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504) 아래 4


그 당시, 우리 민족은 일본의 지배 아래서 식민지의 서러움을 당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김별아-김순남》(사계절,1994) 12쪽


 일본의 지배 아래서

→ 일본한테 지배를 받으며

→ 일본한테 짓눌리며(억눌리며/짓밟히며)

→ 일본한테 눌리며(밟히며)

 …



  “지배 下에”라 안 하고 “지배 아래서”라 적으니 한결 낫지 않습니다. 일본사람이 쓰는 말투에서 한자 ‘下’만 ‘아래’로 고친다 한들 얄궂은 말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이 쓸 알맞고 바른 말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배 아래서”가 아니라 “지배를 받으며”입니다.


  한자말 ‘지배(支配)하다’는 ‘다스리다’를 뜻합니다. 이 보기글은 “일본이 다스리는 식민지”처럼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그런데, 글흐름을 살피면, 식민지라는 곳에서 우리 겨레가 서러움을 겪으면서 산다고 나와요. 서럽게 살아야 하는 식민지라 할 때에는 “일본이 다스리는 식민지”로 적을 때보다는 “일본한테 짓눌리는 식민지”나 “일본한테 짓밟히는 식민지”로 적을 때에 느낌이 제대로 살아나지 싶습니다. 4339.2.13.달/4347.9.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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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무렵, 우리 겨레는 일본한테 짓눌리는 식민지가 되어 서러움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그 당시(當時)”는 “그무렵”이나 “그때”로 손보고, ‘민족(民族)’은 ‘겨레’로 손보며, “식민지의 서러움을 당(當)하며”는 “식민지라는 서러움을 겪으며”나 “식민지가 되어 서럽게”로 손봅니다. “살고 있었습니다”는 “살았습니다”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511) 아래 5


우리 어린이 지도자들은 그 자세가 진지하고 참으로 순수한 종교적 열의로써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어린이 법회의 바른 모델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헬무트 클라르/각묵 스님 옮김-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고요한소리,1989) 39쪽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 어려운 여건에서도

→ 어려운 터전에서도

→ 어려운데에도

→ 어렵지만

 …



  “주어진 조건”을 뜻하는 한자말 ‘여건(與件)’을 살려서 “어려운 여건에서도”처럼 적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주어진 조건”이란 ‘터전’을 가리킵니다. “어려운 터전에서도”로 손볼 만합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 “여건 하에”뿐 아니라 “여건 속에”처럼 쓰기도 합니다. “여건인 가운데”처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두 알맞지 않습니다. 한자말 ‘여건’을 한국말 ‘터전’으로 바로잡았어도 “어려운 터전 아래”라든지 “어려운 터전 속”이라든지 “어려운 터전 가운데”처럼 적어도 알맞지 않아요. 낱말 하나하나는 알맞으나 말투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영어로는 “in Seoul”일 텐데, 이를 한국말로 옮기면 “서울 안에서”가 아닌 “서울에서”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안’도 한국말이지만, “서울 안에서”라 적으면 한국 말투가 아니에요. 4339.2.28.불/4347.9.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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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이 지도자들은 어려운 터전에서도 몸가짐이 차분하고 종교를 맑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린이 법회를 바르게 세우려고 힘쓰고


“그 자세(姿勢)가 진지(眞摯)하고”는 “몸가짐이 차분하고”나 “매무새가 참되고”로 손질하고, “순수(純粹)한 종교적(-的) 열의(熱意)로써”는 “종교를 맑게 사랑하는 마음으로”나 “종교를 사랑하는 깨끗한 마음으로”로 손질합니다. “바른 모델(model)을 정립(正立/定立)하기 위(爲)해”에서 ‘正立’이라는 한자말을 썼다면 ‘바른’이라는 앞말과 겹칩니다. ‘定立’이라는 한자말로 썼더라도 ‘세우다’로 다듬어야 알맞습니다. 이 대목은 “바른 틀을 세우고자”나 “바른 길을 찾고자”나 “바른 모습을 지키고자”로 다듬습니다. “노력(努力)하고 있고”는 “애쓰고”나 “힘쓰고”로 손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04) 아래 14


엄마랑 장을 보러 나왔다가 가로수 그늘 아래서 잠깐 쉬어 가기로 했어

《김순한·정승희-푸릇파릇 가로수를 심어 봐》(대교북스주니어,2010) 25쪽


 가로수 그늘 아래서

→ 가로수 그늘에서

→ 가로수 그늘 밑에서

→ 가로수 밑에서

→ 가로수 밑 그늘에서

 …



  한국말사전을 보면 ‘밑’을 “물체의 아래나 아래쪽”으로 풀이합니다. 여러모로 엉뚱합니다. ‘아래’는 “어떤 기준보다 낮은 위치”로 풀이합니다. 이런 뜻풀이로만 보면 ‘밑’과 ‘아래’는 똑같은 낱말로 여길밖에 없습니다. 한국말사전은 두 낱말을 이렇게 다루기만 할 뿐입니다. 두 낱말을 어떻게 갈라서 다른 자리에 써야 알맞는가 하는 대목을 못 밝히거나 안 밝히곤 합니다.


  ‘밑’은 바닥과 가까운 자리를 가리킵니다. ‘아래’는 ‘위’와 맞물려서 씁니다. “그 집 아래”라 하면, 땅속을 가리키지요. ‘아래층·위층’처럼 ‘아래’와 ‘위’라는 낱말은 어느 집에서 한 층 높거나 낮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 보기글에 나오듯이 “가로수 그늘 아래”처럼 쓸 수 없습니다. 그늘에서 아래란 어디일까요? 그늘에서 위란 어디일까요? 그늘을 위와 아래로 가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늘에서 위와 아래를 가른다 하더라도, “그늘 아래”라면 땅속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널리 부르는 대중노래 가운데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이 있습니다. 이 대중노래는 이름을 잘못 붙였습니다. 노래를 지은 사람이나 부르는 사람이나 엉뚱한 말을 쓰고 말았습니다. 이 노래를 듣는 사람도 엉뚱한 말을 따라서 쓰고 맙니다.


  대중노래도 문학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니, 문학이라 할 대중노래가 사람들한테 엉뚱한 말을 가르치는 셈입니다. 노래만 좋대서 다 좋은 일이 아니라, 노래가 좋으려면 가락뿐 아니라 노랫말도 좋으면서 알맞고 올발라야 합니다. 아이들이 부를 노래도 이와 같아요. 아이들은 노래만 부르지 않고 말을 배웁니다. 어린이 노래에 붙이는 노랫말을 아무렇게나 붙일 수 없겠지요.


  그늘은 “그늘 밑”이라고 적어야 합니다. 보기글에서는 “가로수 밑”이나 “가로수 밑 그늘”이나 “가로수 그늘”이라고 적을 수 있습니다. 4347.9.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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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장을 보러 나왔다가 가로수 그늘에서 잠깐 쉬어 가기로 했어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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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어렴풋하게 본



  어릴 적에 어머니 모습이 어떠했는지 가만히 떠올린다. 날마다 끼니를 챙겨서 차리는 어머니는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에 어떻게 쉬셨는지 가만히 헤아린다. 어머니는 두 다리 뻗고 등허리를 바닥에 붙일 때까지 쉬는 일이 없이 지내신다. 어머니가 이렇게 일하면 참 힘드시겠네 하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몸이 얼마나 힘든 노릇인지 헤아리거나 짚지는 못했다.


  오늘 나는 어머니가 예전에 서던 그 자리에 서서 밥을 짓는다. 졸립건 힘들건 고단하건 바쁘건 아무튼 밥을 짓는다. 밥을 짓는 동안 온힘을 기울여서 짓는다. 밥상에 밥을 다 차리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먹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밥상에 밥을 다 차리고 나면 내 마음은 슬그머니 조용히 눕고 싶다. 날마다 문득문득 돌아본다. 어릴 적에 본 어머니 모습은 이런 느낌이었구나. 아마 그무렵 어머니는 오늘 나보다 훨씬 고단하면서 등허리가 결렸을 테지.


  어머니가 일하실 적에 뒤에서 어깨를 곧잘 주무르곤 했는데, 어머니 어깨는 늘 딱딱했다. 내 어깨는 어떠한가. 내 어깨도 딱딱한가.


  밥상에 모두 다 차려도 수저는 잘 안 놓는다. 아마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버릇이지 싶다. 어머니는 이것저것 혼자 다 차리셔도 수저만큼은 안 놓으시곤 했다. 아버지가 물으면 “깜빡했지요.” 하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일부러 그러시지는 않았을까. 함께 밥 먹는 한집 사람이라면 수저쯤은 스스로 놓으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수저 놓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늘 알뜰히 챙겨서 올리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밥상에 수저를 안 놓으면 나도 수저를 안 놓고 가만히 지켜본다. 오늘 아침에 큰아이가 나한테 묻는다. “수저 어디 있어요?” “수저는 네가 좀 놓으면 안 될까?” “네.” 큰아이한테 말하고 나서 조금 더 부드러우면서 재미나게 말하면 한결 나았을 텐데 하고 깨닫는다. ‘밥은 아버지가 차렸으니 수저는 네가 놓으렴’이라든지 ‘응, 네가 수저를 놓으면 되겠네’쯤 말한다면 내 마음도 훨씬 따사로울 수 있으리라. 4347.9.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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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막걸리 쌀 10%



  포천막걸리는 참 재미있다. 모든 포천막걸리가 다 그러할는지 모르나, 얼마 앞서 만난 이웃이 마시는 포천막걸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쌀 10%(국내산), 밀 90%(수입산)’ 이렇게 적히더라. 쌀을 고작 10%만 써도 ‘막걸리’라 할 수 있을까? 나라밖에서 사들인 밀을 90%나 쓴 막걸리를 ‘우리 겨레 술’이라 할 수 있을까?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막걸리가 맛있다면서 사다 먹는 사람이 많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고 말고. 4347.9.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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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 고송, 초송, 신송을 찾아서
장국현 지음 / 시사출판사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91



어떤 사진을 믿겠는가

― 神氣

 장국현 사진·글

 호영 펴냄, 2008.4.30.



  ‘금강송’을 사진으로 찍으려 하면서, 가장 큰 금강송 둘레에서 자라던 220년 묵은 작은 금강송을 벤 장국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동안 이런 짓을 몇 차례 했는지 제대로 밝혀지거나 알려지지 않았으나, 법원에서는 세 차례 했다고 말하면서 장국현이라는 사람한테 벌금을 500만 원 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장국현이라는 사람이 벤 금강송 네 그루는 모두 6000만 원 값을 한다지요. 게다가 장국현이라는 사람이 금강송을 사진으로 찍은 뒤 수백만 원이나 수천만 원, 때로는 일억 원이 넘는 돈을 받고 팔았다지요.


  장국현이라는 사람이 선보인 《神氣》(호영,2008)라는 사진책을 장만해서 찬찬히 살핍니다. 이녁은 이 나라 여러 멧자락을 사진으로 담거나 아름다운 나무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심부름꾼을 늘 데리고 다닙니다. 그리고, 멧골에서 퍽 오래 머문다고 합니다. 사진 한 장 찍기까지 심부름꾼과 함께 두멧자락에서 무엇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밥은 어떻게 먹고, 똥은 어떻게 누었을는지 궁금합니다. 깊은 두멧자락에 숨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자면 ‘길이 없는’ 곳으로 다녀야 했을 텐데, 길이 없는 곳을 다니면서 ‘길을 어떻게 냈을’는지 궁금합니다. 두멧자락에서 여러 날, 또는 달포 즈음 지낸다고 한다면 천막을 치든 임시로 집을 짓든 해야 할 텐데, 이동안 나무를 얼마나 베었을까요. 겨울에 여러 날 두멧자락에서 묵자면 불을 때야 할 텐데, 불을 피우려고 나무를 얼마나 베었을까요.


  장국현이라는 사람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순간포착. 그렇다! 사진은 타이밍의 예술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한 산의 기후, 그 변화무쌍한 산의 모습 가운데 두 번 다시 없는 결정적인 순간을 만나야 좋은 산 사진이 된다 … 산만 생각하다 보면 그밖의 다른 것은 잊힌다. 모든 생각이 비워지면 대상과 일체가 된다. 그때 한 느낌이 온다. 그 느낌대로 하면 된다(43쪽).” 하고 말합니다. ‘순간포착’이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진은 어느 한때를 찰칵 하고 찍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어도 언제나 찰칵 하고 한 장 찍습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궁금합니다. 이녁은 ‘큰 금강송’을 가린다고 하면서 ‘작은 금강송’을 베어냈어요. 그러면, 백두산에서든 한라산에서든 사진을 찍을 적에 ‘앞을 가리는 여느 나무’는 어떻게 했을까요?





  장국현이라는 사람은 “전문가에 의하면 우리 나라 소나무가 50∼100년 후에는 해충과 지구온난화로 사라질 것이라 한다. 인간이 저지른 환경오염으로 소나무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우리 후손들도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된다(137쪽).” 하고 말합니다. 문득 살이 살짝 떨립니다. 사람이 저지른 환경오염 때문에 소나무가 사라진다고 하는 말이 어쩐지 하나도 안 와닿습니다. 사람이 저지른 환경오염에 앞서 ‘비싸게 사고팔 사진 한 장 찍는다면서 나무를 함부로 베어낸 탓’에 먼저 그 소나무들이 사라지지 않으랴 싶습니다. 더욱이, 소나무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서 다른 나무를 함부로 다룰 모습이 너무 선합니다.


  사진책 《신기》에서 장국현이라는 사람이 “어떤 분야든 성공의 동력은 열정과 영감이다. 마음을 한 곳에 모으면 마음의 힘이 길러져 원하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다(63쪽).” 하고 읊는 말은 어쩐지 텅 빈 소리 같습니다. 참말 참답게 애쓰는 사람은 땀방울과 뜨거운 가슴과 사랑으로 뜻을 이룹니다. 마음을 가만히 다스리면서 한 곳으로 모으면 못 이룰 만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여쭙겠습니까. 장국현 이녁은 왜 그렇게 나무를 함부로 베면서 나무를 사진으로 찍는지요? 나무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나무를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지요? 국유림이건 국유림이 아닌 곳이건 나무를 사랑하거나 아끼지 못하는 매무새로 어떻게 나무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지요? 이녁은 참말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아리송합니다.





 “사진인으로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예술가로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나는 소나무를 찾아 이 땅을 헤매고 다닌다. 이는 나의 의무이자 나만이 누리는 권리이자 기쁨. 그러나 사진 소재가 될 만한 나무는 정말 보기 힘들다(117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다가 고개를 살래살래 젓습니다. 아니지요. 아닙니다. 사진으로 찍을 만한 나무가 없을 수 없습니다. 사진으로 찍도록 마음을 쏟지 못했을 뿐입니다. 도시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며 콜록콜록 앓는 나무를 사진으로 담아도, ‘사진 찍는 사람 가슴’에 깊고 너른 사랑이 있으면 아름답게 찍습니다. 굴참나무를 찍든 떡갈나무를 찍든 콩배나무를 찍든 아왜나무를 찍든, 사진을 찍는 사람들 가슴에 어떤 숨결이 흐르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더 뛰어난 나무’를 찍기에 사진이 뛰어나지 않습니다. 더 크거나 더 멋져 보이는 나무를 찍기에 사진이 더 크거나 멋져 보일 수 없습니다. 이름난 연예인이나 배우를 찍으면 사진도 이름날까요? 웃기지도 않는 소리입니다.


  장국현이라는 사람은 “좋은 소나무를 사진에 담기 위해서 전국을 특히 강원도 지방에 험준한 산에 금강송을 찾으러 다니기 때문에 대단한 소나무들이 있는 곳을 보았다. 그러나 말할 수는 없다. 두 아름∼네 아름이나 되는 이런 노거송은 살아 있는 국보급이기 때문에 베어내면 안 된다(165쪽).” 하고 말합니다. 문득 무릎을 칩니다. 이녁이 ‘국보급 나무가 있는 곳을 말할 수 없는 까닭’을 어렴풋하게 짚어 봅니다. 나무를 지키려는 뜻에서 말하지 않겠다는 마음인지, 이녁이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서 망가뜨렸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마음인지, 어느 쪽이 참인지 참으로 알쏭달쏭하다고 느낍니다. 이제껏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또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으려 하는지, 참으로 믿을 길이 없습니다. 4347.9.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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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4-09-27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말도 안되!!! 나무 사진을 찍기 위해 나무를 베었다니요. 소름끼치도록 섬뜩합니다.
책 제목이 가관이군요. 神氣.... 그것 참. 진저리 칠 따름입니다. 흐아아 ㅠㅠ

파란놀 2014-09-27 17:08   좋아요 0 | URL
그냥 나무도 아닌 `국유림`에서 `국보급 나무`를 함부로 베었는데,
지난해인가 올해에 비로소 바깥에 알려져서
처음으로 벌금 500만 원을 울진 법원에서 물렸다 하는데,
벌금이 고작 500만 원이랍니다...

청와대이며 국회의사당이며 인천공항이며...
곳곳에 이 사람 사진이 걸렸다더군요...
 
벤지의 선물 다산어린이 그림책
이치카와 사토미 글.그림, 정숙경 옮김 / 다산어린이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6



우리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지

― 벤지의 선물

 이치카와 사토미 글·그림

 남주현 옮김

 두산동아 펴냄, 1996.10.29.



  가을이 무르익어 구월이 천천히 기웁니다. 시골집 처마에 깃들면서 새끼를 낳은 제비는 어느덧 거의 다 태평양을 가로질러 따뜻한 새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아직 돌아가지 않은 제비도 있어요. 아마 새끼를 두 차례 낳았나 봐요. 새끼를 한 차례만 낳은 어미 제비와 다 자란 새끼 제비는 일찌감치 돌아갔지만, 다시 새끼를 낳은 어미 제비는 늦둥이를 돌보면서 날갯짓을 가르치느라 바쁘리라 생각해요.


  시골마을마다 들판이 누렇게 달라집니다. 누런 빛깔이 짙을수록 나락이 익는다는 뜻입니다. 참새는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아 부산을 떱니다. 추운 겨울이 닥치면 아무래도 넉넉히 먹어야 할 테니까요.


  느즈막하게 깨어난 나비는 가을춤을 춥니다. 겨울나기를 하는 나비라면 큰나무 밑에서 가랑잎 품으로 깃들어 천천히 쉬리라 생각해요. 풀벌레도 이렇게 겨울을 맞이하려 하겠지요. 여름 내내 푸른 빛깔이던 풀벌레는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몸빛이 흙빛으로 바뀝니다. 여름 동안 나무에 푸른 빛깔로 달렸던 잎사귀는 어느새 누렇게 말라서 톡 떨어집니다. 나무가 선 자리마다 누런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입니다.



.. 어느 여름날, 노라는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초대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노라는 강아지 키키, 인형 마기와 곰인형 푸에게 큰 소리로 편지를 읽어 주었습니다. “놀러 오세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준비했습니다. 정원도 넓고, 수영장도 있습니다. 틀림없이 즐거운 시간이 될 거예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의 거위로부터.” ..  (2쪽)




  우리 집 뒤꼍에서 무화과알을 땁니다. 올해에는 무화과 몇 그루를 잘 건사했기에 무화과알을 제법 얻습니다. 달디단 무화과알은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지 몰라요. 무화과나무가 우리한테 베푸는 고운 가을 선물입니다.


  감나무도 우리한테 선물을 베풉니다. 모과나무도 선물을 베풀고, 나무란 나무마다 서로 다른 선물을 우리한테 나누어 줍니다. 가만히 보면, 나무는 열매만 선물하지 않아요. 한 해 내내 푸른 바람을 선물합니다. 싱그럽게 숨을 쉬고 맑게 꿈을 꾸도록 푸른 바람을 선물하는 나무입니다.


  여름에는 짙푸른 그늘을 선물하지요. 겨울에는 매서운 바람을 막아 주지요. 참말 나무 몇 그루 집 둘레에 우람하게 서면, 이 집에는 따뜻하고 너그러운 숨결이 가득가득 맴돕니다.


  예부터 집집마다 나무를 심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아이를 낳는 집이면 으레 ‘우리 집 나무’를 심어요. 아이 이름을 따서 나무를 심습니다. 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사랑스러운 짝을 만나 새롭게 아이를 낳으면, 또 새롭게 이름을 붙여 나무를 심어요.



.. “이런! 누가 선물로 가지고 온 들꽃에 얼굴을 파묻고 있지?” “이웃에 사는 벤지예요. 아, 그렇지. 벤지도 와서 우리와 놀자.” 거위는 벤지도 초대했습니다 ..  (6쪽)




  아이와 살아가는 어른은 나무를 심습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나무를 선물합니다. 아이는 어른한테 무엇을 선물할까요? 글쎄, 아이들은 어른들한테 무엇을 선물하지요?


  아마, 가장 큰 선물이라면 웃음입니다. 웃음과 함께 노래를 선물합니다. 웃음과 노래가 어우러진 이야기를 선물합니다. 웃음과 노래가 어우러진 이야기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늘 언제 어디에서나 어른들한테 사랑을 선물하는 셈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나무와 밥과 옷과 집이라 하는 선물에 사랑을 담고, 아이들은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라는 선물에 사랑을 싣습니다.



.. 차를 마신 뒤에는 마당에서 신나는 나무타기놀이 ..  (16쪽)




  이치카와 사토미 님 그림책 《벤지의 선물》(두산동아,1996)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치카와 사토미 님은 이 그림책을 1990년에 처음 선보였다고 하니, 제법 나이를 먹은 그림책입니다. 부드러우면서 포근한 붓질이 따사로운 그림책인데, 이 책에 서린 이야기도 부드러우면서 포근해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 ‘노라’는 숲 속 거위한테서 편지를 한 통 받는다고 해요. 네, 거위한테서 편지를 받습니다. 노라는 제 동무인 인형들한테 편지를 읽어 준다고 하는군요. 네, 인형들한테 편지를 읽어 줍니다.


  다시 말하자면, ‘노라’라고 하는 아이는 거위랑 인형하고 말을 섞을 줄 압니다. 거위랑 인형은 노라라는 아이하고 말을 섞고 싶습니다. 함께 놀면 즐겁고, 서로 아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 낮잠을 잘 때에 벤지는 푹신푹신한 베개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친구에게 도움이 되어서 기쁜가 봐요 ..  (25쪽)




  참말 아이들은 거위나 양이나 인형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비디오나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잠자리나 제비나 매미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지식이나 저런 정보를 머릿속에 채우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구름이나 해나 별하고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열면 우리는 누구하고나 동무가 됩니다. 마음을 열 때에 우리는 서로서로 믿고 아끼는 동무가 됩니다. 마음을 여는 동안 어느새 내 사랑이 너한테 가고 네 사랑이 나한테 옵니다.



.. “어, 이게 그 뚱뚱했던 벤지야?” “전혀 뚱뚱하지 않잖아!” 이번에는 노라와 그 친구들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무슨 일이든 벤지 탓으로만 돌려 왔으니까요 ..  (29쪽)



  온몸을 가득 덮은 털로 뚱뚱해 보이던 양은 노라한테 선물을 하나 줍니다. 양은 이름이 ‘벤지’입니다. 양 벤지는 거위랑 인형이랑 노라한테 선물을 가득 받았어요. 맛난 밥이나 꽃만 선물이 아니에요. 서로 아끼고 보듬는 따사로운 사랑을 선물로 받았어요. 그래서, 벤지는 제 털로 지은 폭신하고 따스한 털옷 한 벌을 선물로 보내지요. 아주 마땅합니다만, 삐뚤빼뚤이어도 손수 편지를 곁들여서 소포꾸러미를 선물로 보내요.


  마음을 열어 사귀는 사이라면 늘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늘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동무와 동무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하늘과 땅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별들도 서로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우리는 지구별하고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고, 해님이나 달님하고도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들꽃 한 송이하고도 선물을 주고받으며, 우람한 나무 한 그루하고도 애틋하게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서로, 무엇을 선물로 주고받으면 즐거울까요? 우리, 다 함께, 무엇을 선물로 나눌 적에 아름답게 웃으면서 노래를 부를 만할까요? 4347.9.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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