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라는 게시판에서는 별 다섯을 꾹 눌러서 줄 만한 영화 이야기만 쓰려 했는데,

아무래도 '아쉽다고 느낀 영화' 이야기도 안 쓸 수 없구나 싶어서

따로 게시판을 나누어 본다.


별 다섯 영화만 모으는 자리에

별 하나부터 두서넛을 붙이는 영화를

나란히 놓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느끼는 아쉬움이니,

다른 사람은

즐거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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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32) 중하다重 3


이 선생님은 상추, 들깨 등 재배 채소를 중히 여기고 그것 한 포기 살리기 위해서 주변의 야생초들을 깔아뭉개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시는데 나는 그것이 못마땅해서 번번이 제동을 걸지

《황대권-야생초 편지》(도솔,2002) 54쪽


 중히 여기고

→ 알뜰히 여기고

→ 살뜰히 여기고

→ 알뜰살뜰 여기고

→ 고이 여기고

→ 높이 여기고

→ 크게 여기고

 …



  어느 것을 크거나 높이 여긴다고 하는 자리에 ‘重히’ 같은 외마디 한자말을 쓰는 분을 곧잘 봅니다. 이 외마디 한자말이 어울린다고 여겨 쓰는구나 싶은데, 크게 여긴다면 ‘크게’라는 한국말을 쓰면 되고, 높이 여긴다면 ‘높이’라는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나타내려는 뜻과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쓰면 됩니다.


  밭을 일구는 모습을 살핀다면, 풀 한 포기를 알뜰살뜰 아끼는 모습이 될 테니 ‘알뜰살뜰’이나 ‘알뜰히’나 ‘살뜰히’ 같은 낱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고이’나 ‘곱게’나 ‘소담스레’ 같은 낱말을 넣어도 됩니다. 4347.9.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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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님은 상추, 들깨 같은 남새를 알뜰히 여기고 그것 한 포기 살리려고 다른 풀을 깔아뭉개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시는데 나는 워낙 못마땅해서 그때마다 막으려 하지


‘등(等)’은 ‘같은’으로 다듬고, “재배(栽培) 채소(菜蔬)”는 “남새”로 다듬으며, “살리기 위(爲)해”는 “살리려고”로 다듬습니다. “주변(周邊)의 야생초(野生草)”는 “둘레에 돋은 풀”이나 “옆에 난 풀”이나 “다른 풀”로 손봅니다. ‘번번(番番)이’는 ‘그때마다’로 손질하고, “제동(制動)을 걸지”는 “멈추게 하지”나 “막지”나 “막으려 하지”나 “막으려고 나서지”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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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07) 해서 2


야생초 싹들이 줄줄이 얼굴을 내미는 통에 이들을 모두 살리자면 상추를 옮겨 심지 않으면 안 되었단다. 해서 튼튼한 상추 모종들은 모조리 새로 만든 밭에 옮겨 심어 겨우 의도했던 상추밭을 만들게 된 거야

《황대권-야생초 편지》(도솔,2002) 54쪽


 해서

→ 이렇게 해서

→ 그래서

→ 이래서

→ 이리하여

→ 그리하여

 …



  누가 맨 먼저 ‘해서’ 같은 말투를 썼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올바르지 않은 말투요, 틀린 말투이며, 잘못 쓰는 말투인데, 이런 말투가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이 말투를 바로잡으려는 사람은 드물고, 이 말투를 그대로 따라서 쓰는 사람이 제법 많지 싶습니다.


  잘못 쓰는 말투도 차츰 길들거나 익숙하면 뿌리를 내린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엉성하거나 엉터리인 말투도 사람들한테 두루 퍼지면 바로잡지 못하거나 고치기 어렵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말버릇이나 글버릇을 가다듬기는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버릇이 되면 손이나 입이나 눈에 굳은 말투일 테니, 이런 말투를 털기란 참으로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이러할 때에는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한테 익숙한 말투라고 해서 잘못 쓴 말투를 바로잡지 않아도 되는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말버릇이나 글버릇이 되었으니 앞으로도 이대로 줄기차게 써도 될 만한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29.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풀싹이 줄줄이 얼굴을 내미는 통에 이들을 모두 살리자면 상추를 옮겨 심지 않으면 안 되었단다. 이리하여 튼튼한 상추싹은 모조리 새로 만든 밭에 옮겨 심어, 겨우 뜻했던 상추밭을 만들었어


“야생초(野生草) 싹”은 “풀싹”으로 바로잡습니다. ‘모종(-種)’은 옮겨 심으려고 가꾼 어린 풀을 가리키는데, 옮겨 심을 만큼 자란 어린 풀이라면 ‘싹’이 난 풀입니다. “상추 모종”은 “어린 상추”나 “상추싹”으로 손질합니다. ‘의도(意圖)했던’은 ‘뜻했던’으로 손보고, “만들게 된 거야”는 “만들었어”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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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다섯 가지 낱말을 알맞게 뜻을 살펴서

즐겁게 두루 쓰는 사람을 

요즈음 들어

거의 못 봅니다.


어른문학에서든 어린이문학에서든

이러한 말을 쓸 일은 

이제 없기 때문일까요.


..


이내·내리·내내·줄곧·줄기차게

→ 그대로 이어지는 모습을 가리키는 낱말 가운데 ‘이내’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잇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내리’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모습을 가리키는 한편, “잇따라 자꾸”와 “마구”를 나타내기도 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고 할 때에는 ‘내내’라 하고, 어떤 데에서 더 이어지는 모습을 가리키려고 ‘줄곧’을 씁니다. 억세거나 세차게 이어지는 모습을 가리킬 적에는 ‘줄기차다’를 써요. 비나 눈이 줄기차게 내린다면 제법 지칠 만합니다. 비나 눈이 줄곧 내린다면 그칠 낌새가 안 보인다는 뜻입니다. 비나 눈이 내내 내린다면 그야말로 쉬지 않고 내린다는 뜻입니다. 비나 눈이 내리 내린다면 ‘비를 이어 다시 비’나 ‘눈을 이어 다시 눈’이라 할 만큼 자꾸 비나 눈이 내린다는 뜻입니다.


이내

1. 그때에 더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 품에 안으니 이내 잠드는 아이

 - 이내 차분한 목소리가 된다

 - 배불리 먹으니 이내 하품이 나온다

2. 그때 모습이나 흐름이 그대로 이어져

 - 어젯밤부터 이내 곁에서 보살폈어요

 - 지난해하고 올해하고 이내 같은 얼굴이네

3. 가까운 곳에

 - 집 앞에 이내 붙은 텃밭이야

내리

1. 위에서 아래로

 - 물은 내리 흐릅니다

 - 골짝물은 내리 흐르니까 조금 더 올라가 볼까

 - 내리사랑 치사랑

2. 잇따라 자꾸

 - 쉬지 않고 내리 걷기만 하니 다리가 아파

 - 우리 집은 내리 아들인데, 너희 집은 내리 딸이로구나

 - 네가 전화도 안 받아서 아침부터 내리 기다렸어

 - 며칠째 내리 눈이 내려 온 마을이 하얗다

3. 아무렇게나 세차게 (마구)

 - 가만히 지나가는 벌레를 내리 밟으면 어쩌니

 - 이불 빨래를 할 적에는 그렇게 내리 밟지 말고 차근차근 골고루 밟아야지

 - 고비를 하나 넘겼다 싶으니 다른 고비가 내리 찾아드네

내내

: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서

 - 너는 내내 잔소리만 하는구나

 - 한 해 내내 따스한 마을입니다

 - 아침부터 내내 싱글벙글 웃는구나

 - 하루 내내 아무것도 못 먹었다니 배고프겠구나

 - 할아버지도 내내 잘 지내셔야 해요

줄곧

: 어떤 일·모습·흐름·끝에서 더 나아가거나 잇거나 따라서

 - 너는 줄곧 집에만 있었구나

 - 내 동생은 줄곧 고구마만 먹어요

 - 오늘은 너희 집까지 줄곧 자전거로 달려 보았어

 - 자면서 줄곧 이불을 걷어차더니 고뿔에 걸렸구나

 - 여러 날 줄곧 내리는 비에 민들레도 꽃봉오리를 닫는다

줄기차다

1. 억세고 세차게 나아가서 조금도 쉬지 않고 이어지다

 - 작은오빠는 피아노 앞에 앉으면 몇 시간이고 줄기차게 쳐요

 - 장대비가 벌써 두 시간째 줄기차게 쏟아진다

 - 우리 땅을 알고 싶어서 해남부터 서울까지 줄기차게 걸었습니다

2. 끊이지 않으면서 몹시 잘 견디거나 붙다 (질기다)

 - 나는 네가 올 때까지 줄기차게 기다렸어

 - 줄기차게 바란 끝에 드디어 꿈을 이루었어

 - 나는 누나 꽁무니를 줄기차게 좇고, 동생은 내 꽁무니를 줄기차게 좇아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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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삶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이라면, 어른도 함께 배워야 하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시골에서 두 아이를 돌보며 사는 동안 늘 느낍니다. 아이한테만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가르치면서 어버이인 나도 아이와 함께 배웁니다. 그러니까, 어른인 나 스스로 즐겁게 배워서 사랑스럽게 삶을 가꿀 이야기를 아이한테 가르치는 셈입니다. 아니, 아이한테 가르친다기보다 ‘물려준다’고 해야 옳습니다. 물려준다기보다도 ‘보여주’거나 ‘함께 나누’거나 ‘나란히 즐긴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는 무엇을 배울 때에 즐거울까요? 삶을 배울 때에 즐겁겠지요. 아이는 옆에서 어른들이 어떻게 가르칠 적에 즐거울까요? 활짝 웃고 노래하는 따사로운 마음으로 가르칠 때에 즐겁겠지요. 졸업장을 거머쥐려는 입시 시험이 아닌 삶을 스스로 가꿀 수 있는 슬기로운 길을 아이와 함께 가르치고 배우면서, 내 보금자리와 우리 마을을 함께 북돋우는 삶이 될 때에, 참다운 배움을 이루리라 느껴요.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모두 ‘배우는 책’입니다. ‘가르치는(교훈) 책’이 아닙니다. 삶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며 꿈을 배우도록 이끄는 책이 바로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보면서 즐거운 까닭은, 삶과 사랑과 꿈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도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즐겁게 느낀다면, 삶과 사랑과 꿈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새롭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어린이문학을 놓고 ‘교훈’이 있어야 하느냐 없어도 되느냐 하고 다투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어린이문학은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문학이 아니지 싶습니다. 어린이문학은 누구나 즐겁게 배우는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도 배우고 나도 배우는 문학이에요. 어린이도 배우고 어른도 배우는 문학입니다.


  어린이문학을 읽으면서 ‘삶을 즐겁게 배우는 어린이’는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차근차근 헤아립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바라보며 스스로 제 길을 찾아서 걷습니다. 지식을 배우거나 정보를 얻도록 하는 어린이책이 아니라, 삶과 사랑과 꿈을 배우도록 하면서,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서거나 걷도록 돕는 어린이책입니다.


  어린이책을 쓰는 어른은,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어린이책을 아이한테 선물하면서 함께 읽는 어른은,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배우면서 함께 자라려는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랍니다. 아이는 몸과 마음이 자라고, 어른은 몸과 마음이 한결 튼튼하게 거듭납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어린이문학을 읽으면서 말을 새롭게 배웁니다. 어른들도 어린이문학을 읽으면서 ‘어떤 말로 생각을 지어서 아이와 함께 나눌 때에 즐거운가’ 하고 살피면서 말을 새롭게 배웁니다. 삶과 사랑과 꿈도 언제나 새롭게 배우고, 말과 글도 언제나 새롭게 배웁니다. 배움은 고이지 않습니다. 배움은 흐릅니다. 어릴 적부터 어떤 낱말이나 말투가 익숙하다고 해서, 이런 낱말이나 말투를 언제까지나 써도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한테는 익숙하지만 알맞지 않거나 올바르지 않은 낱말이나 말투가 있기도 해요. 이때에는 ‘아이가 말을 새롭게 배우’듯이 ‘어른도 말을 새롭게 배워’야 옳습니다. 이제껏 잘못 쓰거나 얄궂게 쓴 낱말과 말투를 내려놓고, 앞으로는 옳고 바르면서 알맞게 쓸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새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자랍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날마다 즐겁게 자랍니다. 어른들도 날마다 즐겁게 자라려 한다면 언제나 새롭게 배우면 됩니다. 이웃이 지내는 삶을 배우고, 내가 나아갈 꿈을 배웁니다.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배우고, 내 꿈을 이루도록 씩씩하게 걸어갈 길을 배웁니다. 아름답게 노래할 말을 배우고, 사랑스레 써서 주고받을 글을 배웁니다. 4347.9.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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