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195) 작업 6 : 학구적인 작업


사실 마르크스는 이처럼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학구적인 작업 외에 다른 수단을 찾을 수 없었고

《스즈키 주시치-엘리노어 마르크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0 14쪽


 학구적인 작업 외에

→ 학문 말고

→ 공부 빼고

 …



  “학구적(學究的)인 작업”이라는 글월을 보니, “수학적인 작업”이나 “철학적인 작업”이나 “과학적인 작업”이라는 말도 쓰겠구나 싶습니다. “경제적인 작업”이나 “정치적인 작업”이라든지 “외교적인 작업”도 있을까요? “사교적인 작업”도 있겠군요. 갖다 붙이면 무엇이든 다 말이 되어 버리는 ‘-적’붙이 말투인데, 이 말투는 한국사람이 얼마나 쓸 만한 말투일는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가지치기를 잘하고 온갖 곳에 다 들러붙으면서 많은 사람들 입과 손에 익는 말이니까 말입니다.


  한자말 ‘학구적’은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학문 연구에 몰두하기 빼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하는 보기글입니다. 학문 연구란 무엇일까요? 공부일 테지요. 4340.1.2.불/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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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면 마르크스는 이처럼 아주 외톨이가 되어 공부 빼고는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었고


‘사실(事實)’은 ‘가만히 보면’으로 손보고, “완전(完全)히 고립(孤立)된 상태(狀態)에서”는 “아주 외톨이가 되어”나 “아주 혼자만 동떨어지면서”로 손볼 수 있습니다. ‘외(外)에’는 ‘말고’나 ‘빼고’로 고쳐씁니다. “다른 수단(手段)”은 “다른 길”로 다듬습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268) 작업 7 : 모두 나의 작업이었다

 

글로 정리하는 일, 영어로 옮기는 일,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하여 책의 형태로 만드는 일 등이 모두 나의 작업이었다

《이나미-나의 디자인 이야기》(마음산책,2005) 25쪽


 모두 나의 작업이었다

→ 모두 내 일이었다

→ 모두 내가 하는 일이었다

→ 모두 내 몫이었다

→ 모두 내가 했다

→ 모두 했다

 …


 

  보기글을 보면 모두 세 가지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이런 ‘일’을 ‘작업’이라고 뭉뚱그립니다.


  왜 앞에서는 ‘일’이라 말하고, 뒤에서는 ‘작업’이라 했을까요. 하나하나 나누어 살필 때에는 ‘일’이고, 이를 뭉뚱그릴 때는 ‘작업’일까요. 자잘하게 하거나 치를 여러 가지는 ‘일’이고, 이것저것 해치워서 이루어 내면 ‘작업’일까요.


  일을 받아서 일을 합니다. 일한 품으로 일삯을 받습니다. 일을 하니 일꾼입니다. 해야 할 일들은 일감입니다. 일이 바쁘니 일손이 더 있어야 합니다. 일을 하는 곳이니 일터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들은 일을 하면서 제 일을 ‘일’로 느끼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4340.4.26.나무/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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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갈무리하기, 영어로 옮기기, 그림을 그리고 꾸며서 책꼴로 만들기 들이 모두 내 일이었다

 

‘디자인(design)하여’는 흔히 쓰는 영어인데, ‘꾸미고 만져서’나 ‘꾸며서’로 손볼 수 있습니다. “책의 형태(形態)로”는 “책으로”나 “책꼴로”나 “책 모양으로”로 다듬고, ‘등(等)’은 ‘들’로 다듬으며, “글로 정리(整理)하는”은 “글로 갈무리하는”으로 다듬습니다. ‘나의’는 일본 말투이니 ‘내’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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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7) 작업 8 : 제설작업


간밤에 백두산 정상과 거기로 오르는 길에 눈이 한 자 이상 내려 제설작업으로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박도-항일유적 답사기》(눈빛,2006) 124쪽


 제설작업으로

→ 눈치우기로

→ 눈 치우는 일로

→ 눈을 치운다고 해서

→ 눈을 치워야 하기에

 …



  나는 군대에 가서 ‘제설(除雪)작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이기 앞서 빗자루를 들고 나와서 부지런히 쓸어냅니다. 이러다가 눈이 쌓이면 넉가래를 들고 나와서 치우고, 넉가래로 힘이 부치면 눈삽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쇠삽으로 퍼냅니다.


  군대에서 ‘제초(除草)작업’도 했습니다. 철책 둘레에 난 풀을 베어내는 일입니다. ‘시계청소(視界淸掃)’라고도 했는데, 맞은편에서 이쪽으로 넘어오지 않나 살펴볼 수 있도록 나무도 베고 나뭇가지도 자릅니다. 제가 있던 철책에서는 고엽제를 뿌리기까지 했습니다.


 제설 → 눈치우기 / 눈쓸기

 제초 → 풀뽑기 / 풀베기


  군대를 마치고 사회에 돌아와 보니, 관청에서도 ‘제설작업’을 합니다. 군대와 관청과 학교에서는 그예 ‘제설작업’입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얼결에 어른들 말투를 물려받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에서는 풀약을 뿌릴 때에 ‘제초제’를 쓰는군요.


  우리는 이러한 말, ‘제설·제초’를 언제부터 썼을까요. 이러한 말 뒤에 ‘작업’을 붙이는 말씨는 언제부터 퍼졌을까요. 일제강점기부터 썼을까요? 그때 쓰던 말이 군대에 깊이깊이 박히면서 사회에도 두루 퍼졌을까요? 4341.4.25.쇠/4347.8.15.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간밤에 백두산 꼭대기와 거기로 오르는 길에 눈이 한 자 넘게 내려 눈을 치우느라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정상(頂上)’은 ‘꼭대기’나 ‘봉우리’로 손질합니다. ‘이상(以上)’은 ‘넘게’로 다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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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77) 작업 9 : 교재 선정 작업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다음 주에 교재 선정 작업을 해서 오겠습니다 … 새로운 방안들을 찾아가는 작업들이 이 시간에 주로 할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김현수-똥교회 목사의 들꽃피는마을 이야기》(청어람미디어,2004) 107쪽


 교재 선정 작업을 해서

→ 교재를 골라서

→ 교재를 알아보고

→ 교재를 살펴보고

 …



  ‘교재(敎材)’는 가르칠 때 쓰는 책입니다. 그래서 ‘선정’과 ‘작업’을 다듬어 “교재 고르는 일”로 적을 수 있는 한편, ‘교재’까지 다듬어 “무엇으로 가르칠느지 고르는 일”로 적어도 됩니다. 뒷말을 묶어서, “무엇으로 가르칠는지 생각해 오겠습니다”나 “어떤 책을 쓸는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새로운 방안들을 찾아가는 작업들이

→ 새로운 길들을 찾아가는 일들이

→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일이

→ 새로운 길 찾기가

 …



  보기글 뒤쪽을 보면 ‘할 일’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느 때에 마음 쏟아 ‘할 일’이 이러저러하다고 하면서, 바로 앞에서는 그 ‘할 일’이 ‘새로운 방안들을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적습니다. ‘작업’하고 ‘일’이 겹치기로 쓰인 셈입니다. 한국말은 ‘일’이요, 한자말은 ‘작업’이니까요.


  찬찬히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늘 ‘일’을 하지만, ‘노동(勞動)’이 어떠하고 ‘작업’이 어떠하며 ‘근무(勤務)’가 어찌어찌 하다고 이야기하기 일쑤입니다. ‘집안일’이 아닌 ‘가사노동’이라 하고, ‘일터’가 아닌 ‘직장’이나 ‘작업장’이라 합니다. 무엇인가를 ‘고칠’ 때면 ‘수정 작업’이나 ‘보완 작업’을 하고, 밤을 새우거나 늦은 밤까지 일하면 ‘철야작업’이나 ‘야간근무’라고 합니다.


  일이 힘든가 수월한가를 말하지 않고 ‘노동강도’만을 따집니다. 일할 맛이 나는지, 일하는 터전이 어떠한지를 살피지 않고 ‘근로조건’이나 ‘근무조건’이나 ‘노동조건’을 살필 뿐입니다. 일하는 사람도 아니요 ‘일꾼’도 아닌 ‘노동자’요 ‘근로자’요 ‘회사원’이다 보니까, 일꾼들을 헤아리는 사람이 아닌 ‘노무사’인데다가 ‘노동부’이다 보니까, 우리들은 자꾸자꾸 ‘일’에서 멀어지지 싶습니다. 스스로 일을 돌아보지 못하면서, 스스로 무엇을 먹고살려고 무엇을 붙잡는지도 못 느끼지 싶습니다.


  일을 잊으며 말을 잊고, 말을 잊으며 일을 잊습니다. 돈에 따라 일거리를 찾으면서 돈에 따라 말을 흩뜨립니다. 돈에 따라 말을 버리며, 돈에 따라 아무 일이나 함부로 붙잡고 맙니다. 4341.11.4.불/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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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다음 주에 교재를 골라서 오겠습니다 …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일들이 이때에 흔히 할 일이 될 듯합니다


‘검토(檢討)해서’는 ‘살펴보고’나 ‘알아보고’나 ‘헤아려 보고’로 다듬습니다. ‘선정(選定)’은 ‘고르는’이나 ‘가리는’으로 손보고, ‘방안(方案)’은 ‘길’로 손보며, ‘주(主)로’는 ‘마음 쏟아’나 ‘힘을 모아’로 손봅니다. “될 것 같습니다”는 “되리라 생각합니다”나 “될 듯합니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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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989) 작업 1


현재 만화 작업을 하며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마르잔 사트라피/김대중 옮김-페르세폴리스 1》(새만화책,2005) 책날개


 만화 작업을 하며

→ 만화 일을 하며

→ 만화를 그리며

 …



  둘레에 있는 분들은 저한테 “요즘 무슨 작업 하세요?”나 “작업은 잘 되나요?” 같은 말을 더러 묻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분들이 이런 말을 흔히 하는데, 요새는 회사에 나가는 사람뿐 아니라, 대학생도, 또 여느 사람들도 이 ‘작업(作業)’이란 한자말을 아주 쉽게 씁니다.


  요사이 삶을 헤아려 보면, 만화를 그리는 분들한테 “만화 작업을 한다”고 말하고, 영화를 찍는 분들한테 “영화 작업을 한다”고 말하며, 노래를 지어서 부르는 사람들한테는 “음반 작업을 한다”고 말해요. 있는 그대로, 일하는 그대로를 나타내지 않고 자꾸 군말을 붙이고 뭔가 겉으로 있어 보이게 한달까요. 밥먹는 일을 ‘밥먹는다’고 하지 않고 “식사를 한다”고 하잖아요. 잠을 잔다는 말도 “취침에 들어가셔야지요”처럼 말하기까지 합니다.


 작업 시간 → 일하는 시간 / 일하는 때 / 일때

 준비 작업 → 준비 / 준비하는 일

 그들의 작업은 → 그들이 하는 일은 / 그들 일은

 교량 복구 작업 → 다리 다시 놓기 / 다리 손질

 보완 작업 → 손보기 / 손질하기

 전산화 작업 → 전산화

 수년간의 작업 끝에 → 여러 해 일한 끝에 / 여러 해 일을 하여


  꼭 알맞게 쓸 말을 쓰고, 삶을 즐겁게 가꾸는 말을 써야 합니다. 알맞게 쓰는 말도 아니요, 뜻이나 느낌을 낱낱이 드러내는 말도 아닌 데다가, 겉멋이나 겉치레나 겉꾸밈에 빠지는 말이라면 어떻게 되나요. 삶을 즐겁게 노래하지 못하는 말이 되면 얼마나 쓸쓸할까요.


  우리 모두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하면서 ‘일노래’를 부르고, 웃으면서 ‘일꽃’을 가꾸며, 삶을 북돋우는 ‘삶일’로 나아가기를 바라요. 하는 일마다 환하게 빛나 ‘일빛’이 곱다라니 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8.10.22.흙/4341.10.3.쇠/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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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만화를 그리며 프랑스에서 산다

‘현재(現在)’는 ‘요즘은’으로 손질하고, “살고 있다”는 “산다”로 손질합니다.



 작업(作業)

  (1) 일을 함

   - 작업 시간 / 준비 작업 / 그들의 작업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2) 일정한 목적과 계획 아래 하는 일

   - 교량 복구 작업 / 보완 작업 / 전산화 작업 / 수년간의 작업 끝에

  (3) [군대] 근무나 훈련 이외에 진지 구축, 막사나 도로 보수 따위의 임시로 하는 일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070) 작업 3 : 시 작업에 몰두했다


네팔을 ‘접은’ 후 그동안 밀쳐 두었던 시 작업에 몰두했다

《백경훈-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호미,2006) 26쪽


 시 작업에 몰두했다

→ 시쓰기에 매달렸다

→ 시쓰기에 모든 삶을 바쳤다

→ 시쓰기에 온힘을 들였다

→ 시를 바지런히 썼다

→ 시를 힘껏 썼다

 …



  우리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소설이나 시를 쓸 때도 ‘일’을 할 뿐 ‘작업을 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하는 일과 놀이를 꾸밈없이 바라보고 느끼면 좋겠습니다. 어설프게 남을 따라하거나 흉내내거나 베끼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말을 쉽고 알맞으며 깨끗하게 쓰면 좋겠습니다. 그뿐입니다. 시를 쓰면 ‘시쓰기’입니다. 글을 쓰면 ‘글쓰기’입니다. 어느 누구도 ‘시 작업’이나 ‘글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4339.4.2.해/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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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을 ‘접은’ 뒤 그동안 밀쳐 두었던 시 쓰기에 매달렸다


“접은 후”는 “접은 뒤”나 “접은 다음”으로 손봅니다. ‘몰두(沒頭)했다’는 ‘매달렸다’나 ‘온힘을 들였다’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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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6) 작업 4 : 역사를 공부하는 작업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자에게 역사를 공부하는 작업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내기를 위한 책읽기 길라잡이》(서울대학교 총학생회,1998) 19쪽


 역사를 공부하는 작업은 흥미로운 일

→ 역사 공부는 재미있는 일

→ 역사 배우기는 신나는 일

→ 역사 배우기는 즐거운 삶

 …



  요즘은 온갖 곳에 ‘작업’을 갖다 붙입니다. 이 몹쓸 말버릇은 공부하는 일에까지 가지를 칩니다. 공부는 공부이지, 무슨 ‘공부 작업’인가요. 서울대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공부를 ‘작업’으로 여기면서 할는지요? 게다가 이 보기글을 살피면 “공부하는 작업”은 “흥미로운 일”이라고 적습니다. ‘작업’과 ‘일’을 잇달아 적습니다. 아직 철이 덜 든 대학생이기에 한국말을 아직 제대로 쓸 줄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4339.6.5.달/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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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넓히고자 하는 이한테 역사 공부는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식의‘지평(地平)’이라 했는데 ‘지평’은 어떤 뜻으로 쓰는 말일까요? 한국말사전 뜻풀이를 보니, “사물의 전망이나 가능성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나오는데, ‘테두리·너비·깊이’를 가리키지 싶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냥 “지식을 넓히고자 하는”이라 해도 되겠어요. ‘자(者)’는 ‘사람’이나 ‘이’로 다듬는데, 보기글에서는 ‘학생’으로 다듬어도 됩니다. ‘흥미(興味)로운’은 ‘재미있는’이나 ‘즐거운’이나 ‘신나는‘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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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1) 작업 5 : 벼 수확 작업


벼 수확 작업이 끝나 내가 사는 마을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후루노 다카오/홍순명 옮김-백성백작》(그물코,2006) 86쪽


 벼 수확 작업

→ 벼베기

→ 가을걷이

→ 가을 일

 …



  요즘은 ‘가을걷이’라 안 하고 ‘벼 수확 작업’이라 할까요? 어쩌면 공무원이나 학자들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이들은 예부터 ‘벼베기’라 했고 ‘가을걷이’라 했습니다. 벼를 베니까 ‘벼베기’요, 가을에 거두어들이니까 ‘가을걷이’입니다. 수수하게 가리키는 말이며, 투박하게 쓰는 말입니다. 시골에서 ‘벼베기·가을걷이’가 아닌 ‘벼 수확 작업’ 같은 말을 쓴다면, 시골 삶도 그예 무너져 버렸다고 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은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겼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일본사람은 ‘作業’이라는 한자말을 빌어 ‘벼베기’를 나타내는 듯합니다. 한국사람이 이곳저곳에 쓰는 온갖 ‘작업’은 일본사람이 쓰던 일본말에서 비롯했구나 싶습니다. 4339.8.31.나무/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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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베기가 끝나 내가 사는 마을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수확(收穫)’은 ‘거두어들이다’를 그대로 한자말로 옮긴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한테는 ‘거두어들이다’ 한 마디면 넉넉한 셈이에요. 보기글에서는 “벼를 거두어들이는 일”을 단출하게 갈무리해서 ‘벼베기’나 ‘가을걷이’로 적을 수 있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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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2) 원형


나머지 우리들은 원형 식탁을 깨끗하게 치운 다음, 그 위에 하얀 유리잔을 올리고, 카드놀이할 준비를 마쳤다

《주디 카라시크(글),폴 카라시크(그림)/권경희(옮김)-함께 살아가기》(양철북,2004) 66쪽


 원형 식탁

→ 둥근 밥상

→ 둥그런 밥상

 …



  모두 다섯 가지로 실린 한자말 ‘원형’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元型)와 둘째(元型)는 학문 하는 분이 즐겨씁니다. ‘옛 모습’이나 ‘첫 모습’이나 ‘밑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셋째(原型) 낱말은 말뜻과 말쓰임 그대로 ‘바탕’이나 ‘밑바탕’을 가리킵니다. 넷째 낱말은 조선 시대에 썼을까 싶은 말이나, 이제는 안 쓰이는 말입니다. 다섯째 낱말은 ‘둥근’ 모양을 가리킵니다.


  다섯 가지 낱말을 죽 살피면, ‘이런저런 모습이나 모양을 가리키’되, 한자로 옮기기만 할 뿐입니다. ‘이런저런 모습이나 모양’ 그대로 적거나 쓰지 않습니다.


 원형 무대 → 둥그런 무대 / 동그란 무대

 원형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형의 물레 → 동그란 물레


  한자말이건 한자말이 아니건, ‘원형’이라는 낱말이 우리가 넉넉히 쓸 만하다 싶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따로 가리키는 낱말이 있고 나타내는 낱말이 있으며 쓰는 낱말이 있는데, 그저 한자로 옮겨 놓았을 뿐인 낱말 ‘원형’이라 한다면, 이와 같은 낱말들을 쓸 까닭은 굳이 없다고 봅니다.


  ‘옛 모습, 바탕, 뿌리, 동그랗다’ 같은 낱말로 넉넉합니다. ‘첫 모습, 밑바탕, 밑뿌리, 둥글다’ 같은 낱말로 알뜰합니다. 4341.7.29.불/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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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우리들은 둥근 밥상을 깨끗하게 치운 다음, 밥상에 하얀 유리잔을 올리고, 카드놀이 준비를 마쳤다


‘식탁(食卓)’은 ‘밥상’으로 고칩니다. “그 위에”는 “밥상에”로 손질합니다.



 원형(元型/原型) : 본능과 함께 유전적으로 갖추어지며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는 보편적 상징

 원형(元型) : 발생 면에서의 유사성에 의하여 추상된 유형

 원형(原型)

  (1) 같거나 비슷한 여러 개가 만들어져 나온 본바탕

   - 이 건축물은 후대 건축물의 원형이 되었다

  (2) 옷감을 잘라 양복을 만들 때 그 밑그림의 바탕이 되는 본(本)

  (3) 여러 종류의 동식물 가운데 현존하는 생물의 근원으로 생각되는 모델

  (4) 문예에서, 본보기인 성격을 만들어 낼 때 의지하는 실재의 인물

 원형(?刑) :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받는 억울한 형벌

 원형(圓形) : 둥근 모양

   - 원형 무대 / 원형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철마 / 원형의 물레를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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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4) 녹음


계절의 여왕 5월은 다 지나고 어느덧 녹음의 계절 6월이 되었다 라는 라디오 소리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순-제3의 여성》(어문각,1983) 163쪽


 녹음의 계절 6월

→ 푸른 6월

→ 푸른 철 6월

→ 푸른 잎이 우거지는 6월

→ 푸른 빛이 가득한 6월

→ 풀빛이 고운 6월

 …



  한국말사전에는 세 가지 ‘녹음’이 나옵니다. 첫째는 한국말입니다. 물에 녹는다고 할 적에 ‘녹다’를 이름씨 꼴로 바꾼 ‘녹음’입니다. 그런데, ‘녹음 = 융해’로 풀이를 하는군요. ‘융해’란 무엇일까요? 한국말사전을 다시 뒤적이니, ‘융해(融解)’는 “녹아 풀어짐”을 뜻한대요. 아, 그렇구나. 그러면, 또 ‘녹다’는 무엇일까요? ‘녹음’을 ‘융해’로 풀이하고, ‘융해’는 ‘녹음(녹다)’으로 풀이하는 한국말사전입니다.


 녹음이 우거지다

→ 숲이 우거지다

→ 나무가 우거지다

→ 숲그늘이 우거지다

→ 숲빛이 푸르게 우거지다

 녹음이 짙다

→ 아주 푸르다

→ 숲그늘이 짙다

→ 숲빛이 짙푸르다


  한자말 ‘錄音’은 ‘소리 담기’를 뜻합니다. 소리를 담는대서 한자를 빌어 ‘녹음’으로 적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소리를 담으니 ‘소리담기’를 붙여서 한 낱말로 쓸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아니, 한 낱말로 쓸 수 있어야 할 테지요.


  “여러 번 녹음을 하다”가 아니라 “여러 번 소리를 담다”입니다. “녹음이 잘되어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가 아니라 “소리를 잘 담아서 또렷하게 들렸다”입니다.


  푸르게 빛나는 숲빛을 마음으로 그립니다. 즐거우면서 살가이 담아서 나누는 소리를 마음으로 떠올립니다. 숲도 나무도 소리도 모두 아름다운 결입니다. 4338.6.26.해/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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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5월은 다 지나고 어느덧 짙푸른 6월이 되었다 하고 나오는 라디오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계절(季節)의 여왕(女王)” 같은 말을 누가 언제부터 썼을까요. 사이에 ‘-의’를 넣어 “무엇의 무엇”처럼 쓰는 말투는 모두 일본 말투입니다.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한테 아주 익숙하다 싶은 “계절의 여왕”일는지 모르나, 우리는 한국사람답게 한국 말투로 새로운 빛을 담는 말마디를 지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여왕과 같은 철이란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철”일 테지요. 그래서, 뒤따르는 “녹음의 계절”도 “푸른 철”이나 “짙푸른 철”로 다듬습니다. “되었다 라는 라디오 소리”는 “되었다고 하는 라디오 소리”나 “되었다 하고 나오는 라디오”로 손봅니다.



 녹음 = 융해

 녹음(綠陰) :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나 수풀. 또는 그 나무의 그늘

  - 녹음의 계절 / 녹음이 우거지다 / 녹음이 짙다

 녹음(錄音) : 테이프나 판 또는 영화 필름 따위에 소리를 기록함

  - 여러 번 녹음을 하다 / 녹음이 잘되어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44) 사복


이 회사의 파트너로는 모건-록펠러연합에 속한 포토맥전력의 사장과 내셔널저축트러스트은행의 사장 등 쟁쟁한 멤버들이 참여하고 있었으며, 후버 자신도 월가의 투기가로서 사복을 채우고 있었다

《히로세 다카시/이규원 옮김-제1권력 :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프로메테우스 출판사,2010) 131쪽


 사복을 채우고

→ 제 뱃속을 채우고

→ 뱃속을 채우고

→ 밥그릇을 채우고

→ 제 밥그릇을 채우고

  …



  모두 아홉 가지가 있다는 한자말 ‘사복’인데, ‘私卜’이나 ‘私僕’이나 ‘思服’이나 ‘射覆’ 같은 한자말을 쓸 일은 아예 없으리라 느낍니다. ‘蛇福’은 “신라 진평왕 때의 이인(異人)”이라는데, 외국사람 이름을 한자로 적은 이런 낱말을 왜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嗣服’ 같은 한자말도 먼 옛날 권력자나 양반이 아니면 쓸 일이 없던 낱말입니다. 이런 한자말은 한국말사전에서 덜어야 마땅합니다. 한국말사전은 한자사전이나 옥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백성들을 침탈하여 자기의 사복을 채웠으니

→ 백성들을 괴롭혀 제 밥그릇을 채웠으니

→ 사람들을 들볶아 제 뱃속을 채웠으니

→ 사람들을 짓밟아 제 주머니를 채웠으니


  “제복이 아닌 옷”을 두고 ‘私服’이라고 한답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에 스며들었습니다. 한겨레는 먼먼 옛날이건 오늘날이건 ‘제복·사복’이 따로 없습니다. 그저 ‘옷’일 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받아들인 서양 문화’에 맞추어 일본 제국주의자가 한국에 군국주의를 심으려 할 적에 ‘제복(군복)’과 ‘사복’을 나누었습니다. 이 아픈 생채기가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가시지 않았기에 이런 한자말을 아직 털어내지 못했습니다.


  ‘사복’이란 어떤 옷일까요? 우리가 늘 입는 옷이 ‘사복’일 테지요. 그러면, 옷이란 옷인데, 왜 옷을 ‘옷’이라 않고 ‘私服’이라 해야 할까요? 굳이 두 갈래로 옷을 갈라야 한다면 가를 수도 있습니다.


  바깥밥과 집밥을 가르듯이, ‘바깥옷’과 ‘집옷’이라 하면 돼요. 바깥에서 일하면서 입는 옷이라면, 예부터 ‘일옷’이라는 낱말을 쓰기도 했어요. ‘제복’이라면 ‘일옷’인 셈이요, ‘사복’이라면 ‘집옷’인 셈입니다. 4347.8.15.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회사 단짝으로는 모건-록펠러연합인 포토맥전력 사장과 내셔널저축트러스트은행 사장 같은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으며, 후버 스스로도 월가에서 투기가로서 제 뱃속을 채웠다


“이 회사의 파트너(partner)로는”은 “이 회사 단짝으로는”으로 손보고, “연합에 속(屬)한”은 “연합에 딸린”이나 “연합인”으로 손보며, “포토맥전력의 사장”은 “포토맥전력 사장”으로 손봅니다. ‘등(等)’은 ‘같은’으로 손질하고, “쟁쟁(錚錚)한 멤버(member)들이 참여(參與)하고 있었으며”는 “대단한 사람들이 있었으며”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으며”로 손질하며, “후버 자신(自身)도”는 “후버 스스로도”로 손질합니다. “채우고 있었다”는 “채웠다”로 다듬습니다.



 사복(司僕) : [역사] = 사복시

 사복(私卜) : 개인의 짐

 사복(私服)

  (1) 관복이나 제복이 아닌 사사로이 입는 옷

   - 사복 경찰 / 사복 차림 / 사복 근무

  (2) = 사복형사

   - 세 명의 사복이 달려들었던 것이다

 사복(私腹) :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이나 욕심

   - 백성들을 침탈하여 자기의 사복을 채웠으니

 사복(私僕) : 예전에, 세도가가 사사로이 부리던 일꾼

 사복(思服) : 늘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둠

 사복(射覆) : 그릇 속에 숨겨 둔 것이 무엇인지 알아맞힘

 사복(蛇福) : [문학] 신라 진평왕 때의 이인(異人)

 사복(嗣服) : 예전에, 선대의 위업을 계승하거나 왕위를 물려받던 일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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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소리 1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61



새하얀 소리는 해맑은 삶노래

― 순백의 소리 1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12.25.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가 흐릅니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소리가 흩날립니다. 흔히들 빗소리는 들어도 눈소리는 못 듣는다고 하지만, 눈이 오는 날에도 소리가 흐릅니다. 갑자기 고요한 기운이 돌면서 소복소복 톡톡 하는 소리가 납니다. 자동차가 끊임없이 드나들고 온갖 기계가 끝없이 움직이는 도시에서는 눈소리를 듣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나 눈이 펑펑 내려 자동차를 멈추게 하고 기계도 멈춘다면, 바야흐로 눈소리가 어떠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겨울에 눈이랑 즐겁게 노는 아이들은 아직 눈이 쌓이지 않았을 적에도 눈소리를 듣고는 눈을 번쩍 뜨면서 창밖을 내다봅니다.



- ‘조금만 더 버티면 봄이었는데.’ (5쪽)

- “지금, 내 안은 텅 비었거든. 그래서 뭔가를 얻을라고 찾아 헤매는 듯한 느낌이데이.” (23쪽)

- “츠가루. 츠가루샤미센.” “아아, 요시다 형제나 아가츠마 같은? 하긴, 요즘 유행이니까.” “유행? 정식으로 하는 사람은 유행 같은 거 상관 안 한데이/” (33쪽)




  모기가 날며 애앵애앵 날갯소리를 냅니다. 파리가 날 적에도 날갯소리를 냅니다. 벌도 날갯소리를 내요. 그러면, 나비는 어떠할까요. 나비가 날면서 내는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겠어요? 잠자리나 개똥벌레는 어떠할까요. 이들 날벌레가 하늘을 가르는 소리를 헤아릴 수 있겠어요?


  요즈음에는 전문직업으로 노래를 하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어떤 이는 ‘절대음감’이라고도 합니다. 평론을 하든 심사를 하든, ‘가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주 자그마한 소리까지도 알아채거나 살피는 듯합니다.


  그러면, 이들 평론가나 심사자는 ‘가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라든지 ‘가수인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뿐 아니라, 바람이 풀잎과 나뭇잎을 간질이는 소리라든지, 풀벌레가 풀잎에 내려앉는 소리라든지,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는 소리라든지, 매미가 허물을 벗는 소리라든지, 나비가 꿀과 꽃가루를 빨아먹는 소리를 얼마나 알아차리거나 헤아릴 수 있을까요.



- “때리는 것도 모자라서, 악기까지 상하게 할 셈이야?” (16쪽)

- “유나 씨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데.” (44쪽)

- “타케토. 너는 정말 밴댕이 소갈딱지구나? 너는 음악을 할 자격이 없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 사진은 뭐냐? 어떻게 악기를 다루는 팔을 짓밟을 수 있어?” (82∼83쪽)





  시골에서 할매나 할배는 ‘호미질 하는 소리’나 ‘낫질 하는 소리’만 듣고도, 호미나 낫을 쥔 사람이 어떤 마음이요 몸인가를 느낍니다. 지겨워 하는 빛인지 즐거워 하는 빛인지 곧바로 알아채거나 느낍니다. 공책에 연필로 글을 쓰는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면서, 지겨운 숙제를 하는지 즐겁게 글빛을 가꾸는지, 이런 소리로 마음빛을 헤아릴 수 있는 어른이나 어버이가 있습니다.


  설거지를 하며 내는 소리를 듣고는 어떤 삶빛이 흐르는가를 읽을 수 있어요. 처마를 따라 똑똑 또는 줄줄 흐르는 물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날씨가 어떠한가를 읽을 수 있어요. 하늘 따라 흐르는 구름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귀여겨듣는다면 하루 날씨뿐 아니라 며칠 동안 어떤 날씨가 될는지 읽을 수 있어요.


  동이 트면서 해가 저 멧등성이 너머로 올라올 적에도 소리를 듣습니다. 빛과 볕만 느끼지 않아요. 소리가 함께 있습니다. 바닷물이나 냇물이 찰랑거릴 때 물결소리만 있지 않아요. 물내음과 물빛이 함께 있습니다.



- ‘내는 말이제, 봄이 좋다. 하지만도, 겨울이 싫은 건 아니데이. 츠가루의 겨울은 얼어붙을 만큼 춥지만, 해님이 나와서 조금씩 눈을 녹이면, 소리가 변하제. 여름도 가을도 똑같은 기라. 계절마다 소리가 변하니까네. 그 소리를 언제든지 낼 수 있으면 행복한 기라.’ (88∼90쪽)

- “내는 내가 좋아서 켜는 것 외에는 관심 없다!” (149쪽)





  라가와 마리모 님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2) 첫째 권을 읽으면서 눈과 귀와 살갗이 모두 즐겁습니다. ‘새하얀 소리’란 무엇일는지 가만히 헤아리면서 즐겁습니다. ‘해맑은 소리’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짚으면서 즐겁습니다.


  오래된 악기 하나를 켤 줄 알기에 남다른 소리가 흐르지는 않습니다. 서양 악기를 켜든 한국 악기를 켜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마음을 담아 켜는 악기일 때에 비로소 대수롭고 아름다우면서 즐겁습니다.



-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기다. ‘소리’를 줄이면 안 된데이.” (160쪽)

- “연주의 우열은 뭘로 정해지노? 아무리 곡에 감정을 실어도, 서투른 건 서투른 기다.” ‘‘할배’의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할배’의 소리가 없어졌다는 건, 길러 준 부모와 스승을 동시에 잃었다는 뜻이다. 우리 형제는 똑같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180∼181쪽)





  악기를 타면서 ‘소리를 줄일’ 까닭이 없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밥맛을 줄일’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면서 ‘사랑을 줄일’ 까닭이 없습니다. 삶은 늘 그대로 나아갑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빛이 되어 누리는 삶이기에 나 스스로 아름다우면서 즐겁고, 내 둘레 이웃과 동무한테도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가수가 되어야 노래를 하지 않아요. 요리사가 되어야 밥을 짓지 않아요. 재단사가 되어야 옷을 짓지 않아요. 작가가 되어야 글을 쓰지 않아요. 사진가가 되어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언제나 스스로 삶으로 짓고 가꾸는 노래입니다.



- “연주의 우열 말이다. 내는 기준 같은 거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수많은 샤미센이 울려도 형의 소리를 알 수 있데이.” (184쪽)



  한국에서 꼭 가야금을 타거나 거문고를 뜯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이 나와야 하지는 않습니다. 대금이나 소금이나 풀피리를 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이 꼭 한국에서 나와야 하지 않습니다. 다만, 빛을 노래하고 들으면서 삶을 가꾸는 따사롭고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태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만화책 《순백의 소리》는 아주 아리땁습니다.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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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87. 2014.7.28. 바람이랑 둘이 책



  누나 바람이에 드러누워 두 아이가 만화책 하나를 들여다본다. 누나 바람에 둘이 함께 누워 만화책 하나를 킬킬거리면서 들여다본다. 모름지기 삶이란 놀이요, 책은 아름답게 놀던 삶으로 빚는 사랑스러운 이야기이다. 그러니, 두 아이가 마룻바닥에 바람이를 놓고는 즐겁게 책놀이를 하는 삶이란 참으로 예쁜 빛이 흐르는 노래라 할 만할 테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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