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지어 즐겁게 살다



  아이린 하스 님이 빚은 이쁘장한 그림책 《꿈의 배 매기호》(비룡소,2004)가 있습니다. 이 그림책을 보면, 일고여덟 살 즈음 되는 듯한 아이가 저보다 서너 살 밑인 동생을 살뜰히 돌보면서 함께 노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림책에서 주인공이 되는 가시내는 ‘내가 모는 내 나룻배’를 한 척 갖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모는 배를 한 척 갖고 싶다는 꿈을 키우면서 날마다 즐겁게 노래합니다. 이러던 어느 날, 그림책 주인공인 가시내는 참말 ‘내 배’를 얻습니다. 아마 꿈속이었을 테지요. 그런데, 내 배를 얻은 가시내는 ‘내 배’를 쓱쓱싹싹 깨끗이 치웁니다. 청소부터 해요. 그러고는 도시락을 장만하고, 동생을 불러서 함께 바다를 가릅니다. 함께 도시락을 먹고, 씩씩하게 바다를 가르다가, 그만 거센 비바람을 만나요. 이때에도 일고여덟 살 즈음 큰아이는 꿋꿋하게 배를 몰아 비바람을 헤쳐 나갑니다. 마지막으로는 어린 동생을 잘 토닥이고 달래면서 잠을 재우는데 바이올린을 켜고 자장노래를 불러 주어요.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 동생은 하루 내내 누나 손길을 받습니다. 어린 동생은 한결같이 누나 손길을 포근하게 받습니다. 어린 누나는 저보다 어린 동생을 살뜰히 아끼면서 내내 빙그레 웃습니다.


  어린 누나는 이처럼 따사로운 웃음과 보드라운 손길을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아마 집에서 배웠겠지요.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여느 때에 따사로우면서 보드라운 몸짓으로 삶을 가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겠지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즐겁게 물려받아, 이 사랑을 맨 먼저 제 동생한테 베풉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책을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책을 읽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림책 《꿈의 배 매기호》에는 무척 깊고 너른 삶이 깃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림책 얼거리를 다시 돌아보면, 이 그림책 주인공인 가시내는 ‘별님’한테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합니다. 입으로 말하고 마음속으로 빕니다. 아주 오랫동안 말하고 빌었으리라 느껴요. 더욱이, 아주 오랫동안 말하고 비는 동안 즐겁게 기다렸구나 싶어요. 이러다가 비로소 어느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면서 ‘내 배’를 만날 수 있어요.


  아이는 스스로 지은 꿈에 따라서 하루를 아주 즐겁고 신나게 놉니다. 아이는 스스로 지은 사랑에 따라서 하루를 아주 따사로우면서 포근하게 누립니다. 아이는 스스로 즐거우면서 신나는 마음이 되었기에, 어린 동생을 아주 아끼고 깊이 사랑하면서 신나게 함께 놉니다. 즐거움과 신나는 숨결이 함께 있으니 저절로 노래가 흐르고 악기를 켤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을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듯이 동생하고 기꺼이 나눕니다. 동생을 먼저 재우고 뒤따라 함께 잠듭니다.


  그러니까, 그림책 《꿈의 배 매기호》는 ‘꿈을 짓는 삶은 언제나 사랑스러우며 아름답다’는 줄거리를 아주 멋지게 그린 작품이로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넋이라 저마다 다른 책을 즐길 텐데, 이러한 그림책을 한번 들여다볼 수 있다면, 아이와 어른이 함께 지을 꿈과 하루와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운을 얻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덮고 우리 집 아이를 바라봅니다. 책을 꽂고 내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듯이 우리 집 아이도 사랑스러운 숨결로 하루를 짓곤 합니다. 나 또한 내 하루를 사랑스러운 숨결로 지을 때가 있습니다.


  꿈을 짓기에 삶을 짓고, 삶을 짓기에 하루를 짓습니다. 꿈으로 삶과 하루를 지으니 사랑을 지을 수 있고, 사랑을 짓는 사람은 노래와 춤을 지으면서, 웃음과 이야기를 지어요.


  예부터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서든 옛이야기가 무척 많이 흐르는 까닭은 어느 곳에서든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짓고 꿈과 사랑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아이와 나누는 이야기는 언제나 꿈과 사랑으로 짓습니다. 이웃하고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는 삶을 지을 때처럼 늘 즐겁게 짓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그저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뿐일까요?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안 아낄까요? 일고여덟 살짜리 아이는 동생을 사랑하거나 보살필 줄 모를까요?


  예부터 모든 아이들은 동생을 아꼈습니다. 우리 집 동생도 아끼고, 이웃집 동생도 아낍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에서는 ‘아낄 동생’을 만나기 어려워요. 집에서는 아이가 혼자이기 일쑤입니다. 학교는 일찍부터 입시지옥으로 흐릅니다. 학교 바깥은 학원이기 일쑤입니다. 마을 놀이터가 사라졌습니다. 골목은 자가용으로 꽉 차서 놀 빈틈이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기껏해야 피시방에서 인터넷게임을 하거나 손전화로 온갖 게임을 하는데, 아이들이 하는 게임은 ‘동무나 이웃을 아끼는 삶’을 보여주지 않아요. 아이들이 하는 게임은 ‘적을 죽이거나 때려잡는 짓’만 되풀이하도록 이끕니다.


  아이들이 동생을 아낄 줄 모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회가 바로 아이들을 바보로 만든다고 느낍니다. 더욱이, 오늘날 사회는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사회가 이루어져 아이들이 입시지옥과 게임폭력에 길든 지 고작 서른 해 즈음입니다. 백 해도 안 된 뒤틀린 사회 얼거리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괴롭고, 아이들뿐 아니라 어버이도 고달픕니다.


  아이와 함께 아름답게 문학을 누리고 싶은 어른이라면, 아름다운 문학을 짓는 일과 함께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도록 힘을 쏟아야지 싶습니다. 우리 동네와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내 보금자리를 사랑스레 보듬어야지 싶습니다. 나무를 심어서 돌보고, 숲이 푸르게 우거지도록 보살피며, 골목이나 고샅에 빈터가 생기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입시지옥과 시험문제와 학교성적에 매이지 않는 어버이와 아이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더 많은 책을 읽히지 말고, 아름다운 책을 아이와 함께 읽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꿈을 지어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에서 어른들은 사랑을 지어 서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꿈을 지어 즐겁게 놀도록 이끄는 그림책이란, 바로 어른들도 스스로 삶을 지어 사랑을 꽃피우도록 돕는 어여쁜 이야기꾸러미입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


아이가 읽는 그림책은 <나무의 아기들>입니다 ^^

이 그림책도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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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12. 2014.10.11. 이불 쌓아 책놀이



  자는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쌓고 놀던 두 아이가 그림책을 가지고 와서 함께 읽는다. 이불과 베개로 마련한 높직하고 폭신한 걸상에 앉아서 그림책을 누리는 셈이다. 무르익는 가을빛이 문살을 거쳐 들어오고, 두 아이는 천천히 그림책을 펼치면서 읽으며 놀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롭게 논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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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62. 인형놀이 마치고 2014.10.12.



  인형놀이를 마친 아이들이 다른 놀이를 한다. 이러면서 인형을 마룻바닥에 그대로 둔다. 마룻바닥에는 인형뿐 아니라, 그림놀이를 하다가 그대로 둔 것도 있고, 소꿉놀이를 하다가 그대로 둔 것도 있다. 아톰 인형 팔 하나는 꺼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지만, 아톰 인형 넷을 마룻바닥에 나란히 눕히고 노는구나. 아이들이 한창 놀 적에는 도무지 지나다닐 수 없도록 마룻바닥이나 방바닥이나 문턱에까지 이것저것 잔뜩 깔아 놓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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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네코무라 씨 둘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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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7



일을 하는 까닭

― 오늘의 네코무라 씨 (둘)

 호시 요리코 글·그림

 박보영 옮김

 조은세상 펴냄, 2009.5.20.



  호시 요리코 님이 빚은 만화책 《오늘의 네코무라 씨》(조은세상,2009) 둘째 권을 읽으면, ‘고양이(네코무라) 씨’가 가정부 일을 하는 까닭이 살며시 나옵니다. 다른 권에서도 이렁저렁 나오거나 어렴풋이 나오기도 하는데, ‘고양이 씨’는 밥도 짓고 설거지도 하며 청소도 합니다. 혼자 저잣거리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 오기도 할 뿐 아니라, 집안 사람들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해요.


  고양이이면서 온갖 일을 다 하는 고양이 씨는 ‘고양이 주제’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고양이조차’라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고양이 씨는 늘 마음을 열고 이웃을 만나려 하기에, 이웃들도 슬그머니 마음을 열어 고양이 씨한테 다가옵니다.



- “그래, 괜히 공부만 많이 해 봤자 멍청이 아들놈처럼 학자나부랭이나 되기밖에 더 하겠니?”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꺼!” (29쪽)

- “만날 고양이라고 바보 취급만 하고!! 나도 이젠 ‘통장 있는 고양이’란 말야!!” (45쪽)





  고양이 씨는 누군가를 그립니다. 고양이 씨는 만나고픈 님이 있습니다. 고양이 씨가 만나고픈 님도 고양이 씨를 만나고 싶을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고양이 씨는 마음속에 그리움과 사랑과 꿈을 품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런데, 고양이 씨는 마음속에 그리움과 사랑과 꿈을 품으면서 살아가지만, 고양이 씨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기 일쑤입니다. 그리움도 사랑도 꿈도 없는 채 그저 하루를 보냅니다. 돈은 있지만 사랑이 없습니다. 이름값은 있지만 꿈은 없습니다. 힘은 있지만 그리움이 없습니다.


  가정부를 집에 두어 집일을 맡기는 사람들은 날마다 무엇을 할까요? 스스로 밥을 짓지 않고 돈만 버는 이들은 날마다 어떤 보람을 누릴까요?


  아이들한테 꼭 ‘어버이 손맛’을 물려주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버이로서 아이와 사랑을 나누고 꿈을 이야기하며 그리움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하루가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아이는 학교나 학원에 보내고, 아이를 키우거나 가르치는 몫은 가정부나 가정교사한테 맡기면, 어버이는 왜 있을까요? 어버이는 무엇을 하는 넋일까요?




- “저에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때문에 공부도 열심히 해야 돼요. 다카시 도련님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51쪽)

- “오, 역시 오니코. 무기 중학교 히사시와 정면으로 말을 섞다니, 난 살짝 쫄았었는데.” “흥!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해 줬을 뿐이야.” (58쪽)



  오늘날 아주 많은 어버이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겨를조차 매우 짧습니다. 오늘날 아주 많은 어버이는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보내기만 할 뿐 아니라, 집에서조차 방을 따로 쓰면서 저마다 따로 놉니다. 함께 하는 일이나 놀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집에 있으나 마치 한집에 없는 듯한 오늘날 사회 흐름입니다.


  오늘날로 접어들어서, 아이들이 어버이와 이야기를 안 나누는 까닭은 너무 마땅합니다. 하루 가운데 함께 눈을 마주하면서 보내는 겨를이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요? 아이와 어버이가 서로 ‘보고 대회’를 열어야 할까요? 왜 오늘날 아이와 어버이는 서로 ‘하루를 함께 누리는 삶’을 가꾸지 않을까요? 왜 어버이 스스로 아이를 가르치지 못하고, 왜 어버이 스스로 아이를 돌보지 않으며, 왜 어버이 스스로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지 않을까요?


  학교나 학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도 똑같습니다. 이들은 왜 다른 집 아이들만 맡아서 무엇인가 가르쳐야 할까요? 다른 집 아이들을 맡아서 가르치더라도, 왜 교과서만 써야 할까요? 다른 집 아이들을 맡아서 교과서로 가르치더라도, 왜 교실에 갇힌 채 가르쳐야 할까요?





- “하지만 참 신기해요. 노인 분들과 어린 아이들은 사이가 좋지만, 중간 정도의 나이 대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만 모이잖아요. 그런데 오니코 아가씨는 예민한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할머니랑 사이가 좋은 것 같아서 참 다행이에요.” (70쪽)

- “만나지 않고 메모만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라면 만나서 얼굴을 보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은데. 뭐, 사람은 다 제각각이니까.” (147쪽)



  참말 오늘날 사회에서는 어른이나 아이 모두 바깥바람을 쐬기 매우 어렵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교실에 갇힙니다. 스스로 교실에 갇힙니다. 학교에서도 딱히 갈 만한 데가 교실 아니고는 없습니다.


  회사를 다니는 어른이라면 하루 내내 회사에 갇힙니다. 가게에서 장사를 하는 어른이라면 하루 내내 일터에 갇힙니다. 공무원도 이녁이 몸담는 공공기관 건물 바깥으로 벗어나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바깥바람도 없고, 햇볕도 없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깥에서 놀거나 얼크러지지 못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먹구름이 깔린들 바깥 흐름을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봄에 꽃내음이 흩날린들, 가을에 잎내음이 고루 퍼진들, 아이나 어른 모두 바깥에서 어우러지지 못합니다.


  학교 바깥에서는 배울 수 없을까요. 집에서는 가르칠 수 없을까요. 아이와 어른한테는 무엇이 삶일까요. 왜 학교를 다녀야 하고, 왜 일을 해야 하며, 왜 돈을 벌어 도시에서 아파트를 장만해야 할까요.




- “그야, 고양이가 가정부를 할 정도라면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게 당연한 거잖아. 그럼 잘 지내.” (173쪽)



  일을 하는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직업교육을 받기 앞서, 삶을 가꾸는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한테 직업교육을 시키기 앞서, 삶을 스스로 누리는 즐거움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장래희망이나 취미나 소질을 헤아리기 앞서, 삶을 이루는 숨결이 무엇인지 찾을 노릇입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끄고 삶을 읽을 노릇입니다. 책과 신문을 덮고 삶을 바라볼 노릇입니다. 돈은 그만 벌고 삶을 배울 노릇입니다. 돈은 그만 쓰고 삶을 나눌 노릇입니다.


  만화책 《오늘의 네코무라 씨》를 살살 쓰다듬어 봅니다. 하루에 한 칸씩 그린 만화로 제법 도톰하게 한 권 묶습니다. 날마다 얼마나 즐겁게 그림을 그리면서 사랑을 들려주는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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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바꾸면 헌책방 살아나는가?



  책방을 찾는 사람은 간판을 보고 찾아가지 않는다. 책방에 깃든 책을 보려고 책방에 간다. 그런데, 공무원이 책방을 돕겠다면서 하는 일이란 ‘간판 바꾸기’이다. 이명박이라고 하는 분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적에 ‘청계천 살리기’를 한다면서 서울 청계천 둘레에 있던 헌책방 간판을 새 것으로 갈아 주었다. 그리고, 올해 2014년에 네이버라는 회사에서 이곳 서울 청계천 헌책방 간판을 새것으로 갈아 주었단다. 헌책방에서 쓰던 간판이 한글이 아니었는가? 그동안 모두 한글 간판을 붙였을 텐데, 네이버에서 한글날을 맞이해서 ‘한글 간판’으로 바꾸었다면서 홍보를 하니 아리송하기만 하다. 처음부터 한글이던 간판을 ‘다른 한글 간판’으로 바꾼 일이 얼마나 대단한가? 게다가 ‘청계천 살리기’를 한다면서 제법 돈을 들여 바꾼 간판이 얼마나 낡았다고 벌써 새 간판을 올려야 했을까? ‘오래된 책방 간판’은 역사나 문화가 아니라는 뜻인가?


  헌책방을 돕고 싶다면 ‘간판 갈기’ 같은 일은 안 하기를 바란다. ‘책방 간판 갈기’는 도시에서 ‘보도블록 새것으로 갈기’하고 똑같은 일이다. 간판 바꿀 돈이 있으면, 이 돈으로 책방 임대료를 돕는 데에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또는, 헌책방 문화를 살릴 수 있는 잡지나 단행본을 내는 데에 돈을 쓰기를 바란다. 또는, 헌책방 영업을 배우고 싶은 젊은이를 키우는 데에 돈을 쓰기를 바란다. 4347.10.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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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0-1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정말 맞는 말씀이세요.
`책방 간판 갈기`는 도시에서 `보도블록 새것으로 갈기`.
참 어처구니 없고 기가 막힌 일이죠...
멀쩡한 걸 죄다 뜯어내고 엉뚱한 짓이나 벌이는 삽질들,,,

파란놀 2014-10-15 00:52   좋아요 0 | URL
간판 갈이를 하고서
서울시장하고 네이버 대표하고...
신나게 사진놀이를 하고 손바닥그림도 찍고...
온갖 것을 다 하시던데,
그런 무대에서
정작 `청계천 헌책방거리 사장` 가운데
어느 분 얼굴도 볼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