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서 오만 원



  머리카락을 묶으려고 고무줄을 찾는다. 책상맡에는 없고 바짓주머니를 뒤지는데 안 나온다. 그런데 바짓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 종이돈이 하나 나온다. 꾸깃꾸깃하다. 며칠 앞서 빨래를 했기에 구겨졌는가 보다. 그나저나 바짓주머니에 왜 5만 원짜리 종이돈이 있을까 아리송하다. 주머니에 5만 원짜리를 넣고 돌아다닌 일은 없을 텐데. 한가위를 앞두고 살짝 서울마실을 했을 적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주머니에 슬그머니 돈을 넣어 주었을까. 찻삯이나 여관삯을 하라며 누군가 몰래 넣어 주었을까. 구겨진 종이돈을 살살 펴면서 생각하는데 실마리는 안 풀린다. 그저 누구이든 무척 고맙다. 내가 내 바지에 이 돈을 넣었다면 나한테 고마울 노릇이고, 서울마실에서 만난 이웃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슬쩍 돈을 찔러 주었다면 이웃한테 고마울 노릇이다. 4347.9.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임금 자리를 지킨 이들 이야기를 더러 책으로 엮기도 하지만, 몇 사람을 빼놓고는 거의 이야기가 없다고 할 만하다. 이와 달리, 임금 곁에서 나랏일을 돌본 사람들 이야기는 으레 책으로 나온다. 임금 자리에 있던 사람들 이야기는 실록이든 무엇이든 발자취가 무척 많이 남았는데, 발자취만으로는 오늘날 우리들한테 딱히 들려줄 수 있는 슬기라든지 넋이 드물기 때문일 테지. 《율곡 이이 평전》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율곡 이이는 딱히 벼슬에 뜻이 없었다고 한다. 벼슬자리에 들어서서 임금한테 이런 말 저런 말 곰곰이 들려주어도 임금이 스스로 거듭나거나 깨어나지 않으면 부질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금 스스로새로 깨어나려는 넋이 아니라면, 곁에서 훌륭하거나 아름다운 말을 들려주어도 달라질 일이 없다. 그러면 오늘날 대통령 곁에 있는 이들은 얼마나 아름답거나 훌륭한 말을 대통령한테 들려주려나. 앞으로 삼백 해나 오백 해쯤 지나서 이야기책 주인공이 될 만한 관료는 있을까 궁금하다. 우리 뒷사람이 널리 기리거나 섬길 만큼 훌륭하거나 아름답게 삶을 갈고닦은 행정관료나 정치관료가 있을는지 궁금하다. 오늘날 관료들은 선거철에만 반짝거리는 인기 연예인 노릇만 하지 싶다. 대통령도 똑같다. 4347.9.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율곡 평전- 조선 중기 최고의 경세가이자 위대한 스승
한영우 지음 / 민음사 / 2013년 2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4년 09월 12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작은 평화 - 한대수 사진집
한대수 지음 / 시공사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89



노래하며 사진을 찍으렴

― 작은 평화

 한대수 사진

 시공사 펴냄, 2003.11.12.



  한대수 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한대수 님은 스스로 즐겁게 살면서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고 스스로 즐겁게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사는 사람은 거리낄 일이 없습니다. 즐거우니까요. 즐거움을 생각하니까요. 즐겁게 노래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즐겁습니다. 마음속에 오직 즐거움을 담으면서 노래하니 다 같이 즐겁습니다. 이제 사진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어떤 모습을 담을까요? 즐겁게 찍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삶이 슬프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야말로 슬픕니다. 슬픈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모두 슬픔에 젖습니다. 슬픈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면 어떠할까요? 찍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슬픔에 젖겠지요.


  사랑을 담아 노래를 부르면, 서로서로 사랑을 나눕니다. 사랑을 담아 글을 쓰면, 서로서로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사랑을 담아 사진을 찍으면, 너와 내가 모두 사랑을 누립니다.


  사진에는 좋거나 나쁜 빛이 없습니다. 어떻게 찍든 모두 사진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 사진이고, 스스로 살아가는 대로 담기는 빛입니다. 즐겁기에 더 좋지 않고, 슬프기에 더 나쁘지 않습니다. 기쁘기에 더 낫지 않으며, 아프기에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작은 평화》(시공사,2003)라는 사진책을 읽습니다. 평화라면 평화일 테지만, 이 사진책은 굳이 ‘작은 평화’입니다. 평화라 한다면 너른 평화나 큰 평화라 할 수 있을 텐데, 한대수 님은 이녁 사진책을 ‘작은 평화’로 이름을 붙여서 선보입니다.


  한대수 님은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 순간들을 포착한 것이다(책머리에).” 하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한대수 님 마음을 건드린 모습들은 ‘작은 평화’인 셈입니다. 언제나 ‘작은 평화’를 그리는 삶이고, 날마다 ‘작은 평화’를 떠올리는 삶이며, 노래를 부르거나 사진을 찍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랑을 속삭이거나 ‘작은 평화’를 바라는 삶입니다.


  ‘작은 평화’란 무엇일까요. 밥 한 그릇이 자그맣게 평화입니다. ‘작은 평화’는 어디에 있을까요. 한뎃잠을 자든 공원 긴걸상에 누워서 자든 호텔에 깃들어 자든 40층 아파트에서 자든 모두 자그맣게 평화입니다. 머리를 붉게 물들이든, 태어날 적부터 붉은 머리카락이든, 저마다 자그맣게 평화예요.


  자그마한 평화는 어디로 갈까요. 자그마한 평화는 자그마한 사랑으로 나아갈 테지요. 자그마한 사랑은 어디로 갈까요. 자그마한 사랑은 자그마한 꿈으로 나아가겠지요. 자그마한 꿈은 어디로 갈까요. 자그마한 꿈은 자그마한 샘물처럼 퐁퐁 솟아서 자그마한 냇물을 이루다가 자그마한 바닷가로 흘러들어 자그마한 노래로 거듭나리라 느껴요.






  노랫가락에 평화로운 숨결이 서립니다. 사진 한 장에 평화로운 마음이 꿈틀거립니다. 노랫가락에 따사로운 숨결이 깃듭니다. 사진 한 장에 따사로운 넋이 자랍니다.


  사진책 《작은 평화》를 찬찬히 읽고 나서 첫 쪽으로 돌아갑니다. 한대수 님이 책머리에 적은 글을 다시 읽습니다. “나는 뉴요커다. 이 변화무쌍한 혼돈의 도시에서 나는 이혼을 하고, 재혼도 하고, 연애도 하고, 시련을 겪으며, 차이나타운에서 업타운까지 거대한 애버뉴의 길목마다 지울 수 없는 추억을 새겨 왔다(책머리에).”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한대수 님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뉴욕에서 무척 오래 지냈습니다. 요즈음은 한국에서 늦둥이를 낳아 싱글벙글 지내시지 싶습니다. 그동안 뉴욕에서 평화를 꿈꾸며 노래를 부르던 삶을 사진으로 담아 《작은 평화》를 선보였다면, 앞으로는 ‘양호’와 함께 꿈꿀 평화를 노래하면서 사진을 한 장 두 장 선보일 테지요.


  아름답게 꿈꾸며 노래합니다. 아이들이 이 땅에서 아름답게 꿈꾸며 노래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게 꿈꾸며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들이 이 지구별에서 아름답게 꿈꾸며 사랑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꿈을 꾸기에 아름다움으로 나아가고, 사랑을 속삭이기에 아름다움을 스스로 빚습니다. 꿈을 꾸며 아름다움으로 나아가기에 노래가 샘솟고, 사랑을 속삭이기에 노래 한 가락 즐겁게 부르면서 한손에 사진기를 쥐고 다른 한손에 연필을 쥡니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과 함께 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묶음표 한자말 196 : 교행交行



상하행 밤열차가 교행交行하는 순간

《류인서-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창비,2005) 13쪽


 교행交行​하는 순간

→ 엇갈리는 때

→ 서로 지나치는 때

→ 오가는 때

 …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交行’이라는 한자말은 안 나옵니다. 그러니, 이 한자말을 한자로 ‘交行’이라 적더라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에 ‘郊行’이라는 한자말이 나와요. 이 한자말은 “교외로 나감”을 뜻한다고 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교외(郊外)’는 “도시에서 주변 지역”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 도시 바깥으로 나가는 일을 두고 ‘郊行’이라 할 수 있구나 싶기는 한데, 이런 말을 누가 쓸는지 아리송합니다. 이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보기글을 보면, 밤열차가 위와 아래에서 오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때에는 “오가는 때”로 손보면 됩니다. 밤열차가 이쪽과 저쪽에서 지나갈 테니, “서로 지나치는 때”로 손볼 수 있고, 이쪽과 저쪽에서 지나가는 모습이기에 “엇갈리는 때”로 손볼 만합니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밤열차가 이쪽저쪽에서 엇갈리는 때


‘상하행(上下行)’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다만, ‘상행’과 ‘하행’은 따로 씁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두 한자말을 더하여 ‘상하행’을 썼구나 싶은데, “위아래로 달리는”으로 다듬거나 “이쪽저쪽으로 달리는”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순간(瞬間)’은 ‘때’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0. 졸업장



  소설쓰는 김훈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나는 이분이 쓴 책이나 글을 거의 안 읽습니다. 어쩐지 나한테는 안 맞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쓴 책이 새로 나와도 궁금하지 않을 뿐 아니라, 책이 새로 나온 줄 아예 모릅니다.


  엊그제인데, 이웃 한 분이 한 가지 이야기를 알려줍니다. 소설쓰는 김훈이라는 분이 1980년대에 ‘전두환 찬양 기사’를 무척 많이 썼고, 2000년대가 넘은 뒤에는 ‘여성비하’와 ‘인종차별’ 이야기를 줄줄이 쏟아놓았다고 알려줍니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전두환 찬양 기사’가 궁금해서 살펴보니, 참으로 그악스러운 ‘전두환 용비어천가’를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전두환 용비어천가’를 놓고 소설쓰는 김훈을 비판하거나 나무라거나 꾸짖은 사람은 매우 드문 듯합니다.


  그나저나, 소설쓰는 김훈이라는 분은 2000년 10월 5일치〈한겨레21〉하고 만난 자리에서 아마 처음으로 ‘전두환 찬양 기사 자기고백’을 했지 싶습니다. 이 때문에 〈시사저널〉 편집장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했다는데, 2002년에 〈한겨레〉 사회부 기자로 특별채용이 되어요. 조금 더 알아보니, 소설쓰는 김훈은 〈한겨레〉에 특별채용으로 들어간 일을 나중에 이야기하는데, 신문사에 들어가니 이녁더러 ‘대학교 졸업 증명서’를 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 증명서’는 없고 ‘고등학교 졸업 증명서’는 있으니 그것을 주면 되느냐고 물었다고 해요. 소설쓰는 김훈은 대학교에 살짝 발을 담근 적이 있으나 그만두었기에 ‘고졸 학력’입니다.


  이 대목을 알아보고 나서 문득 내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나도 ‘고졸 학력’입니다. 나는 1999년 2월에 〈한겨레〉 이사 한 분한테서 ‘특별채용’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무렵까지 〈한겨레〉에 없던 특별채용이라고 했는데, ‘신문배달을 하던 젊은이를 기자로 채용’하려고 했어요. 그때에 〈한겨레〉 이사로 있던 분은 나한테 ‘대학교 졸업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교육이 너무 부질없고 제대로 학문을 닦지 않는다고 여겨 자퇴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겨레〉 이사로 있던 분은 ‘한겨레는 학력제한을 두지 않으니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한겨레〉에 못마땅하게 여긴 대목이 있었어요. 특별채용을 한다니 무척 기뻤습니다만, 입사시험 자격으로 토익 점수를 내라 했어요. 그래서 이 대목을 여쭈었지요. 학력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하면서 토익 점수를 내라고 한다면, 지원자는 처음부터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하는 셈 아니냐고, 영어 시험을 보려 하면 ‘1:1 면접’으로 영어 시험을 보아야 하지 않느냐고 여쭈었습니다. 특별채용이니 입사시험을 안 치러도 되지만, 나처럼 ‘고졸 학력’으로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테니, 그런 조항이 사라져야 한다고 느꼈어요. 졸업장이 아닌 스스로 갈고닦은 솜씨로 서류를 내고 입사시험을 치를 수 있어야 올바르니까요. 그때 〈한겨레〉 이사로 있던 분은, ‘젊은이 말이 맞는데, 회사 규칙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마운 제안을 받고 나서 곰곰이 헤아렸습니다. 신문배달을 이제 그만두고 신문기자가 되느냐 하는 갈림길이었습니다. 엉성한 회사 규칙은 회사에 들어가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 대목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토익 점수’를 바라는 일은 ‘대학교 졸업장’을 바라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학력제한이 없다는 말은 허울입니다. 허울을 스스로 없애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신문이 될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신문이 될 수 없다면, 〈한겨레〉가 아무리 올바른 목소리로 ㅈㅈㄷ신문을 나무라거나 꾸짖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올바른 삶이나 넋이 못 됩니다.


  “말씀이 무척 고맙지만, 아무래도 고졸 학력을 넉넉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직이지 싶어서, 이사님 제안은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한겨레〉 기자가 되는 꿈은 접어야겠습니다. 오늘 술이나 한잔 사 주셔요. 신문배달 월급으로는 술도 못 사 마십니다.”


  소설쓰는 김훈이라는 분은 ‘고졸 학력’이면서 어떻게 신문기자 노릇을 했을까요? 1970년대 신문사에서는 학력제한이 없었을까요? 소설쓰는 김훈은 그무렵에 특별채용으로 뽑혔을까요? 글을 잘 쓰기만 하면 누구라도 신문기자가 될 수 있을까요?


  졸업장은 사람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자격증은 사람을 밝히지 못합니다. 졸업장은 학교를 마친 증명일 뿐입니다. 학교를 마쳤기에 더 많이 배우거나 잘 알지 않습니다. 자격증이 있기에 기계를 더 잘 다룬다든지 어떤 지식이 더 빼어나지 않습니다.


  아기는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졸업장을 묻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차린 밥을 먹으면서 어버이한테 자격증을 묻지 않습니다. 졸업장이 있어야 문학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자격증이 있어야 신문을 만들어 기사를 쓸 수 있지 않습니다. 그뿐입니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내 마음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