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나무 가랑잎과



  마당에 놓은 평상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다가 후박나무 가랑잎을 하나 만납니다. 후박나무 가랑잎은 내 그림 한복판에 톡 떨어집니다. 문득 후박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나한테 찾아왔니. 내 마음에 어떤 빛이 흘러서 나한테 왔니. 쓸쓸한 빛이나 고단한 빛을 느껴서 나한테 왔니.


  그림을 그리다가 멈추고 가랑잎을 바라봅니다. 바람이 불 때에 살짝 흔들리면서 그림종이에 그대로 머무는 가랑잎을 바라봅니다.


  나무에 달린 나뭇잎을 보면, 똑같이 생긴 나뭇잎은 없습니다. 푸른 빛깔이 사라지고 누렇게 마른 가랑잎을 보아도, 똑같이 생긴 가랑잎은 없습니다.


  지구별에 수십 억에 이르는 사람이 있다는데, 다 다른 사람입니다. 다 다른 넋이고, 다 다른 숨결입니다. 나무 한 그루에 수천 수만 수십만 잎이 있는데 참말 다 다릅니다. 우람한 나무 몇 그루라면 수십억 잎이라고 할 만한데, 참으로 모두 다른 잎입니다. 떡갈잎이라든지 느티잎이라든지 은행잎이라든지, 똑같은 잎이 없습니다. 논에 심은 벼포기도 똑같지 않습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콩이라 하더라도, 새싹 모습부터 줄기와 잎사귀 모습까지 모두 다르고, 땅밑에 내리는 뿌리도 모두 달라요.


  이웃이 모두 다른 넋인 사람인 줄 알 수 있다면, 나는 나 스스로 어떤 넋인 줄 알 수 있을까요.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숨결인 줄 바라볼 수 있으면, 나는 나 스스로 어떤 숨결인 줄 바라볼 수 있을까요. 한참 동안 후박잎을 보다가 다시 크레파스를 손에 쥡니다. 4347.8.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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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한국말사전 1 (2014.8.16.)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한창 쓴다. 출판사에서 새 원고를 받아들일는지 손사래를 칠는지 모르지만, 한자말을 한국말로 번역하자는 이야기를 담은 글꾸러미를 마무리지어서 보냈다. 모든 길이 사랑스레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널찍한 나무판을 평상에 깐다. 늦여름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등줄기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림을 그린다. ‘한국말사전’이 곱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뜻을 그림에 담기로 한다. 다섯 글자를 쓰고 난 뒤, 글자마다 별꽃으로 둘러싼다. 사마귀, 제비, 나비, 잠자리를 하늘빛으로 그린다. 이 다음으로 무엇을 그릴까 하고 생각하는데, 문득 후박나무 가랑잎이 그림종이에 톡 떨어진다. 그렇구나. 끄트머리가 벌레를 먹은 후박잎을 그린다. 후박잎 안쪽을 채우고 나서 사랑(하트)을 그린다. 사랑 곁에는 숲(별)을 그린다. 새로운 한국말사전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여는 첫 밑돌이 되기를 바라면서 ‘하나(1)’를 그린다. 두 글자에 노란 꽃과 빨간 꽃을 그린다. 무지개 물결이 치고 별비가 내리는 데까지 그리는데, 뒤꼍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뭔가? 다시 그림을 그리려는데 아무래도 사람 소리이다. 누가 우리 집에 함부로 들어왔나 싶어 가 보니, 우리 집과 돌울타리 사이로 고추밭을 일구는 면소재지 아저씨가 우리 집 돌울타리를 따라 돋은 무화과나무를 낫으로 벤다. 뭐 하는 짓인가? “뭐하세요?” 한 마디 여쭌다. 우리 집 돌울타리가 무화과나무 때문에 아래쪽으로 무너져 떨어졌단다. 무화과나무 때문이 아니거든요? 예전부터 다 바닥에 있던 돌이거든요? 짜증을 내지 말자고 생각하며, 울타리에서 그 아저씨네 밭으로 고개를 내민 무화과나무를 모조리 손으로 꺾는다. 무화과나무는 벤들 자른들 죽지 않는다. 외려 더 줄기가 힘차게 뻗는다. 저희 집 나무도 아니면서 함부로 낫으로 베는 이런 사람이 우리 집이든 뒤꼍이든 함부로 못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맨손으로 척척 무화과를 꺾는다. 무화과한테 마음속으로 말한다. ‘얘들아, 괜찮아. 그런데 이웃집 밭으로 고개를 내밀지 말고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어야지.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으면 너희는 모두 살 수 있어. 사나운 곳에 가지 말자. 예쁜 곳에서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란다.’ 무화과나무 쉰 그루 남짓 꺾었다. 그러나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은 아이들은 모두 살렸다. 마음이 아파 그림을 마무리짓지 않고 이튿날 마무리짓기로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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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35. 좋아하는 대로 찍지



  종이접기를 하는 아이들은 가장 접고 싶은 모양을 찾아서 접습니다. 아이들은 종이접기에 눈을 뜰 적에 ‘이것부터 접’거나 ‘저것부터 접’는 틀을 따르지 않습니다. 종이접기책을 주루룩 넘기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모양을 접으려 합니다. 아직 종이접기를 해 보지 않았기에 무척 어렵다 싶은 접기를 해야 하지만 그냥 접으려 합니다. 하나를 접느라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하나를 접으려고 며칠이 걸리기도 하며, 참말 하나를 접기까지 몇 해가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만두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가장 접고 싶은 모양을 바라보면서 생각하고 손을 놀립니다. 아이들 스스로 가장 접고 싶은 모양을 이루려고 머리를 쓰며 온힘을 쏟습니다.


  나는 우리 집 큰아이가 종이접기를 하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봅니다. 큰아이는 퍽 어려운 종이접기를 놓고 참말 여러 해에 걸쳐 끈질기게 붙잡은 끝에 비로소 해냅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어렵다 싶은 종이접기를 척척 해냅니다. 하나에서 실마리를 얻어 차츰 다른 길을 스스로 엽니다. 이 아이는 올해(2014년)에 일곱 살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빛을 열고 그림자를 엽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빛깔을 열고 무늬를 엽니다. 남이 열어 주지 않습니다. 남이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열고 스스로 누리며 스스로 나눕니다.


  사랑을 남이 가르칠 수 없습니다. 스스로 깨달을 때에 사랑입니다. 꿈을 남이 이루어 줄 수 있을까요? 꿈 또한 언제나 스스로 이룹니다. 바닷물도 골짝물도 스스로 몸을 담가야 바닷물이 얼마나 짜고 골짝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종이접기를 하는 아이들 마음은 ‘좋아하는 길을 간다’입니다. 사진찍기를 하는 사람들 마음이라면? 아주 마땅히,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간다’예요. 사진을 읽을 적에도, 책을 읽을 적에도, 풀맛과 밥맛을 읽을 적에도, 하늘빛과 날씨를 읽을 적에도, 흙내음과 숲노래를 읽을 적에도, 언제나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살피면서 읽습니다. 좋아하는 대로 찍을 때에 사진이 태어납니다. 좋아하는 대로 찍기에 두고두고 남으면서 오래오래 마음에 살포시 담는 이야기가 자랍니다. 4347.8.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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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34. 사진이란 마음에 담는 눈물



  사진이란 마음에 담는 눈물입니다. 왜냐하면, 사진을 마음에 담는 눈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이란 마음에 담는 웃음입니다. 왜냐하면, 사진을 마음에 담는 웃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사진빛이 다릅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사진은 이러합니다. 내가 저렇게 생각한다면 사진은 저러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알고 싶다면 내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을 모르고서야 사진을 알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따라 늘 새롭게 달라지는 사진인 만큼, 내 마음을 뚜렷하게 살피고 바라보면서 느낄 때에, 비로소 사진을 이룹니다.


  사진기를 처음 손에 쥐든, 사진기를 손에 쥔 지 아주 오래 되든 늘 같습니다.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사진기를 처음 손에 쥐더라도 ‘스스로 찍고 싶은 사진’을 마음으로 느끼니, 찍고 싶은 사진을 언제나 즐겁게 찍습니다.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사진기를 아주 오래 쥐었어도 ‘스스로 찍고 싶은 사진’을 마음으로 못 느끼니, 필름이나 디지털파일을 아주 많이 다루었어도, 찍고 싶은 사진이 아니라 남한테 보여주는 ‘그림 같은 작품’만 언제나 쫓기듯이 찍습니다.


  나는 사진을 이렇게 느낍니다. 어느 때에는 마음에 담는 눈물로 느낍니다. 그래서, 사진 한 장을 찍다가 참말 눈물이 눈가를 타고 주르르 흘러 볼을 지나 턱에서 또롱 방울이 지면서 땅바닥으로 톡 떨어집니다. 어느 때에는 마음에 담는 웃음으로 느끼기에, 사진 한 장을 찍는 동안 참은 웃음이 단추를 찰칵 누르고 나서 깔깔깔깔 터져서 한동안 사진기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배를 잡느라 외려 또 눈물이 나옵니다.


  마음을 읽으면 됩니다. 사진이론이나 사진교본이 아닌 마음을 읽으면 됩니다. 글을 쓰고 싶을 적에도 문학이론이나 글쓰기 강좌 같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을 적에도 그렇지요. 내 마음에 따라 노래를 부르는 만큼, 내 마음을 알아야 노래를 불러요. 남이 듣기 좋으라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내 마음을 적시고 북돋우면서 가꾸는 노래이듯이, 내 삶을 가꾸고 사랑하면서 아끼려고 찍는 사진 한 장입니다. 4347.8.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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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코끼리 란디와 별이 된 소년
사카모토 사유리 지음, 정유선 옮김 / 페이지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별이 된 소년

星になった少年, Shining Boy And Little Randy, 2005



  코끼리가 어떤 마음인지 듣거나 읽을 수 있는가. 나비가 어떤 마음인지 보거나 들을 수 있는가. 제비가 어떤 마음인지 읽거나 볼 수 있는가. 그러면, 내 이웃과 동무로 지내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헤아릴 수 있는가.


  지구별에서 모든 아이들은 가슴속에 파란 별을 안고 태어난다. 이 파란 별을 곱게 건사하면서 제 길을 환하게 밝히는 아이들이 있으나, 이 파란 별을 깨우지 못한 채 안타까이 쳇바퀴를 돌다가 그만 죽고 마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날 흐름을 보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가슴속에 있는 파란 별을 느끼지도 보지도 헤아리지도 알지도 못하는 채 입시지옥에서 허덕인다. 무엇이 대수로운 일이 될까? 이튿날 치를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일이 대수로운가? 내가 가꾸고 싶은 꿈으로 나아가는 일이 대수로운가? 어쨌든 초·중·고등학교 졸업장만큼은 가져야 하는가? 적어도 대학교 졸업장쯤은 거머쥐어야 하는가? 초등학교 졸업장을 안 가지면 사람답게 못 사는가? 대학교 졸업장을 못 가지면 사랑다운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가?


  누구나 처음부터 별이었기에, 스스로 어떤 숨결인지 느낄 수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늘 빛난다. 누구나 처음부터 별이었지만, 스스로 어떤 숨결인지 느끼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남이 시키는 대로 굴레에 갇혀 쳇바퀴질을 할밖에 없다.


  쳇바퀴질로는 빛나지 않는다. 쳇바퀴질은 스스로 되풀이하면서 갇히는 굴레이자 수렁이다.


  파란 별을 가슴속에서 깨우지 않으면 웃음도 노래도 없다. 파란 별을 가슴속에서 불러내지 않으면 이야기도 사랑도 없다. 우리 삶이 따분하다면 스스로 가슴속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삶이 쓸쓸하다면 이웃과 동무 가슴속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씨앗이 싹틀 수 있기를 빈다. 씨앗이 싹을 틔워 자랄 수 있기를 빈다.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새로운 씨앗을 맺을 수 있기를 빈다. 저마다 별인 아이들이 그예 환하면서 눈부신 별로 온누리를 비출 수 있기를 빈다. 다 다른 별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너른 미리내를 이루고 깊은 숨소리가 될 수 있기를 빈다. 코끼리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들은 아이는 코끼리와 함께 스스로 별이 된다. 영화 〈별이 된 소년〉에 나오는 아이는 중학교를 그만두고 태국으로 가서 ‘코끼리 조련사’가 되었다는데, 이 아이는 ‘조련사’가 되지 않았다. 코끼리하고 ‘동무’가 되고 ‘이웃’이 되었고, 코끼리와 함께 스스로 ‘별’이 되었다. 4347.8.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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