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에서 선물한 책들



  2014년 8월 한 달 동안 예스24블로그에서 ‘파워문화블로그’로서 가장 손꼽히도록 책이야기를 썼다고 해서 선물을 받는다. 책이야기를 쓴 글지기한테 예스24에서 준 선물은 책이다. 아무렴, 책이야기를 쓰는 사람한테 책만큼 기쁜 선물이 어디 있을까. 한가위를 앞두고 고흥 시골집에 닿은 책상자를 열어 본다. 어떤 책을 선물로 보내 주었을까?


  상자에 담긴 책은 열 권 즈음 된다. 예스24에서 보낸 책은 여느 인문책과 자기계발책이다. 내가 즐기는 갈래라 할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이나 ‘사진책’이나 ‘만화책’이라면 더 기뻤을 텐데, 나는 어느 책이든 다 반갑다. 이 책이든 저 책이든 내 눈을 새롭게 뜨도록 도와주는 책이니까.


  마룻바닥에 엎드린다. 선물받은 책을 차근차근 살핀다. 이 책들은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에 어떤 이야기를 우리한테 들려줄 수 있을까 헤아려 본다. 역사를 다루거나 철학을 짚거나 정치나 경제를 돌아보려는 책들은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 뒤에는 어떤 사람한테 읽힐 수 있을까 곱씹어 본다.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은 쉰 해가 지났을 뿐 아니라 백 해가 지난 뒤에도 새롭게 태어나곤 한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에서 백 해쯤 앞서 나온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이 요즈음 ‘한국말로는 처음으로’ 나오기도 한다. 곰곰이 살피니, 내가 즐기려는 책은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이로구나 싶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새로운 아이들을 낳으면, 그 새로운 아이들한테도 물려줄 만한 책을 오늘 즐기려 하는구나 싶다. 백 해뿐 아니라 즈믄 해를 아름답게 이어갈 만한 인문책을 쓰는 어른은 틀림없이 있을 테지. 나무 한 그루처럼, 나무 한 그루가 즈믄 해를 거뜬히 살아내듯이, 즈믄 해를 아름답게 읽힐 책을 꿈꾼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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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커피 2
기선 지음 / 애니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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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75



즐겁게 커피 한 잔

― 오늘의 커피 2

 기선 글·그림

 애니북스 펴냄, 2009.7.24.



  어버이가 차리는 밥을 아이들이 받아서 먹습니다. 아이들은 잘 먹기도 하지만, 잘 안 먹기도 합니다. 잘 먹는 날 왜 잘 먹는가 하고 가만히 보면, 배가 고프기도 하고, 한창 신나면서 즐겁게 뛰놀았습니다. 잘 안 먹는 왜 잘 안 먹는가 하고 곰곰이 보면, 배가 안 고프기도 하며, 제대로 못 놀거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똑같은 밥 한 그릇이지만, 아이와 어른 모두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밥맛을 달리 느낍니다. 어른이라면 배가 제법 불렀어도 ‘차린 이 손길’을 헤아리며 더 먹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이 대목까지 헤아리지는 않아요.


  아이들은 배가 고플 적에 잘 먹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익숙한 것을 잘 먹습니다. 어버이가 즐겁게 먹는 것을 으레 보기 마련이니, 입뿐 아니라 눈과 코와 귀에 익숙한 것을 한결 잘 먹습니다.


  그런데, 어느 것을 먹든 그리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밥을 먹을 적에 영양소만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양소를 고루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만, 영양소를 살피느라 밥 한 그릇에 담을 마음을 놓친다면 어떡할까요. 마음이 깃들지 않은 밥을 먹으면 어떤 기운을 얻을까요.





- “제가 직접 숯불에 볶은 원두입니다.” “손으로 직접 갈다니!” “우와, 절에서 커피를. 특이하다!” “해림 스님, 물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벌써? 아니다. 아직 익으려면 좀더 있어야 돼.” ‘물이 익는다고? 게다가 온도계도 없이 적정온도를 어떻게 알아내지?’ (39쪽)

- “스님, 대체 이 맛의 비결은 뭔가요?” “비결이라. 재밌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는 그저 대자연이 베푸는 자비를 고이 받았을 뿐이지요. 아침 일찍 산 정상에서 맑은 물을 길어와, 수행하는 마음으로 보살피고 익혀, 불심으로 볶은 커피콩에 흘려보냈을 뿐입니다.” (42쪽)



  기선 님 만화책 《오늘의 커피》(애니북스,2009)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커피 한 잔은 맛있게 마시면 참으로 좋을 텐데, 맛있을 뿐 아니라 즐겁게 마시면 더없이 좋습니다. 아니, 맛있기만 한 커피일 때에는 어딘가 모자라요.


  생각해 봐요. 가시바늘 같은 곳에서 맛만 있는 커피를 마실 적에 즐거울까요? 느긋한 곳에서 맛은 좀 떨어지는 커피를 마실 적에 즐거울까요? 거북한 곳에서 맛만 있는 커피를 마실 적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어나는 곳에서 맛은 좀 떨어지는 커피를 마실 적하고, 어느 쪽이 즐겁게 마시는 커피가 될까요?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한 곳이라면, 몸도 마음도 안 즐겁습니다. 입으로 마실 뿐 아니라 온몸을 확 깨우는구나 하고 느낄 만한 곳에서 마실 때에 즐겁습니다.


  더 생각할 수 있어요. 시멘트를 퍼부어 만든 청계천 한켠에서 마시는 커피하고, 골짝물이 싱그럽게 흐르는 숲속에서 마시는 커피를 생각해 봐요. 고속도로 옆에서 마시는 커피하고, 우람하게 잘 자란 나무그늘에서 마시는 커피를 생각해 봐요. 핵발전소를 코앞에 두고 마시는 커피하고, 너른 바다가 파랗게 눈부신 곳에서 햇볕을 따사롭게 받으며 마시는 커피를 생각해 봐요.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갇힌 학교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하고, 아이들이 하하호호 웃고 뛰노는 골목에서 마시는 커피를 생각해 봐요.




- “마침 동생 분도 오셨으니 이참에 하산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하, 하지만 전 아직 번뇌를 떨치지 못했습니다!” “이곳에 집착하는 것 또한 번뇌입니다. 깨달음의 길은 장소와 상관없는 것이지요. 보살님은 아직 속세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53쪽)

-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맛있는 걸 먹었던 게 언제였더라? 이거, 원래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죽도록 맛있어.’ (157쪽)



  마음이 즐겁다면 어디에서라도 즐겁습니다. 여러 시간 달리는 시외버스에 있건, 사람들이 빼곡한 전철에 있건, 코를 찌르는 냄새가 가득한 공장 옆에 있건, 마음이 즐겁다면 어디에서라도 즐겁습니다. 마음이 즐겁지 않다면 어디에서라도 즐겁지 않습니다. 푸른 바람이 부는 곳에 있든, 멧꼭대기에 있든, 무지개 드리운 들판에 있든, 마음이 즐겁지 않다면 어디에서라도 안 즐겁습니다.


  누군가 새벽에 길어 놓은 물도 정갈합니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길어 온 물도 정갈합니다. 누군가 새벽에 어떤 마음으로 물을 길었을까 떠올리면서 물 한 그릇 즐겁게 씁니다. 내가 스스로 새벽에 길어 온 물을 그리면서 물 한 그릇 알뜰히 씁니다. 반가운 동무한테 건넬 웃음을 떠올리면서 차 한 잔 끓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곱게 다스리려고 차 한 잔 끓입니다.


  물 한 잔을 앞에 놓고 삶을 생각합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사랑을 생각합니다. 물 한 접시를 떠서 바라보면서 꿈을 생각합니다. 그저 배가 고파서 짓는 밥일까요. 그저 아이들을 먹이려고 짓는 밥일까요. 밥을 먹어 얻는 기운으로 무엇을 할까요. 오늘 하루는 어떻게 맞아들여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삶을 지을 때에 즐거울까요.




- “직원도 몇 명 늘렸다면서?” “네, 파티시에와 바리스타가 한 명씩 늘었더군요.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많이 밝아졌습니다.” “분위기가 많이 밝아져? 어떻게?” (167쪽)

- “물론 저처럼 해외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도 다수 있구요! 그런 사람들 중에서 최고를 가리는 신성한 대회입니다! 혹시 바리스타 자격시험 정도로 착각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 “현장경험, 해외유학, 물론 중요합니다. 저도 분명 그런 과정을 몇 년씩 거쳐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하지만 난지 씨는 그런 제가 인정한 사람입니다. 아직 익혀야 할 게 태산 같긴 하지만, 전 이 친구의 카푸치노에서 이론과 상식을 뛰어넘는 재능을 봤습니다.” (182∼183쪽)



  세 권짜리로 나온 만화책 《오늘의 커피》 가운데 둘째 권에서는 ‘으뜸 커피지기’를 뽑는 대회에 나가려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서울에서 커피집을 꾸리는 주인공 하나는 이녁 커피집이 어딘가 우중충하면서 장사가 잘 안 되는 줄 깨닫습니다. 무엇인가 바꾸려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나이가 어린 탓에 잘 모르지 않습니다.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 잘 모릅니다.


  가게에 있는 걸상도, 가게를 꾸민 살림도, 딱히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커피를 갖추고, 커피와 곁들일 입가심을 어떻게 마련하면 좋을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커피집을 꾸린다면, 어떤 마음으로 꾸려야 할까요. 밥집을 꾸리거나 술집을 꾸리거나 옷집을 꾸린다면, 어떤 마음으로 꾸려야 할까요. 책방을 꾸리거나 빵집을 꾸린다면, 어떤 마음이 되어 꾸릴 때에 우리 삶을 즐겁게 북돋울 만할까요.


  그나저나 만화책 《오늘의 커피》는 세 권으로 ‘커피’ 이야기를 간추리려 하다 보니 줄거리가 갑작스레 너무 빨리 흐릅니다. 조금 더 찬찬히 지켜보고, 조금 더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커피맛과 커피내음을 즐겨도 되었을 텐데 싶습니다. 휙휙 빨리 건너뛰거나 달려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굳이 맞수를 두거나 여럿이 부딪히거나 다투는 얼거리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으뜸 커피맛과 버금 커피맛은 없습니다. 즐거움은 숫자로 가르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삶은 등수로 줄을 세우지 못합니다. 보여줄 이야기나 들려줄 웃음이 훨씬 많았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움을 접고 둘째 권을 덮습니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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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에누리가 책마을 망가뜨린다



  2014년 11월에 새로운 도서정가제대로 책을 다루어야 한단다. 이를 앞두고 여러 ‘대형 인터넷책방’에서 출판사와 손을 잡고 ‘반값 에누리 책’을 선보일 뿐 아니라 ‘1000원 책’이나 ‘2000원 책’까지 선보인다. 그런데, 이런 책이 ‘헌책’이 아닌 ‘새책’이다. 사람들이 즐겁게 사서 읽은 뒤 내놓은 헌책이 아니라, 아직 아무 손길도 받은 적 없는 새책을, 책방에 들여놓는 때부터 반값으로 에누리를 하거나 ‘1000원 균일가’라느니 ‘2000원 균일가’로 밀어넣기를 하는 셈이다.


  조금이라도 생각해 볼 노릇이다. 책을 이렇게 팔아서 종이값이라도 건질 만할까? 책을 이렇게 팔면 작가나 번역가나 화가한테 글삯(인세)을 줄 수 있을까? 1만 원짜리 책이라면 글삯이 10퍼센트인데, 이런 책을 ‘1000원 균일가’로 팔면 종이값은커녕 글삯조차 줄 수 없다. 이게 무슨 책장사인가?


  책이 도무지 안 팔리는 나머지, 맞돈을 조금이라도 만져야 하기에 반값으로 에누리를 해서 책을 밀어야 할는지 모른다. 다문 ‘1000원 균일가’나 ‘2000원 균일가’로 마구마구 집어넣어야 출판사가 문을 안 닫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물어 볼 노릇이다. 이렇게 후려치기를 해서 파는 책은 ‘독자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 책일까? 제값대로 팔지 못하는 책이라면, 처음부터 ‘독자가 읽을 값어치가 없는 책’은 아닐까? 독자가 사랑할 책이라면, 반값으로 에누리를 할 때에 장만할 책이 아니라, 제값을 모두 치르면서 뿌듯하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는 책이어야 하지 않을까?


  대형 인터넷책방이 출판사에 ‘반값 에누리’를 하자고 먼저 말했을는지, 아니면 대형 출판사가 대형 인터넷책방에 ‘반값 에누리’를 하자고 먼저 말했을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뚜렷하다. 두 곳에서 서로 한마음이 되어 하는 일이다. 책 하나를 반값 후려치기를 하거나 1000원이나 2000원에 밀어붙이기로 팔아치우려는 짓은, 작가와 독자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 짓이다.


  이런 일이 있을 적에 독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출판사와 책방이 힘들어 보이니 이럴 때에 책을 더 사야 하는가? 이런 일이 없도록 반값 에누리 따위를 하기 앞서 즐겁게 책을 사서 읽을 노릇일까?


  한 가지 덧붙인다. 반값 에누리 따위가 갑자기 판을 치는데, 이러거나 말거나 반값 에누리는 아예 안 쳐다보는 출판사도 제법 많다. 모든 출판사가 모든 책을 반값 에누리로 밀어넣지 않는다. 그런데, 반값 에누리 따위가 워낙 판치다 보니, 제값을 제대로 받으면서 독자를 만나려고 하는 책들은 ‘독자가 알아보기 쉽지 않’다.


  어떤 책을 읽어서 스스로 어떤 삶을 가꾸려 하는가는 언제나 독자 몫이다. 이 책을 읽어도 좋고 저 책을 읽어도 좋다. 꼭 제값 치르는 책만 읽어야 마음을 살찌우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반값 에누리 책을 사들여서 읽는다 하더라도 마음을 살찌울 수 있지는 않다. 책을 왜 읽는가? 값이 싸니까? 값이 안 싸면 책을 읽을 뜻이 없을까? 우리는 ‘책’을 읽는가, ‘값’을 읽는가?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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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옷 입는 마음



  곁님이 손뜨개로 네 식구 옷을 뜹니다. 먼저 곁님 스스로 입을 옷을 뜨고, 두 아이 입을 옷을 뜹니다. 여기에 내 옷까지 한 벌 뜹니다. 나는 세 식구와 대면 몸이 크니 내 옷까지 안 뜨기를 바랐지만, 품이며 실이며 겨를이 많이 드는 내 옷까지 고맙게 뜹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뜬 옷을 입고 즐겁습니다. 땀을 옴팡 흘려도 벗지 않습니다. 저녁에 씻기려고 옷을 벗기면 서운해 하지만, “자, 예쁘게 빨아서 땀냄새를 잘 빼고 다음에 또 입으면 돼.” 하고 얘기해 줍니다.


  예전에는 모든 옷을 어버이가 손수 지어서 입혔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개화기라고 하는 때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은 옷을 스스로 지어서 입었어요. 한국전쟁 언저리까지도 꽤 많은 사람들은 옷을 스스로 지어서 입었어요.


  밥도 집도 아주 오랫동안 어버이 손길이 깃든 사랑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집과 밥과 옷 모두 우리 손으로 안 짓기 일쑤입니다만, 도시가 생기기 앞서, 도시 물질문명이 퍼지기 앞서, 어느 나라 어느 겨레 어느 마을에서건, 참으로 누구나 스스로 모든 삶을 지었습니다.


  뜨개옷 한 벌 짓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뜨개옷 한 벌 손수 지으려고 바느질을 익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잃은 우리들이라 할 텐데, 고운 실을 골라서 손수 바늘을 놀려 옷을 짓는 하루란 얼마나 예쁜가 하고 새록새록 돌아봅니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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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 -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관한 오랜 이야깃거리
제시카 커윈 젱킨스 지음, 임경아 옮김 / 루비박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69



아름다운 삶은 늘 이곳에

―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

 제시카 커윈 젱킨스 글

 임경아 옮김

 루비박스 펴냄, 2011.12.20.



  아름다운 삶은 늘 이곳에 있습니다. 아주 마땅합니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름다운 사람은 늘 이곳에 있습니다. 아주 마땅하지요. 이곳이 아니면 어디에 있을까요.


  내가 가꾸는 오늘 하루가 아름답습니다. 내가 오늘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저 먼 데에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고, 저 먼 곳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을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들려주는 책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거나 느끼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 문명과 자연 사이 그 어디쯤에 놓인 알프레스코는 이탈리아말로 ‘신선한 공기 속에서’라는 뜻이다. 즉 그림 같은 풍광 속으로 소풍을 떠나거나 야외 식사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경직되고 엄격했던 빅토리아 여왕 재위 기간(1837∼1901) 당시의 사람들에게 도시를 벗어나 숨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 일본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좀더 아련한 기쁨을 주었다. 도시 거주자들은 귀뚜라미 콘서트를 듣기 위해 시골로 여행을 떠났다 ..  (13, 52쪽)



  제시카 커윈 젱킨스 님이 쓴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루비박스,2011)를 읽습니다. 글쓴이는 ‘아름다움’을 a부터 z까지 여러 낱말을 빌어 차근차근 이야기합니다. 글쓴이가 들려주는 아름다움이란, 이 책을 쓴 분이 스스로 느끼는 아름다움입니다. 글쓴이 스스로 누린 아름다움이고, 글쓴이 스스로 바라본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쓴 분이 보지 못하거나 겪지 못하거나 듣지 못한 아름다움은 이 책에 없습니다. 참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이 책을 쓴 분이 생각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거나 알아채지 못한 아름다움은 이 책에 없어요. 더없이 마땅한 일이지요.


  이를테면, 들꽃 한 송이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합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이 책에서 건드리지 못합니다. 흙알갱이 하나가 길어올리는 아름다움을 이 책에서 살피지 못합니다.



.. ‘신 안으로 들어가기’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enthousiasmos에서 나온 ‘enthusiasm’이라는 영어 단어는 “열렬한 찬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합리성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 했던 계몽시대 사람들에게 이 단어는 뜻이 모호했고, 지식인들은 그 단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애썼다 … 책은 읽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페트라르카는 페이지에 꽉 들어찬, 과도하게 장식적인 고딕 글씨체를 혐오했다. 그는 그것은 멀리서 보면 좋아 보이지만 “읽으려고 만든 글씨가 아니다”라고 투덜댔다 ..  (66, 99쪽)



  바람이 불어 모든 목숨이 살아갑니다. 그리고, 바람 이야기도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햇볕이 내리쬐어 모든 목숨이 무럭무럭 살찝니다. 그리고, 햇볕 이야기도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에서 건드리지 않습니다. 비가 내려 온누리를 촉촉하게 적시니 싱그러운 냇물이 흐르고 시원한 골짝물이 흐릅니다. 그리고, 빗물 이야기도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임금님이나 귀족이 입은 옷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이네들이 낀 장갑이나 쓴 모자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동양이든 서양이든 옷을 짓는 천은 어떻게 얻었을까요? 모두 실을 짜서 천을 짓습니다. 실은 풀에서 나옵니다. 또는 양털로 얻기도 합니다.


  들판에 우거진 풀에서 실을 얻는다니, 놀랍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누구나 다 들판에서 풀줄기를 베어 실을 얻었어요. 옛날에는 놀랄 일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옷장을 짜며 걸상을 만들었어요. 나무질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수저도 손수 만들고 밥상도 손수 만듭니다. 모든 삶을 누구나 손수 지었어요. 참말 옛날에는 놀랄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뚝딱뚝딱 짓습니다. 삶을 짓고 살림을 지으며 사랑을 짓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따로 ‘아름다움’을 말하거나 가르지 않았어요. 날마다 아름다움을 누리는데 굳이 ‘아름다움’을 말할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사랑을 나누는데 따로 ‘사랑’을 밝힐 일이 없습니다.



.. 후디니는 뉴욕의 한 클럽에서 어떤 일본인이 메뉴 카드로 새를 접는 것을 보고 종이접기를 배웠다. 그는 “마침내 내가 종잇조각으로 자연스럽게 날개를 파닥이는 작은 종이 새를 만들어 냈을 때 관중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라고 썼다 … 기사도 정신이란 것이 생겨나기 전 유럽의 기사들은 아무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했다. 12세기 아라비아의 연대기 작자 오사마는 기독교도 기사들이 돼지에 기름을 바른 다음 나이 든 여자들을 뒤쫓도록 시키며 즐기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  (152, 177쪽)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는 어떤 책일까요? 오늘날 우리들은 왜 아름다움을 말하려 할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왜 아름다움을 찾으려 할까요?


  삶이 아름답지 못하니, 자꾸 바깥에서 아름다움을 찾지는 않나요? 스스로 아름다운 줄 모르니, 자꾸 남을 살피거나 다른 눈치를 엿보지 않나요?


  밥 한 그릇이 아름답습니다. 말 한 마디가 아름답습니다. 수수한 놀이 한 가지가 아름답습니다. 살가운 노래 한 가락이 아름답습니다.


  된장국과 밥 한 그릇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담아 건네는 말 한 마디가 아름답습니다. 깔깔 하하 웃으면서 어깨동무하는 놀이가 아름답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함께 부르는 노래가 아름답습니다.



.. 뉴턴은 연금술의 주제에 관해 100만 단어도 넘게 썼다. 다만 그의 사후에 왕립협회가 그 대부분을 ‘출판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했을 뿐이다. 당국이 뉴턴의 은밀한 실험을 당혹감 때문에 숨겼는지, 아니면 그 자신이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자료들을 숨겼는지는 모르지만 2005년까지 뉴턴의 일부 서류들이 사라졌다 … 그들은 피지 원주민들이 만든 ‘잉꼬의 놀이터’를 미국 뉴멕시코 차마 인디언들의 ‘두꺼비’와 비교했다. 나바호족은 줄로 플레이아데스 산개성단을 만들었고 파푸아뉴기니의 키와이 섬 주민들은 가재, 코코넛 야자 모양을 만들었다. 가장 널리 퍼진 모양은 ‘생쥐’였다. 뇌문의 미로를 통해 작은 쥐가 고양이를 피해 도망치는 모양.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수준 높은 것은 에스키모가 줄로 만든 모양들이었다. 그 중 하나는, 재빨리 줄을 움직이면 두 산 사이로 강이 흘러 평원으로 가고, 거기 솟은 산 옆에서 남자가 배를 타고 연어를 잡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  (183, 208∼209쪽)



  아름다운 삶은 늘 이곳에 있어요. 이곳을 바라보아요. 아름다운 삶이 늘 이곳에 어떻게 있었는지 잘 살펴요. 내가 누리는 아름다움부터 제대로 느끼고, 내 이웃과 동무가 누리는 아름다움을 함께 느껴요.


  몽골이나 티벳이라면 하늘빛이 더 파랗겠지요. 서울이나 부산이라면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보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서울이나 부산에서도 하늘빛을 아름답게 누릴 수 있습니다. 미얀마나 부탄쯤 가야 아름다운 들꽃을 볼 수 있지 않아요. 인천이나 대구 골목길 한켠에서도 아름다운 들꽃을 볼 수 있어요.


  민들레꽃도 아름답고, 냉이꽃도 아름다우며, 고들빼기꽃도 아름답습니다. 구름 한 조각도 아름답고, 소나기 한 줄기도 아름다우며, 참새 노래잔치도 아름답습니다. 우리들 누구나 우리 곁에서 곱게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숨결을 느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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