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29) 후하다厚 1 : 후한 값


그들이 후한 값을 제시했지만, 그래도 도라 잭슨은 팔지 않았다

《팀 윈튼/이동욱 옮김-블루백》(눌와,2000) 99쪽


 후한 값을 제시했지만

→ 좋은 값을 불렀지만

→ 값을 넉넉히 말했지만

→ 넉넉히 쳐주겠다고 했지만

 …



  ‘두텁다’나 ‘많다’를 가리키는 한자 ‘厚’입니다. 그래서 한국말사전에 실린 외마디 한자말 ‘厚하다’ 뜻풀이 (2)을 보면, “두께가 매우 두껍다”라는 대목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두께가 두꺼운 모습을 가리킬 때에 ‘후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지요? 두꺼우니 ‘두껍다’고 하거나 ‘두툼하다’고 할 뿐입니다.


 인심이 후하다 → 마음이 넉넉하다 / 마음씀이 넓다

 학점이 후한 → 학점을 잘 주는

 보수가 후하다 → 일삯을 많이 준다 / 품삯을 잘 준다


  마음을 너그럽게 펼치는 사람들은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마음씀이 넉넉하다고 느끼면, 이이는 ‘넉넉한’ 사람입니다. 학점을 넉넉하게 주는 교수는, 학점을 ‘잘’ 주거나 ‘많이’ 주는 셈입니다. 일삯을 많이 준다고 할 때에는, 일꾼이 ‘넉넉하게’ 쓸 수 있도록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4337.11.24.물/4341.7.20.해/4347.9.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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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좋은 값을 불렀지만, 그래도 도라 잭슨은 팔지 않았다


“값을 제시(提示)했지만”은 “값을 불렀지만”이나 “값을 말했지만”으로 다듬어 줍니다.



후(厚)하다

1. 마음 씀이나 태도가 너그럽다

   - 인심이 후하다 / 그 교수는 학점이 후한 편이다 / 보수가 후하다

2. 두께가 매우 두껍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158) 후하다厚 2 : 요츠바는 후해


“그럼, 특별히 데리고 가 주지.” “요츠바는 참 후하구나.” “요츠바는 후해.”

《아즈마 키요히코/금정 옮김-요츠바랑! 7》(대원씨아이,2008) 159쪽


 요츠바는 참 후하구나

→ 요츠바는 참 넉넉하구나

→ 요츠바는 참 마음이 넓구나

→ 요츠바는 참 너그럽구나

 …



  어른이 아이를 보며 ‘후하다’고 말합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들은 ‘후하다’를 따라서 말합니다. 어른이 아이를 보며 ‘넉넉하다’고 말했으면, 아이는 ‘넉넉하다’고 말했겠지요. 어른이 아이를 보며 ‘너그럽다’고 말한다면, 아이는 ‘너그럽다’는 말을 꺼냈을 테고요.


 요츠바는 참 착하구나 ↔ 요츠바는 착해

 요츠바는 참 멋지구나 ↔ 요츠바는 멋져

 요츠바는 참 좋구나 ↔ 요츠바는 좋아

 요츠바는 참 예쁘구나 ↔ 요츠바는 예뻐


  어른들은 누구나 아이들 앞에서 주고받는 말을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외치는 말과 끄적이는 글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귀담아듣습니다. 아이들은 늘 어른들 이야기를 귀여겨듣습니다.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들은 말을 하나하나 몸에 삭혀서, 이 말대로 이야기를 읊거나 글을 한 줄 두 줄 씁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과 쓰는 글은 어른들이 하는 말과 쓰는 글이 바탕이 됩니다. 어른들이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아이들 말과 글 또한 일제강점기 찌꺼기말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이러면서도 아이들은 저희 말씨와 글씨가 어떠한가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어릴 적부터 듣거나 말하거나 배운 말이라고 느낄 뿐입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는 책은 교과서이든 동화책이든 만화책이든, 말과 글이 얼마나 올바르고 알맞고 살갑고 고운가를 꼼꼼히 살피고 거듭 살펴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얄궂은 말투에 익숙하거나 길들어 버리면, 이 말투를 나중에 고치거나 바로잡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한번 입에 익은 말을 왜 바꾸어야 하느냐고 따지겠지요. 애서 손에 익은 글을 왜 고쳐야 하느냐고 묻겠지요. ‘어른들이 나한테 이런 말을 가르치지 않았어?’ 하고 따지거나 ‘어른들은 이런 글을 안 고치고 그대로 쓰잖아?’ 하고 묻겠지요. 4341.7.20.해/4347.9.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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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번만큼은 데리고 가 주지.” “요츠바는 참 너그럽구나.” “요츠바는 너그러워.”


‘특별(特別)히’는 ‘이번만큼은’이나 ‘이번에는 남달리’로 손질해 봅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31) 후하다厚 3


넌 나의 행운의 클로버야! 얘야, 하나 골라 보렴. 내가 값은 후하게 깎아 줄게

《미셸 코르넥 위튀지/류재화-모자 대소동》(베틀북,2001) 38쪽


 후하게 깎아 줄게

→ 넉넉히 깎아 줄게

→ 얼마든지 깎아 줄게

→ 아주 싸게 줄게

 … 



  값을 ‘넉넉하게’ 깎아 준다면 어떻게 깎는 셈일까 헤아려 봅니다. 아주 많이 깎아 줄까요. 부르는 대로 깎아 줄까요. 얼마든지 깎아 준다는 뜻일까요. 그러니까, 매우 싸게 준다는 뜻일까요. 어느 쪽을 가리키거나 뜻하는지 차근차근 밝혀서 알맞게 쓰기를 바랍니다. 4347.9.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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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게 행운을 부른 토끼풀이야! 얘야, 하나 골라 보렴. 내가 값은 얼마든지 깎아 줄게


“나의 행운의 클로버(clover)”는 “내게 행운을 부른 토끼풀”이나 “나한테 행운을 가져온 토끼풀”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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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98) 안 7


어머니와 아버지는 바다에서 실종되었어요. 나 혼자 남았어요. 나는 커튼을 내리고 내 방 안에 있었지요

《아놀드 로벨/엄혜숙 옮김-코끼리 아저씨》(비룡소,1998) 7쪽


 내 방 안에 있었지요

→ 내 방에 있었지요



  ‘방’이라는 곳에는 문이 있고 벽으로 막힌 곳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으레 “방 안에서 놀아라”처럼 말을 하지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투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방에서 놀아라” 하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더 생각해 보셔요. “얘야, 마루에서 자지 말고 방에서 자야지.”처럼 말합니다. “밥을 집에서 먹을까, 나가서 먹을까?” 하고 말하겠지요. “밥을 집 안에서 먹을까?”처럼 말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내 방에는 인형이 많이 있어요.”라든지 “내 방은 책이 많아서 도서관 같아요.”처럼 말합니다. ‘방 안’처럼 쓰지 않습니다. 4347.9.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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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버지는 바다에서 사라졌어요. 나 혼자 남았어요. 나는 커튼을 내리고 내 방에 있었지요


‘실종(失踪)되었어요’는 ‘사라졌어요’로 다듬습니다. ‘커튼(curtain)’은 영어이지만, 딱히 다듬을 낱말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월에서 다듬으려 한다면 “나는 창문을 가리고”나 “나는 창문을 천으로 가리고”로 고쳐쓰면 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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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97) 가끔씩 2


우리는 서로 가끔씩 만나자고 약속을 했어요

《아놀드 로벨/엄혜숙 옮김-코끼리 아저씨》(비룡소,1998) 64쪽


 가끔씩 만나자고

→ 가끔 만나자고



  ‘가끔’이라는 낱말에 ‘-씩’을 붙일 수 없지만, 이를 깨닫지 못한 채 붙이는 어른이 아주 많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한국말을 잘 모르기에, 어른들이 한국말을 잘못 쓰면 그대로 따라합니다. 아이들은 옳거나 그르다고 가리지 않고 모두 배웁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는 어른이나, 외국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어른이라면, 한국말을 더 찬찬히 살펴서 다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두 마디라고 여겨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잘못 쓰는 낱말 하나 때문에 아이들한테 엉뚱한 말씨가 퍼집니다. 어린이문학은 아름다운 이야기뿐 아니라 한국말을 슬기롭고 올바르게 가르치는 길동무 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4347.9.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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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가끔 만나자고 다짐을 했어요


‘약속(約束)’이라는 한자말은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만, ‘다짐’으로 손볼 수 있어요. 또는 덜어낼 수 있습니다. 보기글에서는 “만나자고 했어요”처럼 적으면 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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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사랑하는 마음



  둘레를 살펴보면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랑을 다루는 문학이나 영화나 연속극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사랑대로 그리는 일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말하려는 사람들 가운데 참으로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란 살섞기가 아닙니다. 살을 섞는 일은 ‘살섞기’입니다. 돈을 바라보며 ‘정략 결혼’을 한 사람이 ‘그래도 너를 사랑했어’ 하고 말하는 연속극이나 영화나 문학이 참 많습니다. 이러한 자리에 나오는 사랑은 참말 사랑일까요? 아닙니다.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속마음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읊는대서 사랑이 되지 않아요. 마음이 참다이 움직일 때에 사랑입니다. 마음이 곱게 흐르고, 마음이 착하면서 따스할 때에 사랑이에요.


  사랑이란 나와 네가 서로 아끼는 마음입니다. 사랑이란 나와 네가 서로 살뜰히 보살피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이란 나와 네가 서로 그리면서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이란 나와 네가 서로 섬기면서 북돋우는 마음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가장 흔하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까닭은, 바로 ‘사랑’이 삶을 살찌우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기에 삶이 빛나며, 사랑이 있어서 삶이 즐겁습니다. 사랑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신나게 몰면서 자라고, 사랑을 보듬으면서 어른들은 저마다 제 꿈을 찾아 씩씩하게 일합니다.


  학문을 할 때에도 참다운 사랑을 가슴에 품습니다. 참다운 사랑을 가슴에 품는 사람은 학문을 하면서 올바르게 섭니다. 참다운 사랑을 가슴에 품지 않는 사람은 이른바 관변학자가 되거나 사대주의에 사로잡히거나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일 때에 부역을 하는 지식인이 되어요.


  과학을 하는 사람이 참다운 사랑을 안 품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는 과학이 과학 아닌 전쟁무기 만드는 끔찍한 길을 걸을 테지요. 유전자를 건드린 씨앗을 퍼뜨려 지구별 곡물재벌이 온 나라를 망가뜨리면서 환경재앙을 일으켜는 앞잡이 구실을 합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 참다운 사랑을 품지 않을 때에는 사회를 어지럽힙니다. 뒤에서 검은 돈을 빼돌리는 짓을 합니다. 경제를 하는 사람은 어떠할까요. 참다운 사랑이 없이 경제를 한다면, 사회를 어떻게 일그러뜨릴까요.


  오자와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빛 숟가락》(학산문화사 펴냄)이 있습니다. 2014년 9월에 일본에서는 10권까지 나왔고, 한국에서는 6권까지 한국말로 나옵니다. 한국말 번역이 느려서 아쉬운데, 6권을 읽으면 앞선 다섯 권과 사뭇 다른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 만화책에는 ‘리츠’라는 젊은 사내가 주인공인데, 이 젊은이는 ‘낳은 어머니’와 ‘기른 어머니’가 다릅니다.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낳은 어머니’가 있는 줄 처음 알아차립니다. 만화책 6권째에 이르러, 이 젊은이는 ‘낳은 어머니’가 궁금해서 찾아갑니다. ‘기른 어머니’는 더없이 따스한 사랑으로 품으면서 돌보았어요. 굳이 ‘낳은 어머니’를 찾아야 하지 않지만, 이 젊은이를 낳은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는지, 어떤 사랑이었을는지 궁금했어요. 아기였을 때 있었다는 위탁시설에 찾아가니, “성장한 당신이 본인 의지로 만나러 와 준 걸 안다면 분명 당신을 낳아 준 부모님도 기뻐하실 거예요(46쪽).”와 같은 말을 듣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눈물을 지어요.


  자, 이제 어떻게 할까요. 곧바로 ‘낳은 어머니’한테 찾아갈까요. 쉽지 않겠지요. 어느 날, 도시락을 싸서 대학교에 공부하러 간 날, 마침 낮에 말미가 납니다.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없습니다. 문득 ‘낳은 어머니 주소’를 받은 일을 떠올립니다. 천천히 걸어서 그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 ‘낳은 어머니’가 사는 곳에서 ‘낳은 어머니’는 못 만나고, 아마 ‘낳은 어머니가 낳았구나 싶은 어린이’를 만납니다. 만화책 주인공인 젊은이는 “동생일지 모르는 이 어린 남자아이가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150∼151쪽).” 하고 속으로 말합니다. 젊은이를 낳은 어머니는 나중에 동생을 낳았는데, 이 아주머니는 동생인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요. 젊은이한테 동생인 아이는 집에서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 얻어 먹습니다. 집에서 굶기 일쑤입니다. 마침 젊은이가 싼 도시락이 있어 ‘동생이로구나 싶은 아이’한테 건넵니다.


  ‘기른 어머니’와 ‘기른 어머니가 낳은 동생’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 저녁에, 젊은이는 마음이 몹시 무겁습니다. 저를 낳은 어머니하고 함께 살았다면 어떤 나날이었을까 싶으면서, 저를 기른 어머니가 두 동생하고 누리는 따사롭고 포근하면서 아름다운 삶이 즐거우면서 괴롭고 말아요.


  젊은이는 이튿날 다시 도시락을 쌉니다.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좋아하고 기뻐할 만한 도시락을 앙증맞게 쌉니다. 그러고는 이 도시락을 들고 ‘동생이로구나 싶은 아이’한테 찾아가서 건넵니다. ‘동생이로구나 싶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살며시 안으면서 마음속으로 다시 생각하지요. “하지만 지금은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엄마에게선 아이스크림 하나밖에 얻지 못한 이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을지, 대체 뭘 할 수 있을지, 그것뿐이다(186쪽).”


  사랑은 언제나 따스합니다. 따스하지 않은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넉넉합니다. 넉넉하지 않은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즐겁지 않거나 웃음을 불러들이지 않거나 노래가 흐르지 않는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인가 아닌가를 알려면 이 대목을 헤아리면 돼요. 따스한가요? 넉넉한가요? 즐거운가요? 웃음이 피어나나요? 노래가 흐르나요?


  바닷속에 가라앉은 아이들은 몹시 아프고 슬픕니다. 이 아이들을 품을 수 있으려면 사랑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이런 이론도 저론 논평도 부질없습니다. 한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면 이 나라 시골마을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는 넋으로 맺어야 합니다. 돈이나 이익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사랑을 품지 않은 채 저질렀기에 4대강사업이 막나갔습니다. 사랑을 담지 않은 채 밀어붙이기에 밀양과 청도에서 송전탑 때문에 앓는 이웃이 많습니다. 사랑을 키우지 않으면서 때려짓기에 핵발전소가 크게 말썽거리가 됩니다. 지구별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아이들과 숲과 이 땅과 우리 삶을 사랑한다면, 엉터리 짓이나 멍청한 일을 벌일 수 없어요. 부디 이 나라에 사랑이 흐르기를 빌어요. 아무쪼록 우리 스스로 사랑을 가꾸기를 빌어요. 4347.9.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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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난자몬자 4
이토 시즈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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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79



서로 그리는 사람

― 수수께끼 난자몬자 4

 이토 시즈카 글·그림

 이지혜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3.24.



  손전화나 삐삐가 없던 예전에는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으면 몇 시간쯤 기다리곤 했습니다. 오래 기다려야겠다 싶으면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을 챙기기도 합니다. 아예 책방에서 만나거나 기다리기로 한 뒤, 책방에 서서 책을 읽기도 하고, 책방에서 이런 책 저런 책을 살피면서 ‘곧 만나기로 한 사람한테 선물할 책’까지 고르기도 합니다.


  삐삐를 지나 손전화를 두루 쓰는 오늘날에는 누군가를 몇 시간쯤 기다리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누군가 찾아오기까지 여러 날 기다리는 일도 없지 싶어요. 왜냐하면, 기다릴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걸거나 쪽글을 보내면 돼요. 오늘날은 서로서로 곧바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만나고 다시 곧바로 헤어지는 오늘날에는 서로 어떻게 만난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기다릴 일이 없는 만큼, 만날 때뿐 아니라 헤어질 적에도 아쉬움이란 하나도 없겠지요. 아무리 멀리 떨어졌어도 손전화를 켜거나 인터넷을 열면 바로바로 닿을 수 있어요. 오늘날 이 지구별에서 만남과 헤어짐이란 무엇일까요.



- “아아아, 빌어먹을!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야! 그저 무사히 전쟁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사지 멀쩡하게 가족 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이들을 이 손으로 안아 준다, 그것만을 바랐을 뿐인데.” (21쪽)

- “타로라면 어쩌겠나? 갑자기 사라진 사람을, 몇 십 년이나 변함없이 기다릴 수 있겠어?” “물론이죠! 소중한 사람이면 몇 십 년이건 기다릴 수 있어요!” (57쪽)





  이토 시즈카 님 만화책 《수수께끼 난자몬자》(삼양출판사,2014) 넷째 권을 읽습니다. 세 해 만에 넷째 권이 한국말로 나옵니다. 《수수께끼 난자몬자》 넷째 권에서는 작은 섬마을에 모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삶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넌지시 짚습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몸이 아주 작게 줄어들어 어디로도 못 가고 거의 숨다시피 지내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몸이 아주 작게 줄어들다 보니, 몸이 줄어들지 않은 사람은 이들대로 그동안 늘 마주하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다시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그리거나 가슴에 아픔을 품은 채 지냅니다. 두 사람은, 그러니까 몸이 줄어든 사람하고 몸이 그대로인 사람은 어떤 삶이 될까요. 몸이 줄어든 사람은 먼발치에서 몸이 그대로인 사람을 지켜봅니다. 몸이 그대로인 사람은 몸이 줄어든 사람을 볼 길이 없고 알 길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쉰 해 따로 떨어져서 저마다 살아가는데, 어떤 마음이 될까요.



- “허나 현실 세계에선, 그렇게 아름다운 일은 생기지 않아. 떠난 사람은 시간과 함께 잊혀지지. 나한테는, 이제 돌아갈 장소 따위 없다. 그래서 나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죽었다고 하면 마음도 없지. 이 땅의 흙이나 돌과 매한가지인 것, 그저 비바람을 맞으며 그저 맥박이 잠잠해지는 날을 기다리면 돼.” (58∼59쪽)




  사랑은 국경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별이나 졸업장이나 돈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만 바라봅니다. 사랑바라기를 하기에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다른 것을 볼 테지요. 이를테면 몸매를 본다든지 얼굴을 본다든지 돈을 본다든지 이름값을 본다든지 다른 것을 보겠지요.


  다른 것을 보는 사람한테는 사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을 보거든요. 사랑을 이루고 싶다면 참말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내려놓고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오로지 사랑을 보아야 사랑을 이루는데, 다른 것을 죄 움켜쥐고는 사랑이 안 이루어진다고 말해 본들 아주 부질없습니다.



- “아줌마, 얼굴은 예쁜데 무지하게 나쁜 악당이었구나!” (121쪽)

- “어쩜 이렇게 심한 짓을 할 수 있어? 이 목걸이엔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걸려 있어! 이게 없으면 다들 소인이 돼 버린다구!” (134쪽)

- ‘엄마는 외로운 사람이야.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사람 마음까진 살 수 없는데!’ (139쪽)





  만화책 《수수께끼 난자몬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문득 되돌아봅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무렵, 군대에 끌려간 사람이나 군대에 휘말리지 않으려던 사람이 작고 외진 섬에 조용히 깃들었습니다. 전쟁이 얼른 끝나기를 기다렸어요. 불구덩이 전쟁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는데, 외려 몸뚱이가 작아지고 말았어요.


  몸이 안 작아진 사람은 아마 ‘전쟁통에 죽었겠거니’ 하고 여길 수 있습니다. 전쟁이란 참 모질고 끔찍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참으로 그렇지요. 몸이 작아지지 않더라도 전쟁 불길에 휩쓸리면 그만 죽어요. 내가 일으킨 전쟁이 아니건만, 내가 깃든 나라에서 일으킨 전쟁은 나와 이웃 모두를 죽음 소용돌이에 몰아넣습니다.


  왜 정부는 전쟁을 일으켰을까요. 왜 정부는 군대를 키워서 전쟁을 벌이려 할까요. 왜 정부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다시 군대를 키워 전쟁무기를 잔뜩 갖출까요. 왜 평화로 나아가려는 정부는 없을까요. 왜 전쟁무기와 군대 모두를 버리거나 내려놓는 정부는 없을까요. 평화하고 동떨어진 군대와 전쟁무기를 잔뜩 갖추기 때문에 평화가 안 찾아오는 줄 깨닫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 “이렇게 작아질 운명이라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우리한텐 작은 친구들이 잔뜩 생겼잖아!” (180쪽)




  손전화와 삐삐가 없던 지난날을 가만히 그립니다. 집전화만 있던 지난날, 동무네 집에 전화를 걸며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어디에서 놀자고 말을 하면 어디로 달려갑니다. 몇 시 몇 분에 만나자는 말이 없이 그냥 ‘어느 곳’을 말하는데, ‘어느 곳’조차 ‘거기’라고 할 뿐, 딱히 어느 곳이라고 짚지 않습니다. ‘이따 놀자’고 하면 ‘이따’가 언제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따’가 되도록 혼자 놀거나 다른 동무하고 놉니다. ‘낮에 보자’라든지 ‘아침에 보자’고 하면 몇 시인지 모르지만, 그냥 서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조용히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기다리면서 사람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골목집을 구경하거나 하늘을 구경합니다. 바람내음을 맡고, 골목 어디에선가 흐르는 꽃내음을 맡습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함께 놀면 얼마나 즐거울까를 생각하고, 무엇을 하며 놀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는 마음이 있으니 그립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사랑스럽습니다. 마음밭에 꿈을 담고, 마음자리에 이야기를 심습니다. 서로서로 마음으로 따사롭게 그리기에 즐겁게 만납니다. 서로서로 마음으로 따뜻하게 그리기에 즐겁게 만난 뒤 아쉬움을 듬뿍 안고 헤어지면서도 두근두근 북돋우는 가슴에 끝없이 샘솟는 예쁜 이야기가 있습니다. 4347.9.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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