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는 어디에서나 자동차를 본다. 멀쩡히 선 차, 신나게 달리는 차, 반짝반짝 새로 나온 차, 오래된 후줄근한 차, 온통 자동차이다. 커다란 버스와 노란 버스가 달리고, 새까만 자동차와 새하얀 자동차가 길을 누빈다. 도시에서 아이와 어른 모두 두 다리로 한두 시간쯤 가볍게 나들이를 다니지 않는다. 도시에서 아이와 어른 모두 십 분 나들이조차 자동차를 타려고 한다. 이러한 한국 사회에서 사진책 《자동차에 대한 기술》이 태어난다. 길바닥을 가득 채우는 자동차가 아니라, 목숨을 다한 자동차가 모인 이야기를 다룬다. 좁은 골목까지 누비는 자동차가 아니라, 찌그러진 자동차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4347.10.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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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대한 기술- 윤승준 사진집
윤승준 지음 / 포토닷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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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개(강아지)는 놀고 싶다. 어린 염소(새끼 염소)도 놀고 싶다. 그런데, 강아지한테는 목줄이 없는데 새끼 염소한테는 목줄이 있구나. 강아지는 촐랑촐랑 다녀도 되지만, 새끼 염소는 아무 풀이나 뜯어먹지 말라면서 목줄을 맸구나. 밭에 심은 남새를 뜯어먹으면 안 될 테니 목줄을 했구나. 새끼 염소는 봄이 되어도 들판을 뛰놀지 못하겠구나. 그러나 두 아이는 어느새 한동아리가 된다. 싱싱 달리면서 뛰논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즐거운가. 얼마나 재미난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활짝 웃고 까르르 노래하면서 살그마니 보듬는다. 4347.10.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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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와 염소 새끼
권정생 시, 김병하 그림 / 창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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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 -담談 1


헤어진 뒤에 학생들이 돌아와서 여행담을 들려줄 수는 있다

《파멜라 메츠/이현주 옮김-배움의 도》(민들레,2001) 33쪽


 여행담을

→ 여행 이야기를 

→ 여행 얘기를

→ 여행했던 이야기를

 …



  어릴 적 일을 돌이키면, 어른들은 우리한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면서, 으레 ‘무용담’이나 ‘체험담’이나 ‘경험담’을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우리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무슨무슨 담’이라고 말하는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 말하니 그리 듣고, 이리 말하니 이리 들을 뿐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왜 ‘여행 이야기’나 ‘여행 얘기’처럼 말하지 못했을까 궁금합니다. ‘겪은 이야기’나 ‘치렀던 이야기’나 ‘부대낀 이야기’처럼 말하기는 힘들었을까요. ‘싸운 이야기’나 ‘꿈 이룬 이야기’처럼 새롭게 말을 지을 마음은 없었을까요.


 경험담 → 겪은 이야기

 무용담 → 싸운 이야기

 성공담 → 성공한 이야기 / 꿈을 이룬 이야기

 체험담 → 겪은 이야기 / 몸소 겪은 이야기


  ‘무용담’ 같은 이야기를 들을 적에는, 소리값은 같으면서 다른 한자말인 ‘舞踊’이 먼저 떠오르곤 했습니다. 이러면서 ‘춤 이야기’라는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체험(體驗)’이나 ‘경험(經驗)’이란 “스스로 몸으로 부딪힌 이야기”이지만, 어느 어른도 ‘겪은 이야기’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글쓰기에서도 ‘체험글’이라 할 뿐, ‘겪은글’처럼 새말을 지으려 하지 않아요.


 노래이야기 . 책이야기 . 삶이야기 . 사진이야기 . 그림이야기

 노래얘기 . 책얘기 . 삶얘기 . 사진얘기 . 그림얘기


  살아가는 그대로 말하거나, 보는 그대로 글을 쓰거나, 부대끼는 그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나 싶어 아쉽습니다. 지난날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또는 앞으로는 우리 스스로 다른 삶을 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생각과 넋으로 다른 삶을 여미면서 말넋과 글넋을 북돋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학교를 오래다니거나 많이 배운 사람만 주고받는 말이 안 되도록 차근차근 추스르면 좋겠습니다. 아는 사람만 즐겨쓰는 글이 안 되도록 돌보면 고맙겠습니다. 끼리끼리 나누는 이야기가 안 되도록 알뜰살뜰 손질한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4338.4.4.달/4341.11.26.물/4347.10.2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헤어진 뒤에 학생들이 돌어와서 여행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있다


‘이후(以後)’라 하지 않고 ‘뒤’로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담(談) : ‘이야기’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경험담 / 무용담 / 여행담 / 성공담 / 체험담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682) -담談 2


이밖에도 귀신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일화와 단장곡에 관한 맹열과의 연애담이 또한 그를 유명하게 하고 있다

《박황-판소리소사》(신구문화사,1976) 25쪽


 연애담

→ 연애 이야기

→ 사랑 이야기

→ 애틋한 이야기

→ 사귄 이야기

 …



  ‘연애(戀愛)’는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한국말로는 ‘사랑’이나 ‘그리움’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는 이야기라면 ‘사랑 이야기’입니다. 서로 애틋한 이야기라면 ‘애틋한 이야기’이고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라면 ‘그리운 이야기’나 ‘그리워 하는 이야기’가 될 테지요. 한자말 ‘연애’라는 낱말을 꼭 쓰고 싶으면 ‘연애 이야기’로 적어 줍니다. 누군가와 사랑을 했던 이야기라면, 서로 좋아하며 ‘사귀었던’ 이야기이니, “사귄 이야기”라 하거나 “사랑을 나누던 이야기”로 풀어내어도 잘 어울립니다. 4339.10.22.해/4342.1.24.흙/4347.10.2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밖에도 귀신한테서 배웠다는 얘기와, 단장곡하고 얽혀 맹열과 나눈 사랑 이야기로 그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귀신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귀신한테서 배웠다”로 다듬습니다. ‘일화(逸話)’는 ‘이야기’로 손보고, ‘단장곡(斷腸曲)’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애끊는 노래’로 손볼 수 있습니다. ‘-에 관(關)한’은 ‘-에 얽힌’으로 손질하고, “그를 유명(有名)하게 하고 있다”는 “그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192) -담談 3


축구 할 때 자기가 어떻게 다쳤는지를 무용담처럼 얘기했다

《박효미-길고양이 방석》(사계절,2008) 51쪽


 무용담처럼 얘기했다

→ 자랑처럼 얘기했다

→ 으쓱거리며 얘기했다

→ 떠벌이면서 얘기했다

→ 아주 큰소리로 얘기했다

→ 어깨를 우쭐거리며 얘기했다

 …



  ‘무용담(武勇談)’은 “싸움에서 용감하게 활약하여 공을 세운 이야기”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싸웠던 이야기”를 가리키는 ‘무용담’입니다. “무용담처럼 얘기했다”라는 글월은 겹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말 ‘談’과 ‘얘기’가 잇달아 나옵니다. 살짝 다독여야겠지요.


  ‘싸운 이야기’인 무용담입니다. 이를 한 낱말로 추슬러 ‘싸움이야기’로 적을 수 있습니다. 이 뜻 그대로 적으면 넉넉합니다. 다만, 보기글에서는 싸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축구를 하면서 제가 얼마나 잘 뛰거나 멋졌는가를 놓고 자랑하면서 이야기하니까, “자랑을 늘어놓았다”라든지 “자랑처럼 떠벌였다”로 풀어냅니다. 4341.11.26.물/4347.10.2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축구 할 때 제가 어떻게 다쳤는지를 자랑처럼 얘기했다


‘자기(自己)가’는 ‘제가’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35) -담談 4


교무실에 모여 앉아 아이들 뒷담이나 하고 있다니

《경남여고 아이들-기절했다 깬 것 같다》(나라말,2011) 20쪽


 뒷담

→ 뒷말

→ 뒷이야기

→ 뒷얘기

→ 뒷소리

 …



  ‘뒷담(-談)’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우리가 쓰는 ‘뒷담’이라면 ‘앞담’이나 ‘옆담’이라는 낱말과 아울러 쓰는 “울타리”를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적잖은 이들은 ‘뒷담화(-談話)’라는 낱말을 지어서 씁니다. 한국말 ‘뒤’에다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음”을 뜻하는 한자말 ‘담화(談話)’를 붙여서 쓰는 낱말인데, 이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안 실립니다. 실을 까닭이 없겠지요. 왜냐하면, 한국말에는 ‘뒷말·뒷이야기·뒷얘기·뒷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국말을 알맞게 써야지, 뜬금없이 ‘談話’ 같은 한자를 끌어들여 새 낱말을 지을 일이 없어요. 더군다나, ‘뒷담화’를 줄여, 이 보기글처럼 ‘뒷담’으로 쓸 일도 없습니다. 4347.10.24.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교무실에 모여 앉아 아이들 뒷얘기나 하다니


“하고 있다니”는 “하다니”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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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6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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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82



사랑 어린 손길로

― 은빛 숟가락 6

 오자와 마리 글·그림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8.25.



  사랑 어린 손길로 바느질을 하면, 바느질을 마친 옷을 입는 사람 누구나 즐겁습니다. 사랑 어린 기운이 한 땀 두 땀 깃들었으니, 이 기운을 받아 즐겁게 노래하면서 일하거나 놀 수 있어요.


  사랑 어린 손길로 밥을 지으면, 이 밥을 함께 먹는 사람 누구나 기쁩니다. 사랑 어린 기운으로 한 알 두 알 모인 밥그릇이니, 이 기운을 먹으면서 기쁘게 힘을 얻어 새롭게 일하거나 놀 수 있어요.


  어떤 일을 하든 사랑스럽게 할 노릇입니다. 무엇을 만들든 사랑스럽게 만들 노릇입니다.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이웃을 생각할 노릇입니다.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살붙이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한집과 이웃과 동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속에 언제나 사랑이 감돌아요.





- “고모한테는 혼났지만 분명 리츠는 여러 가지로 참았을 테니까 결과적으로 잘 된 거 아니냐고 하셨어요.” “계기도 타이밍도 남이 정할 일이 아냐. 아무리 친척이라도 중요한 일을 가족 이외의 사람한테서 듣게 하다니, 말도 안 되잖아?” (12쪽)

- “지금은?” “알고 싶어. 나한테 있어서 엄마는 키워 준 엄마밖에 없지만, 엄마가 이걸 건네주셨을 때부터,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어. 날 낳아 준 사람에 대해서도. 나 자신에 대해서도.” (18쪽)

- ‘나는 나폴리탄 스파게티와 아이스커피. 그것은 엄마가 만들어 준 맛과 달랐지만, 어딘가 그리운 맛이 났다.’ (26쪽)



  우리 집 일곱 살 어린이가 또박또박 눌러서 쓴 쪽글을 책상맡에 둡니다. 이 아이가 신나게 그려서 내민 쪽그림을 책상맡에 나란히 둡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와 함께 그린 그림 하나를 책상맡에 함께 둡니다.


  아이가 아버지한테 준 선물(쪽글과 쪽그림)을 바라보고, 내가 아이하고 함께 그림놀이를 하면서 얻은 그림을 바라봅니다. 이 글이나 그림은 잘 쓴 글이나 잘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즐겁게 쓴 글이고, 기쁘게 그린 그림입니다. 사랑을 담아서 쓴 글이요, 사랑을 실어서 그린 그림입니다.


  잘 쓴 글이라면, 이 글을 볼 적에 ‘잘 썼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담아 쓴 글이라면, 이 글을 볼 적에 ‘사랑스럽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주 마땅합니다. 그래서, 사진전시나 그림전시를 하는 곳에 가서 사진이나 그림을 볼 적에 이 두 가지를 떠올려요. ‘아, 이 그림은 잘 그렸네’ 하고, 또는 ‘아, 이 그림은 사랑스럽네’ 하고.





- ‘취향이 있으니까 사지 않아도 된다는데 아직껏 내 옷을 사는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어버이날에 선물한 스카프를 아직까지도 소중히 여기며, 멋 내실 때 필수 아이템으로 걸치신다.’ (31∼32쪽)

- “당신의 친부모님은 의무교육 중에 당신을 가졌기 때문에 키울 수가 없어서 당신을 넘겼지만 당신의 행복을 계속해서 바라는 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요. 성장한 당신이 본인 의지로 만나러 와 준 걸 안다면 분명 당신을 낳아 준 부모님도 기뻐하실 거예요.” (45∼46쪽)

- ‘엄마가 사 온 새 티셔츠를 입고(4장에 2000엔), 다 함께 거실에서 수박을 먹으며 개그프로를 봤다. 내가 행복하기를, 그 사람들도 행복하기를, 같은 이 하늘 아래에서, 부디 행복하기를.’ (60∼62쪽)



  잘 그린 그림이 나쁠 일은 없습니다. 잘 그린 그림은 잘 그렸을 뿐입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사랑스레 그린 그림이 더 좋을 일은 없습니다. 사랑스레 그린 그림은 그저 사랑스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그림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사랑스러운 그림은, 이 그림을 빚은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떠올릴 수 있고, 이 그림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솟습니다.


  잘 차린 밥이라고 해서 더 맛있지 않아요. 잘 차린 옷이라고 해서 더 멋있지 않아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속에 담은 넋과 숨결이 대수롭습니다.


  아이들이 꼬물꼬물 그린 그림이 왜 우리한테 힘이 될까요? 바로 사랑을 실어서 그렸기 때문입니다. 일곱 살 어린이는 아직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모릅니다. 아직 글씨를 잘 여미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곱 살 어린이는 제 모든 기운을 쏟아 즐겁게 글을 씁니다. 그러고는 이 글을 “아버지, 여기 편지 받으셔요.” 하면서 내밉니다. 빙그레 짓는 웃음이 ‘투박한 편지’에 서립니다. 활짝 웃으며 노래하는 숨결이 ‘수수한 그림’마다 흐릅니다.


  우리가 이 지구별에 태어나 살아가는 보람이라면 바로 이러한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지구별에 태어나 살아가는 뜻이라면 바로 이처럼 사랑을 나누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일이지 싶습니다.





- ‘그런 놈들과 어울려 다닌다면 더욱더 불러들여야 해. 마음은 그렇게 생각해도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83쪽)

-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결단하는 건 본인이고, 그래서 후회하는지 만족하는지도 본인 하기 나름이다. 미래는 누구도 알지 못하기에, 부 활동을 그만둔 선택이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인생의 열쇠는 언제나 자신이 쥐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생각해 줬던 사람이 사 준 라면 맛은, 분명 언제까지나 특별할 거라고 난 생각했다. 설령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 씁쓸하든 달콤하든.’ (92쪽)



  오자와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4)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여섯째 권에서는 새로운 실마리 하나가 흐릅니다. 이 만화책에서 주인공이 되는 아이는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쳐서 대학교에 들어갑니다.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낳은 어머니’가 따로 있는 줄 알아챕니다. 이무렵 ‘기른 어머니’가 몸이 많이 아파 드러눕는 바람에 병원에까지 갑니다.


  만화책을 그린 분은 주인공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깊은 자리까지 건드리지 않습니다. 아니, 이제껏 일부러 안 건드렸다고 해야 할 테지요. 언제나 차분해 보이는 얼굴로 그립니다. 그러나, 짐짓 차분해 보여도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어요. 이 응어리를 여섯째 책에서 비로소 천천히 풉니다. ‘두 어머니’ 사이에서 스무 살 젊은이가 어떤 길을 가야 할는지 망설이면서 헤매는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 ‘동생일지 모르는 이 어린 남자아이가,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 (150∼151쪽)

- ‘도어체인 사이로 겨우 들여다본 실내는 정리돼 있어 청결해 보였다. 하지만 루카의 머리는 멋대로 자라 있었고, 옷은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그래도, 딱 하나뿐인 아이스크림을 나눠 주려 한 동생을, 난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154쪽)



  한참 망설인 주인공 아이는 ‘피가 다른 살붙이 누나’한테서 도움말을 받습니다. 차마 ‘기른 어머니’한테 ‘낳은 어머니’ 이야기를 더 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이 어린 동생’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물을 수 없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무한테도 아직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하지 않습니다.


  주인공 아이는 어느 날 굳게 마음을 먹습니다. 아주 홀가분하게 마음을 먹습니다. 언제나처럼 도시락을 쌌습니다. 손수 싼 도시락을 스스로 먹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차분하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어 도시락을 쌌어요. 이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길을 나섭니다. 주인공 아이가 나서는 길은 저절로 ‘낳은 어머니’가 사는 집으로 이어집니다.





- ‘근데 오빠. 대학생이나 돼서 도시락 반찬이 문어 소시지라니 너무 귀엽잖아, 라고 충고해 주는 편이 좋았을까?’ (163쪽)

- “자, 이건 루카 거야.” “응? 내 도시락?” “오늘도 널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어 왔어.” (173쪽)

- “자, 그럼 이걸로 손. 밥 먹기 전에는 손을 꼭 깨끗이 하고, ‘잘 먹겠습니다’라고 해야 해. 이 주먹밥의 밥풀 한 톨에도 여러 사람의 수고가 들어가 있어.” (175쪽)



  도시락이 맛있는 까닭을 사람들은 제대로 알까요? 도시락이 우리 몸에 어떻게 스며드는지 사람들은 똑바로 알까요? 도시락이 어떤 밥인지 사람들은 얼마나 알까요?


  요즈음은 초·중·고등학교 어디나 급식실이 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도시락을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아이들 가방이 한결 가볍다고 할 만합니다. 급식실을 지키는 영양사는 더 나은 품질로 더 나은 밥을 지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나는 급식실 밥이 그리 내키지 않습니다. 학교급식을 늘리는 움직임이 커졌을 적에 하나도 반갑지 않습니다. 이는 교육도 복지도 문화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어느 학교 어느 급식실에서도 ‘다 다른 아이’한테 ‘다 다르게 맞춘 밥’을 차려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급식실은 ‘다 다른 아이’한테 ‘모두 같은 밥’을 먹입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밥판’을 들고 밥을 먹어야 합니다. ‘모두 똑같은 수저’를 들어야 합니다.


  어버이가 손수 싸는 도시락은 ‘도시락 뚜껑’부터 수저까지 다 다릅니다. 도시락을 싸는 보자기도 다 다릅니다. 도시락에 담는 밥과 반찬도 다 다릅니다. 비록 ‘식은 밥’을 먹더라도, ‘식은 밥’에 깃든 따스한 손길을 먹을 수 있습니다.


  어버이가 도시락 하나 싸기도 힘들거나 바쁘다면?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참말 무슨 일을 얼마나 해야 하기에 아이들 도시락 하나를 쌀 겨를을 낼 수 없는가요? 어른들이 다니는 회사는 얼마나 대단한 곳이기에 아이들 도시락 하나를 쌀 겨를을 내주지 않는가요?


  ‘무상 급식’은 안 해도 됩니다. ‘무상 급식’을 할 돈으로, 이 나라 어버이한테 ‘밥값 몫으로 돈’을 주거나 ‘도시락을 쌀 겨를’을 마련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왜 한 끼니나 두 끼니를 먹어야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얼마나 오랫동안 붙들려야 하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더 헤아린다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손수 밥을 지어서 먹도록 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낮은학년이라면 담임 교사가 아이들을 이끌어 밥을 지으면 됩니다. 초등학교 높은학년부터는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영양사가 차리는 ‘단체급식’이 아니라, 아이들이 손수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마련해서 삶을 사랑스레 누릴 수 있는 길로 가야 합니다.





-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마미야 마야’가 내 생모라면, 아마미야 루카는 틀림없이 내 동생이다. 루카의 기억에 있는 아빠가 나를 닮았고 루카한테도 친아빠라면 아빠도 같을지 모른다. 엄마는 중학생 때 나를, 20대 후반에 루카를 낳은 셈이 되지만, NPO법인에 내 앞으로 보낸 메시지가 엄마 이름뿐이었던 건, 그 뒤에 결혼했다 다시 이혼한 걸까, 아니면 혼인관계는 맺지 않았던 걸까?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엄마에게선 아이스크림 하나밖에 얻지 못한 이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을지, 대체 뭘 할 수 있을지, 그것뿐이다.’ (184∼186쪽)



  만화책 《은빛 숟가락》을 그린 오자와 마리 님은 주인공 아이한테 ‘한 가지 일’을 맡깁니다. 주인공 아이가 스스로 풀어야 하는 ‘한 가지 일’을 맡깁니다. 스무 살 젊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는지 모르나, 이 아이가 스스로 풀고 맺기를 바라면서 ‘한 가지 일’을 맡깁니다.


  자, 너한테 동생이 있단다, 네가 그동안 모르고 지내던 동생이란다, 이 동생을 이제 너는 알았단다, 그러면 너는 앞으로 이 동생하고 어떻게 살아가겠니, 하고 ‘한 가지 일’을 맡깁니다.


  만화책 주인공 아이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갈까요? ‘낳은 어머니’가 낳은 동생이지만, 나와 다른 곳에서 다르게 살아가니, 얼굴보기를 끝으로 등을 돌리면 될까요? ‘낳은 어머니’가 돌볼 책임이 있다지만, ‘내 동생’인 만큼, 내 동생한테 도시락을 싸서 꾸준히 찾아가자고 생각할까요? 뒷이야기는 일곱째 권을 보면 사르르 풀릴 테지요. 4347.10.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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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80] 삶짓기



  삶을 짓기에 ‘삶짓기’입니다. 나는 내 삶을 손수 짓습니다. 내가 살아갈 길을 스스로 짓습니다. 가슴에 품을 꿈을 손수 짓고, 이웃과 나눌 사랑을 스스로 짓습니다.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습니다.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가 모여 삶짓기가 됩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이야기를 짓습니다. 이야기를 짓는 사람은 노래를 짓습니다. 노래를 짓는 사람은 웃음을 짓고, 때로는 눈물을 짓습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롭게 마음을 짓습니다. 생각을 지어 하루를 일굽니다. 생각짓기는 하루짓기가 됩니다. 하루짓기는 달짓기와 철짓기가 될 테고, 달과 철을 차근차근 지으면 어느새 해짓기가 될 테며, 달과 철과 해를 지으니 시나브로 삶짓기로 나아갑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말을 함께 짓습니다. 내가 쓸 말을 내가 손수 짓습니다. 내 이웃도 손수 말을 짓습니다. 나와 이웃은 서로 말을 섞으면서 저마다 손수 지은 말을 주고받습니다. 서로서로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아름다이 말을 짓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다시금 새삼스럽게 이름을 하나 짓습니다. 서로 동무라 부르면서 넋을 짓습니다. 씩씩하게 한길 걸어가면서 몸을 쉴 보금자리를 짓습니다. 4347.10.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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