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글쓰기



  나는 글 한 꼭지를 쓸 때에 몇 분이 걸리는가? 글감에 따라 다르지만, 글감보다는 내 마음에 따라 다르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한껏 그러모을 수 있으면, 원고지 열 장짜리 글을 10분에 쓸 수 있고, 원고지 30장짜리 글을 30분에 쓸 수 있다. 어느 날은 마음을 아주 힘껏 그러모아서 원고지 예순 장짜리 글을 30분에 쓰기도 합니다.


  부산 사상역에서 고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린다. 순천을 거쳐서 갈는지, 고흥으로 바로 갈는지 헤아린다. 13시 20분에 순천으로 가는 버스가 있고, 이 버스는 두 시간 반이 걸린단다. 13시 30분에 고흥으로 들어서는 버스가 있으며, 이 버스는 네 시간이 걸린단다. 순천에서 고흥까지는 한 시간이다. 그런데 왜 두 버스는 한 시간 반이 벌어질까? 두 버스 사이에 있는 20분은 무엇일까?


  버스삯은 500원쯤 벌어진다. 겨를은 20분이 생긴다. 나는 500원을 더 들여서 20분을 내 몫으로 삼기로 한다. 20분이라 하더라도 시외버스에서 덜 보내고 싶다. 20분 동안 내 마음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이야기꽃을 글 한 줄로 피우고 싶다.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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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취재를 손사래칠 수 있기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참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튼다. ‘숨은가수찾기’가 흐르기에 한번 보기로 한다. 구경꾼 자리에 앉은 이 가운데 연예인 같지 않아 보이는 아저씨가 한 사람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저이는 누구인가? 나중에 보니, 연예인 사이에 낀 아저씨는 ‘진중권’이라 한다. 아, 진중권이라고 하는 사람은 ㅈㅈㄷ 방송국 가운데 하나에 아무렇지 않게 나올 수 있는 그릇이로구나. 그나저나, 이녁은 이런 풀그림에 나올 만큼 할 일이 없나. 이러한 풀그림에 나오기를 바라거나 꿈꾸었기에 나오는 셈일까.


  모든 텔레비전 풀그림이 엉터리라거나 바보스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텔레비전을 집에 들이지 않는다. 나는 텔레비전을 곁에 둘 마음이 없다. 나는 신문조차 안 읽는다. 2011년에 고흥으로 삶터를 옮긴 뒤 처음 서너 달은 면사무소에 보름에 한 차례쯤 가서 전라도 쪽 시골신문을 들추기도 했지만, 이제 면사무소에 가는 일도 없고, 전라도 시골신문조차 살피지 않는다.


  텔레비전은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소비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만 다룬다. 그런데, 이런 소비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조차 ‘다 다른 모든 사람’을 ‘다 같은 울타리’에 가두려는 얼거리이다. 마치 학교에서 모든 아이한테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규율로 가두며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외워서 똑같은 시험점수를 받도록 닦달하는 모양새라고 할까. 다 다른 생각을 막고, 다 다른 삶을 거스르려는 방송 풀그림이라고 느낀다.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방송취재를 손사래칠 수 있어야 하는구나 싶다. 방송취재를 꼭 해야 한다면, 제대로 된 피디와 방송작가를 만나서 제대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지 싶다. 사람들을 생각없는 모습으로 내몰려고 하는 얼거리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우리 이웃과 동무가 삶을 참다이 들여다보도록 손을 내밀 수 있어야지 싶다.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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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1
나치 미사코 지음, 이기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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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01



우리가 서로 나누는 이야기

― 네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1

 나치 미사코 글·그림

 이기선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펴냄, 2014.10.25.



  나치 미사코 님이 빚은 만화책 《네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AK커뮤니케이션즈,2014) 첫째 권을 읽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아주 마땅하면서 마땅하디마땅한 이야기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 만화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이 펼칩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마음을 살며시 열면 고양이한테 말을 걸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양이가 들려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아지, 들리니? 이 세상엔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냐. 다정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단다.” (14쪽)

- ‘어느 날 집 담장에 처음 보는 고양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들려오는 건, 확실치 않은 멜로디와 특별한 의미는 없는 라의 연속.’ (24쪽)



  만화책 《네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금 웃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고양이와 사람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는 우리 삶인 한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제대로 생각을 주고받지 못하는 일도 아주 잦기 때문입니다.


  서로 해코지를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서로 딴죽을 걸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서로 푸대접을 하기도 하고, 서로 못 본 척을 하기도 하며, 서로 밟고 올라서려 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왜 그러할까요? 우리는 ‘같은 사람’끼리 왜 서로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안 키울까요? 우리는 왜 ‘같은 사람’ 사이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올리려고는 안 할까요?



- “이치고. 여기 매일 오는 건 유키에를 만나기 위해서니?” “아니. 여기 있는 애들을 만나기 위해서야. 겁내는 아이한테도 얘기해. 괜찮아. 아무것도 안 무서워.” (51쪽)

- ‘마이코는 응원하고 있다. 마이코는 항상 응원한다. 언덕을 올라가는 노인을. 아이들을. 마이코의 마음은 자유로워서, 밖으로 쫓겨난 것도 전혀 신경 안 쓴다.’ (64∼65쪽)



  읍내마실을 나갈 적에 만나는 다른 마을 할매와 할배는 늘 이웃입니다. 읍내 저잣거리에서 스치는 모든 사람은 이웃입니다. 시골에서 벗어나 도시로 갈 적에 이 시외버스를 모는 일꾼도 이웃이고, 옆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도 이웃입니다. 도시에 가득가득 넘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도 이웃이에요. 이웃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이 지구별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서로 이웃입니다.


  서로 이웃이기에 돕습니다. 돈이나 밥을 안 바라면서 그저 즐겁게 돕습니다. 서로 동무이기에 어깨를 겯습니다. 어깨동무를 해요. 아무것도 안 바라면서 어깨동무를 하지요. 왜냐하면, 서로 아끼고 좋아하면서 사랑하거든요.



- ‘사람과 함께 지내는 동물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애정이 깊다.’ (103쪽)

- “뮤우는 이 가족을 잃고 싶지 않은 거예요.” “뮤우는 바보구나. 버릴 리가 없잔아. 뮤우 어서 자라렴. 많이 먹고 쑥쑥 자라렴. 정말 좋아해.” (133쪽)



  만화책에 나오는 아가씨는 어떻게 ‘고양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아주 쉽습니다. 마음을 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열면, 고양이 목소리뿐 아니라 참새와 까치 목소리도 듣습니다. 풀꽃과 들꽃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잘리거나 꺾인 나뭇가지 목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짓밟힌 가랑잎 목소리도 들을 수 있고, 애꿎게 죽은 날벌레와 풀벌레 목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날 천성산에서 도룡뇽을 지키려던 지율 스님 같은 분은 천성산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고, 도룡뇽이 슬피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율 스님은 여러 해 앞서부터 낙동강과 내성천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었어요. ㅈㅈㄷ신문을 비롯해서 다른 진보신문조차도 지율 스님 이야기를 곧이듣지 않았는데, ㅇㅁㅂ이라는 분이 대통령에서 내려서기 무섭게 모두들 한목소리로 4대강사업을 나무랍니다. ㅈㅈㄷ신문을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과 여느 사람들은 ‘목소리를 듣고’ 누군가를 나무라지 않아요. 그저 떠도는 소문과 유행처럼 나무랄 뿐입니다.


  마음을 열 때에 사랑을 할 텐데,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지식과 정보를 소문과 유행처럼 받아들인다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습니다. 마음을 열 때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스스로 심고 뿌리고 가꾸고 돌보기에, 무엇이든 바꿉니다.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씨앗을 심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삶을 북돋우지 못하지만, 마음을 열면 언제나 씨앗을 심고 돌보는 따사로운 손길이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삶을 일으킵니다.



- “마린은 지지 않아. 병원도 약도 아무렇지 않아. 정말 정말 좋아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167∼168쪽)

- ‘죽은 애완동물들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당신의 웃는 얼굴이나 눈물에 살며시 다가옵니다. 계속 계속 언제가지나.’ (188쪽)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지구별에서 우리는 서로서로 이웃입니다. 이웃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요. 내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함께 들어요. 네가 들려주는 목소리는 늘 노래이니, 즐겁게 들을게요.


  서로 손을 맞잡고 씨앗을 한 톨씩 심어요. 메마른 땅에 심고, 쪼개진 시멘트 틈에 심어요. 도시에도 나무를 심고, 시골에도 나무를 심어요. 나무 때문에 그늘이 져서 곡식이 덜 여물까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곡식도 때로는 그늘을 바라요. 곡식은 나무그늘 때문에 괴로운 일이 없어요. 곡식이나 열매는 나무그늘이 아닌 ‘시골에서도 밤새 켜는 등불’ 때문에 괴롭습니다.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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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배웅하는 아이들



  어제 이른아침, 두 아이가 아버지를 배웅하면서 “아버지, 일 갔다가 오면 나랑 놀아 줘야 해요. 약속.” 하고 말한다. 아이들은 이것을 사 오라느니 저것을 바란다느니 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같이 놀자고 말한다. 나도 아이들한테 딱히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얘들아, 잘 놀고 씩씩하게 놀고 튼튼하게 놀고 재미나게 놀고 즐겁게 놀고 사이좋게 놀고, 언제나 사랑스럽게 하루를 누리자, 하고 말한다.


  늘 놀자고 말하다 보니, 아이도 인사말이 ‘놀자’이다. 그리고, 아버지더러 일을 줄이고 놀자는 뜻이기도 하다. 맞아. 그렇지. 그렇지만 아버지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놀이와 같은 일을 한단다. 너희는 오롯이 놀이가 되는 놀이를 하는데, 바로 너희한테 그 놀이는 모두 일이 된단다. 아름다운 삶이지.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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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글 한 줄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노래로 삶을 가꾼다.


4347.10.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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