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사람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마음일까. 시를 읽는 사람은 무엇을 듣고 싶은 마음일까.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을 2005년에 선보인 정끝별이라고 하는 분은, 대학 교수가 될 줄 생각한 적 있을까. 시골에서 태어난 삶과 시를 쓰는 삶과 시를 읽는 삶과 대학 교수가 되는 삶 가운데 이녁한테 가장 마음에 들면서 즐겁거나 사랑스러운 자리는 어디일까 가만히 헤아려 본다. 어느 곳에서도 나는 나이고 정끝별은 정끝별일 텐데, 시를 밝히는 이야기와 노래는 어느 자리에서 푸르게 우거지면서 맑게 흐르는 바람이 될는지 곰곰이 곱씹는다. 4347.10.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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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갑자 복사빛
정끝별 지음 / 민음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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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잡지 《포토닷》 11호(2014.10.)를 받는다. 정기구독자가 꾸준히 늘어나는지 궁금하다. 이달 치에는 노순택 님 이야기가 제법 길게 나온다. 아무래도 ‘올해 작가상’을 받았기 때문이지 싶은데, 이런 상을 노순택 님한테 주는 까닭은 이제까지 걸어온 사진길을 더 씩씩하게 걸어가라는 뜻이라고 본다. ‘사회에 크게 불거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사진을 넘어 ‘사회에 크게도 작게도 불거지지 않으나 사람이 살아가는 깊고 너른 이야기’를 살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젊은 사진가들은 ‘사회에 크게 불거지는 이야기’에 끌린다고 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이야기를 일구거나 빚어서 나누는 사진이라기보다, ‘더 눈길을 받을 만한 소재’를 찾아나서지 싶다. 이런 사진을 찍든 저런 사진을 찍든 대수롭지는 않다. 그러나, 젊은 몸만큼 젊은 마음이 되어 스스로 삶을 새롭게 짓는 하루하루가 고스란히 사진으로 환하게 터져나오도록 할 수 있으면 두고두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리라 본다. 그림을 만드는 사진이 아닌 이야기를 가꾸면서 나누는 사진이 하나둘 늘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4347.10.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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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4.10- Vol.11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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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책삶 헤아리기
9. 책에 담긴 이야기란


  책에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야기를 담지 않는 책은 없습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 이야기를 달리 받아들여요. 어느 책에 담긴 이야기는 나한테 반갑거나 즐거울 수 있고, 다른 어느 책에 담긴 이야기는 나한테 따분하거나 재미없을 수 있어요. 이와 거꾸로, 내가 반갑게 여긴 책을 내 이웃은 재미없다고 여길 수 있어요. 내가 따분하다고 여긴 책을 내 동무는 신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놓고 두 사람은 왜 다르게 받아들일까요? 왜냐하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서로 다른 곳에서 자라며, 서로 다른 곳에서 사랑을 받아 살았어요.

  나는 집에서 집일을 합니다. 집에서는 누구나 ‘집일’을 할 테지요. 그런데, 나는 아버지이자 사내로서 집일을 합니다. 밥도 하고 청소와 빨래도 하며 아이돌보기를 도맡습니다. 다만, 내 둘레에서 아버지나 사내로서 이렇게 집일을 하는 이웃을 아직 만나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비슷합니다. 날마다 밥을 차려 아이를 먹이는 아버지는 몇이나 될까요? 아이들이 갓 태어났을 적에 손수 똥오줌 기저귀를 빨아서 햇볕에 말린 뒤 정갈하게 개서 샅에 댄 아버지는 얼마나 있을까요?

  얼마 앞서 이웃집에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이웃 어느 집을 가든 아버지나 사내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엉덩이를 방바닥에서 떼는 일을 보기란 참 어렵습니다. 거의 모든 집에서 어머니나 가시내 자리에 있는 사람이 두 다리 쉴 틈이 없이 부산스레 움직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느 자리에 서서 책을 읽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남녀평등을 말하거나 사회불평등을 나무라는 인문책’은 읽되, 집에서 엉덩이는 방바닥에 붙인 채 안 떼는 삶은 아닌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덜떨어지거나 낡은 정치와 사회와 경제를 꾸짖는 인문책’은 읽지만, 집에서 집일은 하나도 안 하거나 거의 안 하거나 겨우 시늉을 하듯 거드는 척하는 삶은 아닌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역사와 문화와 예술을 밝히는 인문책’은 읽으면서도, 집에서 아이와 복닥이고 부대끼며 함께 노는 사람하고는 동떨어진 채 지내는 ‘가부장 권력’은 아닌지 짚을 노릇입니다.

  미국에서 1939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말로는 1996년에 처음 나온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버지니아 리 버튼 글·그림, 시공사 펴냄)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퍽 오래되었다고 할 만한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그린 분은 1909년에 태어나 1968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작은 집 이야기》라는 그림책도 선보였는데, 이 그림책은 부동산이 아닌 보금자리라 할 집 하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면서 아름답게 피어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라는 그림책도 선보였으며, 이 그림책은 오래된 증기기관차가 새로운 길로 나들이를 가면서 겪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생명의 역사》라는 그림책도 선보였고, 이 그림책은 지구별에서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서양 문명 눈높이에서 보여줍니다. 아무튼, 버지니아 리 버튼이라는 분은 아이들한테 따스한 삶과 이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림책을 그렸어요. 누구보다 이녁이 낳아 돌보는 아이한테 따스한 삶을 보여주고 포근한 사랑을 물려주며 살가운 꿈을 북돋우려고 그림책을 그렸습니다.

  “커다란 배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널따란 운하를 판 이들이 누구겠니? 바로 마이크 멀리건 아저씨와 메리 앤이야. 물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일을 거들었지(5쪽).”와 같은 이야기라든지, “이 위에다 새 시청을 지을 건데 뭐하러 메리 앤을 끌어 내요? 메리 앤은 새 시청에 쓸 난방 기구가 되면 되고, 마이크 멀리건 아저씨는 수위 아저씨가 되면 되잖아요. 그러면 우린 새 난방 기가룰 살 필요도 없고, 아저씨한테 하루 만에 지하 공사를 끝낸 돈도 드릴 수 있어요(39쪽).”와 같은 이야기를 살가운 그림과 함께 읽습니다. 여러모로 멋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새로운 삽차가 나오면서 ‘증기 삽차’는 낡은 것으로 밀리는 사회 흐름을 잘 보여주는 그림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책이 그닥 재미있지 않습니다. 애틋하고 아름다운 빛과 무늬가 흐르는 그림책인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이지만, 삽차로 숲을 밀어 도시를 만들고, 이 도시에서 다시 더 큰 건물을 짓는 이야기만 흐르니, 도리어 심심하거나 따분하네 하고 느낍니다.

  스웨덴에서 1874년에 태어나 1953년에 숨을 거둔 엘사 베스코브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1912년에 스웨덴에 처음 선보이고, 한국에서는 2002년에 처음 나온 《펠레의 새 옷》(2002년 지양사 옮김,2003년 비룡소 옮김)이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자그마치 백 해가 넘는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보면, 글이 아주 짤막하게 한두 줄만 나오면서 시원하게 큼지막한 그림이 하나씩 나옵니다. 짤막하게 넣은 글은 “펠레는 할머니의 당근밭에서 잡초를 뽑았습니다. 그동안 할머니는 펠레의 양털을 빗어서 솜처럼 부풀렸습니다(8쪽).”라든지 “펠레는 할머니의 암소를 돌보고, 할머니는 양털을 물레로 자아 실을 뽑았습니다(12쪽).”라든지 “펠레는 어머니한테 갔습니다. ‘어머니, 이 실로 옷감을 짜 주세요.’ ‘그러구 말구. 그동안 네 여동생을 돌보아 주겠니?’ 펠레가 여동생을 보살피는 동안,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짰습니다(20쪽).”라든지 “그리고 일요일 아침, 펠레는 새 옷을 입고 아기 양을 찾아갔습니다. ‘아기 양아, 고맙다. 너의 털로 새 옷을 지을 수 있었어.’ ‘음매애-애-애.’(28쪽)”와 같이 흐릅니다. 백 살이 넘은 스웨덴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 펠레는 옷 한 벌을 얻고 싶어서 퍽 오랫동안 ‘일’을 하고 ‘심부름’을 합니다. 그러고는 기다리지요. 그리고 손수 물을 들입니다. 나이로 치면 아마 열 살 즈음 되었지 싶은데, 이 아이는 온갖 일을 거들거나 스스로 한 끝에 새 옷을 얻어요.

  그림책 《펠레의 새 옷》에 나오는 아이는 옷을 돈으로 사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돈이 없기도 할 테지만, 돈을 벌거나 쓰지도 않습니다. 이 아이와 이웃에 있는 사람들도 이 아이한테서 돈을 받지 않습니다. 서로 품을 팔아요. 이른바 품앗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오래된 그림책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도시와 문명과 사회를 보여줍니다. 다른 하나는 시골과 삶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도시보다 시골이 끌리고, 문명보다 삶이 반가우며, 사회보다 사랑이 즐겁습니다.

  책에는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도시나 문명이나 사회를 책에 담았다고 해서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도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얼마든지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엮을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시골 이야기를 다루지만 정작 안 사랑스럽거나 안 아름다울 수도 있어요.

  책에 담는 이야기란, 책을 짓는 사람이 스스로 가꾸는 삶입니다. 미국에서 그림책을 그린 버지니아 리 버튼이라는 분은 이분 나름대로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물려주고 싶은 사랑을 그림책에 담습니다. 스웨덴에서 그림책을 그린 엘사 베스코브 님은 이분 나름대로 아이와 함께 살면서 물려주고 싶은 사랑을 그림책에 실었습니다.

  책을 짓는 사람뿐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도, 책 한 권을 앞에 놓고 삶을 생각하거나 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 한 권에서 감도는 사랑과 꿈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 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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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고 읽고 (사진책도서관 2014.9.2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아이들이 더 신나게 뛰놀 수 있기를 바라면서 도서관에 간다. 집에서도 쉬잖고 뛰노는 아이들이지만, 대문을 열고 고샅으로 나서면 더욱 신나게 뛰논다. 마을길에서 벗어나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두 아이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린다. 길가에 꽃이 있으면 꽃을 들여다본다. 길가에 나무가 있으면 나무한테 인사한다. 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듣고,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하늘을 우러르고 잠자리와 나비를 보며 웃는다.


  아이들이 웃고 노래할 적에 나도 웃고 노래한다. 내가 웃고 노래할 적에 아이들도 웃고 노래한다. 서로서로 웃고 노래한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란 한결 즐겁게 놀고 싶은 마음을 키우는 길이라고 느낀다. 책을 옆에 두고 깊이 배우려는 뜻도 있을 테지만, 집을 나서서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서 수많은 이웃을 만나기 마련이다. 도시에서라면 골목도 거닐 테고 골목집을 기웃기웃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정갈하게 가꾼 이웃집 살림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예쁘구나 하고 놀랄 수 있다. 도시에서도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볼 수 있고, 우람한 나무가 있으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새를 만날 수 있다.


  바람이 분다.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이 분다. 바람을 쐰다. 머리카락이 바람 따라 흩날리는 기운을 듬뿍 느낀다.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삶을 읽는다. 두 손에 종이책을 쥐면서 이야기를 읽는다. 두 다리로 척척 이 땅을 밟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 두 손에 쥔 종이책을 찬찬히 넘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헤아린다.


  노는 도서관이요 읽는 도서관이다. 노는 삶이요 읽는 삶이다. 노는 책이요 읽는 책이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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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청소년 인권 학교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6
홍세화 외 지음, 인권연대 기획 / 철수와영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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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27



학교에 갇힌 푸름이한테 인권이란

― 10대와 통하는 청소년 인권 학교

 홍세화·오인연·안수찬·조광제·한재훈·오창익

 인권연대 기획

 철수와영희 펴냄, 2014.10.9.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에 갇힙니다. 학교에서 벗어날라 치면 학원에 갇힙니다. 학원에서 벗어날라 치면 컴퓨터에 갇힙니다. 컴퓨터에서 벗어날라 치면 아파트 그득그득한 도시에 갇힙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갈 만한 곳이 없습니다. 학교와 학원과 피시방이 아니면 도무지 깃들 만한 곳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쉴 데가 없어요. 아이들이 갈 만한 공원은 어디에 있나요? 공원이라 할 만한 데가 도시에서 몇 군데나 있나요?


  어른들이 가는 술집은 도시이든 시골이든 아주 많습니다. 어른들이 가는 찻집이나 옷집이나 밥집도 도시나 시골에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갈 곳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돈을 마음껏 쓸 수 없으니 가게에 쉬 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기껏 아이들이 가는 곳은 편의점입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아이들은 편의점이나 롯데리아 같은 데 빼고는 다리를 쉴 수 없습니다. 도시라는 데에는 다리를 쉴 걸상도 없고, 길바닥은 어른들이 술에 절어 왝왝 뱉은 것들이 곳곳에 널렸을 뿐 아니라 자동차가 쉴새없이 다니니 아무 데나 앉기도 어렵습니다.



.. 조금 전만 해도 같은 택시 기사 출신이라며 반기던 그분은 왜 읽어 보지도 않은 신문을 그렇게 매도했던 걸까요? 제가 올바른 정보를 알린다면 그분의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었을까요 … 한국 사회에서 학문은 입시와 취업의 도구가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배우는 목적이 개인의 인격과 지성을 높이는 데 있지 않아요 … 우리 사회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는 기존의 질서와 체제를 빠르게 인정하고 숙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환경 탓만 할 수는 없잖아요. 학교 분위기가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  (16, 22, 23, 31쪽/홍세화)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험공부만 합니다. 아이들은 제대로 무엇을 배우는 적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 하나 제대로 가르치는 적이 없습니다. 그저 대학입시로 내몰 뿐입니다. 대학입시가 끝난 뒤에는? 네, 어른들은 대학입시 끝난 뒤에 아이들을 풀어놓습니다. 아니, 어른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그저 풀어놓았을 뿐이고, 대학교에 들어갈 적에도 풀어놓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삶을 배우는 적이 없고, 아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치는 적이 없습니다.


  처음 태어나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스무 해 내내 사랑을 배운 적이 없이 대학생이 되거나 스무 살을 넘깁니다. 그러고는 저마다 짝꿍을 찾아 헤매는데, 아이들은 ‘사랑’이 아닌 ‘짝꿍’을 찾을 뿐입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울 사랑이 아니라, 살을 섞거나 부빌 짝꿍을 찾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 적 없이 학교에 갇혀서 지냈거든요. 이제 비로소 학교에서 풀려났으니, 아이들은 갑갑한 몸을 풀어내려고 서로서로 살을 섞거나 부빌 짝꿍을 찾을밖에 없습니다.


  할 줄 아는 것이 없거든요. 스무 살이 되도록 밥짓기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거든요. 옷짓기는 할 수 있을까요? 바느질을 할 줄 아는 스무 살 젊은이는 몇이나 될까요? 토익이나 토플 점수는 잘 받더라도 바느질 하나 못 하는 젊은이는 수두룩하리라 느낍니다. 집짓기는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숲에 들어가 나무를 베어 손질한 뒤 기둥을 세울 줄 아는 젊은이는 아예 없다시피 해요.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월세에 전세에 ‘내 아파트’로 나아갈 생각만 겨우 합니다.



.. 자기표현이야말로 민주 시민의 소양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유와 권리는 표현하고 실천하고 다듬어 볼수록 더 커지거든요 … 한국의 자살률은 OECD 1위예요. 인구 10만 명당 31명, 한 해에 1만 5000여 명이 자살합니다. 브라질 사람이 총기 사고로 죽을 확률보다 한국 사람이 자살로 죽을 확률이 높습니다 ..  (74, 80쪽/안수찬)



  학교는 왜 아이들을 꽁꽁 가둘까요? 우리 어버이는 왜 하나같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어 꽁꽁 갇히게 할까요? 왜 학교는 아이들을 꽁꽁 가두어 아이들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지어서 삶을 가꾸도록 이끌거나 가르치지 않을까요? 왜 우리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가꾸는 삶을 물려주지 못하면서 사랑도 꿈도 아이와 나누지 못할까요?


  홍세화·오인연·안수찬·조광제·한재훈·오창익, 이렇게 여섯 사람이 저마다 이야기를 살풋살풋 들려주는 《10대와 통하는 청소년 인권 학교》(철수와영희,2014)를 읽습니다. 인권을 빼앗기거나 짓밟히거나 잃거나 잊은 푸름이한테 인권이란 무엇인가 알려주면서, 푸름이가 스스로 인권을 찾도록 하려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를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 생산력이 엄청나게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여전히 일에 매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자본은 계속 증식해 나가려고 노동력을 착취합니다. 일을 더 시켜야 생산성을 올릴 수 있잖아요. 개인들은 자발적으로 노동 시간을 연장합니다. 야근, 휴일 근로, 안 하면 돈을 적게 받으니까요 ..  (132쪽/조광제)



  《10대와 통하는 청소년 인권 학교》를 읽으면, 인권이 걸어온 발자취라든지, 인권이 ‘발명’된 까닭이라든지, 한국 사회에서 인권이 얼마나 짓눌리는가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살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푸름이 누구나 학교를 다니면서 인권이 억눌리는 얼거리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 인권’에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바로 ‘학교’이지 싶습니다. 학교를 다니기만 하면 인권을 빼앗기거나 짓밟히는 얼거리를 바로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아무리 뜻있거나 똑똑한 어른이라 하더라도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동안 아이들한테 인권을 찾아 주거나 지켜 주기 어려운 얼거리를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참말 학교를 바르게 살펴야 합니다. 오늘날 도시 문명 사회에서 학교는 ‘배우는 곳’ 구실을 하나도 안 합니다. 오늘날 도시 문명 사회에서 학교는 ‘입시지옥’ 노릇만 합니다. 대학입시와 얽힌 과목만 달달 볶듯이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합니다. 언제나 시험공부를 할 뿐입니다. 시험점수와 등수를 따지고, 등급과 성적표를 매깁니다. 아이들한테 사랑을 들려주는 교과목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교사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즐겁게 삶을 노래하는 시나 소설을 이야기하는 국어 교과목이 있는가요? 없습니다. 셈과 넋과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밝히는 수학 교과목이 있는가요? 없습니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말을 익히면서 이웃나라 문화와 삶을 살피고 서로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운 지구별을 가꾸는 이야기를 북돋우는 외국어 교과목이 있는가요? 없습니다. 가장 굵직하다는 국·영·수조차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역사 교과목은 어떠한가요? 왕조 발자국이나 살필 뿐, 지난날 이 나라에서 99퍼센트 남짓 차지하던 여느 시골마을 수수한 시골사람 이야기는 한 줄로도 안 다룹니다.



.. 김상용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평범한 일상에서도 행복을 느끼며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행복은 사람이 살아가야 할 까닭입니다. 김상용 시인의 시처럼 소박한 것에서 찾아도 좋고, 인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겠다는 커다란 포부여도 좋아요 … 인권은 사람을 존중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인권은 당연히 자기 존중의 토양에서만 싹틀 수 있습니다 ..  (171, 172, 202쪽/오창익)



  ‘청소년 인권’은 학교 안팎에서 찾아야 합니다. 한창 삶을 배우고 사랑을 맞아들일 푸름이인 터라, ‘학교 울타리’가 아닌 ‘배우는 터전’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아름다운 꿈을 키우고, 아이들한테 동무와 이웃이 되는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이도록, 다 같이 힘을 기울여야지 싶습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인권’입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란, 서로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나날입니다. 서로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나날은 함께 꿈을 꾸고 함께 일과 놀이를 나누며 함께 노래잔치 춤잔치 밥잔치를 빚는 하루입니다. 4347.10.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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