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아이 57. 2014.9.24. 서숙돌이



  자전거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묵은 밭을 본다. 묵은 밭에 피고 지는 온갖 들꽃과 들풀을 바라본다. 시골에는 이런 땅에 좀 넓게 있어야 한다. 묵은 밭도 좋고, 그냥 사람 손길 안 탄 들판도 좋다. 그래야 이런 곳을 아이들이 놀이터로 삼아서 신나게 헤집고 다닐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묵은 밭에 서숙이 군데군데 있다. 이 밭이 묵기 앞서 서숙밭이었던 듯하다. 따로 심지 않았을 텐데, 서숙이 익으면서 몇 알 떨어졌나 보다. 서숙을 벨 적에 작은 알맹이가 떨어졌을 수 있다. 그래서, 작은 알맹이가 흙 품에 고이 안겨 겨울을 나고는 이듬해에 씩씩하게 자랐지 싶다. 한 포기를 꺾는다. 자전거수레에서 잠든 산들보라 머리맡에 놓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숙내음 맡으면서 즐겁게 꿈을 꾸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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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814) 보다 1


보다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현명하고 인도적인 경제 및 사회 정책에 의해 인구가 안정되는 것이다

《레스터 브라운/이상훈 옮김-맬서스를 넘어서》(따님,2000) 24쪽


 보다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 더 바람직한 그림은

→ 더욱 바람직한 그림은

→ 한결 바람직한 그림은

 …



  ‘보다’는 토씨입니다. “네가 나보다 빠르구나”라든지 “내가 너보다 크구나”라든지 “우리가 너희보다 세구나”처럼 쓰는 ‘보다’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보다’를 토씨가 아닌 어찌씨로 엉뚱하게 쓰는 일이 퍽 잦습니다. 왜 이런 엉터리 말투가 퍼지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국립국어원에서 엮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다’가 올림말로 나옵니다. 게다가 북녘에서 펴내는 《조선말 대사전》에까지 ‘보다’를 어찌씨로 다루어 올림말로 싣습니다.


 [보다] 어떤 수준에 비하여 한층 더. 

  - 보다 높게 / 보다 빠르게 뛰다 / 그것은 서로 보다 나아지려는


  제가 떠올리기로는 1988년에 한국에서 올림픽을 치른다면서 한창 법석을 떨 무렵에 ‘보다’를 엉터리로 쓰는 말투가 확 퍼졌지 싶습니다. 1986년에 아시안대회를 열 때에도 이 ‘보다’라는 엉터리 말투가 엄청나게 쓰였어요. 그무렵 국민학교 어귀에 “보다 빠르게 보다 높이 보다 힘차게” 같은 글월을 나무판에 큼직하게 써서 붙이곤 했습니다. 과자 봉지에도 이런 글월이 찍혀서 나왔고, 방송 풀그림에도 이런 글월이 끝없이 되풀이되었어요.


 보다 높게 → 더 높게

 보다 빠르게 → 더 빠르게

 보다 나아지려는 → 더 나아지려는


  한국말 어찌씨는 ‘더’입니다. ‘보다’는 토씨입니다. ‘더’라는 낱말 말고도 ‘더욱’이 있으며, ‘더더욱’이나 ‘더욱더’ 같은 낱말도 있습니다. 군사독재를 내세운 정치권력이 엉터리 말투를 퍼뜨려서 우리 눈과 귀를 홀리려 했어도, 우리들은 언제나 슬기롭고 아름다운 넋을 튼튼하게 지키면서, 우리가 쓰는 말과 글도 슬기롭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7.7.31.흙/4347.9.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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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바람직한 그림은, 슬기롭고 아름다운 경제·사회 정책으로 인구가 제자리를 잡는 길이다


‘시나리오(scenario)’는 ‘그림’으로 손질하고, ‘현명(賢明)하고’는 ‘슬기롭고’로 손질하며, ‘인도적(人道的)인’은 ‘아름다운’이나 ‘따스한’으로 손질합니다. “경제 및 사회 정책에 의(依)해”는 “경제와 사회 정책으로”나 “경제·사회 정책으로”로 손봅니다. “안정(安定)되는 것이다”는 “제자리를 찾는 길이다”나 “제자리를 잡는 길이다”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534) 보다 2


이러한 살인적인 저임금과 말할 수조차 없이 나쁜 근로조건을 개선해, 보다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자 하는 몇몇 사람들의 움직임이

《편집부 엮음-뛰는 맥박도 뜨거운 피도》(미래사,1985) 17쪽


 보다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자

→ 좀더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그나마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얼마라도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사람답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일터에서 사람답게 대접을 받으려고 애쓴다면, “더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로 적어야 뜻이 또렷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나마’나 ‘얼마라도’를 넣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나 ‘이제라도’나 ‘앞으로’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터무니없는 일터에서 터무니없는 일삯으로 힘들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보기글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보다’라는 말투를 썼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방송이나 라디오에서 흐르는 잘못된 말씨에 천천히 길들거나 물들면, 누구라도 ‘보다’ 같은 말투를 잘못 쓸 수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4339.4.1.흙/4347.9.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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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끔찍히 낮은 일삯과 말할 수조차 없이 나쁜 일터를 고쳐서,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몇몇 사람들 움직임이


“살인적(殺人的)인 저임금(低賃金)”이라면, 사람을 죽일듯이 낮은 일삯이라는 뜻입니다. “끔찍히 낮은 일삯”이나 “터무니없이 낮은 일삯”이나 “너무 보잘것없는 일삯”으로 다듬습니다. ‘근로조건(勤勞條件)’ 같은 낱말은 그대로 두어야 할는지 모르나, ‘일터’로 손볼 수 있습니다. ‘개선(改善)해’는 ‘고쳐’나 ‘바로잡아’로 다듬고, ‘인간(人間)다운’은 ‘사람다운’이나 ‘사람답게’로 다듬으며, “몇몇 사람들의 움직임”은 “몇몇 사람들 움직임”으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97) 보다 3


생활교육은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해방의 교육인 것이다

《야나기 히사오/임상희 옮김-교육사상사》(백산서당,1985) 22쪽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해방의 교육

→ 한결 뿌리깊이 사람을 살리는 교육

→ 속속들이 사람을 살리는 교육

→ 무엇보다도 사람을 살리는 교육

→ 모름지기 사람을 살리는 교육

 …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먼저 생각해 봅니다. 삶을 가르치는 일이란 무엇이 될는지 가만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어른이 되어 아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치는 일이 아닌, 어른과 아이가 함께 배우고 가르치면서 꾸리는 삶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지식 물려주기가 아닙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삶이란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삶입니다. 그러니, ‘삶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어른과 아이가 즐겁게 어우러진다면, 이때에는 모름지기 사람이 스스로 살아나는 교육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찌씨로 잘못 쓰는 ‘보다’를 생각합니다. 군사독재 정치권력이 갑작스레 엉터리 말투를 널리 퍼뜨리기도 했지만, 일본책으로 학문을 익힌 지식인이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 ‘보다’를 아주 많이 끌어들였습니다. 지식 사회에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일본 한자말과 함께 일본 말투에 젖어들었고, 여느 자리에서 방송을 많이 본 사람들은 엉터리 정치권력이 퍼뜨리는 엉터리 말투에 스며들었어요. 정작 한국말은 제자리를 못 찾고 참으로 오랫동안 헤매거나 길을 잃습니다. 4340.2.9.쇠/4347.9.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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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교육은 모름지기 사람살리기 교육이다


‘생활(生活)교육’은 ‘삶 교육’으로 손보고, ‘근본적(根本的)으로’는 ‘뿌리깊은’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인간해방’에서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고쳐야 할 텐데, ‘해방(解放)’은 그대로 둘 수 있을 테지만, 생각을 찬찬히 넓혀 “사람살리기”처럼 새롭게 풀어내어 적을 수 있습니다. “교육인 것이다”는 “교육이다”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03) 보다 4


첫 장에서 나오는 인물은 명백하게 우리 아버지이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한 남자의 인생을 넘어서는 보다 더 큰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폴 오스터/심혜경 옮김-글쓰기를 말하다》(인간사랑,2014) 66쪽


 보다 더 큰 것을 이야기하고

→ 더 큰 것을 이야기하고

→ 더 큰 이야기를 하고

→ 훨씬 더 큰 이야기를 하고

 …



  보기글을 잘 보면 알 수 있는데, “보다 더”처럼 쓰는 일은 그야말로 얄궂습니다. ‘보다’만 덜면 될 노릇입니다. 아니 ‘보다’를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큰 것”을 힘주어 말하려고 “더 큰 것”으로 적는데, 이 앞에 ‘보다’를 왜 붙여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군더더기 겹말로 적어야 할 만한 까닭이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알맞고 바르게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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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에서 나오는 사람은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이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한 사내 삶을 넘어서는 훨씬 더 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물(人物)’은 ‘사람’으로 다듬고, ‘명백(明白)하게’는 ‘틀림없이’나 ‘바로’로 다듬습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結局)”이라 나오는데, ‘결국’은 ‘마무리’나 ‘마지막’을 뜻합니다. 겹말입니다. “한 남자(男子)의 인생(人生)”은 “한 사내 삶”으로 손보고, “큰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는 “큰 이야기를 합니다”나 “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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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02) 것 58


고려 때 미나리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미나리를 먹은 것은 꽤 오래전부터이다

《이주희-내 이름은 왜?》(자연과생태,2011) 35쪽


 미나리를 먹은 것은

→ 미나리를 먹은 지는

→ 미나리를 먹은 때는

 …



  ‘것’도 한국말이지만, 아무 자리에나 쓸 수 없는 낱말입니다. 이 보기글처럼 ‘지’라는 매인이름씨를 넣을 자리에 함부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 요즈음 들어서 ‘지’를 넣을 자리에 ‘것’을 넣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구나 싶은데, 가만히 보면 어린이책이나 만화책에 이런 말투가 참 많이 나타납니다. 방송에서도 ‘것’을 아무 자리에 함부로 넣는 일이 흔하지 싶어요.


  이 보기글에서는 “기록이 있는 것”처럼 쓰기도 합니다. 글 한 줄에 ‘것’을 두 차례 썼어요. 이 대목은 “기록이 있듯이”나 “기록이 있으니”나 “-고 적혔으니”나 “-고 나오니”로 다듬어야겠습니다. 4347.9.2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고려 때 미나리밭이 있었다고 적힌 글이 있으니, 우리가 미나리를 처음 먹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있었다는 기록(記錄)이 있는 것을 보면”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니”나 “있었다고 적힌 글이 있으니”로 손봅니다. “미나리를 먹은 것은”은 “미나리를 먹은 지는”이나 “미나리를 처음 먹은 지는”으로 손질하고, “오래전(-前)부터이다”는 “오래되었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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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배 매기호 비룡소의 그림동화 132
아이린 하스 글 그림, 이수명 옮김 / 비룡소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4



꿈꾸는 아이가 사랑스럽네

― 꿈의 배 매기호

 아이린 하스 글·그림

 이수명 옮김

 비룡소 펴냄, 2004.8.20.



  아이들이 새벽같이 잠에서 깹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일찌감치 하루를 엽니다. 왜냐하면 놀고 싶기 때문입니다. 놀고 싶은 아이들은 언제나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잡니다. 이와 달리 놀 겨를이 없거나 놀 길이 막힌 아이들은 언제나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싶습니다.


  오늘날에는 학교라는 곳이 있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닙니다. 그런데 학교라는 곳을 살피면, 참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늦습니다. 학교에 늦지 않더라도 빠듯하게 가곤 합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거나 맞이하는 일이 재미없거나 괴롭거나 따분하거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놀듯이 배울 수 있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들이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찾아가리라 생각합니다. 기쁘게 뛰놀면서 배울 수 있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들이 맑은 눈망울로 찾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시험성적이나 시험공부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면, 아니 참다운 삶을 보여주고 나누면서 서로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뿐 아니라 모든 어른이 서로 사랑스레 어우러질 만하리라 느껴요.



.. 어느 날 밤, 마거릿 반스타블은 별에게 빌었어요. 북극성님, 바다의 별님, 내 이름을 딴 배를 갖고 싶어요 ..  (3쪽)




  아이들은 이튿날 새롭게 놀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오늘 하루 새롭게 놀 생각으로 번쩍 눈을 뜹니다. 놀 생각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늘 틀에 박힌 채 고달픈 일을 되풀이하면서 어깨가 무거워야 한다면, 아마 어떤 아이도 잠들기 싫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리라 생각해요. 어른들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아침이 새롭지 않고 늘 똑같은 일을 고달프게 되풀이해야 한다면, 돈을 버는 일이 지겹다면, 돈을 애써 벌어도 집삯과 빚과 이곳저곳에 들어가야 한다면, 일하는 보람이 없습니다. 일하는 보람이 없으면 아침마다 몸이 무거워요.


  아이들은 꿈을 꾸면서 잠듭니다. 어른들은 어떻게 잠들까요? 어른들도 꿈을 꾸면서 잠들까요? 아니면, 꿈은 하나도 없이 마냥 힘들다 힘들어 힘들어 죽겠네 하는 소리만 읊다가 스르르 곯아떨어질까요?



.. 눈부신 아침이 오면, 마거릿은 갑판을 북북 문질러 닦고 항해할 준비를 하면서 오래된 뱃노래를 불렀어요 ..  (9쪽)





  아이린 하스 님이 빚은 이쁘장한 그림책 《꿈의 배 매기호》(비룡소,2004)를 읽습니다. ‘매기호’는 이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이 ‘마거릿’이 모는 배 이름입니다. 마거릿은 잠자리에 들기 앞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애타게 빌었어요. 마거릿은 잠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뭇별한테 기쁘게 바랐어요. 그러고는 꿈을 꾸지요. ‘내 배’를 몰아 거친 물결을 헤치면서 바다를 가로지르고 싶다는 꿈을 꾸어요.


  자, 마거릿이라는 어린이 앞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앞으로 마거릿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마거릿은 어떤 이야기를 맞이할까요?



.. 매기호는 항해를 계속했어요. 산들바람은 상냥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웠지요. 제임스는 부드러운 벨벳 베개를 베고 낮잠을 잤고, 마거릿은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  (15쪽)



  꿈을 꾸었기에 꿈을 이룹니다. 꿈을 생각하기에 꿈으로 나아갑니다. 아주 마땅해요. 꿈을 꾸지 않으면 꿈을 이루지 않아요. 이루고 싶은 꿈이 없는데 무엇을 이루겠어요? 생각한 꿈이 없는데 어디로 나아갈까요?


  아이들은 즐겁게 놀 생각을 품으면서 밤에 잠듭니다. 그래서 새로운 아침에 새롭게 기운을 내면서 놀아요. 어른들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어른들도 꿈을 꿀 노릇입니다. 스스로 이루고 싶은 일을 꿈꾸어야 합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마음속에 곱게 품어야 합니다.


  생각을 지어야 꿈이 나타납니다. 생각을 지을 때에 꿈을 그립니다. 생각을 지어 꿈이 나타나도록 했으면, 이제부터 꿈을 누려야지요. 생각을 지어서 꿈을 그렸으면, 이제부터 꿈길로 나아가야지요.




.. 저녁 식사가 끝나고, 마거릿은 바이올린으로 오래된 곡조를 연주했어요. 그리고 제임스를 요람에 누이고 부드럽게 흔들었지요. 또 제임스가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 주었고요 ..  (27쪽)



  그림책에 나오는 마거릿이라는 아이한테 ‘얘, 어서 방 좀 치워!’ 하고 윽박지른다면 아이는 고달픕니다. 그러나, 마거릿이라는 아이가 스스로 배를 몰 수 있고, 제 이름을 딴 배를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면, 아무도 어떤 일을 안 시켰어도 스스로 청소를 합니다. ‘얘, 네 동생 좀 봐!’ 하고 다그치면 아이는 괴롭습니다. 그렇지만, 마거릿이라는 아이가 스스로 배를 몰아 바다를 가로지르고픈 꿈을 키운다면, 함께 배를 타고 즐겁게 나들이를 하고픈 동무를 찾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누가 심부름으로 동생 보기를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즐겁고 사랑스레 동생을 보살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이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읽는데, 번역은 그리 살갑지 못하구나 싶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집 일곱 살 아이한테 그냥 건네려 했지만, 이곳저곳 손질할 대목이 많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그림책은 그야말로 어린이 눈높이대로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어린이가 처음으로 만날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국말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문학에서 쓰는 낱말이나 말투를 섣불리 그림책에 넣으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그림책에서 만나는 낱말과 말투로 생각을 지어요.



하루 동안 항해를 하고, 멋진 친구도 생기게 해 주세요

→ 하루 동안 바다를 가르고, 멋진 동무도 사귀게 해 주세요

태양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 해님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나무 가지 위에는 큰부리새가 앉아 있었지요

→ 나뭇가지에는 큰부리새가 앉았지요



  아이들한테 ‘항해’라는 말을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까요? 어른이라면 이런 한자말을 써도 된다고 할 테지만, 아이들한테 이런 말을 쓰면, 뜻풀이를 다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친구나 동무는 ‘생기게’ 하지 않습니다. 친구나 동무는 ‘사귑’니다.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어른들한테도 하늘에 걸린 따뜻한 별은 ‘해’나 ‘해님’입니다. 새는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나뭇가지 위’에 앉는 새는 없습니다.



그의 집은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 있네

→ 그대 집은 넘실거리는 바다에 있네

낮에 사과나무 아래로 소풍 가서 점심을 먹었어요

→ 낮에 사과나무 그늘로 나들이 가서 도시락을 먹었어요

갯가재도 냄비 속에 넣었어요

→ 갯가재도 냄비에 넣었어요



  이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은 ‘위’나 ‘아래’나 ‘속’을 엉뚱하게 씁니다. 외국 말투를 섣불리 한국말로 옮깁니다. 바다 위쪽이라고 여겨 “바다 위에 있네”라 할 수 있겠으나, 배(집)는 “바다에 있다”고 말합니다. 바다 밑 어딘가를 가리킬 때에는 “바닷속에 있다”처럼 적습니다. 사과나무 아래에 소풍을 간다는 말은 어딘가 안 어울립니다. “나무 아래”란 어디일까요? 땅속일까요? 뿌리 밑일까요? “나무 그늘”이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국을 끓일 때에는 “냄비에 넣”습니다. “냄비 속”에 넣지 않아요. 냄비 속이란 어느 곳일까요?



마거릿은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 마거릿은 제임스를 멋지게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제임스는 울기 시작했어요. 폭풍이 오고 있었던 거예요

→ 제임스는 울어요. 비바람이 와요

저녁 식사가 끝나고

→ 저녁이 끝나고 / 저녁을 다 먹고



  토씨 ‘-의’를 얄궂게 붙여서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라 적었습니다만, 이런 말투도 그림책에 함부로 쓸 일이 아닙니다. 어른문학에서도 이런 말투는 손질해야 합니다. ‘시작’은 일본 한자말이기도 하지만, 거의 군말입니다. “울기 시작했어요”가 아니라 “울어요”로 적어야 합니다. “오고 있었던”은 영어 번역 말투이고, 뒤에 붙은 “거예요”는 군더더기입니다. ‘저녁’이라는 낱말은 때를 가리키면서 끼니를 가리킵니다. ‘식사’라 하는 한자말은 덜어냅니다.



오래된 곡조를 연주했어요

→ 오래된 노래를 켰어요

담요 안으로 몸을 구부리고 들어가 잠이 들었답니다

→ 담요를 덮고 몸을 구부리면서 잠이 들었답니다



  마거릿이라는 아이는 바이올린을 켜서 동생을 재웁니다. 그러니, “바이올린을 켰어요”처럼 적으면 됩니다. 굳이 ‘연주’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담요 안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고 하는데, 담요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담요 안”이라는 자리도 없습니다. “담요를 덮고” 몸을 구부리면서 잠이 들었겠지요.


  그림책 번역에 마음을 깊고 넓게 기울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그림책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외국 그림책이기에 한국 어린이한테도 널리 읽힐 만합니다만, 아름다운 그림책은 아름다운 말과 글과 이야기과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서 숨쉬도록 더욱 마음을 기울여서 가다듬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들으면서 말을 배우기도 하고, 아이들은 어버이가 건네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읽으면서 말을 익히기도 합니다. 그림책은 줄거리만 훌륭하거나 그림만 예쁘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림책에 넣는 말 한 마디까지 알뜰살뜰 여밀 줄 알아야 합니다.


  꿈꾸는 아이가 사랑스럽듯이, 꿈꾸는 어른이 사랑스럽습니다. 꿈을 살가이 담은 그림책이 아름답고, 꿈을 맑으면서 밝은 말과 글로 엮어서 보여주는 그림책이 아름답습니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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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에누리 책’ 읽지 말자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어느 누리장터에서 박시백 님 만화책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 펴냄)을 부록과 이것저것 끼우고 책꽂이까지 덩달아 얹어서 129,900원에 판다고 한다. 이 만화책에 붙은 제값(정가)은 217,000원이라고 한다. 이것저것 끼우는 값을 치면, ‘반값 에누리’보다 더 싸게 파는 셈이다.


  곰곰이, 곰곰이, 참으로 곰곰이 생각해 본다. 박시백 님이 빚은 만화책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반값 에누리 책’으로 마구 팔아치워도 될 만한가? 이 책은 그만 한 값어치밖에 안 되는가? 이 책이 참말 ‘떨이’로 팔아넘겨도 될 만한가?


  박시백 님 만화책 《조선왕조실록》이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알차다고 한다면, ‘반값 에누리 책’이 아닌 ‘제값 다 받는 책’으로 팔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요즈음 흐름으로 보더라도, ‘10퍼센트 에누리’와 ‘10퍼센트 우수(적립금)’를 붙일 수 있을지라도 ‘반값 에누리’란 도무지 말이 안 된다.


  반값으로 에누리를 해서 사는 새책은 우리한테 얼마나 피와 살이 될까 알쏭달쏭하다. 아름답거나 훌륭한 책을 반값으로 에누리를 해서 사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반값으로 에누리를 해서 파는 까닭은 뭘까? 아무래도, 출판사에서 이러한 값으로 내놓아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값으로 책을 팔면서, 사람들이 다른 출판사 다른 아름다운 책을 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노릇이라고 느낀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 아주 또렷하게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펴낸 ‘휴머니스트’ 출판사는 《조선왕조실록》을 217,000원이 아니라 129,900원으로 붙여서 내놓아도 될 만하다. 아니, 이제부터는 책값을 이렇게 고친 뒤 ‘제값대로 받기’를 할 노릇이라고 느낀다. 처음부터 제값이 아닌 뻥튀기 값을 붙였기에, 이렇게 ‘반값 에누리’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출판사에서 반값 에누리로 책을 팔기에 이 나라 책마을이 어지럽다. 출판사에서 반값 에누리로 내놓는 책을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덥석 장만하기 때문에, 이 나라 책마을은 도무지 제자리를 못 찾고 그저 어지럽기만 하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박시백 님 만화책이 ‘반값 에누리 책’이 되었으니, 나는 이 만화책을 우리 아이들한테는 안 보여줄 생각이다. 내 이웃들한테도 이런 만화책은 아이들한테 보여주지 말라고 알릴 생각이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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