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59) 야생의 4 : 야생의 세계


이제 네가 야생의 세계에서 보낸 몇 주일 동안 무언가 배웠다는 것을 증명해 봐야 해

《셀마 라게를뢰프/배인섭 옮김-닐스의 신기한 여행 1》(오즈북스,2006) 271쪽


 야생의 세계에서 보낸

→ 들판에서 보낸

→ 들녘에서 보낸

→ 들에서 보낸

→ 숲에서 보낸

 …



  “야생의 세계”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들이나 숲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가리킬 테지요. 들이나 숲으로 이루어진 세계란, 사람이 마을을 이루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보기글에서는 “야생의 세계”라 하지 않고 “들”이나 “숲”이라고만 하면 됩니다. 새롭게 말을 짓는다면 ‘들자리·들누리·들나라’처럼 쓸 수 있어요. 또는 ‘숲자리·숲누리·숲나라’처럼 쓸 수 있어요. 들에서 지냈으면 ‘들사람’이고, 숲에서 지냈으면 ‘숲사람’입니다. ‘들아이·숲아이’라 해 볼 수도 있습니다. 4347.9.5.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제 네가 들판에서 보낸 몇 주일 동안 무언가 배웠다고 보여주어야 해


“배웠다는 것을”은 “배웠다고”나 “배웠음을”로 손질하고, “증명(證明)헤 봐야”는 “보여주어야”나 “밝혀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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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4.9 - Vol.10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84



사진을 즐길 수 있는 마음

― 사진잡지 《포토닷》 10호

 포토닷 펴냄, 2014.9.1.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웃습니다. 즐길 수 없는 사람이 웃지 못합니다.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사랑을 속삭입니다. 즐길 수 없는 사람이 사랑을 속삭이지 못합니다. 너무 마땅할 뿐 아니라, 웬만하면 누구라도 이 대목을 잘 느끼거나 알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줄 알면서도 못 즐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줄 아는데에도 즐기기보다는 ‘안 즐기는 길’을 걷는 사람이 많습니다.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웃는다면, 사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웃으면서 찍어요. 어떤 대회에 나가 1등이나 2등을 거머쥐어야 ‘즐기는 사진’이 아닙니다. 대회에서 3등이나 4등쯤 받아야 ‘잘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 대회에서 ‘입선’쯤은 해야지 ‘좋은 사진’이 아닙니다.


  스스로 삶을 즐기면서 찍는 사진일 때에 비로소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사진입니다.


  그런데,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이나 ‘좋은’ 사진이지는 않아요. 즐거운 사진은 즐겁습니다. 아름다운 사진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러운 사진은 사랑스럽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까요? 대회에서 1등을 받은 사진은 ‘대회 1등 받은 사진’일 뿐입니다. 어떤 스승한테서 배운 사진은 ‘어떤 스승한테서 배운 사진’입니다. 다른 사람을 흉내내어 찍은 사진은 ‘흉내낸 사진’입니다.





  사진잡지 《포토닷》 10호(2014.9.1.)를 읽습니다. 한금선 님은 얼마 앞서 《바람에 눕다 경계에 서다》(봄날의책,2014)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새롭게 선보이는 사진책과 함께 이녁 이야기를 《포토닷》 10호에서 읽습니다. “연구소와 방송제작팀이 받은 촬영허가는 실내에서의 인터뷰 촬영으로 제한되었다. 카메라 셔터소리가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방송 인터뷰 도중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가의 순서가 되면 감정과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게다가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강제이주 당시의 허허벌판은 상상만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 사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며, 이는 다시 리듬을 타듯 사진작업으로 옮겨갔다(한금선/37쪽).”와 같이 흐르는 이야기처럼, 다른 매체에서 촬영기를 돌리는 동안 옆에서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찰칵’ 소리가 난다면서 못 찍게 할 테지요. 그러면 사진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촬영기가 찍는 모습은 사진기로 굳이 찍을 만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촬영기가 찍는데 굳이 사진기가 더 찍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촬영기가 어디에 머리를 들이밀면서 몇 시간째 있다면, 사진기를 든 사람은 다른 곳을 돌아다니면 돼요. 촬영기를 들이밀던 사람이 다른 데로 가면, 사진기를 든 사람은 그곳으로 넌지시 찾아가서 조용조용 이야기를 찍으면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즐기는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아픈 이웃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도 참말 ‘즐깁’니다. 이야기를 즐깁니다. ‘즐기는 삶’은 하하호호 깔깔낄낄 하는 웃음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웃음과 함께 눈물을 즐깁니다. 기쁠 때에도 어깨동무를 하고 슬플 때에도 어깨동무를 해요. 서로서로 이웃과 동무로 여겨 반가이 만나는 삶이 ‘즐기는 삶’입니다.


  “지영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의 북위 38도 지역을 찾아가 사진을 촬영했다. 38도 지역은 역사적인 이데올로기일 뿐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나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north latitude 38°’의 본질이다(김소윤/45쪽).”와 같은 이야기를 곰곰이 읽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사는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아요. 한국과 중국이 사는 모습도, 남녘과 북녘이 사는 모습도, 부자와 가난뱅이가 사는 모습도, 참말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무엇이 같을까요?


  옷차림은 다르겠지요. 자동차도 다르겠지요. 그러나, 부자와 가난뱅이 모두 숨을 쉬어야 삽니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물을 마셔야 삽니다. 부자이건 가난뱅이이건 햇볕을 먹어야 삽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숲이 있어야 합니다. 사막이 넓은 나라라 하더라도, 지구별 곳곳에 숲이 푸르게 있기 때문에 삶을 꾸릴 수 있어요.


  “여행은 새로운 가능성을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새로운 생각과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철저히 관찰자 입장에서 현지인들을 대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 작업은 서로 다른 문화를 중계하는 역할을 한다(나탈리 코거/70쪽).”와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읽습니다. 참말 그래요. 여행을 다니면서 새롭게 느낍니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새롭게 바라봅니다. 여행을 다니기에 내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지 않아도 우리는 늘 새 마음이 되어요. 아침마다 새 마음이 됩니다.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새롭게 추스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을 새로 가다듬지 않으면 ‘헌 사람’이 되어요. 생각해 보셔요. 헌 생각으로 헌 사람이 된다면, 헌 삶을 날마다 똑같이 되풀이한다면, 이런 삶은 재미있을까요? 여행을 다닐 때에만 새 마음이 된다면 우리 삶은 지겹고 힘들어요. 여행을 다닐 때에는 ‘여행 마음’이 되어 즐겁게 노래하고, 집에 있을 적에는 ‘살림 마음’이 되어 즐겁게 사랑할 때에 삶이 빛납니다.


  “현대사진이 너무 서구 중심 사고의 미학들로 흘러가는 현실에서 우리가 근원적으로 가졌던 우리 안의 이야기를 우리의 목소리로 보여주고 싶었다. 여태까지 많은 작가들이 서구미학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생산해 내지 않았나 싶다(이일우/80쪽).”와 같은 이야기마따나, 한국에서 사진을 하는 적잖은 분들이 ‘한국 사진’이 아닌 ‘서양 사진’을 합니다. 때로는 이도 저도 아닌 사진을 합니다. 아무래도, 몸은 한국에 있으나 마음은 한국에 없기 때문입니다. 몸은 한국에 있어도 ‘한국이라는 뿌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몸은 한국에 있더라도 ‘한국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자꾸 다른 사람 눈치를 보아야 할까요. 우리는 왜 우리 모습 그대로 즐겁게 사진길을 걷지 못할까요.


  내가 찍은 사진은 남이 봅니다. 남이 찍은 사진을 내가 즐겁게 봅니다. 그러나, 사진은 보여주려고 찍지 않아요. 스스로 삶을 즐길 때에 사진을 찍어요. 내 사진을 남이 보든, 남 사진을 내가 보든 늘 똑같습니다.


  “처음 제주도에 내려와서는 집에서 길 하나만 건너도 울창한 숲이 많았다 … 지금 제주는 개발 광풍이 불고 있다. 이제야 제주의 자연을 조금 알 것 같은데, 개발에 의해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쉽다 … 내가 찍은 나무들이 모양도 이상하고, 시들하다 보니, 다 베어 버리고 그 위에 콘리트를 발라버렸더라. 사람들에게 땅을 팔기 위해서 정비를 해 놓은 것이다(김옥선/94쪽).”와 같은 이야기는 제주섬에서만 엿볼 수 있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아주 흔하게 봅니다. 부산에서는 서울 다음으로 흔하게 봅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나무를 아끼지 않아요. 나무가 없으면 종이를 못 얻고, 종이를 못 얻으면 책을 못 찍는데, 나무를 아끼는 사람이 참말 없습니다.


  그런데, 나무가 없으면 책만 못 찍지 않아요. 모든 종이를 못 쓰지요. 게다가 나무가 없으면 푸른 바람을 못 마셔요. 나무가 없으면 사람들은 모조리 숨이 막혀 죽어야 합니다. 나무가 살찌우는 사람이고, 나무가 살리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진을 찍을 때에 스스로 즐거울까요. 어떤 삶을 가꿀 때에 스스로 기쁠까요. “사진을 하면서 줄곧 소리가 들리는 사진, 이미지가 연상되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안웅철/111쪽).”와 같은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는 소리가 들리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웃음이 묻어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이 피어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하고, 우리는 이야기가 터져나오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지 쉰 해가 넘었기에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리뷰를 받고 문제점을 고쳐 나간 사진가의 실력은 빠르게 성장한다(김주원/134쪽).”와 같은 이야기처럼, 늘 이웃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녁 사진을 추스르는 사람이 사진을 ‘잘 찍’겠지요. 언제나 사진을 새롭게 찍으려는 사람이 사진을 잘 찍어요.


  다만, ‘새롭게 찍기’란 ‘표현방식을 다르게 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새롭게 찍기’란 아침마다 똑같이 동이 트는 하루를 맞이할 적에 늘 새로운 마음이 되는 일입니다. 한집에서 늘 얼굴을 맞대는 살붙이하고 날마다 새로운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새롭게 찍기’입니다.


  “같은 곳에 서서 같은 것을 바라볼 적에, 사진길 쉰 해를 걸어온 사람이 사진길 다섯 달을 걸은 사람보다 깊거나 넓게 알아채거나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햇수, 나이)이 아니라, 우리 앞에 있는 것한테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거나 사랑을 쏟을 수 있느냐에 따라 ‘우리가 찍는 사진에 담을 빛이 달라’집니다 … 주명덕 님 말마따나 ‘찍는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고 따뜻하’다면, 사진에 감도는 빛은 아름다우면서 따뜻한 숨결이 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름답지 않거나 따뜻하지 않은 마음이라면? 이때에는 아름답지 않고 따뜻하지 않은 숨결이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날 테지요(최종규/143, 145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대목은 늘 하나라고 느껴요. 내 삶을 보느냐 못 보느냐, 이 대목을 읽어야지 싶어요.


  스스로 내 마음을 어떻게 건사하느냐를 읽어야지 싶습니다.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다스리려 하느냐를 알아야지 싶습니다. 삶을 아름답게 가꿀 때에 사진도 아름답게 찍어요. 언제나 사랑을 노래하는 마음일 적에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고 노래가 흐르는 사진을 찍어요.


  손재주로 찍는 사진은 없습니다. 마음으로 찍는 사진만 있습니다. 4347.9.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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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립고 힘들어 손빨래



  졸립고 힘들다. 며칠 앞서 서울마실을 한 탓에 몸이 고단하다고 볼 수 있다. 좀 드러눕고 싶지만, 조금 더 견디자는 마음으로 찬물로 씻고 빨래를 하자고 생각한다. 씻는다. 번쩍 깨지는 않지만 한결 낫다. 알몸으로 손빨래를 한다. 졸립고 힘든 몸인 탓에 즐겁게 손빨래를 하면서도 어깨가 뻑적지근하다.


  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입에는 물을 한 모금 머금는다. 빨래를 하는 동안 입으로는 물 한 모금 머금으면서 마음으로는 노래를 부른다. 물 흐르는 소리도 복복거리는 소리도 아닌, 내 마음에서 흐르는 노래를 듣는다.


  빨래를 마치고 물을 짜는데 택배가 온다. 부엌에서 만화책을 보던 큰아이가 얼른 마루문을 열고 택배를 받아 준다. “벼리야, 고맙다고 인사를 하렴.” 일곱 살 큰아이가 택배 상자를 받은 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한다.


  옷걸이를 챙겨 마당으로 내려선다. 하나하나 넌다. 햇볕이 따갑다. 여름 내내 비가 쏟아지고 우중충한 하늘이더니 한가위를 앞두고 하늘빛이 파랗다. 그래, 곡식이 여물 이즈음에라도 해가 나니 고맙다. 한가위 언저리에 이렇게 하늘빛이 파라니, 올해에는 아주 동그랗고 아주 밝은 달을 볼 수 있겠네. 마을 어른들이 농약을 안 쓴다면 밤에 달빛뿐 아니라 개똥벌레 불춤도 볼 테지만, 달이라도 밝게 보면 반갑다. 기지개를 켠다. 새롭게 기운을 내자. 4347.9.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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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닷컴 누리집 망가뜨린 아이들



  어제 〈전라도닷컴〉 2014년 9월호가 집에 닿았다. 여느 달보다 며칠 늦는구나 싶었는데, 봉투를 열어 책을 펼치는데, 편집장 머리말에 쓸쓸한 이야기가 한 마디 붙는다. 지난 2014년 8월 30일에 〈전라도닷컴〉 누리집이 ‘사이버테러’를 받았단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고 갖춘 거의 모든 자료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단다. 사이버테러를 저지른 이들은 〈전라도닷컴〉 누리집에 전라도를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쓰는 ‘홍어’라는 말을 곳곳에 올렸단다.


  어떤 철없는 아이들이 이런 짓을 일삼았을까. 청와대 누리집이나 국회의원 누리집이 아닌 〈전라도닷컴〉 누리집에 사이버테러를 일삼은 철부지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이런 짓을 저지른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이런 짓을 저지르는 아이들은 이녁 어버이와 둘레 어른과 동무한테서 무슨 이야기를 듣거나 받아들이며 살았을까? 4347.9.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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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구실



  어버이로 살아가는 나날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새롭게 물려받으면서 배울 ‘사랑’을 어버이가 먼저 즐겁게 누려서, 이 즐거움을 새롭게 물려주는 데에 ‘어버이 구실’이 있지 않을까. 어버이 스스로 즐거움을 모른다면 아이들한테 즐거움을 보여주거나 물려주거나 가르치지 못한다. 어버이 스스로 웃음을 모른다면 아이들한테 웃음을 보여주거나 물려주거나 가르치지 못한다. 어버이 스스로 사랑을 모른다면? 참말 어버이 스스로 사랑을 모른다면? 4347.9.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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