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글 읽기

2014.9.20. 큰아이―나들이 글순이



  작은 수첩과 볼펜 한 자루를 들고 나들이를 간다. 글순이는 공책에 무엇을 적을 수 있을까. 글순이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적을까. 한참 들고 다니다가 공책과 볼펜이 번거롭다면서 아버지한테 건네준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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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우유와 소보로빵 마음이 자라는 나무 8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허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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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16



너도 내 동무이니?

― 커피우유와 소보로빵

 카롤린 필립스 글

 허구 그림

 전은경 옮김

 푸른숲주니어 펴냄, 2006.2.3.



  요즈음 시골에서는 까치 우짖는 소리를 듣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에서 까치를 무던히도 싫어합니다. 아니, 오늘날 시골에서는 까치를 끔찍하게 미워합니다.


  어느 은행은 무척 오랫동안 까치를 이녁 은행 상징그림으로 썼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슬그머니 까치 그림을 치웠습니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며, 이때에 학교에서 배우기를, 까치는 언제나 반가운 손님을 부른다 했어요. 요즈음은 어떠할까요? 요즈음도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칠까 궁금합니다.



.. 바로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샘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몸이 굳어 버렸다. “저기, 깜둥이다!” … 샘은 갑자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 듯했다. 이렇게 즐거움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 도시의 한쪽 거리에서 불과 두 시간 전에 돌과 화염병이 날아다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19, 37쪽)



  까치나 멧새나 텃새가 곡식을 쪼아먹는다고 합니다. 시골에 있는 새들이 밭뙈기에 심은 콩알을 마구 파먹는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사람과 새와 벌레가 콩을 한 알씩 나누어 먹었다 해서 ‘콩 석 알’을 노래했다는데, 이런 노래는 새마을운동 언저리부터 아주 사그라들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시골마다 ‘석면(슬레트) 지붕’을 씌우도록 들볶았을 뿐 아니라, 온 들과 숲에 농약을 뿌리라고 다그쳤으며, 흙밭으로 된 고샅과 마당을 시멘트를 들이부어 메꾸라고 닦달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새마을운동 때부터 시골에서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새마을운동 때부터 시골은 텅 빈 외톨이가 됩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시골 어른들이 새를 미워하거나 싫어합니다. 시골에서 새와 놀거나 노래할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시골 어른들은 새하고 콩 한 알 나누던 마음을 몽땅 잃거나 잊고 맙니다.



.. 대체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고향으로? 집으로? 그것이 어디 있는데? 태어나서 자라던 마을과 부모님, 그리고 가족은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에리트레아는? 에리트레아는 이제 전쟁이 끝나고 한창 제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샘 엄마는 새롭게 세워지는 에리트레아에 이렇다 할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솔직히 에리트레아보다는 독일에서 사는 게 더 익숙했다 … 사진 속의 아이들은 샘처럼 갈색 피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공통점은 그게 전부였다. 샘은 자신이 그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모습을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 볼 수가 없었다 ..  (64, 69쪽)



  옛날에는 새와 벌레하고 콩을 한 알씩 나누어 먹을 뿐 아니라, 겨울에는 빈 그릇에 곡식을 덜어서 바깥에 내놓기도 했습니다. 눈 덮인 들과 숲에서 텃새가 굶거나 추위에 떨까 근심하면서, 시골사람은 누구나 으레 이녁 밥그릇에서 곡식을 덜어 기꺼이 ‘이웃’하고 나누었어요. 이웃이란, 바로 토끼요 새이며 작은 숲짐승입니다.


  사람만 이웃이 아닙니다. 사람만 서로 동무가 되지 않습니다. 예부터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서든, 사람들은 누구나 짐승하고도 이웃과 동무로 지냈어요. 새하고 서로 아기자기하게 노래하며 어울렸어요.


  시골에서 벌과 나비와 벌레가 꽃가루받이를 해 줍니다. 벌과 나비와 벌레는 새가 잡아먹습니다. 벌레가 너무 많으면 애써 꽃가루받이를 해 주었어도 모두 갉아먹겠지만, 새가 벌레를 알맞게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새는 기쁘게 노래하지요. 마을마다 온갖 새가 찾아들면서, 들판마다 갖은 새가 날아다니면서, 사람들한테 맑고 그윽하며 구수하고 싱그러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고단하게 일하던 사람들은 새노래를 듣고 새로운 마음이 됩니다. 마당에서 고샅에서 들에서 숲에서 냇가에서 놀던 아이들은 새노래를 들으며 새로운 꿈을 키웁니다. 새가 들려주는 노래는 참말로 새노래입니다. 새가 불러서 새노래인 한편, 새로운 사랑과 삶을 속삭이기에 새노래입니다.



.. 샘에게 피부 색깔만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전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문제였다. 독일사람들 중에는 피부색을 진한 갈색으로 바꾸기 위해, 한여름에 햇볕에 나가 그을리려고 안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알았어? 네 피부는 죽을 때까지 갈색이야. 그리고 난 내 아들의 피부가 희어지는 것 싫어! 지금 이대로가 좋아. 정말로 중요한 건 여기, 그리고 이쪽에 뭐가 들어 있는가 하는 것이야!”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샘의 머리와 가슴을 쿡쿡 찔렀다 ..  (83, 86쪽)



  카롤린 필립스 님이 빚은 푸른문학 《커피우유와 소보로빵》(푸른숲주니어,2006)을 읽습니다. ‘커피우유’는 독일에서 흰둥이가 검둥이를 놀리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소보로빵’은 독일 이주노동자가 낳은 검둥이 아이가 흰둥이 독일 아이를 바라보며 똑같이 놀리려고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흰둥이는 검둥이를 놀리고, 검둥이는 흰둥이를 놀립니다. 그러면, 이들 사이에서 누렁둥이는 어떤 말로 서로서로 마주하거나 바라볼까요. 우리는 우리 둘레에 누가 어떻게 있다고 여기는가요. 흰둥이, 검둥이, 누렁둥이, 이렇게 살빛으로 바라보는가요? 아니면,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면서 바라보는가요?



.. “그냥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한 사람들도 돌을 던지는 것에 반쯤은 찬성한 거야. 머릿속으로는 같이 돌을 던진 거나 마찬가지란다. 다만 나서서 던질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 … 엄마 아빠의 피부색이 하얗다면 난 어땠을까. 사람들이 거리에서 날 쳐다보는 일도 없을 거고, 또 내가 독일어를 잘 하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지도 않을 테지. 그런데 내가 독일어 말도 대체 어느 나라 말을 잘 해야 한다는 거지? ..  (93, 172∼173쪽)



  한국에도 이주노동자가 대단히 많습니다. 한국에 시집온 아가씨가 아주 많습니다. 오늘날 시골에서 한국 아가씨가 낳은 아이는 차츰 줄어듭니다. 도시에서도 외국 아가씨가 낳은 아이가 차츰 늘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도 외국 아가씨가 낳은 아이는 참 얄궂게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받습니다.


  우리는 어떤 눈길로 서로서로 바라보는가요. 눈을 감고 헤아려 보셔요. 눈을 감으면 이녁 살빛이 보이는가요? 손으로 살결을 쓰다듬으면 살빛을 알 수 있는가요? 목소리로 들으면 살빛 다른 겨레인 줄 알아챌 수 있나요?


  몸뚱이라는 껍데기가 아닌, 몸뚱이에 깃든 넋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내 동무가 누구인지 똑똑히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요.


  까치도 까마귀도 참새도 제비도 모두 우리 이웃이면서 동무입니다. 멧토끼도 멧돼지도 노루도 고라니도 모두 우리 이웃이면서 동무입니다. 잠자리도 개똥벌레도 사슴벌레도 하루살이도 모두 우리 이웃이면서 동무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은 거추장스럽습니다. 노동자이면 그냥 노동자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라는 이름도 거추장스럽습니다. 그저, 우리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함께 일하는 ‘일동무’이고 ‘일이웃’입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놀이를 즐기는 ‘놀이동무’이며 ‘놀이이웃’입니다.


  어깨를 겯고 노래해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노래를 불러요. 밥 한 그릇씩 장만해서 도르리도 하고 조촐히 잔치도 열어요. 삶을 아끼고 사랑해요. 오늘 하루를 아끼면서 사랑해요. 다 같이 웃는 삶을 생각해요. 다 같이 노래하면서 꿈을 키우는 하루로 살아요. 4347.9.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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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곯아떨어져야지



  이제 곧 곯아떨어지려 한다. 몸이 아주 많이 고단하면 오히려 잠이 제대로 안 오기도 한다. 살림돈을 벌 생각으로 아주 빠듯하게 부산에 바깥일을 하러 다녀오느라 며칠 잠을 미루었고, 살림돈을 버는 바깥일이라지만 온마음을 쏟아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운 터라, 일을 마치고 난 뒤에는 그야말로 힘이 쪽 빠졌다. 고흥으로 돌아온 뒤 이틀에 걸쳐 손님을 맞이한다. 반가우면서 즐겁게 손님을 맞이하려 하니, 없는 힘을 다시 끌어올렸고, 없는 힘을 새롭게 지어서 끌어올리다 보니, 어제는 아이들과 함께 퍽 일찍 까무룩 잠든 뒤 모처럼 네 시간 즈음 쓰러지듯 눈을 붙인 듯하다. 해야 할 여러 일이 있어 밤에 살짝 눈을 뜬다. 흙을 만지는 흙지기가 날마다 흙을 만지듯이, 한국말사전 새로 엮는 일을 하는 나는 날마다 ‘사전 원고’를 조금씩 만져야 한다. 몸이 힘들더라도 몸에 바싹 다시 기운을 붙여서 이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힘든 몸으로 이렇게 얼마쯤 ‘사전 원고’를 쓰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맑게 깬다. 유리병에 미리 받은 샘물을 마신다. 글 한 꼭지를 마저 쓰고, 나도 이제 아이들 사이에 파묻혀서 신나게 단잠을 누려야겠다. 4347.9.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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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마실 마친 빨래



  일요일 새벽에 시골집을 나서서 부산으로 바깥일을 보러 갔다. 월요일 새벽에 부산에서 길을 나서서 고흥으로 돌아온다. 이틀에 걸쳐 잠을 거의 못 자면서 시외버스로 여덟 시간 남짓 움직이니, 시외버스에서 살짝 눈을 붙이기는 했어도 잠이 잔뜩 쌓였다. 그러나 고흥집에 돌아온 내가 맨 먼저 하는 일이란, 마당에 있는 나무들한테 인사하기이다. 인사를 마친 뒤 마루문을 열고 들어와서 아이들 볼을 비비고, 곁님을 들여다보다가, 찬물로 몸을 씻은 다음, 빨래를 한다. 도시에서 묻힌 때와 먼지를 말끔히 씻고 빨래를 한다. 졸음이 가득한 몸이지만 씻고 빨래를 하면 무척 개운하다. 밀린 잠을 자더라도 씻고 빨래를 하면 잠이 한결 잘 온다. 4347.9.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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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깃들고 싶은 사람은



  숲에 깃들고 싶은 사람은 늘 숲을 생각한다. 언제 어디에서나 숲을 꿈꾼다. 그래서 그예 숲으로 나아가고, 숲에서 삶을 지으며, 숲에서 노래를 한다.


  숲에 깃들 마음이 없는 사람은 언제라도 숲을 안 생각한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숲을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헤아리지 못한다. 누군가 숲을 망가뜨려도 아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숲을 밀고 고속도로나 발전소나 공장이나 골프장이 들어서더라도 알아채지 못한다.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돈을 번다. 돈을 생각하고 돈을 바라며 돈을 바라본다. 이리하여,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돈에 둘러싸인다. 돈에 둘러싸이니 언제 어디에서나 돈하고만 얽히고, 돈에 사로잡히다가, 끝끝내 돈에 갇힌다.


  생각이 삶을 짓는다. 생각이 삶으로 드러난다. 생각이 삶으로 피어난다. 생각하는 만큼 살아간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 이는 바로 참말이다. 참으로 그렇다. 생각하지 않으니 할 수 없다. 생각하니 할 수 있다. 생각하지 못하기에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느끼거나 바라볼 수조차 없다. 숲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시골로 나들이를 가더라도 어디에 숲이 있는지 모르고, 숲 어귀에 서더라도 이곳이 숲인지 못 깨닫는다. 이를테면, 이런 일도 있다. 스스로 어떤 책을 바라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또 스스로 책방이 어떤 곳인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이녁 손에 쥔 쪽글에 이녁이 사려고 하는 책을 적었으나, 막상 이녘 눈높이에 있는 책꽂이에 이녁이 바라는 책이 꽂혔어도 알아내지 못한다. 생각이 없고 생각을 심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을 지어야 한다. 어떤 사랑을 꽃피우면서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 생각을 지어야 한다.


  남이 시키는 대로 하면 생각을 잃는다. 사회라는 굴레에 갇힌 채 종살이를 하는 쳇바퀴에서 스스로 벗어날 생각을 품지 않으면, 늘 언제 어디에서나 고단한 나날을 되풀이할 뿐, 어떤 삶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날마다 ‘삶’이 아닌 ‘지겨운 반복작업 컨베이어벨트’에 갇힌 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삶’을 새롭게 누리면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는 숨결이 될 수 있다. 4347.9.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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