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에서 펴내는 격월간잡지 2014년 9-10월호에 싣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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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35. ‘우수’상은 ‘덤’으로 준다

― 살아가는 대로 쓰는 말



  ‘우수’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 한 마디만 들려주면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요? 곰곰이 생각에 젖어 봅니다. 나는 이 낱말과 얽혀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꽤 어릴 적 일을 떠올립니다. 열 살 언저리나 더 어릴 적에 어머니 손을 잡고 저잣거리에 나들이를 가던 일을 그립니다. 그때 어머니는 저잣거리에서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장만하면서 “‘우수’ 없어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할머니는 “우수? 우수 줘야지.” 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우수’요? 우수가 뭐예요?“ 하고 되묻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러니까, ‘덤’. 덤 없어요?” 하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였는지 이웃 할아버지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어떤 할아버지한테 내 상장을 자랑하듯이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우수’ 상장을 받았어요!” 할아버지가 상장을 받아서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우수상이라고? 더 얹어서 주는 상이 뭐가 좋다고 그러냐?” 하고 한마디 퉁을 놓았습니다. 이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아리송했습니다. 못 알아들었습니다. 저잣거리에서 어머니한테서 들은 ‘우수’를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말하고 이어서 생각하지 못했어요.


  한국말 ‘우수’나 ‘우수리’는 요즈음 아주 잊히거나 사라지거나 죽은 말이 됩니다. 이 자리에 한자말 ‘성과(成果)’과 ‘성과급(成果給)’이 또아리를 틉니다. 그리고, 이 한자말조차 밀어내고 영어 ‘인센티브(incentive)’가 밀려듭니다.


  지난 1991년에 《草家》(열화당 펴냄)라는 사진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책이름을 한자로만 적으니 아쉬운 노릇이지만, 그래도 이 사진책은 낱말을 잘못 적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흔히 ‘초가집’처럼 잘못 말하거든요.


  ‘초가’는 ‘풀(草) + 집(家)’입니다. ‘풀집’을 일컬어 ‘초가’라는 한자말을 예전 지식인이 지은 셈입니다. 그러니, ‘초가집’이라 말하면 ‘풀집집’ 꼴이 됩니다. 아주 우스운 말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 겨레는 예부터 ‘풀집’을 지었을까요? 풀(이엉)로 지붕을 얹었거든요. 풀로 담을 이었어요. 기둥은 나무로 세우지만, 기둥 사이를 막을 적에는 풀(짚)을 이겨 넣은 흙을 댔습니다. 집이 온통 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풀과 흙과 나무와 돌로 지은 집이 ‘한겨레 살림집’입니다. 풀을 여러모로 아주 많이 쓰기에 ‘나무집’이나 ‘돌집’이라고는 안 하고 ‘풀집’이라 했어요.


  지난날 우리 겨레는 옷을 지을 적에 풀에서 실을 얻었습니다. 모시풀이나 삼풀에서 실을 얻었어요. 모시옷은 모시풀에서 얻은 모시실로 지은 옷이요, 삼베옷은 삼풀에서 얻은 삼실로 지은 옷입니다.


  밥은 어떻게 먹었을까요? 밥도 풀밭에서 얻었지요. 온갖 나물이란 바로 풀입니다. 사람이 손수 심어 ‘남새’이고, 들과 숲에서 스스로 자란 풀을 뜯어서 먹으면 ‘나물’입니다. 이런 삶이었으니, 한겨레 살림집은 ‘풀집’일밖에 없습니다. 풀옷이고 풀밥이니까, 이 흐름에 맞게 ‘풀집’이에요.


  노르웨이에서 날아온 어린이책 《비발디》(어린이작가정신,2014)를 읽다가 38쪽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고 식탁 앞에 앉았어요. 향긋한 차.”라는 대목을 봅니다. “아침밥”이라 안 하고 “아침 食事”로 적을 뿐 아니라, ‘밥상’이 아닌 ‘食卓’이라 적으니 아쉬우나, ‘향긋한’이라 적으니 반갑습니다.


  김혜영 님이 시골살이를 하면서 쓴 《암탉, 엄마가 되다》(낮은산,2012)라는 책을 읽다가 116쪽에서 “병아리가 어미닭과 첫 눈맞춤을 해요.”라는 대목을 보고, 196쪽에서 “낙엽이 지고, 첫눈이 내렸습니다”라는 대목을 봅니다.


  한국말사전에 ‘눈맞춤’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사람들이 곧잘 씁니다. 왜냐하면, 참말 서로 눈을 맞추면서 즐겁기 때문입니다. 눈을 찡긋 하면서 웃어요. 즐거운 눈맞춤입니다. 입을 맞추어 입맞춤이고, 마음을 맞추어 마음맞춤이며, 꿈을 맞추어 꿈맞춤입니다. 다만, “낙엽(落葉)이 지고”처럼 적으니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말 ‘낙엽’은 “진 잎”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잎을 한자말로 ‘낙엽’이라고 해요. 다시 말하자면, “낙엽이 지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바닥에 구르는 잎이 ‘낙엽’인걸요.


  “잎이 진다”고 할 적에, 곧 가을에 잎이 진다고 할 적에는 “가랑잎이 집”니다. 한국말 ‘가랑잎’은 나뭇가지에서 마른 잎이에요. 나뭇가지에서 잎이 마른 뒤 지니까 “가랑잎이 진다”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또는 “잎이 진다”라 하거나 “가을잎이 진다”고 해야지요.


  한국사람은 “낙엽이 지다”와 같은 말을 언제부터 썼는 지 궁금합니다. 아마, ‘낙엽(落葉)’이라는 한자말이 들어온 뒤부터 썼겠지요. 그러나, ‘낙엽’이라는 한자말은 한자를 쓰던 옛날 지식인이 아니고는 안 썼어요. 여느 한국사람은 아무도 모르던 낱말이요, 쓸 일이 없던 낱말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여느 한국사람, 그러니까 여느 시골사람은 ‘나뭇잎’이나 ‘잎’이나 ‘가랑잎’이라고만 했어요.


  일본사람 니시마키 가야코 님이 빚은 어린이책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시공주니어,2007)를 읽으면서 24쪽에서 “계란 프라이를 손으로 집어 먹고 있고”라는 대목을 보았습니다. 이 대목을 보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요즈음 사람들 가운데 ‘계란(鷄卵) 프라이(fry)’ 같은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봅니다. 아주 널리 쓰는 말입니다. 내 어머니는 내 어릴 적에 ‘우수’ 같은 말을 쓰실 줄 알면서도, 달걀을 부치거나 지질 적에 언제나 ‘계란 프라이’라 하셨고, 요즈음에도 똑같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계란 프라이’라 하지는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일본사람이 쓴 말이 한국에 잘못 들어와서 굳었다고 느낍니다. 한국사람은 ‘달걀부침’이나 ‘달걀지짐’입니다. 우리 삶을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면서 우리가 쓰는 말과 글 또한 아름답게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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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까치발 안 해도 돼



  얼마 앞서까지 키가 안 닿아 까치발을 해도 마을 어귀 빨래터 울타리 너머를 볼 수 없던 산들보라인데, 이제 제법 키가 자라 까치발을 하지 않고도 누나와 나란히 빨래터 울타리에 달라붙어서 건너편을 넘겨볼 수 있다. 넘겨보기란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동안 볼 수 없던 건너편을 넘겨볼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가. 건너편에 딱히 대단한 것이 없다 하더라도, 누나하고 나란히 서니 기쁘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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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58. 2014.9.28. 가랑잎순이



  후박나무에서 가랑잎이 진다. 후박나무는 언제나 푸른 잎사귀를 매달지만, 한 해를 살아낸 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언제나 푸른 잎사귀만 있는 듯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면 노랗게 물든 잎을 군데군데 찾아볼 수 있다. 마당에 떨어진 후박잎을 주워서 후박나무 둘레로 옮긴다. 나무한테는 나뭇잎이 가장 좋은 거름이다. 아이들이 옆에서 함께 가랑잎을 줍다가 큰아이가 문득 “나는 내가 가져야지.” 하고 말합니다. 노랗게 잘 물든 잎이 고우니 나무 둘레로 옮기기보다는 갖고 놀고 싶단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러렴. 그러면, 네가 갖고 싶은 잎사귀가 어떤 빛과 무늬인지 보여주라.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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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고등학교로 걸어가기 앞서



  조금 뒤 낮 네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도화고등학교 책모임 푸름이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책읽기와 글쓰기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기에 여러모로 설렌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디에서 일하며 살든 시골내음을 가슴 깊이 아로새기도록 돕는 노릇을 잘하자고 생각한다.


  이제 슬슬 집을 나서야 한다. 걸어서 가면 사십 분쯤 걸릴까.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밥을 지었고, 밥상을 차린다. 아이들은 서로 아끼면서 잘 놀겠지. 자전거를 탈까 싶다가, 가까운 길이니 천천히 걸어서 오가면 생각을 차분히 다스리면서 가을빛을 한결 깊이 마실 만하리라 본다. 천천히 들바람을 마시면서 걷자. 길에 자동차에 치여 죽은 짐승이 있으면 길섶으로 옮기고, 허수아비한테 인사하면서, 이웃마을 할매와 할배한테도 인사하면서, 즐겁게 걸어가자.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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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94. 우산과 마을 논길 (2014.9.23.)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가 온갖 소리를 잠재운다. 빗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빗소리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가늘게 내리는 비조차 온누리를 촉촉하게 적시면서 보드랍게 노래를 나누어 준다. 이런 날 아이와 함께 우산을 쓰고, 때로는 우산이 없이 들마실을 하면 들숨을 쉬면서 들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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