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56] 꽃숲



  꽃이 많이 핀 곳을 ‘꽃밭’이라 하고, 풀이 많이 돋은 곳을 ‘풀밭’이라 하며, 나무가 많이 자란 곳을 ‘나무밭’이라 합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은 ‘나무숲’이라 하고, 풀이 우거진 곳은 ‘풀숲’이라 합니다. 그러면, 꽃이 우거진 곳은 무엇이라고 할 만할까요. 한국말사전을 찬찬히 살피다가 ‘꽃밭·풀밭·나무밭’이라는 낱말은 고루 있지만, ‘풀숲·나무숲’만 있고 ‘꽃숲’이라는 낱말은 없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 ‘꽃숲’은 한국말사전에 없을까요? 우리 집은 책이 많아 ‘책숲’입니다. 크고작은 모든 책방도 ‘책숲’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살아 ‘이야기숲’입니다. 글을 써서 빚는 아름다운 터는 ‘글숲’이 되고, ‘노래숲’이나 ‘사랑숲’을 이루는 이웃이 있습니다. 숲이 되도록 아름다이 일구는 삶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빛이 되어 환하게 웃음꽃밭이나 웃음꽃숲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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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69] 풀과 농약과 아이들

― 왜 시골에 아이들이 없을까



  풀을 싫어하는 시골이 되면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시골이 되면 농약이 찾아옵니다. 아이들을 시골로 다시 데려오려면 풀을 사랑해야 합니다. 농약을 멀리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 비로소 아이들이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아이들이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늙은 할매와 할배만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온통 농약바람입니다. 어느 시골에서나 끔찍하게 비닐을 쓰고 태우며 파묻습니다. 참말 오늘날에는 어느 시골이든 풀을 끔찍하게 싫어해요. 이런 곳에서는 아이들이 느긋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앞날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온통 농약투성이로 지내면서 비닐로 온 밭뙈기를 덮다가 끝없이 태우는 시골에는 어떤 앞날이 있을까요. 이런 시골에 아이들이 얼마쯤 남는다 하더라도, 무슨 빛을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지내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유기농’을 먹이려고 애씁니다. 유기농이란 무엇일까요? 일본 한자말 ‘有機農’은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아 흙을 일구는 일을 가리킵니다. ‘유기농’을 하려면 농약을 쓰면 안 되고, 비닐을 쓰면 안 됩니다. 여기에 항생제나 비료를 모두 안 쓸 때에 ‘유기농’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시골이 농약과 비닐과 비료와 항생제 범벅입니다. 오늘날 여느 시골에서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는, 오늘날 여느 도시에서 여느 어버이가 ‘먹이고 싶지 않은 곡식이나 열매’입니다.


  아이들이 도시에만 몰립니다. 그러나 도시에 몰리는 아이들은 놀지 못합니다. 놀 곳이 없고 놀 틈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도시에 가두기만 할 뿐,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면서 씩씩하게 자라도록 북돋우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지 못하는 도시는 빈터가 없고 쉼터가 없으며 놀이터도 일터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는 곳에서 모든 목숨이 싱그럽게 살아갑니다. 풀이 자라야 풀벌레와 개구리가 깃듭니다. 풀이 자라야 나무가 튼튼히 섭니다. 풀이 자라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포근합니다. 풀이 자라야 풀잎을 꺾어 풀피리를 불고, 풀꽃을 따서 풀꽃반지를 낍니다.


  풀이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풀이 없는 데에서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이들이 맑고 밝게 자라면서 착하고 아름답게 사랑하기를 바란다면, 시골은 풀을 아끼면서 돌볼 줄 아는 터로 거듭나야 합니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까르르 웃고 노래하기를 바란다면, 앞으로 시골에서는 농약을 걷어치워야 합니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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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8-16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척박한 땅에 제일 먼저 풀씨가 날아와 자리를 잡아야 생명 있는 것들이 깃들어 살아가니까 풀이 잘 자라는 시골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충분히 공감되네요!

파란놀 2014-08-15 05:50   좋아요 0 | URL
아스팔트를 깔아 자동차가 다닐 길이 아닌,
풀이 돋으며 아이들이 뛰놀 터가 되도록
우리 나라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알량한 말 바로잡기

 (933) 유리 1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 생존에 유리했다

《크리스 하먼-민중의 세계사》(책갈피,2004) 31쪽


 생존에 유리하다

→ 살아남는 데에 도움이 된다

→ 삶에 한결 낫다

→ 서로 도와야 살아가는 데에 더 낫다

 …



  한국말사전에 실린 아홉 가지 ‘유리’ 가운데 우리가 쓰는 ‘유리’는 몇 가지일까 생각해 봅니다. 도움이 되는 일은 ‘도움이 된다’고 적습니다. ‘有利’로 적을 일이 없습니다. 따로 떨어졌다면 ‘따로 떨어졌다’고 적습니다. ‘遊離’로 적을 일이 없어요. ‘流離漂泊’을 가리킨다는 ‘流離’를 쓴대서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떠돌기’라 해야 비로소 알아들을 만합니다.


 여름 계절풍은 벼농사에 특히 유리하다

→ 여름 바람은 벼농사에 더 도움이 된다

→ 여름 철바람은 벼농사에 더욱 좋다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갔다

→ 우리한테 좋게 흐른다

→ 우리한테 도움이 되도록 나아간다


  어떤 사람은 현실과 동떨어집니다(← 현실과의 유리). 말과 삶이 동떨어질(← 이론과 실제가 유리) 수 있습니다. 삶과 멀찌감치 떨어진 꿈만을 좇을(← 현실과 유리된 이상만을 추구하다) 수 있어요.


  한국말사전에 실린 한자말은 우리 삶과 얼마나 가까이 맞닿는지 아리송합니다. 우리 삶과 동떨어진 한자말이 지나치게 많이 실린 한국말사전은 아닐까요. 우리 삶을 사랑하는 길하고는 멀찌감치 떨어진 한국말사전은 아닌가요. 4338.5.20.쇠/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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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이 아니라 두레가 삶에 한결 낫다


‘경쟁(競爭)’은 ‘겨룸’이나 ‘다툼’으로 다듬고, ‘협동(協同)’은 ‘돕기’나 ‘서로돕기’나 ‘어깨동무’나 ‘두레’로 다듬으며, ‘생존(生存)’은 ‘삶’이나 ‘살아남기’로 다듬습니다.



 유리(由吏) = 이방 아전

 유리(有利) : 이익이 있음

   - 여름 계절풍은 벼농사에 특히 유리하다 /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갔다

 유리(有理) : 유리 연산 이외의 관계를 포함하지 않는 일

 유리(有理) : 이치에 맞는 점이 있음

 유리(流離) = 유리표박

 유리(琉璃) : 석영, 탄산소다, 석회암을 섞어 높은 온도에서 녹인 다음 급히 냉각하여 만든 물질

 유리(遊離) : 따로 떨어짐

   - 현실과의 유리 / 이론과 실제가 유리되다 / 현실과 유리된 이상만을 추구하다

 유리(瑠璃)

  (1) 황금색의 작은 점이 군데군데 있고 거무스름한 푸른색을 띤 광물

  (2) 거무스름한 푸른빛이 나는 보석

 유리(??/??) = 끈삼태기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213) 유리 2


법의 지배는 소중하지만, 법 그 자체가 국민의 일반의지와 유리되거나 절차적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했을 경우

《한승헌-그날을 기다리는 마음》(범우사,1991) 102쪽


 국민의 일반의지와 유리되거나

→ 사람들 생각과 동떨어지거나

→ 사람들 마음과 동떨어지거나

→ 사람들 생각에서 벗어나거나

→ 사람들 마음과 멀리 떨어지거나

 …



  ‘일반의지(一般意志)’는 철학에 나오는 말이로군요. “개인적인 이기심을 버리고 사회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공적 주체로서의 국민 일반의 의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국민 일반의 의지를 ‘일반의지’라 하는 셈이로군요. 그런데 보기글에서 “국민의 일반의지”라 적어요. 낱말과 낱말풀이가 영 아리송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여느 생각’이 ‘생각’이나 ‘여느 마음’이나 ‘마음’으로 적어야 알맞으리라 느낍니다. 누군가는 “농사꾼의 일반의지”나 “노동자의 일반의지”처럼 쓰기도 할 테지만 “농사꾼 마음”과 “노동자 마음”이라고 적을 때에 비로소 뜻이 환하게 피어납니다.


  한자말 ‘유리(遊離)’는 “따로 떨어짐”을 뜻합니다. 이런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쓸 수 있을 테지만,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은 ‘유리’라는 한자말을 쓰지 않습니다. 글밥을 먹는 분들이 이런 한자말을 흔히 씁니다. 여느 사람들, 그러니까 여느 마음으로 여느 삶을 가꾸는 사람들은 ‘여느 한국말’을 수수하고 투박하게 씁니다. 4340.1.29.달/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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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있어야 하지만, 법 스스로 사람들 마음과 동떨어지거나 올바른 길을 걷지 못했을 때


“법의 지배(支配)도 소중(所重_하지만”은 무슨 뜻일까요. “법은 소중하지만”이나 “온누리에는 법이 있어야 하지만”을 뜻할까 아리송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법이 있어야 하지만”을 말하려 했지 싶습니다. “법 그 자체(自體)가”는 “법이”나 “법 스스로”로 손보고, “국민(國民)의 일반의지(一般意志)”는 “사람들 마음”으로 손보며, “절차적(節次的) 정당성(正當性)”은 “올바른 길”로 손보며, “못했을 경우(境遇)”는 “못했을 때”로 손봅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332) 실정


한때 동양 최대 철새도래지였지만 지금은 형편없이 위축된 을숙도마저 명지대교로 망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박병상-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알마,2007) 66쪽


 망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 망가지는 꼴이다

→ 망가지는 판이다

→ 망가진다

 …



  “失政을 저지르다”보다는 “정치를 잘못하다”로 적을 때 알아듣기에 낫다고 느낍니다. “동정을 잃었다”는 ‘失貞’은 한자로 적어도 알아듣기 힘들군요. ‘實定’보다는 “하기로 했다”면 넉넉합니다. 네 번째로 나오는 ‘實情’은 때에 따라서 다르게 담아냅니다. “실정에 맞다”라면 “흐름에 맞다”로, “실정에 어둡다”라면 “삶에 어둡다”로, “실정을 보고하다”는 “어떠한지 알리다”나 “어떠한지 말하다”로, “실정을 모르다”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다”로, “실정이 여의치 않다”는 “흐름이 뜻대로 안 된다”로, “국내의 실정에 밝다”는 “나라 흐름에 밝다”로 다듬어 봅니다. 4340.9.15.흙/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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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동양에서 가장 큰 철새 쉼터였지만 이제는 엉망으로 줄어든 을숙도마저 명지대교 때문에 망가진다


“동양 최대(最大)의 철새도래지”라 하지 않아서 반갑지만, “동양에서 가장 큰 철새도래지”로 적는다면 한결 낫습니다. ‘도래지(渡來地)’는 ‘쉼터’로 고치면 어떨까요. ‘위축(萎縮)된’은 ‘쭈그러든’이나 ‘작아진’이나 ‘줄어든’이나 ‘쪼그라든’으로 다듬고, ‘지금(只今)은’은 ‘이제는’으로 다듬으며, ‘형편(形便)없이’는 ‘엉망으로’로 다듬습니다.



 실정(失政) : 정치를 잘못함. 또는 잘못된 정치

   - 실정을 저지르다 / 실정을 거듭하다

 실정(失貞)

  (1) = 실절(失節)

  (2) 동정(童貞)을 잃음

 실정(實定) : 실제로 정함

 실정(實情) : 실제의 사정이나 정세

   - 실정에 맞다 / 실정에 어둡다 / 실정을 모르다 / 실정을 보고하다 /

     실정이 여의치 않다 / 국내의 실정에 밝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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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4) 수리


간조의 결의는 굳었고, 드디어 5월 4일에 구로이와가 그 사표를 수리해서 원만하게 퇴사하게 되었다

《스즈키 노리히사/김진만 옮김-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소화,1995) 77쪽


 사표를 수리해서

→ 사표를 받아들여서

→ 사표를 받아서

 …



  한국말 ‘수리’가 셋 있습니다. 한자말 ‘수리’는 모두 열둘입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널리 쓰는 한자말 ‘수리’는 몇 가지일까 궁금합니다. “수리 시설”과 “사표 수리”와 “고장난 곳 수리”와 “수리 탐구 시험”, 이렇게 네 가지만 쓰지 싶은데, “수리 탐구 시험”에서는 쓰일 수 있으나, “수리에 밝아서 계산이 틀리는 일이 없다”는 “셈에 밝아서 틀리는 일이 없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망가진 곳을 고치는 “수리해서 쓰다”는 “고쳐서 쓰다”나 “손봐서 쓰다”나 “손질해서 쓰다”로 손질할 수 있어요. “수리 시설”은 “물 시설”이라고 적을 때에 알아듣기에 한결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표 수리”에서도, ‘受理’는 ‘받아들임’이나 ‘받음’으로 고쳐서 써야 한다고 나와요.


  다른 여덟 가지 ‘수리’는 얼마나 쓰일 만한지 궁금합니다. 손금이면 ‘손금’일 뿐 ‘手理’라 할 까닭이 없고, 손안이면 ‘손안’일 뿐 ‘手裏’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물줄기는 ‘물줄기’일 뿐이요, 물길은 ‘물길’일 뿐, ‘水理’가 아닙니다. “소매 속”을 왜 ‘袖裏’라 적어야 할까요? 근심이 있으면 “근심 있다”라 하면 되는데, 왜 ‘愁裏’라 적어야 할는지요? 옛날 역사에서 쓰던 한자말은 역사사전으로 옮길 노릇입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사전은 어떤 책인지 새삼스럽게 돌아봅니다. 한국사람이 사랑할 한국말사전에 한국말이 얼마나 제대로 실렸는지 곰곰이 되짚습니다. 4340.4.18.물/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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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조는 굳게 다짐했고, 드디어 5월 4일에 구로이와가 그 사표를 받아들여서 그대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간조의 결의(決意)는 굳었고”는 “간조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고”나 “간조는 굳게 다짐했고”로 다듬습니다. ‘원만(圓滿)하게’는 ‘잘’이나 ‘그대로’로 손질하고, ‘퇴사(退社)하게’는 ‘회사를 나오게’나 ‘회사를 그만두게’로 손질합니다.



 수리 : 밤이나 도토리, 개암 따위의 일부분이 상하여 퍼슬퍼슬하게 된 것

 수리 : 수릿과의 독수리, 참수리, 흰죽지참수리, 검독수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수리 = 단오(端午)

 수리(手理) = 손금

 수리(手裏) = 수중(手中)

 수리(水利)

  (1) 수상 운송상의 편리

  (2) 식용, 관개용, 공업용 따위로 물을 이용하는 일

   - 농업 생산을 늘리기 위하여 수리 시설을 확충하다

 수리(水理) : 물에 관련된 근본 이론이나 이치

 수리(水理) = 수맥(水脈)

 수리(受理) : 서류를 받아서 처리함. ‘받아들임’, ‘받음’으로 순화

   - 사표가 수리되다

 수리(首吏) : ‘이방 아전’을 달리 이르던 말

 수리(修理) : 고장 나거나 허름한 데를 손보아 고침

   - 사실 그는 일의 종류라면 발동기 수리로부터 도토리 요리까지

 수리(袖裏) : 소매의 속

 수리(愁裏) : 근심이 있음

 수리(數理)

  (1) 수학의 이론이나 이치

   - 그는 수리에 밝아서 계산이 틀리는 일이 없다

  (2) 수학과 자연 과학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이번 시험은 언어 영역보다 수리 영역이 어려웠다

 수리(?吏) : 낮은 벼슬아치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086) 순수 1


그 초가집에는 눈송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순이’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엄광용-초롱이가 꿈꾸는 나라》(이가서,2006) 12쪽


 눈송이처럼 순수한 마음

→ 눈송이처럼 맑은 마음

→ 눈송이처럼 해맑은 마음

→ 눈송이처럼 깨끗한 마음

→ 눈송이처럼 하얀 마음

→ 눈송이처럼 고운 마음

 …



  임금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일을 지난날에 ‘巡狩’라는 한자말로 가리켰을는지 모르나, 오늘날에는 이런 말을 쓸 일이 없기도 하고, 이 같은 한자말을 굳이 한국말사전에 올릴 일이 없다고 느낍니다. 권력자나 양반이 바라볼 적에는 “임금님이 순수한다”일는지 모르나, 여느 사람한테는 “임금이 돌아다닌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이 거의 안 섞인 물은 ‘純水’가 아닌 ‘맑은 물’입니다. 차례로 세는 일은 그저 ‘차례로 세기’이지 ‘順數’가 아니에요. 고분고분 받는 일은 ‘고분고분 받기’이지 ‘順受’가 아닙니다.


  ‘順修’나 ‘順守’나 ‘循守’는 누가 언제 왜 쓸까 궁금합니다. ‘循首’ 같은 한자말도 ‘巡狩’처럼 지난날 권력자와 양반이나 쓰던 한자말입니다. 이런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담을 일이 없습니다.


 순수 성분 → 맑은 성분

 순수 농축액 → 맑은 농축액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를 지녔다 → 어린아이처럼 맑다


  티가 섞이지 않을 때에 ‘맑다’고 합니다. 성분도 결정체도 농축액도 다른 것이 깃들지 않으면 ‘맑’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마음에 티나 거짓이 깃들지 않으면 ‘맑’습니다. 4339.5.17.물/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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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풀집에는 눈송이처럼 마음이 맑은 ‘순이’라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소녀(少女)’라는 한자말을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아이’라 손볼 수 있습니다. ‘가시내’로 손보아도 됩니다. “-한 마음을 가진”은 “마음이 -한”으로 손보고, “살고 있었습니다”는 “살았습니다”로 손봅니다. ‘초가집(草家-)’은 겹말이니 ‘풀집’이나 ‘초가’로 바로잡습니다.



 순수(巡狩) :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

 순수(純水) : 부유물이나 불순물이 거의 섞이지 않은 물

 순수(純粹)

  (1) 전혀 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함

   - 순수 성분 / 순수 결정체 / 순수 농축액

  (2)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를 지녔다

 순수(循守) = 준수(遵守)

 순수(循首) : 참형에 처한 죄인의 머리를 끌고 다니며 백성에게 보이던 일

 순수(順守) : 도리를 따라 지킴

 순수(順受) : 순순히 받음

 순수(順修) : 미혹을 버리고 진리에 따라 수행하는 일

 순수(順數) : 차례로 셈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47) 순수 2


2001년 봄부터 2002년 겨울까지 읽은 책들을 망라했을 뿐만 아니라, 순수 서평만으로 590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책을 엮어냈다는 사실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김기태) 《기획회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183호 87쪽


 순수 서평만으로

→ 오직 책 이야기만으로

→ 오로지 책 이야기만으로

→ 책 소개글 한 가지만으로

→ 다른 글은 없이 책 이야기만으로

→ 다만 책 소개글만으로

  …



  “책을 이야기하는 글 하나로 590쪽짜리 두툼한 책을 엮어냈다”고 합니다. “책 이야기 한 가지로 59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을 엮어냈다”고 합니다. “책을 말하는 글만 모아서 590쪽이 넘는 큰 책을 엮어냈다”고 합니다.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대견하다면 대견합니다.


  다른 글은 안 쓰고 책을 이야기하는 글만 썼다고 합니다. ‘오직’ 책 이야기만 썼다고 합니다. ‘오로지’ 한 가지 이야기만을 썼다고, ‘그저’ 한 가지 이야기만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한자말 ‘순수’를 쓰면 글쓴이 마음을 한결 잘 나타낼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자말 ‘순수’를 쓰기에 맑은 말이 사그라듭니다. 맑은 넋이 되어 맑은 말을 사랑한다면, 언제나 맑은 삶을 누리면서 맑은 이야기를 두루 펼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4339.9.10.해/4341.8.26.불/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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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봄부터 2002년 겨울까지 읽은 책들을 두루 모았을 뿐만 아니라, 오직 책 이야기만으로 59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을 엮어냈기에 무척 대견스러웠다


‘망라(網羅)했을’은 ‘두루 모았을’로 다듬고, ‘방대(尨大)한’은 ‘어마어마한’으로 다듬으며, “590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量)의 책”은 “590쪽에 이르는 큰 책”이나 “59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으로 다듬어 줍니다. “엮어냈다는 사실(事實)이”는 “엮어냈다는 대목이”나 “엮어냈기에”로 손질합니다. ‘서평(書評)’은 ‘책 이야기’나 ‘책 소개글’로 고쳐 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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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한 통



  읍내에 갈 일이 없다가, 자동차를 얻어타고 읍내에 간다. 집으로 돌아올 적에도 자동차를 얻어탄다. 오가는 길에 자동차를 얻어타다니 참 고맙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읍내 가게에 들러 수박을 한 통 산다. 읍내까지 자전거로 다녀오지 못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수박을 장만해서 들고 들어오기도 힘들어, 올여름에는 집에서 수박을 먹은 일이 아주 드물다. 고흥집에 나들이를 오신 손님이 들고 오셨을 때에만 아이들이 수박맛을 볼 수 있었다.


  졸린 아이들이 졸음을 꾹 참고 수박노래를 부른다. 나는 아이들이 수박을 먹고 잠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물이 가득한 열매를 먹으면 밤에 자다가 자꾸 쉬가 마려울 테니까. 곁님이 수박을 썰어 아이들한테 준다. 아이들이 달게 잘 먹는다. 그러다 아이들은 수박을 다 못 먹고 남긴다. 우리 아이들은 ‘수박을 남길 아이’가 아닌데, 참말 배가 부르고 졸리면서 힘드니, 더 못 먹는다.


  아이들을 재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그토록 수박노래를 불렀는데, 오늘 밤은 잘 자고 나서 이튿날 주려 하기보다는, 저녁이라도 한두 조각씩 썰어서 준 뒤, 이튿날 더 먹자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 이렇게 못 했다. 못 하고 나서 깨닫는다.


  내가 어릴 적에는 어떠했을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나도 어릴 적에 수박노래를 신나게 불렀을 텐데, 어머니는 이녁 아이한테 어떻게 하셨을까. 잘 모르겠으나, 어머니는 한숨을 폭 쉬다가 수박을 주셨지 싶다. 그러니까 그렇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어버이라면, 아이가 밤에 오줌이 마렵다 하면 벌떡 일어나서 쉬를 누이면 되고, 아이가 이불에 쉬를 누면 이불을 빨면 된다. 오늘 저녁 일을 다시금 깊이 돌아본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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