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놀이 13 - 어머니와 달리자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 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는 놓쳤으나, 이웃 봉서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가 있다. 이웃 봉서마을에서 버스를 내린 뒤, 잠든 작은아이는 내가 안고, 큰아이는 어머니하고 함께 달린다. 조용한 들길을, 땅거미 내리는 시골길을 두 사람이 씽씽 달린다.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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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뒷모습



  읍내마실을 갔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앞에서 신나게 달린다. 뒤에서 신나게 좇다가 문득 뒷모습을 생각한다. 이 집에서 조금 얻고 저 집에서 조금 얻은 옷을 입은 아이들인데, 큰아이 바지는 아버지가 모처럼 사 주어서 입혔고, 작은아이 가방은 큰아이가 다섯 살 무렵 부산에서 사 준 가방인데 이제 큰아이한테 작아서 작은아이가 물려받았다. 큰아이가 발에 꿴 신은 문을 닫은 어느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주운 뒤 잘 빨고 말려서 신겼고, 작은아이 벌레신은 곁님이 새로 장만해 주었는데, 작은아이가 골짝물에 담가서 반짝반짝 나오던 불이 꺼지고 말았다.


  가만히 아이들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아이들 옷차림을 거의 들여다본 적이 없다고 깨닫는다. 어떤 옷이든 대수롭지 않게 입히면서 살았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살겠지. 내가 바라보고 싶은 곳은 아이들 마음이고, 아이들이 나한테서 물려받기를 바라는 것은 사랑이니까.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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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세티아의 전설 - 멕시코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41
토미 드 파오라 지음,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41



꽃을 사랑하던 시골지기

― 포인세티아의 전설

 토미 드 파올라 글·그림

 김경미 옮김

 비룡소 펴냄, 2007.12.18.



  시골 면사무소와 보건소에서 여러 날에 걸쳐 마을방송을 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더러 ‘거저로 놓아 주니’까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는 거리끼지 않고 보건소에 가서 주사를 맞습니다. 거저로 놓는다니까 맞고, 주사를 맞으면 안 아프다니까 맞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마을마다 가을일이 마무리될 즈음, 시골에 있는 병원에서 마을마다 돌면서 ‘무료 건강검짐’을 해 주고 낮밥 한 끼니까지 대접할 뿐 아니라 병원차로 모셔 갔다가 다시 모셔다 드린다고 신나게 광고를 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는 마을 어귀로 찾아오는 병원차를 타고 이 병원에서도 검진을 받고 저 병원에서도 검진을 받습니다. 밥 한 끼니를 얻어먹고는 기념품으로 수건 한 장을 받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플 일이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제 손으로 씨앗을 심어서 거둔 풀열매와 나무열매를 먹는 시골지기가 아플 일이 왜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예전에 돌림병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돌림병은 왜 생겼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쉬 듣는 이야기인데, 시골에 농약과 비료가 들어오기 앞서 아픈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예 없었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잘못 먹을 만한 것이 없던 시골이고, 비닐쓰레기조차 없던 시골입니다. 흙에서 나온 것을 먹는데 몸이 잘못될 수 없습니다. 농약도 비료도 안 쓰고, 비닐을 태우거나 파묻는 일도 없으니, 몸이 뒤틀릴 까닭이 없습니다. 자동차가 없어 배기가스가 없을 뿐 아니라, 아무리 멀다 하는 길도 두 다리로 걸어다니고 지게를 짊어집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밥을 짓고 구들을 달굽니다. 기름을 때지 않습니다. 화학성분으로 된 옷을 입지 않고, 풀줄기에서 얻은 실로 옷을 지어서 입습니다. 참말 아플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날 시골은 어디에서나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듬뿍 씁니다. 항생제도 많이 씁니다. 군청이나 도청에서 싼값으로 파는 ‘유기질’은 항생제와 사료를 먹은 돼지와 소가 눈 똥으로 만드는 ‘화학 거름’입니다. 집집마다 경운기를 몰기에 기름찌꺼기가 논과 밭으로 흘러듭니다. 경운기가 달리면서 매연이 나옵니다. 농약병이 도랑에서 뒹굴고, 비닐을 태우는 냄새가 여기저기 퍼집니다.




.. 루시다는 멕시코의 높은 산간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에 살았어요. 엄마 아빠와 파코와 루페라는 두 동생과 함께요. 아빠는 당나귀 페피토를 데리고 들판에서 일을 했어요. 루시다는 저녁마다 페피토에게 먹이와 깨끗한 물을 주고 마굿간에 새 짚을 넣어 주었지요 ..  (5쪽)



  예부터 시골은 어디나 꽃골이었습니다. 꽃마을이요 꽃동네이며 꽃숲이었어요. 오늘날 시골은 어디나 꽃골이 아닙니다. 시골에서 시골꽃을 만나기 몹시 어렵습니다. 쑥꽃도 고들빼기꽃도 모조리 베어넘길 뿐입니다. 감꽃이 핀들 감꽃을 올려다보지 않습니다. 깨꽃이나 고추꽃이 한들거려도 눈여겨볼 겨를이 없습니다. 돌울타리를 타고 호박꽃이 피기도 하지만, 쑥부쟁이가 마음껏 자랄 틈바구니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억새와 갈대는 뽑거나 베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도시에서 자가용을 타고 시골을 지나는 사람은 억새와 갈대가 한들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곱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참말 이뿐입니다. 이제 한국에서 꽃골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꽃나무도 꽃숲도 거의 모두 사라집니다.



.. 집에 와서 엄마는 털실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였어요. 루시다가 옆에서 도왔지요. 아빠는 루시다와 엄마가 베틀에 털실을 한 가닥씩 끼우는 걸 바라보며 말했어요. “색이 참 곱군. 교회가 환해지겠는걸.” ..  (13쪽)




  토미 드 파올라 님이 빚은 그림책 《포인세티아의 전설》(비룡소,2007)을 읽습니다. 찬찬히 읽습니다. 멕시코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담은 이쁘장한 그림책을 곰곰이 읽습니다.


  멕시코라는 나라에는 예방주사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깊디깊은 두멧자락에 예방주사가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병원이나 약국도 없겠지요. 편의점이나 술집도 없겠지요. 그러나, 깊은 두멧자락에는 조그맣게 마을이 있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두멧자락 마을에서는 걱정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는 근심하는 일이 없습니다.


  누가 아파서 몸져누울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누가 잘못될까 근심하지 않습니다. 모두 씩씩하게 튼튼하게 삽니다. 저마다 아끼고 돌보면서 살가이 지냅니다. 때때로 몸살이 나거나 고뿔이 들더라도 며칠 뒤면 말끔히 털고 일어납니다. 시골지기한테 찾아드는 몸살이나 고뿔이란, 몸을 너무 많이 부렸으니 며칠쯤 느긋하게 누워서 쉬라는 뜻입니다. 쉬면 낫는 몸살이요 고뿔입니다. 쉬면서 잘 먹고 싱그러운 바람 듬뿍 마시면 누구나 낫는 몸살이고 고뿔입니다.




.. “오, 루시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 때문에 아름다운 거란다. 네가 뭘 가져가든지 아기 예수님은 좋아할 거야.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니까.” 루시다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어요. “하지만 전 지금 가져갈 게 아무것도 없어요.” ..  (25쪽)



  그림책 《포인세티아의 전설》은 멕시코 들꽃 가운데 하나인 ‘포인세티아’와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꽃 이야기 그림책’입니다. 꽃 한 송이로 마을을 곱게 가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꽃골이 어떻게 태어났고, 사람들 가슴에 꽃마음이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었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짚습니다.


  어떻게 꽃마음이 자랄까요? 어떻게 꽃골이 될까요? 아주 쉽습니다. 꽃씨를 심으면 돼요. 꽃씨를 심으면서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즐겁게 지으면 돼요. 웃으면서 꿈을 짓고, 노래하면서 사랑을 짓습니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꿈을 짓고, 서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면서 사랑을 지어요.


  멕시코 시골자락에서는 ‘포인세티아’라는 들꽃과 얽혀 아름다운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서 입을 거쳐 흐릅니다. 그러면, 한국 시골자락에서는 어떤 들꽃과 얽혀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서 어떤 ‘꽃 이야기’를 들을 수 있나요? 오늘날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들한테 어떤 ‘꽃골’ 이야기를 물려줄 만한가요?


  권정생 님은 민들레 한 송이로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씀바귀꽃이나 냉이꽃이나 봄까지꽃이나 꽃마리꽃과 얽힌 이야기를 누가 지을 만한지, 맨드라미나 갓꽃이나 모과꽃과 얽힌 이야기를 누가 길어올릴 만한지 궁금합니다.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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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책숲 느끼기

19. 아이를 낳고 돌보며 읽는 책



  오늘날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교육’은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 하는 ‘성교육’은 푸름이가 앞으로 어버이가 되어 새로운 아이를 기쁨으로 맞이해서 사랑스럽게 돌보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얼거리’와 ‘피임’을 어떻게 하는가를 알려주면서 성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이루는 삶과 사랑과 꿈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나마 오늘날 학교는 대학입시에 목을 매달다 보니, 대학입시하고는 많이 동떨어진 성교육조차 제대로 안 하거나 못 합니다. 그러면 푸름이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대학교에 가면 성교육이나마 할까요. 여성과 남성이 서로 어떻게 다른 몸인가를 헤아리지 못하면서, 또 여성과 남성이 서로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삶과 사랑과 꿈을 읽지 못하면서, 스무 살 젊은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성교육도 사랑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몸으로 사내는 군대에 갑니다. 군대에 간 젊은 사내는 총과 칼로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여러 해에 걸쳐 배워야 합니다. 계급과 신분에 따라 사람을 갈기갈기 쪼개는 틀에 길들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젊은 사내는 무엇을 보고 배우는 어른이 될까 궁금합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푸름이는 대학교에 가거나 일자리를 얻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거나 대학교까지 마친 젊은이가 일자리를 얻어 여러 해 지나면 여느 어버이는 젊은이한테 ‘시집·장가’를 가야 한다고 말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스물다섯이나 서른이 되었어도 성교육은커녕 사랑이 무엇이고 삶과 꿈이 무엇인지 배우거나 듣거나 마주한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젊은이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더러 시집과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으라고 여느 어버이마다 닦달하곤 합니다.


  짝꿍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요. 살림은 어떻게 꾸려야 할까요. 짝을 만나 제금을 난다면, 살림뿐 아니라 밥은 어떻게 지어서 먹고, 집안은 어떻게 돌보아야 할까요. 시집이나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은 젊은이는 아이를 어떻게 돌보거나 키워야 할까요. 갓 태어난 아기를 유아원에 넣거나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유치원을 다니게 하면 될까요.


  어버이로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삶을 생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버이로서 스스로 아름답게 삶을 지어 즐겁게 하루하루 누릴 수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푸름이가 저마다 스스로 삶을 짓고 즐겁게 하루를 누릴 수 있는 힘을 내도록 도와야 한다고 느낍니다.


  대학입시를 걱정할 노릇이 아니라, 앞날을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시험성적을 따질 일이 아니라, 우리 마음밭에 사랑과 꿈이 싹틀 수 있도록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람타, 현실 창조를 위한 입문서》(아이커넥 펴냄,2012)라는 책을 읽습니다. 어른으로서 우리 집 아이들과 즐겁게 살아갈 길을 생각하려고 읽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찾도록 이끌자고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나는 ‘육아서’라는 책은 읽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삶을 책으로는 배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그랬어요. 어떤 어버이도 책을 읽으면서 아이를 돌보지 않습니다. 어떤 어버이도 책에 따라 살을 섞어서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어떤 어버이도 아이한테 밥을 차려 줄 적에 책에 따라 밥을 짓지 않아요. 젖을 물린다든지 기저귀를 간다든지 빨래를 하거나 걸레질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모든 집일을 책으로 배우는 사람은 없어요. 아니, 책으로 쓸 수 없고, 책으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삶은 오직 삶으로 가르칩니다.


  “당신 존재가 순수한 상태에 있을 때에는 낮은 차원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71쪽).”와 같은 이야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내 마음이 맑고 정갈한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내 눈길은 어떠할까 헤아려 봅니다. 맑고 정갈한 사람은 맑고 정갈한 삶을 바라보겠지요. 맑고 정갈한 길을 걸으려 할 테며, 맑고 정갈한 사랑을 나누려 하겠지요.


  맑고 정갈한 삶을 맑고 정갈한 넋으로 가꾸는 사람은 허튼 짓이나 엉뚱한 짓이나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허튼 짓이나 엉뚱한 짓이나 어리석은 짓을 하는 사람은, 삶과 넋이 모두 허튼 길로 빠졌거나 엉뚱한 곳으로 기울어졌거나 어리석게 뒤틀렸기 마련입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스러운 일과 놀이를 합니다.


  우리가 책을 바란다면 어떤 책을 바라는지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마음이 착한 사람은 착한 책을 바라면서 즐겁게 읽겠지요.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책을 바라면서 기쁘게 읽겠지요. 마음이 착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치고 박고 죽이고 싸우는 이야기 그득한 책이나 영화’를 볼 일이 없습니다. 이른바 막장연속극을 착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이 즐길 일이 없습니다. 방송이 막장연속극으로 가득하다면, 착하거나 아름다운 사람은 텔레비전을 끌 뿐 아니라, 집에서 텔레비전을 치우겠지요.


  “물, 물고기, 꽃이 활짝 핀 나무, 가시덤불, 새, 도마뱀, 아이들과 함께 정원에 두고 아이들이 숨을 수 있는 동굴을 만들어 주면, 삶이 얼마나 아름답게 펼쳐지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날씨로부터 배웠고, 낮으로부터 배웠고, 밤으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파괴와 전쟁의 와중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연약하고 하찮은 생명으로부터 배웠다. 내 존재의 스승은 절대 근원이었다(95, 96쪽).”와 같은 이야기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시험공부만 하던 젊은이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학교를 다니더라도 들길과 숲길을 걸어서 오간 젊은이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학교를 안 다녔으나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은 젊은이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우리 삶자락을 돌아보면,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흙을 만졌습니다. 1940년대라면 더 많은 사람이 시골에서 흙을 만졌고, 1900년대라면 몇몇 사람을 빼고는 모두 시골에서 흙을 만졌습니다. 이무렵 학교를 다닌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학교를 안 다닌 사람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바로 비와 바람과 해를 보고 배우겠지요. 흙과 풀과 나무를 보고 배우겠지요. 새와 벌레와 짐승과 물고기를 보고 배우겠지요. 《람타, 현실 창조를 위한 입문서》라는 책을 더 읽어 봅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생을 통해서 이미 실패라고 입증되었던 믿음, 이해, 삶과 사고방식들을 여전히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변형된 에고로 인해 비틀거리고,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며, 단지 죽음으로밖에 이끌 수 없는 위선 속에 살아간다(97쪽).”와 같은 이야기를 밑줄을 그으며 읽습니다. “신으로서 살라. 그러면 진정으로, 당신은 자신을 용서할 수 있고,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를 알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116쪽).”와 같은 이야기도 밑줄을 그으며 읽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짓밟히면서 종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어떠했을까요? 소작을 짓던 수많은 시골지기는 일제강점기에서나 조선에서나 똑같이 소작을 지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소작쟁의’라는 이름으로 시골지기가 들고 일어선 일이 잦았지만, 조선에서도 ‘농민항쟁’이 그치지 않았어요. 내 땅이 없어 땅 부자한테서 땅을 조금 얻어 흙을 일구던 사람들은 땀값을 거의 못 받았어요. 엉터리처럼 짓밟힌 채 지내다가 도무지 견딜 수 없어 낫과 쟁기를 손에 쥐고 벌떡 일어섰어요.


  일제강점기에서 풀린 한국 사회이지만, 요즈음은 돈 때문에 쪼들리는 사람이 많아요. 사장님 앞에서 굽신거려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비정규직이 아주 많은데,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공장에서 똑같이 여덟 시간씩 기계를 만집니다. 한 주에 닷새를 일한다 하더라도, 다른 이틀은 ‘닷새 동안 일을 안 쉬고 공장에 나와서 기계를 만질 수 있도록 몸을 되살리는 겨를’일 뿐입니다.


  어버이는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일까 궁금합니다. 어른은 삶을 어떻게 꾸리는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어린이와 푸름이는 무엇을 배워서 어떤 젊은이로 자라 꿈과 사랑을 키울 숨결일는지 궁금합니다.


  책은 무엇을 가르칠까요. 책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나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나요. 졸업장을 따야 하기에 학교를 가야 한다면, 학교란 곳은 매우 쓸쓸합니다. 졸업장을 따야 한다면 억지로 몇 해를 버티지 말고, 돈을 주고 졸업장을 살 노릇이지 싶습니다. 학교에서 참다운 삶을 배우고 아름다운 사랑을 익히며 맑은 꿈을 키울 수 있다면, 우리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잘 다니고서 졸업장은 안 받아도 됩니다. 학교가 참답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다면, 일곱 학기를 다닌 뒤 마지막 학기는 안 다닌 채 그만두어도 됩니다. 우리는 졸업장이 있어서 어떤 일을 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을 배우고 사랑을 익히며 꿈을 키울 때에 어떤 일이든 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을 책이라면, 내 삶을 나 스스로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어야지 싶습니다. 내가 스스로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본 뒤, 제대로 깨닫고, 제대로 알아채서, 제대로 하루를 짓도록 이끄는 책이라면 얼마든지 읽을 만하지 싶습니다.


  지식을 알려주거나 정보를 보여주는 책은 굳이 안 읽어도 된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더 나은 지식이나 더 빠른 정보를 다른 책이 알려줄 테니까요. 그리고, 더 나은 지식이나 더 빠른 정보가 있어도 또 다른 책이 이런 책을 앞지르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지식이나 정보를 다루는 책은 어떤 책이든 한 가지조차 볼 만한 까닭이 없습니다.


  “삶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가 당신은 자신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밤이나 일요일 아침 그리고 직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143쪽).”와 같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은 대학입시만 생각하며 하루를 맞이합니다. 아이를 대학교에 넣고 싶은 어버이는 늘 대학입시만 생각하며 하루를 맞아들입니다. 다른 길이나 다른 삶이나 다른 꿈은 생각하지 않아요. “마음이 현실을 창조한다. 당신의 모든 나날은 지금까지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일어난 결과이다(152쪽).”와 같은 이야기를 여러 차례 되읽은 뒤 마음에 새깁니다. 참으로 그렇거든요. 대학입시에서 손을 뗄 적에는 대학교라는 길은 갈 수 없을 테지만, 다른 길을 열어요. 대학입시에서 눈길을 거둘 적에는 대학교라는 길을 더 볼 수 없을 테지만,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나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두었습니다. 아예 안 갈 수도 있었으나, 대학입시를 치러 대학교에는 들어갔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교라는 곳에 들어가서 ‘학문을 익히’려 하는데, 교수뿐 아니라 동무와 선·후배 모두 학점 아닌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오직 학점을 따려고 ‘숙제 베껴쓰기’를 하고 ‘시험 때 훔쳐보기’를 합니다. 학문을 하고 배움길 찾는 교수와 학생이 아예 없지 않습니다만, 참으로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나는 혼자 배움길을 가겠노라 생각하며 대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학기마다 큰돈을 학교에 바치기보다, 이만 한 큰돈으로 내 넋과 삶을 북돋울 만한 책을 스스로 한 권씩 찾아서 장만하여 읽어서 스스로 배우자고 생각했어요.


  내가 즐거운 마음일 때에 삶이 즐겁습니다. 부잣집 아이로 태어났기에 내 삶이 즐겁지 않아요. 부잣집 아이로 태어났어도 스스로 어두운 마음이면 삶이 어두워요. 마음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시험성적이 잘 나왔어도 마음이 어두우면 즐거울 일이 없고,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도 어둡고 슬픈 마음으로 삶이 어둡고 슬픈 길로 흐른다면 그저 어둡고 슬프기만 합니다.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도 마음이 따스하지 않다면, 나중에 하는 일도 따스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은 따스한 마음으로 합니다. 사랑은 포근한 손길로 나눕니다. 사랑은 아름다운 꿈으로 짓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삶을 즐겁게 누리도록 이끄는 책을 읽을 때에 즐겁습니다. 푸름이는 푸름이로서 삶을 곱게 누리도록 북돋우는 책을 읽을 때에 고운 넋이 됩니다. 어버이와 어른은 삶을 참되게 누리도록 돕는 책을 읽을 때에 참삶을 가꿉니다.


  이 땅 모든 푸름이는 곧 스무 살이 됩니다. 이 나라 모든 푸름이는 머잖아 어른이 되거나 어버이 자리에 들어섭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을 헤아리면서 어떤 책을 곁에 두고 어떤 동무를 둘레에 두며 스스로 어떤 넋이 될 때에 아름다운 삶을 일굴 만한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 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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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희》 열한째 권을 읽는다. 아무래도 어떤 연속극 때문에 줄거리가 많이 뒤틀렸지 싶다. 열한째 권에서는 살짝 느슨하게 이야기가 흐르는구나 싶다. 열둘째 권이나 열셋째 권이 나온다면, 그 즈음에는 줄거리를 다시금 단단히 조여서 제대로 이야기를 풀어야지 싶다. 삶과 사랑과 사람이 서로 맺고 푸는 얼거리를 아무쪼록 강경옥 님 붓끝 나름대로 풀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그 연속극은 더 없으니까. 아니, 처음부터 그런 연속극은 없었을 테니까.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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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희 11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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