에나 마음을 쏟을 일이라고 여기는 우리들일까요. 4339.1.9.달/4342.4.3.쇠/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글은 환경과 여성 눈높이에서 화장과 화장품을 나무란다


“에코페미니즘(eco feminism)의 입장에서”는 토씨 ‘-의’를 덜어내거나 ‘-이라는’ 토씨를 넣어 줍니다. ‘비판(批判)하는’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살피는’이나 ‘따지는’이나 ‘살펴보는’이나 ‘다루는’이나 ‘나무라는’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입장(入丈) : 장가를 듦

 입장(入場) : 장내(場內)로 들어가는 것. ‘들어감’으로 순화

   - 입장 요금 / 신랑 신부 입장 / 미성년자 입장 불가

 입장(入葬) : 장사(葬事)를 지냄

 입장(立場) : 당면하고 있는 상황. ‘처지(處地)’로 순화

   - 입장 표명 / 입장이 난처하다 / 입장을 밝히다 /

     검찰은 수사에 성역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98) 입장 3 : 아이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마음이 없지는 않으나 아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경수-가슴으로 크는 아이들》(푸르메,2006) 19쪽


 아이 입장에서는

→ 아이가 보기에는

→ 아이가 생각하기에는

→ 아이가 느끼기에는

→ 아이 생각에는

→ 아이 눈길에는

→ 아이로서는

→ 아이는

 …



  한자말이라고 해서 딱히 싫어하지 않습니다. 한자말을 굳이 안 쓰려고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써야 할 말은 씁니다. 쓸 까닭이 없으면 안 씁니다. 그리고 제 느낌과 생각을 제 나름대로 담아내지 못하게 가로막는 말은 안 씁니다. 저마다 다 다르게 생각하고 느낄 텐데, 적잖은 한자말은 우리 생각과 느낌을 판에 박은 듯이 두루뭉술하게 흐트려 놓기도 해서 안 씁니다.


  보기글에는 ‘입장’이라는 한자말이 보입니다. 이 ‘입장’은 ‘순화대상 낱말’이 된 지 오래라,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이 말을 안 쓰려고 애쓰는 분이 많은데, 이런 움직임을 못 느끼거나 모르는 분이 훨씬 많습니다. 한국말을 바르게 쓰자는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말로 읊는 분들은 “‘입장’이라는 말 좀 쓰지 맙시다” 하고 늘 되풀이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말을 안 쓰는 까닭은 따로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이녁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는 길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보기글을 일곱 가지로 풀어 보았습니다. 더 풀어 볼 수 있어요. 열 가지이든, 스무 가지로든 얼마든지 다르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다르고 자리마다 다르며, 사람마다 달라요. “아이가 보기에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해도 좋고 “아이가 느끼기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아이로서는”이나 “아이는”만 써도 괜찮아요. “아이 생각에는”이나 “아이 눈길로는”이나 “아이 눈높이로는”이나 “아이 마음으로는”을 써도 좋습니다. “아이가 받아들이기에는”을 써도 어울리고, “내가 아이였다고 해도”라 해도 잘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입장’이라는 한자말을 쓰면 죄 막히고 맙니다. 저마다 다 다르게, 그러니까 홀가분하면서 즐겁게 쓸 수 있는 말이 막히고 말아요. 이러니까 저는 ‘입장’이라는 한자말을 안 씁니다. 이 ‘입장’처럼 우리 말문을 막거나 말길을 뚝 끊어 버리는 한자말을 못마땅하다고 느낍니다. 4340.1.6.흙/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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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서운한 마음이 없지는 않으나 아이로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를 써도 나쁘지 않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라고만 손보거나 “그럴 수 있겠습니다”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억울(抑鬱)’은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함”를 뜻합니다. 말뜻 그대로 “좀 억울한 마음이 없지는 않으나”는 “좀 답답한 마음이 없지는 않으나”나 “좀 답답했으나”나 “좀 서운했으나”나 “좀 섭섭했으나”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202) 입장 4 : 자신의 입장을 지키려는


우리의 세계관, 인생관은 객관적 사실과 진리에 맞는가 틀리는가에 따라 그 정당성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틀렸다 해도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있다

《채희석-참된 삶을 위하여》(현장문학사,1989) 18쪽


 자신의 입장을 지키려는

→ 제 생각을 지키려는

→ 제 믿음을 지키려는

→ 제 자리를 지키려는

→ 제 길을 지키려는

 …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더라도 꿋꿋하게 한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쑥덕거리는 말에 휘둘리면서 제 길을 못 걷고 이리저리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을까요?


  스스로 길을 살피거나 찾으면서 삶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들여다보고 나서야 뒤를 좇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즐거울까요?


  어느 삶길을 걷든, 참다운 빛을 바라볼 수 있으면 된다고 느낍니다. 어느 삶길을 가꾸든, 아름다운 사랑을 마주할 수 있으면 된다고 느낍니다.


  나는 내 생각을 지킵니다. 너는 네 믿음을 지킵니다. 저는 제 자리를 지킵니다. 우리는 우리 길을 지킵니다. 삶과 넋과 말을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레 지킬 수 있기를 빕니다. 4340.1.18.나무/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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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계와 삶을 보는 눈은 참다운 길에 맞는가 틀리는가에 따라 옳고 그름이 갈린다. 그러나 온누리에는 틀렸다 해도 끝까지 제 길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세계관”은 “우리 세계관”으로 다듬습니다. 그런데 ‘세계관(世界觀)’은 “세계를 보는 눈”이요, ‘인생관(人生觀)’은 “삶을 보는 눈”입니다. 보기글 첫머리는 “세계와 삶을 보는 눈길”이나 “세계와 삶을 보는 눈”으로 다시 다듬을 만합니다. ‘객관적(客觀的)’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을 뜻하고,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뜻하며, ‘진리(眞理)’는 “참된 이치”를 뜻합니다. 그러면, “객관적 사실과 진리”란 무엇일까요? “그 정당성(正當性) 여부(與否)가 결정(決定)된다”는 “옳고 그름이 갈린다”로 손봅니다. ‘세상(世上)’은 ‘온누리’로 손질하고 ‘자신(自身)의’는 ‘제’나 ‘내’로 손질합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342) 입장 5 :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게 된다


이 그룹은 일본학술회의에서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자주 보이게 된다

《나카야마 시게루/오동훈 옮김-전후 일본의 과학기술》(소화,1998) 16쪽


 비판적인 입장을 자주 보이게 된다

→ 거의 비판하는 자리에 선다

→ 비판하는 자리에 자주 선다

→ 비판을 자주 한다

 …



  이 보기글처럼 “중립적인 입장”이나 “비난적인 입장”이나 “옹호적인 입장”이라는 말도 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본 지식인이 일본 한자말로 이런 말을 쓸 테고, 일본책에 적힌 일본 한자말을 한국 지식인이 ‘껍데기로는 한글’로 옮기리라 느낍니다. 이런저런 일본 말투는, “중립에 선다”나 “비난을 한다”나 “옹호를 한다”로 고쳐써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정부를 자주 비판한다

 정부 정책을 자주 비판한다


  오늘 우리가 쓰는 말이 얼마나 알맞거나 어울리거나 괜찮을까 궁금합니다. 올바르지 않은 길로 접어드는 정부를 나무라거나 꾸짖는 사람은 많은데, 올바르지 않은 말을 쓰는 사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얼마나 알맞거나 바르게 쓸는지 궁금합니다. 4340.10.21.해/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모임은 일본학술회의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자리에 자주 선다


‘그룹(group)’은 ‘모임’으로 다듬습니다. “정부에 대(對)해”는 ‘정부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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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78) 입장 6 : 엄마 입장에서보다는


‘엄마 친구 아들’은 엄마 입장에서보다는 아직은 어려서 엄마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힘든 어린이 편에서 썼지요

《노경실-엄마 친구 아들》(어린이작가정신,2008) 머리말


 엄마 입장에서보다는 (x)

 어린이 편에서 (o)



  보기글을 살피면, 앞쪽에서는 “엄마 입장”이라 적고, 뒤쪽에서는 “어린이 편”이라 적습니다. 앞쪽에 적은 ‘立場’이 올바르지 않은 줄 드러내는 셈이면서, 어떤 낱말로 풀어내야 알맞을까 하고 스스로 보여준 셈입니다.


  누구나 제 머리로 헤아리고, 제 마음으로 돌아보며, 제 눈으로 봅니다. 제 편에서 바라보며, 제 자리에서 지켜보고, 제 눈높이에서 가늠합니다. 제 쪽만이 아닌 맞은쪽을 헤아리기란 수월하지 않고, 제 둘레만이 아닌 저 둘레을 껴안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발자국 물러서면 맞은편이 보입니다. 두 발자국 물러나면 맞은쪽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 앞자리를 내어주면서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내 뒷자리를 물려주면서 몸과 몸이 어우러집니다.


 엄마 눈높이에서보다는

 엄마 자리에서보다는

 엄마 생각에서보다는

 엄마 마음에서보다는


  온누리 어느 일이 처음부터 수월하겠습니까. 온누리 어느 사람과 만나는 자리가 처음부터 솔솔 풀리거나 엮이겠습니까. 모두 우리가 마음을 기울이기 나름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마음을 베풀기 마련입니다. 한결같이 우리 마음그릇에 따라 달라집니다.


  말 한 마디 알뜰히 쓰려는 마음가짐에 따라서, 한국말을 나날이 북돋울 수 있습니다. 글 한 줄 살뜰히 쓰려는 매무새에 따라서, 한국말은 날마다 새로워지며 거듭납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기면서 사랑할 때에, 내 눈높이가 아닌 이웃 눈높이가 됩니다. 내 말을 내 생각과 같이 아끼면서 추스를 때에, 내 말투와 말씨와 말본새는 서로서로 살가우며 아름답게 함께할 수 있는 길로 접어듭니다. 4341.11.5.물/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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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친구 아들’은 엄마 편에서보다는 아직은 어려서 엄마 마음을 잘 헤아리기 힘든 어린이 편에서 섰지요


“엄마의 마음을”은 “엄마 마음을”로 다듬고, ‘이해(理解)하기’는 ‘헤아리기’나 ‘생각하기’나 ‘살피기’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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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85. 2014.8.12. 고운 빛 굽기



  아침을 어떻게 차리면 모두 맛있게 먹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것저것 구워 보기로 한다. 호박과 당근을 굽는다. 버섯과 햄을 굽는다. 네 가지를 골고루 찬찬히 굽는다. 알맞게 구운 뒤 꽃접시에 담는다. 네 가지는 서로 빛깔이 다르다. 다 다른 빛깔이 한 접시에서 곱게 어우러지는구나 싶다. 마당에서 풀을 뜯고 무를 썬다. 된장과 간장과 후추소금을 놓는다. 자, 아이들아 우리 맛있게 밥 먹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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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예부터 어느 나라에서든 ‘사전 만들기’를 하는 사람은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걸상에 앉아서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한 나라에서 쓰는 말을 책 하나로 담아내는 일을 하자면 기나긴 해를 들여도 뜻을 이루지 못해 두고두고 이 일을 물려주기까지 한다.


  ‘사전 만들기’는 빨리 끝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제대로 끝내야 하는 일이다. 빨리 끝내는 데에만 매달린 《표준 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엮음)이 얼마나 허술하게 태어났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린이가 많이 보는 《보리 국어사전》(보리출판사 엮음)도 빨리 끝내는 데에 더 마음을 기울인 탓에 ‘교과서 학습용어 풀이’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말을 가꾸면서 삶을 가꾸는 밑거름이 되도록 돕는 사전이다. 말을 가꾸면서 넋을 가꾸는 빛을 깨닫도록 이끄는 사전이다. 사전 하나는 어쩌다 한 번 들추면서 ‘뜻 모르는 낱말’을 알아보는 책이 아니다. 사전 하나는 낱말 하나를 바탕으로 삶과 넋이 어떻게 얼크러지면서 아름답게 빛나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꾸러미이다.


  한국에서 태어날 한국말사전이 아름답게 빛날 수 있기를 꿈꾼다. 나는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걸상에 앉는다. 그런데, 나는 두 아이를 건사하면서 곁님을 돌보는 몫을 맡는다. 걸상에만 붙을 수 없다. 바지런히 일어나서 밥을 끓이고 비질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다녀야 한다. ‘사전 만들기’라는 일을 하면서 시골에서 아이들과 복닥이는 삶이란 참 재미나구나 싶다. 나는 언제나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아버지 엉덩이가 닳지 말라며 마음을 써 준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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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51) 정성

어쩌면 그렇게도 정성들여 썼단 말인가. 주옥 같은 시조를 써서 예술의 높은 경지를 개척한 가람은, 원고 자체도 예술품으로 결집시킨 것이다
《김성재-출판 현장의 이모저모》(일지사,1999) 39쪽

 그렇게 정성들여 썼단
→ 그렇게 정갈하게 썼단
→ 그렇게 깔끔하게 썼단
→ 그렇게 알뜰히 썼단
→ 그렇게 힘들여 썼단
→ 그렇게 온힘을 바쳐 썼단
 …


  한국말사전에는 모두 열세 가지 ‘정성’이 실립니다. 이 가운데 우리들이 알 만한 ‘정성’은 몇 가지가 될는지 헤아려 봅니다. ‘精誠’ 하나를 뺀 다른 열두 가지 가운데 우리들이 한 번이나마 들었던 ‘정성’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하늘에 있는 별을 가리킨다는 ‘정성(井星, 定星)’이라는 두 가지 한자말은 얼마나 쓰임직한지 궁금하며, 불교와 음악에서 쓴다는 ‘정성(定星, 停聲)’도 전문 낱말이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正聲’이라 하기보다는 ‘바른소리’라 하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鄭聲’이라 할 때보다는 ‘궂은소리’라 하면 훨씬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인정과 성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情性)이나, “한창 나이라서 혈기가 매우 왕성”하다는 말(鼎盛)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와 같은 말은 안 쓰지 싶은데요.

  도무지 언제 이와 같은 말이 쓰여서 한국말사전에 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먼 옛날, 오로지 한문으로만 글을 쓰고 생각을 펼치던 선비들이 읊조리던 낱말을, 오늘날 한국말사전에 고스란히 실어 놓은는 셈 아닌가 모르겠어요. 아니면, 일본사람이 일본에서 만든 ‘일본말사전’에 실린 한자말을 한국말사전에 슬그머니 옮긴 셈이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마음 어린 선물 . 마음 담은 선물
 힘을 들인 선물 . 땀을 들인 선물
 뜻을 모은 선물 . 마음을 모은 선물
 마음을 바친 선물 . 땀방울을 바친 선물
 마음이 대단한 선물 . 마음이 갸륵한 선물

  한자말 ‘精誠’을 풀이하는 말을 보면, ‘온갖 힘을 다하려는’과 ‘참되고’와 ‘성실하고’가 보입니다. 이 가운데 ‘성실(誠實)’을 한국말사전에서 다시 찾아보면, “정성스럽고 참됨”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그러면 ‘정성’은 ‘성실’이고, ‘성실’은 ‘정성’이라는 이야기일까요?

 온힘 다하는 . 참된 . 애쓰는 . 힘쓰는 . 마음 쏟는 . 마음 기울이는

  한국사람들은 한국사람 나름대로 한국말을 살피면서 얼과 넋을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익히 쓴다고 할 만한 ‘정성’과 ‘성실’이지만, 정작 우리들은 이 한자말이 어떤 뜻인지, 또 어떤 쓰임인지, 또 어떤 뿌리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쓰는 셈입니다. 얼마나 쓸 만한지, 얼마나 알맞는지, 얼마나 살가운지를 살피지 않으면서 쓰는 셈입니다.

  꼭 한 낱말로만 써야 하지 않으니, “마음 다하는”이나 “온힘 다하는”이라고 해도 어울립니다. “마음 쏟는”이나 “온힘 쏟는”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마음 바치는”이나 “온힘 바치는”이라 해도 좋습니다. ‘애쓰다’나 ‘힘쓰다’나 ‘마음쓰다’를 넣어도 됩니다.

  하나씩 말문을 열고, 하나씩 말길을 트며, 하나씩 말살림을 가꾸는 동안, 비로소 한국말은 새로워지고 거듭나며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4341.7.12.흙/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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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렇게도 알뜰히 썼단 말인가. 구슬 같은 시조를 써서 높은 예술을 일군 가람은, 붓으로 쓴 글도 예술품으로 일구었다

‘주옥(珠玉)’이란 “구슬과 옥”을 가리킨다는데, “구슬 같은”이나 “빛나는 구슬 같은”으로 담아내면 어떨까 싶습니다. “예술의 높은 경지(境地)를 개척(開拓)한”은 “높은 예술을 일군”으로 손보고, “원고 자체(自體)도”는 “원고도 곧”으로 손봅니다. “결집(結集)시킨 것이다”는 “일구었다”나 “빚어냈다”나 “모아 놓았다”로 다듬습니다. ‘원고(原稿)’는 그대로 둘 만하지만, 글흐름을 잘 살리려면 “붓으로 쓴 글”이나 “붓으로 종이에 쓴 글”로 손질하면 한결 낫습니다.


 정성(井星) : [천체] 이십팔수의 스물두째 별자리의 별들
 정성(正聲)
  (1) 바른 목소리. 또는 바른 곡조의 음악
  (2) 음탕하지 아니한 음률
 정성(定性) : 물질의 성분이나 성질을 밝히어 정함
 정성(定星) : [불교]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 가운데 하나만 되도록 타고난 본성
 정성(定星) : [천체] = 항성(恒星)
 정성(定省) = 혼정신성
 정성(政聲) : 훌륭하고 바른 정치로 소문난 명성
 정성(停聲) : [음악] 거문고 연주에서, 소리를 낸 다음 그 소리를 잠시 멈추는 방법
 정성(情性) : 인정과 성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정성(鼎盛) : 한창 나이라서 혈기가 매우 왕성함
 정성(精誠) :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
   - 정성 어린 선물 / 정성을 들이다 / 정성을 다하다 / 정성을 모으다 /
     정성을 바치다 / 정성이 지극하다 / 정성이 갸륵하다
 정성(鄭成) : [인물] 고려 현종 때의 무장
 정성(鄭聲) : 음란하고 야비한 음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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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56) 사과

술꾼들은 노리아가 아들의 죽음에 대해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고 하면서 사과했다
《자케스 음다/윤철희 옮김-곡쟁이 톨로키》(검둥소,2008) 187쪽

 사과했다
→ 미안하다 말했다
→ 잘못했다고 했다
→ 뉘우쳤다
→ 두 손을 빌었다
 …


  온갖 한자말 ‘사과’가 있습니다. 먹을거리로도 ‘사과’가 있습니다. 우리 먹을거리는 ‘능금’이거나 ‘멋’이지만,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에 군홧발을 내딛는 그때부터 ‘능금’은 자취를 감추고 ‘사과’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그나저나, “잘못을 용서함(赦過)”과 “잘못을 빎(謝過)”을 가리키는 말이 똑같이 ‘사과’라는 한자말에 담깁니다. 한글로 ‘사과­’라고만 적으면서 말장난이 될 수 있겠습니다.

 사과의 말
→ 뉘우치는 말
 한마디 사과도 없다
→ 한마디 뉘우침도 없다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 잘못했습니다
→ 잘못을 뉘우칩니다

  수세미외면 ‘수세미외’이지 ‘絲瓜’가 아닙니다. 네 가지 학과면 ‘네 학과’라 하면 넉넉하지 ‘四科’라 적을 까닭이 없습니다. 불교에서 네 가지 깨달음을 ‘四果’라 한다는데, ‘네 깨달음’이나 ‘네 가지 앎’이라 해도 되지 싶어요. 불교나 천주교나 기독교나 모두 나라밖에서 들여왔는데, 나라밖에서 들여온 믿음이라 해도, 이 믿음을 담아내어 보여주는 낱말은 한국말로 빛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1.7.21.달/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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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은 노리아가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까마득히 모르는 줄 몰랐다고 하면서 뉘우쳤다

“아들의 죽음에 대(對)해”는 “아들이 죽은 줄을”이나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로 손질합니다.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은 “모르는 줄”로 다듬습니다.


 사과(司果) : [역사] 조선 시대에, 오위(五衛@)에 둔 정육품의 군직(軍職)
 사과(四果) : [불교] 소승 불교에서 이르는 깨달음의 네 단계
 사과(四科)
  (1) 유학의 네 가지 학과
  (2) [종교] 천도교에서, 도를 닦는 네 과정
 사과(沙果/砂果) : 사과나무의 열매
   - 빨갛게 익은 사과 / 사과 궤짝 / 사과 세 접
 사과(赦過) : 잘못을 용서함
 사과(絲瓜) = 수세미외
 사과(謝過) :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 사과의 말 / 한마디 사과도 없다 /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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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1) 분분

대학진학을 위한 재수생 대책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요즈음이기에
《성내운-다시, 선생님께》(배영사,1977) 147쪽

 의견이 분분한 요즈음
→ 이야기가 많은 요즈음
→ 말이 많은 요즈음
→ 말이 시끄러운 요즈음
→ 생각이 갈팡질팡인 요즈음
→ 이러쿵저러쿵 떠들썩한 요즈음
→ 떠들썩한 요즈음
 …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온갖 이야기가 떠돌기’도 합니다.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이 말 저 말 쏟아지기’도 합니다. 마음이 사나울 만큼 ‘말잔치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다 다른 사람이 어느 한 가지 일을 놓고서 다 다른 풀이법을 내놓으니 ‘뒤죽박죽’입니다.

 소문이 분분하다
→ 소문이 떠들썩하다
→ 소문이 시끌벅적하다
 공론이 분분하다
→ 여러 말로 떠들썩하다
→ 텅 빈 말로 떠들썩하다
 의견이 분분하여 끝이 없다
→ 말이 많아 끝이 없다
→ 온갖 말이 많아 끝이 없다

  ‘忿憤’이라 적는들 “분하고 원통하게 여김”을 나타내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적는 한자말로는 제 뜻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芬芬’이라 적으면 “매우 향기롭다”를 잘 나타낼 만할까 궁금합니다. “장미꽃이 芬芬하다”라 말할 일이 아니라 “장미꽃이 매우 향긋하다”라 말해야 제 뜻을 잘 나타내겠지요.

  ‘紛紛’이라는 한자말은 세 가지 뜻이 있다 하는데, 둘째 뜻을 보면 “‘다양하다’, ‘어지럽다’로 순화”처럼 나옵니다. 한국사람이 쓸 한국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꽃잎이 분분하게 떨어지다”라 말해 보셔요. 누가 알아들을까요? “꽃잎이 어지럽게 떨어지다”라 말해야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4341.4.3.나무/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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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가려는 재수생 대책을 놓고 말이 많은 요즈음이기에

“대학진학(進學)을 위(爲)한 재수생 대책”은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재수생 대책”이나 “대학교에 가기를 바라는 재수생 대책”이나 “대학교에 가려는 재수생 대책”으로 다듬습니다. ‘의견(意見)’은 ‘이야기’나 ‘말’이나 ‘생각’으로 손봅니다.


 분분(忿憤) : 분하고 원통하게 여김
 분분(芬芬) : 매우 향기롭다 
 분분(紛紛)
  (1) 떠들썩하고 뒤숭숭하다
  (2) 여럿이 한데 뒤섞여 어수선하다. ‘다양하다’, ‘어지럽다’로 순화
   - 꽃잎이 분분하게 떨어지다 / 필기도구, 복사지 따위가 분분하게 놓여 있었다
  (3) 소문, 의견 따위가 많아 갈피를 잡을 수 없다

   - 소문이 분분하다 / 공론이 분분하다 / 의견이 분분하여 끝이 없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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