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터놀이 20 - 하늘로 물을 뿌리는데



  빨래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서로서로 머리에 물을 끼얹어 주다가, 큰아이가 문득 “하늘로 뿌려야지!” 하면서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하늘로 휘 뿌린다. 그런데 큰아이가 하늘로 뿌린 물이 모조리 작은아이한테 떨어진다. 작은아이는 난데없이 물벼락을 맞는다. 작은아이는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지만, 이렇게 되어도 좋다면서 눈을 비비면서 웃는다. 4347.10.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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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많은 생쥐 - 블랙베리를 혼자 다 먹고 싶은 생쥐가 참다운 우정을 알게 된 이야기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40
매슈 그림즈데일 글, 토니 린셀 그림, 김현좌 옮김 / 봄봄출판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40



시골사람이 나누어 주는 밥

― 욕심 많은 생쥐

 토니 린셀 그림

 매수 그림즈데일 글

 김현좌 옮김

 봄봄 펴냄, 2014.8.5.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밥을 차립니다. 나 혼자 먹을 생각으로 밥을 차리지 않습니다. 나 혼자 먹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도 저희끼리만 먹지 않습니다. 언제나 함께 나누는 밥입니다. 가을에 뒤꼍에서 무화과를 따면 아이들은 게눈 감추듯이 먹어서 없앱니다. 여러 알을 먹고도 모자란지 더 없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작은 접시에 몇 점을 남깁니다. 나는 아이들이 더 먹기를 바라며 내 몫을 따로 덜지 않는데, 아이들이 “아버지도 먹어야지.” 하면서 ‘더 먹고 싶은 마음’을 참습니다. 때로는 아이들한테 “자, 이만큼은 어머니 몫이야. 이 그릇은 건드리지 마.” 하고 말하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참말 이 그릇에 담긴 먹을거리를 안 건드립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아무 말이 없고, 네 살 작은아이는 그릇에 담긴 먹을거리를 바라보면서 “어머니 꺼야?” 하는 말을 여러 차례 묻습니다.



.. “와! 맛있겠다. 내가 좀 따 먹어도 될까?” 참새가 물었어요. “아니!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그러니 어서 가!” 생쥐가 사납게 대답했어요 ..  (5쪽)




  토니 린셀 님 그림하고 매수 그림즈데일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욕심 많은 생쥐》(봄봄,2014)를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혼자 차지하려는 생쥐가 나옵니다. 이웃하고는 조금도 나눌 마음이 없는 생쥐가 나옵니다. 우악스럽다고 해야 할는지, 어리석다고 해야 할는지, 바보스럽다고 해야 할는지, 여러모로 어설픈 생쥐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혼자서 다 먹을 수 있는 밥이나 열매는 없습니다. 들이나 숲에서 나는 열매는 몇몇 사람이 다 먹어치울 만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골고루 나누어 먹어도 넉넉합니다. 다 먹을 수 없기 마련입니다.


  우리 집은 해마다 늦봄과 이른여름 사이에 들딸기를 실컷 먹습니다. 들딸기로 끼니를 삼을 만큼 먹습니다. 그런데, 이 들딸기는 우리만 먹지 않아요. 꽤 많은 들딸기는 도로 땅으로 돌아갑니다. 개미와 풀벌레와 나비와 벌이 수없이 찾아와서 함께 먹습니다. 들쥐와 여러 작은 짐승도 들딸기를 함께 먹습니다. 아마 새도 딸기넝쿨에 살몃살몃 내려앉아 들딸기를 콕콕 쫄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도시사람은 시골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사다가 먹는 얼거리인데, 참말 시골사람은 혼자 먹지 않습니다. 논도 밭도 숲도 없는 도시사람이 굶지 않게끔 시골사람은 아주 넉넉히 일구어서 푸지게 나누어 줍니다. 한국 사회를 보면 2013년에 6퍼센트가 ‘농업 인구’라고 하니, 6퍼센트가 다른 94퍼센트를 먹여살리는 셈입니다.




.. “여우가 네 블랙베리를 훔쳐 가는 걸 두고볼 수는 없었어.” 다람쥐가 말했어요. “너는 우리한테 블랙베리를 나눠 주지 않았지만 말이야.” 참새가 덧붙여 말했어요 ..  (19쪽)



  우리 집 아이들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먹을것이 있으면 아이들은 어느새 달라붙습니다. 아이들은 허둥지둥 입에 먹을것을 집어넣다가 문득 멈추고는 어머니나 아버지 입에 먹을것을 넣어 줍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제 어버이더러 같이 먹자고 말합니다. 이 아이들은 이런 매무새를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아마 어릴 적부터 어버이한테 ‘떠서 먹이는 밥’을 받아서 먹었기에, 아이 스스로 제 배가 고프면 제가 먹고 싶듯이, 옆에 있는 사람도 똑같이 배가 고픈 줄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아이가 먹을것 한 점을 손을 집어서 내 입으로 곧게 뻗는 모습은, 내가 이 아이한테 밥을 먹이던 갓난쟁이 무렵하고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책 《욕심 많은 생쥐》에 나오는 생쥐와 같은 모습은 선뜻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리거나 철없거나 어리석은 생쥐라 하더라도, 갓 태어났을 무렵에는 어미젖을 물려 컸을 테니까요. 제 어미가 베푸는 먹이를 받아서 고맙게 먹으며 자랐을 테니까요.


  다만, 그림책으로 아이들한테 무엇 하나 가르치겠다는 뜻으로 작고 예쁘장한 짐승을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고 할 텐데, 일곱 살 큰아이가 이 그림책을 보더니 문득 한 마디를 해요. “아버지, 이 생쥐는 저만 먹으려고 해요. 동무들한테 나눠 주지 않아요. 왜 그래요?”


  어린이 마음이 될 때에 생쥐뿐 아니라 사람도 누구나 이웃하고 밥을 나눕니다. 어버이 마음이 될 때에 생쥐도 사람도 누구나 동무하고 밥을 나눕니다. 그러니까, 어린이가 되든 어버이가 되든, 다시 말하자면 어떤 곳에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이든, 이웃이랑 동무하고 밥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서로 즐겁게 살아가고 싶으니 밥을 나누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기에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밥잔치를 누립니다. 4347.10.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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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41. ‘다른 말’과 ‘틀린 말’

― 한국말을 바로보고 바로세우는 길



  사람마다 삶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말이 다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말이 달라요. 삶터가 다르고 사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충청도와 경기도도 말이 다르지요. 삶터와 삶자락이 모두 다를 뿐 아니라 사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서 잘 자라는 나무가 경기도나 서울에서는 잘 자라기 어렵습니다. 날씨와 철과 바람과 햇볕과 물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흙이 다르고, 숲과 들과 바다가 다르지요. 똑같은 잣나무나 참나무라 하더라도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자라는 나무는 달라요. 크기도 모양새도 빛깔도 냄새도 다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와 어는 같을 수 없습니다. 서로 다릅니다. 표준말로는 “했고요”라 할 테지만, “했구요”라든지 “했구만”이라든지 “했지라”라든지 “했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장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할 적에는, 바로 이처럼 삶자락과 고장마다 다른 삶결에 따라 말이 다르다고 하는 뜻입니다.


  이와 달리, ‘틀린 말’이 있습니다. 한국말에는 현재진행형이나 과거분사가 없습니다. 그런데 영어 같은 외국말을 한국사람이 배우려고 하면서, 그만 서양 말법에 따라 현재진행형과 과거분사 꼴로 ‘번역’을 해야 했고, 이런 번역 말투가 어느새 한국사람한테 널리 퍼졌습니다. 이를테면 “가고 있습니다”라든지 “먹고 있습니다”라든지 “했었거든요”라든지 “먹었었어” 같은 말투는 모두 틀립니다. 잘못 쓰는 말투예요. 이런 말투는 “갑니다”와 “먹습니다”와 “했거든요”와 “먹었어”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는 지구가 마치 한집인듯이 여기곤 하지만, 지구가 한집이어도 한국말과 영어는 같은 말이 아닌 다른 말입니다. 영어 말법을 한국 말법에 집어넣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미국사람은 ‘싱글싱글·싱글벙글·빙글빙글·싱긋싱긋·싱긋빙긋·빙긋빙긋·방긋방긋·방글방글·벙글벙글·벙긋벙긋’ 같은 한국말을 영어로 적을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겨레가 서로 다른 삶에 따라 서로 다른 말을 쓰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대로 한국말을 한국 말법에 맞게 쓰고, 영어 쓰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 삶에 따라 그 나라 말법을 즐겁게 씁니다.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준비 땅!”을 쓰는데, 아직 꽤 많은 한국사람은 이런 일본말을 버젓이 씁니다. 일본말인 줄 모를 뿐 아니라, 오랫동안 몸에 익었다면서 이런 말투를 털지 않습니다. 글이나 말 첫머리에는 “하여”나 “해서”나 “하지만”을 넣을 수 없습니다. 이런 말투는 “이리하여”나 “이리해서”나 “그러하지만(그렇지만,그러나)”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여·해서·하지만”은 모두 ‘틀린 말’입니다. 잘못 쓰는 말투를 잘못 퍼뜨리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투를 쓰는 적잖은 이들은 잘잘못을 느끼거나 헤아리지 않기 일쑤예요. ‘틀린 말’을 쓰면서, ‘다른 말’인듯이 잘못 여기거나 둘러댑니다.


  “가벼운 미소”나 “넓은 광장”은 모두 잘못 쓰는 말입니다. ‘틀린 말’입니다. “가벼운 웃음”이나 “넓은 터(광장)”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잘못 쓰는 ‘틀린 말’은 틀린 말일 뿐 ‘다른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된장찌개에 된장을 안 넣고 간장이나 소금을 넣어도 간이 맞아요. 그러나 된장찌개가 아닌 간장찌개나 소금찌개입니다. 된장을 안 넣고도 된장찌개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콩나물국에 소금이 아닌 설탕을 넣으면 어찌 될까요. ‘다른 콩나물국’을 끓이는 셈일까요, ‘틀린(잘못 끓인) 콩나물국’을 끓이는 셈일까요.


  ‘축제’는 일본말입니다만 어느덧 한국 사회에 이 일본말은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영어를 썩 안 좋아하는 이들은 ‘축제’나 ‘축전’ 같은 한자말을 쓰고, 말을 깊이 살피지 않는 사람은 ‘페스티벌’이나 ‘쇼’나 ‘비엔날레’ 같은 영어를 써요. 한국말로 ‘잔치’나 ‘큰잔치’나 ‘작은잔치’나 ‘마당’이나 ‘한마당’을 쓰는 사람이나 모임이나 지자체를 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한국말을 옳거나 알맞거나 아름답거나 즐겁게 쓰지 않는 일을 놓고 ‘다른 말’이라고 여겨도 될는지 아리송합니다. 아이들과 ‘생일잔치’를 하지 않고 ‘생일파티’를 하는 모습도 ‘다른 말’을 쓰는 모습이라고 해도 될까 궁금합니다.


  다른 삶터는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서울과 부산은 저마다 달라 아름답습니다. 경기와 강원과 전라와 경상과 충청은 서로 다른 터전이요 마을이고 이야기이기에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다른 말’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보금자리를 다른 몸가짐과 눈길로 사랑스레 가꾸는 삶일 때에 아름다운 ‘다른 말’이 태어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구름이다” 하고 말할 사람이 있고, “구름이 있네” 하고 말할 사람이 있으며, “구름이 토끼처럼 생겼네” 하고 말할 사람이 있을 테고, “구름은 하늘에서 사는구나” 하고 말할 사람이 있어요.


  ‘다른 말’이란 저마다 다르게 사랑하면서 가꾸는 삶에서 찬찬히 태어나는 아름다운 말입니다. ‘다른 말’은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합니다. ‘다른 말’은 이웃과 동무가 쓰는 말을 가만히 살피거나 귀여겨들으면서 새롭게 맞아들입니다. ‘다른 말’은 말법이나 말틀이나 말삶을 무너뜨리거나 일그러뜨리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쳐들어온 말은 모두 ‘틀린 말’입니다. 영어를 배우는 일은 뜻있습니다만, 영어 말투나 말법을 한국말에 억지로 끼워맞추려는 모습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my’를 ‘내’가 아닌 ‘나의’로 번역해서 가르치거나 쓰는 일은 모두 ‘틀린 말’입니다. ‘your’는 ‘네’로 번역해야 옳고 맞지, ‘너의’로 번역하면 ‘틀린 말’입니다. 바다는 ‘바닷가’요 내는 ‘냇가’이며 강은 ‘강가’입니다. 이를 ‘해변’이나 ‘천변’이나 ‘강변’처럼 한자를 빌어서 써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틀리게 쓴 말은 알맞게 바로잡으면 됩니다. 이제껏 틀리게 썼으면 앞으로 바로잡으면 됩니다. 내가 쓰는 말투 열 가지 가운데 열 가지가 모두 ‘틀린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씩 차근차근 바로잡으면 됩니다. 한국말을 한 가지씩 새롭게 배우면서 즐겁게 쓰면 돼요.


  내 삶을 바로보면서 내 말을 바로세웁니다. 내 넋을 바로보면서 내 삶길을 바로잡습니다. ‘틀린 말’을 잘못 받아들여서 쓴 일은 부끄럽지 않고, 대수롭지 않으며, 꾸중 들을 일이 아닙니다. 이제껏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 슬기롭게 삶과 넋과 말을 바로보면서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한국말을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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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123) 현재의 1


우리는 현재 있는 그대로이며 현재의 우리를 내보이고 있는 것뿐입니다

《안토니 포세트/이해성 편역-존 레논, 신화와 비극 사이》(일월서각,1981) 167쪽


 현재의 우리를 내보이고 있는 것뿐

→ 오늘 우리 모습을 내보일 뿐

→ 오늘을 사는 우리를 내보일 뿐

→ 이 모습 그대로 우리를 내보일 뿐

→ 바로 이 모습을 내보일 뿐

 …



  보기글을 보면, “있는 그대로”라고 앞머리를 엽니다. 그래서, 이 앞머리에 맞게 “우리는 오늘 있는 그대로이며, 오늘 우리를 그대로 내보일 뿐”처럼 앞뒤 흐름을 살펴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또는 뒤쪽을 “오늘 우리 모습을 그대로 내보일 뿐”처럼 손질할 만합니다.


  오늘 모습 그대로라고 할 때에는 “오늘을 사는 모습 그대로”라는 소리이고, “바로 이 모습을” 보여준다는 소리입니다. 뜻을 살리면서 느낌을 살짝살짝 달리 적을 수 있습니다.


 현재 점수 상황 (o) . 현재의 점수 상황 (x)

 현재 주소 (o) . 현재의 주소 (x)

 현재 우리 사회는 (o) . 현재의 우리 사회는 (x)


  그나저나, 한자말 ‘현재’를 쓰고 싶으면 알맞게 잘 쓰면 될 텐데, 이 한자말 뒤에 ‘-의’를 굳이 붙이려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왜 자꾸 ‘-의’를 붙일까요? ‘-의’를 붙일 까닭이 없는데, 왜 자꾸 군말을 붙일까요?


  이런 보기글을 더 살핀다면, “현재 점수 상황은 어떻게 되나요?”는 “이제 점수가 어떻게 되나요?”로 손볼 수 있습니다. “현재 주소는 이렇습니다”는 “요즈음 주소는 이렇습니다”나 “요즈음 이곳에 삽니다”로 손볼 수 있고, “현재 우리 사회는”은 “오늘날 우리 사회는”으로 손볼 수 있어요. 4340.10.22.달/4347.10.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는 오늘 있는 그대로이며 오늘 우리 모습을 내보일 뿐입니다


‘현재(現在)’라는 한자말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오늘’이나 ‘이때’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흐름에 따라 ‘이제’나 ‘오늘날’이나 ‘요즈음’으로 고쳐쓸 만합니다. “내보이고 있는 것뿐입니다”는 “내보일 뿐입니다”로 손질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71) 현재의 2


“지금은 어디로 가는 건가?” “내 현재의 생의 보람을 보러 갈 거야.”

《야마시타 카즈미/서현아 옮김-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 5》(학산문화사,2009) 73쪽


 내 현재의 생의 보람을

→ 내가 오늘 살아가는 보람을

→ 내가 오늘을 사는 보람을

→ 내가 여기서 사는 보람을

 …



  “지금의 시간”을 뜻한다는 한자말 ‘현재(現在)’입니다. 한자말 ‘지금(只今)’은 “바로 이때”를 뜻합니다. 한자말 ‘현재’와 ‘지금’을 쓰는 분 가운데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며 말뜻을 제대로 살피려는 분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말뜻을 찬찬히 살피면, 이러한 한자말을 쓸 일이 없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한자말이든 “바로 이때”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때’나 ‘이제’ 같은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오늘’이나 ‘오늘날’이나 ‘요즘’이나 ‘요즈음’이나 ‘요새’나 ‘요사이’나 ‘요즈막’ 같은 여러 가지 한국말을 알맞게 살펴서 쓰면 됩니다.


  이 보기글이라면, “내가 요즈막에 누리는 보람”이라든지 “내가 요새 즐기는 보람”으로 고쳐쓸 수 있어요. ‘生의’는 ‘사는’이나 ‘살아가는’이나 ‘삶’으로 고쳐써도 되지만, 글흐름을 살핀다면 살짝 털어도 됩니다. 4347.10.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제 어디로 가는가?” “내가 오늘을 사는 보람을 보러 갈 테야.”


‘지금(只今)은’은 ‘이제는’으로 손보고, “가는 건가”는 “가는가”나 “가나”로 손봅니다. “생(生)의 보람”은 “사는 보람”이나 “살아가는 보람”으로 손질하고, “보러 갈 거야”는 “보러 갈 테야”나 “보러 가지”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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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를 그리면서 꽃을 사진으로 담는다는 고홍곤 님 사진책 《굽이굽이 엄마는 꽃으로 피어나고》를 읽는다. 어디에서나 꽃을 만나고, 언제나 꽃을 마주한다. 꽃은 들꽃이 있으며, 골목꽃이 있다. 꽃은 놀이공원이나 도심지에도 있다. 꽃은 꽃밭이나 꽃집에도 있다. 꽃은 아파트 베란다나 시골집 마당에도 있다. 꽃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고, 수술과 암술로 꽃을 바라볼 수 있다. 먼발치에서 조그마한 점이나 무늬처럼 꽃을 살필 수 있고, 숲에 살며시 깃든 앙증맞은 숨결로 살펴볼 수 있다. 우리 어머니들은 누구나 꽃으로 피어난다. 어머니한테서 태어난 우리들은 새로운 꽃으로 피어난다. 어머니와 함께 우리를 낳은 아버지도 새삼스럽게 꽃으로 피어난다. 꽃은 꽃이고, 우리도 우리대로 꽃이다. 마음과 몸을 나란히 꽃빛으로 물들이고 꽃내음으로 채운다. 4347.10.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꽃심 나를 흔들다
고홍곤 지음 / 예감출판 / 2007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4년 10월 05일에 저장
절판
세상, 너를 꽃이라 부른다
고홍곤 지음 / 지누 / 2011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4년 10월 05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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