陸明心 이것은 사진이다
육명심 지음 / 글씨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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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83



사진이 아니면 뭘까

― 이것은 사진이다

 육명심 사진·글

 글씨미디어 펴냄, 2012



  가을볕은 곡식과 열매가 무르익도록 돕습니다. 가을볕은 가을에 내리쬐는 볕입니다. 봄에는 봄볕이 내리쬐겠지요. 그러면 겨울에는? 겨울볕이 내리쬡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에는 ‘봄볕·가을볕’ 두 낱말만 나오고 ‘여름볕·겨울볕’은 안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름과 가을에 쬐는 볕을 어떻게 적어야 할까요?


  봄에는 봄비요 가을에는 가을비입니다. 여름에는 여름빛이고 겨울에는 겨울빛입니다. 한가위를 앞둔 가을에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가을하늘’은 그지없이 파랗습니다. 비가 오지 않고 여러 날 지나면 도시에서는 ‘파란하늘’이 아닌 매캐한 하늘이 될 테지만, 시골에서는 비가 오지 않고 여러 날 지나더라도 ‘파란하늘’이 눈부십니다. 참으로 가을에는 겨울이나 봄이나 여름보다 한결 새파랗습니다.


  그런데, 손바닥만큼 조금만 하늘을 볼 수 있다면 하늘빛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가을에는 하늘이 눈부시고 높다 하지만, 막상 하늘을 넓게 누리지 못한다면 이런 말은 ‘그저 말일 뿐’입니다. 마음으로 스며들지 못해요.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삽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매우 적고, 시골에서 살며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사람도 매우 적어요. 전문직이든 예술가이든 작가이든 누구이든 모두 도시에서 산다고 할 만합니다. 이 가을에 가을내음을 그윽히 맡지 못합니다.



.. 어찌 된 일인지 내 말은 학생들에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정말 막무가내로 내 말귀를 못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패션계에 부는 바람에 휘말리듯 세계적으로 뜨는 외국의 사진풍을 따라가기게 급급했다 … 나는 기질적으로 군대생활이 맞질 않았다. 지금도 그 시절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걸핏하면 기합 받던 악몽이 되살아나서 몸서리가 난다 ..  (8, 14쪽)



  가을에 하늘을 제대로 올려다보지 못하는 사람한테 ‘가을하늘’이나 가을빛이나 하늘빛을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겨울에 새하얀 눈을 집어서 먹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도시내기한테 들려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새봄에 동백꽃잎을 부쳐서 먹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도시 이웃한테 알려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름에는 들딸기를 날마다 훑어 끼니로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도시사람한테 속삭이기는 쉽지 않아요. 이러한 삶을 모르고, 이러한 삶을 헤아리지 않으며, 이러한 삶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스스로 살아가는 곳에서 바라보고 느끼며 생각합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사는 아이들은 슥 바라보아도 어떤 아파트인지 압니다. 두멧시골에서 태어나 사는 아이들은 개똥벌레와 다슬기를 곧바로 알아챕니다. 도시 아이들은 깜깜한 밤을 알지 못하고, 시골 아이들은 해가 지면 바로 깜깜해지는 줄 압니다.


  사는 대로 보고, 보는 대로 느끼며, 느끼는 대로 압니다. 아는 대로 배움길을 나서고, 배움길을 나서는 대로 다시 삶이 됩니다. 이 얼거리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육명심 님은 《이것은 사진이다》(글씨미디어,2012)라는 책에서 이야기합니다. 대학교에서 젊은이한테 사진을 가르치는데 ‘쇠귀에 경 읽기’처럼 이녁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왜 못 알아들을까요? 어쩔 수 없어요.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 본 적이 없으니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한’ 적이 없어요. 육명심 님은 군대가 이녁한테 얼마나 끔찍하고 몸소리까지 쳐지는가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삶으로 이루어졌지만, 군대에 간 적이 없는 젊은이는 하나도 모릅니다. 본 적도 느낀 적도 생각한 적도 없으니까요. 군대에 갔어도 널널한 데에서 폭력이나 얼차려 하나 없이 지냈으면, 이때에도 ‘군대’ 이야기를 못 나눕니다.



.. 신혼여행 가서 삼각대를 받쳐놓고 둘이서 정답게 사진을 찍으면서 아내에게서 카메라의 조작법을 생전 처음 배웠다 … 아내는 사진뿐만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서 사진을 통한 정신적인 해방의 길로 나를 인도한 것이다 … 마음이 열리니 지혜의 눈도 아울러 떠지는 것 같았다 … 신기한 것은 쉽게 찍힌 사진은 그 결과도 좋다. 그리고 당연히 어렵게 찍힌 사진은 그 결과가 뻔하다 ..  (19, 73, 76쪽)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이녁 스스로 살아가는 자리에서 찍습니다. 이녁 삶이 그대로 사진이 됩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늘 이녁 삶자리에서 글과 그림을 빚습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다 도시에서 삽니다. 도시에서 살며 사귀는 이웃도 도시사람입니다. 도시에서 살며 도시사람만 만나고, 도시 언저리에서 맴돕니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을 가도 그 나라 도시에 머뭅니다. 다른 나라 시골은 자동차나 기차나 버스로 씽씽 가로지를 뿐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래요. 한국에서도 시골은 고속도로로 씽씽 가로지르는 곳일 뿐이지요.


  좋거나 나쁘다고 가를 수 없습니다. 좋거나 나쁘다고 가를 까닭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읽으면 될 뿐입니다. 작가도 평론가도 모두 도시에서 삽니다. 전시관이나 갤러리도 모두 도시에 있습니다. 신문사와 방송사도 모두 도시에 있습니다. 대학교도 도시에만 있고, 사진관이나 스튜디오 일자리를 얻으려면 도시로 가야 합니다. 시골자락에 스튜디오나 갤러리를 여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어요. 그러니, 사진문화나 사진예술은 언제나 ‘도시’ 테두리에만 있습니다. 가끔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사진을 찍더라도, 시골을 시골대로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면서 사진으로 담을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찾아온 다음 볼일을 마치면 곧장 고속도로를 다시 타고 도시로 돌아가듯이, 시골자락에서 사진 몇 장 찍더라도 ‘목적 달성’이 끝나면 시골내음을 맡거나 시골빛을 보거나 시골살이를 누릴 일이 없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찍을 수 있을까요? 스스로 사는 대로 찍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읽는가요? 스스로 사는 대로 읽습니다. 육명심 님은 한국사 전공 교수한테 ‘국토순례’를 젊은이한테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진뿐 아니라 역사를 할 적에도 ‘스스로 사는 만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일행은 달리던 차에서 모두들 후다닥 카메라를 들고 뛰어내렸다. 나는 차 안에서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그냥 앉아 있었다. 물론 남들이 다 달려들어 사진을 찍으면 안 찍는 평소의 버릇도 있지만, 그 당시 찍고 있는 한 주제와 다른 대상이라 외면했던 것이다 … 어느 날 한국사를 전공하는 대학 교수를 만나 한가하게 시간을 함께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 교수에게 국사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전공필수과목으로 반드시 ‘국토순례’를 넣어야 한다고 주문을 했었다. 일절 차를 타지 말고 직접 발로 걸어서 이 나라 구석구석까지 모조리 돌아보는 실습과목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을 했다 ..  (183, 227쪽)



  사진은 ‘보는 대로 찍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는 대로’란 ‘눈에 들어오는 모습대로’가 아닙니다. 저마다 ‘사는 대로’ ‘눈에 어떤 모습이 들어옵’니다.


  시골에서 살며 멧새나 풀벌레 소리가 익숙한 사람은 가느다란 소리만 듣고도 어떤 새나 벌레가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 이러한 소리와 숨결도 함께 담습니다. 도시에 살며 멧새나 풀벌레 소리가 낯선 사람은 아무리 큰 소리를 들어도 어떤 새나 벌레가 어디에 있는가를 모릅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 이러한 소리나 숨결을 조금도 못 담습니다.


  똑같은 자리에 두 사람이 섰어도 ‘사뭇 다른 사진’이 나오는 까닭이 있지요. 삶이 다르니까요. 삶이 달라 바라보는 눈이 다르니까요. 육명심 님은 “대화를 진행할수록 사진가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차가운 편견만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럴 때, 상대와의 대화에서 기선을 잡아 심리적인 주도권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정신적으로 상대를 제압하지 않고는 참다운 인물사진을 얻을 수 없다(81쪽).” 하고 말씀합니다. 육명심 님은 ‘주도권 잡기’로 사진을 찍으셨지만, 다른 사람들은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이에 삶이 다르니, 찍히는 쪽에서 찍는 쪽을 얕잡을 수 있어요. 때로는 우러를 수 있어요. 얕잡는 사람은 나쁠까요? 우러르는 사람은 좋을까요? 이도 저도 아닙니다.



.. 특히 ‘신지형학 사진’의 무대를 돌아보면서 그들은 그들의 사진을 찍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존 팔의 폭포 사진에서도 그것은 지금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의 발견임을 직감했다. 그들은 그렇게 사진을 찍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들대로 우리 눈을 통한 사진을 찍을 일이다. 몇 년 전 외국의 좋은 사진을 많이 소개하는 한 신문사가 기획한, ‘매그넘’ 사진가들이 직접 한국을 찍은 사진전을 보고 우리나라는 역시 우리가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불교 사진을 보고 그런 생각을 더욱 굳혔다. 그러나 정작 우리 사진가에게 불교 사진을 당장 찍으라 하면 과연 그만큼이라도 찍을 수 있을가. 우리가 우리 문화를 가슴으로 사랑하고 깊은 이해를 갖추지 않으면 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  (270∼271쪽)



  사진을 찍을 적에는 한 가지로만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육명심 님은 육명심 삶결대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주도권 잡기’를 해서 ‘모든 사람(찍히는 사람)’을 육명심 님 숨결이 드러나도록 찍었습니다. 찍히는 사람 숨결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보다는 찍는 사람 숨결이 확 풍기도록 찍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주도권 잡기’를 할 만합니다. 누군가는 굳이 ‘주도권 잡기’를 안 합니다. 나(찍는 사람)를 얕잡아보거나 깔본다면 얕잡아보거나 깔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부아를 잔뜩 내는 처칠을 찍은 사진처럼, ‘찍히는 사람 삶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이처럼 ‘찍히는 사람 삶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진을 찍으면 겉보기로는 ‘찍히는 사람 숨결’만 드센 듯 여기기 쉽지만, 오래도록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찍는 사람 숨결’이 시나브로 피어납니다.


  사람을 찍든 숲을 찍든 정물을 찍든 늘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내 삶결대로 찍는 사진인 만큼, 내 삶결부터 제대로 읽은 뒤에 즐겁게 찍을 노릇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사진을 찍으면서 ‘무지개’가 됩니다. 한국에서 사진문화가 무지개빛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저마다 다른 사진이기에, 사진이 아닌 사진이 없습니다. 사진이, 사진이 아니면 뭘까요. 이것은 이 사진이고 저것은 저 사진입니다. 4347.9.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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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민주가 조금은 있다고 여겨도 될까? 그림책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가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이 그림책을 읽는 어린이는 앞으로 ‘청소노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아닌 ‘아름답고 멋진 청소노동자’로 살면서 즐겁게 웃고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겠노라 꿈꾸는 어린이가 나타날 수 있을까? 제도권으로 꽁꽁 틀어막힌 사회와 정치를 허물어, 두레와 품앗이로 맑게 빛나는 마을살림을 가꾸는 아름다운 아이들을 머잖아 만날 수 있을까? 어깨동무를 할 때에 비로소 힘이 나고, 사랑스레 어깨동무를 해야 바야흐로 꿈을 이룬다. 미국 청소노동자처럼 한국에 있는 모든 노동자가 딱 석 달만, 또는 딱 석 주만, 또는 딱 사흘만 모든 일손을 놓고 말없이 푯말 하나만 들면 좋겠다. 권력과 돈과 이름을 거머쥔 이들더러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챙기라 하면서 다문 사흘만 모든 일손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4347.9.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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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은 엄마의 파업 이야기
다이애나 콘 글, 프란시스코 델가도 그림, 마음물꼬 옮김 / 고래이야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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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법은 사랑을 지켜 줄 수 있을까. 법을 앞세워 뱃속 아기를 지킬 수 있을까. 법이 있으면 잘못을 바로잡거나 바보스러운 짓을 그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좀 안 될까요》 둘째 권을 읽는다. 사랑을 지키려는 마음이 자라 아이를 아끼는 넋이 부푸는 사람이 나오고, 사랑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나 외로움을 달래려고 짝을 찾는 사람이 나온다. 돈이면 무엇이든 아랑곳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나오며, 돈이 아닌 바로 오늘 이곳에서 누릴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이 나온다. 법은 무엇을 바라보고 누구를 지키며 어떤 길로 나아갈까. 법이 있기에 올바른 사회가 되도록 하는가, 아니면 법을 빌미 삼아서 얄궂은 일이 그치지 않을까. 4347.9.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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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좀 안 될까요 2
아소우 미코토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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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주식회사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블루레이] 몬스터 주식회사 6
데이비드 실버맨 외 감독, 빌리 크리스탈 외 목소리 / 월트디즈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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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주식회사

Monsters, Inc., 2001



  일곱 살 어린이는 〈몬스터 주식회사〉를 어떻게 볼까? 괴물이 나와서 무섭다고 느낄까? 열일곱 살 푸름이는 〈몬스터 주식회사〉를 어떻게 볼까? 괴물들이 귀엽다고 느낄까? 스물일곱 살과 서른일곱 살쯤 되면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 마흔일곱 살이나 쉰일곱 살, 그리고 예순일곱 살과 일흔일곱 살쯤 되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영화에 나오는 ‘몬스터’는 사람과는 다른 곳에서 살며 ‘사람한테서 에너지를 얻는’ 나날을 누린다. 사람 가운데 아이들한테서 에너지를 얻는다. 몬스터는 아이들이 자는 방으로 밤에 몰래 찾아간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놀래킨다. 아이들이 놀랄 적에 나오는 기운을 받아들여 ‘몬스터 나라 에너지’로 삼는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마흔 살이 넘은 어른이 보기에 ‘앙증맞으면서 귀여워’ 보이는 괴물들이 아이한테서 ‘놀라며 내뿜는 기운’을 에너지로 삼는 일은 ‘그럴 만하겠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아이한테서 ‘웃으며 내뿜는 기운’을 에너지로 삼으려 할 적에도 ‘그럴 만하겠다’고 느낀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오늘날 문명사회는 석유와 석탄과 가스처럼 ‘공해물질 내뿜는 지하자원’을 태워서 에너지로 삼는다. 이런 지하자원 에너지는 머잖아 끝장을 보리라고 다들 안다. 그런데 지하자원 에너지를 써야 다국적기업과 재벌기업뿐 아니라 중앙정부가 잇속을 챙긴다. 사람들이 지하자원 에너지에 길들어 얽매이도록 해야, 자립에너지가 퍼지지 못한다. 몬스터가 아이들을 놀래키면서 빼앗는 기운은 바로 지하자원 에너지라 할 수 있다. 나중에 몬스터가 문득 깨달아 아이들을 웃음바다로 이끌면서 나누어 받는 기운은 자립에너지요, 지구별을 아름답게 보듬을 수 있는 손길이다.


  무엇을 보아야 할까. 무엇을 알아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아이들과 어떤 즐거움을 나눌 때에 활짝 웃을 만할까. 우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려는 마음을 품을 때에 기쁘게 노래할 만할까.


  돈을 바라는 기업이나 정부라 할 때에도, 지구별에 아름다운 기운이 감돌도록 하면서 즐겁게 돈을 얻을 수 있다. 굳이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어야만 돈을 얻을 수 있지 않다.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삶을 일구면서 모두 즐겁게 노래하면서 지낼 길이 있다. 생각해 보라.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평화를 지키자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가? 군대와 경찰이 차고 넘치면 지구별은 얼마나 거칠어지거나 메말라지는가? 군대는 평화를 지키지 않고, 경찰은 안전을 돌보지 않는다. 전쟁무기가 아닌 참다운 평화를 가꾸는 데에, 그러니까 숲을 가꾸고 마을을 가꾸는 데에 돈을 들이고 작은 정부와 작은 지자체로 저마다 즐겁게 자립과 독립을 한다면 바로 평화가 된다. 경찰이 아닌 마을살림 돌보는 두레와 품앗이가 있을 노릇이다. 공무원이나 정치꾼이 아닌 ‘마을사람’과 ‘살림꾼’이 있어야 한다.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는 참다운 어른이 있을 때에 평화와 사랑이 싹튼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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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에 시골집 지키기



  내 어버이는 음성이라는 시골에 산다. 한가위나 설날에 어른들한테 인사하러 찾아가는 길은 시골에서 시골로 가는 길이다. 올 한가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로운 말씀을 하신다. 이제 나이도 많이 들고 힘이 들어 더는 차례나 제사를 안 지내겠다고 하신다. 올 한가위에는 다른 곳에 나들이를 가시겠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설과 한가위뿐 아니라 제삿날까지 챙기며 지낸 나날이 마흔 해가 되었을까. 아마 마흔 해에서 몇 해 모자라지 싶다. 이제 두 분은 한결 느긋하면서 조용히 설과 한가위를 누리실 수 있을까.


  올 한가위에는 시골집에서 조용히 보낸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가지 않는다. 전남 고흥에서 이곳을 가기도 저곳을 가기도 퍽 멀다. 어른인 나와 곁님도 고단하지만 아이들은 더없이 고단하다.


  여느 때처럼 한가위 언저리에도 시골집에 있으니 참 조용하다. 참으로 한갓지다. 아마 옛날부터 시골사람은 이렇게 조용하면서 한갓진 나날을 누렸으리라 본다. 차례나 제사는 언제부터 누가 지냈을까? 멧골에서 조용히 지내던 옛사람도 차례나 제사를 지냈을까? 아마 안 지냈겠지. 조선이라는 때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차례나 제사를 지냈을까?


  정치나 사회에서 ‘문화’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시킨 일이 아닌, 시골사람 스스로 누렸던 한가위나 설이란 무엇일까 헤아려 본다. 1200년대에는, 300년대에는, 기원전에는 시골사람이 저마다 어떤 한가위나 설을 누렸을까 궁금하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어떤 낯빛으로 마주하면서 삶을 꽃피웠을까.


  우리 집 두 아이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논다. 그야말로 안 지치고 논다. 밥도 잘 먹고, 놀기도 잘 논다. 이렇게 쉬잖고 노니까, 저녁에 잠자리를 펴면 곧바로 곯아떨어질 테지.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한가위나 설에 함께 일하고 함께 쉬면서 함께 놀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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