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를 소쿠리에 담는 즐거움



  아이들이 며칠에 한 차례씩 “무화과 있어요? 무화과 없어요?” 하고 묻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 “그래, 무화과를 딸까?” 하고 대꾸하며 무화과를 따러 뒤꼍으로 갑니다. 아이들이 묻지 않아도 조용히 무화과를 따서 물에 씻으면 어느새 아이들이 달라붙습니다. 아마 무화과알 냄새를 맡았겠지요.


  소쿠리에 하나 담고 둘 담고 셋 담습니다. 한 알 두 알 석 알 차츰 늘어납니다. 아직 우리 집 무화과나무는 그리 안 크고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무화과는 몇 알 안 됩니다. 앞으로 무화과나무가 넓고 크게 퍼지면, 가을에 무화과 열매를 소쿠리 가득 따서 그야말로 밥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네 살 아이가 “무화과 많다!” 하고 외치면, 일곱 살 아이가 “자, 세 볼까!” 하면서 하나씩 셉니다. 조그마한 아이들한테는 오늘 딴 무화과 열 알만 하더라도 많을는지 모르는데, 이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 우리 집 무화과는 한결 크게 자라서 아이들 나이와 몸에 맞게 더 많이 열매를 나누어 줄 테지요.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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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소리와 함께 떨어진 모과



  아이들을 불러 뒤꼍에서 무화과를 따는데 그야말로 크게 ‘턱!’ 하는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일까 아주 살짝 생각하다가 아하 하고 깨닫는다. 또 모과가 떨어졌구나. 모과나무 앞에 떨어진 샛노란 모과를 본다. 참 커다랗구나. 이렇게 커다란 아이가 나무에 잘 달렸네.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손으로 집어 본다. 아주 크다. 꽤 무겁다. 그리고 따뜻하다. 나무에 달린 채 햇볕을 아주 잘 머금은 듯하다. 아직 따스한 기운이 가득한 모과알을 손에 쥐고 살살 돌린다. 얼마나 이쁘장한 모과요, 얼마나 야무진 모과인가 하고 생각한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소리는 우렁차고, 땅을 울리는 결도 싱그럽다. 높은 가지에 매달린 모과를 어떻게 따야 할까 생각했는데, 굳이 안 따도 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모과알이 굵고 크게 맺히면 저 스스로 떨어지니까. 게다가 굵고 단단한 모과알은 흙바닥에 떨어진들 안 깨진다. 다친 자국도 없다. 좋네. 알맞게 며칠에 하나씩 떨어지니 차근차근 집에 두어 고운 냄새를 맡는다. 냄새를 듬뿍 나누어 준 뒤 쪼글쪼글 마른 모과는 다시 흙한테 돌려주면 되지.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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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수의 정원 1
사노 미오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87



마음을 지키는 이웃

― 귀수의 정원 1

 사노 미오코 글·그림

 정효진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1.9.30.



  귀를 기울여요.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요. 이웃은 옆집에 사는 사람일 수 있고, 풀밭에서 노래하는 벌레일 수 있습니다. 이웃은 옆마을에서 흙을 일구는 할매일 수 있고, 밀양과 청도에서 송전탑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할배일 수 있으며, 하늘을 흐르는 구름일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은 누구일까요? 내 이웃은 무엇을 할까요? 내 이웃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요? 내 이웃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꿈을 꾸며, 어떤 사랑을 가꾸고 싶을까요?



- ‘이 세상은 의외로 재미있구나.’ (4쪽)

- “ 생사의 문턱은 몇 번이나 넘나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해서, 이 세상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그리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 마음을 가져서 이 저택에 간단히 들어온 게야.” (17쪽)




  사노 미오코 님이 그린 만화책 《귀수의 정원》(서울문화사,201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는 ‘귀수’가 나오고 ‘정원’이 나옵니다. 사람이 아닌 넋이 나오고 온갖 풀과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뜰이 나옵니다.


  귀수는 귀수끼리 이웃이면서 벗님입니다. 사람은 사람끼리 이웃이면서 벗님입니다. 그런데, 귀수 가운데에는 풀과 나무를 이웃과 벗님으로 삼는 넋이 있습니다. 사람 가운데에도 풀과 나무를 이웃과 벗님으로 삼는 숨결이 있습니다. 여기에, 귀수 가운데 사람을 이웃과 벗님으로 여기는 넋이 있고, 사람 가운데 귀수를 따사로운 이웃과 벗님으로 생각하는 숨결이 있습니다.



- “나는 백화초목을 보살피는 능력밖에 없는 운무의 정령. 능력이라곤 이 아담한 정원을 윤택하게 만드는 게 고작. 허나, 수고를 아끼워 않고 자비를 베풀면 반드시 윤택하게 자라나지. 천계도, 인간계도 마찬가지야. 하늘의 마음은 작은 것 안에서 더더욱 잘 나타나는 법이다.” (27쪽)

- “어떤 모습이건 나는 유일하다. 이 세상이 이루어진 이후로 쭉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28쪽)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지만,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짓을 누구보다 잘 알아채기도 합니다. 사람인 탓에 사람을 가엾게 여기거나 사랑하기도 하지만, 사람인 탓에 사람이 싫거나 미울 수 있어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전쟁무기를 만드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군인이 되어 이웃을 죽이거나 해코지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들도 우리 이웃이 될까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든지 전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도 우리한테 이웃이나 벗님이 될 만할까요.


  어떤 아이도 전쟁을 생각하며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도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지구별에 자꾸 전쟁을 터뜨립니다. 어른들은 지구별에 자꾸 전쟁무기를 늘립니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려는 생각일까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려는 생각일까요?



- “잡초가 이런 데까지 나다니. 뽑아 버리자.” “잠깐, 무라이. 그대로 둬. 그건 잡초가 아니라 이삭여뀌라는 풀꽃이야.” (45쪽)

-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 카후.” “이, 인간 말씀이신가요?” “그래, 인간이다. 숭배받는 걸 당연타 여기는 천계의 신들보다 말이다.” (67쪽)

- “꽃이야 매년 피는 것! 꺾어도 무에 하나 아까울 것 없는 목숨이다, 꽃도 사람도!” “올해의 꽃과 내년의 꽃은 달라. 인간도, 아무리 환생을 반복하는 중생이라 해도 그 생은 단 한 번뿐, 꺾어도 아깝지 않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소.” (80쪽)




  만화책 《귀수의 정원》을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사람이라는 껍데기를 썼어도 사람답지 않은 이들이 있습니다. 귀수라는 옷을 입었어도 사람다운 이들이 있습니다. 풀과 나무라는 껍데기를 썼지만 사람다운 숨결이 가득하기도 하고, 사람이라는 옷을 뒤집어쓰기만 할 뿐, 아무것도 안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겉도 속도 사람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넋을 가꾸려는 이들이 있어요.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일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꿀 삶은 어떠할 때에 아름다울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눌 사랑은 어떻게 보듬으면서 어깨동무할 적에 서로 기쁘게 웃을 만할까 생각합니다.


  참말 생각할 노릇입니다. 내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한테 일삯을 달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내 아이한테 밥 한 그릇 차려 주면서 밥값을 내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웃이나 동무한테 밥 한 그릇 차려 준 뒤에 밥값 내놓으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한테서 밥값을 받을까요? 우리는 누구한테서 ‘돌봄 일삯’을 받을까요?



- “그 소나무는 그리지 마! 카후! 마을사람들 모두 ‘객사 소나무’라고 부른다고. 얼마 전에도 노인이 죽었대. 불길한 소나무야.” “그런 말은 소나무에게 실례잖아.” (117∼118쪽)

- “질투도 소중한 마음의 일부. 연모하는 마음 뒤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는 벌레인 게지요.” (168쪽)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참으로 그렇지요. 그러면,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인데, 우리는 서로서로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어떻게 돌보거나 아끼는지 궁금합니다.


  꼭 돈이 있어야 할까요? 누구도 누구한테도 돈을 주거나 받지 않으면서 삶을 가꿀 수 있는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돈이란 없이 오직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면서 삶을 북돋울 수 있는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내 아이한테 밥값이나 일삯을 받지 않듯이, 내 이웃과 동무한테 밥값이나 일삯을 바라지 않듯이, 우리가 서로한테 돈을 바라지 않으면서 사랑스레 살아간다면, 이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길을 열 수 있으리라 느껴요. 평등도 민주도 평화도 통일도 자유도 바로 서로를 사랑하는 자리에서 태어나리라 느껴요.



-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데.” (178쪽)

- “그 소나무를 그리자. 그 가지 하나하나, 솔잎 한 가닥 한 가닥까지. 이 그림을 완성할 즈음, 형형색색의 봄이 찾아오리라.” (181∼182쪽)



  그림을 그립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그림쟁이는 이녁대로 용을 그립니다. 나는 나대로 내 마음을 지키는 살가운 이웃을 그립니다. 내가 내 이웃을 사랑스레 아끼고 보살필 수 있는 길을 천천히 그립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나를 아끼고 돌보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길을 가만히 그립니다.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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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쓰기와 시골 들일



  시골마을 푸름이와 글쓰기를 이야기하다가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재미있었다. 일기를 날마다 못 쓰겠다고 하는 푸름이한테, 또 여느 글을 쓰기도 어렵다고 하는 푸름이한테, 너희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는 시골아이인 만큼, 시골사람이 들일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날마다 논밭에 가서 풀을 베거나 김매기를 하더라도 힘들지 않다. 늘 하는 일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다가 시골로 온 사람더러 날마다 풀베기를 하라고 시키면 못 한다. 곧 등허리가 끊어질듯 아플 테며, 이러다가는 골병이 든다.


  어릴 적부터 십 리이든 이십 리이든 걸어서 다닌 사람은 다섯 리쯤 걷는 일이란 수월하다. 어릴 적부터 십 리이든 이십 리이든 거의 안 걷고 지낸 사람은 다섯 리뿐 아니러 석 리를 걸어도 벅차다.


  시골일이 아직 낯선 사람은 날마다 섣불리 해서는 안 된다. 차근차근 천천히 알맞게 하면서 몸을 맞추어야 한다. 걷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처음부터 너무 많이 걷거나 오래 걸으면 안 된다. 조금씩 걸음을 늘려야 한다.


  일기를 쓰든 다른 글을 쓰든, 부디 날마다 쓸 생각은 하지 말고, 잘 쓸 생각도 하지 말며, 길게 쓸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준다. 마음속에서 샘솟는 이야기가 있다든지, 마음에 갇힌 응어리 같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 이야기를 남김없이 적으면 되지만, 이야기가 샘솟지 않거나 응어리가 없다면 굳이 글을 안 써도 된다고 알려준다.


  나는 글을 어떻게 쓰는가 하고 돌아본다. 내 글쓰기는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서 아이들과 나누는 살림하고 같다. 내 글쓰기는 시골사람이 풀을 베거나 뜯어서 거름으로 삼거나 나물로 먹는 삶하고 같다. 내 글쓰기는 아침에 일어나서 해바라기를 하는 삶하고 같다. 내 글쓰기는 밤마다 별바라기를 하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삶하고 같다. 내 글쓰기는 물을 마시고 바람을 마시는 삶하고 같다.


  학교에서 숙제로 시킨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글쓰기가 아니다. 보고서를 내야 하거나 독후감을 써야 한다 하더라도 갑자기 글을 쓸 수 있지 않다. 첫째, 글은 삶과 같이 쓴다. 둘째, 글은 이야기가 흐를 때에 쓴다. 셋째, 글은 마음을 풀거나 맺을 때에 쓴다.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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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글 긴글



  어제 면소재지 고등학교에 가서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두 시간 이야기를 하려고 보름쯤 미리 이야깃거리를 생각하고 마련했다. 두 시간에 걸쳐 여러 이야기를 간추려서 들려주는데,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운이 없다. 이튿날이 되어도 낮까지 기운을 되찾지 못한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교사가 되어 일하는 이들은 하루 내내 말을 하고 들을 텐데, 날마다 어떤 기운을 끌어내야 할까 헤아려 본다. 날마다 온힘을 다해 말을 하고 듣는다면, 하루 일을 마친 뒤에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겠구나 싶다. 알맞게 힘을 가누어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교사와 같은 일을 할 수 없겠구나 싶다. ‘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이 기운을 쏟아야 할까.


  ‘글쓰는 일’도 말하는 일과 같으니, 참으로 온힘을 기울여서 글을 하나 내놓는다. 그냥 쓰는 글이란 없고, 쉽게 보여주는 글이란 없다. 이웃과 나눌 글을 한 꼭지 쓸 적을 헤아려 본다. 짧든 길든 똑같이 기운을 쏟는다. 짧게 쓰는 글이라서 쉽게 쓰지 않는다. 아주 마땅한 노릇 아닌가.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모두 똑같은 글이다. 짧게 썼든 길게 썼든 모두 내 넋을 기울여 힘을 쏟는다.


  짧게 쓰는 글은 모든 이야기를 짧게 갈무리해서 들려준다. 길게 쓰는 글은 모든 이야기를 낱낱이 풀어서 들려준다. 갈무리해서 들려주든 풀어서 들려주든 기운이 들기는 똑같다. 짧게 쓸 때와 길게 쓸 때가 다르다면, 손목에 드는 힘이 좀 다를 뿐이다. 길게 쓰는 글은 손목이 살짝 아픈 대목이 다르다. 원고지 서른 장 길이를 십 분 만에 쓸 때가 있는데, 원고지 한 장 길이를 삼십 분에 걸쳐서 쓰거나 사흘이나 석 달 만에 쓸 때가 있다.


  글을 읽는 사람은 ‘길이’를 읽으면 안 된다. 글에 깃든 숨결을 읽어야 한다. 글을 읽는 사람은 ‘갯수’를 읽으면 안 된다. 글에 흐르는 노래를 읽어야 한다.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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