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흘린 땀 (사진책도서관 2014.9.17.)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을 한다면서 여러 해 책을 만지작거린다. 책꽂이를 들이고, 걸상을 들이며, 틈틈이 쓸고 닦는다. 창문을 열어 바람갈이를 하고 이모저모 꾸민다. 공공도서관이 아닌 개인도서관이니, 이 도서관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웃님 손길을 받으면서 씩씩하게 자리를 지킨다.


  개구지게 잘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도서관 구석구석 손질하고 빗물 샌 자리를 훔치고 곰팡이를 닦고 하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 나는 왜 이렇게 이곳에서 땀을 흘릴까? 내가 개인도서관을 열지 않고 조용히 책만 건사하며 살았으면 어떤 길을 걸었을까?


  즐겁게 읽은 아름다운 책을 혼자 들여다보기에는 많이 아쉽고 아깝다고 여겨 서재를 도서관으로 바꾸었다. 그러니, 우리 도서관은 더 많은 사람이 손님으로 찾아오는 책터가 되기보다는, 책을 알뜰히 아끼고 사랑해 줄 이웃을 손님으로 맞이하는 책터로 간다고 느낀다.


  한 사람이건 만 사람이건 늘 같다. 마음으로 만날 수 있고, 마음을 열어 책을 사귈 수 있으면 된다. 책에서 얻은 이야기를 마음으로 삭혀서 저마다 즐겁게 삶을 가꾸는 밑거름으로 삼으면 기쁘다.


  가만히 보면, 나는 사진책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서재도서관을 지켰기에, 사진 이야기를 참 바지런히 쓰고, 다른 아름다운 책을 널리 알리는 일도 제법 씩씩하게 한다. 내가 보기에 나는 참 씩씩하지 싶다. 도서관에서 흘린 땀은 바로 내 눈물이자 웃음이라고 느낀다. 좋구나. 잘 놀았기에 졸음이 쏟아지는 산들보라를 바라본다. 그래,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집에 가서 샛밥을 먹자.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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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가 아저씨인 줄 아니?



  나는 내 생일을 딱히 생각하지 않고 산다. 나는 한국말사전 만드는 일을 하지만 딱히 한글날을 생각하지 않고 일한다. 삼백예순닷새 내내 한국말사전을 생각하지, 어느 하루만 한국말사전을 생각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난 날을 기린다고 한다면, 어느 하루만이 아니라 삼백예순닷새 내내 내 삶을 스스로 기리면서 살 때에 즐겁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늘 생각하는 것이란 한결같이 마음에 깃들기에 굳이 따로 꺼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 나이나 성별이나 고장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몇 살을 먹었기에 어떤 생각을 따로 더 할 까닭이 없다. 내 성별이 무엇이니까 아저씨답게 글을 쓰거나 아줌마답게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어느 고장에서 사니까 어느 고장 쪽에 서서 글을 쓸 일도 없다.


  어떤 글을 쓰든 오직 하나를 생각할 뿐이다. 내가 쓰는 글이 올바른가·아름다운가·사랑스러운가·알맞을까·즐거울까, 이러한 대목을 차근차근 짚으면서, 이러한 대목을 밝히는 글이 되는가 하고 생각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으면서 ‘아저씨이니까 저렇게 글을 쓰지!’ 하고 여긴다면, 또는 ‘시골내기이니까 저렇게 글을 쓰지!’ 하고 여긴다면, 또는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저렇게 글을 쓰지!’ 하고 여긴다면, 우리는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하다. 이런 것을 따진다면, ‘졸업장 따지기’나 ‘경력 따지기’하고 똑같다. 글은 졸업장으로 쓰지 않는다. 글은 경력, 그러니까 더 오래 많이 썼다고 해서 잘 쓰지 않는다.


  마음을 읽고 마음을 쓴다. 마음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는다. 마음이 아니라면 글이 태어나지 않는다. 마음이 아니라면 글이 훨훨 날아서 찾아가지 않는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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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통을 처마 밑으로



  지난해에 오줌통을 마루 아닌 처마 밑으로 옮기려 했으나 잘 안 되었다. 엊그제까지 오줌통은 마루 한쪽에 놓았다. 이제 이 오줌통은 섬돌 옆 처마 밑에 둔다. 이틀째인데,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섬돌로 내려선 뒤 처마 밑에 있는 오줌통에 똥이랑 오줌을 잘 눈다. 시골집이니 뒷간은 마땅히 집안에 없다. 마당 한쪽에 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잘 컸다. 새벽이든 밤이든 씩씩하게 바깥에서 쉬를 눈다.


  아이들도 곧 알 테지. 깜깜한 밤이나 희뿌윰한 새벽에 마당으로 내려서서 쉬를 누면, 바람맛이 다르고 바람결이 새로운 줄 느낄 테지. 마루를 한결 넓게 쓸 수 있겠네. 마루에 있는 자질구레한 짐도 마저 치워야겠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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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읽는 책



  인천에서 나고 자란 뒤 서울에서 여러 해 지내면서 마음속에 늘 한 가지가 맴돌았다. 몹시 아쉬운 한 가지였으니, 마당에 걸상을 놓고 나무그늘을 누리면서 읽는 책이었다.


  마당이 예쁘게 있는 시골집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를 귓가로 스치면서 고즈넉하게 책을 읽는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발소리 사이로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나뭇잎이 살랑이는 노래가 흐른다. 더 많이 읽거나 더 빨리 읽을 일이 없다. 그날그날 마음을 살며시 살찌우면서 생각을 추스른다. 이제껏 품은 생각을 가다듬고, 미처 길어올리지 못한 생각을 보듬는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즐거울까. 하루를 아름답게 짓는 길에 새롭게 기운을 낼 수 있으니 즐거우리라 느낀다. 내 이웃들도 나무그늘에서 햇살을 느낄 수 있는 마당을 누리면서 책을 손에 쥐고 풀내음을 맡을 수 있기를 빈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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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데이 2014.10
월간 해피투데이 편집부 엮음 / 혜인식품(월간지)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173



깜짝 놀란 재미난 잡지

― 해피투데이 2014.10. (50호)

 혜인식품 펴냄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읽고서 서울에서 고흥으로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사진책도서관을 둘러보며 그 책을 쓴 바탕을 헤아리고 싶다고 합니다.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는 손님은 반갑습니다. 왜냐하면, 멀다고 해 본들 그리 멀지 않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멀다고 느낀다면 마음이 멀기 때문에 멀 뿐입니다. 마음이 가까울 적에는 언제 어디에 있어도 언제나 한마음입니다. 몇 해 만에 얼굴을 보아도 언제나처럼 반가운 사람이 있고, 자주 부대끼거나 날마다 스치더라도 안 반가운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행작가로 일하는 박상준 님이 기차와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서 고흥으로 찾아옵니다. 고흥에서 살며 돌아보면, 다른 고장에서 고흥으로 오기란 참 힘든 노릇입니다. 거꾸로 보면, 고흥에서 다른 고장으로 가는 길도 참 힘듭니다. 섬이 아닌 뭍 가운데 이렇게 오가기 힘든 곳은 고흥이 으뜸이리라 느낍니다. 기찻길도 고속도로도 없는 꼭 하나뿐인 고장이니까요.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으나, 어릴 적부터 시골살이를 마음에 담으며 자랐습니다. 언젠가 시골로 갈 줄 알았습니다. 언제 갈는지 몰라도 도시에서 내 삶을 더 이을 수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내 몸이 그리 단단하지 않아 도시에서 버틸 재주가 없었어요. 곁님도 곁님이지만 ‘군면제를 받을 만큼 안 좋은 코(그러나 줄을 잘못 서서 군면제는 못 받은)’로는 도시에서 숨을 쉬기도 아주 힘들었어요.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열 살 어린이가 스스로 읽어서 스스로 말을 깨닫도록 도우려고 썼습니다. 그래서 어느 어른(어버이나 교사)한테는 아주 쉬울 수 있고, 한국말을 깊이 살피지 않는 어른이라면 너무 어렵거나 뜬금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시골에서 아이들과 살면서 썼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동안 ‘모든 말과 삶은 시골에서 태어났다’는 대목을 깨달았기에, 이러한 이야기를 이웃과 나누고 아이들한테 들려주려고 이런 책을 썼어요.


  〈해피투데이〉라는 잡지에 ‘시골에서 사는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를 쓴다는 박상준 님이 이 책을 알아보았다고 하니 여러모로 반갑습니다. 아무래도 ‘시골 이야기’를 찾는 마음이기에 내 책을 만날 수 있었구나 싶고, 무엇보다 잡지에 ‘시골사람 이야기’를 쓰려는 마음이 예쁩니다.


  그런데, 〈해피투데이〉라는 잡지를 펴낸 곳 이름은 ‘혜인식품’입니다. 무슨 식품회사에서 잡지를 내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살피니, 곳곳에 ‘네네치킨’ 광고가 나옵니다. 튀김닭집에서 잡지를 크게 밀어주려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간기를 보고는 깜짝 놀랍니다. 이 잡지는 튀김닭집을 하는 식품회사에서 돈을 대어 내는 얼거리입니다.


  튀김닭을 팔아서 버는 돈으로 잡지를 만드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재미있습니다. 어여쁜 모습입니다. 즐겁게 벌어서 즐겁게 쓸 줄 아는 마음이 있구나 싶습니다.


  다달이 내놓는 잡지 하나 만드는 돈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손꼽히는 연예인을 불러서 광고 한 번 찍은 뒤 방송에 내보내는 돈보다 훨씬 적게 듭니다. 아니, 방송광고를 한 번만 안 해도 한 해 동안 이러한 잡지를 펴낼 수 있습니다.


  〈해피투데이〉 2014년 10월치에 실린 황안나 님 이야기를 읽습니다. 황안나 님이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다닌 이야기를 ‘샨티’라는 출판사에서 2005년에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이름을 붙여 선보인 적 있습니다. 어느덧 열 해가 흐릅니다. 잡지에 실린 황안나 님 얼굴에 주름이 더 많이 보이는데, 낯빛이나 몸빛은 외려 열 해 앞서보다 단출하고 정갈해 보입니다. 그동안 참 많이 걷고 조용히 생각하며 삶을 돌아보셨겠구나 싶습니다.


  110쪽 안팎 되는 조그마한 잡지에 실은 글과 사진은 튀거나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수수합니다. 서울 누하동에 있던 헌책방 〈대오서점〉 사진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이제 〈대오서점〉은 헌책방이 아닌 ‘헌책방 자국을 살린 북카페’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잘되었습니다. 〈대오서점〉은 그야말로 소리도 소문도 없이 사라지겠다 싶은 헌책방이었습니다. 참말 아무도 이 작은 헌책방을 들여다보지 않던 때, 아마 2002년인가 2001년이지 싶은데, 그무렵에 서울 시내 골목에 조용히 깃든 헌책방을 찾으려고 날마다 서너 시간, 때로는 예닐곱 시간을 걸어다니며 지냈습니다. 이러면서 〈대오서점〉을 보았고, 이 이야기를 어느 누리신문에 썼는데, 이때부터 다른 매체에서 이곳을 꾸준하게 취재했어요. 조용히 지내던 헌책방 할머님을 아주 귀찮게 하고 만 셈인데, 할머니는 늘 서글서글 여러 취재 손님을 맞아 주신 듯합니다. 예전에는 이곳을 아끼거나 돌아보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이제는 이곳을 찾아가는 사람이 많으니, 앞으로도 긋곳에 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재료에 따라 변화무쌍해지는 맛! 김밥은 완벽한 동그라미다.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는다면 뭘 먹을 거야’라는 어려운 질문에 망설임없이 감밥을 떠올린 것은 아마 가장 가까이서 큰 위로를 주는 음식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83쪽/최진영)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 언제나 가장 맛있으리라 느낍니다. 나한테도 저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니까 ‘한 가지만 먹어야 한다면 무엇을 먹겠어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빙그레 웃으며 한 마디 할 생각입니다.


  “나는 바람을 먹겠어요.” 또는 “나는 햇볕을 먹겠어요.” 지구별에서 산다면 바람을 먹고, 우주에서 산다면 햇볕을 먹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작은 잡지를 살그마니 덮습니다. 재미있습니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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