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이서 함께 보는 영화



  시골 고흥에는 극장이 없기도 해서 영화를 함께 보러 나들이를 갈 수 없기도 하지만, 요즈음 한국 극장에 걸리는 영화치고 일곱 살 어린이와 네 살 어린이가 함께 가서 볼 만한 작품이 있는지 잘 모르기도 한다.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영화란, 맑으면서 밝은 영화란, 착하면서 참다운 영화란, 이야기가 흐르면서 노래가 넘실거리는 영화란, 한국에서 얼마나 될까. 따사로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오순도순 마을살이를 꿈꾸는 영화를 빚어서 선보이려는 영화감독과 영화배우는 얼마나 있을까.


  시골집에서는 셈틀을 켜서 넷이서 함께 영화를 본다. 두 아이와 함께 보면서 어버이로서 마음속에 이야기꽃이 피어나도록 북돋울 만한 영화를 고른다. 두 아이뿐 아니라 두 어버이 가슴속에 이야기빛이 자라서 삶에 무지개가 드리운 뒤, 차근차근 새로운 길을 열도록 이끌 만한 영화를 살핀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는 어떤 영화를 아이와 함께 볼 수 있을까? 이 나라 방송국에서 흐르는 온갖 연속극이나 운동경기와 연예인 풀그림 들은 얼마나 아이한테 보여줄 만할까? 이 나라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흐르는 온갖 대중노래는 얼마나 아이한테 들려줄 만할까? 일본영화 〈별이 된 소년〉을 넷이서 함께 보기 앞서 생각에 잠긴다. 4347.8.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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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59] 좋고 싫음



  비가 오니 푸나무 노래

  해가 뜨니 푸나무 웃음

  달이 뜨니 푸나무 단잠



  삶에 좋거나 나쁜 일은 없다고 참으로 날마다 느낍니다. 삶은 그예 삶일 뿐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내 삶에 찾아오고, 저러한 모습이 내 삶에 드리웁니다. 숱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온갖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이 거듭납니다. 삶은 아름다운 빛이면서 그윽한 그림자입니다. 삶은 밝은 노래이면서 고즈넉한 단잠입니다. 삶은 씩씩하게 걷는 길이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두레입니다. 4347.8.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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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책읽기



  내 어릴 적에 국민학교 동무들끼리 ‘바보’를 “바다 보배”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누구를 ‘바보’라고 놀리면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덜 떨어진 사람”이라고 놀리려고 누군가 ‘바보’라 말하더라도, 나 스스로 “바다 보배”라고 여기면, 참말 나는 바다에서 보배가 되고, 바다를 가꾸는 보배가 되며, 바다를 밝히는 보배가 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바보’이기에 ‘바라보기’를 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바보’는 ‘바로보기’를 할 수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참 그렇구나 싶기도 해요. 바다를 가꾸는 보배와 같은 노릇은 똑똑하다는 이들은 안 해요. 다들 도시로만 가니까요. 바라보기는 똑똑하다는 이들은 안 해요. 똑똑하다는 이들은 아주 바빠서 도시에서 돈을 벌기만 하거든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가만히 바라보면서 생각에 젖는 사람은 오직 바보뿐 아닌가 싶어요. 어디에서나 바로보려고 하는 사람은 바보뿐이지 싶어요. 왜냐하면, 바보는 하루를 온통 스스로 누리거든요. 똑똑한 사람은 돈을 벌거나 이름값을 거머쥐거나 힘을 부리고 싶어서, ‘남이 시키는 일’을 곧잘 해요. 제 몸을 스스로 쳇바퀴 틀에 맞추어요. 게다가, 돈과 이름과 힘이 있는 무리에서는 똑똑하다는 이들을 데려가서 일을 부리거나 시키려 하지요. 똑똑하다는 사람은 으레 허수아비나 꼭둑각시 노릇을 합니다.


  이와 달리, 바보라고 하는 이한테 일을 시키려는 부자나 권력자는 드뭅니다. 어쩌다 일을 시켜도 허드렛일을 시키고, 잘 되리라 바라지 않기 마련입니다. 바보는 언제나 홀가분하게 제 삶을 누려요. 둘레를 느긋하게 살펴봅니다. 둘레를 넉넉하게 돌아봅니다. 둘레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바보인가, 바보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면, 나는 내 삶을 바라보는가 바로보는가, 또는 나 스스로 보배와 같은 숨결인가 아닌가 하고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4347.8.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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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194 : 농로農路



베아트릭스가 힐 탑을 구입했을 때는 현관 맞은편 농로農路 건너에 돌담을 두른 작은 채마밭이 유일한 정원이었다

《수전 데니어/강수정 옮김-베아트릭스 포터의 집》(갈라파고스,2010) 138쪽


 농로農路 건너

→ 마을길 건너

→ 시골길 건너

→ 들길 건너

→ 고샅 건너

 …



  한자말 ‘농로(農路)’는 “농사에 이용되는 길”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 뜻풀이를 더 보면, “농가와 경지 사이 또는 경지와 경지 사이를 연결하여, 사람이나 차량이 다니고 비료나 수확물 따위를 운반하는 길을 이른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에는 ‘농도(農道)’라는 한자말도 나옵니다. ‘농로’와 ‘농도’는 똑같은 낱말이라고 합니다.


  보기글을 찬찬히 읽습니다. 시골마을에 있는 어느 집 앞으로 ‘농로’가 있다 하고, 이 길 건너에 돌담을 두른 밭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길은 마을 한복판에 있습니다. 이때에는 ‘마을길’이라 할 만하겠지요. 숲과 들과 논밭이 있는 마을이라면 시골이기에 ‘시골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 들이 펼쳐지면, ‘들길’입니다. 그리고, 마을에 놓아 집과 밭 사이를 잇는 조그마한 길이라 한다면 ‘고샅’입니다.


 농로를 닦다

→ 들길을 닦다

→ 마을길을 닦다

 농로를 정비하다

→ 시골길을 손질하다

→ 고샅을 손보다


  길이기에 ‘길’이라 합니다. 길이 밭과 밭 사이에 있으면 ‘밭길’이라 하면 됩니다. 논과 논 사이에 있는 길은 ‘논길’이 될 테지요. 마을에서는 ‘고샅’이고, 동네에서는 ‘골목’입니다. 시골에서는 으레 ‘시골길’이라 하는데, 도시에서는 그냥 ‘길’이거나 ‘찻길’이 됩니다. 4347.8.18.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베아트릭스가 힐 탑을 장만했을 때는 이 집 맞은편 고샅 건너에 돌담을 두른 작은 남새밭이 꼭 하나 있는 뜰이었다


‘구입(購入)했을’은 ‘장만했을’이나 ‘마련했을’로 다듬고, 일본 한자말 ‘현관(玄關)’은 ‘문간’으로 다듬습니다. “현관 맞은편”은 “집 맞은편”이나 “이 집 맞은편”으로 더 다듬을 수 있습니다. ‘채마(菜麻)밭’은 ‘남새밭’이나 ‘텃밭’으로 손질하고, “유일(唯一)한 정원(庭園)이었다”는 “꼭 하나 있는 뜰”이나 “딱 하나 있는 뜰”이나 “오직 하나 있는 꽃밭”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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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벼꽃에 빗물



  벼꽃이 핀다. 그런데 비가 온다. 지난해에는 비가 없이 그토록 뜨거운 여름이더니, 올해에는 비가 제법 잦다. 그런데, 해가 너무 덜 든다. 닷새쯤 따사롭게 볕을 비추고 나서 하루쯤 비가 오면 딱 알맞을 텐데. 이틀 뜨끈뜨끈 하고 하루는 구름이 살랑살랑 흐르다가 이틀 뜨끈뜨끈 한 뒤 비가 한 줄기 시원하게 내리면 꼭 알맞을 텐데. 가끔 소나기가 한 차례 뿌리고는 다시 말끔히 해님이 고개를 내밀면 참으로 알맞을 텐데.


  벼꽃이 피는 늦여름이다. 이 늦여름에 벼꽃을 헤아리는 이웃은 얼마나 있을까. 내 이웃은 벼꽃을 생각하면서 밥을 먹을까. 내 이웃은 벼꽃을 예쁜 눈길로 마주하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삶을 아침마다 지을까.


  꽃대가 곧게 오르면서 봉오리가 맺힌다. 봉오리마다 암술과 수술을 내민다. 자그마한 벼꽃은 꽃가루받이를 해야 알맹이가 익을 수 있다. 벼를 처음 심던 지난날을 떠올려 본다. 기계도 농약도 비료도 비닐도 안 쓰고 논을 돌보던 지난날을 그려 본다. 지난날에는 바람이 꽃가루받이를 해 주었다. 수많은 거미와 날벌레와 잠자리와 나비와 벌이 꽃가루받이를 해 주었다. 개구리를 잡으려고 논에 내려앉는 새들이 볏포기 사이를 오가면서 꽃가루받이를 해 주었다. 그리고, 즐겁게 노래하면서 씩씩하게 박힌 꾸덕살이 가득한 손으로 흙을 만지던 사람들이 베푸는 사랑을 받아 알알이 열매를 맺었다.


  요즈음은 기계로 후다닥 어린 볏싹을 심으니 벼꽃도 한꺼번에 핀다. 예전에는 손으로 차근차근 어린 볏싹을 심거나 볍씨를 뿌렸으니, 벼꽃도 차근차근 피었다. 벼꽃이 피는 늦여름에 팔월이 새로운 빛이 된다. 4347.8.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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