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좀 안 될까요 2
아소우 미코토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75



안 되기는 뭐가 안 되니

― 어떻게 좀 안 될까요 2

 아소우 미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0.12.25.



  아소우 미코토 님 만화책 《어떻게 좀 안 될까요》(시리얼,2010) 둘째 권을 읽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내가 왜 이 만화책을 읽는가 했더니, 나는 이 만화책에 붙은 이름 ‘어떻게 좀 안 될까요’와 같은 말을 몹시 싫어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살았습니다.



- “우린 늘 랏코의 도움을 받고 있다 보니, 랏코가 이상한 남자에게 걸리는 건 싫거든요.” (13쪽)

- “생각 없이 덜컥 수임하고는 후회 중인가?” “아니요, 전혀! 그런 비겁자는 내가 꽁꽁 묶어서라도 끌고 와, 책임지게 해 주겠어요!” “책임이 있는 건 남자만이 아니잖아. ‘낳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인데.” “그 남자 입에 발린 소리만 하고 도망쳤잖아요? 그녀는 그 사람 입장까지 그렇게 신경써 주는데.” “그야, 남자에게 양육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지면 손해잖아?” (24쪽)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는 내 이웃이나 동무한테 ‘어떻게 좀 안 될까?’ 하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한 차례도 이런 말을 안 썼습니다. 같이 하기를 바라면 ‘같이 하자!’ 하고 말하지, ‘어떻게 좀 안 될까?’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안 될 줄 뻔히 아는 일이면 처음부터 안 바랍니다. 나 스스로 그런 일이 안 내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좀 안 될까요?’ 하고 말하면서 묻는 사람은 거의 똑같은 모습입니다. 잘못을 했거나 올바르지 않은 길을 그대로 이으려고 할 적에 으레 이런 말을 씁니다.


  잘못을 했으면 뉘우치면 됩니다. 잘못을 했으니 뉘우칠 노릇입니다. 올바르지 않은 길을 여태 걸었으면, 이제부터 올바른 길을 찾아서 씩씩하게 걸어가면 됩니다.


  사람들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그마치 예순 해에 걸쳐 엉터리로 살았다 하더라도 예순한 해째부터 지난 잘못을 말끔히 씻어서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이녁 삶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예순 해나 엉터리로 살았지만, 예순한 해째에 크게 깨우쳐서 지난 모든 잘못을 씻으면서 아름답게 거듭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얼마나 대단하면서 멋질까요?


  처음부터 아름답게 살아도 아름답지요. 그러나, 잘못을 스스로 씻으면서 아름답게 살려고 해도 아름답습니다. 예순 해씩이나 잘못된 길을 걸었으니 앞으로도 그냥 잘못된 길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참으로 안쓰럽고 바보스럽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해 봐요. 예순 해를 아름답게 살았다가 예순한 해째부터 바보스럽게 산다면? 이때에는 이런 사람을 바라보며 모두들 안타깝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변절’이라는 낱말을 쓰기도 합니다. 민주와 자유를 지키는 일에 오래도록 몸바치다가 마지막에 가서 수구 기득권 세력에 빌붙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 “엄청 노력했을 거야, 그녀. 그런 식으로 비자를 따서 전문직에서 일하고 있다니, 아주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왔을 거라고.” (30쪽)

- “인지를 청구해 주세요. 그 사람에게 버림받은 이상 내게 소중한 건 이 아이뿐. 내가 부인에게 고소를 당하는 한이 있어도 상관없고,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돈을 내겠어요. 이 아이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하겠어요.” (36쪽)



  아소우 미코토 님 만화책 《어떻게 좀 안 될까요》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헤아려 봅니다. 법을 다루는 만화책입니다만, 이야기를 법으로 풀지는 않습니다. 법 이야기를 살살 곁들입니다만, 법으로 삶을 풀지는 않아요. 삶은 삶으로 풀 수밖에 없기에, 법정에서만 법을 따질 뿐, 법정을 벗어난 삶자리에서는 언제나 삶으로 삶을 바라봅니다.



- “사람이 자꾸 닳거든요. 일을 하다 보면. 매일 거친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부끄러운 건 오히려 저예요. ‘선량’이란 미덕을 성가시게 여기다니.” (81쪽)

- “‘지금’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냔 말이야.” (130쪽)

- “상처가 아물어도 돈으로 보상한다 해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것.” (145쪽)




  법은 사람을 지키지 않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법은 사람을 지키지 않습니다. 사람을 지키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무엇인가 하면,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이 사람을 지킵니다.


  법은 그저 법입니다. 사회나 정치나 제도라는 얼거리를 지키려고 만드는 법입니다. 사람을 지키려고 법을 만들지 않습니다.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어요. 아름다운 마을에는 법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보금자리에는 법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이 있고, 언제나 삶이 흐릅니다.


  아버지가 먼저 밥술을 들어야 다른 사람이 밥술을 들어야 하지 않아요. 갓난쟁이 아기가 먼저 밥술을 들 만합니다. 게다가, 배고픈 아이한테 먼저 밥을 주어야지요. 우는 아기한테 먼저 젖을 물리고 나서 어른들은 나중에 밥을 먹어야지요.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집에 불이 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 보셔요. 우리가 숲에 깃들어 바람을 마신다고 할 적에, 어버이가 먼저 마신 뒤 아이가 나중에 마시지 않습니다. 함께 바람을 마십니다. 햇볕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먼저 내리쬐지 않습니다. 햇볕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똑같이 내리쬘 뿐 아니라, 풀과 나무한테도 똑같이 내리쬡니다.





- “할머님께 들었는데, 그들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사귄 친구들이라고요.” “네.” “당신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고, 당신이 운전하는 차로 자주 드라이브도 하고, 함께 놀면서 비용도 거의 당신이 댔고요.” “그게 뭐 어떻다고.” “실례지만, 그게 친구인가요?” (183쪽)

- “말끝마다 돈, 돈. 뭐, 좋아요, 그것도. 그런데, 변호사 비용에 재판 비용에 합의금, 거기에 BMW 몇 백만 엔? 겨우 라면 한 그릇 먹는데, 왕복 택시비 3000엔이면 끝날 것을. 왜 그런 간단한 계산은 못 하나 몰라.” (200∼201쪽)



  어지러운 사회이기 때문에 법이 섭니다. 아름다운 마을에는 법이 없습니다. 지저분하고 퀴퀴하며 슬픈 사회이기 때문에 법을 놓고 다툽니다. 사랑스러운 마을에는 법이 없습니다. 서로를 아끼지 않고, 서로 믿음직하지 않으니, 자꾸 법을 내세워 툭탁거리고야 맙니다. 어깨동무를 하고, 두레와 품앗이를 하며, 오순도순 마을잔치를 여는 곳에서는 법이라는 낱말을 아무도 모르겠지요.


  안 되기는 뭐가 안 될까요. 법으로 사회를 옥죄려 한다면 법으로 구멍을 만듭니다. 사랑으로 삶을 가꾸는 곳이라면 언제나 사랑으로 웃고 노래하면서 즐겁습니다. 잘못된 길을 바로잡을 마음이 없으면 법에서 구멍을 자꾸 파내어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스스로 삶을 등지고 맙니다.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법 따위는 말끔히 잊거나 모르면서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꿈을 짓습니다. 4347.9.2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94년부터 '한국말 살려서 쓰기'나 '한국말 바르게 쓰기'를

짤막한 글로 썼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글을 저마다 갈래를 나누어서 썼고,
'-의'과 얽힌 글은 2000꼭지를 한참 넘겼고,
'-적'이나 '외마디 한자말'이나 '살려쓰기'와 얽힌 글은
1000꼭지를 훨씬 넘겼다.

오늘 '우리 말도 익혀야지'라는 이름으로 쓴,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투를 바로잡도록 도우려고 쓴 글이
1000꼭지 숫자를 얻는다.

숫자로는 1000꼭지를 썼으나
앞으로 쓸 글은 아주 많다.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투를 
1000꼭지에 모두 담아내지는 못했다.
어쩌면 모두 담아낼 수는 없을는지 모른다.
날이 갈수록
새롭게 잘못 쓰는 말투가
자꾸 불거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하여'나 '해서' 따위로
글쟁이들 글재주 부리는 말투가
스멀스멀 불거지는 모습이라고 할까.

'우리 말도 익혀야지'라는 이름으로 1000꼭지를 쓰는 동안
'가끔씩'과 '이따금씩' 이야기를 따로 안 썼다가
1000꼭지에 이를 무렵 비로소 썼다.

오늘날처럼 배울 것이 많은 사회에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자고 하는 이야기는
참 고단하거나 힘들거나 재미없다고 여길는지 모르겠는데,
배울 것이 많은 사회이니
말부터 똑바로 제대로 올바로 배울 노릇 아니랴 싶다.

말부터 제대로 안 배우고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제대로 안 배우고서
무슨 글을 쓰고 무슨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00) 이따금씩 2


노래를 부르면서 이따금씩 뭐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 행여 누가 뒤쫓아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따금씩 뒤를 돌아다보면서

《카롤린 필립스/전은경 옮김-커피우유와 소보로빵》(푸른숲주니어,2006) 15, 51쪽


 이따금씩 소리를 지르곤

→ 이따금 소리를 지르곤

 이따금씩 뒤를 돌아다보면서

→ 이따금 뒤를 돌아다보면서



  오늘날 적잖은 사람들이 ‘이따금’ 뒤에 ‘-씩’을 붙이면서 겹말을 만듭니다. 그런데, 겹말을 만들면서 겹말인 줄 느끼지 못합니다. 잘못 쓰는 말투를 알려주어도 못 깨닫기까지 합니다. 아마 ‘겹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지 싶어요. 머릿속에 ‘겹말’이나 ‘잘못 쓴 말’이나 ‘한국말 바르게 쓰기’가 하나도 없다면, 잘못 쓰는 얄궂거나 엉성한 말투를 옳게 추스르려는 마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이따금 + 씩’ 같은 겹말은 ‘초가 + 집’ 같은 겹말과 얼거리가 비슷합니다. 붙일 수 없는 낱말을 붙이는 셈입니다. 그러면, 왜 적잖은 사람들은 ‘이따금 + 씩’을 붙여서 쓸까요? ‘이따금’이 무슨 뜻을 나타내는 낱말인지 제대로 모르고, ‘-씩’을 붙일 적에 어떤 뜻이 되도록 하는가를 똑똑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이따금’에 ‘-씩’을 붙일 때에 힘주어 말하는 느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힘주어 말하기를 겹말로 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초가집’이 ‘초가’를 힘주어 말하는 꼴이 될 수 있을까요? “역 앞에서 만나자”가 아닌 “역전 앞에서 만나자”라 해야 힘주어 말하는 꼴이 될까요?


  잘못 쓴 말투는 즐겁게 바로잡으면 됩니다. 잘못을 하루 빨리 깨달아 기쁘게 추스르면 됩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내 말투를 갈고닦을 때에 반짝반짝 빛납니다. 4347.9.20.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노래를 부르면서 이따금 뭐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 마치 누가 뒤쫓아 오기라도 하는듯이 이따금 뒤를 돌아다보면서


‘행여(幸-)’는 ‘마치’나 ‘꼭’으로 손봅니다.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은 “오기라도 하는듯이”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말도 익혀야지

 (989) 얄궂은 말투 97 : 그들의 비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기러기 아카는 그녀의 무리를 이끌고 벰뮌과 판타르홀름을 넘어서 카를스크로나로 비행했다. 저녁 늦게까지도 그들의 비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셀마 라게를뢰프/배인섭 옮김-닐스의 신기한 여행 1》(오즈북스,2006) 168쪽


 그들의 비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 기러기들은 그대로 날았다

→ 기러기들은 꾸준히 날았다

→ 기러기들은 자꾸자꾸 날았다

→ 기러기들은 한결같이 날았다

 …



  보기글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기러기 우두머리를 ‘그녀’로 가리키더니, 나중에는 기러기 무리를 ‘그들’로 가리킵니다. 뭔가 알쏭달쏭합니다. 기러기를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가리켜도 될는지 아리송합니다.


  서양에서는 기러기를 ‘she’라든지 ‘they’로 가리킬 만합니다. 서양말과 서양 말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러기를 ‘기러기’로 가리킵니다. 한국에서는 고양이를 ‘고양이’로 가리킵니다. 한국말과 한국 말법은 이와 같습니다.


  이 보기글을 더 살피면, 기러기를 잘못 가리키기도 하지만, 말투가 뒤죽박죽입니다. “그들의 비행”이라는 말투는 ‘-의’를 넣는 일본 말투이고, “-고 있었다”는 현재진행형인데, 한국말에는 이러한 말투가 없습니다.


  누구나 어릴 적부터 스스로 배운 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쓸 텐데, 문학을 하거나 번역을 하는 자리에 서려 한다면, 어릴 적부터 스스로 배운 틀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한국말을 새롭게 배우고 깊으면서 넓게 다시 익힐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4347.9.20.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기러기 아카는 무리를 이끌고 벰뮌과 판타르홀름을 넘어서 카를스크로나로 날았다. 저녁 늦게까지도 기러기들은 그대로 날았다


“기러기 아카는 그녀의 무리를 이끌고”는 “기러기 아카는 무리를 이끌고”로 바로잡습니다. 서양에서는 암컷 기러기를 ‘그녀’로 가리킬는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그냥 기러기일 뿐입니다. ‘비행(飛行)했다’는 ‘날았다’로 손봅니다. “계속(繼續)되고 있었다”는 “그대로 날았다”나 “꾸준히 날았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묵은 사진이 되다 (사진책도서관 2014.9.1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나는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도 하고, 사진을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처음 사진책도서관을 연 인천에서는 인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았는데, 그때가 2007∼2010년이다 보니, 2014년인 올해에 돌아보더라도 다섯 해가 더 지났다. 2007년에 찍은 사진은 몇 해 있으면 벌써 열 해나 묵은 사진이 된다. 우리 집 큰아이가 올해에 일곱 살이니 그럴 만하구나 싶으면서도, 마음 한켠이 싸하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 집과 도서관이 인천에 있을 적에 찍은 꽤 많은 사진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은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아주 안 반가운 일은 오직 하나이다. 사진으로 찍은 모습이 사진으로만 남을 때에 참으로 안 반갑다.


  나는 ‘기록’을 하려고 사진을 찍지 않는다. 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 내가 도서관일기를 쓰거나 육아일기를 쓰는 까닭은, 그때그때 ‘기록’할 마음이 아니라, 그때그때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살며 그곳 골목동네를 찍은 까닭은, 인천에 있는 이웃뿐 아니라 다른 고장 이웃한테도 ‘우리가 저마다 뿌리를 내려 사는 마을 이야기’를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마주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밝히자는 뜻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천에서 그곳 골목을 찍으면서 한 가지를 더 느끼기도 했다. 인천이든 서울이든 부산이든 골목을 찍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런데 거의 모든 이들은 ‘나중에 기록이 될 모습’을 생각하면서 찍는다. 그래서 이런 이들이 찍는 사진은 언제나 ‘기록’이기는 하되 아무런 이야기가 깃들지 않는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놀면서 웃는 모습을 찍더라도 그저 ‘기록’일 뿐 어떤 이야기도 깃들지 않는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살내음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삶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사랑노래이다. 사진에 어떻게 살내음과 삶과 사랑노래를 담느냐 하고 묻는다면, 부디 사진기를 고이 내려놓기를 바란다. 글에 어떻게 살내음과 삶과 사랑노래를 담느냐 하고 묻겠다면, 부디 연필을 얌전히 내려놓기를 바란다. 노래를 부르건 춤을 추건 그림을 그리건 언제나 똑같다. 스스로 즐겁게 걸어가는 길에 ‘살내음·삶·사랑노래’를 살포시 담아서 들려주거나 나눌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따사롭다. 이 세 가지가 없이 어떻게 ‘사진’이나 ‘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나는 보도사진으로 사진을 배웠지만 보도사진이 썩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문이나 매체에 싣는 보도사진은 거의 다 살내음도 삶도 사랑노래도 없이 ‘특종’과 ‘놀라운 것’과 ‘짜릿한 것’에 휘둘리는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큐사진도 보도사진하고 거의 비슷하다. 다큐사진에 살내음이나 삶이나 사랑노래를 싣는 사진가는 몇이나 있을까?


  다큐사진은 기록이 아니다. 보도사진도 기록이 아니다. 모든 사진은 기록이 아니다. 패션사진이나 상업사진이라 하더라도 장삿속이나 돈벌이가 아니다. 어떤 갈래에 들어가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모두 ‘살내음·삶·사랑노래’을 밝혀서 보여주지 못한다면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잘 생각해 보라. 글이라고 해서 모두 글이라고 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책을 ‘글’이라고 여길 사람은 없다. 신문기사를 ‘글’이라고 여길 사람도 없다. 대통령 담화문 따위를 누가 ‘글’이라고 하는가? 공문서나 대학 논문을 누가 ‘글’이라고 하는가? 모양새로는 글이라 하더라도 글답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그러니까, 사진기를 써서 사진 모양새로 만들더라도 사진답지 않으면 사진이 아니다. 이 대목을 제대로 못 읽고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아주 많다.


  내가 인천에서 사진책도서관을 처음 열면서 인천 골목동네 사진을 찍으며 배우고 즐거웠던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이런 대목이리라. 나 스스로 골목동네 사진을 찍는 동안 ‘사진 아닌 헛짓’을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고, 많이 느꼈으며, 많이 알아챘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곳에서도 ‘삶 아닌 헛짓’을 하거나 ‘사랑 아닌 헛놀이’에 휘말리는 사람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 아이가 하나 태어나고 둘 태어나면서,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동안 ‘삶을 삶대로’ 누리고 ‘사랑을 사랑대로’ 가꾸는 길이, 나 스스로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하루가 되는구나 하고 배웠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와서 놀듯이 이래저래 손질한다. 여러 해 묵은 골목 사진을 곳곳에 걸어 본다. 가슴이 찡하다. 살짝 눈물이 났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